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6)화 (81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6화

작년과 마찬가지로 큰 화제를 불러 모은 E 스포츠 돌림픽!

실시간 중계가 끝나자마자 연예 관련 커뮤니티에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시각 기고만장한 선우주 인스타]

왠지 모르게 거만한 표정의 셀카.

그 아래로 본인이 새로 적은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tjsdnwn [팔로우]

☆ 뉴블랙 최강 겜신 ★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개열 받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생겨서 더 열 받음

-뉴블랙 최강 겜신 (팩트)

-4블랙:6등 / 선우주: 5등

-끄덕

-도찐개찐이라는 말을 알고 있니 우주야??

-솔직히 거기서 거기인데ㅋㅋㅋㅋㅋㅋ

-그냥 뉴블랙 자체가 게임을 못하는 듯

예선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들은 바로 4블랙이었다.

본인들의 인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들이 게임에서 보여 준 온갖 추태 때문이었다.

-좀비물에서 절대 만나면 안 되는 아이돌 1위) 서리혁

-아이돌이 게임과 현실을 구분 못할 때 생기는 일

-비주 ‘먼지가 되어 Ver.’

이기심 가득한 플레이를 보여 준 서리혁부터 게임 캐릭터를 현실과 착각해 사망한 김중현.

그리고 명곡 ‘먼지가 되어’가 BGM으로 깔린 비주의 영상.

먼지가 되어~

비주의 저격수 캐릭터가 자기장이 지나자마자 먼지처럼 파스스 흩어지는 장면이 미튜브 인기 영상에 올라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개욱겨

-늅이 현생을 열심히 사는 이유가 있구나.. 게임을 개못해서였어

-게임못하면 현실 열심히 살아야지

-ㄱㅡㄴ데 길치는 게임에서도 길 잃음???

-ㅇㅇ 같음

-게임 잘 모르지만 못한다는 건 확실히 알겠서ㅋㅋㅋㅋ

여기저기서 4블랙의 게임 실력을 놀려 대는 사람들!

그것은 물론 게임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돌 올림픽? 이거 또 했나 보네.’

작년에 선우주가 병맛 플레이로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되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4블랙이 화제다.

걔네들이 선우주만큼 못했다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게임 유저들이 영상을 보고 감탄을 터뜨렸다.

-너네 절대 게임하지 마라

-게임 못하는 사람들 특징이 골고루 다 있네ㅋㅋㅋㅋㅋㅋㅋ

-저건 근데 컨트롤이 아니고 성격 문제같음ㅋㅋㅋ 다들 성격이 ㄹㅇ 제각각이라 뭉치기 어려움

-어케 한팀 하고 있냐

-짜잔 그거슨 우주선의 조별 과제 팀플레이였구요

-4년째 조별 과제중인 우주선 센세..

그러면서 곳곳의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뉴블랙 사진과 함께 올라오는 낚시글들!

[게임 못하는 사람들 특징]

(뉴블랙 화보)

잘생기고 돈 많음

-못생기고 돈도 없으면 어떡하죠?

-앗아..

-쟤넨 못해도 돼

-대신 쟤네 팬들이 졸라 잘함

-ㅋㅋㅋㅋㅋㅋ ㄹㅇ 겜에서 닉넴 수플레 달고 있는 애들 보면 못하는애들 없슴ㅋㅋㅋ

-못하면 너네오빠 드립 날아오니까ㅋㅋ

-나 뉴블랙 싫어하는 게 걔네 팬들한테 너무 많이 죽음 ㅅㅂ 나만 죽여..

-닉넴이?

-앉은우주ㅎㅎ 선우주 반댓말임

-넌 그냥 죽어라

돌림픽 이야기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을 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 있었다.

[대충 속보) 뉴블랙 막내 울분의 와이앱 방송]

Y앱 라방을 킨 지호가 형들과 자신을 동일선상에 놓지 말라며 호소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호는 억울할 만하지

-조원들 빠졌다고 팀플 점수 C주던 교수 떠오르네

-나름 하드 캐리했는데ㅋㅋㅋㅋㅋㅋㅋ

-게임 못한다고 놀릴 때마다 콧김부는 거 왜일케 웃겨ㅋㅋㅋㅋㅋ 저러니까 계속 놀리지

-이어폰 끼고 듣는데 넘 귀엿고 웃겨ㅋㅋㅋㅋ 댓글 올라올 때마다 후우우웅 하면서 귀에 바람들어옴

-속보) 수플레들 ‘뉴블랙은 하나 아니었느냐’ 말에 막내 ‘지금은 다섯이다’

-[속보] 왕모군 “제 본실력은 나오지 못했다” 발언에 팬들 웅성웅성 “무슨 일본 전설의 1군이냐”

-오늘 왜일케 왕모찌 같아ㅋㅋㅋㅋ

놀릴 때마다 나오는 리액션이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뉴블랙 막내를 놀려 대는 팬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돌림픽 소식들이 곳곳에서 유머글로 올라오는 가운데,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짤이 있었다.

[오늘 후배들 집합 걸었다는 5년차 아이돌]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아이돌들이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사진.

그 맞은편에 대학 교수처럼 뭔가를 말하는 중현의 모습에 사람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사진 아래 적혀 있는 상황 설명.

돌림픽 닉네임이 ‘나 죽이면 소고기 사 줌’이라서 사 줬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중현이는 저기서 뭘 말하고 있는걸까

-저거 신인들 후기 올라옸는데 주로 무대나 활동 관련해서 조언해 줬다고 함

-ㄹㅇ 집중해서 들어야겠네

-1타 강사에게 직접 듣는 강의ㅋㅋㅋㅋ

-아 저건 못참지ㅋㅋㅋ

-근데 중현이 혼자 사주러 갔나 보네?? 소고깃집에 4블랙 빼먹고 갔다고 안 서운해하나

-미리 말하고 갔을듯

당연히 미리 말해 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 가 중현이 SNS에 게시글을 업로드했다.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Sweet_Potato

집에 오니 문이 잠김

그리고 또 다른 사진.

현관 고리 틈 사이로 네 명이 삐친 강아지처럼 으르렁대는 사진이 올라오면서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돌림픽에서 동생들이 정말 못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고 온 후.

“어휴. 못났다, 못났다.”

“원래 동생은 형들 하는 거 보고 닮는 거라고 했어요.”

“…….”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것 같아서 돌림픽에 대한 이야기는 묻어 두기로 했다.

그날 막내가 너무 시무룩하고 울적해해서 고기를 사 주면서 다독여야 할 정도였다. 야숨인가 하는 게임팩을 사달라고 해서 그것도 사 줬는데.

다행히 우리 막내는 원래대로 금방 돌아왔다.

“아. 기분 좋다아아~”

“왜?”

“스보랑 틴스도 예선 탈락했대요. 흐하하하하!”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우리 막내였다.

두 그룹의 예선 탈락 소식에 내가 물었다.

“그런데 스보 애들이야 못하니까 그런다 치고, 틴스피릿 애들이 예선에서 탈락을 했다고?”

“네.”

“이상하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열정 넘치는 이들이 바로 아랫집 미소년들이었다.

진짜 무슨 놀러 갈 때마다 게임을 하고 있어.

차를 훔치고 도시를 쿠쾅쾅 때려잡는 게임, 축구 선수들을 흑마법사처럼 조종하는 게임 등등.

과자 부스러기를 입가에 묻힌 채 폐인처럼 게임과 혼연일체가 되는 아해들이 예선 탈락이라니.

“이게 좀 이유가 웃겨요. 형.”

막내가 말했다.

“걔네 말 들어 보니까 카메라 때문에 집중을 못했대요.”

“왜?”

“표정 관리한다고.”

“아…….”

왜 탈락을 했는지 알겠다.

게임을 하다 보면 내뱉게 되는 추임새들.

그들 마음속에서 올라오려는 ‘존나’를 억누르다 보니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열 받는 순간이 찾아와도 방긋방긋 웃어야 하니까.

“어쩐지 애들이 돌림픽 얘기를 안 한다 했어.”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고척돔에서 열린 한국가요대상에 참석했을 때 게임의 게 자도 언급하지 않았던 이웃집이었다.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냥 우리 상 받고 나서 ‘존나 축하합니다…’ 하고 아련하게 사라지길래 뭔가 했지.

뭐. 어쨌거나….

-한국가요대상, 뉴블랙 대상 ‘3관왕’ 싹쓸이.. “이변은 없었다”

작년도 성적을 종합해서 주는 한국가요대상에서 우리는 대상 3관왕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음원상에는 도깨비.

앨범상에는 코인.

성적대로 줬다는 세간의 평가대로 잡음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시상식이었다.

그렇게 3관왕이라는 성적을 거둔 날,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일정도 우리를 찾아왔다.

두둥!

‘N’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면서 나오는 OTT 메인 화면.

거기에 들어가자마자 표시된 순위란이 보였다.

[오늘 한국의 Top 10 컨텐츠]

1위. 뉴블랙 : 메이킹 웨이브

2위. 러브 앤 매치 : 솔로는 죽는다

3위. 신도림역의 마법사들

인기 있는 연애 예능과 드라마 위에 우리의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비주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 1위예요. 형.”

선댄스 영화제에서 시사회를 하고 나서 어언 일주일.

마침내 넷플러스에 업로드된 다큐 썸네일을 보며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직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반응 파악이 어렵긴 한데, 시사회 반응 생각하면… 잘 되겠지?

지이이잉-

동생들과 함께 이번에는 한국어 내레이션이 깔린 다큐를 모니터링할 때였다.

중현이가 말했다.

“형, 이사님한테 전화 왔는데요?”

“…음?”

발신자 명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규환 이사님]

아무래도 아빠 영화와 관련된 용건인 듯했다.

*   *   *

똑똑.

-들어와.

블랙 앤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사무실.

TV 드라마 속 재벌 후계자가 일할 것 같은 인테리어의 사무실에 조 이사님이 앉아 있었다.

“어우…….”

티벳 여우를 닮은 30대 후반의 미남.

미팅이 힘들었는지 넥타이를 대충 풀어헤쳐서 소파에 던진 이사님이 냉수를 들이켰다.

내가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미팅 다녀오셨어요?”

“응. 죽겠다.”

녹초가 된 얼굴로 조 이사님이 말했다.

“우주, 네가 지난주에 아버님 영화 관련해서 윤 팀장님 통해서 전달해 줬지? 예산이 필요하다고.”

“네.”

“그 예산 마련하는 문제 때문에 국내 배급사들이랑 미팅하고 왔어.”

“결과는…….”

조 이사님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반응이 부정적이죠?”

“말도 마. 다들 펄쩍 뛰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이게 400억까지 투자할 프로젝트냐고.”

“저 같아도 그럴 것 같긴 해요.”

400억.

기본 1000억이 넘어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소소해 보이는 규모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 오면 역대 2위 규모의 제작비였다.

“국내 대형 배급사들 이야기하는 거 다 똑같지. 투자 대비 수익성이 의심된다. 저 정도면 천만을 찍어야 겨우 본전이다. 감독도 무명인데 무슨 근거로 섭외를 한 거냐.”

“국내에서 투자 받기는 글렀네요.”

“그렇지.”

조 이사님이 턱을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아버님의 화제성과 관련해서 말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그것도 반응이 썩 좋진 않아.”

“개봉할 때쯤 되면 다 식어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는 모양이야.”

아빠와 관련된 영화가 지금 개봉한다면 모를까.

올해 하반기에 개봉해 봐야 이미 대중들의 관심은 식어 있을 거라고 판단한 듯했다.

“조금 까다롭게 됐네요.”

“난감하게 됐지.”

영화는 흔히 배급사들의 투자로 제작이 된다.

극장 유통망을 장악한 배급사들이 제작사에게 돈을 주고 나중에 투자 수익을 회수하는 식이다.

그러니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과연 저 영화가 얼마를 벌어다 줄 것인가?’

투자를 했을 때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는가.

물론 아빠의 전기 영화가 한국에서 수익을 거두지 못할 일은 없을 거다.

아무리 식는다고 해도 지금 ‘선명주 열풍’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 만큼 그 열기는 하반기에도 잔열처럼 남아 있을 테니까.

문제는 수익이 아니라 투자액.

100억 정도 투자해서 600억을 벌면 이득이다.

하지만 400억 투자해서 600억을 벌면 그건 손해였다. 대체로 투자액 대비 매출이 두 배는 돼야 손익이 맞는다나.

“투자가 어려울 거라는 건 예상했어요.”

내가 봐도 매력적인 투자 제안은 아니었다.

한국 영화 최고 수준의 제작비.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선명주 열풍.

스튜디오 레몬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제작사.

독립영화 업계에서만 활동하던 무명 감독.

하지만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할리우드 최고 수준의 스탭들.

영화에 깔릴 음악들이 몹시 빼어난 음악 영화.

매력적인 주인공 서사.

선명주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뉴블랙의 팬덤.

마지막은 좀 부끄럽긴 한데… 세계 곳곳에 있는 수플레들이 우리 아빠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내가 본편이라면 아빠는 프리퀄로 여기는 듯한 느낌.

“이것들도 이야기를 해 보셨나요?”

“했지. 감독만 무명이지 촬영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 전부 다 에미상이나 골든 글로브 수상한 적 있는 사람들이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요?”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냐고, 자기들은 모르겠대.”

“…….”

“그냥 투자하기 싫다는 거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더라고.”

배급사 직원들 표정이 상상된다.

떨떠름하게 ‘아, 네…’ 하면서 차 한 잔 내주고 돌려보내는.

“사실상 문전박대긴 했어. 너희가 가요에서나 잘나가지, 영화는 뭐 아느냐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

“이사님한테요?”

“원래 영화업계 콧대가 좀 높아.”

웃음이 나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안목이 정말 뛰어난 걸로 유명한 게 우리 이사님이다.

천만 영화가 될 영화를 미리 알아보고 배우를 밀어 넣은 일화는 아직도 회사에 전설처럼 전해질 정도.

현재 NBS와 스튜디오 레몬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낸 것도 조규환 이사님이었다.

“뭐.”

조 이사님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제안이 없는 건 아니야. 400억을 투자해 주겠다고 한 곳도 있긴 해.”

“정말요?”

“DK 그룹 알지? DK링크.”

“K넷 모기업이요?”

“응.”

음악전문채널 K넷의 모기업으로 유명한 이동통신사였다.

OTT도 산하에 거느리고 있고.

“거기서 투자제안이 들어왔는데…….”

“네.”

“조건이 확실해. 현재 감독을 해임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감독으로 섭외할 것. 배우 캐스팅에도 자신들이 참여할 것. 편집본에 수정 요청이 들어올 경우 협조할 의무를 약속할 것.”

“……협상 가능성은요?”

“없어. 받아들이든가. 말든가.”

K넷 모기업 쪽에서 들어온 건 굉장히 고압적인 제안이었다.

너희가 우리 아니면 돈을 어디서 구할 건데? 에서 나오는 자신감.

“결렬이네요.”

“결렬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니까.”

결국 국내 배급사들의 투자 건 모두가 날아갔다는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쩌면 제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업계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흥행이 안 될 영화인데…….”

“그건 아니야.”

이사님이 웃으며 눈을 빛냈다.

“이게 정말 안 될 영화였다면 내가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니진 않았겠지.”

“그래요?”

“정확히는 말 못하겠지만… 뭔가 느낌이 와.”

“오오오오오.”

잘 될 삘이 느껴진다는 이사님의 말에 내가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하는 것도 잠시.

다시금 현실로 돌아오면서 정적이 감돌았다.

“…….”

“…….”

이사님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쩌죠?”

“음…….”

“해외 투자로 다시 시선을 돌려 볼까요? 미국 메이저 배급사에게 투자를 어필한다거나.”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어.”

조규환 이사님이 말했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도 지금 우리 프로젝트가 애매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거든. 그래서 담보가 필요해.”

“담보요?”

“돈을 믿고 맡길 담보가 필요하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유명한 감독, 유명한 배우, 뭐… 유명한 제작자.”

“아.”

“배급사 입장에서 믿고 돈을 맡길 만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게 없지.”

쉽게 말해 영화의 간판이 필요한 상황.

“간판 배우는…….”

“어렵지.”

아무리 유명한 한국 배우를 내놓아 봐야 할리우드에선 시큰둥할 거고.

유명 감독은… 이미 김보라 감독이라는 적임자가 있으니 패스.

그렇다면 유명한 제작자를 끌어들이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데…….

“아!”

머릿속에서 아는 사람 리스트를 검색하던 내가 탄성을 터뜨렸다.

이사님이 몸을 일으켰다.

“왜? 왜 그래?”

“저 적임자가 하나 떠올랐어요.”

업계 레전드 커리어와 인지도를 가진 인물.

뮤지컬 및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브로드웨이의 거물이면서 동시에 욕심과 야심도 많은 인물.

나를 바라볼 때마다 절대반지를 보듯 탐내던 아시아계 미국인이 떠오른다.

“프랭크 차우 어때요?”

“프랭크 차우…?”

<노스탤지어>의 원작자이자 EGOT을 달성한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작곡가.

조 이사님이 회의적인 얼굴로 물었다.

“이 사람이 정말 제작자 제안을 받아들일까?”

“못 먹는 감 찔러라도 보는 거죠, 이사님.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요?”

“그렇긴 하지.”

“일단 우리 스탭들 명단을 보여 주시면 될 거예요.”

Kim, Lee, Park, Choi 등의 성씨로 가득한 영화 스탭 명단.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분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분명히 알아챌 테니까.”

*   *   *

뉴욕.

브로드웨이의 사무실.

“음…….”

뚱뚱한 체구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배를 긁적이며 서류를 살폈다.

<선명주 전기 영화 기획안>

정갈하게 영어로 정리된 문서에 적힌 것들을 면밀히 검토하는 프랭크 차우였다.

날카로운 눈빛.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제작자로 끗발 날리기 위해선 단순히 제작 역량만 뛰어나서는 될 수 없었다.

기회가 보일 때 포착하는 동물적인 감각.

‘영화감독은 데보라 킴.’

비서가 찾아온 정보에 따르면 꽤 눈여겨볼 유망주 감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놀란 건 화려한 스탭 라인업이었다.

감독이 똥을 싸도 황금똥으로 만들어 줄 정도로 출중한 스탭들.

“노스탤지어 각본 작가도 있고. 저 친구는 전에 촬영으로 상 받은 친구 아닌가…? 에미상 특수효과 부문에서 상 받은 특수효과팀도 있고…….”

라인업의 특이한 점이라면 80퍼센트 이상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게다가 영화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들의 우상인 선명주.

‘최고의 스탭들이 그야말로 목숨 걸고 만들겠군.’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OST 담당을 맡은 사람의 이름.

Woojoo Sun.

인기 보이밴드 뉴블랙의 리더이자 그가 눈여겨보고 있는 젊은 작곡가였다.

이런 뮤지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인데, 그 음악을 다룰 인물이 바로 영화 주인공의 아들이다.

‘그 요괴 같은 놈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음악계 사람들을 갈아댈 거야. 최고의 곡이 나오겠지.’

눈에 광기가 서린 천재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그런 정보들이 하나하나 입력이 되고 나니 뭔가 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으으음.”

프랭크 차우가 두툼한 이중턱을 주물렀다.

마음이 반반이다.

반드시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남 주기는 아깝다.

“그렇다면…….”

브로드웨이의 전설이 결정을 내렸다.

*   *   *

“뭐래요. 이사님?”

“대본이 나온 걸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는데? 시나리오 퀄리티가 마음에 들면 수락하겠다고.”

“거의 됐네요!”

환호하며 손뼉을 마주치는 선우주.

조규환 이사도 미소를 지었다.

‘일이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

월드 아트 스튜디오의 망언이 김보라 감독을 부르고.

김보라 감독이 그 발언을 이용해 할리우드 최고 스탭들을 모으고.

할리우드 최고 스탭들이 최고의 제작자를 불러오고, 이제 그 제작자가 배급사의 투자를…….

“음?”

그런데 뭔가 이런 방식에 데자뷰가 느껴졌다.

“우주야.”

“네?”

“근데 이거…….”

조 이사가 물었다.

“뭔가 다단계 같지 않니?”

“어?”

“…….”

“…….”

불현듯 두 대주주의 눈이 테이블 유리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으로 향했다.

반짝반짝.

(주)레몬의 다단계 플래티넘 사원 같이 웃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

‘어?’

……우리 다단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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