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4)화 (80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4화

“자자자! 건배합시다! 건배!”

“오늘 낚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와아아아아!”

박수와 환호성.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고소한 생선 구이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고 있었다.

푸켓 리조트의 마당에 차려진 저녁 식탁에는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올라와 있었다.

고소한 기름이 번들거리는 참치 회.

돛새치로 만든 튀김.

백상교 선생님이 직접 만든 매운탕.

태국식으로 만든 향신료 가득한 돛새치 요리.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돛새치 바베큐까지.

“와아.”

“진짜 맛있는데?”

저마다 접시에 올라와 있는 거대한 생선 토막을 우물거리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그냥 참치 구이 같은 평범한 맛인데, 워낙 하루 종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꿀떡꿀떡 넘어간다.

술이 살짝 들어갔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오현숙이 오홍홍 웃었다.

“우리 자기 덕분에 돛새치 바베큐도 다 먹어 보네.”

“잘 먹을게, 우주야!”

“우주 씨. 저희도 잘 먹을게요!”

스탭들과 출연진이 보내 주는 감사 인사에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싼 선장님이 그릴 위에서 굽고 있는 바베큐는 바로 내가 오늘 낚은 3미터자리 돛새치였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까닭에 선원들까지 함께 먹는데도 양이 남을 정도였다.

“아까 이게 얼마라고?”

강만호의 물음에 중현이가 우물거리며 답했다.

“선장님이 최소 수백만 원은 될 거라고 하셨어요. 길이도 길이인데 무게가 엄청 실해서.”

“이야…….”

그렇다.

“수백만 원은 될 법한 돛새치를 낚은 최고의 낚시꾼.”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해 보였다.

“그것이 바로 접니다.”

흐하하! 하면서 허리를 젖히고 웃었다.

“이야. 우리 우주 하루 만에 아주 기고만장해졌어?”

“돛새치 낚았으면 그럴 만하지.”

“이건 솔직히 인정해.”

얄밉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들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 트롤링 낚시에서 유일하게 돛새치를 낚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추기석 씨가 중현이에 이어서 작은 참치 하나를 더 낚은 정도.

강만호가 물었다.

“우주가 그럼 최고기록이지?”

“그럴걸요.”

“솔직히 돛새치는 저 꼬챙이 길이는 빼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꼬챙이까지 포함하니까 너무 길어지잖아.”

“야, 만호야. 그래도 우주가 낚은 돛새치가 제일 커.”

그것도 사실이었다.

꼬챙이 길이를 빼도 2미터가 넘는 나의 돛새치.

그야말로 이번 푸켓 특집의 우승 목표인 ‘가장 길이가 긴 생선’에 부합하는 사이즈였다.

그랬기에 중현이와 내가 미소를 지으며 피디님의 말을 기다렸다.

“식사들은 맛있게 하셨나요?”

“어우.”

백상교 선생님이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배가 터져서 죽을 거 같아. 뭐가 이리 양이 많은지.”

“옛날에 큰 물고기 하나 잡으면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어우. 배불러서 졸려 죽겠네.”

저마다 포만감을 표시하는 가운데 중현이와 나도 많이 먹었다며 배를 두드려 보였다.

이준희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계셨던 최종 정산 시간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에이이이.”

우리와 고정 출연진 사이에 벽이 세워진 것처럼 희비가 교차했다.

저마다 지금까지 낚은 최고 길이의 물고기가 나열되는 가운데, 중현이의 1.8미터짜리 상어를 지나….

“그리고 종합 최고 기록입니다.”

세리머니를 준비하기 위해 중현이와 내가 스르륵 일어나면서 옆에 있던 오현숙이 웃음을 터뜨렸다.

“2미터 95센티미터! 무려 3미터에 가까운 돛새치를 낚은 우주 씨가 바로 이번 푸켓 특집의 우승자입니다!”

“중현아! 가자!”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푸켓 바다여!”

“푸 to the 켓 yo!”

핸드폰으로 Nine을 틀어 놓은 채 신명나게 춤을 추는 우리 모습에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인 후렴구 대신 ‘2미터 9’를 외치며 중현이와 빙글빙글 돌았다.

수플레라고 밝힌 싼 선장님이 박수를 치며 대만족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그럼 약속드린 대로 보상이 있어야겠죠?”

조연출이 트로피를 들고 다가왔다.

작가님들이 와아아아- 하며 꽃다발을 걸어 주고 꽃을 뿌려 주는 가운데,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붕어 모양의 트로피였다.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 : 우승자]

붕어트로피에 입맞춤을 하고는 박수를 쳐 주는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우주 씨.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중현이와 함께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우선 이렇게 쟁쟁한 낚시 선배님들 사이에서 큰 상을 받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망고 어워즈인데?”

“대상 수상하는 표정이야.”

예능인들의 추임새에 웃음을 꾹 참고는 말했다.

“조금 부끄러운 장면들도 많았지만, 시청자 분들도 이제 와서는 아셨을 겁니다. 저 선우주가 낚시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운이 조금 안 좋았을 뿐이라는 것을.”

“우주야, 이미 늦었다!”

“…방송이 끝날 때쯤이면, 여러분은 저를 반토막의 남자가 아닌 용왕이 선택한 남자로 기억하게 될 거예요.”

시청자를 대상으로 열심히 기억 조작을 시도했지만, 현장 반응을 보니 전혀 먹히지 않을 듯했다.

즐겁게 웃으며 소감을 이어 간 후.

“처음에는 물고기를 낚겠다는 마음으로 왔지만 결국에는 좋은 인연, 좋은 기억을 낚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개인적으로 낚시를 하면서 깨달은 점도 많았는데요. 좋은 추억 만들어 주신 선배님들과 제작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중현이와 나의 공손한 마무리 멘트에 다들 환호를 해 주었다.

훈훈한 마무리.

“그리고 보상으로 약속해 주신 저희의 신곡 낚시 버전 뮤직비디오! 정말 큰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이준희 피디님과 제작진이 맡겨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자! 기념촬영과 함께 마지막 구호 외쳐 보겠습니다!”

식사 자리를 정리하고 스탭들과 출연진, 태국 선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다들 훈훈하고 애정이 피어나는 분위기.

백상교 선생님이 손을 들었다.

“내가 방금 우주가 말한 거 듣고 떠오른 게 있는데 말이야. 우리 구호 좀 새로 만들어 볼까?”

“새로운 구호요?”

“낚시는 인생이다. 물고기가 아닌 사랑을 낚습니다. 어때?”

너무 길다는 강만호의 타박에 결국 낚시 구호가 결정됐다.

“자! 외치겠습니다! 하나, 둘!”

“사랑을 낚습니다! 여보 낚시!”

“와아아아아!”

박수. 환호성.

부우우웅 하며 하늘에 떠오른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마침내 <여보 낚시>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촬영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했다. 얘들아.”

지난 4일 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포옹을 하거나 기념사진 촬영 등을 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싼 선장님에게 사인 굿즈도 선물해 주고.

고정 출연진과 전화 번호 교환도 하면서, 종종 연락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중현아. 진짜 고생했다.”

“형도 고생 많았어요.”

중현이랑도 손바닥을 촙 맞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구구구.”

“뻐근해요?”

“응.”

돛새치와 40분가량 사투를 하면서 무리를 좀 했던 모양이다.

“이따 방에 들어가면 나 파스 좀 붙여 주라.”

“파스만으로 안 될 거 같은데. 제가 최근에 김비주 때문에 재활 배웠다고 했잖아요. 형.”

“응. 그랬지.”

“형 근육 상태 보니까 마사지해야 할 거 같은데요.”

“나 괜찮… 아아악!”

중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서 조물조물하는데 엄청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아서 나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너 일부러 세게 했지?”

“형 어깨가 뭉친 거예요.”

“어우. 아파.”

“제가 방에 들어가서 마사지 해 줄 테니까, 먼저 따뜻한 물에 몸 좀 풀어요. 형.”

알았다고 하고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러다가 희한한 걸 발견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지난 며칠 동안 낚시 생각, 예능 생각에 바빠서 전혀 보고 있지 않았던 무언가.

그것은 바로 밤하늘이었다.

가끔 공기 좋은 곳이나 남반구에 투어를 갔을 때 보던 그런 맑은 밤하늘.

온 하늘의 별이 내게 떨어진다는 착각이 드는 밤하늘이었다.

“얘들아. 별 봐봐.”

무의식적으로 동생들을 찾으며 손을 올렸을 때.

평소라면 리혁이나 비주, 지호 등의 어깨가 잡혔을 공간에 내 손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중현이랑 마주 보고는 웃었다.

“애들 보고 싶다.”

“저도요.”

매일 영상통화로 보긴 했지만 실물이 그립다.

해외에 꽤 오래 나와서 그런 걸까.

지호의 꺄르륵 거리는 웃음이나 리혁이의 투덜거림, 비주의 상냥한 목소리가 잠시 그리워질 때.

“참.”

핸드폰을 꺼내서 포털에 들어갔다.

“내가 부탁한 건 잘했으려나?”

“그거요? 섭외?”

고개를 끄덕이면서 포털 검색창에 ‘NBS’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네.”

“다들 바쁘게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아마.”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잘 됐으려나?

우리가 태국에서 예능을 찍고 있는 동안, 한국에 있는 멤버들도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

역대급 시청률.

한국 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수상.

그것은 바로 TBC의 인기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를 설명해 주는 타이틀이었다.

-시청률의 새 역사를 쓰다.. TBC ‘주세한’ 시청률 고공행진

-‘역시 주세한이다’ 아이슬란드 특집편 시청률 1위

-[TV포커스] TBC ‘주세한’ 나오는 게스트마다 대박.. 연예인들이 가장 나가고 싶어 하는 예능 1위인 이유?

주사위를 굴려서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는 아주 간단한 포맷이라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출연진이 각종 미니 게임을 하면서 재미를 뽑는 직관적인 방송.

그 때문에 전 세대로부터 골고루 사랑을 받았던 국민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

“그것도 옛날이야기지.”

조용한 회의실.

텅 빈 회의실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가 수염을 매만지며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붙은 무수한 기념사진과 감사패, 시청률 관련 기사.

그야말로 영광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얼마 안 남은 시간이기도 했다.

-구 피디도 이번에 제대로 높은 자리로 올라오자. CP면 이제 올라와서 전체 프로그램 총괄해야지.

대략 한 달 전.

예능국장, 그리고 부사장과의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통보였다

-변화를 줘야 할 때야.

-주세한도 멤버들 물갈이 하고 시즌2로 새롭게 돌아오고. 구 피디도 언제까지 현장에서 있을 순 없잖아.

사실상 주세한을 폐지하고 너는 뒤로 물러나라는 통보였다.

냉혹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현재 주세한의 시청률은 예전만큼 안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것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었다.

요즘 트렌드가 관찰 예능으로 넘어갔다는 것도 있고,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장기화되었다는 점도 있었다.

이미 기존 출연진으로 뽑을 케미는 다 뽑았다.

요즘에는 시청자들이 ‘오늘자 주세한 예상.txt’하면서 출연진 대사까지 맞힐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예능 캐릭터에 변화를 주면 골수팬들이 ‘오늘 주세한 좀 오버했다고 말이 나오는 부분.jpg’ 하고 곧바로 반응하곤 했다.

‘……한계에 이르긴 했어.’

더 이상 예능적으로 새로운 재미를 주기 어려운 시기이긴 했다.

피디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프로그램의 황혼기.

이제 서서히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을 피디인 그도 느끼고 있었다.

‘어찌 보면 축복이긴 해.’

최근에 스탭들, 출연진과 함께 모여서 거하게 송별회도 열지 않았던가.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수 칠 때 떠나는 것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

그런 생각과 별개로 속은 편치 못했다.

구재영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주세한’을 검색하면서 연예면의 기사들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기사 하나가 눈에 띈다.

-뉴블랙 우주, 중현 태국 목격담.. “거대한 돛새치 낚았다더라”

낚시 예능 녹화를 위해 출국한 뉴블랙이 뭔가를 해낸 모양이었다.

구재영 피디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여간 잘해.’

농촌 특집에 출연해서 대길이와 씨름할 때부터 느꼈지만 그야말로 예능에 최적화된 국민 아이돌이었다.

“이게 바로 그 여보 낚시인가.”

대학생 시절부터 예능 덕후인 피디가 <여보 낚시>의 클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럽다. 한창 좋을 때네.’

잘 되기 시작하는 프로그램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예능적으로 파릇파릇한 출연진.

으쌰으쌰하는 분위기.

그런 초반 분위기를 그리워하던 구재영 피디가 입맛을 다시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남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승진.

이제 고된 일상에서 떨어져 편하게 출퇴근하는 웰빙 라이프.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아니, 이게 말이 돼요?

주세한의 공동 연출을 맡고 있는 후배 오태준 피디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직 폐지할 만한 시청률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잘나가는 시청률인데… 이건 백 퍼센트 윗선 뜻이라니까.

현재 주세한의 폐지에는 수뇌부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취임한 사장 라인에게 평소 밉보였던 것이 아마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여태까지는 역대급 시청률이라 손을 못 대고 있었지만, 최근 시청률이 하락하니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모양새는 좋다.

승진해서 총괄을 하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뛰는 걸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임원들이 그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그냥 나가라는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냐고.

이제 트렌드에도 안 맞고 감도 떨어졌으니 사실상 나가라는 뜻이었다.

구재영 피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갈 데야 많지.’

요즘 들어 시청률이 떨어지고, 트렌드에 안 맞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여전히 스타 피디는 스타 피디.

케이블부터 각종 신규 OTT까지 오퍼는 정말 많았다.

사실상 프리 신분에 놓인 그를 두고 이적 소식이 업계에 무성할 정도.

그러나 정작 갈 곳은 많지 않았다.

조건 때문이 아니었다.

‘조건은 다들 좋아.’

연봉을 수십억 대로 주겠다는 제안부터 시작해서 아예 집과 차까지 사 주겠다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그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없었다.

돈도 중요하다.

하나 대부분 금액만 제시할 뿐, 예능 덕후인 그의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그런 제안이 없었다.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

예능적으로 재미있는 그런 걸 하고 싶었다.

“흐음…….”

방송국에 머물러서 때를 기다리며 잔류할 것이냐.

험난한 케이블 세상으로 뛰어들어서, 불안정하긴 해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것이냐.

혹은 요즘 떠오른다는 OTT냐.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때였다.

“음?”

지이이이잉.

또 다른 케이블 방송국인가.

무음으로 하려던 구재영 피디가 발신자 명에 떠오른 이름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회사 작업실에 모인 3블랙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서리혁이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했다.

“PPT 준비 완료했어요.”

“저는 귀여움 장착 완료.”

“부드러운 목소리 준비 완료.”

비주와 지호가 에헤헷 하고 웃어 대는 모습에 리혁이 혀를 끌끌 찼다.

비주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리혁이 네가 전화할 거야?”

“아뇨.”

리혁이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나는 동안 비주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잘해야 하는데.’

리더와 래퍼가 태국에서 예능을 열심히 찍고 있는 동안, 그들도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능 피디 하나를 섭외하는 것.

“으어어, 떨린다.”

비주가 심호흡을 했다.

다른 피디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섭외하려는 예능 피디의 이름값은 어마어마했다.

어떤 방송국에서 수십억을 주고 데려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

과연 그들의 제안을 제대로 듣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예능 피디님들한테 제안을 보내 보는 건 어떨까?

얼마 전 회의를 하면서 리더가 제안했던 기획이었다.

어느 예능에 나갈까 고민을 했던 바로 그 회의.

뉴블랙TV 같은 자체 컨텐츠와 TV 예능 출연 등등, 대중들과 완전 밀착하기 위한 전략들을 고민할 때.

-자체 컨텐츠랑 TV 예능 출연으로 이원화해서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 자체 컨텐츠 일부를 예능으로 만드는 건 어때?

미튜브 등에 올라오는 자체 컨텐츠를 차라리 NBS에서 TV 예능처럼 내보내 사이즈를 크게 만들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솔직히 TV 쪽은 우리 역량으로는 좀 힘들어서… 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우리도 환영이야.

뉴블랙 TV 제작진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찬성한 제안.

그 때문에 그들이 출국해 있는 동안 나머지 삼인방은 그에 걸맞은 예능 피디를 섭외하기로 결정했다.

무수한 리스트들을 뽑은 가운데… 그들의 리스트에 1번으로 올라온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구재영 피디.

-요즘에 프리로 나온다는 말이 많더구나. 하하! 대표님 잘하지?

연예계 소문에 해박한 대표님이 다급하게 뛰어 오면서까지 알려 준 소식이니 믿을 만했다.

그 순간 세 멤버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쳤다.

‘이거… 성사만 되면 대박이다.’

안 그래도 거대한 구독자와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뉴블랙 TV와 인기 예능 피디와의 조합.

서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최선을 다 해 봐요. 우리.”

구재영 피디와 연락이 닿는다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 볼 계획이었다.

대표님과 이사님을 동원한 재력 과시부터 시작해서 서리혁이 손수 10시간을 들여 제작한 PPT까지.

“그럼 전화 걸게.”

비주가 결연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 멤버의 핸드폰에 바짝 귀를 붙이는 두 막내.

곧이어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세 멤버가 호들갑을 떨었다.

‘받았어!’

서리혁이 입모양으로 ‘어서 말을 제대로 해 봐요!’ 하면서 재촉하고, 막내가 으아아아 하며 보탬이 안 될 때.

차분한 목소리로 비주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피디님. 잘 지내셨나요?”

-안녕. 잘 지냈어?

차분한 안부 인사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NBS에 대한 제안을 조심스럽게 꺼낼 때였다.

-할게.

“네?”

-계약하자고.

이적 제안을 꺼내자마자 승낙하는 구재영 피디의 목소리에 세 멤버가 눈을 깜빡였다.

‘……어라?’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일이었나?

처음에 반색하던 두 멤버의 시선이 서리혁에게 향했다.

“…….”

10시간 동안 PPT를 준비한 리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디님.”

-음?

“삼고초려라는 말이 있잖아요.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거절… 그런 거 안 하시나요?”

-혹시 거절부터 해야 하는 거였니…?

“…….”

리혁이 눈을 지그시 감는 모습에 두 멤버가 입술을 말고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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