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09화
과거 신라 시대에 혈통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뉘었던 골품제.
그처럼 수플레들에게도 골품이 있었다.
정말 공신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에 도표로 정리된 이미지가 떠돌아다닐 만큼 유명한 이야기였다.
0. 썸씽 입덕 : 왕족
1. 14 불꽃놀이 입덕 : 성골
2. 마스커레이드 입덕 : 진골
짭플레까지 쭉 이어지는 계급도.
그런 식으로 한국 수플레들의 계급(?)이 나뉘듯이 미국 수플레들도 농담 삼아 계급을 나누고 있었다.
미국 진출 전에 입덕했다면 Tier 1.
미국 진출 직후에 어워즈 등으로 입덕했다면 Tier 2.
영어 곡 이후 입덕했다면 Tier 3.
당연하게도.
현재 팬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어 곡 이후에 입덕한 팬들이었다.
-안녕! 나는 뉴비야!
영어 곡을 계기로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입덕을 하게 된 수플레들이었다.
모든 컨텐츠에 영어 자막이 깔린 덕분에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작한 덕질.
그야말로 방대한 컨텐츠가 신입들을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수플레들아. 나 뉴비인데 질문이 하나 있어.]
꼭 봐야 하는 뉴블랙 TV 에피소드들이나 먼저 챙겨 봐야 하는 것들을 정리한 거 없을까?
신입들이 올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었다.
만화책이나 소설이야 1권부터 읽으면 그만이지만… 뉴블랙에 관한 컨텐츠는 너무나 방대했다.
어느 덕후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뉴블랙이 촬영한 라이브, 방송, 컨텐츠 등 모든 영상을 다 보려면 최소 몇 개월은 걸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것도 식음을 전폐하고 24시간을 쓴다는 기준에서였다.
그 때문에 수플레 커뮤니티에는 뉴비들을 위한 가이드가 존재했다.
-뉴비들이 반드시 보아야 하는 뉴블랙 TV 영상 모음.
-한국 방송 컨텐츠 영어 자막으로 보는 법!!
-[필독 요망] 어떤 것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글부터 볼 것!
어쨌거나.
‘먹을 게 뭐가 이리 많은 거야…?’
보통 덕질 후배가 들어오면 ‘천천히 먹어… 그게 다니까…’ 하고 선배가 조언해 주는 것이 관례지만.
수플레들은 남달랐다.
-빨리빨리 먹는 게 좋을 거야.. 지금도 새로운 떡밥이 쏟아지니까
그런 조언을 받아들여 허겁지겁 먹어 대는 신입들.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니!’
신인 시절에 우주가 남겼던 작업 기록을 비롯해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수플레들이었다.
매번 영상을 볼 때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사실들.
그런 까닭에.
“어라?”
지금 극장에서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을 보고 있는 수플레들이 놀라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떡밥이 나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저건 뭐지?’
에클스 극장.
그곳에 모인 1,200여 명의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저건 또 무슨 영상이야?”
“저거 뭔지 알아요?”
그들이 웅성거리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시작’과 관련된 인터뷰였기 때문이었다.
‘뉴블랙의 시작과 관련된 영상이라고?’
그런 중요한 떡밥을 모르고 있었다니.
뉴블랙의 데뷔 일화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어떻게 시작이 됐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수플레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SEOUL, 2013』
그런 자막이 흐릿해져 가면서 CCTV 화면이 흘러나온다.
노란 패딩을 입은 청년.
‘우주다!’
실루엣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는 걸음걸이의 리더가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훈훈한 장면.
워어~ 하며 선행을 칭찬하는 듯한 추임새에 현장에 있는 우주가 민망한 웃음을 보일 때였다.
‘어?’
멀찍이 어떤 세단이 이상 행동을 보이면서 수플레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인을 향해 돌진하는 차량!
“워! 워…!”
“어어어어! 안 돼!”
“어어…… 어?”
그리고 그 순간.
노란 패딩을 입은 청년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 노인을 구해 주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안도하며 박수를 치는 것도 잠시.
그러다 빙판에 미끄러진 우주가 언덕을 구르면서 정신을 잃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
극장에 감도는 싸한 정적과 함께 암전되는 화면.
아래에 자막이 깔리며 우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눈앞이 순간 캄캄했어요.]
어둠 속에서 최애의 한국어 목소리가 들린다.
[그날이 제 수능 날이었거든요. 대학 입시에 대한 꿈이 완전히 날아가는 시간이었죠.]
[*역주 : 한국의 SAT는 1년에 딱 한 번이다.]
번역자의 코멘트를 읽은 수플레들이 ‘어어’ 하면서 진심으로 탄식할 때.
[하지만….]
우주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이렇게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유쾌한 말투와 함께 화면이 확! 밝아진다.
동시에 무수한 자료화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갈현동 의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TV 뉴스.
온라인 뉴스.
경찰 표창장과 대기업 표창장에 참석한 13년도 우주의 사진과 영상.
다큐멘터리에서 ‘Hero’로 칭해지는 장면 등등.
어딘가 사람을 벅차오르게 하는 BGM과 함께 자료화면들이 흘러나왔을 때.
장면이 전환됐다.
[안녕하세요. 관객 여러분.]
스튜디오에 우주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13년도와 달리 이제는 완연히 톱스타가 된 인물이 여유로운 얼굴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저는 뉴블랙의 우주고, 여러분은 지금부터 저희의 여정을 함께하게 될 겁니다.]
“구아아아아아아아악-!”
[참여하실 준비됐나요?]
찡긋.
윙크를 한 미남이 슬레이트를 치듯 손뼉을 짝! 치면서 암전되는 화면.
곧이어 화면에 챕터 명이 떠올랐다.
[Chapter One : Sun Comes]
곧이어 장면이 전환되면서 과거 갈현동 골목길을 재방문한 우주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수플레들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방금 전에 보았던 장면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가면서까지 노인을 위해 뛰어들었던 누군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개쩐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소재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오프닝부터 관객들의 몰입은 최고조였다.
* * *
윤석환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와아아아아아!”
“어어어어…”
“우우우우… 오?”
영화에 과몰입한 수플레들의 감탄사와 비명, 온갖 리액션이 영화 내내 이뤄지고 있었다.
평소 영상매체를 보면서 리액션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관객들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최애와 같이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더 리액션을 과하게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지호의 미모가 돋보이는 장면에 환호를 해 주는 수플레들.
당사자가 어깨를 들썩들썩거리며 형들에게 ‘이거 봤어요? 봤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놀이공원 어트랙션에 탑승한 관객들 같은 함성과 비명.
‘분위기 좋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수플레들의 호응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유건 감독과 영화 스크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영화를 정말 잘 뽑았어.’
빼어난 퀄리티가 돋보이는 다큐 영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수의 다큐멘터리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긴 했다.
보통의 스타 다큐는 해당 가수의 내면에 있는 어두운 부분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할리우드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톱스타를 보며 모두가 부러워하지만, 사실 말 못할 고충들이 가득하다… 같은 메시지를 보여 주기 위해 스타가 괴로워하거나 우는 장면을 많이 넣는 것이다.
물론 뉴블랙의 다큐 영화도 내면적인 부분에 집중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가 달랐다.
기존 할리우드 다큐들이 진지한 휴먼 다큐에 가깝다면 뉴블랙 다큐는 오히려 시사 다큐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어려운 경제 현상이나 금융 위기를 위트 있게 해설해 주는 다큐들 같은 분위기.
‘좋은 선택이야.’
뉴블랙에 대해 자세하게 해설해 주겠다는 듯한 다큐의 진행 방식에 윤석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다큐의 목적과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늦게 입덕한 늦덕들을 위한 안내서]
TF팀과 다큐 제작진이 합의했던 목표였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시청자들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넷플러스라는 플랫폼에 다큐를 올린 이유이자.
전 세계 각국 언어로 내레이션이 준비된 이유.
‘멤버들에게 서사가 필요해.’
방대한 컨텐츠들에 허우적대면서 ‘어어… 근데 뭐가 앞이고 뭐가 뒤인 거지?’ 하면서 타임라인을 헷갈려 하는 팬들에게 뉴블랙의 서사를 보여 주고.
현재 라이트하게 덕질하고 있는 팬들을 코어화시키기 위한 기획이었다.
‘오디션 프로가 잘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왜 다른 신인 가수들보다 TV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더 성공적으로 데뷔할까?
그것은 바로 서사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해당 가수의 스토리에 감정적으로 이입을 하고, 그것이 응원을 하고자 하는 원동력으로 이어지니까.
현재 한국 가요계에서 오디션 출신인 ‘원더 차일드’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상승 중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문제는.
‘뉴블랙은 현재 해외에서 서사가 없어.’
한국 수플레들이야 뉴블랙이 과거 텐틴뉴 시절부터 힘겹게 경쟁을 하며 쌓아 올린 서사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해외 팬들에게 뉴블랙은 갑자기 빵 뜬 그룹이라 감정적으로 이입할 껀덕지가 적었다.
그래서 TF팀이 준비한 기획이었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외국 팬들이 알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아예 ‘이거 한 편만 보면 뉴블랙 스토리 완전 공략!’ 이런 컨셉으로 가는 거죠.
팬들로 하여금 가수에게 감정적으로 더 몰입을 하게 만들려는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의 계획.
물론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아직 우리 애들 연차가 진지하게 쇼 비즈니스 업계를 논할 단계가 아니기도 하고. 미국 가수들이랑은 서사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할리우드야 마약을 하거나 아니면 큰 스캔들이 터져서 잠시 고충을 겪거나 하는 문제로 재기를 하는 스토리가 감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서와는 동떨어진 스토리였다.
갱단의 막내 단원에서 성공한 래퍼가 됐다거나, 혈혈단신으로 뉴욕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성공했다든가.
그런 스토리는 처음부터 이길 수 없었다.
그러니.
-다큐도 좀 재미있는 방향으로 가는 거 어때요? 뉴블랙의 정체성은 ‘재미있는 그룹’이니까.
TF팀이 추구한 이런 방향성을 유건 감독은 정말이지 마법같이 해냈다.
‘대단한 사람이야.’
화면이 다채롭게 바뀌면서 멤버들의 즐거운 모습, 힘겨운 모습들이 흥미진진하게 흘러나온다.
보다 보면 ‘내가 저 그룹의 6번째 멤버가 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동경하게 되면서도, 뉴블랙에 대해 심정적으로 크게 공감하게 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특히.
멤버들마다 각자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장면이 인형극이나 은유적인 소재로 나올 때는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공연을 하는 뉴블랙 멤버들의 장면에 환호가 나오기도 하고.
뉴블랙에게 인종 차별적인 코멘트를 퍼부었던 호주 TV 진행자의 자료화면을 향해 야유도 쏟아지고.
‘감정적인 몰입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윤석환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어어어어어어어!”
데뷔 시절부터 쭉 이어진 역경과 성공 스토리가 흘러나오다가 다시 [현재]로 장면이 전환됐을 때.
[그렇게 쓰러져 본 건 처음이었어요.]
위염 때문에 입원해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우주의 모습이 나왔다.
그때 당시 초췌한 모습의 우주가 셀프캠을 향해 [안녕, 수플레]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라 있다.
[다큐멘터리 보면서 걱정하고 있을까 봐. 이렇게 미리 영상을 찍어 둬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저 지금은 정말 괜찮아서…….]
본인이 아플 텐데도 오히려 팬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이마와 구레나룻 부근에 성글성글 맺힌 식은땀.
깊게 내려온 다크 서클.
처음에는 귀를 내려뜨린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던 수플레들은….
“흐흐흐흑….”
최애의 말이 이어지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귀신이 오프 모임을 가진 것처럼 커지는 곡소리!
“어흐흐흐흐흑!”
“꺼헉… 꺼흐흐흐흐!”
“으허어어엉!”
오열하기 시작하는 팬들을 바라보며 윤석환이 뺨을 긁적였다.
‘너무 몰입을 시켰나.’
* * *
영화 상영은 무사히 끝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엔딩 크레딧이 흘러나오면서 수플레들과 시사회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칸 영화제의 박수가 이슈 되듯이.
뉴블랙 다큐멘터리 ‘선댄스에서 10분간 기립박수 받아…’ 라는 기사를 써도 될 법한 장면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주변에서 박수를 쳐 주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하고.
감동을 받았는지 훌쩍이는 수플레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거나 가볍게 포옹을 해 줄 때.
「이제 올라갈 시간입니다.」
현장 스탭의 안내에 나와 유건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객 대담 시간 때문이었다.
무대 위에 놓인 의자에 감독님과 우리가 나란히 앉았다.
「우선 영화를 재미있게 봐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유건 감독의 인사에 수플레들이 큰 환호로 답해 주었다.
「뉴블랙이랑 같이 있으니 제가 스타가 된 기분이네요. 하하.」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셨다는 말대로 정말 유창한 영어가 이어졌다.
우리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통역사 없이 여섯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님이 물었다.
「뉴블랙은 영화를 어떻게 봤습니까?」
「정말 최고였어요.」
우리 막내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제가 진짜 영화 이런저런 거 다 챙겨 보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다큐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제가 다큐 장르는 막 끝까지 다 본 게 드물거든요. 근데 이건 끝까지 다 봤어요!」
「당연히 끝까지 봐야지. 우리 이야긴데.」
리혁이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비주와 중현이, 그리고 내가 차례대로 재미있게 보았다는 코멘트를 했다.
정말 재미있긴 했다.
우리의 17년도 월드 투어 장면과 데뷔 스토리 등이 정말 매끄럽고 유기적으로 연결이 됐으니까. 당사자인 우리도 흥미진진하게 봤으니 팬들이나 다른 관객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감독님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지금부터는 관객들로부터 질문을 받을까요?」
「좋아요!」
번쩍.
천여 명이 동시에 손을 들면서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목 받은 팬.
안경을 쓴 대학생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사랑해요!」
「저희도 사랑해요.」
자기 자신을 로잘린이라고 소개한 대학생이 우리에게 다큐 영화 속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당사자인 중현이가 차분하게 답을 해 주며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런 식으로 40분 가까이 팬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후.
선댄스 시사회 일정은 무사히 마무리를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스탭들끼리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유건 감독님과 우리가 가볍게 포옹을 했다.
“정말 작년 촬영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야 내가 할 소리지. 콘서트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 요청에 다 응해 줬으니까.”
영화 내내 이어진 환호성 때문인지, 예민한 인상이 묽은 계란찜처럼 부드럽게 풀어져 있다.
감독님이 웃으며 말했다.
“나머지는 넷플러스 성적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분위기 보니 너희 팬들한테 평이 엄청 좋을 것 같다.”
“그러게요.”
“상이야 뭐 기대하기 힘든 장르지만, 너희 팬들이 만족하니 됐지. 뭐.”
아무리 짜임새가 좋아도 할리우드 셀럽을 주제로 한 다큐 영화는 상을 받기 힘들긴 했다.
어차피 이런 건 팬들 보라고 만든 영화니까.
팬들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하고.
모든 게 행복하다.
우리 TF팀과 제작진들이 서로 노고가 많았다면서 내일 식사나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할 때였다.
“참.”
감독님이 내게 물었다.
“출국은 모레라고 했지?”
“네.”
한국에 돌아가면 각종 어워즈와 평창 올림픽 관련 스케줄로 바쁜 상황.
그 때문에 이곳에서 조금 더 휴식을 하고 나서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에 잠을 푹 자면서 깨달은 바, 사람은 적당한 휴식을 취해야 작업 효율이 올라간다.
“지호가 영화제 노래를 하도 불러 대서 영화 몇 편 정도 보고 갈까 생각 중이에요. 스키도 타고.”
“시간 여유가 있다는 말인 거지?”
“네.”
“그러면…….”
무슨 용건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 모습에 유건 감독이 말했다.
“아.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하니? 아버님 영화 관련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잖아.”
“네.”
“지금까지 미팅이 다 어그러진 거지?”
“음… 어그러진 거에 가깝긴 하죠.”
일단은 보류 상태니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 감독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시나요?”
“음.”
잠시 고민하던 감독님이 운을 뗐다.
“너한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