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1)화 (80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1화

문득 초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보통 동네에 미친 강아지가 한 마리쯤 있는 것은 국룰 아닐까.

나와 할머니가 살던 동네에도 정말 그런 강아지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옥순이.

귀엽게 생긴 시츄인데, 애들이랑 등교하거나 하교할 때면 담벼락 위에서 미친 듯이 짖어 대곤 했다.

-쟤 또 짖어….

-우주야. 우리 다른 데로 가자.

그래서 친구들이랑 하교할 때면 굳이 먼 길을 빙 둘러서 걸어가곤 했다.

아무튼 이야기의 핵심은 이거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캉캉! 짖기만 해도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해 가고 그러는데.

“상어는 오죽하겠냐 이 말이지.”

“일리 있는 말이네요. 형.”

고개를 끄덕이는 중현이를 지나 푸켓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빙글빙글.

지느러미를 내민 채 배 주변을 배회하는 상어를 바라보며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중견 배우 오현숙이 말했다.

“자기야. 나는 이게 정말 모르겠다. 그냥 물고기가 안 잡히는 건지, 얘 때문에 물고기가 안 잡히는 건지.”

“상어 때문에 안 오는 거 아닐까요?”

“그런 거겠지…?”

백상교 선생님이 혀를 끌끌 찼다.

“참나. 푸켓 낚시 다사다난하다. 정말. 비가 오지를 않나, 상어가 배회하지를 않나.”

“죄송해요.”

중현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가 괜히 상어를 구해 주고 그래서.”

“아니야. 그건 잘했어.”

“맞아. 중현아, 방금 건 엄청 잘한 일이야. 그냥…….”

강만호가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오늘 낚시는 공 쳤을 뿐이지.”

“아앗…….”

중현이가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이는 동안 마리오 선장님이 다시 작살을 들고 왔다.

스산한 표정이었다.

“Kill?”

노노노 하고 다 같이 손사래를 쳤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온순하게 주변을 배회하는 상어를 작살로 때려잡는 건 뭔가… 내 마음에 있는 양심 삼각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제 어떻게 하죠?”

추기석 씨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일단 그래도 낚시를 해 보면 어떨까요? 오히려 상어가 있어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잖아요.”

“상어가 있어서요?”

“네.”

시무룩한 선배 낚시꾼들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한국에 있는 졸개들의 표정과 비슷하다.

그들의 기분을 북돋아주기 위해 짐짓 힘차게 말했다.

“상어가 있으니까 오히려 잔챙이 같은 물고기는 안 올 수도 있잖아요. 상어가 건드리기 힘들 만큼 커다랗고 힘센 물고기가 잡힐 수도 있어요.”

“오오오!”

“일리 있다! 우주가 아주 포인트를 잘 짚었네.”

“그럴 수 있지.”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고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말하고도 왠지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초등학생인 애들이야 시츄 옥순이가 무서워서 피해 다녔지만, 인상이 강한 아저씨들은 ‘또 지랄이네’ 하면서 쿨하게 지나가곤 했으니까.

지금이야 상어 때문에 웬만한 물고기는 접근을 못하겠지만, 틴스피릿식으로 ‘상어 조까’ 할 수 있는 물고기들은 근처에서 배회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이라면 모르겠지만 태국은 진짜 오히려 상어 따위는 찜쪄먹는 괴물 같은 물고기들이 많다.

“그래. 우주 말대로…….”

백상교 선생님이 허허 웃으며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꽈아아아악!

릴이 쭉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낚싯대가 강한 힘으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어어어? 왔다! 쌤 왔어요!”

“야, 이거 큰 놈이네!”

“상어? 상어 어디 있어요? 상어는 아니지?”

“네, 상어는 반대편에 있어요!”

뱃전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카메라 감독님들이 백상교 쌤을 둘러싸고, 다 같이 선생님 주변에 모여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어그그그극!”

이를 꽉 깨문 백발의 트로트 가수가 낚싯대를 꾸우욱 잡아당겼다.

선생님이 물었다.

“야! 이거 뭐래? 무슨 물고기래?”

“추측이긴 한데… GT 같다네요.”

“GT!”

자이언트 트레발리로 약자를 따서 일명 GT.

한국에 참돔과 감성돔이 있다면, 해외에서는 GT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한국인 낚시꾼들이 선망하는 어종이라고 했다.

이런 열대 바다에서 사는 큰 개체는 시가테라라는 식중독 성분이 있어서 날로는 먹으면 안 되는데, 바베큐 해서 먹으면 진짜 끝내준다나.

“그래? GT란 말이지? 너 내가 반드시 잡는다!”

곧이어 이어지는 능숙한 손동작.

방금 전까지 허허 웃던 백상교 선생님이 지금은 낚시 경력 40년의 베테랑 낚시꾼으로 보였다.

목표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

물고기 입질이 없었을 뿐이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이었다.

늘상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낚시 가이드인 킥 씨가 존중하는 눈빛으로 한마디 했다.

“He is good.”

“하하하! 아이 노우! 어우… 근데 진짜 큰 놈이네!”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까지만 무려 30분.

곧이어 은빛에 뭉툭한 물고기가 올라오면서 모두가 선글라스를 벗고 탄성을 내질렀다.

“GT!”

“GT다!”

와.

그야말로 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큰 물고기가 작게 퍼덕거리고 수면에 올라왔다.

선원들이 뜰채를 이용해 능숙하게 물고기를 푸면서 갑판 위에 올라온 물고기.

햇살에 은빛 비늘이 반짝인다.

“와…….”

스탭들까지 탄성을 내지르는 가운데, 백상교 선생님이 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잡았드아아아아아아!”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의자에 다시 주저앉은 백상교 선생님이 뒷목을 주무르며 외쳤다.

“잡았어! 내가 잡았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기쁨으로 눈이 반짝반짝하는 선생님.

곧이어 선원들이 물고기를 고정시키고, 스탭들이 줄자를 가져와서 길이를 재기 시작했다.

1미터를 넘어서….

“1미터 30센티미터입니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입니다!”

“와하하하하하!”

백상교 선생님이 허리를 젖히며 웃었다.

그러곤 자이언트 트레발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핫핫! 저의 최고기록인 1미터 20을 깨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 백상교가 드디어 낚시 2일 차 만에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스탭들이 박수를 쳐 주고, 나와 중현이가 사진사가 되어서 선생님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드릴 때.

“에이.”

“우리도 분발해야겠다.”

“열대 고기가 무섭긴 무서워. 한 방에 한국 최고 기록이 깨지네.”

훈훈하게 축하해 주던 것도 1분가량일 뿐.

동료 낚시꾼에게 경쟁심이 폭발한 낚시꾼들이 자신들의 낚싯대에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스박스에 겨우 들어가는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백상교 선생님이 와하핫 다가와 나를 포옹했다.

“야! 우주야! 네 말이 정말 맞았나 보다.”

“네?”

“상어 놈이 있으니까 큰 물고기만 올 거라고 했잖아! 정말 그 말대로 큰 놈만 왔네.”

“어? 진짜 그러네요.”

곧이어 선장님의 설명이 통역되었다.

“GT는 어릴 때는 상어 먹이가 되는 녀석들이지만 성체가 되면 이 열대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물고기라네요. 종종 상어를 죽이는 것도 목격된다고 하는데, 경쟁 포식자를 제거하는 행동이라고 본대요.”

“와…….”

“심지어는 종종 상어랑 같이 다니는 모습도 목격이 된다고 합니다.”

그냥 한 말이었는데 정말이었다.

정말 상어와 겨룰 수 있는 정도의 물고기가 잡혔다.

왜 배 주변을 맴돌던 상어가 공격을 안 했는지 알겠다고 할까.

“자연계에서는 흔한 현상이에요. 형.”

내 곁에 선 인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말했다.

“원래 포식자들은 자기보다 약한 것만 사냥하려고 하지, 자기랑 비슷하거나 강한 건 어지간하면 안 건드리거든요.”

“엄청 잘 아는구나. 포식자들이랑 대화라도 해 본 거니?”

“아뇨. 책에서 봤어요. 저런 자연계 사냥꾼들은 정말 철저하게 손익을 따지거든요. 자기보다 덩치 큰 애들을 노릴 때도 꼭 취약할 때만 노리고…….”

“와하하하하!”

백상교 선생님의 웃음소리에 대화가 끊겼다.

백상교 선생님이 하핫 웃으며 상어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 이쁜아! 너 덕분에 대물을 낚았다! 와하하하하!”

상어와 뽀뽀까지 할 기세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백상교 선생님이 대물을 낚은 후.

3시간가량 더 이어진 낚시에서 다른 낚시꾼들도 하나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어어어?”

두 번째로 입질이 온 것은 추기석 씨.

꾸우우우욱.

릴이 쫘아아아악 풀릴 만큼 어마어마한 괴력을 보여 주던 물고기가 기나긴 입질 끝에 올라왔다.

“허억, 허억… 저 팔 떨리는 거 봐요.”

“바라쿠다네!”

뾰족한 꼬치 생선이 흉폭하게 갑판 위에서 퍼덕거렸다.

길이만 무려 90cm.

“축하드려요. 선배님.”

“하하!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우주 씨도 어제 낚았잖아요?”

“네. 반토막을 낚았죠…….”

“…….”

그 뒤로 오현숙이 조금 크기는 작지만 똑같이 GT를 낚았고.

강만호가 그루퍼를 낚았다.

옥돔처럼 뻘건 생선.

1미터가 넘는 물고기였는데, 이 친구들도 2미터가 넘는 애들은 소형 상어 정도는 촵촵 씹어댄다나.

“이야…….”

까칠하고 예민한 인상의 중년인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푸켓이 진짜 천국의 바다였네! 하하하!”

“그치, 만호야?”

“예. 형님! 진짜 대박인데요? 와… 푸켓에서는 이런 애들이 잘 잡히는구나.”

그런 말이 통역됐는지 곧이어 낚시 가이드 킥 씨와 마리오 선장님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분들 말씀에 따르면 이 정도로 대어들만 연속으로 잡히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진짜 상어 덕분인가?”

“상어 덕분이네.”

여보 낚시 출연진들이 상어에게 다가가서 ‘고마워! 상어야!’ 하며 하하 꺄르륵 호홋 웃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동안 나는 말없이 쭈글거리며 낚싯대를 매만질 뿐이었다.

“나도 좀 뭔가 낚아야 하는데…….”

연습생 시절 기분이 문득 떠오른다.

하나하나 데뷔하거나 다른 성공적인 진로로 나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연습생일 뿐인 그런 느낌.

물론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중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 걱정 마요. 형도 곧 낚을 거니까.”

“고마워. 중현아.”

저 정도로 큰 물고기들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큰 걸 낚긴 해야 하는데.

백상교 선생님이 말했다.

“다들 하나씩은 낚았는데 이제 우주만 낚으면 되겠다. 핫핫!”

“우주야! 힘 내!”

“네! 꼭 낚을게요!”

화이팅해 주는 어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낚싯대에 손을 올렸다.

따님 수플레들에게 ‘우주가 빈손으로 갔어’ 라는 말을 듣게 할 수는 없다는 듯 마리오 선장님과 킥 씨가 내 주변에 섰다.

그렇게 낚시 종료를 30분쯤 앞둘 때였을까.

티티티틱.

갑자기 낚싯대가 스스슷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앞선 다른 사람들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왔다! 저 왔어요!”

이건 확실히 대물이었다.

“왔어? 우주 왔어?”

“드디어!”

“이야! 이로써 모두 만선으로 돌아가는구나! 하하하하! 오늘 끝나고 아주 파티를 해야지!”

꾸우욱 구부러지는 낚싯대를 부여잡으며 가슴이 콩닥거렸다.

두근두근.

드디어 나도 어엿한 낚시꾼이 되는 건가?

그런 건가?

벌써부터 영상 통화로 애들한테 ‘형 이거 낚았다!’ 하고 자랑할 모습을 그리다가 이내 시선을 집중했다.

“또 나온다! 전설의 어부와 노인!”

“그럴싸해. 정말, 표정만 보면 상교 형님 뺨 때리는 베테랑이거든.”

“할 수 있어! 자기야! 힘 줘! 힘 꾸우욱!”

집중해서 심호흡을 하고.

미튜브에서 보았던 온갖 낚시 팁들, 그중에서 몸으로 체화한 것들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릴을 감았다가 당겼다가 내렸다가… 물고기가 힘을 들여서 끌어당기는 순간에 집중해서 힘 조절을 했다.

그런 것 덕분일까.

“크다!”

“저거 뭐야? 뭐 같아?”

“어어어… GT! GT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꿈의 어종이라고 불리는 GT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현장의 태국 선원들도 와- 하며 감탄할 크기.

“캬아!”

백상교 선생님이 소리를 질렀다.

“대물이다! 오늘 아주 이쁜이 상어 덕분에 대물만 낚는구나!”

“상어야! 고마워!”

“우리 상어 진짜 뽀뽀라도 해 주고 싶네!”

하하하 웃음이 감도는 가운데 스탭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트레발리를 담으려고 할 때였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상어가 갑자기 움직였다.

순간 드는 불길한 예감.

힘없이 퍼덕거리는 GT를 향해 상어가 빠르게…….

“어어어어어!”

곧이어 두 물고기가 일으키는 거센 물보라에 다들 뒤로 물러났다.

카메라 감독님들이 뒤로 물러선 가운데, 우리의 눈앞에선 상어가 GT를 공격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3분 후.

“…….”

돌돌돌돌.

내가 릴을 감으면서 한층 더 가벼워진 자이언트 트레발리가 올라왔다.

어릴 적에 군산 구민회관에서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가시고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려던 중현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반은 낚았네요.”

“…….”

갑판 위로 올라온 GT는 윗부분 반토막만 남은 상황이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곁에서 숨 막힐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주변을 유유히 배회하며 옴뇸뇸하고 있는 상어.

방금 전까지 상어를 극찬하던 출연진들이 날 바라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바다를 향해 태세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얌마! 너 우리 우주한테 왜 그래!”

“저 못돼 처먹은 놈이!”

“전남편도 너 정도는 아니었다!”

나를 위로해 주듯 상어에게 욕을 해 주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반토막만 남은 GT를 끌어안았다.

“어흐흐흑…….”

내 입에서 나오는 곡소리에 카메라 감독님들이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틀 연속 반토막만 남은 생선.

반토막 난 물고기를 들어 올리며 스탭들에게 보여 주었다.

“으이이이잉…!”

“흐하하!”

“이이이이이이…!”

“흐하하하하!”

“어흐… 이이이이…….”

사람이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면 말이 안 나온다는 말이 진짜인 모양이다.

울상으로 물고기를 들어 보이는 내 모습에 스탭들이 얄밉게 웃음을 터뜨리고 다들 웃는 동안.

나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들어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느아아아아아!”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내 모습에 웃음이 쏟아졌다.

낚시 2일 차.

그날 스탭들이 지어 준 내 별명은 ‘반토막의 남자’였다.

*   *   *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 - 2일 차 종합 상황판]

백상교 : GT (1.31m)

강만호 : 그루퍼 (1.2m)

오현숙 : GT (1m)

추기석 : 바라쿠다 (90cm)

우주 : 카메라 감독의 모자. 갈매기. 김중현. 바라쿠다 반토막(40cm). 작은 열대어. GT 반토막(50cm)

중현 : 돌(30cm). 선우주. 상어(1.8m)

*   *   *

뉴블랙의 리더와 래퍼가 사라진 지 3일 차.

작업실에서 저마다 공부나 자기개발을 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리혁이 책을 탁 덮었다.

“형. 저 큰일이에요.”

“왜?”

비주의 물음에 리혁이 답했다.

“어떡하죠. 슬슬 보고 싶어지려고 해요.”

“우주 형이?”

끄덕.

비주가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닐까?”

“고작 3일 안 봤다고 이렇게 보고 싶어진다는 건 큰일이잖아요. 누군가에게 너무 의존하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못해요.”

“…….”

“혹시나 문제가 되는 증상일까 걱정이 돼서요. 안 그래도 지금 심리학 전공 서적을 뒤적이는데…….”

그건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비주가 웃음을 삼키고는 노트북으로 화면을 돌렸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가…….”

“시간 됐어요?”

영상 통화로 두 멤버를 마주할 시간.

과연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을지 꿀잼 비하인드를 듣기 위해 세 멤버가 노트북 앞에 모일 때였다.

파츠츠츠.

화면이 연결되면서 리조트 방에 앉아 있는 중현이 보였다.

그런데…….

‘우주 형은 어디 갔지?’

그들의 사랑스러운 리더가 보이지 않았다.

“야. 김중현. 우주 형은?”

-저기.

트윈 베드 좌측에서 이불을 돌돌 말은 거대한 덩어리가 보였다.

피곤해서 잠을 자는 모양이다.

왕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주 형이 잠을 잘 사람이 아닌데?’

어딜 가든 새벽까지 곡 작업을 하거나 피드백을 하면서 인생을 피곤하고 고단하게 사는 사람 아니던가.

잠은 무덤에서 잔다는 신조를 지닌 리더의 색다른 모습에 그들이 의문을 품을 때.

-훌쩍.

코를 훌쩍이는 듯한 소리에 그들이 김중현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중현.

그들의 시선이 돌돌 말린 이불귀신에게 향했다.

김중현이 말했다.

-공식적으로 우주 형은 지금 잠을 자는 중이야.

꿈틀꿈틀.

그런 말에 항의하듯 우주의 이불 발끝 부분이 꿈틀댄다.

중현이 아 하고 로보트 같은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참고로 방금 전의 콧물은 우주 형의 몸살 기운 때문일 거야.

정답이라는 듯 이불 덩어리가 꿈틀댄다.

누가 봐도 자는 척을 하고 있는 이불 덩어리를 바라보며 멤버들이 웃음을 참았다.

‘귀엽다. 스샷 찍어 둬야지.’

‘오늘 낚시 완전 망했구만. 위로의 이메일이라도 보내 줘야 하나.’

‘기념품은 못 물어보겠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에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시무룩하게 이불 안에 들어간 리더를 바라보며 화면 속 중현과 그들이 웃음을 꾹 참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우주 형한테 별명이 하나 붙었는데. 바로 반토…….

“방울토마토여?”

하지만 대화가 이어지기도 전에 침대 위의 이불 덩어리가 뽀시락거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동시에 울리는 중현의 핸드폰.

-……어어. 우주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었네. 여보세요.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 네, 룸서비스라고 하라고요. 네에… 네, 그 부분은 빼고. 네.

뉴블랙에서 연기를 절대 할 수 없는 누군가의 순박한 고개 끄덕임에 그들이 꺄르륵 웃어 댔다.

“우주 형! 걍 이 정도면 그냥 나와서 이야기해요!”

“참내, 무슨 사람이 부끄러움이 그렇게 많아.”

“나와서 얘기해요. 형.”

‘싫어’ 라는 대답을 대신하듯 침대 위의 이불 덩어리가 꼬물거리는 모습에 그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낚시가 얼마나 망한 거지?’

망해 봐야 뭐 얼마나 망했다고 저러나.

리혁이 입을 비죽거렸다.

‘하여간 엄살은.’

……정말 그 정도로 망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멤버들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