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27화 (82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7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희 뉴블랙이 오랜만에 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저희가 얼마 만에 출연을 했죠?"

내가 질문을 던지자 리혁이가 받아 주었다.

"거의 1년 만이죠. 저희가 도깨비로 고별무대를 했으니까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PBS <지금 내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애청하는 TV 프로이자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농어촌을 비롯해 각 지역을 돌면서 전국의 고장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며 구수한 사람 냄새를 풍기는 프로그램.

그리고.

우리에게 '국민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안착시켜 준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내 고향 시청자 여러분! 뉴블랙입니다!

우리의 첫 출연은 2년 전인 2016년 초.

한창 <겨울잠>으로 소극장 투어를 돌 때, 각 지역에 우리 이름을 홍보하기 위해 출연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특별 코너로 출연을 하다가 매 주마다 있는 '지역 알리미' 코너에 고정으로 들어갔다. 각 지역의 특별한 축제와 행사를 알리고, 태풍이나 장마에 대한 소식을 알리는 식으로.

처음에는 한 달만 출연하고 그만둘 계획이었다.

다만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좋아해 주시기도 했고, 뭔가 의리를 지키자는 마음으로 출연을 이어 갔는데…….

-핫핫핫!

-젊은이들이 수플레라면 우리는 송편일세.

-노블랙이들아! 힘내라!

정신을 차려 보니 어르신 팬덤이 생겨 있는 것도 모자라….

-우주야!

-저 중에선 중현이가 제일 잘생겼지. 농사 잘 짓게 생겼어.

-지호 저건 언제 철이 들라나 몰라.

60대 이상 어르신들도 멤버 이름을 아는 아이돌이 되어 버렸다.

-'국민 아이돌' 뉴블랙.. 인기 비결에 전문가들 "내 고향 출연이 신의 한 수"

-[리뷰] '명곡단부터 지금 내 고향까지'.. 뉴블랙은 어떻게 대중 밀착형 아이돌이 되었나

-100인의 전문가에게 묻고 답하다 "보이그룹 대중성 없다는 것도 옛말.. 다시 돌아온 국민 아이돌의 시대"

그렇게 프로그램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덕분에, 우리의 후임자로 들어온 것도 원탑 걸그룹인 세레니티였다.

프로그램 PD님 말에 따르면 벌써부터 세레니티 후임자로 들어오고 싶다고 요청한 아이돌 팀만 10팀이라나.

지금도 제2의 뉴블랙이 되겠다며 종종 아이돌들이 출연한다고 들었다.

아무튼, 그 정도로 우리와 연이 깊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랬기에 PD님도 우리가 이번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흔쾌히 요청을 들어주었다.

-뉴블랙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개막식에 온 게 아닌 척하려는 핑계도 있지만, 사실 몰래 올 수 있는 방법이야 많다.

그냥 재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뿐.

최근에 출연했던 여보낚시와 더불어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중장년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다들 오랜만에 출연한 소감이 어떠세요?"

MC처럼 멤버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저마다 다양한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중에서 행복한 얼굴로 눈물까지 흘릴 기세인 인물이 있었으니…….

"저 너무 행복해요."

바로 농촌 출신으로 내 고향의 열혈 애청자였던 우리 래퍼였다.

"내 고향에서 하차할 때만 해도 정말 눈물이 나고 그랬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니 너무 기쁘네요. 아부지, 엄마. 저 TV 나왔어요."

TV를 향해 곰발바닥처럼 손을 흔드는 동생의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동생들과 함께 손을 모았다.

"평창 올림픽 개최 기념! 평창 특집!"

"뉴블랙이 함께 합니다!"

자 다 같이! 하면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며 모은 손을 들었다.

"평창! 평창!"

"화이팅!"

박수 소리와 함께 화이팅을 하며 손을 허공으로 들었다.

하늘에 떠오른 드론이 부우웅 하고 멀어졌다.

아마 오프닝 화면으로 쭈우욱 멀어지면서 [뉴블랙이 돌아왔다] 하는 타이틀이 깔릴 만한 장면이었다.

"자자! 장소 이동하겠습니다!"

"비켜 주세요! 이동하겠습니다!"

촬영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우리도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채 촬영을 이어 갔다.

이곳은 평창의 명물인 메밀 음식 거리.

리혁이가 설명했다.

"여기가 바로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의 배경이거든요. 소설 배경으로 나오는 봉평이 바로 평창이에요."

"그래서 메밀 음식 거리가 있구나."

막내가 손가락질을 했다.

"형들! 저기 젓가락이 메밀을 들고 있는 동상이 있어요!"

"오오오!"

거대한 손이 젓가락으로 국수 가락을 들고 있는 동상 앞에서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었다.

'두메산골', '메밀부침 전문점' 등의 간판이 가득 붙은 메밀 음식 거리.

"우리 가게로 오셔!"

"아이고! 우리 아들들!"

소식을 들은 가게 사장님들이 호객 행위를 하면서 옷깃을 잡아끄는 한편.

제작진이 섭외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머! 어머… 진짜 뽀얗다……."

"리혁이 봐봐. 애기 같어."

이 정도로 못되게 생긴 애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리혁이의 피부가 좋다는 말에는 공감했다.

사장님이 물수건을 고이 세팅해 주는 동안 우리가 메뉴판을 살폈다.

"뭐뭐 시켜야 되지?"

"이럴 때 해야 되는 말을 알고 있어요."

비주가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주문했다.

"저기 끝에서부터 저기 끝까지 다 주세요."

"그런 해결책이…!"

핫핫 웃던 사장님이 바로 메뉴를 준비해 주었다.

메밀전병.

메밀 비빔국수.

감자만두.

메밀 묵사발 등등.

곧이어 살얼음 가득한 물국수가 나오면서 동생들과 내가 뺨에 손을 올리고 비명을 질렀다.

"맛있겠다…!"

"대박."

맛난 음식을 보니 절로 우애가 피어났다.

살얼음이 끼어 있는 새콤새콤한 육수를 한 모금 들이켜니 절로 침샘에 침이 고이는 기분.

이 사이로 살얼음이 샤악 스쳐 가는데 참으로 꿀맛이었다.

"허허허허허허."

"어허허헛, 좋네요."

벌건 국물을 묻힌 막내의 입가를 비주가 부드럽게 톡톡 닦아 주는 동안, 주변 손님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뉴블랙이들!"

아침부터 막걸리 한 잔을 하셨는지 코가 벌게진 중년 남자 분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러더니 날 보고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우주 개막식 때문에 같이 딸려 왔구나. 우리 쫄따구들도 같이!"

"흐하하!"

쫄따구란 말에 졸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개막식이라니요. 아버님."

내가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개막식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주도 보면 거짓말할 때 표정이 있더라."

"정말요?"

"아니 없어. 내가 함정을 판 것이지."

"……."

그러고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안 하는 거 보니까 진짜 나오나 보네."

"아닙니다. 전 나오지 않아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아무도 안 믿어 주는 분위기였다.

"이 자리에서 다시 선언합니다. 저 우주선은 올림픽 개막식에 출연하지 않습니다."

"그럼 주선이 말고 선우주는?"

"……."

"흐하하하! 개막식 잘하고 와라, 우주야~"

시선을 회피하며 메밀국수만 쪼르릅 들이켜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쏟아진다.

사장님이 서비스라며 평창의 명물이라는 감자떡을 내어 오실 때.

"어……."

카메라 뒤에 있던 조연출 분이 쭈뼛하며 소곤거렸다.

"저 뉴블랙 분들."

"네?"

"혹시 면 먹을 때 후루룹 하면서 드실 수 있나요? 화면에 담길 때는 그게 더 나을 거 같아서요."

방송용으로 오디오 넣기 좋게 소리를 내달라는 부탁이었다.

리혁이가 되물었다.

"조용히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어르신들이 보는 프로그램에는 이게 더 나을 거 같아서요."

"아. 그렇겠네요…."

조연출도 이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노년 시청자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밥 먹을 땐 후루루 짭짭을 안 하는 게 기본 예절 아니겠는가.

주변 어른들에게 '저희가 소리를 내면 더 맛있어 보이나요?' 라고 물어볼까 생각했는데, 방금 우리에게 요청한 조연출 PD에게 돌려서 면박을 주는 것 같아서 안 하기로 했다.

"아. 진짜 맛있게 먹었다."

"형들, 저 배 너무 불러요…."

메밀로 수북해진 배를 쓰담쓰담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 손님이 말했다.

"어이구. 그렇게 많이 먹어서 이따가 밥은 또 먹을 수 있겠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우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주변 어른들 말대로 배가 엄청 부르긴 했지만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국수 먹은 배는 금방 꺼지거든요."

"아. 그건 맞지."

"그리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금방 꺼지거든요."

동생들과 함께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꺼낸 우리의 모습에 손님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후후 웃으며 말했다.

"신청곡 받습니다. 여러분."

곧이어 가게에 있는 모든 손님들의 손이 올라갔다.

* * *

메밀 음식 거리를 시작으로 제작진과 우리는 평창군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여기가 바로 발왕산 케이블카…!"

"비주야. 우리 높은 데 다녀올게!"

평창군에서 최근에 관광 상품으로 밀고 있는 발왕산 케이블카도 홍보해 주고.

근처에 있는 눈썰매장과 더불어 이번 달 말까지 계속된다는 송어 축제에도 방문했다.

빙판 위에서 얼음 구멍 아래로 줄을 늘어뜨린 사람들이 가득한 곳.

그리고.

"우주야!"

최근에 여보낚시가 얼마나 파급력이 있었는지 느낀 곳이기도 했다.

나를 둘러싼 중년 아저씨들.

"우주야, 요거, 요거 좀 쥐어 봐봐라."

"이거요?"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다란 나뭇가지까지 내미시는 분들.

골프 스윙을 가르쳐 주듯이 내 근처에 선 중년 아저씨들이 조언을 했다.

"저번에 보니까 낚시할 때 자세가 안 좋더만. 그래서 물고기가 잘 안 낚이는 거야."

"릴링 자세도 고쳐야 돼."

"이게 자세가 안정적이어야 물고기를 낚는다니까. 그러니까 물고기도 못 낚고 갈매기만 낚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반박도 못하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친근하게 다가와서 낚시 자세를 고쳐 주었다.

분명히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 낚시꾼들을 보고 따라 한 건데, 아저씨들이 보기엔 미흡한 모양이었다.

"억울하네요. 제가 얼마나 낚시를 잘하는데…. 솔직히 제가 여기서 물고기 제일 큰 거 낚았을걸요."

그 말에 자극을 받은 중년 남자들이 저마다 핸드폰을 들기 시작했다.

노안이 온 이들이 핸드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려서 사진첩을 뒤적이면서 저마다 최고 대물을 보여 주는 가운데.

"하하하하하!"

내가 웃음을 터뜨리며 돛새치 사진을 보여 주었다.

3미터가량 되는 마이 프레셔스 돛새치.

하지만 반응은 좋지 못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중년 아저씨 한 분이 패딩을 입은 내 등을 퉁 쳤다.

굉장히 슬픈 표정이라 내가 당황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방송을 예고해 버리면 어떡해!"

"네?"

"아이고! 이러면 방송이 재미가 없는데…! 내가 이거 보려고 인터넷도 안 보고 있었는데…!"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영화 스포를 한 것처럼 대역죄인 취급하는 모습에 그저 억울했다.

여보낚시가 얼마나 중년층에게 인기가 있는지 새삼 실감할 뿐.

스포일러를 당했다고 슬퍼하던 아저씨의 모습에 웃던 다른 이들에게 내게 물었다.

"근데 우주는 오늘 송어 낚시 안 하니?"

"네."

"하긴… 개막식에서 피아노 치려면 손을 쉬어 둬야지."

"개막식이라니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다들 훈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서 있던 리혁이에게 속삭였다.

"나 그렇게 티가 나?"

"티가 좀 나긴 하죠. 지금쯤 요술 부리듯이 물고기를 낚고 있어야 하는데, 장갑을 두 겹이나 끼고 있으니까."

"……."

"한 겹으로 바꾼다고 티가 안 나는 거 아니에요. 그냥 끼고 있어요."

내일 개막식을 위해 손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내 모습이 꽤 티가 났던 모양이다.

하긴.

지금도 뭐만 집으려고 하면 5분 대기조처럼 졸개들이 내 손을 대신해 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뭐 시킬 거 있으면 우리가 다 해 줄 테니까."

"그럼 나 코 긁어 줘."

리혁이가 손을 들어서 내 코를 살살살살….

"더 간지러운데?"

"그러라고 한 거예요."

"야!"

"그럼 난 송어 낚시를 하러 이만."

얄밉게 웃으며 도망치는 메인보컬을 보며 혀를 찼다.

곳곳의 구멍에서 줄을 늘어뜨린 채 손을 들었다 놨다 하며 낚시에 집중한 우리 멤버들과 제작진.

뉴블랙 최고의 손 낚시왕이 누구냐는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바로….

"오오오!"

"우와……."

"비주 봐봐. 저게 몇 마리째야?"

두 마리까지만 반출 가능이라 다시 방생해 주고 있지만 비주가 손으로 물고기를 십수 마리째 낚고 있었다.

수줍게 웃으며 물고기를 낚는 우리 메인댄서.

1시간이 되도록 한 마리도 못 낚은 사람들이 저마다 비주 근처에 모여서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이게 비결이 뭐냐면요."

귀를 쫑긋 하는 사람들에게 비주가 미끼를 끼운 줄을 들어 보였다.

"머릿속으로 춤을 생각하면 돼요."

"춤?"

"네. 이 줄이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춤을 추는 거예요. 송어가 먹을 만한 작은 물고기를 떠올리면서 요렇게 손을 살랑살랑…."

우리 메인댄서가 스냅을 이용해 줄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사람들이 감탄했다.

"어머."

"미끼가 춤을 추네. 진짜 물고기 같아."

춤으로 내로라하는 아이돌 사이에서 경연으로 1등을 먹은 우리 둘째다운 손놀림이었다.

비주가 웃으며 물었다.

"어때요? 쉽죠?"

"……."

비결을 묻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 비주 다음으로 물고기를 많이 낚은 중현이에게 다가갔다.

"어째서……."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너처럼 춤을 출 수는 없단다. 비주야."

"……."

슬픈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비주의 어깨에 나와 지호가 손을 올리며 토닥토닥해 주었다.

* * *

발왕산 케이블카와 송어축제에 이어서 방문한 곳은 바로 평창 전통 시장.

지금 내 고향의 주요 아젠다 중 하나가 바로 전통 시장 활성화인 만큼 이 부분에도 시간을 꽤 할애했다.

"이게 뭔가요?"

"취절편이라고, 수리취로 만든 절편이에요."

"우와…. 진짜 쫄깃해요."

평창의 명물이라는 감자떡과 함께 다양한 떡들을 구경하고.

"메밀배추전의 효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몸에 좋은 메밀이랑 배추가 모여 있습니다. 이걸 먹으면 몸에 열을 내리고 소화를 잘 돕거든요."

전통 시장에 있는 상인 분들과 '한 번 오셔요!' 하는 취지의 방송을 촬영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방문한 곳은 바로 평창군에서 팬레터를 보내 주었던 송편 분들이 살고 있는 미탄면이었다.

"안녕하세요!"

"아이… 이, 이게 무슨 일이……."

깜짝 놀라서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 할아버님과 포옹을 하며 웃었다.

집에 걸려 있다는 우리의 내 고향 포스터에도 사인을 해 드리고, 마을 회관에 모인 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정말이지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무릎을 다소곳이 꿇고 앉아 있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어른들의 조언들.

"미국 음식이 엄청 짜다더만. 가서도 김치 좀 많이 먹어 주고. 햄버거만 먹고 그러면 사람이 성격이 모나지고 탈이 나거든."

"아이, 뭘 먹는 게 중요한가. 한창 클 때는 다 먹어도 돼. 아직 한창 클 나이잖어."

"그래! 지호가 몇 살이지?"

막내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말했다.

"저 스물하나요."

"클 나이는 아니구먼."

깔깔 웃으며 너도 이제 나이 먹었다고 놀리는 우리에게 막내가 눈을 흘겼다.

그걸 시작으로 어르신들의 귀한 조언들이 이어졌다.

"내가 보니까 미국 놈들은 영어로 노래를 해야 들어. 영어로 노래를 내는 건 어떻게 돼 가고 있냐."

고시 공부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는 듯한 논조로 묻는 어르신들의 질문들.

"위장병 걸리면 그거 답도 없어~"

"이따 갈 때 양배추즙 챙겨줄 테니까 그거 먹어라, 우주야."

위장병 걱정해 주시는 분들.

이런 명절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격려들이었다.

"유명하니까 거 뭐시기냐, 기자 놈들이 어쩌구저쩌구 할 텐데 그런 거 신경 쓰지 말어. 옛날부터 기자 똥은 받아먹지도 말라고 했어."

"아, 똥은 먹으면 안 되지. 뭔 소리여, 영감은."

"그른가. 아무튼 흰소리들은 신경 쓰지 말고… 느이가 뭘 하든 우리는 응원하면서 보니까는… 거… 뭐 그렇단 말이지."

네가 어떤 상황이든 간에 응원한다는 말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개막식 공연을 앞두고 하루 종일 부담감에 얼어붙어 있었는데.

헤어질 때 힘내라고 하는 어느 할머님의 포옹에 눈이 살짝 따끔따끔한 느낌이었다.

그냥 그런 날인 것 같다.

큰일을 앞두고 긴장하고 너무 뻣뻣하게 굳어 있을 때, 누군가 '힘들지?' 하면 괜히 눈물이 맺히는 것처럼.

"저희 그러면 가 볼게요."

"내일 공연 잘하고!"

공연 잘하라고 하는 이들에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제작진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편집 예쁘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또 봬요."

제작진에게 작별 인사를 해 주고는 우리끼리 남았다.

차가운 겨울바람.

눈이 소복하게 쌓인 평창군의 한 마을을 돌아보며 심호흡을 했다.

방송이 끝나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개막식에 대한 부담감.

솔직히 TV상으로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올림픽 개막식에 홀로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니 몸이 살짝 떨린다.

큰 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불현듯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느끼다가 이내 고개를 저을 때였다.

"많이 떨려요?"

리혁이의 질문에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쪼끔?"

"많이 떨리는구만. 이래서 오늘 방송 녹화를 하자고 한 거예요. 끝나자마자 바로 긴장하는 거 봐."

"솔직히 말하면 떨려 죽겠어. 진짜."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보고,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의 곡이 나오는 공연에 올라가야 한다.

그나마 오늘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동생들이 케어해 줘서 그렇지.

혼자 호텔 방에서 휴식하고 있었다간 근심걱정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을 뻔했다.

비주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형."

"으으."

본 공연인 내일도 아니고 리허설인데도 벌써부터 떨린다.

지호가 말했다.

"그래도 너무 떨지 마요. 형. 우리가 오늘 제대로 케어해 줄 테니까."

"고마워."

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가운데 중현이가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정말 손끝 하나 움직이지 말아요. 형. 제가 오늘 형의 손과 발이 되어 줄게요."

* * *

뉴블랙을 송별하며 멀리서 손을 흔들던 미탄면 주민들.

"건강히 지내시고, 안녕히 계세요!"

"잘 가구!"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던 주민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연속촬영으로 뉴블랙의 사진을 찍을 때.

"제가 오늘 형의 손과 발이 되어 줄게요."

중현이의 말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면서 송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우애가 좋구나!'

형의 손과 발이 되어 주겠다는 발언에 송편들이 감격할 때.

손과 발이 되어 주겠다는 말을 들은 우주가 리혁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다.

곧이어 눈에 붉은빛이 들어온 로봇처럼 움직이는 중현.

"꺄하하핫! 꺄핫! 아! 하지 마요!"

리혁에게 간지러움을 태우는 중현과 그걸 지켜보며 좋아하는 우주의 모습.

주민들이 훈훈하게 웃었다.

'손과 발이 되어 준다는 게 그런 뜻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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