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2화
“와.”
막내가 감탄했다.
“사람 대박으로 모이겠네요.”
“그래?”
“넹. 어그로가 대박이잖아여!”
지호가 손을 와악 펼치며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저 같아두 누가 내 최애 망친다고 하면 진짜 눈에 불 켜고 달려올 거 같은데… 아버님을 흑인이나 중국인으로 만든다는데 어떤 한국계가 열이 안 오르겠어요. 당장 달려오지.”
“그러겠지?”
“이건 백 프로 장담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막내를 바라보며 웃었다.
김보라 감독님이 해 준 이야기를 전달해 주니 저런 반응이었다.
-영화사가 아버님 인종을 바꾸겠다고 한 얘기, 전달해도 돼요?
할리우드에 일하고 있는 유명 한국계 스탭들을 불러 모으는 데 써도 되냐는 말에 바로 승낙했다.
그 말만 들으면 다들 맨발로 뛰어 올 거라던데.
과연 효과가 얼마나 제대로일지는 모르겠다.
지호 말대로 사람들이 ‘그건 두고 볼 수 없지!’ 하면서 모이면 참 좋을 텐데.
“그 뒤에는 얘기 못 들었어요?”
“응. 그래서 나도 궁금해.”
김보라 감독과 유건 감독, 석환 형이 자세한 디테일을 조율하기 위해 따로 장소를 옮겼는데 거기까지 동행하진 않았다.
내가 참견하기에는 너무 세부적인 부분들이라.
게다가 내 안색을 살핀 석환 형이 웃으면서 내 등을 밀기도 했다.
-너 좀 쉬어야겠다.
그런고로 등이 떠밀려와 도착한 이곳은 바로.
“스키장이다!”
“스키!”
“중현이 형! I say 스! You say 키!”
“키!”
“스!”
스키장에서 키스를 외치는 바보들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파크 시티의 명물, 동계 스포츠.
지금 우리는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스키장에 와 있었다.
뽀드드득.
걸을 때마다 눈이 밟히는 감촉을 즐기며 막내에게 다가갔다.
“참, 지호야.”
“넹!”
스키 모자를 쓰고 고글을 조정하는 막내에게 말했다.
“이거 아빠 영화 관련한 거는 리혁이한테 비밀이다.”
“아. 흑인 아버님이요?”
“어… 어감이 좀 그렇긴 한데, 응.”
“음…….”
멀찍이서 스키복을 입은 심통 맞은 얼굴을 바라보던 막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밀로 하긴 해야겠네요.”
“쟤 이거 알면 분해서 잠 못 자.”
“거의 3일?”
“난 일주일 본다.”
“으으으.”
며칠 밤을 분해서 바들바들 떨 게 뻔했다.
맞춤법 틀린 간판만 봐도 해당 가게에 문의를 해서 틀렸다고 지적하는 우리 메인보컬 아니던가.
나한테 맨날 항의전화를 대신 시켜서 알고 있다.
그런 애가 이번 건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 진노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뭐야.”
멀찍이서 두루미처럼 하얀 얼굴이 못생기게 뾰족해졌다.
“또 숨어서 내 욕했지?”
“리혁아.”
내가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이 네 욕을 하면 앞에서 하겠지, 굳이 뒤에서 하겠니?”
“그래서 안 했어요?”
“아니 했엉.”
“거기 서어어어어!”
“꺄하하하하! 나 잡아 봐라!”
눈에 발이 푹푹 빠져서 좌초된 메인보컬을 놀려 대고는 눈 위를 빙판처럼 거닐었다.
중현이가 감탄했다.
“형, 어떻게 눈 위를 걷는 거예요?”
“에스키모 족의 비전 기술이야. 미튜브에 있더라.”
눈 위를 바람처럼 거니는 내 모습에 중현이가 따라 하다가 발이 푸욱 빠졌다.
놀리려고 할 때.
후우우우우우웅-
쇄빙선이 얼음을 갈고 지나가는 것처럼 발이 빠진 채로 눈을 헤치고 걷는 중현이었다.
심지어 나보다 빨라.
걸을 때마다 눈이 비산하면서 바람에 날려 가는데… 마침 스키복도 흰색이라 그런지 설원의 예티가 등장하는 것만 같다.
“왜 그래요. 형?”
“아니야.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이 떠올라서.”
“저 집안 어른들한테 그 말 되게 많이 들었어요. 몸이 좋아야 머리가 고생을 안 하고 산다고.”
괴산 김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교훈에 웃음을 터뜨리고는 스키장을 바라보았다.
“어우, 무서워라.”
머리로는 경사진 걸 알겠는데 위에서 보니까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비주가 다리를 달달 떨었다.
“괜찮아?”
“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안 되겠으면 형이랑 썰매나 타자.”
“아뇨. 그래도 스키장 왔으니 스키를 타려고요.”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친 우리 둘째를 바라보고는 주변에서 찍고 있는 리얼리티 캠을 바라보았다.
브이를 하며 씩 웃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TV 여러분! 오늘 스키장에 처음 와 봐서 설렌 설우주입니다~”
“헐, 스키장에 한 번도 안 와 봤어요?”
“네, 지호 씨. 항상 와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오네요.”
90년대 선배 가수들이 음방 때문에 스키장에 와서 공연하는 걸 보고 항상 부러워했던 기억 정도만 있다.
다 같이 까마득하게 경사진 스키장을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자! 오늘의 일일강사, 지호 씨를 모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빨간 스키복을 입은 막내가 코를 슥 비비며 의기양양하게 배를 쭉 내밀었다.
“에헴.”
우리 중에서 스키를 제일 잘 타는 멤버가 바로 막내였다.
-아빠가 저한테 들인 돈만 엄청날걸여. 근데 아빠한테 미안하지만 그거 다 허공에 돈을 날린 거지롱!
영어 유치원을 비롯해 어린 시절부터 미친 듯이 조기교육을 받은 왕모 씨.
솔직히 교육 수준만 따지면 문이과적인 소양과 예체능 전부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게 맞겠지만.
영어나 공부는 다 날려 먹고 대충 스키 정도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 막내였다.
“먼저 시범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잠깐! 잠깐!”
리혁이가 걸어가서는 막내의 장비를 점검해 주었다.
헬멧까지 꽉 착용시켜 준 후.
“5번 교육생.”
“5번 교육생 왕지호!”
레펠 훈련을 도와주는 교관처럼 내가 곁에 서서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럼 하고 싶은 말 하고 뜁니다.”
“엄마, 누나, 우주 형! 사랑합니다!
“좋습니다. 출발!”
슈우웅-
막내가 그야말로 정석적인 자세를 보여 주며 내려갔다.
비주가 우와 하면서 감탄할 정도.
“와.”
아버님. 보고 계시나요?
당신의 돈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치이이이익!
아래로 내려간 지호가 멋지게 정지하며 눈발을 날리고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바로 시작된 스키 강습.
주로 비주와 중현이를 대상으로 한 강습이었다.
첫 타자는 비주.
“비주 형! 글케 하면 가다가 다리 찢어져여어어어!”
“어어어어어!”
처음에는 A자로 다리를 벌리고 가다가 나중에는 거의 요가자세처럼 다리를 벌리고 내려가는 비주.
보통 사람 같으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질 텐데.
“어?”
“어라…?”
우리 매니저들이 놀랄 만큼 유연하게 그대로 내려가는 비주였다.
“유연성 봐. 저게 되네.”
“뭐. 저 형도 우리의 일원이니까요.”
리혁이가 팔짱을 낀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래에서 비주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는 한편.
이번에는 코칭을 받은 중현이가 내려갔다. 균형을 잡기 어려운지 살짝 휘청거리던 중현이가….
타이타닉처럼 양팔을 펼친 채 내려갔다.
“저게… 되네?”
“중현이 침대 광고 찍어도 되겠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
매니저들의 감탄사와 함께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의 코칭을 개떡처럼 알아듣는 형들의 모습에 고개를 젓던 막내가 나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은…….”
“우린 코칭 안 해 줘도 돼. 썰매니까.”
리혁이와 나는 종목이 눈 썰매였다.
리혁이는 겁이 많아서고, 나는 다음 달 중순에 있을 평창 올림픽 개회식 스케줄 때문이었다.
스키라는 게 워낙 부상이 잦은 스포츠 아니던가.
손가락이라도 삐끗했다가는 평창 개회식 무대에 올라가서 MR 틀고 피아노 치는 연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리혁아. 우린 이동하자.”
“후우.”
스키장과 썰매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던 까닭에 잠시 인파를 헤치고 걸었다.
“……음?”
그나저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불어났지.
아까부터 핸드폰 카메라를 들거나 멀찍이서 구경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와아아아아아!」
수플레도 드문드문 보이는데 대부분 일반인들이었다.
근처에서 빵모자를 쓴 어린이에게 물었다. 눈이 똘망똘망한 아가.
「우리가 누군지 아니?」
「오션 파이브?」
10대들에게 꽤 인기 있는 5형제 보이밴드를 언급하는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왔다.
곧바로 내가 오션 파이브의 유명곡 ‘Hi Five’을 따라 불렀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
「Girl 너는 언제나 귀엽고 아름답지-」
맑은 창법으로 부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아이가 엄마 뒤에 숨으며 배시시 웃었다.
훈훈한 웃음이 여기저기 감돌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을 느끼며 물었다.
「얼마 뒤에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거 알고 계시나요?」
「네!」
「저희가 바로 이번 동계 올림픽 홍보대사입니다.」
사람들의 흥을 돋우며 세뇌를 하기 시작했다.
「2월 9일?」
「평창!」
「평창?」
「2월 9일!」
동계 스포츠를 장사하는 곳에서 평창 올림픽 홍보를 한 후.
봅슬레이를 타는 사람들처럼 리혁이와 썰매에 탑승했다.
“리혁아. 가자!”
“후우.”
“괜찮아.”
“이, 이거 너무 높은 거 같은데요.”
“할 수 있어.”
매니저들이 뒤에서 썰매를 밀어 주면서 우리가 침을 삼켰다.
스키장만큼은 아닐지라도 이곳 역시 만만치 않은 낭떠러지였다.
* * *
쑈옥!
거의 출발하자마자 바닥으로 내려온 썰매 위에서 2인조 미남이 휴 하고 땀을 닦았다.
“뭐… 별거 아니네요?”
“스키장 아무것도 아니네.”
“또 탈까요?”
“또 탈까?”
희희낙락 사이좋게 웃는 2인조 그룹 ‘내 몸 소중해’.
히말라야에서 써도 될 법한 최고급 장비를 입은 그들의 뒤로 팻말이 반짝였다.
[왕초보 썰매장]
쉬이이익!
썰매를 탄 어린이들이 한심하단 표정을 지으며 쌩 하고 지나갔다.
* * *
선댄스 영화제에서 보낸 휴가는 참으로 꿀맛이었다.
시사회에서 나온 수플레들의 열광적인 반응.
처음에는 열 받았으나 나중에는 웃음으로 끝난 영화 관련 프로젝트 진행.
거기에 사실상 이번 분기의 마지막 휴가라는 점도 컸다.
“가끔 그런 때가 있거든요.”
리혁이가 웃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러네요.”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핫!”
전년도 성적을 종합해서 시상하는, 고척돔에서 열리는 한국가요대상 무대.
그래미 어워즈 참석 및 인터뷰 스케줄.
평창 개막식.
라온 차트 어워즈 및 평창 폐회식.
정규 앨범 준비.
…일단 여기까지가 무대와 관련된 업무고.
구재영 피디 NBS 이적 문제.
설 특집 예능 및 자체 컨텐츠 촬영.
여행 리얼리티 기획하기.
다큐 반응 모니터링.
낚시 예능 모니터링.
그리고 여기에 내 개인적으로 아빠 영화 프로젝트가 끼어 있고.
동생들도 저마다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할 연습이나 스케줄이 따로 있었다.
진짜 리혁이 말마따나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고 해야 하나.
그런 와중에도 스케줄은 꾸역꾸역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심사위원?”
“응.”
고개를 갸우뚱하는 우리에게 석환 형이 메일을 보여 주었다.
“미국 지상파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거기서 너희한테 심사위원 제안이 들어왔어.”
“……?”
“일단 파악해야 될 게 남아 있긴 한데 너무 큰 건이라서 먼저 말해 봤어.”
TF팀이 번역해 준 문건이 우리 손으로 넘어왔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불을 지펴라’, ‘불을 켜라’ 같은 뉘앙스였다.
중현이가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네요?”
“응.”
석환 형이 설명해 줬다.
“차세대 보이밴드를 뽑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
“근데 저희를 심사위원으로 한다고요?”
아직 우리 미국에서 신인 포지션이라서 심사위원을 맡길 만한 연차가 아닐 텐데.
-마음에 드는 무대에 당신의 불을 밝혀라!
-역대 최고의 상금을 걸고 진행되는 보이밴드 선발 미션.
K넷에서 진행할 법한 보이그룹 오디션이 미국 버전으로 바뀐 느낌이다.
굳이 심사위원으로 나갈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어서 당연히 거절해야 마땅한 스케줄이긴 한데.
왜 석환 형이 말해 준 건지는 알겠다.
“상금이 무슨… 로또 수준인데요?”
“그니까.”
그야말로 미국은 미국이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예산 규모에 감탄이 나왔다.
심사위원 출연료로 제시하는 금액만 해도 어지간한 영화 출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너무 관대한 제안이라 오히려 쎄하다.
비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좀 수상한데요.”
“그치?”
석환 형도 공감한다는 듯 말했다.
“갑자기 미국에서 신인인 너희를 심사위원으로 부른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 좀 이상해서 미국 에이전시 통해서 조사를 해 보고 있어.”
“찾아보고 이상한 점 있으면 알려 줘. 형.”
“알았어.”
크게 중요한 용건은 아니라서 해당 안건은 옆으로 넘겼다.
한국가요대상과 그래미 어워즈 참석 준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온 후.
좋은 소식도 전해 들었다.
“구재영 피디랑 협상 진행 중인데, 몹시 순항이야.”
“오오오오!”
“드디어!”
특히나 구재영 피디의 섭외를 이끌어 낸 우리 졸개들이 기뻐했다.
“역시 내 PPT 덕분이죠.”
“아, 그 쓰일 일이 없었던 형의 PPT여?”
“…조용히 해. 원래 명검은 검집에서 뽑히지 않을 때가 제일 무서운 거야.”
막내들이 투닥거리는 동안 비주와 중현이가 웃었다.
“역시 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지켜보던 나의 마음이 피디님에게 닿은 건가.”
5분 만에 승낙을 얻어 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며, 저마다 자기 공로를 주장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석환 형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주세한도 막 종영하기도 했고. 이제 TBC에서 퇴직 절차를 밟는 중일 거야.”
“미팅은 그 이후에 잡으면 되겠네.”
“응.”
우리 TF팀장님이 협상장 분위기를 전해 줬다.
“구재영 피디님이 정말 기대가 큰 것 같더라. 너희랑 프로젝트 진행하게 되어서 너무 신이 난다고.”
“우리도 그래.”
업계 최고의 예능 PD와 예능계의 아이돌로 꼽히는 우리의 조합.
누가 봐도 설레는 조합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만나고 싶은데, 아직 TBC 소속인 피디와 미팅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본격 NBS 소속이 되는 순간 바로 만나러 가야지.
“일단 여기까지가 너희 용건이고… 이건 우주 개인적인 용건인데.”
“네.”
내 개인 스케줄 관련이라는 말에 동생들이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석환 형이 말했다.
“아버님 공연 말이야.”
“아.”
“일본에서 반응이 엄청 좋았대.”
일본에서도 TV 중계가 됐을 만큼 큰 화제가 됐다고 했다.
정말 TV 뉴스를 비롯해 곳곳을 장식했는데, 아빠가 팬들에게 남긴 메시지가 화제가 된 모양이다.
물론 꼭 좋은 것만 아니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고 했는데.
요약하자면 일본 방송이 일본 방송 했다 정도.
“긍정적인 점이라면 하시모토 그 사람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거 같더라고.”
“그치?”
저번에 폴 로랑을 상대로 한 발언이 이미지에 타격이 와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어쩌면 Q&A에서 ‘라이벌이 없다’라고 단언한 아빠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경우가 어쨌건.
정말 지긋지긋하게 따라붙어서 수플레들이 선명주 구남친이냐고 했던 하시모토 겐지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별 성공.”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 만나지 마요. 우리.”
동생들이 흡족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에 나도 웃었다.
이어서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진행될 공연 스케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 받은 후.
“아.”
아빠 공연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대표님 출근하셨어?”
“응?”
“대표님 방에 올라갔는데 문이 잠겨 있더라고.”
중현이가 동의했다.
“형이랑 둘이 같이 갔는데 안에 대표님 숨소리도 안 들리더라고요. 제가 사람 숨소리 듣고 잘 찾는데.”
“얘가 탐지기거든.”
아빠 영화 예산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대표님을 찾았는데.
보통 이 시간대쯤 반들반들한 골프공으로 퍼팅 연습을 하고 계실 대표님이 안 보였다.
석환 형이 말했다.
“대표님 아프셔서 출근 못 하셨어.”
“아, 진짜?”
지호가 물었다.
“형 몰랐어요? 대표님 상메도 바뀌었는데.”
“그래?”
메신저에 들어가 보니 정말 대표님 톡 상태메시지가 적혀 있다.
[후두염. 통화X]
석환 형이 웃으며 말했다.
“예산 관련해서 미리 말씀드렸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말씀드렸어?”
“응.”
400억 정도 필요하다는 말을 전해 드렸냐고 눈으로 물으니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400억 요청.
그리고 대표님의 병가.
다시금 대표님의 상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
모두의 혀끝에서 어떤 말이 맴돌았다.
합리적인 추측.
하지만 모두 말하지 않고 그저 훈훈하게 웃을 뿐이었다.
“사람이 아플 수도 있지.”
“저도 아빠가 수백억 달라고 하면 아플 예정이에여. 물론 대표님이 꼭 그래서 아픈 건 아니겠지만…….”
그런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업데이트 있으면 부탁해. 형.”
“오케이.”
“그러면…….”
기지개를 쭉쭉 켜면서 여유롭게 일어나는 나.
“후우우우…….”
그리고 긴장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일어나는 동생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도 이제 슬슬 가야 할 시간이네?”
“네.”
“가야죠.”
“후우우우우.”
비장하게 일어나는 동생들의 모습에 웃었다.
오늘은 나 없이 동생들만 촬영에 들어가는 스케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설 특집 예능 녹화였다.
* * *
우주 없는 뉴블랙.
어딘가 모르게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약해 보이는 느낌이다.
팀의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
매년 히트곡을 내는 작곡 요괴.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화제성이란 화제성은 다 쓸어 담는, 연습생 경력 포함 10년 묵은 노괴.
그리고 재능 넘치고 제각각인 뉴블랙을 하나로 묶어 주는 존재.
그 때문에 선우주가 빠진 4블랙은 가끔 약하다는 인상을 주곤 했다.
분명 개개인으로 나오면 완전 강해 보이는데, 희한하게 4블랙이 뭉쳐 있으면 초등학생한테도 지는 느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와…….”
한 아이돌 멤버가 말했다.
“진짜 강해 보인다. 뉴블랙 선배님들.”
“개쎄보이는데.”
“어떻게 우주 선배님 한 명 빠졌다고 저렇게 세 보이지…?”
스튜디오에 입장하는 뉴블랙을 향해 90도 인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진짜 강해 보인다.’
우주가 없는데 강해 보이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모두가 납득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방송의 특징 때문이었다.
[2018 설 특집]
[아이돌 E스포츠 대회 : 예선 단체전]
다른 세계 사람들처럼 아우라를 풍기며 등장하는 4인조의 모습에 다들 수군거렸다.
“근데 우주 선배님은 왜 안 나오셨대? 설마 그것 때문에?”
“응응.”
“그것 때문에 못 나오신 거구나….”
그런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뒤로 공지사항이 붙어 있었다.
[단체전 : 4인 제한]
인원수 제한에 잘려 버린 어느 겜알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