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0화
안타깝게도 그건 우리의 이름이 아니었다.
-맨디 스파이스와 레지나! Hold Your Breath!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금 빨라졌다.
근처에 앉아 있든 금빛 드레스의 맨디 스파이스와 레지나가 벌떡 일어나 포옹을 했다.
“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박수갈채.
치렁치렁한 갈색 머리의 히스패닉 팝스타가 절친 헤일리에게 다가와 포옹을 했다.
「헤일리, 헤일리. 나 이제야 상 탔어!」
「역시 내 여자야.」
헤일리가 절친의 뺨에 입맞춤을 하며 잘했다는 듯 웃었다.
레지나(Regina).
라틴어로 여왕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을 지닌 히스패닉계 팝스타로, 2010년대 들어서 원톱 디바로 군림하는 가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팝스타가 길쭉한 다리를 드러내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간 그래미에서 지독하게 물을 먹었다는 말이 정말인 듯했다.
눈물 가득한 소감이 흘러나오는 동안 뒤에 서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싱어송라이터가 수줍게 웃었다.
맨디 스파이스.
미국 10대들에게 ‘우리 세대의 대변자’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인기가 좋은 팝스타다.
그래미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수상했을 만큼 그래미 상복으로 유명한 가수답게 익숙한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다.
「이 노래를 함께 작업하느라 열정을 쏟아부었던 맨디! 정말 고마워. 넌 최고의 친구이자 가수야.」
「고마워요. 레지나, 당신의 헌신과 열정은 너무나 대단했어요.」
서로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 가수.
그들이 함께 작업한 가 바로 이 부문의 수상자였다.
솔직히 탈 만한 곡이 탔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인 차트 성적만 비교하면 우리와 헤일리의 이 더 탈 만하기는 하다.
하지만 저 곡에 담긴 서사를 이기기가 힘들었다.
-모든 상이군인들에게 바칩니다.
두 가수가 부상을 입은 상이군인들을 돕기 위해 만든 자선 곡.
곡명대로 잠시 숨을 참는, 그런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봐 달라는 내용이 담긴 곡이었다.
물론 그 목적과 별개로 노래 자체가 좋았다. 굳이 배경 설명을 모르면 또 모르는 대로 일반 팝송 같은 느낌으로.
“예상한 대로 되긴 했네요.”
비주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박수를 치며 웃는 동안 레지나와 맨디 스파이스가 소감을 이어 갔다.
지호가 조용히 내 귓가에 한국어로 속삭였다.
“아쉽지 않아요. 형? 형이랑 헤일리가 엄청 빡세게 작업한 건데.”
“괜찮아.”
지호의 말대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낚시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어차피 결과는 내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니었다.
미끼를 열심히 끼우고, 낚싯대를 최선을 다해 던지고, 그걸 낚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
물고기가 물지 않는 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괜찮아.”
최선을 다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데 불현듯, 내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다음에…….”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리 다음에 또 그래미 올 거니까.”
* * *
맨디 스파이스와 레지나가 수상자로 발표되는 그 순간.
「이런.」
객석 뒤에 서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Damn’ 하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가 옆에 선 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에이전시에서는 블루문의 수상확률이 꽤 높다고 점치고 있었거든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미스터 윤.」
「확실히… 아쉽군요.」
윤석환이 턱을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월드 아트 스튜디오에게 뻐큐를 날렸던, 뉴블랙의 미국 활동을 전담하는 에이전트 디안젤로가 말을 이었다.
「그래미 내부 소식통한테 표차가 거의 없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아마 미세한 차이가 수상 여부를 결정했을 겁니다. 조금만 표를 더 받았다면 저 자리에 우리의 가수들이 서 있었겠죠.」
「그 말을 들으니 더 아쉬워지네요.」
당사자만큼이나 아쉬운 기분이었다.
‘내심 기대를 했는데 말이지.’
우주를 비롯해 멤버들에게는 확률이 낮다면서 기대감을 최대한 낮춰 주었던 TF팀장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었던 건 그였다.
실제 수상 확률이 50퍼센트 남짓이었으니까.
잘만 하면 한국 가요계의 역사가 될 수도 있었던 일이… 아쉽게 무산되면서 괜히 속상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뭐. 상대가 나쁘긴 했죠. 하필이면 상이군인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 곡이라니…….」
그런 이야기를 하던 디안젤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가능성을 확인한 거 아니겠습니까? 미국에서 과연 잘 될까 싶었던 뉴블랙이 그래미 후보까지 올라왔습니다. 그것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지 1년도 안 돼서요.」
「그 말대로 가능성이 보이긴 하군요.」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이번에 제대로 확인한 겁니다. 뉴블랙은 미국에서 상업적 가능성이 높은 친구들이에요.」
그런 말을 하던 에이전트가 운을 뗐다.
「슬슬 뉴블랙도 미국 활동에 진심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심이요?」
「표현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진지하다? 진심이다? 지금처럼 부차적인 보너스로 여길 것이 아니라 메인 활동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지금까지 우리의 가수들은 미국 활동을 보너스 정도로 여겼죠. 당연합니다. 여태까지 전례가 없던 일이잖아요? 반짝 행운으로 여겨도 이상할 일이 없죠.」
솔직히 그런 감이 없잖아 있긴 했다.
블루문으로 시작해서 미국에서 인기가 오기 시작했을 때도 뉴블랙과 TF팀은 이걸 부차적인 활동으로 여겼으니까.
-이거 언제 꺼질지 몰라. 석환 형.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 안 돼.
조만간 꺼질 거품처럼 이해를 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수플레들과 인기를 바라보면서 ‘저거 꺼질 수도 있으니까’ 하고 있었는데.
METRO의 성공에 이어서 이번에 그래미 후보로 발탁되면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 기분이었다.
거품인 줄 알고 손을 댔는데 딱딱한 표면이 손에 닿는 기분.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에이전트가 TF팀장을 설득했다.
「미국에서 몇 달간 거주하며 프로모션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노래를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노래요?」
「네. 영어 곡으로 노래를 내고, 또 내고… 결국에는 그것이 인터내셔널 앨범으로 이어지고.」
디안젤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게 견고한 성을 세워야 합니다.」
앨범으로 커리어를 쌓아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지간한 가수는 범접하지 못하도록.
‘우리와 같은 의견이군.’
예전에 A&R팀과 프로듀싱팀, 그리고 뉴블랙과 함께 모여서 검토했던 회의와 일맥상통하는 의견이었다.
-인터내셔널 앨범을 내자.
-인터내셔널?
-이제는 곡만으로는 안 돼. 앨범이 있어야 해.
그런 기억을 떠올리던 윤석환에게 상대가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 미세한 표차가 승패를 결정했다고 했죠?」
「네.」
「헤일리 블루가 미운털이 박힌 것도 영향이 없잖아 있지만… 아직 뉴블랙의 입지가 미국에서 높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인기는 많지만 견고하지는 않죠.」
디안젤로가 말했다.
「잘생기거나 예쁜 백인들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면서 온갖 상을 휩쓸어 갈 때, 흑인 힙합 뮤지션들은 그래미를 타기 위해 커리어를 견고하게 쌓아 나가야 합니다.」
「우린 허들이 더 높군요.」
「영어권 국가가 아닌 외국 출신이니까요. 라틴 아메리카의 팝스타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뉴블랙의 팬덤인 수플레 덕분에 처음에는 쾌속으로 장벽들을 뚫고 지나오긴 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슬슬 느껴지고 있긴 했다.
팬덤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부분들.
그런 간지러운 부분을 명쾌히 긁어 준 미국 에이전트가 포부를 밝혔다.
「뉴블랙은 제가 발굴해서 계약하자고 한 가수입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뉴블랙이 핫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곳의 활동을 전담하는 저로서는 우리의 가수를 이곳에서 최고로 만들고 싶습니다.」
잘나가는 보이밴드는 지금까지도 많았다.
하지만 디안젤로는 뉴블랙에게서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잘나가는 신인 보이밴드 수준이 아니라 그보다 더 대단한… 그리고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포지션의 그룹 가수로.
‘이들에겐 뭔가가 있다.’
그런 에이전트의 진지한 눈빛이 전달됐는지 윤석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저와 의견이 같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디안젤로 코스텔로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뉴블랙을 총괄하는 본부의 장이 거절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였다.
사실 뉴블랙은 아쉬울 게 없었으니까.
미국에서 신인 보이밴드로서 성공적인 포지션을 잡기도 했고,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에선 이미 넘사벽 가수다.
북미에서 보이밴드 이상의 목표를 굳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서 굳이…? 하는 반응을 보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미스터 윤의 눈에도 승부욕이 가득해 보였다.
눈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지금 수상 실패 때문이군.’
어쩌면 지금 그래미를 타지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그가 최근에 얻은 정보를 상대에게 풀었다.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는 인터내셔널 앨범이 나와야 합니다. 리드싱글을 비롯해 앨범 선공개 곡들은 올해에는 나와야 하고요.」
「왜 그렇습니까?」
「후발주자를 물리쳐야 하니까요.」
「저희에게 경쟁자가 있었나요?」
「곧 생길 겁니다. 저번에 Light It Up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안을 받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석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상한 제안이었지.’
뉴블랙에게 막대한 출연료를 줄 테니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달라는 제안이 왔다.
차세대 보이밴드 멤버를 선발한다는 오디션.
디안젤로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듣기로는 뉴블랙에게 반감을 가진 세력들이 차세대 보이그룹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아…….」
「심사위원으로 부른 건 아마 이미지 메이킹 때문일 겁니다. 심사위원이라고 하면 대개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전성기는 지난 느낌이지 않습니까? 최고의 톱스타가 심사위원을 맡는 게 어울리던가요?」
「안 어울리죠.」
「떠오르는 샛별에 대응하는 선배 그룹으로 뉴블랙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겁니다.」
예상했던 시나리오에 윤석환이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미국 놈들도…….’
중국이 속 보이게 돈다발을 흔든다면 일본은 교묘하게 돈다발을 뒤에서 찌른다.
그리고 그보다 더 교묘하게 자본을 이용해서 구도를 조성하는 것이 바로 미국 쪽이었다.
수작질을 센스 있게 한다고 해야 하나.
대충 지금 들은 이야기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차세대 보이그룹 선발 미션!
-이전 세대 아이돌 뉴블랙이 응원해 주는 차세대 대세 그룹!
-저무는 해와 새로 뜨는 해!
미국에서 신인 포지션인 뉴블랙이 저런 선배 이미지가 되는 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나 돈의 힘으론 안 되는 게 없다.
미국 진출 시기인 2017년 대신 2014년도부터 데뷔한 그룹이라는 사실을 언론 플레이로 상기시켜 주고.
이미 전 세계 슈퍼스타라며 연차 찬 선배 취급을 하고.
그런 식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순식간이다.
「그래서….」
윤석환이 웃음을 흘렸다.
「저희가 꼴 보기 싫다는 거군요?」
「뉴블랙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크고 있거든요. 보이밴드 파이를 먹는 것도 모자라서 팝 쪽으로 올라오니까요. 솔직히 허용 범위를 넘어선 성장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메트로 때문인가요?」
「메트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죠. 아무도 그 정도로 잘 될 줄 몰랐으니까.」
첫 영어 곡으로 빌보드 1위를 거둔 METRO의 지나친 성공이 불러 온 반작용이었다.
윤석환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저희 편이 아닌 세력이 몇이나 된답니까?」
「뉴블랙에 베팅한 쪽이 3이라면… 저쪽은 7 정도 되죠. 관망하는 쪽도 꽤 되긴 한데 솔직히 K팝 그룹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걸 눈엣가시로 보는 업계인들이 더 많습니다.」
「저희 편이 있다는 게 다행이군요. 불리하긴 하지만.」
「네, 저도 그 3할 중에 하나니까요.」
두 남자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윤석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먹히든가, 먹든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건가.’
당연히 고르라면 후자다.
여태까지 뉴블랙과 TF팀은 그래 왔다.
윤석환이 기지개를 켜며 서늘한 눈으로 그래미 어워드 식장을 바라보았다.
‘간만에 승부욕이 불타오르네.’
국내에서 경쟁자들을 꽉 누르고 국민 아이돌이 된 이후로 간만에 찾아온 진득한 승부욕이었다.
디안젤로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TF팀장님께서는 저와 같은 의견이신 것 같군요. 그럼 뉴블랙 분들과도 의견을 교류해서…….」
멤버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고 할 때.
디안젤로는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윤석환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십니까?」
「우리 멤버들 표정 좀 보세요. 특히 우주요. 동기 부여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미국 에이전트가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에 헤일리 블루와 도란도란 둘러앉아 있는 뉴블랙 멤버들.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박수를 치고 있다.
팬티만 입은 남자 댄서들과 춤을 추는 호주의 가수 에일로를 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뭐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냥 어워드를 신명나게 즐기고 있는 가수의 표정.
「……잘 모르겠습니다만.」
윤석환이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뉴블랙과 같이 일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다.
지금 입가는 잔뜩 웃고 있지만 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이.
특히 가운데 앉아 있는 누군가의 눈에서…….
‘열 올랐네. 저거.’
말은 괜찮네 뭐네 할 게 뻔하다.
하지만 그는 연습생 시절부터 뉴블랙의 리더를 잘 알고 있었다.
저 표정을 지을 때면 뭔가 해내곤 했다.
‘근데… 너무 활활 타는데…….’
선우주의 등 뒤로 진한 보랏빛 불길이 넘실거리는 듯한 느낌에 윤석환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옆에서 의아해하는 이에게 말했다.
「절 믿어요.」
윤석환이 웃었다.
「마지막으로 저 표정을 보았을 때가 데뷔 전인데, 그 이후로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졌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학교 강당에서 춤을 추던 아이들이 그래미 어워드에 오게 됐죠.」
「…….」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통 가수들은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그래미라고 하지만….
「어쩌면 내년에 또 오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 *
그래미 어워드가 끝난 다음 날.
초가을 날씨를 보여 주고 있는 1월 말 LA의 해변 근처에 야외 공연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Moonlight Parade]
번역하자면 달빛 축제 정도.
헤일리 블루가 새로운 곡을 발매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모션 공연이었다.
곡명은 바로
그런 까닭에 제삼자가 본다면 굉장히 특이한 공연명이었다. 곡명과 상관없는 달빛이 왜 들어가는가?
그 이유는 곧 관측하게 될 천문현상 때문이었다.
-슈퍼 블루 블러드 문.
2018년 1월 말에 찾아온 독특한 이벤트.
달이 크게 보이는 슈퍼문 현상, 블루 문 현상, 그리고 블러드 문 현상이 3종 세트로 일어나는 날.
달이 붉게 물드는 날을 앞두고 뉴블랙의 과학담당이 제안한 이벤트였다.
-우리 콜라보한 곡 제목이 블루문이잖아요. 어차피 Popsicle 부르는 김에 블루문도 부르면 어때요? 날짜도 딱인데.
-훌륭한 생각이다. 닥터 피쉬.
-리혁이라고요. 서리혁!
-한 번 피쉬는 영원한 피쉬. 애칭을 부르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너의 말은 마치 sibal과 같이 서운하구나.
영상통화로 조금 옥신각신하긴 했지만 어쨌든 좋은 아이디어였다.
‘존나 좋은 아이디어지.’
헤일리 블루가 휘파람을 불었다.
개기월식 때문에 붉게 물든 달 아래에서 블루문을 블러드문으로 개사해서 부른다?
이건 되는 공연이었다.
거기에 신곡 팝시클 공개까지.
“제나. 보여?”
그녀가 매니저를 부르며 허공을 가리켰다.
“저기 보여?”
“뭐가요?”
“내 눈에는 돈이 보여. 이 모래사장의 모래알만큼 많은 돈이 내게 쏟아지는 돈들이…….”
“오! 정말 보이는군요.”
매니저와 함께 허공에서 쏟아질 돈을 바라보며 웃는 가수.
모든 게 완벽했다.
‘피처링 가수 화제성으로는 최고지.’
나 혼자 잘난 맛으로 사는 미국의 가수들이 왜 콜라보와 피처링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는가.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에서 리스너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함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래를 들어 주는 팬들을 떼로 몰고 다니는 저 핫가이들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되게 신경 쓰이네.’
무대에 올라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의 표정이었다.
몹시 밝다.
보기만 해도 주변이 밝아지는 세상 환한 표정들.
어둡고 컴컴하고, 세상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는 걸 좋아하는 헤일리에겐 극약인 표정이었다.
물론, 그런 것을 떠나 지금 뉴블랙의 표정이 평소와 다른 건 이상한 건 사실이었다.
‘이 자식들… 꺄르륵을 하지 않고 있어.’
리허설 준비를 하면서 반짝반짝 웃고 있는데 입만 웃고 있다.
보통 저럴 때면 꺄르륵! 하면서 자기들끼리 웃음소리를 내고 꺄하핫 뛰어다녀야 정상인데.
조용히 싱글벙글 웃고만 있다.
그런데 또 눈은 몹시 맑았다.
“자. 그럼 다 같이 동선 한 번 맞춰 보겠습니다!”
비주의 말에 다 같이 답했다.
“네!”
“OK.”
팝시클의 무대를 위해 뉴블랙의 메인댄서가 고안한 안무를 다 함께 연습하는 6인조였다.
아주 간단하고 귀여운 안무인데….
‘각도가 오늘따라 살벌하네.’
칼각을 보여 주는 5인조.
그런 것을 바라보는 동안 헤일리가 동선을 삐끗했다.
“음. 내 실수.”
“…….”
스으으윽.
말없이 방긋방긋 웃으며 조용히 돌아오는 고개에 헤일리가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렸다.
“웁스.”
그녀의 말에 비주가 화사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헤일리.”
“나도 알아. 사람이 실수 좀 할 수 있지.”
“네. 될 때까지 맞추면 되니까요.”
“…….”
그 말에 맞다고 호응하면서 말없이 방싯방싯 웃기 시작하는 뉴블랙 멤버들.
오늘따라 무대 준비에 미쳐 버린 광인들을 바라보며 헤일리 블루가 눈을 깜빡거렸다.
‘이 자식들… 그래미 이후로 눈이 돌아 버렸구나.’
헤일리 블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좋아.’
그래서 그녀도 같이 돌아 버리기로 결정했다.
방긋방긋 웃으며 무대를 준비하는 헤일리 블루와 뉴블랙!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다.’
그걸 지켜보던 스탭들은 오늘 어마어마한 무대가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