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8화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평창군 대관령면.
"우와아."
노을이 질 무렵에 방문한 알펜시아 리조트와 그 일대는 정말 화려하게 탈바꿈해 있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정말 여기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싶을 만큼 휑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조명을 비롯해 다양한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와."
막내가 패딩 입은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소름이다. 저 작년에 왔을 때만 해도 여기서 올림픽을 한다고? 막 그랬는데 지금은 진짜 올림픽 분위기 펄펄이네요."
크리스마스처럼 알록달록한 조명이 설치된 리조트를 지나는 동안 다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세워진 수호랑과 반다비 동상.
머리에 알약을 뒤집어쓰고 있는 알몸의 괴상한 동상도 있고.
"음?"
우리가 고개를 획 돌렸다.
"뭐야. 지금 내가 제대로 본 거 맞아? 웬 이상한 캡슐을 뒤집어쓰고 있는 동상이……."
"밤에 보면 더 무서울 거 같은데요."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이상한 동상들이 멀어지면서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좋네요."
중현이가 필름 카메라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가져다대며 올림픽 경기장 일대를 담았다.
"지호 말대로 진짜 올림픽이 한껏 다가온 느낌이에요."
"그러네."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점점 가까워지는 올림픽 스타디움.
그러면서 동시에 내 가슴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후우……."
긴장감 때문에 숨이 떨려 나온다.
비주가 장갑 낀 손으로 조용히 내 손등을 덮어 주는 가운데, 차량이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진입했다.
그러는 동안 매니저 민수 씨가 사이드 미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파파라치는 다 떨어져 나온 것 같네요."
"네."
동생들과 뒤를 돌아보고는 웃었다.
올림픽 스타디움 근처에서 경찰들이 통제를 한 덕분에 사생들이 탄 차량과 파파라치들을 무사히 따돌릴 수 있었다.
"자, 내립시다."
안전벨트를 풀고는 차량에서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평창 올림픽 개회식 관계자가 우리를 맞이하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상황실. 여기 스타디움 입구. 피아노 도착하셨습니다."
-확인.
보안을 위해서 나를 지칭하는 음어가 피아노가 된 모양이었다.
동생들이 '피아노야 안녕' 하며 인사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관계자가 우릴 안내했다.
"오시는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듣자 하니 오늘 평창에서 지금 내 고향 촬영하셨다면서요."
"네."
"어때요? 연막작전이 효과가 있었나요?"
"음……."
우리가 허공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무도 안 믿어 주시더라고요."
관계자 분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긴. 저 같아도 안 믿을 거 같네요. 개막식 전날 갑자기 평창에서 촬영한다고 나타난 거니까."
"그렇죠."
"우주 씨는 컨디션 어떠세요? 오늘 괜찮으신가요?"
"네. 일부러 체력을 아껴 뒀어요."
멤버들이 낚시를 할 때도 뒤에서 팔짱 끼고 서 있고, 뭐 먹거나 그럴 때를 빼면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했다.
얼어붙지 않게 손목 스트레칭 정도만 꾸준히 해 주고.
내가 코를 살짝 훌쩍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날씨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아요.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이긴 한데."
"엄청 춥죠?"
롱패딩에 달린 털모자까지 썼는데도 추위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바람이 휘이잉- 하고 부는데, 이게 만약 서울이었다면 허름한 간판 정도는 날아갔을 듯한 느낌.
관계자 분이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날씨 때문에 진짜 오늘 분위기 살벌했거든요. 와이어나 무대 장치가 바람에 자꾸 흔들려서……."
"많이 위험했네요."
"네. 기상청 사람들 말로는 내일 날씨는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기상청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도… 아무튼 복잡합니다."
내부 사정이라 더 자세히 들을 수는 없지만 개막식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알겠다.
중간중간 지나가는 관계자 분들 표정이 꼭 앨범 준비할 때의 우리처럼 초췌하고 핼쑥해져 있다.
곧이어 들어온 실내.
"어우."
동생들과 마스크를 벗고는 코를 훌쩍였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실내는 조금 낫네요."
솔직히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관계자 분들이 안내해 준 대기실에서 앉아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꺼낸 막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와."
"왜 그래?"
"저 핸드폰 전원 꺼진 거 봐요."
뿌연 습기가 찬 핸드폰 화면이 꺼져 있었다.
막내가 말했다.
"이거 폰 만든 사람들은 진짜 캘리포니아 날씨만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맨날 추우면 꺼진다니까."
"나처럼 다른 폰을 쓰면 되잖아."
"형 건 셀카가 별로예요."
"별로라고?"
내가 셀카를 한 장 바로 찍어서 보여 주자 막내가 입을 다물었다.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었다.
"어쩌면 문제는 폰이 아니라 얼굴이 아니었을까."
"……."
막내가 입만 삐죽이며 핸드폰에 호오오오 하면서 입김을 불어넣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우리에게 ID카드를 건 관계자가 돌아왔다.
"총감독님께서 부르세요. 상황실로 와 달라고."
"네."
복잡한 미로 같은 스타디움 내부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탑승했다.
곧 도착한 꼭대기 층.
그곳에서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보안 통로를 지났다.
"안녕하세요."
"어?"
우리를 보고 놀란 경찰관들에게 부드럽게 인사를 건네고는 상황실 내부로 진입했다.
"우와아아아……."
음악 방송을 하는 방송국과 비슷한 인테리어.
어두운 상황실에서 복잡한 콘솔 기기들과 모니터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기기를 점검하고 있던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미리 사 온 커피들을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천만 영화감독이자 총연출을 맡은 김익환 감독님이 커피를 받아 들고는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보통 방송국에서 보면 받자마자 쪼로록 하면서 마시는 편인데.
우리와 과거 슬립 OST로 연을 맺은 강만석 음악 감독님이 웃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시고 싶지. 그런데 혹시 마셨다가 탈이라도 날까 봐."
"아."
"지금 음식도 각자 다 다른 음식을 먹고 있거든. 워낙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있다 보니까."
혹시나 단체로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답이 없다는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총감독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우와."
유리창 너머로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무대 장비를 철수했는지 경기장에 군인들만 조금 보였다.
"어이구…."
20대 초반의 군인들이 귀마개를 한 채, 제설작업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짠했다.
총감독님이 말했다.
"오늘 눈보라가 살짝 불었거든. 잔설을 조금만 내버려 둬도 저기가 엄청 미끄러워져요. 저번에 우리 기술 감독이 미끄러져서 골절상 입었어."
"열 바늘 꿰맸어요. 저."
"아무튼 그만큼 기상 환경이 정말…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날씨에 맺힌 한이 정말 많은 모양이었다.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댄 졸개들이 군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추울 텐데."
"민기 형. 저희가 뭐 따뜻한 음료나 음식 같은 거 보내 줄 수 있어요?"
매니저가 한 번 알아보겠다고 말을 하며 나선 후.
총감독님이 말을 이었다.
"우주 씨랑 뉴블랙을 여기로 부른 건 경기장을 한 번 둘러보라는 의미에서 부른 거예요. 지금 나가서 둘러보기에는 너무 추워서… 여기서 공연장 느낌을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감사합니다."
"들어 보니 가수들은 공연장 분위기에 적응을 해야 된다면서. 배우들이랑 비슷한 거 같더라고."
"네. 맞아요."
공연장마다 특유의 공기 같은 게 있다.
그것에 익숙해져야 더 공연이 잘 된다고 해야 되나. 콘서트도 마지막 날이 가장 퀄리티가 좋은 이유가 다 있다.
"일단 우주 씨한테 동선을 한 번 설명해 줄게."
"넵."
"저기 보면 리프트가 있어요."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무대의 전체적인 동선을 설명해 주는 감독님이었다.
녹음을 하면서 중요한 것들은 메모를 했다.
"IOC 위원장님이 연설을 하고, 그다음에 개막 선언이 있을 거예요. 우주 씨는 바로 그다음 마지막 공연에 등장할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 번 화상 회의를 통해 공연 내용을 숙지했지만 막상 현장에 와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총감독님을 비롯해 각 감독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후.
"지금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리허설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가야 할 것 같아요. 할 수 있죠?"
"일정이 촉박한가요?"
"밤에 성화 점화 리허설을 해야 되거든. 주자들끼리도 마지막으로 또 맞춰 보고 그럴 필요가 있어서."
"아. 그러네요."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인 최종 성화 점화 리허설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한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 진행하는 만큼 이번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였다.
심호흡을 하면서 가슴에 손을 올린 내가 말했다.
"아. 진짜 떨리네요."
잘게 떨리는 숨을 내뱉는 나를 바라보며 작게 웃던 개막식 연출진이 격려해 주듯 말했다.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지하 1층.
철골 구조물이 가득한 공간들을 지나면서 마침내 목적지인 리프트 근처에 도착했다.
"오."
리프트 위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올라와 있다.
직원이 스위치를 조정하자 삐이이이- 하는 소리를 내면서 리프트가 서서히 위로 상승했다가 하강했다.
직원이 내게 말했다.
"저기 리프트로 가는 천장이 낮거든요. 키 큰 사람은 부딪치는 구조라서 고개 숙이고 들어가셔야 해요."
"네."
"머리를 다치시면 안 되니까."
리허설을 같이 할 공연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직원 분에게 물었다.
"저희 잠깐 위에 둘러봐도 될까요?"
"그럼요."
동생들과 함께 리프트를 타고 서서히 상승했다.
콘서트 때의 습관 때문인지 리프트에 타자마자 쪼그려 앉는 졸개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서서히 등장 포즈를 취하듯이 일어나면서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우와아……."
작년에 보았던 휑한 느낌과는 달랐다.
객석에 설치된 조명들이 반짝이며 돌아가고, 아이스쇼에 어울리는 하얀 바닥이 우릴 맞이했다.
눈의 왕국 같은 분위기.
이제야 진짜 올림픽 현장에 온 것 같아 팔에 소름이 쭉 올라왔다.
"진짜 멋지다…."
비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저희가 이제 폐막식 때 여기 서는 거네요. 형은 내일 여기 서는 거고."
"그치."
"우와아아……."
4만석 정도 되는 객석을 둘러보면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귀빈석에는 각국 왕족, 총리를 비롯한 정상급 사절단이 앉아 있고, 그 아래 선수단 좌석에 선수들이 앉아 있고.
국내외 관객들이 저 객석을 빼곡하게 채워서 지켜보는 현장 분위기.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
"……."
침을 꿀꺽 삼키고는 양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축축한 내음을 풍기는 장갑의 감촉을 느끼며 꺼흐흣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졸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형.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막내가 내 어깨에 손을 텁 올렸다.
"제가 왜 걱정을 안 하는지 알아요?"
"왜?"
"바로 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중현아."
"아아아아악!"
오늘 하루 내 손과 발이 되어 주기로 한 중현이가 막내를 바로 응징해 주었다.
그러고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괘씸한 발언이긴 했지만 내 긴장을 풀어 주려고 한 노력이 가상했다.
"다시 내려갈까?"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심상치가 않았다.
감독님 말로는 여기가 원래 명태를 황태로 만드는 덕장 자리였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바람이 대단했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자 마침맞게 나와 호흡을 맞출 공연자들도 도착했다.
"어?"
"어어어?"
"어?!"
각자 전통 복장을 입은 악기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올라갔다.
"우와!"
"어머! 어머! 안녕하세요! 진짜였네! 진짜 뉴블랙이 출연하는 거였네."
"우주 씨가 피아노였어요?! 진짜 오랜만에 본다. 우리."
분명히 처음 만난 사람인데 어제 만난 것처럼 말을 거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제가 바로 여러분의 피아노입니다."
"우와."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말했다.
"어쩐지 그럴 거 같긴 했어. 우주 씨 아니면 누가 Answer 공연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저희끼리 추측이 많았거든요. 우주 씨가 올 거다. 아니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올 거다. 우주 씨가 워낙에 스케줄이 바쁘잖아요."
그런 말을 하면서 반가워하는 이들에게 내가 물었다.
"저 없을 땐 리허설 어떻게 하셨어요?"
"피아노 세워두고 따로 했죠."
나도 현장은 처음이지만 리허설이 처음은 아니었다.
올림픽 주최 측에서 따로 마련해 준 일산 킨텍스의 별도 공간에서 리허설을 하곤 했는데.
이분들은 현장에서 연습을 했다고 들었다.
"45일 동안이요?"
"네."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이 코를 슥 비비며 웃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여기서 자주 리허설을 했죠."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Answer를 제일 먼저 알고 있었을걸요? 입이 어찌나 근질근질하던지."
"맞아. 처음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올림픽 주제가인가? 그랬는데 우주 씨 노래인 거 알고 깜짝 놀랐어요. 진짜 대박…."
한 달 넘게 리허설을 했다는 이들에게 내가 절로 공손하게 손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오늘 저 좀 잘 부탁드려요."
"저희만 믿어요."
…라고 말을 하는 연주자들을 신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때.
연주자들의 다리가 호달달 떨리는 게 보였다.
이내 깨달은 내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도 엄청 떨리시는군요."
"이 정도로 큰 관중 앞에서 공연해 보는 건 처음이라… 국악으로 최대 인원 앞에서 했던 게 천 명이거든요."
각자 몇 명이라고 말하는 가운데.
문득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향하면서 내가 말했다.
"저는 6만 명이요. 상암 경기장에서."
"……."
연주자들이 내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주 씨."
"저희도 일일 졸개 할 테니까 잘 이끌어 주세요."
상부상조 하면서 서로 의지하려고 했는데, 졸지에 수십 명의 졸개들이 생겨 버린 내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키득거리던 동생들은 아예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졸개단의 간부로서 신규 졸개들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와아아아아!"
틀려먹었다고 생각을 하고는 손목 스트레칭을 했다.
쭉쭉 몸도 풀어 주고.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리프트 위에 올랐다.
직원들이 그랜드 피아노 의자에 핫팩을 열심히 깔아두었는지 뜨끈한 의자에 앉을 때.
인이어를 꽂은 귓가에 연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지금부터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 * *
올림픽 스타디움이 내려다보이는 상황실.
개회식 연출을 맡은 감독이 지시를 내리는 가운데, 총감독 김익환이 스타디움을 꼼꼼히 살폈다.
"오케이. 아무 이상 없고."
그가 기술 감독에게 말했다.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 나올 수 있으니까 FOP에는 소리 내보내지 말라고 하고, 인이어로만 내보내게 해."
"네. 감독님."
곧이어 본격적으로 부분 리허설이 시작됐다.
먼저 깔리는 것은 선명주의 음악.
선명주의 음악과 함께 나올 퍼포먼스들이 이어진 후.
"자, 카운트다운 들어가겠습니다. 셋, 둘, 하나. 오늘 하루만큼은 본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모두 긴장해 주세요."
헤드셋을 낀 개회식 연출 감독의 말에 리프트가 서서히 올라왔다.
그랜드 피아노에 패딩을 입고 앉아 있는 미청년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그림 좋고.'
연출진이 몇 번 카메라를 내보낼지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는 한편.
다들 긴장감 어린 분위기 속에서 침을 삼켰다.
'잘해 줬으면 좋겠다.'
킨텍스의 리허설 때만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며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볼 때였다.
아버지의 음악 Question이 끝나고.
아들이 Answer로 돌아왔다.
피아노에 손을 올린 우주가 잔잔하게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스탭들이 쾌재를 질렀다.
'그거지.'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손가락과 함께 본격적으로 힘차게 연주를 시작하는 우주.
국악을 맡은 무용수들과 연주자들이 거기에 합류했다.
활기찬 연주와 미래에 대한 번영과 희망을 다룬 음악이 연주되면서 벅찬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누군가 화면 속에서 빛나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주 씨, 긴장 엄청 했다고 그러더니 하나도 티가 안 나는데."
"엄살이 심해. 저 친구도."
무아지경에 빠져든 사람처럼 건반을 연주하면서 때때로 여유롭게 주변의 연주자들과 소통하는 우주.
자신감 넘치는 미소.
부드러운 손놀림.
선명주가 다시 돌아온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장면이었다.
"이야."
100을 기대한 연출진은 150의 무대를 준비하고 나온 우주의 모습에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김익환 감독의 부리부리한 눈썹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걱정은 덜었군.'
그가 헤드셋을 끼고는 막 리허설을 끝낸 이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몇 번 정도 더 가 볼 텐데요. 일단 이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상황실을 올려다보는 이들에게 그가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좋았습니다. 다들 이대로만 해 주세요."
아래에서 좋아하는 환호성들이 입모양들로 보일 때.
김익환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주 씨?"
피아노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가 상황실을 올려다보는 미남.
그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가 엄지를 들었다.
"최고였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미남이 그제야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김익환 감독이 손뼉을 쳤다.
"자! 그럼 다시 한번 가 보겠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실전처럼 반복되는 리허설.
그리고 리허설이 반복되면서 불안감에 차 있던 연출진의 마음이 부드럽게 녹기 시작했다.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예감이 좋았다.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멋진 곡.
그에 어우러지는 안무와 악기들.
무대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느낌이 좋아.'
평창 올림픽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 * *
평창군 대관령면.
올림픽의 개막을 앞두고 선수촌에 들어온 각국 대표단이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경찰과 공무원을 비롯한 올림픽 관계자들이 밤을 새워 가며 테러를 비롯한 안전 위협에 대한 회의와 점검을 마무리하고.
전 국민들이 올림픽이 시작한다는 소식에 왠지 모를 설렘과 한편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휘이이이이잉-
시베리아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은 태백산맥에 부딪치며 눈보라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모든 관계자들이 날씨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런 모두의 바람을 아는 것인지, 세차게 불던 바람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서히 맑게 개어 가는 새벽하늘.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상황실의 모니터에 기상청이 보낸 특보가 뜨고 있었다.
-[기상청 특보] 오전 5시 35분 기준 영하 1.7도.
-올해 겨울 들어 가장 따뜻한 날씨.
올림픽 개막식 당일.
날씨의 기적이 평창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