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7화
같은 시각.
할리우드 사무실에 모인 남녀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선 주연배우 캐스팅 안건입니다.”
김보라 감독의 말에 스탭들이 영어로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무조건 잘생긴 배우로 해야 돼요. 선명주 님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얼굴입니다. 얼굴.”
“한국 내수용이 아니라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잖아요. 얼굴도 중요한데 영어 실력도 중요하죠. 한국어와 영어 양쪽 모두에 능통한 배우가 필요해요.”
“콕 찝어 말해서 영어가 능통한 한국인 배우를 기용해야 돼요.”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가 말했다.
할리우드 최고의 캐스팅 디렉터로 유명한 인물에게 다들 집중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는요?”
“일단 한국계 배우 풀이 좁은 건 차치하더라도 선명주 님의 캐릭터와 맞지 않아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완벽해야 하잖아요. 지금 한국어가 완벽한 한국계 배우가 없을 텐데요?”
“그건 그러네요.”
“한국 관객들이 몰입을 못하면 말짱 꽝이에요.”
최대 흥행 국가로 예상되는 한국에서 주인공이 ‘안뇽… 하십니까’ 하면 과연 어떤 난리가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캐스팅 디렉터가 말을 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영어가 능통한 한국인 배우를 찾는 게 훨씬 쉽죠.”
“동의합니다.”
스탭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조감독을 맡은 유진 박이 ‘어?’ 하더니 말했다.
“저 좋은 의견 생각났어요!”
“뭔데?”
“우리는 이미 완벽한 배우를 보유 중이잖아요?”
“완벽한 배우를 보유 중이라니?”
아리달쏭한 말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조감독이 말했다.
“우주 씨 있잖아요. 우주 씨.”
“어?”
“우주 씨 엄청 영어 능통하잖아요. 저 처음에 우주 씨도 미국인인 줄 알았다니까요.”
언어 능력도 유전이 되는 것인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어 실력이 뛰어난 선우주였다.
자세한 문장이나 어휘력 수준은 몰라도, 발음 하나만큼은 정말 발군이었다.
조감독의 말에 흥분한 누군가 말했다.
“그러네! 얼굴도 완벽하잖아.”
“게다가 선명주 님보다 더 잘생기긴 했지. 이명은 님 얼굴도 같이 물려받아서…….”
“심지어 연기력도 준수해. 한국에서 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다면서요? 그것도 시트콤으로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누군가 덧붙였다.
“지금 전 세계 팬덤만 수백만이니 수천만이니 이야기 나오는 게 뉴블랙이잖아요.”
“그렇지.”
미국에서야 유망주 취급을 받고 있는 뉴블랙이긴 하다.
하지만 뉴블랙은 이미 2014년보다 이어진 4년간의 활동으로 전 세계 곳곳에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슈퍼스타였다.
특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범접하지 못할 위치에 서 있었다.
“우주 씨가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면 그야말로 아시아 지역 박스 오피스를 휩쓸어 버릴걸요. 그 팬들이 보통 팬이에요? 뉴블랙이 음료수 하나 마실 때마다 그 음료수를 인터넷에서 쓸어 담는 팬들인데.”
돈다발로 기업들을 후두려 찹찹하는 빵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활활 타기 시작하는 행복 회로.
“그치.”
누군가 중얼거렸다.
“우주 씨가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면 투자도 걱정할 필요도 없지.”
“진짜. 내가 투자하고 싶은데요.”
지금 그들의 걱정거리도 단숨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우리 투자 제대로 받을 수는 있나…?
제작비 인플레가 심해진 최근 할리우드에서 수백억 규모의 제작비는 솔직히 저예산으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넘쳐 난다고 해도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아무데나 돈을 뿌리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돈값은 할 만한 프로젝트에 돈을 넣는다는 이야기.
-우주 씨가 주연 배우 선명주로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누구든 지갑을 탈탈 털어 돈을 넣을 게 뻔했다.
“맞아요. 제가 캐스팅 디렉터 친구한테 들었는데 뉴블랙한테도 꾸준히 히어로 영화 제안 들어온다면서요.”
“동아시아랑 동남아 쿼터 먹는 데는 최고거든.”
“돈이 되니까.”
그러면서 선우주의 주연 배우 제안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조감독 유진 박이 감독에게 고개를 돌렸다.
“킴 감독님. 어떠세요?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 외모 되지. 영어 되지. 한국에서 전 국민이 사랑하는 내셔널 히어로지, 세계 곳곳에 거대 팬덤을 거느리고 있지.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
“그렇지.”
하나 김보라 감독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그런 반응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먼저 한 건 아니에요. 나도 감독 제안 수락하자마자 든 생각이 바로 그거니까.”
얼마나 매력적인 선택지인가.
“하지만 여러분의 주장에는 맹점이 하나 있어요.”
“……?”
“본인이 수락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모두가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싫대요?”
거절할 만한 이유들은 여럿 떠올릴 수 있다.
전설적인 커리어를 지녔던 아버지를 연기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
바쁜 스케줄.
“스케줄이 바쁜 거라면 조율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촬영 아무리 길어도 한 달이면 끝나잖아요.”
“연기력도 뭐가 걱정이야. 엄청 잘하는데.”
우주가 왜 거절했는지 의문이 드는 제작진이었다.
압박감이나 연기에 대한 부담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메리트가 있는 선택지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영화였다.
한 편만 봐도 얼굴이 각인되는 매체.
인지도 조사를 하면 항상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가수나 드라마 배우들을 제치고 상위권에 있는 이유였다.
“잘만 터지면 진짜 전 세계 사람들한테 얼굴 각인되는 건데…….”
납득이 안 갔다.
조카가 하버드를 안 가고 동네 커뮤니티 칼리지를 가겠다고 말하는 걸 보는 느낌!
“감독님 이야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우주 씨가 이걸 대체 왜 거절한 건지.”
“그게…….”
김보라 감독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 영화에서 선명주 님 다음으로 중요한 배역이 누구예요?”
“그야 당연히 이명은 님이죠.”
이명은.
선명주의 뮤즈이자 재즈계의 유명 첼리스트.
남편 곁에서 언제나 함께 연주를 했던 그 모습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공연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예쁜 사람은 대체 누구지?’ 할 만큼 아름다웠던 미모.
부인이 임신을 하고 아들이 태어난 몇 년 동안은 대부분 공백기로 남았을 만큼 선명주의 일생에서 1순위였던 인물이다.
그가 가진 유일한 가족이었기에.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도 영화에서 엄청 중요하단 말이죠.”
“그렇죠.”
“그게 우주 씨가 거절한 이유예요.”
김보라 감독의 머릿속에 선우주의 말이 울려 퍼졌다.
-엄마랑… 로맨스 못 찍을 거 같은데요.
너무나 납득 가능한 사유였다.
스탭들의 머릿속에 영화 장면이 상상된다.
-명주 오빠.
-명은아….
-사랑해요.
-나도….
그리고 키스 씬.
“으으으으으으!”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
“아… 이건 좀.”
그런 스탭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납득 완료.”
“아, 이건 아니지.”
자기 엄마 역을 하고 있는 배우와 로맨스 씬을 찍을 수 있는 배우는 별로 없을 터였다.
뭔가 그… 거부감이 이해가 갔다.
괴로워하는 스탭들의 모습에 김보라 감독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해가 가시죠?”
“완벽하게 이해 갑니다.”
이해는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스탭들이었다.
‘대박이었을 텐데.’
방금 전까지 행복 회로 200퍼센트로 불타올랐던 제작진이 차갑게 식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똑같은 걱정.
“근데…….”
누군가 말했다.
“우리 제작비는 걱정 없는 거 맞죠?”
“음…….”
“으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안건이지만 회의에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던 이야기.
즐겁고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에 초 치기 어려워서 말은 못하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현실적인 걱정들이 밀려왔다.
‘투자 받을 수 있겠지…?’
마이너 중의 마이너 스토리.
한국인 슈퍼스타가 미국에서 성공하는 뮤지컬 영화에 투자할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가 있을까.
존 에드워즈 감독 같은 뮤지컬 영화 흥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알렉 웨스트나 이사벨라 도리스같이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백인 무비스타도 없다.
“그래도 선명주 님 미국 공연 하면 반응이 좀 다르지 않을까요?”
“글쎄. 미국인들은 정말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 아니라면 크게 관심이 없어서…….”
선명주의 공연이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독차지한 건 맞지만 미국의 대중들에겐 클래식 공연 1 정도 취급이었다.
“…….”
“…….”
다들 말없이 아메리카노만 홀짝이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전화가 걸려오면서 김보라 감독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반가운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감돌았다.
“네. 우주 씨.”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고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안녕하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에 남녀 불문하고 스탭들이 와 하고 감탄했다.
고막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 선우주라고 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아. 이거 뭔가 쑥스럽네요.
선명주 악개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항상 마음속에 선명주 하나는 꼭 품고 살아가는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자부심의 상징 같은 존재.
그런 아버지를 이어받아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선우주는 그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존재였다.
-다름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 전화를 드렸어요. 그래서 스피커폰으로 바꿔 달라고 했는데.
“좋은 소식이요?”
-네.
귀를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달콤한 웃음소리.
-제작비 마련이 생각보다 수월해질 것 같아요. 어쩌면 더 금액을 증액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더 많은 제작비!
스탭들의 눈이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영화의 제작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이에요.
“제작이요?”
-네. 지금 아마 뮤지컬 영화 기획 때문에 다들 불안감이 좀 있을 거예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선명주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좀 불러 주고 해야 되는 영화.
문제는 여기서 그런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총괄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전문가를 프로듀서로 고용하기 위해 섭외 준비 중이었는데…….
-프랭크 차우 씨 어때요?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프랭크 차우가 누구지?’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라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름을 검색하는 사람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이들이 딸꾹질을 했다.
“히끅!”
-괜찮으세요?
“히… 힉! 끅!”
딸국질 합창단이 물을 마시고 물었다.
“그 프랭크 차우요? 뮤지컬로 토니상 받은 사람?”
“노스탤지어 원작자 아니에요?”
“프랭크 차우가 동명이인은 아니죠? 업계에서 활동 중인 프랭크 차우면 그 사람밖에 없는데.”
웃음소리와 함께 답이 돌아왔다.
-맞아요. 그 프랭크 차우.
그 순간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와우, 워우 하면 리액션이 회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잔뜩 흥분한 얼굴의 조감독 유진 박이 핸드폰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어, 어떻게 알고 섭외하신 거예요?”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에요. 노스탤지어 때 인연을 맺어서 이후로도 종종 안부를 묻는 사이거든요.
“와… 인맥이…….”
-종종 영화 음악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긴 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부탁을 하게 됐네요.
프랭크 차우가 선명주의 전기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걸 긍정적으로 수락했다는 모양이었다.
“와…….”
정말이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특히나 제작자가 누군지에 따라 영화 퀄리티가 확 갈리는 할리우드 특성상 프랭크 차우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뮤지컬로만 수천억을 벌어서 성에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제작비 지원은 걱정이 없다!’
노스탤지어로 히트를 친 프랭크 차우가 제작한다는데 투자를 안 할 배급사는 없을 것이다.
흥분해서 방방 뛰는 이들이 감탄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미쳤다.’
유능한 CEO처럼 그들이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을 딱 가져와 준 뉴블랙 리더에게 감탄이 나왔다.
-아, 그래도 이야기는 끝까지 들으셔야 돼요.
환호하며 서로를 얼싸안고 있던 이들이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눈을 멀뚱멀뚱 떴다.
“왜요?”
-90퍼센트 정도로 승낙하신 거라서요.
“섭외가 다… 안 된 건가요?”
-아뇨. 거의 오시는 걸로 매듭은 지었는데 조건이 하나 걸려 있어요.
프랭크 차우가 걸었던 조건이 우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각본을 보고 참여하시겠다네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구석진 곳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인물에게 향했다.
초췌한 얼굴로 대본을 작성하던 각본가 제이나 킴.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던 그녀의 허리가 스스슷! 직각을 이루기 시작했다.
“각본을 보고 참여하겠다고요?”
-네.
그 말에 제이나 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주 씨.”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각본가 제이나 킴.
그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최고의 각본을 만들어 낼 테니까.”
선명주 영화 프로젝트에 순풍이 불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어… 어쩌면 순풍이 아니라 열기일 수도.
* * *
-최고의 각본! 최고의 각본!
-최고! 최고!
선명주 영화의 제작진이 으쌰으쌰하면서 기뻐하고 있는 한편.
순풍은 미국에서만 불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 공개된 우리의 넷플러스 다큐멘터리에도 순풍이 불고 있었다.
-넷플러스 월드 와이드 1위.
-일본 넷플러스 종합 순위 2위.
-미국 넷플러스 종합 순위 1위.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화력을 보여 주고 있는 우리 수플레들이었다.
“강하다.”
“와. 우리 팬들에 비하면 최약체였네요.”
“팬분들한테 업혀가는 거 너무 좋다…….”
우리는 뗏목 위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면서 바람을 타는데, 밑에 있는 크라켄들이 배를 옮겨 주는 느낌이다.
“와. 볼리비아? 여기에도 우리 팬들이 있나 봐요. 1위라는데.”
“체코에서 3위래요.”
“뉴블랙 인 프라하 찍으러 가야 하나? 형들 이거 각인데여? 체코 가서 초코 빙수 먹을 각.”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나라들에서 전부 10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3위라는 걸 보고 눈을 비빌 정도.
세계 곳곳에 수플레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다양한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와…….”
감탄하며 색칠공부 세계 지도에서 나라들을 채워 나가는 리혁이었다.
“여행일기 찍으러 갈 수 있는 나라들이 줄어 가고 있어요.”
“그러네.”
여행 리얼리티는 최대한 우리를 모르는 나라들에 놀러가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북극과 남극밖에 안 남게 생겼다.
아니면 아프리카 사바나 정도.
어딜 가든 수플레가 수호령처럼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다. 수플레들.”
그런 수플레들의 물량 때문인지 정말 여기저기서 다양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상승하는 우리 음원 순위.
게다가 피날레 콘서트에 출연했던 헤일리, 그리고 기타리스트 글렌 데이비스 옹이 소속된 데블 그릴스의 음악들도 다시 차트에 진입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수플레들이 기업들의 멱살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느낌.
-자. 외워 봐. 뉴블랙은 돈이 된다.
-뉴…뉴블랙은 돈이 된다?
-다시.
-뉴블랙은 돈이 된다.
-옳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 구매력을 여기저기서 무기처럼 휘두르는 수플레들.
우리가 해외 투어에서 먹었던 음식점들이 다큐멘터리를 본 팬들의 방문으로 난리가 나고.
지호가 맛있다고 했던 미국 음료수가 평소의 300% 판매량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에 이런 걸 돈쭐 내준다고 하던데.
음료수 기업에서 ‘Happy Jiho Day’를 제정하면서 할인을 하겠다며 노를 젓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물론, 수플레들이 다큐의 모든 부분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건 아니었다.
-못된 자들에게는 철퇴를!
과거 15년도였나?
[그들의 냉장고 문을 열면 김치가 가득할걸요.]
[하하하하!]
우리에게 인종 차별적인 코멘트를 했던 호주 TV쇼 진행자가 다큐 자료화면에 나오면서 이번에 사과 트윗을 올렸다.
뭐.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으나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과문이었다.
극대노한 해외 수플레들.
-한국인들이 맨날 김치만 먹는다고 생각해? 너의 발언은 인종 차별적이기 그지없어.
-그들의 냉장고 문을 열면 김치만 있을 거라고?
-그럼 일본인들은 맨날 스시만 먹게??? WTF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야?
-코이츠 무식이 자랑인www
-역시 조상님들이 범죄자인 나라는 다른 (웃음)
세계 곳곳에서 분노한 수플레들이 욕설을 토해 낼 때, 우리는 뒤에서 쭈글쭈글하게 중얼거렸다.
“근데 냉장고에 김치만 있는 거 맞는데… 김치냉장고도 있는데…….”
“맨날 김치 먹는 거 맞긴 한데…….”
인종 차별적인 코멘트가 맞기는 한데, 이게 뭔가 미묘한 느낌이라서 같아서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이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뭐.”
“잘 가라.”
뜨끈뜨끈한 수플레 불지옥에 빠진 호주 인종 차별주의자를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아, 호주 하니까 좋은 소식 있던데요. 우리 애들레이드 기억해요?”
“우리 문전박대했던 식당 있는 곳?”
“네.”
과거 리얼리티 촬영차 호주에 갔을 때 우리를 문전박대했던 식당이 떠오른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인도 사장님의 태국 음식점에 갔지.
리혁이가 사진 뉴스를 통해 근황을 보여 주었다.
“그 식당 자리가 이제 태국 음식점 2호점이 된대요.”
“오오오.”
“뉴블랙 스페셜이라고 주문하면 우리가 먹었던 메뉴가 고스란히 나온대요.”
‘뉴블랙이 먹었던 바로 그 메뉴 그대로’ 라고 적혀 있는 메뉴판 사진을 바라보며 뭔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어쨌거나.
지금 수플레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다큐는 여러 가지 지표상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큐가 나오고 얼마 안 돼서 넷플러스로부터 감사인사가 돌아왔으니까.
LA에 있는 본사를 방문해 달라는 초청장과 함께.
-뉴블랙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다리겠습니다.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고무적인 수치가 나왔다는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올해 봄에 런칭할 지호의 <신이>에도 프로모션이 빵빵하게 들어갈 계획이라나.
막내가 싱글벙글 웃었다.
“이번에 넷플러스 본사 갈 생각하니까 너무 설레요.”
“설레?”
“네, 진짜 회사 안에 영화관도 있다고 그러던데.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해요.”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방방 뛰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정말 여기저기서 순풍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순풍이 부는 항해 속에서 우리는 처음 가 보는 섬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뉴블랙 여러분. 오늘도 LA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전세기 화면에 떠오르는 김포-LA 지도.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그래미 어워드가 열리는 로스앤젤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