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9화
푸드덕거리는 갈매기를 손에 들고 있는 내게 다들 입을 떡하니 벌렸다.
예능인 강만호가 입을 뻐끔거렸다.
“살다살다 갈매기를 낚는 아이돌은 처음 보네. 어떻게… 낚은 거야?”
“타이밍만 맞는다면 누구든 붙잡을 수 있어요. 호주에서 감자튀김으로 갈매기 붙잡은 분도 있는걸요.”
“우주야. 삼촌들은 그런 거 타이밍 맞아도 못해.”
추기석 씨가 옆에서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분명히 신기한 걸 낚을 거라고.”
“아니, 그건 그렇지만 누가 갈매기를…….”
신기해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카메라 감독님들과 출연진 속에서 중현이가 내 뒤에 슥 섰다.
나를 닮아 뻔뻔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갈매기는 인정 안 되는 건가요?”
당연하게도 인정되지 않았다.
후.
뉴블랙 TV였다면 어떻게든 궤변과 권력으로 동생들을 압박했을 텐데.
“갈매기야! 너는 자유의 몸이란다!”
“고마워요. 인간!”
갈매기 대사를 자체 더빙해 주는 중현이와 사이좋게 꽁트를 찍고는 다시 낚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물고기는 오지 않았다.
다들 자기 낚싯대를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는 가운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내 옆자리에서 들려왔다.
“간식 먹을래요?”
추기석 씨가 우리에게 라면 봉지를 내밀었다.
스프가 묻은 생라면 조각을 입에 넣으며 우물거렸다.
짭조름한 맛.
출출해서 그런지 꿀떡 넘어가는 간식을 먹으며 중현이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원래 낚시가 이런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요?”
“물고기가 원래 이 정도로 안 잡히나 해서요.”
“음. 꼭 그런 건 아닌데.”
추기석 씨가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11월이었던가. 추자도에서 감성돔 낚시할 때, 10시간 동안 감성돔은커녕 물고기 한 마리도 못 낚은 적이 있거든요.”
“…….”
“어떨 때는 낚시 시작하자마자 잡기도 하고.”
경청해서 듣는 우리에게 추기석 씨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낚시는 실력이 좋다고 잘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어복(魚福).”
“물고기 복이요?”
옆에 있는 다른 출연진들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낚시는 어복이지.”
“진짜. 그것만큼 낚시를 관통하는 명대사가 없다.”
추기석 씨가 말했다.
“낚시는 어복이 있는 사람이 잘 잡아요.”
“어찌 보면 기복신앙 같은 거네요.”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애니미즘, 토테미즘 같은 키워드가 떠오른다.
리혁이가 있었다면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기복신앙이란 단어를 들으니 뭔가 떠오른다.
내 옆으로 보이는 날렵한 턱선과 부리부리한 눈썹을 지녀서 곰을 닮은 무언가가.
“중현아.”
“네?”
“뭐 좀 빌어 봐봐. 너 비도 잘 내리고 그러잖아.”
“음.”
그 말을 듣던 백상교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 중현이. 뭐라도 하늘에 빌어 봐봐.”
“진짜, 우리 뭐라도 해야 돼!”
예능인들의 말에 중현이가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내가 태국의 전통음악을 허밍으로 부드럽게 깔아주는 동안, 중현이가 푸켓의 용왕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뭔가 웃겨 보이는 모양이었다.
“후.”
중현이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일단 기도를 올려 봤는데… 효과가 얼마나 될…… 어?”
“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중현이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중현이와 내 낚싯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꾸우우욱!
무언가 잡아당기듯이 동시에 내려가는 낚싯대에 주변에 있던 출연진이 벌떡 일어났다.
“용왕님!”
“용왕님이 응답하셨다!”
“공양미 삼천 석 필요 없다! 우린 중현이 기도면 되는 거야!”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떠는 가운데 중현이와 내가 낚싯대를 동시에 붙잡았다.
낚시 가이드인 킥 씨와 백상교 선생님, 오현숙과 강만호가 달라붙어 우리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당겨! 아니! 무작정 당기면 안 되고 밀당을 해야지, 중현아!”
“옳지! 우주야! 옳지, 그거다!”
중현이와 내가 낚싯대를 잡아당겼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거 뭔가 심상치가 않다.
“아니, 무슨 힘이…….”
내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었다.
대체 수면 아래에서 어떤 괴물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푸른 바다 아래 무시무시한 게 살고 있었다.
이빨이 어마어마하게 뾰족한 괴물 같은 물고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으으윽!”
나보다 힘이 더 강한 물고기에 대항하기 위해 미튜브에서 보았던 온갖 노하우를 동원하며 대항했다.
추기석 씨가 흥분했다.
“나왔다! 무엇이든 50년차 노인이 되어 버리는 표정이에요! 얼른 찍어요!”
“선배님, 으그그극!”
“괜찮아?”
“아뇨. 이 무식하게 힘만 센 물고기가……!”
“Tuna.”
“우주야! 선장님이 참치 같다고 하신다!”
그러는 동안 중현이도 옆에서 진땀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백상교 선생님이 중현이와 씨름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교활해.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교활한 놈이 걸렸어. 이거 내 낚시 인생을 걸고 말하는데 진짜 음흉시러운 물고기다.”
“흐으음! 물고기가 진짜 얍삽해요.”
“중현아. 이런 백 년 묵은 구미호 같은 놈들한텐 힘으로 대항하면 안 돼. 너도 테크닉으로 저항해야지. 힘만 써서는 절대 못 이긴다.”
“It’s GT.”
“대박이다! 중현아! 선장님이 자이언트 트레발리 같다고 하시는데?”
중현이가 바로 테크닉을 바꿀 때였다.
갑자기 내 물고기의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가 아니었다.
“흡차!”
중현이가 끌어당기면 내 몸이 앞으로 훅 쏠리고.
내가 노하우를 이용해서 당기면 중현이가 으으윽 하면서 손을 달달 떨고.
“중현아.”
“네.”
“잠깐 힘 좀 풀어 볼래?”
“네? 형, 이거 지금 물고기…….”
“내 말 믿고 풀어 봐봐.”
중현이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손을 놓는 그 순간.
내 낚싯대에 가해지는 힘이 사라졌다.
참치와 자이언트 트레발리 같다고 하던 선장님이 슬그머니 선장실로 도망치는 가운데.
“…….”
“…….”
릴을 돌돌돌 감으면서 중현이와 나의 줄이 엉킨 채 올라왔다.
줄이 진짜 이상하게 얽혀 있는데, 둘 사이에 이상하게 무거운 돌도 하나 걸려 있다.
강만호 씨가 요약했다.
“이야, 서로를 낚았네.”
“중현이는 또 돌 낚았니.”
“우리 마리오 선장 어디 갔어. 순 사꾸라 같은 양반이…….”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
불현듯 물고기인 줄 알고 서로에게 퍼부었던 말들이 떠오른다.
-무식하게 힘만 센 물고기가…!
-물고기가 진짜 얍삽해요.
중현이의 촉촉한 눈망울을 바라보니 중현이도 마음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추기석 씨가 말했다.
“뭔가 버전은 다르지만 의좋은 형제네요.”
“…….”
“…….”
실컷 흑역사만 만든 낚시에 눈물이 머금어졌다.
* * *
피디님이 확성기를 들었다.
-자! 포인트를 이동하겠습니다!
촤촤촤촤촤!
하얀 포말을 그리며 배가 움직였다.
백상교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엄청 들었는지, 마리오 선장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선장님 말에 따르면 이 부근이 바라쿠다들을 낚기 좋은 곳이라고 하네요.”
“확실한 거래? 오늘 허탕만 몇 번째야.”
“정말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바라쿠다를 낚지 못하면 책임을 지시겠다고….”
“그래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낚시 못해서 예민하던 낚시꾼들이 한 번 더 믿어 보겠다는 얼굴로 캐스팅을 했다.
퐁당.
퐁당.
우리도 채비를 하고 낚싯대를 던졌다.
“선장님 말에 따르면, 가볍게 저킹을 해 보는 것도 좋다고 하시네요.”
“저킹이요?”
킥 씨가 양옆으로 미끼를 휘휘 부드럽게 젓는 동작을 선보였다.
아.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보이게 만들라는 거구나.
주기적으로 미끼를 스윽 저으며 낚싯대를 늘어뜨렸지만, 1시간이 넘도록 응답이 없었다.
“……이거 몰카 아니지?”
예민한 인상의 강만호가 투덜대며 물었다.
“아니 물고기 반 물 반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6시간 동안 물고기가 하나도 안 나올 수가 있어?”
“허허.”
“형님이 말해 보셔요. 저번에 여기서 많이 낚으셨다면서요.”
“나 왔을 때는 엄청 낚았지. 오늘 물때가 안 맞는 걸 내가 어떻게 하겠냐.”
“저 물때는 항상 안 맞아.”
오현숙이 투덜대며 낚싯대를 휘휘 흔들었다.
정확히 의미는 모르겠지만 물때라는 게 무슨 타이밍 같은 것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네. 점심 식사 시간입니다.
점심 메뉴는 한국에서 가져온 콩국수와 간단한 생선구이었다.
“아이고 살 거 같다.”
“먹어야지. 먹고 힘내야지.”
다른 건 몰라도 밥 하나는 정말 끝장나게 잘 챙겨 주는 방송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정말이었다.
음식뿐만 아니라 곳곳에 어르신들이 먹을 주전부리들이 가득했다.
조연출의 말에 따르면 다들 연세가 좀 있어서 당 떨어지기 시작하면 격하게 화를 내기 시작한다나.
그리고 밥을 또 하나 잘 챙겨 주는 이유는.
탈탈탈.
종이 봉지에 담긴 약을 흔드는 이들의 모습에 중현이와 내가 짠한 웃음을 보였다.
백상교 선생님을 비롯해 멤버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른들 약 잘 먹지?”
“뭐가 되게 많네요.”
“다 나이 들면 먹게 돼. 너희는 안 먹니?”
“저희는 비주가 싸 준 비타민 알약 있어요.”
“하긴, 20대면 철근도 씹어 먹을 나이지.”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 같은 약들을 바라보며 작게 웃을 때, 백상교 선생님이 말했다.
“그런데 최고의 약은 바로 이 낚시라 이 말이지. 낚시만 하면 근심걱정이 싹 사라진다니까.”
“낚시가 최고야.”
“정말 낚시를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낚으면 낚는 대로 재미있고, 못 낚으면 못 낚는 대로 재미있고. 그게 낚시란 취미의 매력이거든.”
“오오.”
중현이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때였다.
-잠시 여러분.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확성기를 든 피디님이 우리의 무뚝뚝한 인상의 낚시 가이드와 함께 서 있었다.
-여러분께서 지금 정말 물고기가 잡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시잖아요?
“네!”
-그런 의심과 우려를 말씀드렸더니, 가이드 분께서 직접 낚시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겠다고 합니다.
“오, 저 양반이?”
-선장님도 같이 하신다네요.
무뚝뚝한 인상의 낚시 가이드와 푸근한 인상의 선장님이 각자 낚싯대를 든 채 섰다.
부드럽게 릴리즈를 하고 그다음에 물고기를 유인하고.
특별히 우리와 다른 점은 없었다.
강만호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우리도 저렇게 했다니깐. 저게 안 되니까 문제… 어?”
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낚시 가이드에게 먼저 입질이 왔다.
10분 정도 씨름을 했을까.
촤악!
물을 흩뿌리며 은빛의 길쭉한 꼬치고기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몹시 못돼먹게 생긴 물고기였다.
“저게 바라쿠다구나.”
이빨이 면도칼처럼 날카로워서 조심해야 한다는데, 정말 그의 손에서 흉폭하게 날뛰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다들 어머 할 때였다.
마리오 선장이 웃으며 뭐라고 말했다.
“선장님께서 그러는데 저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라네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보게 될 청새치는 저 정도는 아기 장난으로 보이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
“얼굴의 상처도 청새치 때문에 생겼다고 하시네요.”
그제야 선장님 얼굴에 있는 상처의 정체를 알았다.
다들 머릿속으로 거대한 청새치를 그리고 있을 때.
마리오 선장님도 촤악! 하고 바라쿠다를 한 마리 더 낚았다. 방금 전 물고기보다 작지만 그래도 긴 물고기였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 정도면 충분히 증명이 되지 않았나요?
“…….”
다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낚싯대로 향했다.
하지만.
“야. 이거 진짜 몰카 아니야?”
백상교 선생님이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아이고, 혈압이야. 물고기가 안 잡히잖아!”
그렇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쉽게 낚았던 바라쿠다가 우리에겐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방금 전 두 마리가 전부 아니었냐는 농담이 흘러나오고.
가이드와 선장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동안,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네. 오늘 낚시 종료까지 앞으로 30분 남았습니다.
백상교 선생님이 말했다.
“다른 건 크게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물고기 뭐라도 하나 걸리면 좋겠으니까. 잡어라도 어떻게 한 마리라도…….”
“진짜. 쭈꾸미가 걸려도 좋으니까.”
“흐어어어.”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낚시꾼으로서의 압박감.
뭔가를 보여 줘야 한다는 예능인으로서의 책임감.
그런 비장함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속이 타는 낚시꾼들이 물을 한 모금씩 들이켰다.
“제발, 누구 하나라도 좀 걸려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낚시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카메라 감독님과 피디님도 이제 슬슬 끝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톡.
톡톡.
내 낚싯대에 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형 왔어요?”
“너 안 왔지?”
“네.”
이번엔 진짜 뭔가 다르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톡톡 내 끝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느낌.
“우주 왔어?”
“우주 왔대!”
“왔다! 하나 왔어!”
어쩌면 첫 물고기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낚시 가이드, 선장님을 시작해서 스탭들과 출연진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말 다양한 언어로 훈수 파티가 쏟아지는 와중에 정신을 집중하고, 낚싯대를 풀었다가 조이기를 반복했다.
팔에 쥐가 날 것처럼 줄다리기하기를 5분.
서서히 끝이 보인다.
“수중 카메라 집어넣을 준비해! 물고기 확인해야지!”
“네! 피디님!”
귓가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
“우주야. 좀만 더 힘내자. 우리 오늘 하나는 낚아야지.”
“자기야, 마리오 선장님이 이번에는 백 퍼센트 바라쿠다래.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말한다고.”
“형, 저는 형을 믿어요.”
단체로 내 근처에서 영차! 영차! 하면서 부르스를 추는 사람들.
힘내라! 힘! 하면서 제작진이 보내 주는 응원 속에서 바라쿠다를 마지막에 쭈우욱 끌어올릴 때였다.
투욱.
무언가 아래 있는 것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요상한 감촉과 함께…….
돌돌돌.
릴을 감아올리면서…….
“…….”
“…….”
본래 1미터는 됐을 법한 바라쿠다가 올라오고 있었다.
힘없이.
반 토막으로.
마치 바닷속에 있는 무언가가 마트 생선 코너 직원처럼 ‘토막내 드렸습니다 ^^’ 하고 웃는 듯한 느낌.
그렇게 머리를 비롯해 윗부분만 남은 바라쿠다가 배 위로 올라왔다.
“상처를 보니 상어가 뜯어먹은 것 같답니다. 아주 몸집이 큰 황소상어가 먹고 지나갔을 거라고.”
“…….”
숙연한 침묵.
“…….”
“…….”
반토막만 남은 물고기를 손에 쥔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질녘.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흐흐흐흑!”
“어흐흑!”
“아흐흐흐흐!”
바닥에 주저앉아 바라쿠다 반토막을 쥔 내 곁에서 낚시꾼들과 졸개가 오열하며 몸을 뒤틀었다.
스탭들의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 * *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 - 1일 차 상황판]
백상교 : X
강만호 : X
오현숙 : X
추기석 : X
우주 : 카메라 감독의 모자. 갈매기. 김중현. 바라쿠다 반토막(40cm).
중현 : 돌(30cm). 선우주.
* * *
한국.
선우주가 없는 틈을 타 작업실에 앉아서 작곡 공부를 하고 있던 김비주가 노트북을 세심하게 세팅했다.
“어디 보자. 전원을 꾹 켜고 그다음에…….”
그가 시선을 돌렸다.
“지호야!”
“네!”
“나 이거 좀 도와줘.”
“아, 영상 통화 시간 됐어요?”
지호가 컴퓨터를 만져서 화상 채팅 설정을 마친 후.
리혁도 슬금슬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이제 슬슬 호텔방 들어왔을 시간이네요.”
“응. 연락하기로 한 시간이야.”
곧이어 파앗 하면서 두 얼굴이 떠올랐다.
서리혁이 헛기침을 했다.
‘확실히 정이란 게 무섭군.’
2일 정도 안 봤더니 갑자기 그리워지는 얼굴들이었다.
비주와 지호도 눈을 반짝였다.
‘우주 형이다!’
‘내 거 기념품 샀냐고 물어봐야지.’
하지만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영상 속 우주와 중현의 표정이 그야말로 우중충했기 때문이다.
꼭 머리 위에서 먹구름이 비를 흩뿌리는 것만 같다.
-안녕.
-안녕, 얘들아…….
비주가 물었다.
“형, 표정이 왜 그래요? 밥이 맛이 없었어요?”
-아니. 밥은 너무 맛있었어. 오늘 우리가 탄 배의 선장님이 회랑 생선구이 요리 대접해 주셨거든.
-너무 맛있어서 눈물 났어.
밥이 맛있어서 슬펐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잡은 물고기가 아닌 남이 잡은 물고기로 식사를 하다니.
-이건 낚시꾼의 수치예요. 형.
-치욕스럽다. 정말.
당신들은 아이돌이야, 하는 말이 서리혁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막내가 웃으며 물었다.
“물고기 많이 잡았어요? 막 다른 출연진 분들이 보고 감탄하고 그랬어요?”
-지호야.
“넹?”
-물고기라는 게 그렇게 쉽게 잡히는 거 같아?!
그라데이션도 없이 갑자기 풀악셀을 밟아대는 맏형의 분노에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낚시가 우스워?
-김비주. 네가 이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KG 드래곤스가 꼴찌를 했을 때만큼 분한 표정의 김중현이 말했다.
-낚시는 정말 어려운 거라고.
-말 잘했다, 중현아. 낚시라는 게 얼마나 어렵냐면…….
-백상교 선생님 경력이 40년이라고 하시는데 한 마리를 못 낚으셨어.
-푸켓은 지옥의 낚시터라고!
뉴블랙 멤버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한 마리도 못 낚았구나.’
꽤 충격일 만했다.
특히나 그들의 리더에게 있어서는.
항상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무엇 하나 실패해 본 적 없는 그들의 리더 아니던가.
-진짜.
우주가 이를 갈며 말했다.
-무슨 짓을 써서라도 내일은 낚고야 만다.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겠어.
까드득.
‘어엇, 우주 형 눈에서 불꽃이…….’
‘또 뭔 짓 하려고. 이 인간들.’
‘내 기념품 사 오냐고 언제 물어보지.’
한국에 남은 셋의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룹에서 가장 미친 사람 둘이 같이 있는데 태클이나 브레이크를 걸어 줄 사람은 없는 상황.
-흐하하하하!
-후후후후!
화면 속에서 우주와 중현이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난 트로트 가수 백상교가 바깥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걸어 나왔다.
촬영 장비가 세팅된 숙소 마당.
“아침부터 뭘…….”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보는 듯 스탭들과 피디가 배를 잡고 웃고 있다.
“뭐 해?”
“아,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뭘…….”
이라고 말하려던 백상교의 눈에 뭔가 들어온다.
태국 전통복장을 입은 남녀들이 악기를 불거나 짤랑짤랑 장신구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물고기를 닮은 풍선과 인형들이 사방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쟤들 뭐 하는 거야?’
태국 전통 복장을 입은 우주와 중현이 팔짱을 낀 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백상교의 곁에서 피디가 말했다.
“물고기 많이 잡게 해 달라는 제사래요.”
“저 사람들은 누구야? 자네가 섭외한 거야?”
“아뇨. 우주 씨가 섭외한 건데 태국 수플레들이래요. 저희도 어제 아이디어 전달을 받았어요.”
“아. 그렇구만.”
태국어로 ‘물고기 풍년 되게 해 주세요!’ 하며 빙글빙글 춤을 추는 아이돌과 주변인들의 모습에 그가 멈칫했다.
‘잠깐만.’
뉴블랙의 곁에서 짤랑짤랑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가 다시 물었다.
“……저 사람들이 누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