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4화
콜드 브라운.
본명은 피니어스 제섭.
한국에서 '미국 래퍼 누구 아세요?' 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1순위로 꼽는 인물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대단한 가수였다. 2010년대 최고의 팝스타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들어갈 만큼.
-롤링 스톤즈 선정 200대 힙합 앨범 13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
-2010년대 최고의 명반을 낸 가수.
현시대의 전설이 되어 가는 이 래퍼는 힙합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콜드 브라운이 그래미를 보이콧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모든 힙합 뮤지션이 그 뜻에 동참했으니까.
-엿 먹어라! 그래미!
휑하니 비어 있던 그래미 어워드의 가수석이 떠오른다.
그만큼 힙합 씬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고, 본인부터가 미국 힙합 최대 레이블 넥스트도어(NXTDOR)의 수장이다.
아무튼 가요계에서 느끼는 위상과 이미지는 이런데….
희한하게 미국과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그래미 밈으로 유명했다.
[???: 제발 그래미 주세요]
(콜드 브라운이 뮤비에서 울고 있는 장면.jpg)
이제 줄 때 됐자나요ㅠㅠㅠㅠㅠ
인터넷상에서 콜드 브라운은 그래미를 타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이미지로 유명했다.
활동한 지 15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항상 그래미 본상 후보에만 그쳤기 때문이다.
항상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는 포지션이었다.
하필이면 그 해에 그래미가 밀어 줘야 하는 백인 여자 싱어송라이터가 데뷔를 했다든가. 흑인과 여성 배척으로 욕을 먹은 그래미가 흑인 여성 가수에게 상을 몰빵해서 물을 먹었다든가.
게다가 본인도 그걸 의식해서 앨범이 매해 더 예술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나는 말이야.
노트북 화면 속에서 잘생긴 래퍼가 입매를 매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룰 건 다 이뤘어. 끝내주는 여자들과 데이트를 하고, 수영장이 달린 커다란 집이 있지. 차고에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페라리, 람보르기니가 쌓여 있고. 하지만 물질적인 것에는 이제 관심이 없어. 오직 명예에만 관심이 갈 뿐이야.
그의 눈에 울분이 가득했다.
-15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지 못한 그래미를…….
그래미라는 단어에 그간 서린 회한과 눈물이 느껴진다.
밈이 아니라 진짜였구나.
감정이 북받쳤는지 'Sorry' 하던 콜드 브라운이 화면 바깥으로 잠시 나가서 어흐흑! 울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소곤거렸다.
"감수성이 좀 예민하시구나."
"원래 예술가들 감성이 그렇다고 하잖아요."
한참 동안 울고 돌아온 콜드 브라운이 코를 흥 하면서 용건을 이어 갔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너에게 제안을 한 거야. 우주. 난 너의 작곡 능력에 대해 누구보다 확신하고 있거든.
「저를요?」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중에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어.
「허어어어!」
이 소리는 내가 아니라 옆에 있는 졸개들이 낸 거였다.
왜 자기들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쑥스러워하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과찬이에요. 콜드.」
-과찬이 아니야.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이지. 솔직히 말해서 네가 작곡한 앤서, 그리고 너의 능력이 탐이 나.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는데 희한하게 그게 또 거북하지 않았다.
-거기에 나도 작곡 능력으로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너도 그건 알 거야. 난 천재야.
「동의해요.」
힙합계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가수를 바라보며 존경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였다.
상대가 물었다.
-그래서 어때? 너에게도 나쁠 게 없을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힘을 합쳐서 그래미를 노릴 만한 곡을 만드는 거야.
애초부터 승낙으로 90퍼센트 기울어져 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검토를 했다.
과연 어떤 이점들이 있을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콜드 브라운과 호의적인 관계를 구축해서 미국 힙합 가수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K팝 구려. 존나 구려.
-저 자식들은 왜 남의 나라에 기웃거리는 거지?
-이건 게이들이나 듣는 거야.
메트로가 작년도에 콜드 브라운의 음원을 제쳤을 때, 미국의 힙합 리스너와 래퍼들 사이에서 우리 평판이 안 좋아졌다고 들었으니까.
어디서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팡팡팡 때려 대니 얄미울 만도 했다.
콜드 브라운과의 콜라보는 그런 이들에게 좋은 시그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이 곡으로 그래미에서 노미니되거나 수상을 한다면….
-뉴블랙의 우주가 그래미를 수상했습니다!
뉴블랙으로서 그래미에 다가가는 데 한 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밴드 음악이라고 상을 절대 안 주려고 한다면, 그걸 뛰어넘는 음악성을 보여 주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우리의 활동곡으로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낯선 외국 가수인데 대중성까지 포기하면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가 힘드니까.
하지만 대놓고 그래미를 노리는 콜라보라면 여러 가지 예술성 가득한 시도를 해서 그 틀을 깰 수 있다.
-고민 중이야?
사실 이 모든 것을 떠나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긴 했다.
저 정도 체급을 지닌 가수와 콜라보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아니요. 고민은 끝났어요.」
'So?' 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최고의 래퍼에게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부탁해요. 콜드.」
* * *
-잘 부탁해요. 콜드.
그 말이 들리자마자 콜드 브라운이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됐다!'
그가 지난 며칠 동안 원했던 것이 손아귀로 굴러 들어와 있었다.
인피니티 스톤처럼 그가 그래미를 가는데 필요한 보석 중 하나가 마침내 들어온 것이다.
'이 친구와 함께라면 그래미를 조질 수 있다.'
콜드 브라운은 그래미를 타고 싶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타고 싶었다.
지난 15년 동안 정말이지 무수한 명예의 날들이 있었다.
각종 어워드에서 최고의 상을 타기도 했고, 어딜 가든 모든 미국인이 그를 알아볼 만큼 유명한 인물이 됐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 중에서 그래미는 없었다.
'시발.'
남들은 다 하고 싶어 하는 슈퍼볼 하프 타임쇼 요청이 몇 번이나 들어와도 스케줄 때문에 거절하는 그였다.
'그래미 타는 게 슈퍼볼 하프 타임쇼보다 어려운 게 말이 되냐고!'
그래미를 안 탄 건 아니다.
자잘한 그래미 상이야 탈 만큼 탔지. 하지만 그가 간절하게 원하는 본상은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다.
사실, 이번에 보이콧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미랑 잘 지내야 되는데…….'
굳이 어워드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았다.
상 주는 사람이랑 척을 지거나 침을 뱉는 건 저기 저… 캘리포니아의 파란 광견이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사실 이번에 불참한 것도 그의 의사는 아니었다.
-Yo! 콜드! 저 그래미 씹쌔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할 때예요.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고요.
-개새끼들! 콜드 형님은 불참할 거라고!
-형님? 불참하실 거죠?
동료와 후배 래퍼들이 '그래미 조지죠?' 하는 모습에 어어어 떠밀려 버린 콜드 브라운이었다.
뭐. 그래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힙합 가수들이 공연 보이콧을 해 버리면서 그래미가 역대급 초라한 잔치가 되기도 했고.
화들짝 놀란 그래미가 내년에는 좀 잘하겠다는 식으로 나왔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별 활동 없이도 그래미 본상 중 하나를 수상할 수 있을지도.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원치 않았다.
'누구도 부정 못할 업적을 세워 주지.'
어워드의 정치적 이슈를 떠나 '이걸 상을 안 준다고?' 싶을 만한 명곡을 탄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칼을 갈고 작업을 하고 있던 때였다.
콜드 브라운은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쇼크를 느꼈다.
'저거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완벽한 Answer라는 곡.
그리고 저걸 작곡한 선우주.
저런 예술적인 곡을 작곡한 천재와 함께라면 뭔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미친 인간한테도 간만에 연락을 했다.
-콜드. 이 새끼. 연락 좀 하고 살아라.
지는 먼저 연락 안 하면서….
파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던 누군가가 뚱한 표정으로 조언을 해 주었다.
-뉴블랙이 좋아하는 거?
-응.
-걔네가 좋아하는 건 딱 두 가지야. 하나는 숯? 뭐 그런 거에 구운 한국식 바베큐고.
-그리고 하나는?
-일.
헤일리 블루가 단언했다.
-내가 본 최고의 워커홀릭이야. 하루 20시간 일하는 월스트리트 놈들도 얘네 보면 기절할걸.
-일을 좋아한다고?
-그러니까 걔네를 꼬시고 싶으면 간단해. 존나게 좋은 일감을 주는 거야. 네가 봐도 좋은 일거리를 던져 줘. 개뼈다귀처럼 던져 주면 그걸 존나 물어뜯어서 황금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만약에 내가 준 일감이 별로라면?
-어… 그럴 때는 신호가 있지. 걔네가 존나 말없이 웃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검토해 보겠다고 말을 하면 쫑난 거지.
-좋으면?
-꺄르륵 하고 웃어 대거든. 보면 존나 귀여워….
뉴블랙은 자기가 찜해 놨으니 이용하고 싶으면 통행세를 바치라는 깡패와 통화를 끊은 후.
콜드 브라운은 레이블 직원을 시켜 기획안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잘 부탁해요. 콜드.
헤일리 블루의 말대로 맞은편에서 꺄르륵 웃으며 박수를 치는 5인조의 모습이 보였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
콜드 브라운이 한껏 미소를 지었다.
"너와 콜라보를 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네. 기념 선물이라도 보내 주고 싶은데…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바베큐 가게를 하나 사 줄까? 아니면 운전은 할 줄 아나? 람보르기니 한정판을…."
-당신과 같이 작업하는 걸로 족해요.
"미안. 뭐든 돈으로 해결하는 게 습관이 돼서."
-저희 부자예요.
그 말을 하며 멤버들이 하얀 얼굴의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귀가 벌게지는 누군가의 모습.
-저희 중에 신흥 재벌이 하나 있거든요.
"오."
-물론 그 재산이 국제 가격에 따라 등락을 반복하긴 하는데…….
석유나 원자재를 보유한 가문의 아들인 모양이다.
그게 비트코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콜드 브라운이 우주에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할까?"
-일단 전체적인 큰 그림에 대한 방향은 잡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영상으로 소통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하긴 직접 만나서 할 필요는 없지."
같은 미국에서도 서부와 동부 등의 거리 차이나 스케줄 유무에 따라 원격으로 콜라보를 하는 요즘 시대였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태평양 건너편에 있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
"일단 그럼 곡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좋아요.
Answer를 어떤 식으로 재탄생시킬지 우주에게 그가 계획을 말하고 상대가 피드백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신디사이저 앞에 앉은 우주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건반을 두드리며 곡을 만들어 냈다.
'화성학의 신인가…….'
그가 멈칫하고 물었다.
"혹시 음악 제대로 배워본 적 있어? 음악 학교를 다녔다거나."
-독학이에요.
"……."
유명 음대를 졸업한 그로서도 감탄이 나오는 실력이었다.
'확실히 전문적인 건 아니야.'
야성적인 감으로 작곡을 한다고 해야 되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보다 전문적이지만 틀에 갇혀 있다면, 여긴 그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기분이다.
팔이 여러 개 달린 신이 휘휘힉 하며 곡을 만들어 내는 느낌.
그 결과.
"……."
거의 1시간도 안 되는 미팅 동안 곡의 얼개가 짜 맞춰져 있었다.
괴물 보듯 바라보는 콜드 브라운에게 상대가 쑥스럽게 웃었다.
-이미 한 번 쓴 곡이라 그런지 짜맞추는 게 쉽네요.
"그, 그렇군."
-일단 이 단계는 여기까지 마무리를 하고… 실무진끼리도 소통을 해야겠는데요?
"그렇지."
싱어송라이터 혼자 작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밑작업을 각자의 실무진이 나눠 해야겠다는 말을 할 때.
-음… 그런데 저희 실무진이 곧 하와이로 떠날 예정이어서요.
"오. 좋은 곳으로 떠났군."
-송 캠프를 하러 가기 위해 떠나는데…….
우주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혹시 콜드 쪽 작곡가들도 합류하는 거 어때요? 서로에게 좋은 기회일 거 같은데… 인적 교류도 하고.
"좋지."
일정이 되는 스케줄의 작곡가들 명단을 떠올리며 콜드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아! 그리고 방금 한 가지 떠올랐는데요.
"응?"
-아까 원하는 선물이 있냐고 했잖아요.
"뭐가 생각 났어? 뭐 사 줄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나타나면서 콜드 브라운이 반갑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용건은 그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 * *
하와이.
어디선가 하와이의 전통악기 우쿨렐레 소리가 들려오는 해변가.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남녀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와! 여름이다아!"
"야이 야이 야이~! 야 바다로~!"
"그동안의 아픔들 그 속에 모두 버리게~"
2월의 하와이를 체험하고 있는 그들은 바로 레몬 엔터의 A&R과 프로듀싱팀 직원들이었다.
쨍쨍한 뙤약볕.
한국에서 평창 올림픽이 펼쳐지는 동안 이곳은 초여름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과 코코넛 주스를 파는 현지인들 속에서 그들이 두 팔을 벌렸다.
"와아아아아아!"
한국에서 지쳤던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우주선님! 충성!"
"충성충성!"
그야말로 경비를 아끼지 않고 지원해 준 송캠프였다.
"이… 이게 우리 숙소라고? 대박인데."
"이야… 거의 무슨 신혼여행 숙소 같은데?"
수영장이 딸린 방갈로 리조트를 시작으로 하와이의 맛난 음식들을 탐방하러 다녔다.
저녁에는 모닥불 앞에서 하와이의 훌라 댄스를 관람하기까지.
그렇게 꿈같은 관광을 마친 후.
"후우."
짐을 푼 작곡가들이 리조트의 강당에 모였다.
뉴블랙의 앨범 수록곡 작업을 비롯해 해외 작곡가들과 연수를 하게 될 공간이었다.
두근두근.
"하이! 나이스 투 밋 유!"
영어 연습을 하면서 잔뜩 들뜬 한국인들.
그들이 유독 들뜬 이유는 특별할 게 없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우주선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복지에 큰 일조를 하고 있었다.
딱히 우주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매일 선물 주고 잘 챙겨 주지. 대표님한테 건의해서 성과급 팍팍 쏴주지.
가끔 일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커리어 면에선 최고의 직장이다.'
어차피 A&R이나 프로듀싱 계열은 어느 회사를 가든, 프리랜서든 간에 워라밸을 추구할 수 없다.
그런 입장에서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는 레몬 엔터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업계 최상의 시설.
최고의 능력을 지닌 동료들.
그리고.
선우주가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트렌드를 이끌 수 있다.'
작곡의 기술적인 능력만 따지면 그들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곡 한 우물만 판 게 그들이니까.
하지만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포인트를 만들어 내는 부분에 있어선 선우주가 그들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매일매일이 배움의 연속일 만큼 대단한 동료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잔소리가 너무 많아.'
조기 축구회에 국가대표가 어슬렁거리면서 툭툭 훈수를 두는 느낌.
게임을 하거나 바둑을 둘 때 누가 훈수만 둬도 역정이 나는 마당에 그게 본업이라면.
게다가 그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면.
그리고.
항의하고 싶어도 회사의 최고 권력자라면…….
"후우."
"이번 송 캠프는 정말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강당에 스크린이 내려오면서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음? 뭐지?"
곧이어 스크린에 주목한 작곡가들의 앞에 누군가의 얼굴이 떴다.
"허억!"
"헉!"
미국 최고의 래퍼로 꼽히는 콜드 브라운이었다.
'뭐지?'
뜬금포로 등장한 얼굴에 그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안녕하십니까. 레몬 엔터의 A&R 그리고 프로듀싱 팀의 작곡가 여러분. 난 콜드 브라운입니다.]
알지. 너무 잘 알지.
[동료 작곡가로서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는 말을 드리고 싶군요. 나상윤 팀장님. 블루문 정말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솔트맨 작곡가님, 이름이 특이하군요. 당신은….]
"저, 저요?"
"코… 콜드 브라운이 내 이름을 불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작곡가들에게 땡큐 메시지를 보낸 콜드 브라운이 축사를 보냈다.
[레몬 엔터의 송캠프를 응원합니다.]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뉴블랙이 수완을 발휘해서 축사 메시지를 받았나 보다 하고 생각할 때.
파앗 하고 화면이 변하며 작곡요괴가 등장했다.
곧이어 나오는 불쾌한 아우성.
[저 이거 라이브예요.]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다.
"오와아아아아아!"
"우유빛깔 선우주!"
"위! 대! 하! 신! 대주주!"
우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와이 송캠프 축하드려요. 첫날 재미있으셨나요?]
"네!"
[다행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콜드 브라운과 콜라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와아아아아!"
[정말 멋지고 좋은 일이죠?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조금 불길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화면이 변했다.
Answer의 편곡 기획안이라고 되어 있는 문서를 읽던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거리가 하나 생겼네.'
조만간 콜드 브라운 쪽 작곡가들도 합류할 거라는 말에 작곡가들이 두근거림을 느낄 때였다.
"그런데……."
방긋방긋 웃는 우주를 바라보며 작곡가들이 불길한 표정을 지었다.
"용건이 다 끝났는데 왜 안 가니?"
[시간이 좀 남아서 잠시 구경하려고요.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요! 송캠프에 우주선은 참석 안 한다면서!"
그런 말을 할 때였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리면서 움직이는 TV가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
곳곳에 CCTV처럼 자리 잡은 TV를 바라보는 동안, TV 속 목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려 퍼졌다.
[우주선은 참석 안 한다. 그 말은 맞죠. …자, 서리혁 씨?]
[맞습니다.]
변호사처럼 나선 누군가 안경을 고쳐 썼다.
[제 의뢰인은 오늘 우주선이 아닌 선우주 씨로 참석을 하셨습니다.]
[들으셨죠?]
작곡가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저마다 리모컨을 꺼냈다.
[어? 지금 뭐….]
띠로링.
선우주의 얼굴이 팟! 하고 사라졌다.
한국에서 챙겨 온 리모컨으로 TV를 끄고는 콘센트까지 뽑아서 정리해 버리는 작곡가들.
스크린도 돌돌 말려 올라갔다.
후후 웃던 막내 김형섭이 말했다.
"서당개 3년이면 콘센트를 뽑아 버리는 법이죠."
"어리석은 우주선 같으니, 후후후."
"설마 우리가 이 정도 대비도 안 했을까 봐? 하하하하!"
마냥 당하기에는 지금까지 겪은 일이 너무 많은 작곡가들.
"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하지만 그 웃음이 누군가를 닮아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