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3화
70장.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비주가 스튜디오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우주 형이 광탈한 곳이구나.”
“작년 추석이랑 똑같네.”
프로 게이머들이 경기를 펼칠 법한 부스들이 설치된 스튜디오.
그들에게는 작년 추석에 그들의 리더가 온갖 추태를 보였던 곳으로 유명한 공간이었다.
-선우주 선수! 캐릭터가 뛰는 키를 알지 못합니다!
-정말 귀족 같은 플레이를 펼치고 있네요. 미천한 것들은 뛰어라! 나는 걷는다 이거거든요!
-방금 굉장히 추했습니다~ 럭키걸의 루이 선수가 만만해 보여서 공격했는데, 한 대 맞고 바로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불량배가 만만해 보이는 시민을 건드렸는데 그 시민이 복싱 선수였던 거죠!
-우주 선수 카메라 좀 비춰 주시죠! 정말 발로 플레이하는 게 아닙니까?
정말이지 역대급으로 추한 플레이의 연속.
막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내가 얼마나 게임 과외를 시켜 줬는데… 우주 형 보면 옛날에 애기 때 저를 보는 거 같아요.”
중현이 물었다.
“귀여워서?”
“아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과외 오지게 많이 받았는데 그거 다 날려 먹었거든요.”
“우주 형은 그래도 노력은 하는데….”
“네…?”
“아냐. 아무것도.”
리혁이 몸을 풀며 피식 웃었다.
“뭐.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말자고요. 중요한 건 이제부터 우리가 여기서 쌓아나갈 전설이니까.”
“인정.”
“솔직히 우리가 게임을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로 하긴 힘들어요.”
선우주 악개로 유명한 김비주마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우주 형은 진짜…….’
게임고자라는 말도 아까운 수준이었다.
게임고자 협회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회원들의 만장일치 투표로 제명당할 수준.
비주가 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4인 제한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뭐죠? 항상 다 같이 해야 된다고 했던 비주 형은 어디 간 거죠?”
마이크처럼 손을 내미는 막내에게 비주가 답했다.
“그래서 정말 아쉽습니다. 다 같이 오고 싶었는데, 우주 형이 인원수 제한 때문에 못 오게 돼서요.”
“아쉬운 표정이 아닌데요?”
“저는 아쉬울 때 이렇게 웃어요.”
뻔뻔하게 웃으며 눈을 말똥말똥 뜨는 모습에 졸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리더가 본다면 부들부들 떨었을 장면이지만.
“하지만 우주 형은 없죠.”
“여기 오고 싶었으면 게임을 잘했어야지.”
처음에는 오고 싶다고 말했던 리더였다.
-나 가도 돼? 이번엔 분량 더 뽑을 자신 있는데.
게임은 안 좋아해도 관심 받는 것은 좋아하는 선우주.
저번에도 말로는 ‘떼잉! 쪽팔려 죽겠네…’ 하면서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불평을 하긴 했다.
그러나 막상 인터넷에서 댓글이 폭발하면서 짱구처럼 발그레하게 뺨을 씰룩였다.
그 때문에 올해도 한 번 더 출정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4인 제한을 이유로 단호하게 잘라 냈다.
“흥.”
리혁이 말했다.
“그리고 이쯤 되면 한 번 보여 줄 때가 됐어요. 그 형 없이 우리가 잘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우리 4블랙하면 항상 약해 보이는 이미지잖아요.”
“그건 그래.”
“이번에 게임으로 우리의 강함을 보여 주는 거죠.”
좋은 생각이라며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주겠어.’
설 특집 예능을 보는 시청자들이 ‘어맛! 4블랙 봐! 우주가 없어도 저렇게 잘해!’ 라는 소리를 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
“후후후후후후후.”
“우후후후후.”
하찮게 웃던 그들이 벽에 붙은 대진표를 바라보았다.
[단체전 예선 1조]
뉴블랙
트릭스터
걸그룹 연합 (블링크, 하이컬러, 럭키걸)
미스트
그 외에도 다양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액션 슈팅 게임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보이그룹이 더 많은데, 처음 들어 보는 신인들도 종종 보였다.
막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스보랑 틴스도 나온다고 들었는데, 여기에는 없네요?”
“예선 3조랑 4조야.”
실시간 시청자를 분산하기 위함인지 보이그룹 3대장으로 불리는 이들 중에 두 그룹은 각각 다른 조였다.
하긴.
핫한 보이그룹이나 걸그룹들을 한 조에 몰아넣는 게 시청률에 좋은 선택은 아닐 듯싶었다.
“뭐.”
리혁이 웃으며 말했다.
“본선에서 만나면 되죠.”
“아!”
“그런 방법이…!”
굿 아이디어라며 리혁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멤버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꺄르륵 웃는 가운데.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있던 4블랙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
복작복작.
본래 아이돌 간 인맥 도모와 만남의 장이라고 불리는 돌림픽.
그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번호를 교환하거나 인사를 하며 안부를 나누는 가수들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컴백 겹치더니 여기서도 보네요!”
“선배님, 저희 이번에 신곡 챌린지 준비 중인데 혹시 부탁… 드려도 될까요? 아. 죄송합니다.”
“야! 야! 너도 예선 1조야?”
낯을 가리면서도 반갑게 인사하는 걸그룹과 보이그룹.
귀를 후비적거리는 선배 가수에게 뭔가 부탁을 하는 후배 가수.
연습생 시절 인연인지 서로의 등짝을 팡팡 치며 반갑다고 인사하는 걸그룹 멤버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런데.”
중현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왜 우리한테는 아무도 말을 안 걸어 주지.”
“그러네…?”
“우주 형이 없어서 그런가. 웃긴 사람이 없어서.”
“너 있잖아. 김중현.”
중현이 세모꼴로 된 눈으로 동갑내기 친구를 흘겨보는 동안, 4블랙은 위기감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왜 우린 말 안 걸어 줘…?’
처음에는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할까 했다.
그런데 근처로 다가갈 때마다 마치 고양이들이 깡패 고양이들의 영역을 피하듯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래서 전략을 바꿔서 눈을 초롱초롱 뜨기 시작했다.
‘말 걸어 줘!’
하지만 눈이 마주친 후배들마다 90도로 허리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하고는 슬금슬금 도망쳤다.
리혁이 괜히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깔끔한 남색 스웨터에 검은 진.
누구처럼 꽃을 담쟁이덩굴마냥 두르고 다닌 것도 아닌, 그냥 무난하기 그지없는 패션이었다.
킁킁.
중현이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는지 살폈다.
하지만 깔끔한 섬유유연제와 향수 냄새만 날 뿐.
비주가 핸드폰을 들어 ‘이’ 하면서 이빨에 뭐가 끼었는지 보고, 지호가 헤어스타일을 살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문제가 없었다.
“……?”
왠지 모르게 다른 후배 가수들이 외면하는 느낌.
이제 5년차 가수가 되어서 그런 걸까.
‘그러고 보니….’
그들이 14년도에 데뷔했을 때 TNT의 연차가 2018년 현재 그들의 연차와 똑같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니 서러워졌다.
‘늙은이라고 상대를 안 해 주나.’
아이돌들 가득한 음방 무대에서 연차 높은 발라드 가수들이 왜 매번 시무룩하게 있는지 이해가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음?”
중현이 귀를 쫑긋거렸다.
“누가 오는데?”
“진짜?”
멤버들이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라이더 재킷과 짤랑거리는 해골 귀걸이, 손가락에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퇴폐적인 외모.
그리고 그와 대치되는 선비 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그룹.
‘트릭스터구나!’
16년도에 데뷔한 TJ 엔터의 보이그룹으로 꾸준하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그룹이었다.
그들과의 개인적인 인연이라면 작년도 영어 곡 배틀.
전 회장인 박태준의 고집으로 영어 곡을 내놓았다가 주춤했던 6인조 아이돌이었다.
그리고 박태준 회장이 나간 이후 나온 신규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었다.
모델처럼 길쭉한 키에 다크서클이 짙은 얼굴, 리더인 슬형이 그들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선배님들 심심해 보여서 잠시 왔습니다.”
“오오오오오!”
“심심…하셨던 거 맞나요?”
“그럼요!”
트릭스터의 리더인 슬형, 그리고 오늘 게임 에이스로 꼽히는 부기가 그들을 찾았다.
지호가 엉덩이를 꿈틀 움직이고는 옆자리를 두드렸다.
“여기! 여기 앉아요!”
“어….”
“괜찮으니까 여기 앉아요.”
반갑게 안부를 나누는 이들에게 트릭스터의 리더가 공손하게 물었다.
“우주 선배님은 잘 계시나요?”
“네.”
“지나치게 잘 지내죠.”
“지금 작업실에서 곡 만지고 있을 거예요.”
질문 하나에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대답들!
대화가 고팠던 4블랙이 트릭스터의 두 멤버와 대화를 나누며 한을 풀었다.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가운데.
비주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감사해요. 저희가 이제 좀… 신인 분들이랑 어울리기에 연차가 차서 그런지 말을 안 걸어 주시더라고요.”
“아.”
“부담스러워하시는 거 같아요.”
“그….”
그 말에 슬형이 혀로 입술을 훑었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지나간 후.
“연차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옆에 있는 부기의 시선이 살짝 돌아가는 모습에 그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들과 같은 연차인 블링크의 멤버 혜령은 후배 걸그룹과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음…….”
한참 동안 단어를 고르던 슬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선배님들이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분위기요?”
“네. 수련회나 수학여행 갈 때 버스 타고 가잖습니까? 거기 보면 버스 자리가 있는데… 선배님들 계신 곳은 약간 그 맨 뒷자리 같은 느낌입니다.”
“……?”
“근데 그 뒷자리가 한 500미터 위에 있는 느낌?”
4블랙이 웃었다.
‘대체 무슨 비유지.’
* * *
하찮은 뉴블랙.
그리고 그 안에 하위 그룹으로 존재하는 더 하찮은 4블랙.
빠지는 1명이 누구든 간에 항상 ‘4블랙’이라는 용어에는 뭔가 굉장히 하찮은 느낌이 있었다.
분명 대부분의 아이돌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뉴블랙 선배님들한테 좀 가서 말이라도 걸어 볼까?”
“그럴까?”
“네가 가서 걸어 봐.”
“왜 내가 가? 네가 가.”
분명히 구석진 명당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시간을 때우고 있는 뉴블랙은 한가해 보였다.
그러나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길쭉한 다리를 뻗은 채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는 메인댄서.
무언가 고심에 잠겼는지 말 걸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래퍼.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꼭 방해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메인보컬과 서브보컬.
‘뉴블랙…….’
단순히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스타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국민 아이돌이라면서 친근하기로 유명한 아이돌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아이돌 중에서도 밥 친구로 뉴블랙TV를 보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을 정도.
TV로 볼 때는 분명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느낌이었는데….
실물이 너무 달랐다.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아.’
카메라 마사지라는 말이 있듯이 연차가 올라갈수록 점점 그 태가 달라지는 게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징이었다.
가볍게 한 메이크업인데도 탑스타 같은 모습.
분명 일상복을 입었는데도 저 넷은 시상식에 참석한 듯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희고 고운 피부에 음영이 진 눈매와 속눈썹.
투명한 요정 같은 자태를 풍기고 있는 서리혁의 모습에 후배들이 와 하고 감탄할 때.
트릭스터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트릭스터쯤 되야 말을 걸 수 있구나.’
잘나가는 보이그룹이 말을 거는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우아하게 반긴다.
뉴블랙의 외모가 만들어 내는 현실 왜곡장 때문인지 멋지게 보인다.
‘저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할까?’
마치 아이돌판의 천하 정세를 논하는 듯한 분위기.
“…….”
연예인 중의 연예인을 보듯이, 괜히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아서 5년차 선배들을 멀찍이서 지켜만 보는 후배 가수들이었다.
저기 다가가려면 트릭스터쯤은 돼야 할 법한 느낌.
그게 아니라면….
“하이!”
마침 스튜디오에 입장한 우렁찬 목소리.
‘케빈 와쪄요!’ 하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주변 선후배들에게 인사하는 에이플비의 케빈.
오늘 해설을 맡은 그가 성큼성큼 4블랙에게 다가갔다.
“요! 4블랙!”
아이돌이지만 방송계에서 대세 예능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하은성.
하지만 그런 사실은 가수들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와아악! 반기는 4블랙에게 깔깔 웃는 은케빈이 보였으니까.
“와! 병장님 없으니까 완전 오합지졸 같다!”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저 정도는 미쳐야 말을 걸 수 있는 거구나.’
* * *
장내의 모든 장비 점검을 마친 가운데.
단체전 예선 1조의 경기를 앞두고 참석자들이 모두 일렬로 도열했다.
오늘 진행을 맡은 예능인 모범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잠시 참석자 선서가 있겠습니다.
연차와 연장자순으로 선발된 뉴블랙의 비주와 블링크의 혜령이 사이좋게 대회 깃발 앞에 섰다.
“하나, 나는 오늘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할 것이다.”
“하나, 나는 오늘 팀원의 실수에도 너그럽게 웃을 것이며.”
그런 내용으로 구성된 선서를 마친 후.
모범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경기가 진행되기 전에 먼저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훈화 말씀?’
아이돌들이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번 대회를 조직하는 데 크나큰 공을 세운 분입니다.
방송국 국장이나 피디의 훈화를 듣는 건가 생각할 때.
스크린에서 VCR이 흘러나왔다.
[대한민국 게임계의 전설!]
게임계의 전설이라는 말에 게임이 취미인 가수들의 눈앞으로 이름들이 쭈르륵 지나간다.
스타, 철권, 롤, 오버워치 등등.
업계 레전드 게이머들의 이름이 지나가면서 두근두근할 때.
“오!”
전직 유명 게이머 신현수가 나왔다.
‘저분인가!’
그가 인터뷰에 응했다.
[이 업계에서 전설적인 분이죠.]
게이머 배영훈을 비롯해서 정말 업계 레전드로 불리는 게이머들의 증언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멈칫했다.
‘저분들…….’
최근에 만났던 얼굴들이기 때문이었다.
뭔가를 깨달은 4블랙이 ‘어?’ 하며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이 모든 프로게이머들을 제패한 게임계의 전설.]
자료화면이 흘러나온다.
몸 쓰는 게임기 광고를 찍으면서 게이머들을 몸으로 농락하는 뉴블랙 리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주 선배님이 게임계의 전설이시긴 하지….’
‘전현직 게이머들을 피지컬로 굴복시키긴 하셨네. 그 피지컬이 아니긴 하지만…….’
작년에 큰 웃음을 주면서 E스포츠 돌림픽을 편성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기존의 돌림픽을 폐지시켜 버린 아이돌 업계의 위인.
바로 선우주가 스크린에 등장했다.
[대표 박규호]라고 명패가 붙은 집무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우주가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돌림픽의 축사를 맡은 뉴블랙 우주라고 합니다.]
졸개들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우우우우우!”
그 야유에 우주가 눈썹을 치켜떴다.
[참고로 지금 실시간 방송입니다.]
“오와아아아아아!”
뉴블랙 멤버들이 태세전환을 하며 환호하면서 다른 아이돌들도 열렬하게 북한 박수를 쳤다.
위대한 령도자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후. 게임계의 전설로서 이번 E스포츠 돌림픽의 축사를 맡게 되니, 책임이 막중하기 그지없군요.]
‘선배님 양심 중동 가셨나.’
고뇌하듯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우주가 만만한 곳으로 시비를 걸었다.
[음? 케빈 씨.]
“네?”
[표정이 불손한데요? 지금 그건 무슨 표정이죠?]
“솔직히, 선배님께서 축사를 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지셔서 감탄하는 웃음이었습니다.”
[아닌데요. 분명 게임도 못 하는 게 왜 축사를 하느냐 그런 표정인데요?]
표독스러운 우주선 표정에 다들 웃고, 하은성도 같이 웃을 때.
[참고로 저기 있는 케빈 씨는 작년에 저에게 탈락을 당했습니다. 저보다 못한다는 뜻이죠.]
“……!”
[살아남은 자가 더 강하다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평소처럼 깐족거리는 예능계 후배를 놀려먹은 우주가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자리에 있는 후배 가수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돌림픽에 참가하신 분들께 무슨 축사를 해야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주가 차분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여러분은 분명 실수를 하시게 될 거예요.]
“……?”
[게임을 하다가 마우스를 삐끗하시거나 키보드 키를 잘못 누르시거나… 앞에 있는 것을 잘 못 보거나. 분명 사소하지만 자잘한 실수를 하시게 되고 그게 승패를 가르게 될 겁니다.]
주의 깊게 듣는 이들에게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웃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결국에 시청자 분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그리고 저희가 즐겁자고 하는 것이 바로 이 E스포츠 돌림픽의 취지잖아요? 오늘 대회에 있어서만큼은 승패 상관없이 즐기는 게 어떨까요?]
그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요? 하며 부드럽게 웃는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
참으로 멋진 말이었다.
말을 하는 인물이 보여 준 행적만 아니었다면.
‘작년에 탈락하시고 눈물 쏟으셨던 걸로 아는데.’
‘우주 선배님 마음속 삼각형은 분명 동그라미일 거야.’
우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하십시오.]
‘후배 걸그룹 공격하다가 맞고 도망가시지 않았나.’
‘양심 동그라미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런 훈화를 마친 후.
[후. 이만 게임 업계의 레전드는 물러날 시간이 되었군요.]
우주가 눈짓을 하자 화면 뒤에서 대기하던 매니저들이 BGM을 틀었다.
성스러운 BGM.
뒤에서 달봉이를 든 매니저들이 후광을 만들어 주는 가운데 우주가 양팔을 벌리며 자애롭게 웃었다.
게임의 여신이 용사들에게 가호를 내려 주는 분위기였다.
아이돌 멤버들이 기침을 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럼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자애롭게 웃던 우주가 물러나려고 할 때.
예능인 모범주가 물었다.
“우주 씨, 개인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분들이 혹시 있습니까?”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게 어떻냐는 예능인의 물음에 성스러운 게임의 신이 시선을 돌렸다.
눈을 초롱초롱 뜨며 맏형의 응원을 기대하는 동생들.
[너희들이…….]
자애로운 웃음.
[나 없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
[너희가 나처럼 5등 이상 할 수 있을 거 같아?]
제작진과 아이돌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애로운 웃음이 묘하게 보는 사람을 얄밉고 열 받게 하는 느낌.
[날 버리고 너희가 잘 될 거 같아?]
“…….”
[단물만 쏙쏙 빼먹고, 필요 없다고 형을 버리는 너희가 정말 잘 될 거 같아? 이 배은망덕한…….]
“자! 시간 관계상 커트하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하찮게 발악하는 자칭 게임 신.
[게임 속에서 확 넘어져 버려라! 꼴등 해 버려라! 내 저주를….]
뚝.
화면이 뚝 끊기면서 스튜디오에 감도는 폭발적인 웃음들.
그리고.
-너희가 나처럼 5등 이상 할 수 있을 거 같아?
메아리처럼 맴도는 맏형의 도발에 졸개들의 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