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29화 (82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29화

올해 들어 가장 따스한 날씨를 맞이한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일대는 오전부터 관광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붐비고 있었다.

'우와.'

평창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진짜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긴 축제인가 보다. 외국인들 봐. 절반이 외국인이네."

"사람 진짜 많다."

"어어어! 야! 야! 거기 휩쓸린다."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인파에 휩쓸릴 정도였다.

그야말로 정신없는 분위기.

하지만 그만큼 볼 것도 많았다.

"우와. 저기 춤도 추고 있어."

한겨울에 비보잉을 하고 있는 댄스 크루도 있고.

한복을 입은 채 율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비롯해 이색적인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 춥나?'

열정적으로 자기만의 공연을 하는 이들을 지나자 이번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인권과 환경보호 시위를 비롯해 그중 눈길을 끄는 것도 있었으니.

"뉴리단길이 위험합니다! 도와주세요!"

"레몬 엔터 사옥 이전 반대한다! 반대한다!"

"소상공인 다 죽이고 올림픽이 웬 말이냐! 뉴블랙은 책임져라! 책임져라!"

한국인들이 뚱한 얼굴로 지나갔다.

'뭐래.'

시위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인지 곧이어 경찰관들에 의해 철거되는 현수막들.

경찰관들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어디 우리 무시하고 뉴블랙 얼마나 잘 되나 보자!' 하는 저주를 퍼부었다.

"어휴."

"진짜 진상이다."

"저거 인터넷에서 봤는데 진짜 완전 이전하는 것도 아니라며. 하도 난리 쳐서 뉴블랙 박물관 만든다잖아."

"아, 진짜? 그럼 왜 저래."

그런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한국인들의 화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시위를 한대?"

"오늘 우주 개막식 나와서 그런 거 아니야?"

"아."

찬바람에 코를 훌쩍이던 누군가가 물었다.

"그런데 나오는 건 맞아?"

"맞을걸…? 어제 평창에서 뭐 촬영했다고 하던데. 어젯밤에 여기 호텔에 목격담 떴던데."

"그래도 많이 애썼네."

국민 아이돌을 향해 귀여워하는 웃음이 흘렀다.

어젯밤 호텔 직원이 SNS에 올린 목격담으로 인해 개막식 출연이 기정사실화된 우주였다.

본인 딴에는 열심히 숨겼다지만….

'그게 숨겨지겠니. 우주야.'

전 국민이 5인조의 실루엣과 두상까지 알아보는 상황에서는 뭘 해도 소용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온 가운데.

관광객들은 평창 올림픽 플라자를 자유롭게 누볐다.

장승과 솟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외국인들은 편백나무로 만든 한옥 내부에서 족자를 보며 신기해하고.

전통문화와 IT 기술을 체험하는 공간들이 개막식 전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세상에…."

"저기 뭐길래 저렇게 줄이 길어?"

"야야, 네가 가서 물어봐 봐. 네가 영어 제일 잘하잖아."

친구들 사이에서 떠밀린 누군가가 줄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바로 돌아왔다.

"뭐야. 왜 안 물어봐?"

"다 외국인들이라서 못 물어봄."

납득이 가는 사유였다.

"그냥 가서 뭔지만 보고 왔는데 무슨 VR 체험이라는데? 뉴블랙이랑 함께 하는 VR 체험이래."

"아하."

"그래서 이 줄이……."

다른 곳에 가면 그래도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는데.

어째 외국인 70프로가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뉴블랙이 해외 인기 많다더니, 진짜 장난 아닌가 보다."

"그러게."

봅슬레이, 알파인 스키 등을 비롯해 다양한 VR 체험이 있는 곳에서 가장 압도적인 줄을 자랑하는 뉴블랙 체험.

한국인들이야 '뉴블랙이야 맨날 보니까' 하며 지나가지만 외국 팬들에겐 감흥이 다른 모양이었다.

"우리도 한 번 서 볼까?"

이윽고 줄을 선 그들이 멀찍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후룸라이드에 앉아서 VR 기기를 착용하고 있는 알록달록한 머리색의 색목인들.

그들이 'Wow', 'Holy…!' 하면서 막 움찔움찔하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여튼. 서양 애들 오버하는 리액션은 알아줘야 돼.'

친구들이 눈으로 '완전 오버한다' 하며 웃음을 교환한 후.

약 40분간의 기다림을 거친 그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이 VR 눈 보호대를 착용시켜 주었다.

"약간의 빛과 섬광이 있을 수 있으세요. 혹시 그 부분에 예민하실까요?"

"괜찮아요."

"어지러움 느끼시면 바로 손 들어 주세요. 그럼 출발합니다. 랄라랄라 뉴블랙 어드벤처~"

"많이 무서운가요?"

"시작하실게요~ 랄랄라라~"

자원 봉사자의 영혼 없는 목소리와 함께 머리에 씌워지는 VR 기기.

이윽고 눈앞의 풍경이 변하면서 그들이 감탄했다.

"우와."

VR이라고 해서 그냥 눈앞에 화면이 뜨는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가상현실이 그들을 맞이했다.

'기술 진짜 좋아졌구나.'

왜 외국인들이 기기를 착용하자마자 와우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는지 이해가 됐다.

쏴아아아아-

짹짹-

어디선가 들리는 새 울음소리와 함께 울창한 밀림 사이로 폭포들이 곳곳에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마치 정글의 왕국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의 눈앞에 떠오르는 초록색 자막.

[이 영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합니다.]

정부가 후원하는 기술인 듯했다.

그제야 VR기기에 뉴블랙이 광고했던 게임기 회사의 로고가 달려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후우우웅-!

"와아아아!"

밀림의 급류를 타고 내려간 그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동굴 입구가 나타났다.

마치 밀림 속의 엘도라도로 향하는 듯한 황금빛 문.

동시에 허공에 뿅 하고 빵 덩어리가 떠올랐다.

[안녕!]

수플레 덩어리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난 수플레라고 해!]

"안녕."

[반가워! 지금부터 우리 모험을 떠나 볼까?]

활기차게 기운을 북돋아 주던 수플레가 이내 경고하듯 목소리를 깔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모험을 떠날 왕국들은 몹시 위험한 곳들이야. 그러니… 안전벨트 꽉 매고. 알았지?]

서서히 출발한 보트가 문을 지나면서 하얀빛이 그들을 감쌌다.

덜덜덜.

진동과 함께 배경이 변한다.

"우와…!"

근미래 분위기를 풍기는 오락실 배경.

'대박 신기해.'

22세기의 세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그릴 때였다.

파츠츠츠.

조명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이런! 도망쳐야 해!]

그들의 등 뒤를 보고 놀라는 수플레의 모습에 그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헉!'

어둠 속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지호가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3D로 만든 지호 캐릭터의 눈동자가 광기에 번들거렸다.

[수플레!]

[나랑 놀자아아아-]

"우린 수플레가 아니라고!"

그 말에 응답하듯 빵 덩어리가 수줍게 말했다.

[사실 절 따라오는 거랍니다. 에헷.]

"너 때문이었구나!"

"으아아아아악!"

"야! 빨리 가! 빨리!"

따돌렸나 싶었는데 이내 킥보드를 타고 맹렬히 추격해 오는 뉴블랙의 막내.

정말이지 아슬아슬한 추격전 끝에야 그들은 왕지호의 마수에서 벗어나 다른 왕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으아아아악!"

그게 시작이었다.

[저랑 춤추실래요…?]

귀족 같은 복장을 입은 비주 캐릭터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드레스를 입은 누군가와 왈츠를 추던 비주가 말했다.

[제 파트너가 더 이상 춤을 못 추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파트너가 있는 게 좋은데…….]

비주가 손에 힘을 푸는 순간 드레스를 입은 이가 허물어지면서 뼈다귀 상태로 드러났다.

'걸리면 뒤진다.'

'진짜 죽는다.'

'비주는 항상 진심이니까.'

분명히 캐릭터는 3D 모델링이라 현실과 조금 다른데, 목소리 때문에 실제 같아 무서웠다.

그걸 시작으로 각 왕국에서 숨 가쁜 추격전을 겪는 관람객들.

[자연을 파괴하다니.]

[농사의 요정으로서 용서할 수 없어요.]

농사 왕국에서 거인이 된 중현이에게 쫓기기도 하고.

[지금… 책… 책 정리를 흐트러뜨린 거예요?]

[캬아아아악!]

책 하나 떨어뜨렸다고 도서관 왕국의 지배자인 리혁에게 미움을 사서 개고생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작곡 왕국.

음표와 악보가 가득한 왕국을 지날 때는 추격이 없었다.

"오호."

가장 위험할 거라고 생각한 작곡 왕국에서 평화로움을 느낄 때였다.

헤드셋 귓가로 누군가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으아아아아악!"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옆자리에 탑승한 작곡요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 처음부터 여기 있었답니다.]

"저리 가!"

폭탄을 던지고 나서야 겨우 퇴치할 수 있었던 작곡 요괴.

그 숨 가쁜 추격전을 모두 끝내고, 마무리로 뉴블랙의 실사가 담긴 평창 응원 영상이 흘러나왔다.

"휴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VR을 벗은 이들이 숨을 가쁘게 쉬었다.

갑자기 다시 현실로 돌아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내미는 손을 붙잡아 후룸라이드 바깥으로 나오는데, 현실에 적응이 안 되어서 다리가 휘청하는 기분.

"How was it?"

어떠냐고 뒤에서 묻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들… 용케 탈덕을 안 하는군.'

이윽고 체험줄에서 벗어난 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땠어?"

"와. 개쫄리더라. 근데 재미있긴 했어."

"재미있더라. 얘네 팬들은 이런 거 되게 좋아하나 봐. 취향 참 특이해."

그런 말을 하며 줄에서 벗어나는 이들.

"근데 저기 맨 뒤에 선 애들 아까 줄 섰던 애들 아니야?"

"그럴걸?"

한 번 더 체험해 보기 위해서 다시 줄을 선 외국 수플레들.

뺨이 상기 된 채 'Sunny', 'Jiho'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며 그들이 웃었다.

'취향 참 특이하네.'

그러면서 슬그머니 다시 줄을 서는 이들이었다.

솔직히… 너무 재미있었다.

* * *

관람객들이 낮 시간 동안 올림픽 플라자 일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해질 무렵이 되면서 날씨는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어우. 춥다."

"훅 추워지네."

롱패딩과 장갑을 비롯해 단단히 차려입은 한국인들이 입장하는 줄에 섰다.

스타디움의 붉은 글씨가 그들을 반기듯 반짝였다.

[ PyeongChang 2018 ]

티켓을 확인하고 입장한 관람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았다.

"어머."

자라마다 비치된 담요와 응원도구 등의 키트를 확인한 이들이 재빨리 방석을 깔았다.

탈탈탈.

여기저기서 핫팩을 흔드는 사람들.

담요를 무르팍에 덮거나 핫팩으로 손을 뜨끈하게 지지던 관람객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구장 같네.'

널찍하고 둥그런 무대가 보이고, 객석에 설치된 LED 조명과 전광판 등이 눈에 들어온다.

"난간에 기대시면 안 돼요!"

목에 ID카드를 건 진행요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여기저기서 무전기를 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뭐라고 주고받고 있는데, 개막식 직전의 긴장감이 절로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안내방송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의무실은 세 개 소가 운영됩니다. 흡연은 반드시 스타디움 외부 지정된 장소에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개회식장의 철저한 안전규칙이 함께합니다.]

장내 아나운서들이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목소리를 비롯해 음악이 흘러나오고.

점점 올림픽 개막식이 다가오면서 덩달아 기다리고 있는 관람객들의 마음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준비 잘 됐겠지.'

하도 준비 상황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본 터라 괜스레 걱정이 되는 한국인들이었다.

매점에서 산 간식이 목으로 잘 안 넘어가는 느낌.

괜스레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의 사전 MC이자 예능인 유창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인기 예능인 유창현이 통역사와 함께 등장해 개막식의 사전 MC 진행을 맡았다.

관람객들이 개막식에서 흥을 돋울 수 있도록 재치 있는 멘트를 하기도 하고.

[응원봉 한 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자 다 같이! 얼쑤!]

키트에 있는 응원도구 사용법도 가르쳐 주고.

사람들의 흥이 서서히 달아오르면서 영하 3도의 날씨에 훈풍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듬성듬성했던 자리가 빼곡히 메워지고, 각국 왕족과 정상급 사절단이 VIP석을 메웠을 때.

오후 8시.

무대 위로 거대한 종이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십! 구!]

한국어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린 올림픽.

찬바람을 뚫고 관람객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울렸다.

"와아아아아아!"

전 세계 3억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올림픽이 마침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올림픽 스타디움 일대를 폭죽과 불꽃이 장식하는 가운데.

"우와아아아아…."

"용이다! 용!"

"새…에 사람 머리가 있는데…?"

백호와 용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개막식 초반 공연.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환호로 공연장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초반부 공연이 끝나면서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첫 입장한 그리스 선수들의 배경으로 <손에 손 잡고>가 깔려 나오고.

본격적으로 흥겨운 대중가요 메들리가 깔려나오면서 각국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후반부 입장에 접어들었을 때.

세레니티의 Party Girl과 스칼렛의 Not Fine 등을 비롯해 현재 K팝에서 핫한 곡들이 흘러나왔다.

'도깨비다!'

캐나다 선수들의 입장 장면에 도깨비가 깔려나오는데, 음악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강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각국 선수단의 입장이 끝난 후.

주요 인사들의 연설과 개회 선언이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폭죽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러는 동안 설치되는 무대 장치들.

"오. 또 뭐 나오나 봐."

곧이어 무대 위로 올라온 한복 차림의 여인이 아리랑을 부르면서 서정적인 가락이 깔리기 시작했다.

TV 화면으로 [한국, 그리고 세계]라는 자막이 깔리는 한편.

'우와아아아…….'

한지에 먹을 적시듯 빔 프로젝터에서 투영된 영상이 무대 바닥에 붓칠을 하기 시작했다.

태백산맥을 비롯해 한국의 정기라고 할 수 있는 산맥들이 그려진 대동여지도.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동안 조선 시대의 문화를 보여 주듯이 탈놀이와 전통 안무가 나왔다.

서정적이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하지만 공연장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외국인들이 웅성거릴 때.

'아.'

한국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제강점기구나.'

신명나게 춤을 추던 무용수들이 하나둘 손에 든 천을 내려뜨리고 흐느적거리며 허물어지고.

조명은 서서히 가운데로 좁아지기 시작했다.

아리랑을 부르고 있던 여인이 이윽고 어둠에 잠기면서 구슬피 변하던 곡조도 침묵처럼 잦아들었다.

잠시 어둠에 잠기며 불길한 음악들이 흘러나온 후.

화아아악!

어둠이 밝아 오르면서 그 자리에 학생 옷과 저고리를 입은 청소년들이 나타났다.

평화의 깃발을 들고 중앙에서 모여 있던 이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면서 음악이 활기차지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없지만 마치 독립 만세가 들리는 듯한 기분.

자리에 참석한 IOC 관계자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일본 측 귀빈들의 표정이 썩어들어 갈 때.

"우와아아아……."

본격적으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흘러나왔다.

주제는 바로 '시민들'이었다.

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역사책에서 소외되어 다루지 않았던 일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50년대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음악이 함께 했다.

"……."

역사는 모두가 공유하는 기억이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에 있었던, 겪어 보지도 않은 일을 추억 여행하듯이 지켜보는 한국인들.

각 시기의 대중가요들이 흘러나오며 현대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무대로 구성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특성인 역동성을 보여 주는 올림픽 개막식 무대.

서서히 무대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격동의 시기를 거쳐 완성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제 서서히 세계로 뻗어가는 느낌.

'나'에서 시작해서 '우리'로 가지가 뻗어 나가는 분위기의 무대들이 나올 때였다.

'저건 뭐지?'

90년대의 가요들이 흘러나올 때.

어느 샌가 무대 위로 커다란 유리가 올라와 있었다.

"음?"

곧이어 90년대의 대중가요가 끝나고 그 유리에 홀로그램으로 무언가 투영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환호성.

90년대 최고의 인기 스타이자 세계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인물이 홀로그램으로 재탄생해 있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20년 만에 돌아온 그의 인사.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오늘 개막식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후우……."

숨이 떨려 나온다.

가만히 있는데도 구역질이 나오고, 어디론가 당장 도망쳐서 숨고 싶은 기분.

그리고 약간의 설렘.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아서 눈을 슬쩍 비볐다.

"아. 진짜 떨려 죽겠다."

미리 세팅한 머리만 아니었다면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비주가 차분하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할 수 있어요. 형."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건 너무나 잘 아는데……."

떨린다.

그저 떨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주변에서 격려해 주는 동생들, 매니저들을 향해 말했다.

"잘해야지."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할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야. 나 걱정해 주는 거야?"

귀가 벌게진 메인보컬이 딴청을 피우며 중현이의 뒤에 숨었다.

중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끝나고 고기 먹으러 가요. 형."

"꼭 먹어야지."

"개막식 끝나고 먹으라고 대표님이 미리 예약도 해 두셨대요."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는 옆에서 재롱잔치를 하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볼 때마다 꽃받침을 한 채 어깨를 양옆으로 둥실둥실 흔드는 우리 막내.

형 긴장 풀리라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구역질이랑 현기증은 좀 나아진 것 같다.

"올라갈 준비하겠습니다!"

"네!"

심호흡을 하고는 나보다 수천 배는 더 긴장하고 있는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에게 다가갔다.

이분들에 비하면 내 긴장은 가짜 긴장 같은 기분이었다.

"올라가기 전에 화이팅 한 번 해 볼까요?"

"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지금까지 했던 연습량을 믿으세요. 오늘 할 수 있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이를 딱딱 부딪치는 이들.

하나둘셋 화이팅 하고는 인이어를 귀에 착용했다.

무대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긴장감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 선명주가 돌아왔습니다.]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함성.

그런 함성을 느끼며 손가락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어찌 보면….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와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잘하고 올게."

응원을 해 주는 멤버들, 매니저들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고는 내려오는 리프트를 기다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뻥 뚫린 리프트 천장으로 찬바람과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어왔다.

마치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넘실거리던 열기가 공연자들과 내 옷깃을 적시는 기분이었다.

"가요! 우주 씨부터!"

"머리 조심! 머리 조심!"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심장소리와 함성소리가 뒤섞여 들어오면서 서서히 상승하는 심장 박동.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차가운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올라갑니다. 셋 둘 하나.

서서히 올라가는 리프트.

밤하늘이 훤히 보이는 공연장이 나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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