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5)화 (81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5화

게임을 하다 보면 빡치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콘솔 게임에서 세이브 없이 통과해야 하는 구간인데 마지막 순간에 실수를 할 때.

FPS 게임에서 저격수에게 죽을 때.

롤을 할 때.

하지만 그 어떤 순간을 통틀어도 지금처럼 열이 오르는 날은 없었다.

‘참아.’

왕지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참아. 내 안의 서리혁.’

마음속에 있는 못나고 삐뚤삐뚤한 자아가 솟아나려는 것을 억누르며 지호는 심호흡을 했다.

아니.

빡친다기보다는…….

‘아, 왜 눈물이 나오지.’

탈락자들과 중계진은 막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데.

당사자인 그는 눈물이 나올 뿐이었다.

갑자기 총을 든 적들에게 달려들더니 마지막에는 화끈하게 오션 다이빙을 해 버린 셋째 형.

저격수로 돌아온 줄 알았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진 둘째 형.

쫄보답게 동굴 속에 웅크려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넷째 형.

‘우주 형 보고 싶다.’

엉망진창인 형들 속에서 맏형을 찾던 지호.

하지만 곧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우주 선수! 아 진짜 못하네요!

게임 캐스터가 열 받아서 분통을 터뜨릴 만큼 못했던 우주 형.

그 형까지 있었다면 지금쯤 그는 벌떡 일어나 키보드로 형들의 등짝을 때렸을지도 몰랐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해.’

엄마 품에서 떼잉떼잉 울다가 험난한 유치원에 홀로 남겨진 아이와 같은 상황!

저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에게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다.

본선 진출!

나무형 [본선ㅋㅋㅋㅋ]

나무형 [그 스케줄에 연습할 시간은 있니??]

하현 [꼬우면 본선 올ㄹ라오실?]

스보와 틴스의 친구들과 내기를 했기 때문이다.

누가 본선에 진출하는가.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형이라고 부르기’ 내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일단…….’

이 게임은 단체전이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동료라도 같이 있으면 좋을 수밖에 없다.

“리혁이 형.”

헤드폰에 달린 마이크로 지호가 동료를 불렀다.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왜.

“형이랑 저랑 만나야 할 거 같아요.”

-우리가 같이?

“만나서 같이 다녀야 돼요. 이거 형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니까요.”

합리적인 결론이었는지 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탈락이라는 위기감 때문인지 리혁도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었다.

‘그래. 리혁이 형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다시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대답.

-근데 미행 없는지 꼭 확인하고 와.

“…….”

-너 뒤에 사람 달고 오면 문 안 열어 줄 거야.

“…….”

지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참아. 내 안의 서리혁.’

*   *   *

비주의 어처구니없는 탈락과 함께 왁자지껄해진 채팅창!

한바탕 웃음이 휩쓸고 지나간 후.

후반부에 접어든 게임에서 남은 세력은 크게 3파전이었다.

강력한 화력으로 무장한 트릭스터.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주먹을 휘두르는 걸그룹 연합회.

그리고 2블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하루살이처럼 근근이 버티고 잇구나 2블랙

-이제 동생라인이 희망이다

-할 수 있어 막내즈!!!

팬들의 응원 속에서 지호가 힘겹게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부아아아앙!

오토바이를 탄 걸그룹 연합회가 폭주족처럼 지나가면서 지호가 몸을 웅크렸다.

뭔가 눈물겨운 모습.

[아! 정말 짠합니다.]

[남들이 전쟁 영화 찍고 있을 때 혼자 재난 생존물 찍고 있거든요! 왠지 모르게 응원하게 됩니다!]

수색을 하듯이 주변을 뒤지고 다니는 걸그룹 연합회를 피해 움직이는 지호.

그런데 이번에는 트릭스터 멤버들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웅크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지호.

[지금 보면 트릭스터와 걸그룹 연합은 전략이 확실하거든요! 서로 부딪칠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면 뉴블랙만 어부지리거든요!]

[솔직히 이미 점수는 두 팀이 굉장히 높거든요. 먼저 약자를 제거하고 자기들끼리 맞붙을 생각입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수색을 하는 트릭스터와 걸그룹 연합회.

그리고 기어가는 지호.

곁에 있는 두 형이 손을 맞잡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

바로 그때.

수풀에서 기어가는 지호를 발견한 트릭스터의 부기.

-지호야ㅠㅠㅠㅠㅠㅠㅠ

-아이고

-부기야 살살 죽여야 한다.. 잘못하면 우리 터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총을 든 부기가 곧바로 지호를 공격하려고 할 때.

벌떡!

전광석화처럼 일어난 지호가 단검을 들어 상대 캐릭터의 상체를 그었다.

[King ☞ 최강꼬부기 (단검)]

곧바로 쓰러지는 트릭스터 부기!

[어어! 이거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호 선수가 오늘 에이스로 꼽히고 있는 트릭스터의 부기 선수를 단칼에 제압했어요!]

[급소를 찔렀어요!]

방금 전까지 응원을 하던 수플레들이 태세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계의 신성 왕지호

-후우 약하다는 건.. 어떤 기분이지?

-강하다

-지호는 참지 않긔

-핫하! 이건 형들의 복수다!

-둘째형(자연사) 셋째형(익사)

-우린 이런 걸 화풀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부기야 잘했다 올해 한 일중에 젤 잘했어

트릭스터의 부기가 아쉬운 얼굴로 헤드폰을 벗고.

비주와 중현이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외치는 가운데, 지호는 다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킬 로그를 본 트릭스터 멤버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리혁 선수가 있는 집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기만 지나면 되는데요!]

하지만 다급하게 뛰던 지호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치 미로를 통과하듯이 집 근처를 요상한 루트로 걸어갔다.

[뭐죠?]

[지호 씨 바로 안 들어가고 빙 둘러서 가는데요?]

그런 지호를 맹추격하는 트릭스터 멤버들!

그들이 갈대밭을 똑바로 가로질러 추격하려고 할 때였다.

퍼어엉!

지뢰가 터지면서 트릭스터 멤버가 하늘의 별이 되어 스러졌다.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와! 하는 함성.

중계진이 감탄했다.

[아아아아! 지뢰가 깔려 있었군요!]

[치밀합니다! 리혁 선수! 아무도 못 들어오게 자기 은신처에 지뢰를 쫙 깔았어요!]

[이러면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그제야 떨어져 나가는 추격자들.

겨우 숨을 돌린 지호가 리혁의 집에 진입했다.

[와.]

[정말 아늑해 보이는데요?]

[이 게임이 이렇게 안락한 게임이었나요!]

벽난로에 불이 피워져 있고.

바닥에는 응급 의약품과 비상용품이 종류별로 깔려 있다.

벽 쪽에 있는 선반에는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기까지.

-무슨 콜렉터냐고ㅋㅋㅋㅋ

-2018 S/S 서리혁 컬렉션

-리혁이의 별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들린다.. 러브 하우스의 브금이 들려ㅋㅋㅋ

-따라라라라

-기분 탓인가 지호 캐릭터 왜이렇게 표정 멍해 보여ㅋㅋㅋㅋㅋㅋ

-개고생하면서 형 구해 주러 왔는데 형이 호화로운 집에서 와인마시고 있는 느낌ㅋㅋㅋ

응급 의약품을 먹어서 체력을 회복한 지호.

잠시 자리에 멈춰 서 있는데, 아마 음성 채팅으로 자기들끼리 전략을 논의하는 듯싶었다.

[정현중 캐스터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남은 2블랙의 전략 말입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뻔하거든요. 지금 단체전은 점수 방식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점수가 모자란 상황에서는 적을 제거하려고 나가는 수밖에 없거든요.]

[아! 말씀드린 순간 2블랙이 합의를 끝낸 모양입니다.]

진지하게 회의를 마친 지호와 리혁이 나선다.

리혁을 따라가는 지호.

어딜 가는 것인가 했는데, 집 뒤에 있는 바위 뒤편으로 돌아가자 차량이 한 대 모습을 드러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동수단까지 구비 완료

-이 짧은 시간 동안 저걸 다 한 게 레전드ㅋㅋㅋㅋ

-와 자기만 살겠다고 너무 이기적이네ㅉㅉ 그러니 제가 서리혁과 결혼하겠습니다

-거기에 악독한 시누이 셋과 시동생을 곁들인

-음악의 시어머니 우주선도 잇음

컨트롤이 더 능숙한 지호가 운전석에 탑승하고 리혁이 조수석에 탑승한다.

[일단 만만한 건 트릭스터 쪽이거든요. 걸그룹 연합회보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아! 그런데…!]

장면이 전환된다.

부릉부릉.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트윈테일 수염 미소녀들이 차량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아앙!

느릿느릿 달리는 자동차를 순식간에 따라잡는 오토바이들.

[사실 차량 소리가 굉장히 어그로가 끌리거든요!]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입니다! 걸그룹 연합회!]

투타타타타탕!

총탄이 날아든다.

-똑똑 배달입니다 문열어 주세요

-ㄹㅇ 총알 배달

-고객님의 요청사항대로 저승문 앞에 배달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문 앞에 요청한적 없지만 맨날 내가 요청했다고 함

지호가 차량을 몰아 오토바이를 밀어 버리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요리조리 피하는 오토바이들이었다.

[결국 싸움은 내려서 하는 수밖에 없죠!]

속도를 늦춘 차량에서 지호와 리혁이 내린다.

척척.

방탄복을 비롯해 총까지 완벽하게 장착한 2블랙.

그에 반해 걸그룹 연합회는 무기가 초라한 수준이었다.

후라이팬.

칼.

몽둥이.

-근데 난 저기가 더 무서운 거 같은데

-수상할 정도로 수염이 짙은 미소녀들

-귀여운 애들이 저런 캐 하니까 더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그룹이 대치하면서 중계진이 흥분 섞인 외침을 터뜨렸다.

[무기 화력 차이가 상당합니다! 이러면 2블랙이 유리하거든요!]

[다만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무섭게 달려드는 수염 미소녀들.

그 모습에 지호가 총을 들 때.

[어어!]

[리혁 선수 도망칩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 리혁이 도망을 치면서 지호가 혼자 남았다.

그리고 혼자 남은 지호가 잠시 머뭇거린 틈을 노려 상대들이 달려들었다.

팡팡팡!

정신없이 얻어맞는 지호.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도망치던 리혁이 다시 몸을 돌렸다.

[아! 리혁 선수! 도망친 게 아니었습니다!]

[과연 아니었을까요?!]

[도망친 게 아니고 교전 거리를 벌린 거였네요. 그야말로 정석적인 전투 교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뉴블랙의 지능캐다운 플레이었다.

근거리 무기를 든 적과 거리를 벌리고 원거리 무기를 든 자신의 이점을 살리는 방식!

물론 그게 아군을 미끼로 삼는 전략이긴 했지만… 합리적이었다.

[사격은 아군에게 판정이 안 들어가거든요! 이제 저기서 총을…….]

[어어어?]

[리혁 선수 수류탄을 듭니다!]

총이 안 먹히는 것과 다르게 아군에게도 먹히는 수류탄.

[지호 선수 배신당한 표정입니다!]

[리혁 선수 마치 눈빛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네요. 미안하다 동생아, 네 한 몸 희생해라!]

[합리적인 선택이긴 하거든요. 수류탄이면 저 다섯을 한 번에 보낼 수 있죠!]

채팅창에서 ‘ㅋㅋㅋㅋㅋ’가 쏟아질 때.

리혁이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호를 때리던 걸그룹 연합회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콰아아아앙!

화염이 치솟으면서 하늘로 날아가는 지호의 캐릭터.

[뉴블랙_서리혁 ☞ King (수류탄)]

중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팀킬!]

[아 팀킬입니다!]

[정작 적은 하나도 못 잡았죠!]

채팅창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1블랙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동생 까도 내가 깐다

-그 깐다는 게 수류탄을 깐다는 건진 몰랐지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후 위기상황이되면 리혁이랑은 같이 안 다녀야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리혁의 캐릭터.

무언가 결심을 했는지 총을 들고 수염 미소녀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투타타타타탕!

[1블랙! 심경의 변화가 있던 걸까요?]

[동료의 죽음에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죽인) 동료의 죽음에 각성

-???: 복수할 거다! 복수할 거야! / ???: 왜 이러시는 건데요

-그러니까 쓰레기같자나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칭찬해 리혀기

-맞아 얼마나 용기를 낸 건데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돌격을 시전하는 리혁!

총탄을 피해 수염 미소녀들이 다급하게 도망을 칠 때였다.

‘으아아아아!’ 하듯이 람보처럼 돌격하던 리혁.

철컥. 철컥.

탄창을 다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할 때.

스으으윽.

도망치던 미소녀들이 대머리 남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퍽! 퍼버버벅!

부리부리 돼지들이 짱구를 밟고 때리듯이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주먹과 후라이팬.

이리 맞고 저리 맞던 서리혁이 먼지가 되어 파스스 사라졌다.

채팅창에서 반짝이는 누군가의 드립.

-이젠 0블랙이네..

-0블랙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배아파ㅋㅋㅋㄲㅋㅋㅋ

4블랙에서 0블랙이 된 뉴블랙.

그러는 한편.

어부지리를 노린 트릭스터가 걸그룹 연합회를 공격하면서 트릭스터의 1위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종합 점수판.

띠리리리리링-

딴딴!

[6위] Four Black 클랜

5등 이상 할 수 있겠냐고 비웃던 선우주의 저주가 적중하는 순간.

“안 돼!”

“어째서…!”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현장에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   *   *

경기가 끝난 후.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서 탈락자들이 퇴장하기 시작했다.

“…….”

눈치를 슬금 보던 비주가 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지호야.”

“…….”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지호야.”

“…….”

얼굴에 그늘이 진 막내가 촉촉한 눈으로 앞장서고 있었다.

“저… 지금 형들이랑 말할 기분이 아니에여…….”

“뭐. 사람이 게임에 질 수도 있지.”

중현의 말에 막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중현이 말을 얼버무렸다.

“어유. 지면 안 되지. 당연히 안 되지.”

“후우우….”

파르르 떨며 심호흡을 한 지호가 눈을 이글거렸다.

“형, 제가 게임 하기 전에 몇 번을 말했어여. 게임이랑 현실이랑 다르다구. 형 피지컬 생각하면 안 된다구.”

“아니. 나는 숨을 그렇게 못 참는 거일 줄은 몰랐지.”

찌릿.

중현이 말을 바꿨다.

“몰랐던 내가 잘못이지.”

“…그리고 비주 형은…….”

중현의 뒤로 슬쩍 숨던 비주가 딱 걸렸다.

“비주 형은… 후우…….”

“형이 미안해.”

심호흡을 하던 지호가 리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물주물.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서 마사지를 해 주고 있는 서리혁이었다. 왕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애쓰는 간신배 같은 표정.

“더 세게 주물러여.”

“넵.”

“에잇… 쯔쯧!”

“더 세게 주무르겠습니다….”

혀를 차는 막내의 모습에 형들이 죄인처럼 수그리며 걸어갔다.

“아, 이제 우주 형한테 가서 뭐라구 말하냐구여. 이따 집에 들어가면 우리 겁나 놀려댈 텐데.”

“…….”

“분명히 그 형 지금쯤 노래 한 곡 만들었다니까여?”

4블랙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상상이 간다. 상상이 가.’

리라를 뜯는 아폴론처럼 현관 앞에 의자까지 두고 앉아 있을 선우주.

그가 띵가띵가 하면서.

-6등을 해 버렸다네~ 선우주 없인 아무것도 못한다네~

뭔가 아무튼 그런 노래를 불러 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노래의 퀄리티가 좋겠지.

“……뭐.”

게임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긴 했지만 왕지호는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분량은 잘 뽑은 거 같은데요?”

“예능적으로만 보면 더 잘된 거 같아.”

비주의 말에 이어서 중현이 남들 다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의 노림수가 먹힌 거지.”

“웃음을 위한 노림수. 일리 있는 말이네요. 형.”

“그치.”

하지만 지나가던 후배 가수들은 키득거리면서 인사를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집 가기 싫다.”

“나도.”

“나도 그래요.”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풉.”

복도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인물들의 모습에 왕지호는 당장 집에 가고 싶어졌다.

스트릿 보이즈였다.

그와 롤을 함께 하는 스보 4인조 형들이 그를 놀려 대고 있었다.

“왕지호, 너 이제 우리한테 형이라고 불러야겠다.”

“야! 야! 형이라고 불러 봐.”

“흐하하하핫!”

그러면서 막 놀려 대는데 그래도 여기서 놀려 대는 건 괜찮았다.

‘개못하니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딱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복도 구석에서 게임 영상을 보며 진지하게 회의하는 미소년들이었다.

틴스피릿.

이웃집이자 게임 잘하기로 소문난 이들. 스케줄 없을 때면 일과가 게임인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과 지호의 눈이 마주쳤다.

“…….”

“…….”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동갑내기 친구인 하현이 말없이 지호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면서 다들 지호의 등을 두드렸다.

‘힘내 시발’ 하면서 아련하게 멀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에 왕지호는 게이머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가 이런 취급을 받다니…….”

방송국 옥상에 올라가서 으아아악! 하고 외치고 싶은 기분.

비주와 리혁이 토닥토닥해 주며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지호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중현이 형은 어디 갔어여?”

“약속 지키러 간다던데?”

매니저와 함께 사라졌다는 말에 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약속이요?”

*   *   *

치이이이익-

불판 위에 꽃등심이 올라오면서 향긋한 고기 내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불그스름한 숯불.

그 위에서 익어 가는 고기.

꿀꺽.

5인조 보이그룹 그래비티.

7인조 보이그룹 타이쿤.

12명의 보이그룹 멤버들, 그리고 그 매니저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불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로 빛나는 부처님 같은 얼굴.

누군가 말했다.

“중현 선배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한 거니까요. 닉네임에 ‘나 죽이면 소고기 사 줌’이라고 적었잖아요.”

게임 속에서 중현을 낭떠러지까지 모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없애지 못한 두 그룹의 멤버들.

엄밀히 말하면 죽인 것은 아니기에 소고기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예선 경기가 끝나고 중현 선배가 다가왔다.

-소고기 먹을래요?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고깃집이었다.

‘소고기다.’

‘진짜 소고기야… 레전드.’

‘중현 선배님은 신이야.’

데뷔하고 나서 통 소고기 먹을 일이 없었던 이들에게 중현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제 단골집이거든요. 많이 먹어요.”

“엇, 선배님! 제가 굽겠습니다!”

“아뇨. 고기는 제가 잘 구워요.”

고기 집게를 든 중현을 향해 열두 명이 일어나면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손을 내젓는 미남의 말에 자리에 엉거주춤 앉은 이들.

얼마 안 가 그들은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진짜 많이 쳐다보네.’

국민 아이돌이라는 말이 위명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서 중현을 찍는 손님들. 몇몇은 다가와서 사진도 찍고 갔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왔다.

‘무슨 관계지?’ 하는 느낌.

“아이고. 중현 씨 왔어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목장갑을 끼고 정육점 치마를 멘 사장님이 넉살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은 멤버 분들이랑 안 오고 따로 왔네.”

“네.”

“무슨 사이야? 회사 연습생들?”

“아뇨.”

중현이 진지하게 답했다.

“저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친구들이에요.”

생전 처음 있는 일이죠, 하며 허허 웃는 중현.

그 순간 고깃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신인 아이돌들에게 향했다.

‘어?’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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