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2화
새벽 2시.
이준희 피디의 방에 모인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의 제작진이 회의를 마치고 일어섰다.
“수고 많았어요.”
“흐아아암, 3시간 뒤에 봬요.”
“어우. 죽겠다.”
피곤한 얼굴로 방을 나서는 연출부와 작가진을 배웅한 이준희 피디가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3일 차 낚시 계획안>
내일, 아니 이제 오늘 하게 될 낚시의 기획안이었다.
태국에 오기 전부터 한참을 준비한 기획안이긴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수정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다라는 공간 자체가 워낙 변수가 많은 까닭에 준비할 것도 많았다.
그야말로 격무의 연속.
하지만.
“하하.”
피디의 입가에는 싱글벙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잘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두세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행복했다.
‘대박이다. 이건 분명히 대박이야.’
편집실에 들어가서 촬영분을 찬찬히 훑어본 것도 아니지만 감이 온다.
백 퍼센트 터질 수밖에 없는 방송이었다.
방송이 되려면 2주나 남았음에도 벌써부터 시청자들에게 공개를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
뉴블랙 전세기 최초 공개.
첫날 공항 입국의 어마어마한 환영 인파와 현장 답사.
갈매기를 붙잡은 우주와 돌을 낚은 중현.
상어를 낚은 중현과 2일 연속으로 반토막을 낚은 우주의 절규.
그 밖의 무수한 장면들.
-느아아아아!
누군가의 절규를 떠올리며 이준희 피디가 쿡쿡 웃었다.
‘진짜 대박이야.’
예능 PD라면 누구나 방송가에 떠도는 소문을 알고 있다.
-뉴블랙은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고 간다.
떡밥을 개 사료처럼 뿌리고 다닌다는 말이 돌 만큼 출연하는 예능마다 맹활약을 하는 국민 아이돌.
그것 때문에 은연중에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어마어마한 분량을 뽑아 준 뉴블랙이었다.
스태프들끼리 농담 삼아 ‘마지막 날은 촬영 설렁설렁해도 되겠는데?’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나온 분량만 해도 이미 4주 분량이었으니까.
“아이고, 편집하는 것도 일이겠네. 이거.”
그가 노트북에 있는 파일을 재생했다.
우주가 절규하는 장면과 웃긴 장면들이 이어진다.
-으허허허허!
-구아아악!
“하하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촬영분을 확인하면서 히죽히죽 웃던 이준희 피디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3시.
벌써 1시간이 지났다.
‘잠 자기는 글렀네.’
카페인 음료를 찾던 그가 리조트 방을 나섰다.
로비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먹기 위해서였다.
“조용하네.”
그의 중얼거림이 크게 들릴 만큼 리조트의 새벽 로비는 고요했다.
캄캄하다.
자판기나 비상구 불빛들만이 어렴풋이 보일 정도.
‘그래도 우리들밖에 없으니까.’
사생이나 스토커에 예민한 뉴블랙을 위해 일부러 전체 대관을 한 숙소였다.
하지만 여기 스탭들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컴컴한 로비는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뚜벅뚜벅.
그가 소파들이 놓인 로비를 향해 다가갈 때였다.
“음……?”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 검은 형체가 보였다.
까득.
까드드득.
기묘하게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였다.
“…….”
이준희 피디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벅.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을 느끼며 이준희 피디의 동공이 확장됐다.
‘뭐지? 뭐가 있는 거지?’
그리고 그 순간.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어둠 속의 생명체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스스스스!
그림자 같은 것이 뒷걸음질로 미끄러지며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허억…….”
잠을 못 자서 헛것이라도 본 걸까?
이준희 피디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았던 태국의 공포 영화들이 머릿속에 스쳐 가는 가운데, 이 피디가 뒤로 물러설 때였다.
등에 닿는 딱딱한 감촉.
“후우.”
귓가에 불어오는 누군가의 숨.
어느새 그의 등을 점한 귀신이 발랄하게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꺼억.”
다리에 힘이 풀린 이준희 피디가 무릎을 꿇었다.
* * *
“괘, 괜찮으세요. 피디님?”
“네, 네…….”
실이 끊긴 인형처럼 허물어진 피디님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드렸다.
‘피디 무릎 꿇린 썰 푼다.txt’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 스쳐 가는 가운데, 피디님의 바짓단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번쩍!
“어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강한 불빛에 고개를 들었다. 피디님이 핸드폰 라이트를 켠 거였다.
“미안해요. 우주 씨가 정말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저 맞아요. 피디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피디님이 어기적어기적 걸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갑자기 사람이 뒤에서…….”
“저도 무서웠거든요.”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누군가 콧노래를 룰루랄라 부르면서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영화 보면 꼭 그런 장면이 있다.
주인공을 추격하는 살인마가 어두운 복도에서 휘파람 룰루삥뽕 불어 대고.
“저를 향해서 막 걸어오니까 저도 무서워서.”
“그… 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피디님은 이 시간에 왜…?”
“카페인 음료 뽑으려고 했거든요.”
“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하나 사 드릴게요.”
“괜찮아요. 이제 안 마셔도 될 거 같으니까.”
“죄송합니다…….”
피디님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우주 씨는 왜 이 시간에 잠을 안 자고 있어요? 푹 자야 내일 낚시도 잘하는데.”
걱정 가득한 눈빛에 내가 미소를 지었다.
“잠이 안 와서요.”
“정말로요? 운동선수들도 하루 낚시하면 뻗는 게 우리 프로그램인데…….”
“피곤하긴 한데 뭔가 정신적으로 잠이 안 오네요.”
사실 신체적으로는 엄청 피곤하다.
강철 체력인 중현이도 지금 엄청 코를 골아대면서 잘 정도니 나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지그시 바라보는 피디님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옛날부터 성격이 이래서요. 목표 달성을 못하면 그날 분해서 잠을 못 자고 그랬거든요.”
“목표 달성이라면 물고기 잡기요?”
“네.”
예능 분량이라면 사실 차고 넘칠 정도로 건지긴 했다.
하지만 한 마리도 제대로 못 낚으니 오기가 생긴다고 할까.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의외네요. 우주 씨는 항상 여유로워 보이는데.”
“그런가요?”
딱히 내 자신을 여유로운 성격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바깥에서 보기에 왜 그렇게 보이는지는 대강 알고 있다.
아마 피디님이 말씀하시는 건 연습량에서 나오는 여유일 거다.
무대나 예능 준비를 할 때, 나는 정말 최고의 준비를 했다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나 여유로움.
그런 설명을 해 주며 덧붙였다.
“그런데 낚시는 이런 연습이 하나도 안 통하네요.”
“하하하.”
“아니, 저 진짜 잘 낚을 줄 알았는데… 정말 반토막만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낚고.”
어복이 없나 봐요 하고 한숨을 쉬자 피디님이 웃었다.
“그래도 예능적으로는 재미있는 부분을 다 챙긴 거잖아요? 우주 씨, 정말 재미있는 장면들 많이 뽑았는데.”
“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뭐라도 낚아 보고 싶다.
처음에는 ‘뭐, 고래상어 정도는 낚아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이 정도로 안 낚일 줄이야.
피디님이 로비 테이블에 올려진 내 노트북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서 내일 낚시를 연습하시는 거예요?”
“네. 그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거 같아서요. 내일 트롤링 낚시에 대한 영상들을 보고 있었어요.”
마지막 날인 내일 우리가 하게 될 것은 바로 트롤링 낚시.
돛새치같이 거대하고 속도가 빠른 생선을 낚기 위한 방식인데, 인터넷에 참고할 자료 영상이 많았다.
“아, 그래서 자세 연습하고 있었던 거구나.”
“네.”
“막히는 부분 없으세요? 트롤링 낚시 같은 경우는 설명이 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아, 안 그래도…….”
궁금한 것들이 조금 있어서 피디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자료조사를 어마어마하게 하셨는지 정확하고 상세한 대답이 돌아온다.
낚시를 정말 좋아하시는지 피디님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종종 필기도 하고 설명을 듣고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피디님.”
“어차피 밤 새려고 생각 중이었거든요. 저도 오늘 촬영 관련해서 생각할 게 많기도 하고.”
“피곤하시지 않으세요?”
“아뇨. 괜찮아요.”
이준희 피디님이 기지개를 켜고는 말했다.
“예전에 IBC 오기 전에 케이블 방송국에 있을 때는 매일 피곤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낚시 프로그램 맡은 뒤로는 그런 게 없네요. 아무래도 낚시가 취미여서 그런가.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런 거 같아요.”
“맞습니다. 사람이 이래서 좋아하는 걸 해야 하나 봅니다.”
공감이 가는 말이라 웃었다.
나도 외국어 공부나 다른 연습을 할 때는 피곤한데, 곡 만들거나 음악 들을 때면 피로가 싹 날아가곤 하니까.
그런 말을 들으며 다시금 메모지에 적은 ‘내일 목표 : 돛새치!’ 를 바라볼 때였다.
“우주 씨.”
“네?”
피디님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주 씨 덕분에 시청률이 많이 올랐지만… 그 전에도 저희 프로그램이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었거든요. 조금 자화자찬이지만 낚시 프로그램 중에서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요.”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마이너한 예능 소재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서서히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던 예능이었다.
지금까지 ‘낚시’ 라고 하면 어르신들 바둑 방송처럼 낚시 매니아들만 즐거운 그런 방송이었는데, <여보 낚시>는 낚시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게 구성된 포맷이었으니까.
까슬까슬한 수염을 매만지던 이준희 피디님이 웃었다.
“사실 저희 프로그램이 낚시를 최초로 예능으로 가져온 건 아닙니다. PBS에도 하나가 있었고, TBC에서도 설 특집 파일럿 프로로 하나 나온 게 있었죠. 둘 다 조기 종영됐지만요.”
“낚시라는 게 예능에서 살리기 어려운 소재니까요.”
“정확합니다.”
피디님이 웃으며 물었다.
“우주 씨 말대로 사실 이런 스포츠 소재들은 굉장히 살리기 어렵거든요. 장애물 달리기, 낚시, 축구, 야구… 얼핏 보면 굉장히 예능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들이잖아요?”
“네.”
“그런데 정작 데이터를 보면 이런 예능들 중에서 길게 간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어요.”
처음에는 무슨 선문답인가 싶었는데.
피디님의 표정 속에 무언가 내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왜 오래가기 어려운지 이유를 아시나요?”
“음…….”
한참을 고민했지만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보 낚시>를 보면서 본능적으로 ‘이거 잘 될 거 같다’ 하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걸 분석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아서.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피디님에게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전혀 모르겠어요.”
“저도 한참을 고민해서 얻은 대답이니 우주 씨도 어려우실 만하죠. 하핫.”
껄껄 웃던 이준희 피디님이 답했다.
“정답은 바로 ‘목표 달성’에 대한 집착입니다.”
“목표 달성이요?”
“네. 이런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에는 필연적으로 목표가 나오지 않습니까? 오늘 경기에서 상대 팀을 이겨야 한다. 오늘 무슨 물고기를 반드시 낚아야 한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목표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게 맞는데… 문제는 바로 이런 목표에 대한 집착이 생길 때 생기는 겁니다.”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포커스를 두게 되면 과정이 무의미해지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연습을 하든 뭘 하든 간에 경기에서 지면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낚시 프로가 만약 그런 성향이었다면….”
“물고기를 못 낚는 순간 오늘 과정이 다 의미가 없어지는 거네요.”
“정확해요. 우주 씨. 저희 프로가 일반적인 예능이었다면 오직 포커스는 출연진이 내일 돛새치를 낚냐, 못 낚냐에만 맞춰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있을까요?”
피디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이해가 가는 기분이다.
“저희가 그래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유의하는 점이 바로 그거입니다. 실패를 해도 재미있게. 물고기를 못 낚으면 못 낚는 대로 재미있게.”
“…….”
“제가 그래서 낚시를 좋아합니다. 백상교 선생님도, 만호 형님도 말로는 무조건 고기를 낚아야 한다고 하시지만, 사실 그분들도 알고 계시거든요. 낚시의 진정한 묘미는 그 과정에 있다는 걸요.”
물고기를 기다리는 시간.
주변 낚시꾼들과의 잡담.
낚시가 끝나고 먹는 맛난 식사.
그런 것들이 결국에 추억이 되고 의미 있는 기억이 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희 피디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우주 씨가 2일 동안 물고기를 잘 낚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간들이 무의미한 건 아니라는 거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피디님.”
마음 깊숙이 와닿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디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 것 같다.
목표 달성에 대한 집착.
최근 들어서 느끼고 있던 압박감에 대해서 조금은 해답을 얻은 그런 기분이다.
이런 걸 낚시 예능에 와서 들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메모지와 노트북을 덮는 내 모습에 피디님이 작게 웃을 때.
“음.”
눈을 반짝이면서 낚시 얘기에 신나 하는 피디님을 바라보고는 무언가 즉석에서 떠오른 것을 말했다.
“피디님.”
“네?”
“나중에 혹시 새로운 일을 해 보고 싶어지신다면…….”
대표님 명함을 건네주었다.
“저희도 방송국 있거든요. 만약에 그런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흥미가 생기신다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피디님에게 씩 웃어 보였다.
“나중에 연락 주세요.”
* * *
다음 날.
오프닝 촬영을 위해 일찍부터 나온 출연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날씨 좋다!”
“세상에, 푸켓에서의 아침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오! 솔레미오~!”
정말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준비를 마친 강만호가 리조트에서 걸어 나오면서 백상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대물 그루퍼를 낚은 우리 강만호 프로 아니신가!”
“아이고! 130cm 신기록을 세운 백 프로님!”
“와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이어서 중견 배우 오현숙과 백상교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리 GT 동기 오 프로!”
“우리 백 프로님도 참~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그런 분위기 속에서 추기석이 말했다.
“바라쿠다를 낚은 저 추기석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 기석이도 한 건 했지!”
“와하하하하하!”
서로 우리 누구 프로~ 하면서 웃는 낚시꾼들.
그들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신기록 갱신이다!’
어제 역대급 대어들을 연달아 낚으면서 행복해진 이들이었다.
“이야.”
백상교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이제 바랄 게 없다. 이 피디. 어제부로 우리는 모두 할 거 다 한 거야. 하하하!”
“진짜 오늘 한 마리도 못 낚아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치. 물고기들도 좀 쉬어야지~”
오현숙의 말에 다들 웃을 때.
리조트에서 마지막으로 게스트들이 걸어 나오면서 그들이 떠들썩하게 웃기 시작했다.
어제와 똑같이 차려입은 중현의 곁으로.
“우주야!”
“안녕하세요!”
“너 뭘 입은 거야?”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에 밀짚모자를 쓴 선우주가 쫄래쫄래 뛰어 오고 있었다.
거기에 꽃 모양 선글라스까지.
프로 낚시꾼처럼 입은 어제와는 다른 자유분방한 패션이었다.
“중현이 봐. 우리 어머니 아버지처럼 거리 두고 걷네.”
뒤에서 멀찍이 걷는 중현을 가리키는 강만호의 말에 다들 웃었다.
우주가 활기차게 웃으며 그들 사이에 쏙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자기 오늘 뭔가 활기차네?”
“네!”
“걱정 많이 했거든. 어제 시무룩해 보여서.”
뉴블랙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의기소침하긴 했는데… 어제 피디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거든요.”
“심도 있는 대화?”
“네. 밤에 잠이 안 와서 낚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눈이 살짝 충혈되어 있다.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피디님이랑 우연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거든요.”
“오오, 그래서?”
“피디님의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낚시는 성공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의미가 있다.’”
“오호.”
뉴블랙의 리더가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낚시 그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옷이…?”
“네. 오늘 돛새치 잡으러 가잖아요? 그에 맞는 영화 <노인과 바다> 에디션입니다!”
“우주야, 너 비디오를 잘못 빌린 거 같은데.”
우주가 꿋꿋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오늘 못 낚더라도 그 과정을 즐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호라. 우리 이 피디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노년의 트로트 가수가 백발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우주야.”
“네. 선생님.”
“낚시에서 그 과정을 즐겨 보자. 그런 거 말이다.”
“네.”
트로트 가수가 얄미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저기 있는 이 피디처럼 낚시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야! 와하하하하!”
“…….”
그걸 시작으로 어른들이 에베베벱 놀리기 시작했다.
“과정? 그런 건 대어 앞에 의미가 없어!”
“무조건 낚는 게 최고지.”
“낚시를 하러 가서 못 낚을 거면 유람선을 타지 뭐 하러 낚시를 해?”
“우주 형 낚시 바보.”
“우주 혼자만 못 낚았대요~!”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이 ‘님 그래서 낚으심?’ 하고 놀리는 말에 우주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바들바들.
옆에 서 있는 감자 비서가 생수를 따서 공손하게 건넸다.
“입에 물 흘리는 거 봐.”
“웃네. 자기도 웃긴 거지.”
“기침하네. 웃으니까 기침이 나오는 거지.”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생수를 마신 우주가 다시 눈을 떴다.
이글이글.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으로는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에 스탭들과 출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감자 군.”
“오늘은 고구마입니다.”
“내 장비 주세요.”
“네.”
순식간에 하와이안 셔츠 위로 기어와 장비들이 착용된다.
프로 낚시꾼처럼 탈바꿈한 우주가 밀짚모자를 꾸욱 눌러쓰고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오늘 돛새치 낚시. 중현이의 명예를 걸고! 제가 한 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응원을 보내는 스탭들.
“……음?”
그 속에서 오오 하던 중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