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9)화 (81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9화

비트코인.

올해 들어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투자 수단.

-아. 옛날에 미드 볼 때 사 둘걸!

막내 말로는 이게 최근에 나온 게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 미드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왔거든요. 수사물에서 비트코인, 비트코인 하면서 막 해커들이 이게 미래의 화폐다 막 이랬는데….

-그럼 너도 사지 그랬어.

-그니까요! 그때 그거 사 뒀으면 형들 부려 먹고 살 수 있었는데.

뭔가 굉장히 글러먹은 발언을 들은 듯한 기분이었는데.

초등학생 막내가 미드로 비트코인의 존재를 알았을 때, 그보다 한 살 형이었던 우리 메인보컬은 정말 비트코인을 채굴한 모양이다.

“뭐. 그때 당시로는 얼마 안 되는 돈이었거든요.”

리혁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냥 재미로 한 거라서 잊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까 이게 그런 가치가 됐더라고요.”

“우와.”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리혁이에게 하드 드라이브를 받는 내 손은 달달 떨릴 뿐이었다.

비주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 형 손 떨리는 거 봐.”

“비주야. 그럼 네가 받을래?”

내가 하드 드라이브를 든 손을 내밀었다.

곧바로 얼굴이 핼쑥해지는 비주.

“으어! 저한테 내밀지 마요. 형!”

“그럼 저한테 내밀어 주세여. 전 받을 수 있으니까.”

얼굴을 들이미는 막내를 밀어내고는 하드 드라이브를 사수했다.

그동안 중현이가 짱구처럼 엉덩이 근육을 이용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중현아. 왜 그래?”

“저랑 저 하드 드라이브를 멀리 두려고요.”

“좋은 생각이야. 거기서 1미터쯤 더 가렴.”

“네.”

슥슥슥슥슥.

리혁이가 비웃었다.

“아니, 중현이 형이 아무리 부순다고 해도…….”

바로 그때.

뒤로 물러나던 중현이가 리혁이의 책장을 건드리면서 책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

말을 이으려던 리혁이가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그렇게 안전하게 내 품 안으로 들어온 하드 드라이브를 고양이처럼 안아 들었다.

“그런데…….”

내가 재차 물었다.

“너 정말 괜찮겠어?”

“뭐가요?”

“아니. 아무리 돈이 충분하다고 해도 이 정도 금액은… 그걸 뛰어넘는 수준이잖아.”

“내 가치관이 그래요.”

리혁이가 말했다.

“뭐, 내가 지금 어려운 상황이라면 또 경우가 다르겠지만… 이미 돈은 충분히 벌고 있어요.”

“그래도…….”

“이건 내가 쓸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돈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기왕이면 좋은 목적에 쓰고 싶어요.”

뚫어져라 바라보는 우리가 민망한지 리혁이가 팔로 무릎을 감싼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강아지가 그려진 흰 양말이 바닥에 꼼지락거린다.

“솔직히 내가 좀 의심이 많긴 하잖아요.”

“많지.”

“많은 수준이 아니에요. 방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맨날 들어갔냐고 의심해.”

“자기 일기장 훔쳐봤냐고 그러고.”

지호와 비주가 입을 삐죽이며 답하는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너희 방에도 들어가고 일기장 훔쳐보지 않았니?’

‘몰라몰라. 졸개들은 과거에 한 일 같은 거 몰라.’

뻔뻔하게 모른 척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뜰 때.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부도 많이 못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의심이 많아서 과연 내 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의심이 되고. 기부한 다음에 계속 신경이 쓰일 거 같더라고요.”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요. 혀…….”

“혀?”

“형이 하는 재단이라면.”

형이라는 단어보다 믿을 수 있다는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왜 이렇게 얼굴이 후끈후끈하고 간질간질하지.

내가 괜히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피하는 동안,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그래서 넘겨주는 거예요.”

“그렇구나. 고… 고마워.”

“네.”

“…….”

“…….”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곳을 바라보는 우리 모습에 나머지 셋이 뭐라고 놀려댔다.

어딘가 달짝지근하고 머쓱한 분위기가 감돌 때.

리혁이가 그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말을 꺼냈다.

“뭐. 그리고 현실적인 것도 고려했어요.”

“현실?”

“처음에는 좋은 일에 기부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우리 영향력이 또 보통 영향력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거 같았어요.”

리혁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의미를 알아챘다.

-뉴블랙 리혁, 과거 비트코인 투자액 전액 기부.. “우리의 이웃들을 돕고 싶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좋은 기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부 사실보다는 액수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곧바로 쏟아져 나올 후속 기사들의 방향이 상상된다.

-뉴블랙 리혁이 투자했다는 비트코인 ‘차세대 화폐로 각광’

-리혁이 돈 벌었다는 비트코인은 무엇?

-[경제 정보] 국민 아이돌도 투자한 비트코인의 저력.. ‘지금은 블록체인 시대’

저런 기사가 나오면 거의 기름에 불을 지르는 수준일 것이다.

-와! 리혁이가 투자했대!

-어르신. 이게 좋은 투자 정보가 있습니다. 리혁이 아시죠? 아, 그 친구가 글쎄 이번에 이걸 투자해서 좋은 일을 했답니다.

-여보, 리혁이가 이걸 투자했대.

-리혁이가 투자했다니까 안전 걱정도 없네.

사회면 곳곳에서 볼 법한 소식들이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만큼 우리 영향력이 커서 생긴 문제였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상투적인 말처럼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 이미지에 돈이 결부되는 것도 좋지 않은 선택이고요.”

“동감하는 바야.”

“그래서 앞으로 먼 미래에 이 돈을 맡기려는 거예요.”

내가 아빠와 엄마의 이름을 딴 은명재단을 언제 세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이 돈을 내게 맡겨 두겠다는 이야기였다.

“리혁이 말이 일리가 있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중현이가 내게 물었다.

“그럼 형은 어떻게 할 거예요? 저거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거….”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맡겨 둘 만한 데가 따로 있어.”

*   *   *

-저희 금고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혁이가 건네준 하드 드라이브는 안전한 금고에 맡겼다.

우리 아빠의 악보와 비디오테이프를 안전하게 20년이나 보관해 준 바로 그 금고 업체였다.

그러니 보관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나라 은행에서 보관 중인 19세기 금화도 옮기고 싶은데… 금화 같은 경우 국외 반출과 관련된 규정이 복잡한 것 같아 포기했다.

언론에 선우주 금화 밀반출 이런 기사 나면 안 되니까.

“거기라면 믿을 만하죠.”

아빠의 금고에 하드를 보관했다는 말에 리혁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한 이야기죠. 우리 위대한 서리혁 님이 주신 코인을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훗.”

“목은 안 마르신가요?”

“그럼 한 잔 줘 보세요.”

와인글라스에 탄산수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건넸다.

졸개들이 시샘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혁이한테만 존댓말 써 주고…….”

“서운하네.”

“에잇, 나두 코인 있었으면 우주 형 발가락으로 부려 먹는 건데.”

그동안 내가 리혁이의 어깨를 세심하게 마사지해 주며 웃었다.

“억울하면 너희도 리혁이만큼 나한테 잘해 주든가.”

“틀린 말은 아니죠. 나처럼 잘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요. 핫핫핫!”

“우후후후!”

간신배처럼 웃어 대는 내 모습에 졸개들이 빈정 상한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내가 리혁이의 뭉친 어깨를 풀어 주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너무 부러워하지 마. 리혁이가 지금 끊은 것도 일일 자유이용권이야.”

“뭐야.”

리혁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이거 일일 이용권이었어요?”

“응.”

“앞으로 잘해 주겠다면서!”

“앞으로 남은 하루 동안 잘해 드리겠다는 말이었죠. 하핫!”

리혁이가 구시렁거리자 졸개들이 대만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그럼 그렇죠.”

“우주 형이 배은망덕의 아이콘이거든요. 저희가 누굴 보고 배웠겠어요? 맏형이 저 인성이니 저희가 풍비박산 아니겠어요?”

“오.”

중현이가 중얼거렸다.

“근데 평지풍판 아닌가?”

“풍전등화…?”

“풍팡푸… 풍…….”

풍… 뭐였더라.

게슈탈트 붕괴현상처럼 단어가 갑자기 안 떠오른다. 얼마 전 푸켓에서 먹었던 푸팟퐁커리만 떠오를 뿐.

그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떠들 때.

“오!”

막내가 흥분해서 손가락으로 차창을 가리켰다.

“저기 이제 글씨 보여요! 스테이플러 센터!”

“스테이플스 센터겠지.”

멀찍이 전광판 글씨가 벌써부터 번쩍인다.

[STAPLES CENTER]

NBA와 하키 경기가 열리는 스포츠 경기장이자 오늘 그래미 어워드가 열리는 공연장이다.

우리와는 작년에 월드 투어로 이틀간 공연한 것으로 연이 있는 장소였다.

비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몇 달 만에 그래미로 이렇게 다시 왔네요.”

“그러게.”

감회가 새로운 기분으로 가까워지는 공연장을 바라보았다.

유독 오늘따라 좀 신나는 기분이다.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참석 자체에 신이 난다.

아마 아카데미 시상식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배우와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별들의 잔치 그래미.

“후…….”

불현듯 들려오는 심호흡에 고개를 돌렸다.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긴장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저희보다 더 긴장하고 있어요, 형들?”

“그래미잖아.”

민기 형이 달달 떨며 말했다.

“내가 빌보드 차트만 알던 시절에도 알았던 시상식이 그래미인데 거기에 나가는 거니까.”

“그래미까지 올 줄은 몰랐지.”

“형들 자꾸 떨면 저희도 떨린단 말이에요.”

그 말에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떨림을 진정시키기… 는 무슨.

달달달달달!

전화 걸려온 것처럼 진동하는 둘을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너… 너희는 괜찮아?”

“오늘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려고요. 우리가 여기서 뭘 한다고 수상 여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낚시를 통해서 부담감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는 말에 지호가 맨날 낚시 타령한다며 투덜댔다.

“그리고 메트로가 아니라 블루문이니까요.”

헤일리 블루와 함께 작업했던 2016년도의 음악이 바로 올해 2018년도 어워드에 후보로 오른 곡이었다.

작년도에 우리가 발매한 METRO도 미국에서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어서 후보에도 들 수 있을 거란 예상이 있긴 했다. 성적만 따지면 충분히 가능할 거란 말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보이밴드를 거의 노미니 시키거나 상을 준 적이 없다는 그래미답게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

“부담 없이.”

“편하게.”

콜라보 음원 성적이기도 하고.

여기에 헤일리가 과거 주최 측에게 쌍욕을 퍼부었다는 전력까지 고려하면 확률은 더더욱 낮다.

그야말로 최악의 사이.

나 같아도 상 줘야 하는데 하시모토 부자가 ‘와타시 상 받는데스?’ 하고 다가오면 트로피에 폭죽을 심을 거 같다.

-피융!

‘아이고 상 날아간다!’ 하며 어어어 할 부자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오늘은 어워드를 편하게 즐기고 갈 생각이었다. 오늘은 해야 될 무대도 없으니까.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상에 참여하는 게 어디예요.”

“그치.”

중요한 사실은 바로 우리가 그래미 어워드 본상에 참여한다는 거다.

보통 그래미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게 바로 본상 시상식인데, 사실 그래미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시상 부문만 한 80개 되나?

하도 수상할 부문이 많아서 본상에서 시상을 다 못하기에 대부분의 상은 사전 시상식(Premiere Ceremony)에서 처리를 한다.

본상과 똑같이 수상자들이 소감을 말하고 축하 공연도 있다.

차이점이라면 TV 방송을 안 하기에 본상보다는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것.

사전 시상식과 본상 양쪽에 오르는 후보들은 대부분 본상에만 참여하는 편이다.

본상 몇 시간 전에 열리는 사전 시상식 때 레드카펫 준비를 해야 하니까.

“사전 시상식도 보고 싶었는데…….”

평소 주의 깊게 지켜보던 미국 가수나 엔지니어, 작곡가들도 대거 사전 시상식에 나오는 만큼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리 앨범으로 납치해 올 수 있는 고급 인력들이 가득한 곳을 갈 수 없다니.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취재진과 팬들이 가득한 레드카펫 행사장이 다가오면서 졸개들과 내가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덜덜덜덜!

진동하며 공명하는 우리 모습에 서로 포옹하며 떨던 두 매니저가 물었다.

“편하게 즐길 거라면서?”

“…….”

조용히 미소 지으며 달달 떨 뿐이었다.

*   *   *

제60회 그래미 시상식.

“Hey!”

“Sunny! Sunny!”

그래미 어워드 특유의 로고인 축음기 모양의 아이콘이 가득한 포토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The New Black is here!”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리포터들과 카메라들이 과장된 리액션으로 우리를 반겨 주고.

우리가 겪었던 다른 미국 시상식과 비슷한 진행이었다.

그래미 첫 참석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답하고, 최근 핫하다는 다큐멘터리 반응에도 답하고.

「이번에 써니, 당신의 그 영상이 굉장한 화제가 됐다는 거 아시나요? 미튜브에서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죠.」

「부끄러울 따름이에요.」

「수줍어하기는! 정말 자랑스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큐의 영향 때문에 SNS 곳곳에 퍼지게 된 13년도 의인 영상이었다.

영웅 키워드만 들어가면 국회에도 진출하고 영화도 나오는 나라답게 그 부분에 관심도가 높은 편이었다.

멤버들이 인터뷰어의 질문에 화기애애하게 답하는 한편.

「그래미 참석한 기분이 어떤가요, 써니? 작고하신 아버님도 그래미에 오신 적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맞아요.」

그래미 재즈 부문에서 여러 번 노미네이트 됐던 아빠였다.

물론 상을 받은 적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흑인 가수들 차별한 걸로 말이 많았던 어워드이니 90년대에는 뭐…….

「분야는 다르지만 아버지가 방문했던 시상식에 오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대충 그래미는 세계 최고의 어워드 하는 립서비스를 해 주고는 인터뷰를 마쳤다.

곧이어 입장한 본상 행사장.

“와아아아아아아아!”

“수플레들 안녀엉!”

“킴덕순! 킴덕순!”

“역시 수플레들이야.”

수플레들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는 우리 테이블에 앉아 있는 파란 머리카락의 요정과 마주했다.

「오랜만이에요. 헤일리.」

「잘 지냈어?」

포옹을 가볍게 하고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작년 말에 우리가 피처링을 해 준 ‘Popsicle!’ 곡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눈 뒤로 첫 만남이었다.

「너희가 피처링을 해 준 덕에 홍보를 신나게 돌렸지. 이제 다 함께 팬들의 코 묻은 돈을 털어먹자고.」

「…….」

「흠. 온실 속 잔디들에겐 너무 직설적인 발언이었나.」

한결같은 인성을 자랑하는 가수였다.

요정같이 귀여운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떠올리던 팝스타가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프로모션 잘 부탁해.」

「걱정 마요. 헤일리. 준비는 철저히 하고 왔으니까.」

그래미 어워드가 끝나고 프로모션으로 준비한 공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를 계획이었다.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하나둘 시상식에 참여하는 이들과 반갑게 웃으며 사교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이상하네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슬슬 도착해야 할 텐데… 참석자들이 잘 안 보이네요.」

익숙한 얼굴들이 여럿 안 보인다.

콜드 브라운이나 빅 모건 같은 유명 래퍼들, 그리고 저번에 봤던 핑크 드레스를 입은 남자 래퍼까지.

현재 미국 가요계를 지배 중인 힙합 가수들이 잘 안 보였다.

헤일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미가 또 지랄을 했거든.」

「네?」

「이번에 콜드가 완전 물을 먹어서 그래.」

「콜드 브라운 말하는 거죠?」

현재 래퍼 중에서 음원 성적으로는 톱을 달리고 있는 래퍼.

랩 실력뿐만 아니라 노래 실력과 춤 등 전반적인 퍼포먼스 능력이 뛰어난 가수였다.

그렇다고 음악성이 모자란 것도 아니라서 작년에 낸 앨범의 경우 힙합 리스너들이 만장일치로 명반으로 꼽을 정도.

그래서 이번에 그래미 앨범상 수상 후보에 오를 확률이 높았는데….

본상에 하나도 노미니 안 됐다.

「콜드가 물 먹은 건 잘 알고 있지?」

「……후보 선정 기준이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힙합 쪽 애들이 엿 같아서 안 나온다고 선언했어. 이딴 식으로 해 먹을 거면 너네끼리 해 먹으라는 거지.」

힙합 가수를 비롯해 흑인 뮤지션들이 엿 먹으라며 안 나오겠다고 선언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휑해 보였던 거구나.

헤일리와 그런 이야기를 속닥거리고 있을 때.

-잠시 후 본상 시상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장내를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 지상파 방송국의 중계 카메라에 붉은 불이 들어오면서 본상 시상식이 시작됐다.

시상식 호스트를 맡은 유명 코미디언의 입담.

최근 미국에서 띄워 주고 있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켈리 넬슨의 오프닝 무대.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서.

-다음은 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시상이 있겠습니다.

우리가 후보로 오른 부문을 맡은 시상자가 걸어 나오면서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시상자로 나온 유명 배우가 말하는 멘트가 귀에 안 들어온다.

하얗게 시야가 물들면서 심장이 콩닥거리는 기분.

입술에 침을 바르며 테이블 아래로 동생들과 손을 붙잡을 때.

-그럼 후보들을 만나 보시죠!

테이블 아래로 뻗은 손들이 꿈틀꿈틀하면서 스크린에 나오는 VCR을 지켜보았다.

앨범 썸네일과 함께 나오는 음악들.

점점 순서가 뒤로 이어진다.

[맨디 스파이스와 레지나의 Hold Your Breath.]

[더 세일러스의 Strong Enough.]

그리고.

[헤일리 블루와 뉴블랙의 Blue Moon.]

현장에서 수플레들이 터뜨려 주는 어마어마한 함성.

그 분위기 속에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시상자가 봉투를 열었다.

긴장감 하나 없이 그의 입에서 두 이름이 나왔다.

-그래미 수상자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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