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0화
전국민이 시청하고 있는 HBS 중계방송.
올림픽 개막선언이 끝나고 화면에 큼지막한 자막이 떠올랐다.
[한국, 그리고 세계]
무대 중앙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여인이 나오면서 아나운서들의 해설이 이어졌다.
[한국 그리고 세계.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 그리고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노래하는 무대입니다.]
[아리랑이 나왔네요.]
[정말이지 다양한 한국의 문화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통 문화가 가득한 무대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가 근대사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을 하듯이 검은 교복과 저고리 차림의 청소년들이 무대를 뛰어다닌다.
대한 독립 만세가 환청으로 들리는 기분.
[일제강점기와 그 해방의 역사를 다루는 것 같고요.]
[깃발이 평화의 깃발이네요. 아무래도 IOC 측의 반발 때문에 직접적인 묘사는 지양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김익환 총감독님 인터뷰에 따르면 위원회를 설득하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고 하네요.]
강대국 눈치를 살피기 바쁜 국제 스포츠 협회에 대해 간접적인 성토가 나오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시부럴놈들
-아이고 잽머니 달달하고ㅎㅎ
-대충 중국일본 기분 나쁘면 정치 중립 위반 어쩌구 함ㅋㅋㅋㅋ ㅈㄴ짜 한결같은 새기들
-ㄹㅇ 다 한통속임
바로 그때 HBS의 중계 카메라가 장면을 전환했다.
지이잉.
일본 측 귀빈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됐다. 입을 앙다물고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이건 잘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혐비에스 칭찬해
-혐비에스라뇨 민족정기가 담긴 한성방송입니다 여러분
-[HBS 1열 직캠] 열도 - 부들부들 (feat. IOC)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트위터에서 외국애들이 이거 뭐냐고 묻는데 너무 좋다ㅋㅋㅋ
'왜 일본인들의 표정이 안 좋은가?' 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전 세계 검색창에 한국 역사에 대한 키워드가 올라올 때.
본격적으로 한국 현대사가 이어졌다.
전쟁의 상처.
산업화의 그늘.
그런 고난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면서 결국 우뚝 서는 한국의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
고된 하루를 끝내고 돌아온 이들을 위로하는 대중가요들이 무대와 결합하면서 한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올림픽 개막식 무대가 그들에게 말하는 듯했다.
여러분이 이 올림픽을 만들었다고.
"무대 잘 만들었네."
"좀 뭔가 벅차는 그런 게 있다."
안방과 거실에서 개막식을 시청하던 이들이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 무대에 또 다른 장치가 설치됐네요.]
[무엇이 나오는 걸까요?]
90년대의 가요를 지나면서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더니.
'와아아아아!' 하는 현장의 함성 속에서 선명주가 홀로그램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플로팅 홀로그램이군요! 유명인들의 생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입니다.]
[정말 현장 분위기가 뜨겁네요!]
선명주의 인사가 이어지면서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20년 만에 돌아온 전설적인 아티스트죠.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스타, 선명주입니다!]
[왠지 이 타이밍에 나올 것 같았거든요!]
[올해 1월에 있었던 공연이 정말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죠? 그야말로 전 세계 음악계 초유의 관심사였던 공연이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에서…….]
선명주가 나오면서 한국인들이 반가워할 때.
홀로그램 속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선명주를 외국인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나오는 웅성거림.
「선명주다.」
「선명주가 한국 사람이었어?」
「어? 저 사람….」
특히나 예술 분야에 관심이 높은 유럽인들이 웅성웅성하면서 한국인들이 도리어 신기함을 느꼈다.
'외국에서 진짜 유명하긴 했나 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저 정도로 인지도가 있는 줄은 몰랐던 터였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놀라서 바라보는 분위기.
한국인들의 어깨가 슬쩍슬쩍 올라가는 동안 무대에서 선명주의 연주가 이어졌다.
동시에 TV 하단에 흘러나오는 자막.
『선명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20세기 후반 인물로서 드물게 '재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100'에 랭크되어 있다.
그런 자막을 바라보던 한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천재야.'
선명주의 공연이 있기 전, 그러니까 예고편만 올라왔을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시비가 있었다.
-저 사람이 그렇게 유명함? 난 모르는데.
-뭐가 천재인 거임? 난 모르겠는데.
뭐가 천재냐. 난 하나도 모르겠다는 댓글들.
하지만 선명주의 공연이 나오자마자 그런 말들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왜 저 사람이 천재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오는 곡이 바로 그 유명한 Question이죠.]
[네. 그렇습니다! 정말 20년 전에 만들어진 곡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네요.]
97년도에 작곡한 Question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흥겹고 신나고, 세련됐다.
정장을 입은 신사가 무도회장에서 신나게 왈츠를 추며 그들에게 손짓하는 듯한 분위기의 음악.
[정말 올림픽 개막을 위해 준비한 노래가 아닐까 싶을 만큼 잘 어우러지네요. 하하.]
홀로그램 속에서 연주를 하는 선명주.
다양한 무대 장치가 움직이면서 그의 무대를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가운데, 선명주의 음악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전 세계인에게 Question이란 곡이 무엇인지 보여 주듯, 무대가 암전되며 홀로그램이 바뀌었다.
[얼마 후면 뉴 밀레니엄이라고 하더군요.]
밀레니엄을 앞두고 선명주가 남긴 질문이 이어진다.
한국인들은 이미 보았던 장면이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 질문이었다.
해외 아나운서들의 코멘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20년 전에 작고한 인물이 2018년의 우리에게 편지를 썼군요! 믿기 힘든 광경입니다.]
[정말이지 묵직하게 다가오는 질문들이네요.]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는 찾아왔는가.
환경은 보호되고 있는가.
인종과 계층 간의 차별은 사라졌는가.
국가와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차분하게 그의 말을 기다릴 때.
[하지만.]
선명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그 해답을 찾아내리라 믿습니다.]
홀리듯이 바라보게 되는 미소.
다양한 국가의 검색창에 'Sun Myung Joo'가 검색되는 동안 무대는 다시금 암전되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대해 답을 하듯이 리프트를 타고 누군가 올라왔다.
"와아아아아아아!"
현장이 터질 듯한 함성.
아버지와 똑같이 정장을 입은 아들이 등장하면서 객석과 중계석 곳곳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나왔네요!]
[국민 아이돌 뉴블랙의 우주입니다!]
TV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눈에 애정이 묻어났다.
방금 전에 선명주의 공연을 보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가 키운 조카 같은 느낌.
'잘 컸네.'
훤칠하고 수려한 이목구비에 감탄이 나오는 동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화면에 자막이 깔려 나왔다.
『선우주』
인기 보이그룹 뉴블랙의 리더. 작곡, 연기를 비롯해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니된 바 있다.
북미의 방송국에서도 반갑고 신기해하는 웃음이 흘렀다.
[국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슈퍼스타. 뉴블랙의 우주입니다.]
[뉴블랙의 리더 써니네요. 저희 딸 루시가 굉장히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뉴블랙 가방을 사달라더군요.]
[하하. 정말 10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죠.]
우주가 피아노 위에 손가락을 올리면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의 중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Answer군요.]
[질문이 있으면 답도 있는 법. 우주 씨가 작곡한 곡이죠?]
TV 화면에 자막으로 Answer라는 곡이 설명되고.
세계 다양한 국가의 시청자들이 Question과 Answer의 비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한편.
"와아아……."
현장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감탄이 나오고 있었다.
'얼굴….'
조각상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외모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리는데,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머리가 물결치는 것 같다.
어찌나 신비로운지 바닷속에서 피아노를 치는 인외의 존재 같았다.
미남미녀가 등장하면 으레 그러하듯 뉴블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 검색을 시작했다.
「지금 서버에 무슨 일이…….」
「무슨 일이야? 지금 비정상적인 검색량 폭증이 있는데.」
「올림픽 때문이야.」
전 세계 수십억의 검색량을 자랑하는 사이트의 서버가 순간적으로 흔들릴 만큼 어마어마한 관심!
그러는 한편.
노래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걸… 작곡했다고?'
방금 전 불세출의 천재라고 했던 인물이 작곡한 Question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우러지는 곡이었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반응에 한국인들이 코를 쓱 비볐다.
'그래. 그게 바로 우리 애야.'
본래 올림픽 개막식은 '짜잔! 우리나라에 뭐가 있다!' 하면서 자랑하는 무대 아니겠는가.
과거 런던 올림픽에서 자국의 문학, 영화, 가요 등의 영향력을 보여 주었듯,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의 자랑거리로 나온 선명주와 선우주 부자였다.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우주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한편.
[오! 무대가 점차 변하네요.]
무대에 올라와 있던 연주자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태평소와 북과 같은 국악기가 합류하면서 곡이 순식간에 풍성해졌다.
바이올린, 장구 같은 악기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선우주가 피아노 독주를 이어 가면서 그들과 미소를 주고받았다.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
[와하… 너무 좋네요.]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저도 모르게 현실 목소리로 감탄사를 흘렸다.
시청자들도 동의했다.
'진짜 좋다.'
미래에 대한 번영과 평화에 대한 의지가 담긴 곡이었다.
국악기를 비롯해 다양한 악기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얽히는 이 버전은 한국인들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Answer는 피아노 멜로디뿐.
동서양의 악기가 혼합되어 활기찬 분위기를 풍기는 이 곡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매력이 있었다.
"곡이 너무 좋다."
"어쩜 저런 곡을 만들었대?"
한국인들의 가슴과 목이 괜히 간질간질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왠지 모르게 벅찬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중간중간 클로즈업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태평소 연주자들의 표정이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곡가도 마찬가지였다.
연주자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즐겁게 웃기도 하고.
그렇게 다른 악기들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잠시 피아노 독주가 홀로 남았을 때.
차분하고 잔잔한 연주를 하던 우주가 손가락을 멈추면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미소.
저도 모르게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미소가 미남의 입가에 그려졌다.
우주의 눈이 그들에게 향하는데… 그 안에 무언가 곡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담긴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악기들이 다시금 활기차게 끼어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동안 무대에 다양한 생김새의 어린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전통 복장을 입은 어린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원형으로 둘러싸는 가운데.
연주가 클라이막스로 다가가면서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율동을 추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인의 축제 같은 분위기.
[이게 올림픽이네요.]
[평화와 번영에 대한 메시지! 선명주 씨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정말이지 저희에게는 충분히 대답이 된 무대였습니다!]
마침내 우주가 손가락을 내려뜨리면서 피아노 연주가 끝나고, 허공 위로 폭죽이 쏘아졌다.
어마어마한 박수와 환호성 속에서 자리에 일어나 부드럽게 인사하는 선우주.
그 뒤편에 있는 홀로그램 속 아버지와 동시에 인사를 하는 모습에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이지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오늘 최고의 하이라이트 같네요. 하하.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될 것 같습니다.]
그걸 끝으로 다시금 암전되는 무대.
곧이어 비둘기 모양으로 된 조명이 반짝이고, 허공으로 천여 대의 드론이 날아오르며 오륜기를 만들 때까지.
방금 공연이 남긴 임팩트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와아아…….」
「방금 뭐였지? 진짜….」
정말이지 근사한 음악.
게다가 그걸 작곡하고 연주한 미청년의 모습은 영화에 나오는 공연 장면처럼 보였다.
데뷔 영화로 비주얼 쇼크를 일으키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스타들처럼.
'우주라고 했나?'
각국 검색 사이트의 서버가 동일한 검색어로 마비되기 시작했다.
연예인이나 대중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되는 올림픽 개막식.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던 전 세계 3억 명의 인구에게 뉴블랙과 우주라는 이름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 * *
엄격 근엄한 얼굴로 내려온 것도 잠시.
"꺄아아아아!"
리프트에서 다시 지하로 내려오자마자 여기저기서 비명과 환호성이 터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했어요!"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끼리 따스하게 포옹도 하고.
긴 한숨을 토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쪼그려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
그 속에서 나도 잠시 휘청거렸다.
"어어! 형!"
"형, 조심해요."
중현이가 잽싸게 다가와서 나를 부축해 주었다.
이가 딱딱 떨리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원석이 형이 걱정 어린 얼굴로 생수를 내밀었다.
"물 줄까?"
"네? 네…."
"몸 녹이라고 따뜻한 물 준비했어."
따스한 보리차를 마시고는 잠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들오들.
아무리 안감을 두툼하게 댔다고 하지만, 확실히 정장 하나만 입고 영하의 날씨에 나가는 건 무리였다.
비주와 지호가 팔다리를 주물주물 해 주고, 리혁이가 내 볼을 쿡쿡 찔러 댔다.
"느낌 어때요? 느낌 있어요?"
"있어. 있으니까 그만 찔러……."
동생들의 과보호를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민망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우주 씨도 고생 많았어요!"
연주자들, 무용수들 그리고 무대를 함께 했던 어린이들과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자! 찍겠습니다! 하나둘 셋!"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공연 끝난 사람들 특유의 동지애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작별을 했다.
"고생했어요. 형."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무대 아래에서 보는데 너무 잘하더라고요. 저 사진도 한 100장 찍은 거 같아요."
"괜찮았어?"
"네."
"다행이다. 나는 느낌이 하나도 없더라."
그냥 곡에 나 자신을 맡기자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긴 했는데.
워낙 긴장하고 추워서 그런지 내가 뭘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비주가 눈을 초롱초롱 뜨며 말했다.
"맞다! 아까 중간에 카메라 지그시 응시할 때요. 그때 무슨 메시지를 던진 거예요. 형?"
"아. 그거."
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임팩트 줄 타이밍이라 잠시 쉰 거야. 별생각은 없고 그냥 나 뭐 실수한 건 없겠지, 하는 정도…."
"……."
최애의 진실을 알게 된 팬의 표정이 저런 것일까.
비주가 먼 곳을 바라보는 동안 동생들과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올라가면 생각할 틈이 없다니까. 그냥 하는 거지. 지호가 알려 준대로 카메라 응시하면서 표정 연기 하고."
"역시 저의 트레이닝이 효과가 있었네요."
연기파 막내가 알려 준 대로 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뭔가 있는 척을 했을 뿐이었다.
해석은 감상자의 몫 아니겠는가.
그런 말을 하면서 동생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공연의 비하인드고 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좀 안아 주라."
"고생 했어요."
"나 진짜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흐어어……."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일이 없는데.
너무너무 떨렸어서 나도 모르게 동생들에게 칭얼대게 되는 거 같다.
0.8 김덕순 정도의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는 나에게 동생들이 수고했다는 듯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훨훨 털어 낸 후.
"후우."
동생들과 함께 출연자 대기실로 이동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아까만 해도 올림픽 개막식에서 뭘 하는지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 공연이 끝나고 나니 그제야 시선이 간다.
"오늘 개막식 어땠어?"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막내가 말했다.
"그리고 저번에 우리 봤던 얼굴 달린 새 있잖아요."
"아. 그거?"
"그것도 아까 나와서 춤추고 들어갔어요."
"……?"
내가 안 본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이따가 호텔방에 돌아가면 개막식 정주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개막식 중계는 최종 파트에 접어들고 있었다.
"와. 진짜 볼거리가 많네."
"아까는 더 많았어요."
"그래?"
동생들이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는데, 실시간 시청을 놓친 게 아쉬울 만큼 근사한 것들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공연 관계자다 보니 더욱더 눈여겨보게 된다고 할까.
나중에 우리 무대에 하고 싶은 것도 산더미처럼 적어 놨다는 비주의 말에 웃을 때.
"우와아아아아!"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 만든 것이 나타났다.
"저거 지금 드론이에요?"
"드, 드론으로 이런 기술을…!"
우리 과학 담당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하늘에 날아오른 천여 대의 드론이 하늘 위로 올림픽 오륜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미쳤다……."
"와아아……."
"저거 콘서트 같은 데 쓰면 진짜 대박일 거 같은데…."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우리를 안내해 주던 직원 분이 말했다.
"엄청 신기하죠?"
"네."
"저게 이번에 최신 기술이거든요."
"최신이면 많이 비싸겠네요."
"네. 엄청 들었어요. 대당 130만 원씩 하는데, 저게 총 1천 대 넘게 날리는 거거든요."
"아하~"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 분의 말을 되풀이했다.
"대당 130만 원에 천 대."
* * *
같은 시각.
"그렇지! 하하하!"
"아빠. 좀 조용히 해 봐."
자택에서 TV를 시청하던 대머리 남자가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우리 회사 대주주란다. 딸. 아빠 동업자라고."
"동업자보다는 일방적으로 혜택을 얻는 입장 아니야? 아빠네 회사 뉴블랙 복권 터졌다고 그러던데."
"무슨 소리. 아빠가 다 일조를 한 거야. 딸."
그런 말을 하던 박규호 대표가 자리에 앉으라는 부인의 명령에 소파에 다소곳이 앉을 때.
반짝반짝.
그의 머리 아래로 핸드폰이 반짝거렸다.
"어!"
박규호 대표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이거 봐! 우리 애들한테 공연 끝나자마자 톡이 왔네! 핫핫핫!"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과일이나 먹어요."
"네. 여보."
그러면서 톡을 확인하는 박규호 대표.
끝나자마자 대표에게 톡을 보냈다며 기뻐하던 박규호 대표의 눈에 문자들이 보였다.
덕분에 공연 잘 끝났다는 내용에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지호 [대표님♥]
지호 [그리고 저희 콘서트에 이거 쓰면 예쁠 거 같지 않나요!!!! 엄청 예쁠거 같은데!!]
지호 [(사진)]
지호 [130만원씩 1000대만 날리면 된대요~☆]
"……."
박규호 대표의 얼굴에 그늘이 깔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