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5화
작곡가들이 숨을 길게 참았다.
"후."
"긴장되네요."
우주선에게 곡을 검사 받을 때만큼이나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강당 문으로 향했다.
이제 곧 저 문을 통해서 외국인 작곡가들이 들어오고 본격적인 연수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정말 중요한 기회야.'
외국 작곡가들에게서 해외 트렌드나 최신 작곡 기술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그들의 가수가 미국 활동을 목표로 하는 만큼 그들도 해외 팝 음악계의 동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이 인기가 있고, 뭘 해야 미국의 대중들이 좋아하는지.
"발소리가 들리네요."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달칵 열렸다.
환한 빛이 들어오면서 알록달록한 눈동자의 외국인들이 우르르 밀려들어 왔다.
「반가워요!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 분들과 드디어 만나는군요.」
「어느 분이 책임자시죠?」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해외 작곡가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영어 울렁증이 있는 직원들이 스르륵 뒤로 피하고, 나상윤 팀장이 나서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음?"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외국인 작곡가들이 보인다.
「왜 그러시죠?」
「아.」
한 작곡가가 말했다.
「우리들 사이에서 미스터 나의 명성이 어마어마했거든요. 블루문 작업에 참여한 나상윤 씨를 직접 보게 되니 신기하네요.」
「제가… 신기한가요?」
「16년도부터 작년까지 빌보드를 휩쓴 곡의 작곡가니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이따 비결 좀 들려주세요.」
이따가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에 나상윤 팀장이 웃었다.
'여기선 내가 크리링인가.'
최강자들 사이에서는 약체 포지션이지만, 인간계에서는 최강이라 불리는 크리링이 된 기분이다.
헤일리 블루와 우주선이라는 두 괴수 사이에서 겨우 버텼다는 말을 어떻게 포장할지 고민하면서 나상윤 팀장이 손짓했다.
「이리로 오시죠.」
백팩을 메거나 캐리어를 밀고 온 작곡가들이 저마다 테이블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스웨덴, 영국, 덴마크, 독일, 남아공, 캐나다 등등.
누군가 UN을 열어도 되겠다는 농담을 할 만큼 다양한 국적으로 구성된 송캠프였다.
그중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인 작곡가들.
'진짜 강해 보인다.'
우주가 직접 초대장까지 보내 섭외할 만큼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작곡가들이었다.
커리어만 따지면 이곳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미국인 작곡가들이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미국인들의 말에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지만 상대방의 경력과 아우라가 그걸 자연스럽게 했다.
「자, 그러면 각자 가져온 곡들에 대해 감평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상윤 팀장이 말했다.
「곡들에 대해서는 우선 작곡가의 신원이 공개되지 않고요. 블라인드로 감평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곧이어 강당의 스크린이 지이잉 내려왔다.
파앗.
TV 화면이 켜지면서 잘생긴 미남의 얼굴이 나왔다. 다시 켜진 화면을 바라보며 반가워하는 표정.
[오!]
자리에 있던 여성들이 와우 하며 입을 떡 벌리는 가운데, 우주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역시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저의 도움이 필요해지셔서….]
나상윤 팀장이 누군가를 불렀다.
"형섭아."
"네."
김형섭이 리모컨을 들어 동갑내기 친구의 얼굴을 화면에서 지워 버렸다.
'아아아' 하며 아쉬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레몬 엔터의 직원들이 화면에 곡들을 띄웠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곡들이 하나둘 이어진다.
"오."
"이거 좋은데?"
"어때? 난 좀 묘하게 갑갑한 감이 있네."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들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하나둘 감평을 하고.
외국인 작곡가들도 코멘트를 주고받았다.
「깔끔하군.」
「탑 라인 멜로디가 아쉬운 부분이 있어. 저 부분에서 조금 더 치고 들어가면 좋을 거 같은데.」
「근사한데? 나쁘지 않아.」
수군수군하는 목소리들이 끝나고 나면 저마다 해당 곡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처음에는 미국인 작곡가들의 독무대와 다를 바 없었다.
「이 곡에서 아쉬운 부분은 바로 인트로더군요. 도입부의 짜임새가 약하네요.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머니 코드 진행이 너무 심할 정도로 반복되는데요. 아무리 머니코드라지만 이건 조금….」
주도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본토 팝 작곡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잠시.
중간중간 이상함을 캐치한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이 나섰다.
가만히 듣기만 하기에는 이상한 구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른데요. 머니코드의 반복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할 거 같습니다. 코드를 변주하는 것은 해법이라고 말하기 힘들 거 같아요.」
머니코드의 반복이 문제라고 지적한 이에게 솔트맨 작곡가가 마우스를 딸깍이며 보여 주었다.
「저기서는 코드를 복잡하게 쪼개고 변주하는 것보다 코드를 줄이고 진행을 단순화하는 게 더 나을 거 같거든요. 요즘 트렌드에 더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바꾸면….」
다른 작곡가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곧이어 그가 바꾼 멜로디가 재생되면서 해외 작곡가들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확실히….」
「더 괜찮아졌네요. 듣기 쉬워지고.」
날카롭게 지적을 하던 미국인 작곡가들도 '오?' 하면서 너희 말이 맞는 거 같다고 감탄했다.
그때부터였다.
서서히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
레몬 엔터 사람들이 짜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보다 더 모른다.'
외국 작곡가들에 대한 환상이 한 꺼풀 벗겨지니 그 실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웨덴 쪽에서 온 작곡가들을 비롯해 대부분이 그들보다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미국의 커리어가 짱짱한 작곡가들도 그들과 비교했을 때도 별반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유웅 작곡가가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요. 팀장님."
"그… 그러게."
"국뽕 미튜브 같아요. 한국에서 최고인 내가 세계에서도 최고? 이런 느낌으로…."
물론 세계 최고의 작곡가들과 비교하면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정말 어나더 레벨로 꼽히고 있는 작곡계의 괴인들은 이런 송캠프에 참여하지 않고 홀로 활동하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온 이들도 최소 1.5군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예상한 바에 따르면 레몬 엔터보다 최소 윗줄에 있어야 하는 존재들인데….
'왜 우리보다 못 하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작곡가들이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감평회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다른 나라 작곡가들이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아까 정말이지 식견이 대단하던데요.」
「감사합니다. 하하….」
「대체 작곡을 누구한테 배운 거예요? 이게 배워서 나올 수 있는 감이 아니란 건 알지만….」
누구한테 배웠냐는 질문을 받을 때였다.
'아.'
레몬 엔터 작곡가들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주 때문이었구나.'
왜 그들이 해외 작곡가들의 실력이 애매하다고 느꼈는지 바로 이해가 됐다.
어느 요괴가 작곡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배우고, 해외 트렌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귀를 쫑긋해서 들었던 작곡가들이었다.
귀동냥과 눈으로 보면서 얻은 경험치들이 몸에 누적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우주선과 작업할 때는 구박 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나 팀장님? 거기서 과연… 그런 진행으로 가는 게 맞을까요? 아니,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요.
-어… 음… 거기서 그렇게 꺾어진다고요…?
-저는 좋아요. 워낙에 마이너한 것도 잘 들으니까. 하지만 대중들 입장에서는 쪼오오끔 난해할 수도?
그런 구박이 누적되어서 그런 걸까.
아까 해외 작곡가들이 가져온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몸이 움찔움찔했다.
'저기선 저게 아닌데.'
'어… 저렇게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저기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몸으로 나왔다.
매일 복싱 관장님에게 후드려 찹찹 당한 제자가 나중에는 주먹이 날아올 때마다 자동으로 피하고 반격하는 것처럼.
작곡가들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웃자. 그동안은 많이 울었으니까."
"그래도 보람이 있네요. 가끔 가다가 실력 차이 때문에 자괴감 들어서 화장실 가서 많이 울었는데……."
"꼭 그럴 때면 중현이가 휴지 건네주고 갔지…."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작곡 요괴 밑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그들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고맙다. 우주야.'
장난스레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사실 고마웠다.
밤잠 설쳐 가며 일하는 사람이 매일 찾아와서 곡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눈에 핏발이 선 채로 '괜찮아요. 더 들어 보고 싶어요'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짠한 미소를 짓는 한편.
"음……."
송캠프가 본격적으로 이어지면서 작곡가들의 마음속에 무언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신감.
지금까지 레몬 엔터의 직원들은 해외 시장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한국에서 잘나가고 있다고 한들 해외는 다르지 않겠는가.
EPL이나 MLB를 보듯이 해외 음악계를 한 수 위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할 만하다.'
해외 작곡가들과 조우하면서 마음속에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인터내셔널 앨범도 해 볼 만해.'
뉴블랙의 인터내셔널 앨범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작곡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외국 작곡가들에게 외주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세계 다양한 국가의 작곡가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한 송캠프는 새벽이 될 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은 한층 더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바로 새롭게 발매하는 앨범들의 퀄리티가 놀라울 만큼 상승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 * *
"잘하고 계시겠지."
"누구요?"
"우리 피디님들 말이야. 송캠프 간 사람들이 걱정이 돼서……."
비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무리 해외 작곡가들이 쟁쟁하다고 해도 피디님들이 가서 밀릴 실력은 아니지 않아요?"
"그니까. 그게 걱정이야."
"……?"
"너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면 어떡하지?"
상대 팀도 배려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는 내 농담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핸드폰을 바라보자 메일함으로 송캠프 진척상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들이 들어와 있었다.
첫날, 둘째 날과 다르게 뭔가 자신감이 붙는 게 느껴졌다.
"다행이야."
"목표했던 대로 돼서요?"
"응."
이번 송캠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해외 작곡가들과의 연수로 인한 우리 프로듀싱 팀의 능력 증진이다.
그리고 부목적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작곡가들에게 자신감을 고양시켜 주는 것.
중현이가 말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 형이 떨어뜨린 거 아닐까요?"
"후우."
숨을 잘게 떨며 답했다.
"중현이 네가 바른 말을 하니 어떻게 처단할 방법이 없구나."
"후후."
"비주야. KG 드래곤스의 최근 성적을 읊어라."
"잘못했어요. 형."
태세전환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운전석에 있는 매니저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눈이 내린 겨울철 거리의 모습이 차창으로 휙휙 지나간다.
지호가 바깥을 바라보며 장갑을 비볐다.
"작곡가님들 진짜 짱 부럽다…. 하와이 지금 초여름 날씨라고 그러던데요. 완전 따뜻하대요."
"하와이 놀러가고 싶어?"
"넹."
"나중에 한번 가 보자. 여행일기 미팅 하면 제안해 보자고."
여행 이야기에 동생들이 들뜬 얼굴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하와이 가서 모히또 한 잔 해야 된다는 막내의 이야기를 흘려 넘기는 동안 나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SNH 엔터]
4대 기획사 중 하나인 SNH 엔터에 대한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오늘 방문하는 기획사가 바로 저 SNH 엔터이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모두가 아는 평창 폐회식의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평창 폐회식 아이돌 라인업 확정.. 뉴블랙, TNT, 데일라잇
각 그룹 무대뿐만 아니라 합동 무대로 진행하는 구간도 있기 때문에 함께 합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연말 가요제 정도의 무대라면 당일 현장에서 맞춰도 상관없다.
하지만 올림픽 폐회식 정도의 무대라면, 현장에서만 합을 맞추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최고를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우리가 세 그룹 중에서 리더 포지션이었다.
-우주 씨가 무대 기획도 함께 했으니까… 세 그룹이 함께 합을 맞추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주 씨한테 부탁할게.
-네. 감독님.
-리허설 때까지 잘해 올 거라고 믿어요.
폐회식 퍼포머로 정해졌을 때부터 기획 회의에도 관여한 만큼 우리 지분이 컸기 때문이었다.
연차는 세 그룹 중에서 제일 낮지만 이번 무대 이해도는 제일 높다.
그런고로 연습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이다.
지호가 말했다.
"와. 근데 완전 대선배들이네요."
"그치. 우리보다 8년, 4년 선배들이니까."
2006년에 데뷔한 데일라잇과 2010년에 데뷔한 TNT.
이제 우리도 어디 가서 얕보이지는 않는 연차지만 13년차와 9년차는 솔직히 너무… 압도적이다.
무대만 해도 우리보다 4년에서 8년을 더했다는 이야기니까.
게다가 TNT야 평소 우리와 친분이 좀 있으니 괜찮은데… 데일라잇은 거의 처음 만난다.
비주가 손난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좋은 분들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방송 이미지만 보면 우리와 잘 맞을 거 같긴 한데, 실제는 어떤지 모르는 거니까.
"뭐. 태현이가 그러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더라."
"정말요?'
"응. 우리의 여자 버전이래."
호오 하며 지호가 말했다.
"귀엽고 깜찍하시고, 실력 좋으시고 비주얼이 좋다는 뜻이네요."
"그렇지."
매니저들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아무튼 우리 이전에 국민 걸그룹이라 불렸던 분들이니, 우리와 결이 같을지도 모르겠다.
차량이 SNH가 있는 성수동으로 접어들면서 중현이가 말했다.
"드디어 4대 기획사를 다 찍어 보네요. TJ, KM, MOP… 그리고 이제 SNH까지 뉴블랙 TV 촬영하면요."
"맞네."
"여긴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네요."
리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연스럽게 4대 기획사를 전부 방문하게 되었다.
일부러 이곳을 정했다기보다는 연습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SNH 엔터로 정해졌다고 할까.
-형! 형! 나 레몬 엔터 구경하고 싶어.
-레몬 고?
TNT 멤버들이 레몬 엔터를 방문하고 싶다고 했지만 우리에겐 다인원을 수용할 대형 연습실이 없었다.
이제 곧 신사옥에 생기는데 그건 다음 달 일이라서.
그래서 TJ 엔터로 향할까 고민을 했는데.
-난 반대.
중국 뺑뺑이에 대한 안 좋은 감정에다가 TJ 엔터의 끈덕진 연락 때문에 거북해하는 한별이가 거부권을 날렸다.
그러다 보니 중립국처럼 SNH 엔터가 정해졌다.
SNH 엔터의 반응도 몹시 좋았다.
뉴블랙 TV에 쓰일 컨텐츠도 먼저 제안하는 기획사는 처음이라 신기하긴 한데…….
"SNH 엔터가 워낙 독특하다고 하잖아요."
"맞아."
"그런 이야기 나도 많이 들었는데, 회사 분위기 진짜 좋대요."
SNH 엔터에 대해 들려오는 공통적인 이야기는 바로 '회사 분위기가 좋다'는 것.
연습생 개개인의 성격과 인성을 보는데 있어선 빡빡하단 말이 있지만, 그에 걸맞게 회사 분위기는 좋다나.
SNH에 한 번 가면 절대 안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연습생들 사이에 파다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독특한 회사다.
박태준, 허강민, 박민오 등 창립자의 이니셜을 딴 다른 기획사와 달리 SNH는 이름의 뜻부터가 뭔가 다르다.
-사람. 나무. 하늘.
아티스트와 직원들에게 최고의 회사가 되겠다는 게 이곳 대표님의 포부라고 들었다.
우리 대표님 같은 분이 또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네."
종완 씨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지개를 쭉쭉 켰다.
데일라잇 선배님들과 TNT 멤버들에게 줄 선물 봉투도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두근두근.
간만에 TNT의 동생들과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덕순덕순할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이 아스라이 들려오면서 동생들과 고개를 갸웃했다.
"웬 함성 소리야? 내가 지금 헛것을 듣나?"
"아뇨. 진짜 함성인데요."
곧이어 SNH 사옥에 접근하면서 함성의 정체가 밝혀졌다.
건물 앞에 운집한 백여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 뒤에 걸린 현수막.
[뉴블랙의 SNH 엔터 방문을 축하합니다!]
[오늘은 회사 쉬는 날 ( ๑˃̶ ꇴ ˂̶)♪ ]
마치 회사 야유회 같은 분위기였다.
직원들과 그들의 배우자나 자녀들,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박수치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SNH 엔터 측에서 직원들을 위해 미니 팬 미팅을 준비해도 되냐는 연락을 받긴 했지만….
"뉴블랙! 뉴블랙!"
진짜 팬 미팅 현장 같은 분위기에 우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뭐 하는 회사지.'
'회사 분위기가…….'
회사가 아니라 어디 요정 마을에 방문한 기분.
당황해서 할 말을 잃은 우리의 눈앞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중년 여성, SNH 엔터의 장소희 대표가 보였다.
어딘가 익숙한 미소에 멈칫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우리는 익숙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
"……!"
그제야 떠오르는 SNH 엔터 대표님의 인터넷 별명.
-긴 머리카락의 박규호.
과연 그 말이 정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