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5)화 (80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5화

69장. 선댄스, 그리고 Sun

푸켓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조용했다.

출연진과 스탭들 모두 지난 4일간의 여정에 지칠 대로 지쳐서 곯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겨우 붕어처럼 눈을 뜬 사람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주 씨와 중현 씨도 너무 고생 많았어요.”

피디님이 중현이와 내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덕분에 분량을 정말 알차게 뽑았어요. 최소 5주 분량은 뽑아서 비축분 걱정이 없어졌어요. 하하하!”

“편집 잘 부탁드립니다. 피디님.”

“암요. 제가 우주 씨를 정말 세계 최고의 개그맨처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피디님?”

“기대해 주세요! 하하하!”

“피디님? 그럼 저의 멋진 모습은…….”

“하하하하! 그럼 가겠습니다!”

일부러 못 들은 척하면서 손을 흔드는 이준희 피디님의 모습에 내가 멍하니 손을 뻗었다.

민기 형이 비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멋진 모습이 정말 가능할 거라고 믿어?”

“아뇨.”

출연 목적이 예능이기 때문에 웃기는 장면이 나오는 건 너무나 좋은 일이었다.

다만.

“그래도 마지막엔 멋있었거든요. 중간이 구려도 엔딩만 잘 내면 명작인 법이잖아요.”

“하지만 중간이 개그였죠.”

중현이의 말에 내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아!

-반토막! 반토막! 반토막의 남자 선우주~! 멜로디가 참 조쿠나! 나를 음유시인 백상교라 불러다오!

-자기는 주식은 안 해야겠다. 반만 가져가네.

눈앞에서 맴도는 얄미운 얼굴들을 향해 휘휘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중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내요. 형.”

“고맙다. 너도…….”

너도 이번에 참 흑역사 많이 만들었지… 라고 하려던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너… 넌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거지? 왜 독특하거나 멋진 장면밖에 없는 거지?”

돌을 낚거나 상어를 낚는 요상한 장면들밖에 없다.

중현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름지기 좋은 형이란 동생에게 창피한 일이 없는 걸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난 옹졸하니까.”

“지금 보니까 형 이니셜이 쌉옹졸이라는 지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왕지호, 이놈의 자식. 만나면 혼내줘야지.”

그러고는 중현이와 어깨동무를 하며 김포공항을 나섰다.

휘이이이이잉.

유리창 바깥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중현이와 내가 멈칫하자, 매니저들이 겉옷을 건네주었다.

“잊고 있었네. 한국은 한겨울이었지.”

“목도리 하고 나가요. 형.”

푸켓에서 반팔 입고 낚시할 때는 몰랐는데 한국의 1월은 정말이지 매서운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뉴스에 따르면 올해 1월이 역대급 따뜻한 겨울이라던데.

우리에겐 시베리아가 따로 없었다.

“징글 벨 징글 벨 징글벨 락~”

“대충 영어가사~ 부를게요~”

중현이와 철 지난 캐럴을 부르는 동안 차량은 김포공항에서 우리 숙소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매니저들에게 내일 보자는 이야기를 한 후.

며칠 만에 마주한 경비원 분에게 기념품을 건네주고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다.

“집이 최고구나. 이게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인정이에요.”

“얼른 들어가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눕고 싶다.”

“저는 제가 키우는 식물들 보고 싶어요. 김비주가 제대로 물을 줬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아무튼 집이 최고라는 게 결론이었다.

처음 푸켓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지루한 일상이여 안녕!’ 할 만큼 좋아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4일 차쯤 되니 집밥이 그립고 김치가 먹고 싶어지고 그랬다.

오랜 해외 투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딩동.

벨을 누르자 문 안에서 다다다다다 소리가 들렸다.

“형!”

문을 발칵! 열고 등장한 미청년이 우릴 반겼다.

현관에서 맨발로 활짝 웃던 막내가 짐을 들어 주려는 듯 우리에게 손을 뻗었다.

“내 땡모반!”

“…….”

“우와! 그리고 기념품!”

봉지만 냉큼 들고 안으로 도망치는 지호.

캐리어를 내밀려던 중현이와 내가 허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야. 동생 잘 키웠다.”

“동생 농사 흉년….”

그런 말을 하며 한숨을 쉴 때였다.

문 앞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분무기를 들고 있는 누군가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복장이 꼭 그거 같다.

“반도체 연구원이세요?”

“저는 거기서 본 거 같아요. 구제역 때문에 동네에 공무원 분들 왔을 때.”

“…….”

말없이 우리를 위아래로 스캔하는 서모 씨.

“푸켓에서 최근에 풍토병이 돌고 있다는 보도를 봤거든요. 이런 건 철저하게 해야 돼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아뇨. 내가 아프면 안 되니까요. 님들이 가볍게 앓는 감기도 나는 오래가거든요.”

분무기가 우리에게 뿌려졌다.

“어푸풋! 야! 형이 바퀴벌레냐?”

“동생 농사 대박 흉년….”

치익! 치이이익!

현지에서 무엇을 먹었느냐, 몸에 이상은 없었느냐는 검역관의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나서야 마침내 숙소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 있었으니.

“왔어요?”

부엌에서 앞치마를 맨 채 요리에 열중하고 있는 비주였다.

된장찌개.

소고기 양념 구이.

“태국에서 밥이 그리웠을 거 같더라구요.”

한식 냄새가 나풀나풀 풍기는 밥상을 바라보며 중현이와 내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비주야!”

“김비주!”

양옆에서 쌍으로 샌드위치처럼 포옹을 해 주니 비주가 의아해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손을 잽싸게 씻고는 곧이어 식탁에 둘러앉았다.

동생들에게 줄 기념품과 간식거리들을 선물해 준 후.

대체로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그러하듯 따스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나눴다.

“그래서 물고기는요? 물고기는 낚았어요?”

막내의 물음에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거 볼래?”

“허어어어어!”

“돛새치인데 이게 2미터 95짜리거든. <노인과 바다>에 나온 게 바로 이 물고기야.”

“아닌데요. <노인과 바다>에 나온 건 청새치예요.”

“…….”

눈을 찌릿 흘기자 리혁이가 젓가락질로 청새치를 허공에 그려 보았다.

하여간 얄밉다.

와아- 하며 감탄한 지호가 물었다.

“다른 건요?”

“응?”

“다른 물고기는요?”

“……그, 그건 방송으로 확인해 봐.”

지호가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비주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형. 작은 거만 낚아서 그런 거죠?”

“응?”

“아니, 그제 형 물고기 못 낚았다고 이불 안에 있었잖아요.”

“그, 글쎄. 그날 피곤해서 잠만 잔 기억밖에 없는데.”

비주가 중현이에게 ‘이 형 작은 거만 낚았지?’ 하고 묻자 중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큰 거 위주로 낚았어.”

“오오.”

“근데 다 반토막만 낚았음.”

이윽고 중현이가 상황 설명을 해 주면서 졸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처음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웃겨서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푸켓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동생들에게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너희는? 별일 없었어?”

“저희는 특별할 거 없었어요. 진짜 4일 동안 연습, 연습, 레슨, 연습 이런 식이라서.”

그런 말을 하던 졸개들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동시에 ‘아’ 했다.

갑자기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가 한라산과 백두산을 넘어 히말라야까지 오르기 시작했다.

굉장히 의기양양한 표정.

무언가 감이 왔다.

“너희, 피디님 섭외했구나.”

“네.”

태국으로 가기 전에 졸개들에게 부탁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의 자체 컨텐츠 일부를 TV 예능으로 만들어 줄 PD님을 섭외해 달라는 것.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 부탁을 한 이유는.

-저희는 그럼 뭘 해요?

-그냥 쉬어.

-뭐라도 하고 싶은데…….

우리가 예능 찍으러 간 동안 뭐라도 하고 싶다는 이들에게 부담 없이 내준 퀘스트였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누구를 섭외했어?”

“구재영 피디님이요.”

“콜록-!”

“꿀꺽.”

갈비찜을 먹던 중에 사레가 들렸다.

중현이도 큼지막한 고기를 통째로 꿀꺽 삼키고는 목이 아프다는 듯 목을 매만졌다.

“누, 누구?”

“구재영 피디님이요.”

“……주세한의?”

“네.”

TBC 인기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를 만들어 낸 스타 피디 구재영.

그를 NBS로 영입했다는 동생들의 말에 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떻게 설득했어?”

“으음…….”

진지해지는 3졸개의 표정.

비주가 아련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설득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죠. 온 힘을 다 기울여서 섭외 준비를 했어요.”

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죠.”

리혁이도 끄덕끄덕하며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PPT만 무려 10시간을 만들었거든요.”

비장하게 말하는 세 명의 모습에 중현이가 감탄하고 있는 동안.

하지만 준비에 대한 말만 있을 뿐.

‘설득만 몇 시간을 했다’, ‘PPT를 보여 주었다’ 하는 말이 없다는 것을 캐치한 내가 물었다.

“그냥 바로 승낙하신 거지?”

움찔.

대답은 없었지만 충분히 대답은 된 셈이었다.

“네…….”

“그냥 바로 승낙하시더라고요.”

“삼고초려는 거짓된 고사였어요.”

촉촉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동생들의 모습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푸켓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다시금 스케줄을 위해서 김포공항 비즈니스 센터에 도착했다.

지금 우리의 손에는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청장]

스케줄 참석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고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선댄스라니.”

지호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영화배우나 감독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 좋네요.”

“그렇게 설레?”

“네. 진짜 이런 데 가보는 거 그… 뭐더라 버, 버. 버거킹밖에 안 떠오르네.”

“버킷 리스트?”

“맞아요! 그거, 선댄스 가보는 게 제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거든요.”

손바닥을 비비는 모습이 설탕을 앞에 두고 설렌 날파리 같다.

“선댄스 가서 하루 종일 영화 보면서 돌아다니고. 미국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근데 우리 팬분들 너무 많아서 못 돌아다닐 텐데.”

“…너 때문에 흥이 깨졌으니까 책임져.”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 님. 죄송의 노래를 바치겠습니다. 제목은 죄 Song.”

심심풀이로 가져온 하모니카를 꺼내 불어 주자 지호가 대만족한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아무튼.

선댄스 영화제.

이번에 우리가 새로 참석하는 스케줄이었다.

1978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영화 페스티벌로, 주요 종목은 저예산 독립 영화와 다큐멘터리다.

물론 말만 소규모일 뿐.

개최국이 개최국인 만큼 영화계에서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신인 감독들이 여기서 많이 발탁되어서 상업 영화 쪽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여기서 주목 받는 것을 계기로 칸 영화제나 베를린 영화제로 나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런 영화계의 축제에 왜 뜬금없이 우리가 가느냐.

그것은 바로….

-뉴블랙 넷플러스 다큐 ‘Making Waves’.. 2018 선댄스 개막작 선정

이번 선댄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우리 다큐멘터리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왜 선정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미국 에이전시가 영업을 잘한 건지, 영화 퀄리티가 좋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식만 전해 들었다.

이번 선댄스 영화제에 우리 다큐가 오프닝으로 선정되었다고.

“벌써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중현이가 말했다.

“한참 오래전 같아요.”

“꽤 되긴 했지.”

작년 첫 콘서트를 할 무렵부터 찍었던 다큐멘터리니까.

몇 달만 지나면 1년이긴 했다.

인터뷰, 연습실 녹화 등등 우리를 바쁘게 찍었던 독립 영화계의 거장, 유건 감독님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이 이제 편집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으니 정말 까마득하긴 했다.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저희랑 같이 안 가시나요?”

그 말에 석환 형이 대답했다.

“유건 감독은 현지에서 미팅할 일이 있어서 먼저 출발했어. 파크 시티에서 만날 거야.”

“아.”

“며칠 동안 아마 바쁠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너 속의 코너처럼 이번 스케줄에 나와 관련된 개인 스케줄도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영어 문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선명주 영화 프로젝트]

요즘 할리우드 대세 분위기가 가수나 예술계 인물을 다루는 전기 영화라나.

최근에 아빠의 공연이 큰 관심을 받고, 이제 미국 공연을 앞두면서 할리우드에서 입질이 들어왔다.

-우리랑 계약하실? 돈 많이 주겠음.

-저쪽에서 준 돈의 더블을 주겠습니다. 어떠십니까. Korean?

대충 이런 뉘앙스의 제안들이었다.

실제로 영화가 제작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에게 권리를 받고 보겠다는 거다.

당연하게도 우리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생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선댄스 영화제에서 영화에 대한 제작 오퍼를 넣은 제작사, 배급사 등과 미팅을 할 계획이었다.

중소 규모의 제작사, 감독까지 포함하면 무려 10곳에서 들어온 오퍼.

이중에서 쳐 낼 것을 쳐 내고 남은 것은 대략 4곳 정도였다.

“이야기는 들어 봐야겠지만…….”

리혁이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대충 이 4곳이 제일 베스트이긴 한데요. 서류만 보면 사실 여기가 제일 완벽한 것 같긴 한데.”

“월드 아트 스튜디오?”

“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세계 몇 대 영화사를 거론할 때 언급되는 곳 중 하나다.

오프닝 로고만 들어도 사람들이 아~ 하며 알 만큼 유명한 영화사이자 우리가 계약한 미국의 월드 레코드와 친척 관계인 회사다.

서류만 보면 이곳에서 보내 준 제안이 제일 합리적이고 좋다.

다만.

“항상 이런 건 현장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렇죠.”

서류는 완벽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눠 보면 ‘음?’ 하면서 이상함을 느끼는 경우가 이 바닥엔 한둘이 아니니까.

꼼꼼하게 체크할 건 다 체크해야 했다.

미팅을 하기 전에 숙지할 것을 암기하기 위해 다시금 샅샅이 서류를 훑을 때.

“그런데….”

리혁이가 나한테 물었다.

“눈을 좀 붙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응?”

“지금 엄청 충혈됐는데.”

“아…….”

리혁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보고 자려고.”

“어제도 한잠도 안 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거 3차 비주 협약 위반이에요.”

“알아.”

이번 낚시 프로그램 녹화를 준비하면서 푸켓에서부터 잠을 적게 자서 그런 건지 피곤하긴 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체크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앨범 진척상황.

참석을 앞두고 있는 그래미 어워즈와 관련된 스케줄 회의.

평창 개막식 준비.

설 특집 예능들에 대한 출연 문제 등등,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보고 잘게.”

딱히 잠이 안 온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번에 낚시 프로그램을 다녀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심리적으로 매듭을 지었으니까.

단순히 물리적으로 일이 많을 뿐이다.

“그냥.”

리혁이가 내가 보던 서류철을 탁 덮으며 말했다.

“자요.”

“요것까지만…….”

“자라고요.”

“알았엉…….”

아예 안대까지 씌우려는 리혁이에게 됐다고 하고는 눈을 감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깜빡 졸았나?

아래로 훅 꺼지는 느낌과 함께 눈이 뜨였다. 아니. 뜨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앞이 보인다.

……쪽잠 자던 중에 가위 눌리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 아닐까.

안뇽.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시선을 움직였다.

목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전세기 스크린 위에 매달려 있는 노란 고무 닭인형이었다.

‘브루스?’

내가 이륙할 때마다 손에 쥐고 꾸웨엑 했던 인형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닭 인형의 위로 무언가 오로라 빛 같은 것이 일렁일렁하고 있었다.

비주얼만 보면 전설의 포켓몬 브루스 같다.

꿰애애액. 나는 브루스가 아니다.

닭 인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근엄한 느낌.

나는 너의 조상님이다!

전형적인 가위 눌렸을 때 목소리였다.

귀신이 속삭이듯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조상님이라는 말에 나는 반가움부터 느꼈다.

‘정말 조상님이신가요?’

*   *   *

서리혁의 옆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리혁아.”

“네?”

“우리끼리 그런 얘기했잖아. 가위 눌렸을 때 귀신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냐고.”

“그랬죠.”

“내가 이번에 그 방법을 하나 알아낸 거 같아.”

잠에서 잠시 깼는지 몽롱한 목소리로 그의 리더가 말했다.

“대답할 수 없는 걸 물어보면 돼.”

“……?”

우주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귀신한테 다음 앨범 잘 될까? 물었더니 튀었어.”

“……?”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사기꾼.”

후후훗 웃는 리더가 하품을 하고는 웃었다. 뭔가를 이긴 것처럼 의기양양한 미소가 입가에 가득했다.

“귀신도 이기는 프로 아이돌 선우주. 후후후후….”

“…….”

“아무튼 내가 이겼다.”

헛소리를 하면서 잠에 빠져드는 리더의 모습에 서리혁이 책을 덮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 소리야.’

피곤한가 보다 하며 담요를 곱게 덮어 줄 뿐이었다.

그로부터 16시간 동안.

미국의 솔트레이크 시티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의 리더는 한 번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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