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8화
“떨리네.”
“뭐가 떨려요?”
지호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다른 스케줄은 다 해 봤어도 영화제 참석은 처음이라… 이거 은근히 울렁거리고 떨리네.”
“진짜로 떨려요? 표정 변화가 없는데.”
“조금?”
“저도 그래요. 형.”
막내가 손바닥을 비비며 히죽 웃었다.
“내가 연예인으로 참석하는 영화제라니… 부국제나 부천판타스틱 이런 데 다니던 시절 생각하면 진짜 용 됐다, 왕지호.”
“연습생 때?”
“아녀. 어렸을 때부터 영화 겁나 좋아해서… 막 누나들 졸라서 그런 영화제들 다니고 그랬거든요. 와, 진짜 저기 배우로 참석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리혁이가 끼어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가 아니고 가수로 참석하는 거지. 가수인 우리를 주제로 하는 다큐니까.”
“형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저는 행복했어요.”
막내의 꿈을 짓밟는 못된 형이라며 지호가 리혁이를 타박하는 동안,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곱게 빗어져 있고.
내 몸에 딱 맞게 맞춤 제작된 옐로 수트에 몸의 맵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었다.
“색깔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르블랑의 수석 디자이너 지미 로빈스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입으라고 보내 준 수트였다.
동생들에게 물었다.
“나 어때?”
“이런 말하기 싫지만 굉장히 무난하고 잘 어울려요.”
“색이 좀 더 진해야 멋이 살 거 같지 않니? 지금은 너무 마가린이나 버터 색깔 같은데…….”
바나나처럼 찐득한 색감이어야 더 맛깔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할 말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들을 바라보며 웃을 때, 막내가 자기 옷깃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형, 형, 저는 어때요?”
“잘 어울려.”
멤버들도 오늘 저마다 맞춤 정장을 입은 채였다.
선댄스 영화제 참석을 위해 각자 앰버서더로 있는 명품 브랜드에서 정장을 보내 줬는데 진짜 잘 어울렸다.
그중에서.
“중현아. 진짜 최고다.”
“하핫.”
넓은 어깨와 탄력적인 몸선이 드러나는 수트를 입은 중현이가 최고의 맵시를 자랑하고 있었다.
곧바로 시샘하듯 여기저기서 꿈틀대는 꿈틀이들에게 칭찬의 말을 건넨 후.
차창 바깥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네.”
“수플레들 눈 맞으면 안 되는데.”
어두운 바깥에서 눈발이 약하게 날리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였다.
표지판이 휭 하고 지나간다.
[파크 시티까지 5마일]
파크 시티.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보통 해외 영화제라고 하면 세계 3대 영화제를 흔히 떠올릴 거다. 베를린이나 칸, 베니스 같은 규모 있는 행사들.
하지만 선댄스는 그에 비하자면 조금 아담한 규모다.
“진짜 인구가 적긴 하네요.”
리혁이가 위키피디아를 보며 말했다.
“베를린이 350만, 베니스가 26만… 그리고 칸이 7만 정도인데.”
“파크 시티는 얼마래?”
“8천 명이래요.”
전체 도시 인구가 8천 명이라는 말에 내가 기억을 되새겼다.
“울릉도가 8천인가 9천 명이지 않아?”
“그럴걸요.”
“울릉 영화제 같은 거구나. Sun dance니까 한국식으로 하면 울릉 해돋이 영화제 같은 느낌인 건가.”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막연하게 영화제라며 두려움을 품고 있었던 스케줄이 뭔가 친근하게 변해 가는 느낌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파크 시티의 이미지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그런 곳들이 있다. 산타클로스가 살 것 같은 아기자기한 규모의 소규모 도시.
“저기 보이네.”
“어어어!”
눈에 덮인 산맥 아래로 자그마한 도시가 있었다.
도시 뒤편으로 스노우보드와 스키를 타는 슬로프가 마련되어 있는데, 동계 올림픽의 본고장 같은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