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1화
지평선 너머로 석양이 지는 바닷가.
커플들과 가족들이 오순도순 구경할 만큼 낭만적인 광경이 바다에서 펼쳐지고 있을 때.
산타모니카 해변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비켜요!”
“악! 누가 내 발 밟았어!”
“여기 화장실이 어디지?”
그야말로 인산인해!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사람들의 눈앞에 특설된 야외 공연장이 있었다.
그곳에 펄럭이는 현수막.
[Moonlight Parade]
헤일리 블루가 신곡 프로모션을 위해 준비한 특별 공연.
미국 최고의 팝스타가 야외 무료 공연을 연다는 소식에 지금 이곳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저기 뭐 한데?”
“문라이트 퍼레이드? 저건 뭐지? 오늘 뭐 공연 있나?”
“미쳤다! 헤일리 블루래!”
소식을 들은 일반인들까지 꾸역꾸역 밀려들면서 공연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꾸우우욱!
여기저기서 짓쳐드는 어깨들 속에서 뉴블랙의 팬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미친! 뭔 사람이…….’
겨울철인데도 뭉게뭉게 암내와 땀 냄새가 몰려드는 공연장에 미국 수플레들은 기겁을 했다.
사람이 이 정도로 많다니.
그렇다는 건….
‘역시 헤일리 블루인가.’
헤일리 블루라는 이름값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었다.
겨울철에도 초가을 날씨를 자랑하는 LA라지만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다니.
게다가 그냥 일반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흉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가 바로 블루머인가.’
블루머.
헤일리 블루의 팬덤이자 가수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납고 흉폭하기 그지없는 이들이었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이들을 바라보며 수플레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헉!’
흉흉한 기세의 팬들과 눈이 마주친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은 같은 편이에요.’
맞은편에 있는 팬들도 눈이 마주친 수플레들을 바라보며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훈훈한 분위기.
서로 간에 눈빛으로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너네 뭐 하니?’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진짜 헤일리 블루의 팬덤, 블루머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야. 그거 다 너희라고…….’
‘지들끼리 눈 마주치고 헉 하고 자빠졌네.’
‘하긴 다 같은 뉴블랙 팬들인지는 모르겠지. 설마 이걸 다 자기네 팬들이라고 생각하겠어.’
인원이 너무 많아서 설마 이게 다 수플레들일 거라고 생각 못하는 수플레들이었다.
하지만 블루머들의 눈에는 보였다.
뉴블랙이 ‘자! 물어!’ 라고 하면 달려가서 적들을 물어뜯을 광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좋은 쪽으로 엮여서 다행이다.’
단순히 미국에서의 인지도나 커리어로 따지면 헤일리 블루의 압승이다.
뉴블랙은 신인 보이밴드니까.
길에서 행인들을 대상으로 뉴블랙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이런 반응들이 돌아올 것이다.
-뉴블랙이요? 요즘 이름 꽤 들어 봤죠. 유명한 걸로 유명한… 그런 느낌인 것 같던데? 근데 난 몰라요.
-딸이 엄청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인기래요.
-뉴블랙? 오션 파이브 다음으로 뜨는 애들인가? 아… 저번에 추수감사절에서 흑염소 마차 탄 애들이에요?
일반인들에겐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느낌.
메트로를 들어 본 사람은 많아도 그게 뉴블랙의 노래라는 사실까지는 연결이 잘 안 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활동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제 막 미국에 진출한 뉴블랙과 헤일리 블루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크르르륵!”
“크륵!”
……저건 좀 경우가 달랐다.
‘오 마이 갓.’
팬덤계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한 블루머들도 저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게다가 숫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단순히 극성팬들의 숫자를 따지자면 현재 북미에서 저들을 따라갈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북미에서 뉴블랙이 광속으로 입지가 상승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오프라인에서 내 가수 기 세워 주겠다고 수천 명이 결집하는 저 화력 덕분이었다.
메트로 이후로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규모를 불려 가는데… 처음에는 ‘음 신생 팬덤이군’ 하고 귀엽게 보았던 블루머들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젠 우리가 한 줌이네.’
포위망처럼 수플레들 사이에 섬처럼 고립된 블루머들이 서로를 부여안고 덜덜 떨었다.
그런 가운데.
일반인들도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사람들이 뭐가 이렇게 많아…?”
헤일리 블루가 최고의 팝스타인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 나올 수 있는 인원이 아니었다.
뭔가 더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이름을 캐치했다.
“뉴블랙도 있대!”
“뉴블랙?”
“아… 그래서…….”
뉴블랙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팬들이 얼마나 난리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뉴블랙도 보는 건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뉴블랙을 직접 본다는 생각에 일반인들의 가슴이 더 들뜨는 가운데.
저녁 8시.
달이 뜬 하늘 아래 폭죽이 쏘아지면서 누군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What’s up, guys!
푸른 드레스를 차려입은 헤일리 블루였다.
* * *
헤일리 블루가 등장하면서 환호성이 터졌다.
‘와.’
‘진짜 예쁘다.’
‘내가 저 얼굴이면 착하게 살 수 있는데.’
푸르게 염색한 머리카락 아래로 눈망울이 반짝이고, 관능적인 푸른 드레스 위로 따스한 느낌의 망토가 걸쳐져 있었다.
물의 여신이 강림한 듯한 비주얼이었다.
-이야.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은 헤일리가 모래사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며 물었다.
-너희 다 나 보러 온 거야?
“네에에에!”
-뻥 치지 마. 이중에 절반은 뉴블랙 보러 온 거 다 알아.
직설적인 발언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헤일리 블루가 마이크를 쥐고 입을 비죽였다.
-못된 새끼들. 아니라고 말 절대 안 해 주네.
“당신 보러 온 거 맞아요! 헤일리이이이!”
-누구야? 거기 조명 비춰 봐.
모래사장에서 손 모아 함성을 지른 남자에게 조명이 갔다.
그 옆에서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글라스의 여자가 보인다.
-옆에는 여자 친구야?
“네!”
-이따가 존나게 혼나겠군. 아무튼 고마워.
“네, 감사… 커억!”
다시금 터져 나오는 웃음.
능수능란하게 관중들을 휘어잡은 팝스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오늘은 슈퍼 블루 블러드문이 뜨는 밤이야. 어때? 달이 붉어 보여?
“어…….”
“붉은가?”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시아에서는 존나 잘 보이는데 우리한테는 잘 안 보인대. 닥터 피쉬가 그랬어.
“아아아아!”
-그래. 존나게 아쉬운 일이지. 하지만 딱히 아쉬워할 건 없어. 내가 아쉬워하니까 누가 그러더라고.
헤일리 블루가 백스테이지 쪽을 살짝 곁눈질하며 말했다.
-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한 말인데…….
“으아아아아아아아!”
뉴블랙을 암시하는 말에 터져 나오는 수플레들의 비명.
-시발. 내가 말할 때 그 정도로 호응 좀 해 주지. 치사한 새끼들.
“와아아아아아아!”
-됐어. 이제 와서 그런 말로 상처 받은 여자의 마음을 치유하려 들지 마. 고작 그 정도로….
“크와아아아아아아아!”
‘오’ 하며 입매를 살짝 들어 올린 헤일리 블루.
-그 사과 받아들이지.
‘Apology accepted’ 하며 능청맞게 대꾸하는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법을 알고 있는 스타였다.
헤일리 블루가 손가락을 들어 파란 머리카락을 꼬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뉴블래애애애액!”
-그래. 그 이야기 하다 말았지. 내가 우리가 공연할 때 붉은 달이 안 뜬다고 존나게 불평을 했거든. 그러니까 뉴블랙의 우리… 너희 혹시 써니 아니?
“네에에에에!”
-써니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
그녀의 붉은 입술이 누군가의 말을 전했다.
-이 곡이 끝나고 나면 너희 모두 달이 붉어 보일 거라고.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안하다, 써니! 내가 너의 멘트를 훔쳤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뭐 이런 거 아니겠어? 먼저 하는 놈이 장땡이지.
무대 뒤에서 5인조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헤일리 블루가 무대에서 점검을 마친 라이브 밴드 멤버들을 하나씩 소개하고는 손을 뻗었다.
-첫 곡이야.
나긋한 목소리가 서늘한 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블러드 문.
그와 함께 공연장에 어둠이 찾아왔다.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찾아온 어둠.
쏴아아아- 하며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그 적막을 채우고 있을 때.
어렴풋이 보이는 무대 위로 5인조가 올라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귀청이 떨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함성이 감도는 분위기.
츠츠츠츠츠.
드럼 하이햇 소리와 함께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딘가 음산하게 느껴지는 배경음.
‘오 분위기…….’
그러면서 신스 사운드로 메인 멜로디가 가볍게 흘러나왔다.
곧이어 터져 나오는 함성.
‘블루 문이다!’
지금은 블러드 문으로 개사한 블루 문.
한두 번 반복되던 메인 멜로디가 끝나면서 리드미컬한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밝아 오르는 조명!
붉은 조명 아래로 다섯 미남이 헤일리 블루의 곁에 나타나면서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미쳤다.’
‘졸라 잘생겼네…….’
솔직히 이건 얼굴이 다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스듬히 내리쬔 붉은 조명에 멤버들의 얼굴이 그림 같은 음영을 그렸다.
스탠딩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리듬을 타는 뉴블랙.
‘스타일링 미쳤다….’
핸드폰을 든 수플레들이 입가를 틀어막았다.
무도회에 어울릴 법한 정장도 정장이지만, 입가에 살짝 번진 듯한 붉은 립스틱이라든가 짙은 눈화장이라든가. 어딘가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을 잔뜩 풍겨 대고 있는 최애들이었다.
그야말로 붉은 달 아래 광기 어린 분위기.
그동안 복고풍 사운드가 현장을 꽉 채웠다.
“와아아아아아아-!”
일반인들도 방방 뛰며 환호하고 있었다.
16년도 할로윈에 나온 이후로 차트에서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명곡 블루 문.
모두가 가사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한밤중에 달에 올라가
넌 나에게 주문을 걸어
헤일리 블루가 눈을 감은 채 스탠딩 마이크에 입술을 가져다대면서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몽환적인 목소리.
메아리치는 그 목소리에 화답하듯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이 마이크를 잡았다.
가끔씩 마법이 필요할 때가 있지
특히나 이 핏빛 달 아래선
리혁의 목소리에 장내에 환호성이 끓어올랐다.
일반인들도 눈을 크게 떴다.
‘잘한다.’
뉴블랙이 나름 경력이 찬 5년차 가수라는 것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뒤이어 뉴블랙 멤버들의 보컬이 이어지면서 여기저기서 감탄이 나왔다.
‘와. 진짜 잘하네.’
‘노래를… 뭐 엄청 어디서 훈련이라도 하나?’
가창력으로 승부하던 90년대 가수들이 돌아온 느낌이다.
하지만 실력에 대한 감탄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개 부족한 것은 쉽게 인지하지만 충분한 것은 인지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가창력이 너무 뛰어나니 오히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노래에 더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블루 문은 본래 할로윈에 대한 곡이다.
온갖 기이한 존재들이 깨어나는 할로윈의 밤.
흡혈귀, 좀비, 외계인 같은 낯선 존재들이 나와 함께 놀자며 유혹하는 곡이 바로 블루 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블러드 문은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스탠딩 마이크를 쥔 우주가 웃으며 바뀐 가사를 읊조렸다.
여기 내가 있지
넌 내 손을 안 붙잡을 거야?
네가 내 손을 붙잡지 않고 배길 수 있겠냐는 고혹적인 미소.
붉은 달 아래 기이한 존재처럼 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 노래가 끝나고 나면 너희는 우리에게 빠져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이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착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노래가 붉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붉은 조명 때문일지.
아니면 붉은 입술들이 몽환적으로 노래를 불러 대서 그런 걸까.
가사 위로 붉은 꽃잎들이 하나둘 차곡차곡 쌓여서 꽃 무덤을 만드는 기분.
[너희는 우릴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런 속삭임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기분에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팔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노래에 몰입하다 보니 사방에 붉게 물드는 기분이다.
붉은 조명에 물드는 바다.
마지막 부근에 이르러서는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
블러드 문의 근사하기 짝이 없는 멜로디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우와- 하는 탄성만 지를 때.
I’m your blood moon
So love me right
난 너의 붉은 달이야.
지금 당장 날 사랑해 줘.
혹은, 날 제대로 사랑해 줘.
마지막 소절을 끝낸 뉴블랙의 리드보컬이 살짝 눈을 뜨면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를 즐기듯 웃던 뉴블랙의 리드보컬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음?”
조명에 눈이 적응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달밤에 이 몽환적이고 달콤한 노래를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붉다.’
순간적으로 달이 잠깐 붉게 보이는 대중들이었다.
‘달이 붉게 보일 거라는 내 말 맞지?’ 하듯 자신만만하게 웃는 뉴블랙 멤버들에게 대중들이 매료될 때.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다시 조명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동안.
안 그래도 명곡으로 꼽히는 블루 문의 훌륭한 무대에 대중들이 감흥에 젖어 있을 때였다.
-보고 있냐. 그래미?
헤일리 블루가 씩 웃었다.
-이건 베스트 팝으로 끝날 노래가 아니야. 올해의 노래상(Song of the Year) 부문에 올랐어야 할 노래였다고.
대중들은 환호성으로 그에 긍정했다.
* * *
블루 문을 편곡한 블러드 문.
우리가 피처링해 준 헤일리 블루의 ‘Popsicle!’ 공연까지.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진행했던 스페셜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를 지었다.
공연 반응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튜브에 공연 영상이 올라온 이후로 블루 문이 차트에서 역주행을 한 걸 봐선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그리웠던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주 씨!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을 실패하셨는데 그 소감이 어떤지….”
“그래미에 재도전할 생각인가요?!”
왠지 모르게 기자들이 신난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아니면 진짜로 신이 나서 그런 걸까.
노미니로 그친 우리의 수상실적이 누군가들에겐 몹시 기쁜 듯 보였다.
-그래미 위너 되나 했던 뉴블랙.. ‘안타깝게도 loser’
-우주, 그래미 소감 질문에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년 도전 질문엔 묵묵부답
-뉴블랙, ‘그래미 패싱’ 논란?
키보드 자판을 신명나게 쳤을 것 같은 제목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물론 오래는 가지 못했다.
그래미 수상 실패! 하면서 막 신이 나서 떠들어 대려고 하는데, 댓글 민심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신낫네 시펄새끼들
-이야ㅋㅋㅋㅋㅋ 매국노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새기들
-신났네 아주
-미국에선 헤일리 블루 공연 영상 뜨고 나서 블루 문이 왜 본상 후보에 안 들엇냐고 난리던데
-백인 음악들 빼고 전부 노미니 물먹었는디ㅋㅋㅋㅋㅋ 그것 때문에 지금 논란 장난 아님
-K레기들은 그런 거 모름
-ㄹㅇ 분위기 좆창내는데 일가견이 잇음
-이런 기사 쓰면 사람들이 동의하면서 뉴블랙 미국 진출 허상이네 뭐네 할 거 같았나요? 정신 차리세요.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이딴 기사 쓰고 다니는 거 댁네 부모님은 아시는지.. 천벌 받을 거예요
-김벽두 이름 기억했다,, 호로자슥
-와 댓글 맵다 매워ㅋㅋㅋㅋㅋ
-댓글 성별이랑 연령비율 봐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골고루 있네
남 욕은 좋아해도 자기 욕은 싫어하는 것이 사람 특징 아니던가.
곧이어 스르륵 사라지는 기사들과 함께 대중들의 구미에 맞는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뉴블랙, 별들의 잔치 그래미에서 빛났다
사실 뭐 가서 별로 한 게 없긴 한데…….
아무튼 정말 온갖 기사들이 올라왔다.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9시 뉴스에도 소식이 나오고, 일상 속에서 우리 그래미 이야기가 화제였던 모양이다.
그것 때문일까.
“…….”
“…….”
홍보팀에서 건네준 거대한 편지 상자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비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뭐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편지 보내 주셨대. 상 같은 거 연연하지 말고… 몸 건강히 살면 된다고.”
지금 내 고향을 통해서 형성된 우리의 어르신 팬덤 ‘송편’이 열렬히 편지를 보내 주고 있었다.
삐뚤삐뚤한 한글로 응원 메시지들이 잔뜩 적혀 있다.
중현이가 그중 하나를 읽었다.
“상 못 받아도 돼야~ 내가 오래 살아봉게 상은 중요한 게 아녀. 오래 사는 놈이 이기는 겨.”
몸 성히 오래 사는 게 최고라는 말을 보내 주신 80대 할머님이었다.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해야 다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르신들의 말마따나 건강하게 일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최고였다.
“건강하게. 참 중요한 말이지.”
그래서 정규 앨범 준비를 앞두고 열심히 건강하게 일을 하는 중이었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그렇게 작업을 해 나가는데…….
“음?”
멀찍이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졸개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건강한 생활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활짝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바라봐?”
“…….”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졸개들이 수상한 표정으로 작업실을 나섰다.
왜들 저러지?
* * *
TF팀 사무실.
윤석환 팀장이 음료를 내오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선우주를 뺀 4인방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심각한 병아리 같은 표정.
‘무슨 문제가 있나?’
수상을 아쉽게 못 하긴 했지만 그래미에도 잘 다녀왔고.
헤일리 블루와의 공연도 잘했고.
딱히 뭔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주 형이….”
지호가 입을 열었다.
“우주 형이 미친 거 같아요, 팀장님!”
“…….”
윤석환이 잠시 멈칫했다.
선우주.
광기.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키워드 아니던가.
“걔는 늘 미쳐 있지 않았니?”
“아뇨.”
비주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뭔가 달라요. 팀장님. 그래미 다녀온 후로 우주 형이 진짜 좀 이상해졌어요.”
“……?”
뜬금없는 이야기에 윤석환이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