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3화
같은 시각.
영국에서는 환호성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수지!"
"수지!"
수지 클라크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쌀쌀한 비가 내리는 지방 도시의 술집마다 맥주가 날개 돋힌 듯이 팔려 가고 있었다.
-수지 클라크! 마지막 스퍼트에 돌입했습니다! Fantastic! 그야말로 질풍 같은 질주입니다!
천재 유망주가 출전했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보고 있던 스코틀랜드의 시청자들.
항구 도시 글래스고의 항만 노동자들이 기름때 낀 작업복 차림으로 맥주잔을 휘두를 기세로 들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
"쪼금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그들의 응원이 닿은 것일까.
수지 클라크가 1위를 탈환하더니…….
"어어어어!"
그 상태로 격차를 벌리며 바로 1등으로 골인해 버렸다.
"와아아아아아아!"
"수지!"
"수지!"
"맥주! 여기 맥주 한 잔 더!"
여기저기서 포옹하면서 맥주잔을 부딪치고.
맥주 거품을 묻힌 남성들의 환호성 속에서 주인이 TV 볼륨을 높였다.
-믿을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이번 올림픽은 수지 선수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노르웨이의 선수들을 이기기에는 아직 5년 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틀렸군요!
-그녀가 해냈어요!
BBC의 아나운서들이 흥분해서 입에 침을 튀기고 있는 동안 화면 아래로 큼지막한 자막이 떴다.
[수지 클라크 금메달 확정!]
그녀가 세리머니를 하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장면이 슬로우 화면으로 다시 나온다.
-올림픽 첫 금메달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게임은 언제나 노르웨이 선수들의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벽을 브리튼이 깬 거예요!
"브리튼이 아니고 스코틀랜드겠지."
"잉글랜드 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좋은 건 다 가져가려고 한다니까."
스코틀랜드의 시청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맥주 거품을 흡입하고 있을 무렵.
올림픽 첫 금메달이 영국에서 나왔다는 소식은 전 세계 언론을 뒤덮고 있었다.
북유럽 선수들이 주로 가져갔던 스키애슬론의 금메달을 영국이 최초로 가져간 대이변!
-'놀랍다' 영국에 스키 천재가 나타나다
-올림픽 첫 금메달이 스코틀랜드의 스키 천재에게 돌아가다
-첫 금메달리스트 수지 클라크, '뉴블랙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서구권 선수의 소식답게 서구권 각국의 언론에 수지 클라크의 얼굴이 도배되고 있었다.
BBC와 로이터 통신, 뉴욕 타임스 등.
곳곳에 보도되는 이름에 영국인들이 왠지 모를 흐뭇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음?"
그런데 기사 중간중간에 뉴블랙이란 이름이 자꾸 보였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영국인들이 중얼거렸다.
"시발, 뉴블랙이 대체 누군데? (Who the fuck is The New Black?)"
"몰라."
그런 사람들의 앞에 수지 클라크의 TV 인터뷰가 뜨기 시작했다.
TV 볼륨이 올라간다.
갈색머리의 귀여운 20대 선수가 양 뺨에 손을 올린 채 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선 BBC에서 축하 인사드립니다. 수지. 정말이지 판타스틱한 경기 그 자체였습니다.]
[감사해요.]
[이번 금메달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수지 클라크의 눈이 생각에 잠겼다.
[우선, 설질에 맞는 스키와 왁스를 잘 선택한 것 같아요.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그날 상황에 맞는 장비를 착용하는 것도 승패를 가르거든요. 체력 안배도 전략적으로 잘 된 거 같고요.]
차분하게 전략과 장비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국가대표가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도 큰 도움이 된 거 같습니다! 부모님, 그리고 내 고향 글래스고, 사랑합니다!]
글래스고의 맥주 판매량이 다시 한번 또 급증할 때, 수지 클라크가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오늘 승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저의 Oppa들이었어요.]
[Oppa? 그건 뭐죠?]
[제가 부르는 애칭입니다. 바로 세계 최고의 K팝 그룹 뉴블랙을 부르는 호칭이에요.]
[그렇군요.]
[오늘 현장에 뉴블랙이 절 응원하겠다고 온 거 있죠! 그걸 보고 어찌나 힘이 솟던지… 정말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수지 클라크의 인터뷰가 끝나고 BBC의 자료 화면이 흘러나온다.
경기 시작에 앞서 영국 서포터들과 함께 손을 마구 흔들어 주는 뉴블랙의 모습.
"아, 쟤네… 어디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어디서 본 얼굴이긴 한데."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영국에서도 서서히 세를 불려 가고 있는 뉴블랙 팬덤이었다.
하여튼.
영국인들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뭐…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맙다.'
뉴블랙이 보내 준 응원이 정말 큰 원동력이었다는 말에 그저 감사 인사를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영국의 신문 가판대에는 온통 수지 클라크의 얼굴로 도배되어 있었다.
다양한 헤드라인이 첫 금메달을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서 황색언론의 대표주자 더 선(The Sun)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음?"
길을 걷던 행인들이 멈춰 서서 신문을 집어 들었다.
분홍 꽃무늬 선글라스를 쓴 선수의 사진 위로 평소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뉴블랙 리더의 사진이 작게 붙어 있었다.
태양 모양의 사진.
뉴블랙의 '썬'이라는 멤버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는 인터뷰 위로 뜬 더 선의 헤드라인.
-고마워요! 또 다른 선! (Thank you, another Sun!)
영국의 대중들에게도 서서히 이름을 알려 가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물론.
"젠장!"
"뉴블랙이 대체 누군데 금메달을 빼앗긴 거야?"
"영국 놈들 취향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자그맣고 초등학생처럼 생긴 애들이 뭐가 좋다고."
……노르웨이에 퍼진 약간의 악명도 함께였다.
* * *
"오."
인스타에 신규 메시지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이건 또 새로운데."
"뭐가?"
"인스타에 메시지들이 엄청 들어와 있어서."
궁금해하는 석환 형에게 내 인스타에 들어온 DM들을 보여 주었다.
실시간으로 수백 개씩 증가하고 있는 메시지들.
안경을 쓴 우리 수학귀신이 DM들을 들여다보고는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올림픽 끝나고 나서 온 메시지들이야."
우선 개막식이 끝나고 나서는 일본어로 된 협박과 똥 이모티콘이 가득 들어왔다.
클릭은 안 해 봤지만 혐오스러운 사진이나 합성사진도 많은 거 같고.
자기들 딴에는 똥 이모티콘을 보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근데 나 궁금한 게, 이런 거 보내면 자기가 제일 먼저 보는 거 아니야?"
"그렇지."
"보내는 사람들 심리가 정말 궁금해서 그래. 이상한 사진을 보내는 사람은 자기가 그걸 먼저 보는 거잖아. 비위가 좋나?"
"악플러 심리를 일반인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 낸들 알겠니."
"그건 또 그러네."
아무튼 개막식에서 독립 운동 관련 퍼포먼스가 들어 있던 것이 불만인지 내게 항의하는 일본 네티즌들이었다.
"왜 연출진이 아니고 나한테 보내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이번 올림픽 공연의 하이라이트 같은 느낌이라서 그래. 사상 최흉의 반일 괴수 같은 포지션인 거지."
"반일 괴수래."
내가 막 웃으니 석환 형이 노트북으로 캡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일본 서점에 전시된 혐한 서적 코너에 '한국 정부가 키운 반일 괴수' 같은 타이틀과 함께 우리 얼굴이 붙어 있었다.
왜 동생들과 내 뒤로 무시무시한 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것을 합성해 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좀 사악하게 묘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강해 보이는데."
"그런 감이 좀 있긴 하네."
아무튼 일본인들의 메시지 위로 가득한 영어 메시지들을 보여 주었다.
"이건 어제 수플레 선수 금메달 따고 나서 들어온 메시지들."
"영어네."
"응. 영국인들이 엄청 고맙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 위에 노르웨이 사람들은 대충 쌍욕이랑 살해 협박."
"……경호 인력을 좀 늘릴까? 혹시 모르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야기를 한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열이 오를 대로 올라서 나한테 퍼부은 거 같긴 한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저 웃을 뿐이었다.
흔히들 유럽 사람들은 쿨하고 개인주의적이어서 올림픽 같은 거 신경 안 쓴다 하는데, 내가 봤을 때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뭐. 대충 이렇다는 걸 보여 준 거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석환 형에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거야?"
"일단은 개막식 반응 관련해서 TF팀이 모니터링 해 준 결과를 이야기 해 주려고."
노트북을 바라보던 우리 TF팀장이 말했다.
"우선 개막식 반응이 좋은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네가 느끼고 왔을 거고."
"그건 인정. 나 좀 잘한 듯…?"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수학귀신이 말을 이었다.
"공연의 관점을 떠나 뉴블랙의 활동 측면으로 살펴봐도 정말 이점이 큰 공연이었어. 지상파 3사 시청률을 합치면 50프로 가까이 나와서 그야말로 잭팟이 터졌고…."
"50프로?"
"한국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야. 일본은 32퍼센트."
"……."
"미국에서는 20프로 정도를 찍어서 역대 올림픽 개막식 Top 5 안에 들어간다더라."
그야말로 전 세계 머글들이 시청하는 무대에서 음악 방송을 한 격이었다.
그 때문인지 석환 형이 보여 주는 지표들의 숫자가 어질어질하다.
거의 1억 회 가까이 검색되었다는 '선우주'와 '뉴블랙'이라는 키워드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나오는 반응들.
그리고.
내가 나왔던 무대 영상의 직캠이 올림픽 입덕 직캠으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여, 역시…."
"역시?"
"착한 일을 하면 보답을 받는 건가? 그런 건가?"
평창 올림픽이 불안불안하다는 시기에 사실상 무급으로 퍼포머 출연을 결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구 웃음을 터뜨리는 석환 형에게 말했다.
"진짜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
"그러게 말이다. 세상에 어떤 아이돌이 올림픽으로 입덕을 시키나 했는데, 그게 너희였더라고."
믿기 힘들 만큼 좋은 지표들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올림픽 입덕이라니.
수플레들 사이에서 '평창 입덕이야? 그럼 넌 평민이군' 하는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석환 형이 노트북 모니터에 뜬 망고 사이트를 보여 주었다.
"음원 성적도 좋아. 현재 망고에서도 Answer가 실시간 1위야."
"응. 아까 비주가 보여 줬어."
"그리고… 이 Answer에 대해서 이런저런 요청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거든. 공익광고라든가."
Answer의 음원을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고 있던 용건이었다.
"곡의 생명력을 더 길게 늘리자는 이야기지? 광고 노출이나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말이야."
"맞아."
대체로 Question과 Answer 같은 곡은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메시지가 너무 강하니까.
가끔 영화 중에서 '와 이거 진짜 명작인데, 두 번은 못 보겠다' 하는 명작들이 있다. 그만큼 감정적인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감정적인 후유증을 길게 남기기 때문이다.
아빠와 나의 곡도 비슷한 경우다.
곡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한두 번 들으면 더 듣기 힘든 곡이었다. 마치 웅장한 교향곡을 듣듯이.
지금이야 차트 1위에 올라와 있지만 일주일 정도면 지쳐서 쭉 빠질 느낌.
"그래서 어디서 요청이 들어왔는데?"
"이건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공익 광고에서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캠페인 노래로 쓰고 싶다는 거고. 이건 기업에서 들어온 건데…."
적절하게 Answer를 대중들의 귓가로 스며들게 할 만한 좋은 기획안들이 보였다.
같이 검토하면서 이건 좋고, 이건 아니고 하면서 1차적으로 걸렀다.
"동생들이랑도 한 번 상의를 해 볼게. 중현이랑 리혁이가 걸러 주는 게 또 도움이 돼서."
"한 번 살펴보고 얘기해 줘."
"알았어."
그쯤에서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반응이나 Answer의 음원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그리고, 나 한 가지 더 있는데."
"음?"
석환 형에게 인스타의 메시지 창을 보여 주었다.
"미국 연예인들이랑 이걸로 종종 소통하거든. 너 노래 잘 듣고 있다 뭐 그런 거 있잖아."
미국 스타들이 친분 및 인맥 도모용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적극적으로 답을 해 주는 편이었다.
그래미 이후로 우리 편을 들어 줄 인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대부분은 플러팅 문자라서 혹시 남자한테 관심 있냐, 파티 올 수 있냐 하는 것들이지만….
그중에 간혹 좋은 것들도 있었다.
회사끼리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부끄하지만, 사적으로 운을 뗄 만한 비즈니스 용건들.
"콜드 브라운한테 메시지가 왔어. 이번에 Answer를 너무 잘 들었다고, 그걸로 콜라보 생각 있냐고."
"코… 콜드 브라운?"
"응."
현시대 최고의 팝스타 중 하나.
미국 가요계에서 원탑 힙합 가수로 군림하는 인물의 이름에 석환 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콜라보라니 그게 무슨 이야기야?"
"Answer의 비트와 멜로디 일부를 기반으로 힙합 곡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고.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장문으로 메시지 보내놨던데."
장문으로 이번 공연을 얼마나 유심히 보았고, 멋지고 어메이징하고, 선명주 님 존경하고 짱짱 등등.
Answer에 대한 작업 제안을 꺼낸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진심으로 보이는 용건이었다.
"미국 에이전시 통해서 한 번 화상 미팅 잡아달라고 전해 줘."
"지금 바로 할게."
"급하게 처리할 필요는 없고."
"빨리 처리해야지. 콜드 브라운이면…. 이거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야, 우주야."
놀란 얼굴로 고개를 휘휘 젓는 모습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일하러 간다."
TF팀 사무실을 나서는 동안에도 석환 형이 놀라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 * *
달칵.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리혁 씨."
-네.
"두 번째 파트에서 숨이 너무 빠르게 들어가는 거 같네요. 반 호흡만 더 늦게 들어가겠습니다."
-잠시만요.
허밍을 하며 목을 부드럽게 푼 리혁이가 디렉팅에 맞춰 파트를 불렀다.
반 호흡 늦게 들어가서 조금 더 가사가 귓가에 잘 녹아들고 끝음 처리가 부드러워졌다.
-이렇게요?
"정확해. 그렇게 한 번 더 가자."
이윽고 녹음실에 들어간 리혁이의 노래에 감탄이 나왔다.
옆에 앉은 엔지니어가 말했다.
"어떻게 된 게 리혁이는 가면 갈수록 실력이 느냐."
"밥 먹고 노래만 부르면 저렇게 되더라고요. 저도 슬슬 따라가기가 벅차다니까요."
뒤에 앉아서 가사지를 보고 있던 막내가 해맑게 웃었다.
"근데 리혁이 형은 노래라도 잘해야죠. 성격이 저런데."
"흐하하!"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니 녹음실 안에 있던 노래 요괴가 눈을 찌릿하고 째려보았다.
모른 척하면서 녹음을 이어 갔다.
이곳은 바로 신곡 <백야>의 녹음 현장.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무대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타이틀곡의 녹음이 한창이었다.
"비주 씨."
-네!
"빌런을 주제로 한 만큼 조금 나른한 목소리로 불러 주세요. 공기를 입술처럼 도톰하게 만든다는 느낌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니까 어렵네."
지금까지 부르지 않았던 장르인 만큼 보컬도 새롭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내가 비주 파트를 불러 주자, 안에 있던 비주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녹음을 시작했다.
빌런을 주제로 하는 이번 신곡.
그 때문에 상당히 곡이 제법 변화무쌍한 편이었다. 저음 부분도 상당히 많고.
"아… 아……."
저음으로 목소리를 내던 중현이가 말했다.
"저 이러다 목소리가 아예 잠기면 어떡하죠…."
"중현아."
"네."
"넌 그냥 원래 목소리대로 불러. 너 거기서 더 낮아지면 초저주파야. 박쥐랑 이웃사촌 해야 될걸?"
박쥐는 초음파라는 누군가의 지적을 흘려넘기며 열심히 녹음을 이어 갔다.
6시간가량 걸친 1차 녹음을 마무리한 후.
각자 개인 연습을 하기 위해 녹음실을 떠나던 동생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형 오늘 외국 사람 만나기로 했어요?"
"콜드 브라운이랑 화상 미팅하기로 했어."
"아. 그거구나."
눈을 크게 뜬 졸개들이 구경하겠다면서 소파에 둘러앉았다.
목캔디를 우물우물하던 중현이가 물었다.
"그래서 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아니, 아직."
너무나 좋은 기회긴 하다.
하지만 Answer의 비트를 어떤 식으로 힙합곡으로 재탄생 시키겠다는 것인지 일단 계획은 들어 봐야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화면에 얼굴이 떴다.
-Oh.
잘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화면 속에서 입가를 매만지고 있었다.
티셔츠 차림에 날렵한 몸매.
곱슬곱슬한 머리와 턱수염이 근사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동물로 비유하자면 늑대와 같은 인상.
무리의 우두머리 늑대 같은 인상이었다.
-안녕.
「오랜만이에요. 콜드. 저희 아버지 공연 모금 파티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것 같은데.」
-그랬지. 오랜만이네.
친분이 없는 건 아닌데 데면데면한 사이 정도.
서로 간에 안부를 나누면서 아이스 브레이킹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그가 용건을 꺼냈다.
-우선 올림픽을 정말 인상 깊게 봤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 얼굴 달린 새가 돌아다닐 때만 해도 저걸 뛰어넘는 게 과연 있을까 싶었는데, 바로 미스터 선명주가 등장하더군.
그 이후로 아빠와 나의 공연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날렵한 눈매가 열기로 번들거리는 걸 보니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메시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 질문과 답. 최근에 내가 찾고 있던 주제가 바로 그런 '해답'에 대한 곡이었거든. 주제는 다르지만 인생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에 대한 답을 주제로 곡을 쓰고 있었던 차에 네 공연을 본 거야.
거기에 Answer의 비트와 멜로디를 곁들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차분하게 그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계획을 들으면서 마음이 서서히 넘어간다.
반쯤 넘어갔을 때.
-너희와 나, 그리고 헤일리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사람?」
중현이의 말에 콜드 브라운이 멈칫했다.
머릿속이 꼬였는지 'Umm…' 하던 콜드 브라운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것도 맞는 말이지만 공통적으로 셋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미에서 물을 먹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애가 피어나는 분위기 속에서 콜드 브라운이 말했다.
-나는 일단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쟁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원하는 걸 얻어야 돼.
그가 눈을 빛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적을 말할게. 우주.
"OK."
-너의 보컬과 나의 랩, 그리고 거기에 깔린 Answer라는 곡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합쳐서….
상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년에 그래미를 타는 거야.
"……!"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합격'을 외칠 뻔했다.
"허어어!"
"그, 그렇지! 그거지!"
"여러분. 귀인이 오셨어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는 졸개들의 모습에 상대도 'yeah' 하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