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38화
발레 공연 중에 <지젤>이라는 명작이 있다.
대체로 발레라고 하면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정도밖에 모르는 내가 이 공연을 아는 이유는 바로….
-저 이거 너무 좋아해요!
비주의 최애 공연이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쉬는 날 OTT로 '지젤' 실황 공연을 시청할 정도였다.
쿠션을 끌어안은 채 입까지 벌리고 보는 모습에 나도 한 번 껴서 본 적이 있다.
대체 얼마나 명작이기에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걸까.
-춤이 예뻐서 그래?
-네. 진짜 감정 연기가 너무 풍부해서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거든요. 춤도 춤인데 스토리가 진짜 너무너무 낭만적이에요….
비주가 극찬을 하는 스토리 내용은 간단했다.
사랑에 배신당한 아가씨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윌리'라는 복수귀가 되어 버리는 내용이었다.
자기 무덤가를 지나가는 청년이 보이면 유혹을 한 다음에….
-윌리에게 유혹 당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돼요.
-…….
-너무… 슬프고 낭만적인 죽음 같지 않아요? 이렇게 처연하고 슬픈 내용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렇다.
비주의 최애 발레 공연은 죽을 때까지 사람을 춤추게 만드는 귀신들이 나오는 스토리였다.
"허억, 허억……."
"아이고."
멀찍이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숨을 헐떡이는 메인댄서들이 보였다.
정말이지 화려한 면면들이다.
TNT의 메인댄서 백승제와 한태현.
데일라잇의 수전.
태현이야 현재 솔로 가수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만큼 퍼포먼스로 이름 높은 멤버고, 백승제도 TNT에서 레전드 직캠을 다수 보유하고 있을 만큼 빼어난 춤꾼이다.
수전 선배는 정말 말할 것 없이 2세대 걸그룹에서 춤 최고 존엄이고.
달리 말하자면 방송국에서 아무 가수 붙잡고 '저기에 춤으로 합류하실래요?' 라고 하면 대다수가 손사래를 칠 만큼 살벌한 라인업이라는 뜻이었다.
-아. 부럽다. 행님. 진짜 부럽네요. 올림픽 폐회식.
-연후가 메인댄서였지?
-네.
-저기 메댄 라인업이 한태현이랑 백승제, 수전 선배님이야…. 우리 그분들이랑 같이 춤 춰야 돼.
-뜨벌….
춤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틴스피릿 연후마저 '라인업 돌았네요' 하며 손사래를 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단순히 객관적인 춤 실력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경험치 차이.
아이돌판에서 10년 가까이 버텼다는 건 그만큼 무대 경험이 많다는 뜻이다.
데뷔하고 1년만 지나도 연습생 몇 년보다 실력이 더 느는데, 이 바닥에서 10년 가까이 버틴 사람들의 무대는 그야말로 살벌할 수밖에 없다.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니까.
"나는 좀 걱정하긴 했거든요."
리혁이가 말했다.
"아무리 비주 형이라고 해도 저기서 조금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 적응해 버렸는데?"
"선배님들 표정이 좀 벌써부터 질린 거 같아요."
메인댄서들이 숨을 몰아쉬는 곳에서 비주는 정말 날아다니고 있었다.
"……."
"……."
반짝반짝.
그것도 신나서.
"쟤도 참… 특이한 애야."
"뭐, 원래 제일 조용한 사람이 제일 이상하다고 그러잖아요."
"그건 아닌 거 같아. 네가 제일 이상해."
"내 비트코인 돌려내."
사랑한다는 의미로 손키스를 날리자 리혁이가 파리채를 휘두르듯 거부했다.
그러곤 메인댄서들 사이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는 우리 둘째를 바라보았다.
"춤 잘 추는 사람들 만났다고 신났네."
"한풀이 할 때 됐죠."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달리는 스포츠카 같다.
우리와 같이 안무 합을 맞출 때는 최대한 본인을 그룹 춤선에 맞춰서 시속 30km 정도로 가던 애한테 지금 제약이 풀린 거니까.
"근데 비주가 저 정도로 춤을 잘 췄나…?"
처음 보는 안무 기술들을 선보이는 비주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할 때.
"당연하죠. 우리가 밥 먹고 노래 연습하거나 작곡하고 그럴 때, 비주 형은 연습실에서 혼자 춤 춘 거니까."
"저걸 또 어떻게 따라가지…."
"저걸 보고 따라갈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대단하긴 해요. 나 같으면 엄두도 안 날 텐데."
"그건 네가… 아니다."
"뭔데요. 뭐. 뭐. 진짜 서러워서 정말. 내가 요즘에는 어디 가서 춤 잘 춘다는 이야기도 듣는데 어쩌다가 이런…."
투덜거림을 들으며 비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 베테랑 춤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지 신기함을 느끼다가,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저는 춤이 너무 좋아요. 평소에 제가 억누르고 사는 것들이 있거든요. 감정을 참거나 억누르거나. 그런데 춤을 출 때면 그런 감정들이 제 손을 타고 흘러나가는 것 같아요.
비주는 춤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밥 먹을 때나 잘 때나 작곡 생각만 하듯이, 하루 종일 춤 생각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우리 둘째였다.
그래서 저 경험치 차이를 뚫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성실한 거야 다 비슷하지만, 진짜 저 춤에 대한 광기와 집착은… 조금 무서울 때도 있으니까.
"글쎄요."
"응?"
"내가 볼 때는 그… 형이 비주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리혁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휴식을 종료했다.
기지개를 쭉쭉 켜고 있는 나를 보며 곁에 있던 TNT의 메인보컬 신주영과 리드보컬 장한별, 그리고 리혁이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신주영이 주홍빛으로 물들인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장난기 가득한 미남이 지금은 초췌한 분위기다.
"근데 진짜 우주야."
"응?"
"너… 대체 왜 메보 조에 합류한 건데……."
"원래 내가 데뷔조에서도 형이랑 메보였잖아."
"그때는 네가 춤을 이… 귀신처럼 변하기 전이고. 왜 메보 조에 끼어서……."
상대가 울적한 얼굴로 말했다.
"안무 난이도를 높이니…."
"인정하는 바야."
쑤욱 하고 리앤이 끼어들면서 신주영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 누나도 똑같다니까요!"
팀 내에서 리드댄서 역할을 맡고 있는 나와 리앤의 합류에 메인보컬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다.
메인보컬 조의 분위기는 정말로 화기애애했다.
* * *
메인보컬 조의 연습 시간.
삼각대에 설치한 카메라를 점검하는 리혁에게 리앤이 물었다.
"촬영한 거야?"
"네."
"한 번 보자."
데일라잇의 메인보컬과 리드보컬로 합류한 리앤과 차현정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곧이어 화면 속에서 안무 동선을 맞춰가는 보컬조의 모습이 보였다.
'빡세네.'
리앤이 입술을 긁적거렸다.
소위 언론에서 3세대라고 칭하는 요즘 아이돌이 어떤지는 음악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관절이 소모품이란 걸 모른대?
-저러다 진짜 훅 가는데.
그렇게 말로만 듣던 다음 세대의 대표주자들답게 TNT와 뉴블랙이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리앤의 시선이 화면 속 우주에게 향했다.
'그리고 얘는 또 뭔데…….'
메인댄서 조에 가야 했을 애가 여기 와서 그야말로 자신의 장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시선 빼앗기.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냥 귀엽지는 않네.'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엄청 귀여웠다.
요즘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기 가수라고 하고, 그녀들 다음으로 국민 아이돌이라 불린 후배 그룹.
반쯤 조카 보는 듯한 기분으로 왔고, 실제로도 귀여웠다.
-애들 진짜 엄청 하얘. 우리는 농사 지어서 까매졌는데.
-말랑말랑하다. 쟤네 회사 나윤이가 저런 느낌 아니었어? 찹쌀떡 같이 막 말캉말캉해 보여.
-지호 내 동생 시키고 싶다.
그녀들을 바라보며 선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꼬꼬마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꾸만 엄마 미소가 나왔다.
딱 연습 들어가기 전까지는….
"……."
"……."
뉴블랙이 잘한다는 거야 원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호흡을 맞추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보컬은 몰라도 안무는 특히 더더욱.
"야."
리앤이 장한별의 어깨에 으슥하게 팔을 둘렀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요즘 애들 다 이래?"
"아뇨. 저기가 미친 거예요…."
댄서조가 왜 왔냐며 우주를 타박하던 리혁마저 완벽한 안무를 선보이는 모습에 다들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얘네가 괜히 국민 타이틀 단 게 아니었구나.'
농사도 안 지었는데 국민 아이돌이 된 후배들을 은근 부러워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저 정도면 뭐 국민 아이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맨날 일만 하고 살아야 저렇게 될 거 같았으니까.
리앤이 감탄했다.
"너희 진짜 칼 갈고 왔구나. 독하게 연습하고 왔네."
"아니에요."
우주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하게 웃었다.
"저희가 어쩌다 보니 제일 먼저 섭외가 돼서 그런 거 같아요. 선배님들에 비해 연습 시간도 넉넉했고."
'하루에 2시간 자는 스케줄이라면서. 우린 이제 남는 게 시간인데….'
'스케줄 널널한데….'
TNT와 데일라잇 멤버들의 마음에 주르륵 비가 내렸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서 데일라잇의 리더인 리앤은 뉴블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어떤 그룹인지 좀 알겠어.'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진 덕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지켜보기만 해도 견적이 나온다.
그룹의 정체성이 어떤지.
예를 들어 그녀가 속한 데일라잇은 개개인별로 보면 무난무난한 실력의 멤버들이 속해 있다.
어딜 가든 무난하게 데뷔할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실력자들의 팀.
특별하게 스타플레이어라고 할 만한 존재는 없지만, 조직력과 팀워크 면에서는 어떤 그룹이 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녀들보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이야 옛날부터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다 같이 합을 맞추는 퍼포먼스에 있어서 그들을 넘어서는 가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최고가 됐다.
그에 반해…….
'TNT는 진짜 애들이 다 무서워.'
박태준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TJ 엔터의 8인조 보이그룹.
-춤. 노래. 모든 면에서 올라운더로 잘하는 에이스들만 내보내겠다.
어딜 가든 팀 내 에이스로 꼽히는 실력자들만 모아서 데뷔시켰다.
지금 그녀의 곁에 있는 신주영만 해도 OST 시장에서 잘나가고, 앨범 판매량도 높은 보컬 솔로였다.
그랬기에 처음 TNT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선배 가수들이 '요즘 애들 미쳤다…' 하면서 놀랐을 정도였다.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완전체.
단점은… 무대 위에서의 조직력은 조금 약하다는 것.
'너무 잘해서 합을 맞출 필요가 없으니까.'
끈끈한 조직력이 딱히 필요 없는 팀이었다.
멤버들이 개인플레이를 펼치는데, 그 개인플레이가 너무 압도적이라 시너지를 내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블랙.
'우리와 TNT의 양쪽 장점이 다 있어.'
스타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구심점을 가지고 똘똘 뭉쳐 있는 모양새였다.
성격은 순한데 실력이 강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는 광인들의 모임 같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에는 자꾸만 다르게 보였다.
'아무리 봐도 도시 애랑 산골마을 애들 같은데…….'
어쩌다 보니 한 산골 마을에 재능 충만한 애들끼리 모여 있었는데, 야심찬 도시 애가 전학 온 듯한 분위기다.
"리혁아."
"왜요."
"거기서 그렇게 가지 말고, 조금 더 살짝 빨리 들어오는 걸로 하자. 그게 더 낫겠어."
"알았어요."
점순이처럼 흥칫뿡 알았다고 하는 서리혁을 바라보며 리앤이 미소를 지었다.
'도시에서 온 전학생이랑 산골마을 새침데기…….'
기분 탓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것은 K팝에서 퍼포먼스로 최고로 꼽히는 세 그룹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지는 알겠어.'
스포츠 경기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합동으로 올스타전을 펼치듯이.
2세대와 3세대, 그 중간의 2.5세대라 불리는 세대 구분에서 각각 퍼포먼스 최고 존엄들의 합동 무대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야말로 최신 K팝의 시작과 끝.
'그렇다면 보여 줘야지.'
잘하는 후배들 속에서 간만에 호승심을 불태운 걸그룹 멤버들이 본격적인 연습에 참전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임했던 미소는 사라지고, 연습할 때면 나오는 데뷔 초창기의 웃음이었다.
'오오! 선배님!'
'그래.'
'저도 힘을 내 볼게요!'
거기에 우주도 합류했다.
걸그룹과 보이그룹 최고의 올라운더로 꼽히는 리앤과 우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눈을 미치광이처럼 빛내기 시작했다.
점점 격해지고 완성도 높아지는 안무들.
'으아아아아!'
'그만해! 이 미친 사람들아!'
그리고.
당연하게도 보컬에 몰빵한 메인보컬들은 속으로 절규할 뿐이었다.
* * *
으아. 쫄려.
"선배님… 진짜 너무 잘하시네요."
"너도 정말 잘하네."
리앤과 내가 서로 리스펙하는 얼굴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 엄청 쫄린다.
팀워크가 중요한 합동 무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쪼끔 더 잘하고 싶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자칫하면 뺏기겠다는 생각이 속으로 스멀스멀 올라올 때.
미묘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리앤과 눈이 딱 마주쳤다.
"하하하하!"
"하하하!"
왠지 모르게 비슷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뻐근한 몸을 스트레칭하면서 푸는 동안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평소에 매번 동생들과만 무대 합을 맞춰서 그런지, 타 그룹과 호흡을 맞추는 게 즐거웠다.
곁눈질로 이것저것 배워 가는 것도 많고.
특히나 나보다 10년 가까이 더 리더 경험이 있는 리앤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가는 듯했다.
"어때?"
조별 무대에 이어 전체 합동 무대 연습 타임.
퍼포먼스 점검자로서 코멘트를 해야 되는 시간이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음……."
어떻게 선배 가수들에게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자자."
리앤이 나서서 내 곁에 섰다.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우주야. 누나가 다 통역해 줄게."
"통역이요?"
통역사를 자처한 리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을 꺼냈다.
"우선… 전체적으로 연습을 다 많이 해 오신 것 같고요."
팔짱을 낀 리앤이 근엄하게 내 말을 옮겼다.
"번역) 용케 그딴 연습량으로 기어들어왔구나."
여기저기서 큰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거 절대 아니에요!"
"번역) 진심이었다."
그제야 어떤 식으로 통역을 해 주겠다는지 알아들으며 웃었다.
"일단 안무 합을 좀 더 맞춰야 할 것 같고…."
"번역) 이 퀄리티로 무대를 올라갈 생각을 했냐. 춤 연습이나 더 해라."
"보컬 쪽에서도 조금 화음이 불안정한 면이 있고…."
내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재치 있게 풀어 주는 덕에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항상 리더로서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배우는 것 같다.
아이돌 그룹은 평생 조별 과제로 얽힌 사이인 탓에 감정이 안 상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사소한 말다툼도 커질 수가 있고.
"언니, 여기 자꾸 동선 꼬이는 게 내 탓이 아니라니까."
"아 갑갑하네."
데일라잇 멤버들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면 바람같이 달려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싸울 거야? 1분 줄 테니까 얼른 싸워."
"시간 재 줘. 언니."
스톱워치로 1분 동안 싸우고 3분 동안 허그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피로 때문에 예민한 가수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중재를 해야 하는지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내가 데일라잇의 리더에게 말했다.
"선배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긴."
리앤이 머리를 다시 묶으며 말했다.
"우리 자리가 그렇지 뭐. 아이돌 리더 별거냐 싶은데… 이런 거 하라고 회사에서 시키는 거니까."
"보니까 퇴로를 항상 만들어 주시네요."
"응, 갈등이야 당연한 거고… 중요한 건 거기서 빠질 수 있게 퇴로를 만들어 주는 거지. 사람은 빠져나갈 구석이 없으면 끝까지 가거든.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어떤 식으로 그룹을 운영해야 장기간 무리 없이 운영 가능한지에 대한 노하우를 배운 후.
이번엔 상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야말로 하나 배워 보자. 너넨 어떻게 싸움이 그렇게 없어?"
"애들이 안 싸우던데요."
"……."
왠지 모르게 억울하고 부러워하는 표정,
"……그게 제일 좋지."
"주변에서는 너희 안 싸우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애들 성격이 너무 좋아서."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야. 안 싸우는 게 최고야."
그러고는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렇다고 서로 간에 꾹 참으면서 누적되고 그런 건 아니지? 오지랖이지만 그건 조금 위험해서……."
"그건 아니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보통 울적한 기분을 날리는 데 제일 좋은 게 바빠지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치.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면 우울하니까."
"감정이 누적될 틈이 없는 거 같아요. 그… 애들이 진짜 특이해서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생겨요. 좋은 쪽으로."
동생들을 둘러보는데 우리의 시선이 창가에서 뭔가를 째려보고 있는 리혁이가 보였다.
서늘한 두루미 같은 시선이 뭔가를 째려보면서 번호를 중얼거리고 있다.
리앤이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리혁이?"
"주차 위반 신고하고 있는 걸 거예요. 아마 주차구역이 아닌데 차를 댔다거나…."
"진짜 특이하구나."
"아무튼 보시다시피 정말 애들이 특이해서……."
매일 독특한 사건사고가 생겨서 뭐 그럴 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면서 구선웅이 멍한 얼굴로 들어왔다.
"와씨… 뭐지?!"
"왜 그래?"
TNT 멤버들의 물음에 구선웅이 답했다.
"아니, 자리 생겼다고 연락 와서 다시 차 대려고 갔는데… 그새 과태료 딱지 붙은 거 있지. 누가 신고했나 봐."
"……."
놀란 참새처럼 눈을 뜬 리혁이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집어넣는 모습에 리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죠?"
"백 프로 이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