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32화 (83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2화

"그어어어어……."

"정신 차려요. 아저씨."

"그어어어……."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

눈앞에서 새하얀 손이 휘휘 저어졌다.

"괜… 찮아."

쉰 목소리가 나오면서 리혁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 노래도 안 불렀는데 목은 왜 쉰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엄청 긴장해서 그런가 봐."

"그게 아니고 위장에서 위산이 역류한 거 같은데요. 새벽에 잘 때 기침 좀 했죠?"

"응."

"역류한 거네. 스트레스 받아서."

목이 따끔따끔하고 기침이 간헐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리혁이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여간 이놈의 위장병.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비주가 건네주는 물을 마셨다.

"으어어……."

그야말로 온몸이 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프다.

어깨는 잔뜩 결려 있고, 잔뜩 긴장했던 허리는 욱신욱신하고… 그야말로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어제 개막식 때문에 긴장을 엄청 했던 모양이다.

"어으으으……."

호텔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래서 지금 몇 시야?"

"10시요."

"진짜 푹 잤네."

"엄청 조용히 자더라고요. 형. 그렇게 형이 깊게 자는 거 처음 봤어요."

중현이의 말에 웃고는 호텔방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지호가 대표로 전화를 걸어서 룸서비스를 시키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경치 좋다."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일대.

어제까지만 해도 지옥의 설원처럼 보였던 곳이 지금은 평화로운 크리스마스 마을처럼 보인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리조트에 감탄하는 것도 5분.

현대인답게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다.

-'하나 된 열정', 평창 올림픽 개회식 다시 보는 최고의 순간 TOP5

-선명주-선우주 '국민 부자'.. 그들의 질문과 답이 남긴 것

-[시사 이슈]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

어제 개막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나와 아빠의 합동 공연이었다.

-어제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네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개막식 볼때 다들 비슷한 표정이었을 것 같네요 ㅎㅎ 우주야 잘했다ㅠㅠㅠㅠ

-화이팅

-응원합니다 ^^ 뉴블랙 최고

-진짜 명곡들도 명곡들인데 어제 그 축제 같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ㅠㅠㅠㅠ

-우주 오빠ㅠㅠㅠㅠㅠ 잘 컸다

오빠가 잘 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고개를 갸웃하고는 댓글을 주르륵 읽을 때였다.

-ㅋㅋㅋㅋㅋㅋㅋ어제 진짜 이거 보고 나서 여보낚시 보니까 너무 적응 안 됏음

댓글 하나가 눈에 띄면서 뭔가 퍼뜩 떠올랐다.

"아."

"왜요?"

"어제 여보낚시 했네."

"아!"

개막식에 정신이 팔려서 잊고 있던 예능이었다.

중현이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결방인 줄 알았는데 방영을 했나 보네요."

"그러게. 개막식이라 쉴 줄 알았는데……."

지상파 3사의 드라마와 예능이 다 결방을 해서 이것도 안 할 줄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챙겨볼걸…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호텔방에 돌아와서 김덕순 여사와 통화를 한 채로 잠들었을 정도로 피곤했던 게 어젯밤이었다.

"아쉽당."

지호가 말했다.

"개막식 때문에 시청률 별로 안 나왔을 텐데……."

"어쩔 수 없지."

평창 올림픽 이슈가 정치, 경제, 사회문화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을 뒤덮는 상황이니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포털 연예면을 보는데 이상한 기사가 보였다.

-여보 낚시 2회, '올림픽 특수' 덕에 IBC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 19.8%

"……."

"……."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봤다.

"몇 프로?"

"십… 십구 점 팔 프로라는데요."

"반올림하면 20프로예요."

리혁이의 친절한 설명에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니까….

어제 올림픽 개막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방영한 여보낚시 시청률이 어마어마한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이었다.

"드라마도 이 정도는 안 나오지 않아?"

"그… 그렇죠?"

종편이나 케이블 드라마가 초대박을 터뜨려야 나오는 시청률이었다.

그것도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되어야 저만한 시청률이 나오는 건데…….

"어째서…?"

의문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기사가 설명해 주고 있었다.

어제 올림픽이 끝난 사람들의 상황.

-아. 개막식 너무 잘 봤다. TV 끌까?

-뭐 볼 거 없나.

여전히 개막식의 흥분이 남아 있던 시청자들이 들뜬 얼굴로 TV 채널을 돌리고 있던 상황.

-볼 게 없네.

-딴 채널 돌려 봐. 치킨도 아직 안 왔는데….

예능과 드라마가 결방한 지상파 3사에서는 시사 프로만 나오고 있는 상황.

그러다 마침 IBC 채널을 트니 나와 중현이가 나온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의 공연자였던 내가 나오면서 <여보 낚시>의 2회는 볼 게 없던 사람들의 관심을 쭈우우욱 빨아들였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와."

지호가 말했다.

"저 자주 놀러가는 게임 사이트 있는데 거기서 올림픽이랑 여보 낚시 얘기가 엄청 많아요."

"그래?"

"이거 봐요. 형. 베스트 절반이 형이에요."

"대박…!"

중현이와 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워할 때였다.

멈칫.

"잠깐만."

내가 중현이한테 물었다.

"중현아. 우리 2회 내용으로 나올 만한 게 뭐가 있지?"

"2회 정도면 아마 2일 차 첫 낚시까지 했을 테니까…. 으음……."

예능 경험치를 많이 쌓아둬서 그런지 방송 분량으로 어디까지 나오겠다는 게 딱 그려진다.

아마 중현이가 2일 차 상어를 낚는 장면까지 나왔을 거 같다.

거기까지는 참 좋다.

그런데….

그 전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느아아악!

내가 바라쿠다 반토막을 낚아 버린 장면.

-이 교활한 물고기!

-이거 무식하게 힘만 센 물고기네!

중현이와 나의 낚싯줄이 서로 얽혀서 추태를 부렸던 장면.

태국 수플레들을 불러서 짤랑짤랑 팔찌를 흔들며 풍어제를 했던 장면 등등.

그런 장면들이 시청률 20%를 찍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솜털이 쭈뼛 솟는 기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으하하하하!"

"흐하하하! 아, 진짜 태국 가서 낚시 하면서 이런 거 한 거였어요?"

"와. 형들 진짜 개못하는구나."

못돼 먹은 애들이 하이라이트 클립을 검색하면서 깔깔 웃는 중이었다.

중현이와 내가 행복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우린 본연의 목적을 이룬 거야. 중현아. 시청률 대박 터뜨리는 게 우리의 목표였잖아."

"맞아요."

"드라마도 못 찍는 20프로를 우리가 예능으로 찍은 거잖아. 이거 어디 가서 자랑해야 돼."

딩동.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룸서비스입니다!

나와 중현이가 펄쩍 뛰어서 이불 아래로 숨었다.

드르륵.

수레를 밀고 들어온 호텔 직원 분이 테이블에 룸서비스 메뉴를 깔아주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분은 안 계시네요?

-저기 이불 아래 숨어 있어요.

-아.

호텔 직원 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제 여보낚시 너무 재미있었어요.

"네…."

이불 속에서 대답하는 우리 목소리에 호텔 직원 분이 웃으며 나갔다.

나와 중현이의 모습에 리혁이가 비웃는 가운데, 식사를 하면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뭔가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좋긴 좋다.

시청률 20퍼센트가 어디야.

게다가 임팩트 있는 장면들은 인터넷에서 밈처럼 재생산되는 중이었다.

[호불호 없는 아이돌.jpg]

(상어를 낚는 사진.jpg)

불호는 다 죽었기 때문 (끄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현이는 상어를 낚아..

-세상에 힘이 얼마나 좋으면 상어를 낚냐구ㅋㅋㅋㅋ

-확신의 호불호 없음ㅋㅋㅋㅋㅋㅋ

-자연 vs 인간.. 근데 이제 인간이 이겨 버리는

-앜ㅋㅋㅋ 자연 조빱이었네ㅋㅋㅋ

웃음을 터뜨리는 나에게 중현이가 글을 하나 보여 주었다.

"형. 이거 봐요. 형 보고 낚시꾼계의 타짜래요."

"오."

타짜라면 뭔가 고수를 칭하는 말 아니겠는가.

흐뭇하게 웃으며 글을 클릭했다.

[낚시꾼계의 타짜 선우주]

(반토막의 바라쿠다.jpg)

???: 난 물고기의 반만 가져가

내가 눈을 지그시 감자, 동생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래 댓글들도 웃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요? 제가 아는 최고의 낚시고자였어요

-선우주식 물고기 한 마리 낚는 법: 두 마리 낚으면 됨ㅋㅋㅋㅋㅋㅋㅋ

-와 주식이랑 똑같네ㅎㅎ

-반토막 근데 내가 다 억울하더라ㅋㅋㅋㅋㅋㅋ 웃기긴했지만

-낚시도 결국 될놈될이란 걸 보여 준 어제 회차

처음 출연했을 때 내가 원했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물수저', '용궁의 후계자' 같은 멋진 타이틀과 달리 반토막의 남자가 되어 버린 나.

"형."

중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희일비하면 안 되는 거예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말은 그리하지만 상어를 낚은 업적으로 화제가 된 게 은근히 기쁜 모양이다.

얘 프사가 벌써 상어 낚는 짤로 바뀌었으니까.

중현이가 으스대는 모습에 묘하게 얄미운 기분을 느낄 때, 비주가 슥 폰을 내밀었다.

"야. 김중현. 이거 봐봐."

"음?"

"너 낚시 잘한다는 칭찬 글이야."

"진짜?"

핸드폰을 받아 든 중현이 곁으로 얼굴들이 쏙 모였다.

[솔직히 허탕 많이 쳤다고 하지만 김중현 낚시 개잘하는 거임]

KG 드래곤스보다 타율 높음

"……."

KG 드래곤스 서포터의 손에서 핸드폰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갔다.

토마토 주스를 입가로 주르륵 흘리는 누군가의 모습에 동생들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동계 올림픽이라 야구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 * *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평창 올림픽 선수촌을 한 바퀴 돌았다.

"국가대표 여러분! 화이팅이에요!"

"응원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중에서 수플레들이 꽤 있어서 방문 요청을 받은 터였다.

직접 방문해서 '화이팅!' 하며 사진도 찍고.

굿즈도 선물해 주고.

팬은 아니지만 반갑게 맞이해 주는 선수들, 코칭스태프 분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어제 낚시 진짜 재미있었어요! 중현 씨 상어 낚던데!"

"감사합니다."

"중현 씨는 진짜 우리 진천 선수촌으로 와야 되는 인재인데… 어제 낚시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한 코치 분이 말했다.

"중현 씨 같은 미남이 왔으면 우리나라 비인기 종목이 바로 인기 종목이 되어 버리는 건데."

"하핫."

"그 피지컬에 이 얼굴이면… 크으!"

중현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는 동안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운동선수로 갔어도 대성했을 피지컬과 외모를 지니고 있는 우리 셋째였다.

훤칠한 키.

올림픽 선수들처럼 적당히 탄력이 붙은 근육에 꽤 날렵해 보이는 미모라 그런지 언뜻 보면 운동선수 같기도 하다.

어떤 의상이든 스포티하게 소화한다고 해야 되나. 리혁이가 바람막이 입으면 허수아비 같은데, 중현이가 입으면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또또. 맘속으로 나 욕했죠."

"리혁아. 세상이 그렇게 다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 같니?"

날카롭긴.

아무튼 국가대표 선수들과 코치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중현이를 앞세워 우리는 홍보대사 신분으로 선수촌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대박."

"진짜 맛있다…."

평창 올림픽 선수촌 식당이었다.

별 기대 없이 방문했는데 진짜 최근 들어서 이렇게 맛있는 구내식당은 처음이다.

역시 밥에 진심인 민족이야.

"근데 형들 그거 봤어요? 메뉴 중에 뉴불백 있던데."

"아. 맞아."

한식 메뉴 중에 뉴불백이 있던데, 외국 선수들이 생각보다 은근히 많이 담아가서 신기한 장면이었다.

엄지 들어 보이면서 '내가 개발한 메뉴다' 하고 말하니 막 자기들끼리 웃었다.

진짜인데….

"크으. 맛있었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잠 잘 자고 밥 잘 먹으면 그게 행복이야."

동생들과 함께 구내식당을 빠져나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쬔다.

오늘 하루는 평창에서 잠시 올림픽 분위기를 즐기고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개막식 공연을 준비한 나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이기도 하고, 이제 폐회식 무대 준비를 하기 전의 마지막 휴식이었다.

2주 가까이 밤샘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찔하긴 하지만….

"일단 오늘은 진짜 즐기고 가자!"

"고고고!"

이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알차게 올림픽 플라자를 돌아다녔다.

이번에 평창에서 핫할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한국 대표팀의 컬링 예선 경기도 잠시 관람하고.

오늘 첫 금메달이 나온다는 경기도 관람하러 왔다.

[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키애슬론 7.5+7.5km 결승전]

크로스컨트리 스키.

일명 '설원의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종목이다. 평지랑 언덕 등으로 구성된 코스를 스키를 타면서 경주하는 종목.

"그러니까 15km를 쉴 새 없이 질주하는 거지?"

"맞아요."

리혁이가 올림픽 책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체력적으로 힘든 경기래요. 거의 정신력을 극한으로 시험하는 스포츠라고."

"대단하네."

미리 자료조사를 한 우리 메인보컬이 손가락으로 코스를 가리켰다.

자동차 레이스를 하는 코스처럼 눈 덮인 길들이 쭈욱 나 있는데, 자전거를 타도 한참 달려야 할 정도로 길었다.

"어? 어! 형들, 저기 선수들 입장하고 있어요."

"오오오."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폴대를 들고 입장하고 있었다.

육상에 가까운 종목이라 그런지 탄탄한 허벅지 근육을 자랑하는 선수들.

"저기 북유럽 선수들이 이번 결승전의 우승후보들이에요. 특히 노르웨이가 이 분야의 절대 강자래요."

"와."

"헐! 저기 선수들 근육 봐요. 리혁이 형은 살짝 밀기만 해도 하늘로 날아가겠다."

척 봐도 최종보스 같은 자태를 풍기고 있는 북유럽 선수들이었다.

산이 있고 눈이 있는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스키가 생활 스포츠라서 그렇다나.

그렇게 노르웨이 선수들에게 주목을 하고 있을 때,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오늘의 주인공이 나왔다.

"저기 나온다!"

"수플레구나!"

신예 유망주이자 '여기가 뉴블랙의 나라입니까?'라는 발언을 남긴 영국 국가대표 수지 클라크.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수가 붉은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였다.

"조용히 좀 해요."

리혁이가 쉿 하며 말했다.

"우리 발견하고 부담 가지면 어떡해요."

"이미 발견한 것 같은데?"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 우뚝 선 채 토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갈색머리의 20대 선수.

귀여운 토끼를 닮은 얼굴의 선수가 허어 하며 입가를 틀어막았다.

이내 상기된 얼굴로 장갑 낀 손을 흔드는 모습에 우리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

근처 자리에서도 탄성이 들려왔다.

영국 서포터들 속에서 콧수염을 지닌 중년의 영국인이 반갑다는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이구만!」

「누구세요…?」

「저 아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하하! 여러분 이야기를 매번 해서 아주 잘 알고 있죠.」

「아버님이셨군요! 저희가 바로 따님의 가수입니다.」

아버님과 어머님과 악수를 나누었다.

「우리 딸이 어찌나 뉴블랙의 팬인지, 이번에 고글도 특별하게 디자인을 주문제작했어요.」

「정말요?」

「저기 봐요.」

다리를 개다리처럼 흔들거나 폴대를 앞뒤로 흔드는 선수들 속에서 수지 클라크가 고글을 썼다.

"꼬… 꽃무늬다!"

"확실해요! 저건 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패션이에요!"

분홍색 꽃무늬 고글을 낀 선수가 우리에게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화이팅! 하면서 우리가 응원을 보낸 후.

침을 꿀꺽 삼킨 수지 클라크 선수가 대열에 합류했다. 무슨 포인트가 있다고 하는데, 신예 선수라 그런지 출발 순서가 뒤였다.

곧이어 버저음과 함께 출발하는 선수들.

"와아아아아아아아-!"

폴대를 앞뒤로 휘저으며 나가는 선수들이 슝! 슝! 하고 빠른 속도감을 자랑하며 멀어진다.

곧이어 화면에 선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계 올림픽의 마라톤이라는 말이 정말인지, 선수들이 페이스를 조절하며 엎치락뒤치락한다.

"오!"

"어어!"

한 끗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순서가 바뀌는 것이 반복될 때였다.

마지막 레이스.

장장 40분에 걸친 레이스가 종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노르웨이의 서포터들이 노르웨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크로스컨트리의 최강자라는 나라답게 다수의 노르웨이 선수들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있었으니.

"수플레!"

「수지!」

우리의 영국 토끼가 팡팡팡 폴대를 휘저으며 속도를 내고 있었다.

"어! 어!"

"어어어!"

하얀 유니폼의 핀란드 선수를 지나쳐 노르웨이 선수에게 접근하는 수지 클라크 선수.

견제가 들어오지만 슝 하고 부드럽게 피한 그녀가 코너에 접어들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처럼 바깥으로 코너링을 한 수지 클라크 선수가 선두에 접근하고.

"어! 어!"

우리가 벌떡 일어났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노르웨이 선수를 한 끗 차이로 제친 수지 클라크.

"와아아아아아아!"

영국 서포터와 우리가 서로 손뼉을 마주치거나 놀라면서 입을 벌렸다.

노르웨이 선수들이 이를 앙다물고 추격을 했지만 승기를 잡은 수지 클라크가 격차를 벌려 갔다.

현장의 함성이 점점 커져 가고.

2위와 격차를 크게 벌린 수지 클라크 선수가 이제 피니시 라인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뒤를 흘깃 바라보던 수지 클라크 선수가 폴대를 들어 빙빙 휘둘러 세리머니를 했다.

그리고….

통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현장의 영국 서포터들이 우리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이변.

아버님이 얼떨떨해하는 나를 포옹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고함처럼 외치고 있을 때, 고글을 벗고 들어온 수지 클라크 선수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얘들아."

"네!"

동생들과 재빨리 봉투를 뒤적뒤적하고는 금색 모자를 착용했다.

금메달리스트의 가수 뉴블랙.

금색 모자를 쓰고 하트를 보내는 우리에게 수지 클라크 선수가 도깨비의 춤을 추며 화답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런 우리를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영국 서포터들.

동시에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각국의 선수단과 서포터들은 놀라면서 허탈한 웃음을 보이는 중이었다.

"잘했어요!"

"진짜 장하다. 우리 수플레!"

우리의 응원에 감격해서 우는 영국 선수의 표정.

인터넷에서 '합법 도핑'이라는 밈이 붙게 된 이번 올림픽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