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2화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네. 팀장님.”
“우주가 좀 많이 이상해졌다는 거지?”
윤석환의 말에 4블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살짝 이해가 안 가는 건 똑같았다.
소금물에 소금을 더 타 봐야 소금물 아니던가. 선우주에 이상함을 한 스푼 추가해도 선우주였다.
하지만.
“우주 형. 진짜 이상해요.”
뉴블랙에서 이상함을 담당하고 있는 김중현까지 그런 말을 하니 허투루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래.”
윤석환이 깍지를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무슨 일인지 한번 이야기나 들어 보자.”
“네.”
고개를 끄덕이던 형들이 동생에게 시선을 건넸다.
목청을 가다듬는 막내.
“음흠흠.”
곧이어 과거 동화구연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막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그날 아침.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 날을 맞이하여 멤버들이 저마다 새벽에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연습… 해야 돼…….’
그들이 미국에서 띵가띵가 스케줄을 하는 동안 경쟁자들은 밤을 새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터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경쟁자 생각만 하면 잠이 번쩍 깼다.
“으어어… 나 죽는다.”
“얼른 아침밥 먹어서 시차 교정해야 돼요.”
“밥…….”
전날 비주가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동안 멤버들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우주 형은?”
“밤 새다가 잔 거 아니에요?”
평소처럼 밤 새다가 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내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예전처럼 밤을 못 샐 텐데?’
밤을 새면 동생들이 말을 안 걸어 준다는 페널티 때문에 밤을 못 새고 있는 리더였다.
그렇기에 지금쯤 밖으로 나와서 기지개를 켜야 정상인데.
“혹시….”
걱정을 담당하던 리혁이 침을 삼켰다.
“자다가 어디 이상이라도 생긴 거 아니에요? 그 정도면 어디가 탈 나도 진즉에 탈이 났을 과로예요.”
“…….”
“…….”
숟가락을 내려놓은 졸개들이 호다닥 2층으로 올라갔다.
구석진 곳에 있는 리더의 방.
온갖 악기들과 악보가 산더미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는 방에 도착한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음?”
안대를 쓰고 공주님처럼 누워 있는 리더였다.
동서남북.
가습기 4대에서 습기가 뿜어져 나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광이 도는 물광 피부.
어디선가 잠에 좋은 ASMR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심지어 자고 있는 자세도 두 손을 고이 포개고 있다.
수면 전문가가 본다면 ‘그렇죠! 이거입니다! 현대인 분들!’ 하며 외칠 법한 바른 수면 자세였다.
“우주 형?”
“안녕. 얘들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소름이 끼쳤다.
곧이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는 우주.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 때문인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일어난 것 같다.
그리고 안대를 벗은 우주는…….
‘세상에. 피부 촉촉한 거 봐.’
‘건강하다.’
그야말로 온몸에서 건강을 뽐내고 있었다.
왈칵 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비주는 왠지 모르게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선우주의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지나치게 건강해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 평소와 다르다.
“음?”
중현이 물었다.
“형, 지금 잠옷 입고 있어요?”
“응.”
우주가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맨날 티셔츠에 추리닝 바람으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리더가 고이 잠옷을 입고 바른 자세로 잠을 잤다.
“너희가 저번에 사 준 잠옷이야. 꽃무늬 너무 싫어하길래 이걸로 입었지.”
“아…….”
그러더니 리모컨을 들어 오디오를 재생한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이 흘러나오면서 선우주가 그림 같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몸을 구부린 채 어으으 하던 과거의 선우주와 전혀 다른 모습.
“조금 갑작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 건강하게 살기로 결심했어.”
“…….”
“이번에 그래미 다녀오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앞으로 꽤 장기전이 될 텐데 그러려면 건강하게 생활을 해야겠다. 길게 봐야 하는데 벌써부터 지치면 안 되잖아?”
“그, 그렇죠…….”
다 맞는 말투성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이 늘 하던 말이었다.
-우주 형. 건강을 먼저 생각해요.
-쓰러진 다음에 상 받아 봐야 무슨 소용이에요?
-지금이야 젊으니까 위염으로 끝나는 거지, 이제 조금 있으면 다른 걸로 쓰러질 수도 있다고요.
미국에서 위염으로 쓰러진 뒤로 항상 주장했던 이야기.
그럼에도 리더는 듣는 둥 마는 둥 일에 열을 올렸다.
낚시 예능에 다녀온 뒤로 뭔가 득도한 사람처럼 ‘건강하게 살아야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만, 일과 시간에는 진짜 몸을 갈아댄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과로하던 선우주였다.
그랬기에 그 이야기를 반겨야 정상인데…….
‘뭔가 이상해.’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호가 앞으로 나섰다.
“누구야. 당신.”
“응?”
“당장 내 선우주를 돌려내… 아앗!”
등짝을 한 대 맞은 막내가 아얏 하면서 기뻐하고, 다른 멤버들도 그 모습에 반색했다.
으휴 하며 막내를 구박하는 리더.
‘평소랑 똑같구나!’
갑자기 건강해진다 뭔다 하지만 평소랑 똑같은 선우주였다.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되면서 그들은 또다시 이상함을 느꼈다.
“샐러드?”
“갑자기 샐러드는 왜 먹어요. 형?”
고기량 야채가 있으면 고기만 쏘옥 골라먹던 맏형이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야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우주.
“야채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어. 야채야. 건강해지렴.”
“……!”
유사과학에 분노한 리혁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손을 들어 막은 비주가 물었다.
“샐러드… 먹는 거예요?”
“응. 건강해져야 하니까. 섬유질도 풍부하게 섭취해야 작곡에 도움이 될 테니까.”
우주가 건강한 미소를 지었다.
“…….”
“…….”
조금 낯선 장면들이긴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맏형이 건강하게 살겠다는데 동생들로서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각자 레슨을 마치고 작업실에 도착한 그들은 어딘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해 버렸다.
띠용- 띵- 띠리리링-
인도 음악이 들려오는 작업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앉은 선우주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된 표정으로 명상 중이었다.
중현이 오오 하며 감격하는 가운데 비주가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형…?”
“아.”
우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건강한 작업을 위해 명상을 하는 중이야.”
“…….”
“…….”
그제야 졸개들은 그동안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건강에… 집착하고 있어…!’
* * *
“…….”
이야기를 다 들은 윤석환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건강한 사람의 삶이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거 외에 평소랑 다른 점이 있어? 말투가 바뀌었다거나.”
“아뇨. 그건 똑같은데.”
뭐가 문제냐는 말에 다들 우물쭈물 할 때.
지호가 형들에게 말했다.
“형들, 이럴 게 아니라 팀장님한테 우주 형 모습을 보여 줘야 돼요. 백 명이 불여우를 이긴다. 멀리서 불여우를 지켜봐야 소용이 없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지….’
우주의 건강보다 너의 상식이 더 걱정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윤석환이 웃었다.
“그래. 한 번 보자.”
“네.”
2층 작업실로 그를 데려가는 4블랙.
‘뭐가 문제라고.’
그런 생각을 하며 웃던 윤석환이 유리문 앞에 섰을 때였다.
“저, 저기! 지금 저기 봐봐요. 팀장님.”
“음?”
“저기 우주 형이요.”
윤석환의 모습에 선우주가 보였다.
‘저울?’
작업실 테이블에 저울을 세워두고 무언가 하나씩 올려 가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뭔가를 계량하는 듯한 동작.
저울 위에 뭘 올려놓은 건가 하고 윤석환이 고개를 움직이자, 곧바로 테이블에 놓인 통들이 보인다.
족히 수십 개는 되는 영양제 통.
“…….”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영양제를 계량하는 이를 바라보며 윤석환이 눈을 깜빡거렸다.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네.”
“그죠?”
“응….”
그래미의 충격이 컸는지 평소보다 더 이상해져 있는 선우주였다.
중현이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하죠. 팀장님?”
“어떻게 하기는. 너네 쟤 고집 못 말린다. 할머님이 와도 못 말리는 게 쟤 고집인데.”
10년 가까이 선우주를 보아 온 인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깨달을 때까지 내버려 둬야 돼.”
* * *
소곤소곤.
속닥속닥.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졸개들이 내게 회의 결과를 통보했다.
“축하해요. 형.”
“응?”
“오늘부로 제3차 비주 협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했어요.”
“허어어!”
밤샘 작업을 여러 차례 하거나 건강을 해칠 경우에 페널티를 준다는 제3차 비주 협약.
그 악법이 마침내 폐지되는 순간이었다.
비주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밤 새도 돼요.”
“근데 난 이제 밤 샐 생각 없는걸.”
“…….”
뭔가를 기대했는지 비주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또 뭐라고 자기들끼리 막 회의를 하는데 나는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건강하게 살겠다고 선언한 뒤로 졸개들이 갑자기 어떻게든 나를 과로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열심히 일할 때는 일 좀 그만하라더니.”
“그건 경우가 다르죠.”
리혁이가 지적했다.
“지금처럼 건강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걸 원하는 건 아니었단 말이에요. 적당히 하는 걸 원했던 거지. 사람이 하여간 중간이 없어.”
“원래 그런 이야기 좀 많이 들어. 하핫.”
“칭찬 아니라고오오!”
“리혁이 형, 참아여. 참아. 저 형이 철이 없어여.”
막내가 리혁이를 달래 주고 있는 동안 나는 작업실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소리의 볼륨을 줄였다.
오늘은 금요일.
종편채널 IBC에서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의 거제도 편이 끝나고 태국 특집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모니터링을 위해 틀었는데, 아직 시작하려면 한참 남은 까닭에 금토 드라마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사기꾼들끼리 누가 최고의 사기꾼인지를 가리는 내용의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달을 때.
“자자.”
나는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회의하게 모여 봐.”
“네.”
오늘 회의 주제는 바로 정규 앨범의 컨셉 회의였다.
“우선 타이틀곡은 우리가 저번에 뼈대를 만들었잖아? 김덕순 여사 집에서 잠이 안 올 때 말이야.”
“기억나요.”
유난히도 다들 밤에 잠이 안 왔던 그날 밤.
잠이 안 오는 불면증을 주제로 내가 만들었던 곡이었다.
그런 까닭에 현재 임시로 붙인 곡명도 바로 불면증을 뜻하는 ‘Insomnia’였다.
지호가 물었다.
“곡에 제목은 붙였어요. 형?”
“아니. 아직.”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컨셉이 안 정해져서 그런지 곡명을 뭐라고 정해야 할지 감이 안 오더라. 이게 이미지가 명확히 안 그려져서.”
중현이가 손을 들었다.
“일단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좋아.”
곧이어 노트북으로 노래를 재생했다.
불면증을 주제로 한 곡이 펑크 락 사운드로 흘러나왔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흔히 접했던 2000년대 초반의 틴 팝스타들이 불러 대던 그런 분위기의 곡.
차이점이라면 내가 쓴 곡은 2010년대에 어울리는 레트로나 다른 사운드가 들어갔다는 점 정도.
복고풍이 대세로 접어드는 전 세계 가요계 상황에서 2000년대 초반의 펑크 음악은 좋은 레퍼런스였다.
“다시 들어도 좋다….”
“진짜 좋네요. 솔직히 우주선이 인성으로는 까여도 얼굴이랑 곡으로는 안 까이잖아요.”
“진짜 저 파트 너무 좋다.”
동생들은 막 좋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수정할 것들이 좀 많았다.
한두 번 들을 때는 이야 명곡이다 하면서 듣는데, 수십 번 반복해서 들을 수는 없는 노래였다.
언제 들어도 안 질리는 노래를 목표로 하는 나에겐 아쉬울 따름.
어쨌거나.
그런 수정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노래 자체의 방향성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의 출발은 우리 엄마니까.
-엄마 손 꼭 잡고 자자. 우리 아가.
어린 시절에 남아 있는 어렴풋한 엄마의 목소리.
최근 들어 겪었던 불면증과 엄마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
-잘 자.
동생들이 내게 자꾸 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안다.
사랑하는 사람이 푹 자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으니까.
그러하기에 METRO부터 준비하고 있는 우리의 앨범 방향성과 잘 맞았다.
불꽃놀이부터 시작된 6부작은 ‘너’와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
Empire와 도깨비, Coin은 그런 ‘너와 나’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
METRO부터 시작되는 건 ‘나’에 대한 이야기.
메트로의 컨셉이나 뮤비부터가 열차를 타고 ‘나’라는 이름의 미로로 들어가는 내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곡의 메시지는 참 좋았다.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나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한마디는 바로 잘 자라는 말 아닐까.
물론 여기서 곡의 아이디어 빌딩이 끝난 건 아니었다.
막내가 그런 의견을 제시했으니까.
-그런데 형, 그냥 잘 자라고만 하는 건 너무 막연하지 않아요? 뭔가 좀 심심하기두 하고.
마냥 굿 나잇~ 하는 건 타이틀곡으로는 애매했다.
수록곡으로 싣는다면 모를까.
타이틀답게 항상 신나고 즐거운 음악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2% 아쉬운 느낌.
-근데 결국에 불면증이라는 것도 걱정 때문에 오는 거잖아요. 우리 경우에는.
-그치.
-진짜 나중에 생각하면 별것 아닌 걱정투성이잖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걱정해 봐야 소용없는 것들도 있고. 근데 그런 것 때문에 우리가 잠을 못 자는 거니까….
지호가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가끔 그런 걱정거리들이 실체가 있으면 막 파리채 같은 걸로 때려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를 괴롭히는 걱정이나 근심들.
그런 게 실체가 있다면 모아 놓고 활활 불태우고 싶다는 말에 우리 모두 공감했다.
그리고 좋은 방향이기도 했다.
덕분에 ‘걱정 따위 불태워 버리자’ 하는 신나는 분위기의 곡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까.
“자.”
곡이 끝나고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제부터 아무거나 막 던져 봐. 컨셉에 관해서 떠오르는 거 아무거나 다 좋으니까. 브레인스토밍 좀 하자.”
“일단….”
리혁이가 입을 열었다.
“컨셉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배경은 가상세계였으면 좋겠어요.”
“왜?”
“뮤비에서 막 걱정거리를 불태우고 그럴 거 아니에요? 현실 세계에서 방화를 연상시키는 뮤비를 찍는 건 좀.”
“……일리가 있네.”
“그죠?”
회의록 담당인 리혁이가 바탕체로 문서 파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비주가 말했다.
“저는 메시지를 조금 더 손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어떻게?”
“조금 더 진정성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형도 불면증이 좀… 있었을 때, 누가 와서 그냥 ‘잘 자’ 하면 안 와닿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는다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
“음… 표현이 어려운데 좀 더 메시지가 와닿았으면 좋겠어요.”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푹 자!’ 라고 하는 메시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일리 있는 의견이라 공감했다.
그러는 동안 동생들이 내는 의견에 리액션을 열심히 했다.
“그거 괜찮네.”
“리혁이 방금 의견 좋았어. 그래. 또 다른 건?”
“지호는? 할 말 있어 보이는데… 응응,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여도 괜찮으니까 아무거나 말해 봐.”
브레인스토밍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절대 태클을 걸지 않는 것.
그 때문에 진짜 막장이라고 생각할 만한 아이디어들도 나오지만, 그중에 보석들도 적지 않다.
중현이가 말했다.
“배경을 꿈속으로 바꿔 보는 건 어떨까요? 꿈속에서는 걱정 같은 거 절대 안 하잖아요.”
“꿈속에서 걱정을 안 해?”
“네.”
“신기하네.”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현이 앞에서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우린 꿈속에서도 걱정하거든. 날 평양으로 납치하려는 돼지들한테 쫓긴 적도 있어.”
“난 수플레들한테 쫓기는 꿈 꾸고 그래요.”
“전 체하면 꿈 잘 꿔요. 전국의 닭들이 막 회초리 들고 저랑 아빠를 막 때리면서….”
꿈속에서 괴롭게 도망친다는 우리의 말에 중현이가 도리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꿈속에서도 걱정하고 있다니까. 제일 부질없는 걱정들인데…….”
잉어에게 쫓긴다거나 무인도에 떨어진다거나.
저번에는 행보관님을 연습생 시절 댄스 트레이너로 만나는 꿈도 있었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말도 안 되는 꿈들인데, 막상 꿈을 꾸면 그게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하던 중현이가 말했다.
“결국에 배경은 문제가 아닌 거네요.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한 거지.”
“응?”
“방금 이야기한 꿈 말이에요. 꿈에서 걱정하는 것도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의 특징인 거잖아요. 결국에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 아닌가 싶어서요.”
“…….”
저번에도 낚시할 때 철학책 읽고 그러더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우리 래퍼의 모습에 다 같이 감탄할 뿐이었다.
고민하던 중현이가 말을 이었다.
“아까 김비주가 말했던 것까지 고려해서 그런 쪽으로 메시지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그냥 막연하게 잘 자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가를요. 잠이 안 올 때의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그 말이 끝나고, 다들 고민에 빠지며 적막이 감돌았다.
과거에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나에게 해 줄 말이라면….
“건강한 사람이 되어라?”
“…….”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고개를 획 돌려서 째려보는 졸개들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 다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곤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 건 있지.”
“어떤 거요?”
“이런 걱정거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그런 건 있어. 주변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이 좀 자유로워지는….”
동생들이 공감했다.
쇠사슬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걱정이나 부담, 주변의 시선을 떨쳐 내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기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걱정 같은 건 안 하고 살지 않을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어?”
막내가 벌떡 일어났다.
“형들, 형들!”
“응?”
“저 좋은 생각 났어요. 우리 이번에 컨셉 뭐 해야 될지, 제가 지금 완벽하게 감을 잡은 거 같아요.”
“그래?”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막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그러더니 A4 용지에다 뭔가를 슥슥 그리며 말했다.
“아까 리혁이 형이 그랬잖아요. 기왕이면 배경이 가상세계이면 좋을 거라고.”
“그랬지.”
“그리고 중현이 형이 해 준 얘기에서 형도 방금 그랬잖아요. 우리가 좀 그런 사회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면 좋겠다고.”
“응.”
“마침 가상세계가 배경이면서, 자기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컨셉이 떠올랐어요.”
막내가 그림을 보여 주며 말했다.
요괴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그림이었다.
“만화 속 악당 어때요? 막 그 미국 만화책에 나오는 빌런 같은 거요.”
“오.”
“만화 속 빌런들 보면 근심 걱정이 없잖아요. 뭐, 빌런마다 종류가 다르긴 한데 그중에서 내키는 대로 사는 빌런들 있잖아요.”
키치하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뽑기도 좋고, 동생들의 비주얼을 강조하기에도 꽤 나쁘지 않다.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라서 다들 눈을 크게 떴다.
“괜찮은데.”
“그죠?”
“응. 진짜 괜찮다.”
그리고 막내가 방금 슥슥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 괴물은 뭐야?”
“아. 이거요?”
꽃 머리띠를 쓴 요괴가 영양제를 먹으며 피아노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그림.
막내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거 형인뎅.”
“…….”
“아아아악!”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