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40화 (84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0화

서울 강남구의 한정식집.

전통 가옥처럼 꾸며진 방에서 박규호 대표가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그의 손이 가상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였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세미 정장 차림에 웨이브진 머리를 우아하게 흘러내린 미인.

“오랜만이에요. 박 대표님.”

“아이고. 장소희 대표님.”

SNH 엔터의 장소희 대표와 박규호 대표가 서로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둘의 시선이 잠시 서로를 훑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연예계 이명.

‘긴 머리카락의 박규호…!’

‘민머리의 장소희…!’

그 때문인지 몰라도 왠지 모르게 친근한 분위기였다.

박규호 대표가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메뉴는 난(蘭) 정식으로 시켰어요. 저번에 매니지 협회 때도 그걸 잘 드셨던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두 대표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탐색전을 이어 갔다.

주로 연예계 현황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요즘 들어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듣자 하니 이번에 레몬에서 직접 영화도 제작한다면서요? 선명주 님의 일대기를 제작한다고 들었어요.”

“어려운 도전과제가 하나 생겼죠. 하하.”

“혹시 오디션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요. 우리 배우들도 요즘에 일거리 기근이라….”

배우들의 일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대의 모습에 박규호 대표가 미소를 지었다.

‘나랑 잘 맞아.’

대형 기획사의 대표인데도 아티스트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연예계 사업은 사람을 남기는 장사라는 게 그의 가치관이었으니까.

“전 매일매일이 걱정이에요.”

장소희 대표의 젓가락이 도토리묵을 집었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안 이랬잖아요? 수십 년 가까이 브라운관 시대로 살아왔는데… 요즘에는 OTT니 뭐니 하는 것도 생겨나고. 틱톡? 그런 영상도 유행한다면서요.”

“그러게 말입니다. 매일 자고 나면 유행이 바뀌네요. 하하.”

박규호 대표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4대 기획사인 SNH 엔터의 장 대표님쯤 되면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4대 기획사라니요. 밀려난 지가 언젠데.”

장소희 대표가 살짝 눈을 흘기며 웃었다.

“굳이 우리를 끼워 준다면 이제 5대 기획사라고 해야죠. 레몬이 쭉쭉 올라왔으니까. 이제 내년도에 매출 발표되면 깜짝 놀랄 거 같던데요. 레몬이 지금 압도적인 매출 1위잖아요.”

“그래도 4대 기획사라는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있긴요. 그냥 2000년대 중반에 아이돌 시대니 뭐니 하도 핫하게 뜨니까 언론들이 4대 어쩌고 띄워 준 거지. 박태준 회장님도 태준 레코드 하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그런 말을 하던 장 대표가 웃었다.

“아. 이젠 전 회장님이시네요.”

“그렇죠.”

천년만년 집권할 것 같던 박태준 회장이 물러났다는 소식에 두 사람은 잠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시대가 정말 변하고 있긴 하네요. 하하.”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많이 벌어지긴 했죠. 박 회장님 물러난 건 정말 의외였으니까요.”

“그러게요. 한창 정정하신데…….”

두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회장님, 멀리 가십쇼.’

‘맨날 데일라잇 후려치더니 잘 갔구나. 노망탱.’

혹시 녹음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두 대표가 안타깝다는 듯 ‘시대의 별 박태준’을 추억했다.

실제로도 두 사람의 세컨드 핸드폰이 테이블 아래서 녹음 중이었다.

“그래서….”

메인 메뉴인 떡갈비가 나왔을 때쯤 박규호 대표가 용건을 꺼냈다.

“장 대표님께서 저는 어쩐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알고 계시잖아요?”

“하하하.”

“다 알고 계시면서… 조규환 이사가 정말 연예계에서 정보가 빠삭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말대로 박규호 대표는 상대가 만나자고 한 용건을 알고 있었다.

“회사 투자 때문이시군요.”

“네.”

장 대표가 긍정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SNH 엔터의 지분을 팔려고 하는 중이에요.”

“흠…….”

박규호 대표가 머리에 난 땀을 손수건으로 주섬주섬 닦았다.

사람 자체가 어수룩해 보이는 느낌을 풍기는 모습이었지만 장소희 대표는 속지 않았다.

‘저 민머리에 구렁이 백 마리가 들어 있다.’

뉴블랙이라는 희대의 보물을 가졌지만, 그 보물을 저리 잘 키우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조금 당혹스럽긴 하군요. SNH 엔터가 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아까 말씀드린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두 가지요?”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죠. 그리고 그 흐름을 주도하는 축 중에 하나가 뉴블랙이라는 건 분명해요. 제 예측으로 이 추세가 앞으로도 10년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장소희 대표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솔직히 우리 회사가 분위기 좋고 튼튼한 거야 모두가 알고 있죠. 하지만 튼튼한 걸론 충분하지 않아요. 단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급급할 뿐, 그걸 선도할 만한 능력도 없고요. 우리 직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래요.”

하지만 레몬은 가능할 것이다.

그런 말이 생략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러니 미래 먹거리를 선도하는 그룹의 뒤꽁무니에라도 붙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조… 조금 과찬이시지만 포인트는 이해했습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무슨 이유입니까?”

“음…….”

장소희 대표가 목을 축이고 말했다.

“회사 아티스트들이랑 직원들 때문이에요.”

“예?”

“솔직히 말해서 요즘 매출 지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서… 그럭저럭 살아가곤 있는데 풍족하게 살기는 어렵죠. 흉년이랑 풍년이 있을 때, 지금은 흉년 같은 상황이죠.”

“음…….”

“외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직원들과 아티스트들의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외부 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듯했다.

박규호 대표도 그런 상황이 잦았던 만큼 공감이 갔다.

하지만 공은 공, 사는 사.

“말씀의 요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레몬 엔터가 굳이 SNH 엔터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장소희 대표가 미소를 지었다.

‘반쯤 통과했구나.’

레몬 엔터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설명을 해 달라는 이야기에 그녀가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레몬 엔터를 많이 연구했어요. 협상이란 건 서로에게 윈윈이어야 하니까.”

“그렇죠. 하하.”

“그래서 요즘 들어 레몬 엔터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묘하게 어떤 흐름이 보이더라고요?”

장소희 대표의 속눈썹이 짙게 깔렸다.

“최근에 DNS 미디어를 자회사로 인수하셨더라고요.”

“맞습니다. 현식이 그 자ㅅ… 그 친구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죠.”

“그 부분에서 의문이 있었죠. 잘나가는 레몬이 왜 DNS를 인수했을까? 물론 스트릿 보이즈도 어마어마한 매물이지만, 스보가 10팀 정도 있어도 뉴블랙 매출은 못 따라가잖아요.”

거기에서 그녀는 힌트를 얻었다.

“그때 알았죠. 레몬은 앞으로 데뷔할 차기 그룹들을 물색하고 있다는 걸.”

“하하….”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레몬에서 새로 키운 그룹이 실패해도, DNS 미디어에서 데뷔시킨 아이돌이 대박이 날 수도 있는 거고. 투자 종목이 많으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니까.”

“…….”

“회사의 기둥인 뉴블랙에게 부담감을 덜어 주기에도 좋죠.”

박규호 대표가 말없이 긍정하고 있을 때, 장소희 대표가 그의 니즈를 쿡 찔렀다.

“걸그룹.”

“예?”

“우리가 걸그룹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레몬에 현재 여자 연습생들이 없지 않나요?”

“예.”

“DNS 미디어도 라비앙로즈 이후로 여자 연습생들이 없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습니다만….”

박규호 대표가 말했다.

“우리 스칼렛 아이들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만들면서 깨달은 것이 있거든요. 걸그룹 만드는 데는 재능이 없구나….”

“그 부분에서 서로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보이그룹은 못 만들거든요….”

“아…….”

장소희 대표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저쪽도 사정이 많지.’

SNH 엔터에서 현재 활동 중인 걸그룹은 2006년에 데뷔한 데일라잇과 13년도에 데뷔한 가을소녀다.

보통 대형 기획사들의 신규 그룹 런칭 텀이 4~5년인 걸 감안하면 차이가 커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사이에 보이그룹이 한 팀이 있었다.

문제는 그 그룹이 사건사고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

“데뷔하고 돈 벌어 오랬더니 애를 만들어 오더라고요. 그것도 혼전 임신으로…….”

“푸흡.”

“이가 갈려요. 진짜. 한 놈은 결혼한다고 깽판 치고, 한 놈은 음주운전하다가 행인들을 칠 뻔하고.”

그나마 15년도에 데뷔시켰던 보이그룹 에노티(NOT)는 사정이 낫다는 이야기를 할 때.

“에노티에게 최고의 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확연히 느끼고 있어요. 우리 회사가 보이그룹에 재능이 많은 편이 아니라는 걸. TJ나 KM, MOP처럼 양쪽 다 잘하는 건 무리더라고요.”

“그렇죠.”

“그런 면에서 SNH는 레몬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요.”

걸그룹 포트폴리오.

너희에게 없는 걸그룹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겠다는 이야기에 박규호 대표의 마음이 동할 때.

“상상해 보세요. 박 대표님. 레몬 엔터의 합동 콘서트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으음…….”

박규호 대표의 머릿속이 반짝거렸다.

-레몬 엔터 산하 레이블 합동 콘서트.

국민 그룹인 데일라잇과 뉴블랙.

스트릿 보이즈와 스칼렛, 가을소녀, 라비앙로즈, 에노티 등등.

여기에 우주가 요즘 꼬시는 중이라고 하는 TNT의 두 멤버 장한별과 석지훈까지….

그런 라인업에 침을 꿀꺽 삼킬 때.

“박규호 대표님. 이렇게 세 회사가 하나로 뭉치면요. 그게 바로 K팝이에요.”

“정말 그렇군요. 하하하, 이것 참….”

박규호 대표가 그런 말을 하며 웃었다.

“조만간 SNH 엔터로 한 번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한 번 보고 싶네요.”

“뉴블랙 친구들한테 물어보셔도 될 거예요. SNH 엔터에 대한 인상이 어땠는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대주주님들이 가셨구만.”

“데일라잇 애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하핫.”

회사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기류가 오간다는 것은 확실했다.

두 대표가 친근하게 각자의 그룹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걸 모를 거예요. 데일라잇을 어떻게 국민 걸그룹으로 만들었냐고 매번 물어보는데… 그냥 걔네가 된 거거든요.”

“백 번 공감합니다.”

“애들이 그냥 돈을 벌어 왔다니까요.”

국민 그룹을 보유한 대표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 새끼 자랑을 할 때였다.

두 대표의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지호 [대표님]

지호 [저희 콘서트에서 사고 싶은 거 또 생겼어요!!!]

지호 [데일라잇 선배님들이 폭죽을..]

박규호 대표의 손가락이 달달 떨리고 있을 때, 장소희 대표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저, 박 대표님?”

“네?”

“다음 콘서트에 드론쇼 하신다고요?”

“네.”

“데일라잇 애들이 자기들도 그거 하고 싶다고…….”

“저희는 데일라잇이 한 폭죽쇼를 하겠다고….”

“…….”

“…….”

두 대표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저, 장 대표님.”

박규호 대표가 물었다.

“혹시… 장 대표님도 돈 넣었는데 돈이 나오신?”

“어머, 박 대표님도…?”

“…….”

“…….”

두 대표가 동병상련의 미소를 지으며 서로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 * *

우리가 누구냐.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최강 뉴블…….

“우웁…….”

“웁.”

속이 비어서 그런지 울렁울렁하다.

여기저기서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들과 SNH 엔터의 구내식당에 줄을 섰다.

“회사에서 아침 식사도 주네요.”

“아침은 소중하니까….”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데일라잇 멤버들과 우리의 눈은 퀭하기 그지없었다.

옆에 있는 TNT는 더 심했다.

“미친 사람들…….”

“뉴블랙이랑 녀블랙이야…….”

“아니야. 데일라잇 누나들이 먼저 데뷔했으니까 뉴블랙이 우우욱.”

말을 하던 한빈이가 헉구역질을 하며 입을 가렸다.

앞에 서 있던 SNH 엔터의 직원들이 먼저 드시라면서 줄을 비켜 줬다.

리혁이가 중얼거렸다.

“진짜 오랜만에 밤새웠네요.”

“이따 숙소에서 눈 좀 붙이자.”

눈에 핏발이 선 졸개들과 나의 모습이 구내식당 유리에 비친다.

그렇다.

세 그룹은 밤새 연습을 하면서 동선을 맞췄다.

본래 며칠은 걸려야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무대인데 하루 만에 끝내 버렸다.

-으아아아아아!

-우린 활동 쉬다 온 거란 말이야!

-괜찮아. 한별아. 이런 걸로 안 죽어. 이걸로 죽으면 형이 책임져 주고 진시황처럼 왕릉 세워 줄게.

-피라미드 세워 줄꼬야?

우리와 데일라잇 사이에 낀 TNT가 조금 고생을 하긴 했다.

현역 솔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태현이 정도만 뻐근하게 목을 주무를 뿐.

“진짜 다 독한 사람들이야….”

지훈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요새 연기할 때만 해도 아이돌 활동이 그리웠는데, 지금 다시 안 그리워졌어.”

“저도 드라마 촬영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형.”

“지호야…….”

“형…….”

각 그룹의 연기 멤버이자 막내들이 어헝헝 하며 칭얼거리는 동안, 뚝배기에 담긴 해장국을 받아 식탁에 앉았다.

들깨가루를 듬뿍 뿌린 해장국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면서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렀다.

리앤이 술잔 대신 물컵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리더야.”

“선배님도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몇 번 더 만나긴 할 테지만 가장 중요한 합동 연습은 마무리를 지었다.

폐회식 무대 잘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없이 해장국을 들이켰다.

“중현아. 그거 뼈야.”

“맛있네요.”

“뱉어. 야. 뱉어.”

“아. 저 뼈 씹은 거예요?”

오독오독 해장국 뼈를 씹어 부수는 중현이를 보며 태현이가 진돗개 같다고 감탄했다.

각자 자기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만큼 피곤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아침처럼 멍하니 식사를 하고는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또 봬요!”

“또 만나자!”

하품을 쩍쩍 하던 데일라잇이 회사 수면실로 도망치고.

“형. 다음에 우리 만나면 밥… 밥 먹읍시다.”

“그…러자. 밥 먹어야지. 내가 살게.”

도저히 피로가 안 풀린 TNT 멤버들은 각자 매니저를 불러서 조수석에 구겨지듯이 각자의 자가용에 들어갔다.

졸음이 가득한 태현이가 눈을 끔뻑끔뻑 뜨면서 나한테 ‘안녕~’ 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 웃었다.

그리고….

“지훈아. 넌 왜 안 가니?”

“매니저가 전화를 안 받아서….”

“그래도 기다렸다가 꼭 운전해 주는 차 타고 가. 너 지금 차 운전해서 가면 백퍼 사고 난다.”

“알고 있어. 아… 왜 안 받지? 출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반드시 레몬으로 넘어오겠다는 석지훈의 말에 미소를 지어 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주차장에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좋은 아침입니다~!”

민수 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웃으면서 인사를 해 주었다.

그러고 다시 자려고 했는데….

“아.”

비주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거 이야기하는 거 깜빡했어요. 형.”

“뭐?”

“내일 민준이 졸업식이거든요.”

“아. 그래?”

그런 말을 들으며 우리가 오 하고 있을 때였다.

“음……?”

비주 동생 민준이.

초등학교 졸업식.

두 가지 키워드가 하나로 조합되면서 머릿속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지호가 몸을 벌떡 일으키고 물었다.

“잠깐만요. 비주 형.”

“응?”

“민준이가 졸업한다구요? 그 애기가…?”

14년도에 만났던 그 애기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는 소식에 모두가 눈을 깜빡거렸다.

비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민준이 졸업해, 이제.”

“세상에…….”

“그럼 이제 중학생이에여? 진짜루?”

평생 초등학생으로 살 것 같던 민준이가 중학생이 된다는 소식에 그저 경악할 뿐이었다.

내가 말했다.

“민준이 졸업식 있으면 미리 알려 주지.”

“어차피 저한테도 오지 말라고 해서요. 그냥 이따가 영상 통화로 축하해 달래요.”

“에헤이.”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 축하가 되나.”

“우리 민준이가 졸업을 한다는데 형들이 뭐라도 보내 줘야지.”

마침 이런 걸 잘하는 업체를 하나 알고 있었다.

* * *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내가 이제 중학생이라니……!’

지난 몇 년간 초등학교 생활을 훌륭하게 끝낸 민준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초등학생들이 가득한 강당.

[졸업을 축하합니다!]

졸업식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친구들과 강당에서 부모님과 사진을 찍고 있는 한편.

김민준에게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민준아. 나랑 사진 같이 찍자.”

“민준이 너 중학교 어디 가? 나도 거기 같이 갔으면 좋겠다….”

“엄마. 얘가 민준이야.”

“어머머머, 네가 민준이니? 잘생겼네!”

김민준은 학교의 유명 인사였다.

바로 미모 때문이었다.

또래보다 키가 조금 작긴 하지만 유약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풍기는 미모는 벌써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 미모의 특징 때문에 더 유명했다.

“엄마, 민준이 진짜 뉴블랙 비주랑 닮지 않았어?”

“그러네.”

“비주랑 완전 닮았어.”

민준과 그의 가족들이 아련하게 웃었다.

‘그야 내가 동생이니까…….’

뉴블랙의 가족이라는 것은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알렸다가는 정말이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을 테니까.

그것 때문에 형도 오지 말라고 한 거였다.

‘보고 싶긴 한데…….’

비주 형이랑 중현이 형, 우주 형.

그리고 리혁이 형.

보고 싶은 형들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 중학교 생활이 피곤해질 거야.’

지금도 뉴블랙 비주와 닮았다면서 고초를 겪고 있지 않던가.

처음에 무수히 많은 고백을 받을 때만 해도 민준은 자신의 인생에 봄이 찾아온 줄 알았다.

-내가… 좋아?

-응응. 잘생기고 성격도 착하고, 귀엽고 너무 좋아.

-어어….

-그리고 비주 닮아서 제일 좋아!

-…….

김민준이 오지 않는 봄에 꺼이꺼이 마음속으로 슬퍼할 때였다.

“민준아아아!”

같은 반 학생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민준아! 너 대박!”

“응?”

“너 졸업 축하한다고 뭐 와 있어! 우, 운동장에…….”

운동장에 뭐가 있다는 말에 민준과 그 가족들이 나갔다.

펄럭~

“어?”

현수막을 바라보며 김민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돌처럼 뽀샤시하게 포토샵이 되어 있는 그의 사진 아래로 멋들어진 글귀가 적혀 있었다.

[경축! 김민준 초등학교 졸업!]

[민준이를 사랑하는 형들의 모임]

그런 현수막 아래로 펼쳐진 아메리카노의 물결.

드라마 촬영장에서나 볼 법한 커피차 앞에서 사람들이 ‘김민준의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컵홀더를 컵에 끼고 있었다.

고소한 커피 냄새를 맡으며 민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지.’

손님들이 받아가는 봉투에는 민준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비롯해 다양한 굿즈들이 나왔다.

[김민준 졸업]

[꽃길만 걷자]

앞면과 뒷면에 그런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비롯해 굵직하게 ‘김민준’이라고 적힌 마그넷 자석까지.

힙한 굿즈들을 보는 순간 김민준은 발신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짱구처럼 웃어 대는 5인조의 실루엣.

“…….”

자기들 딴에 ‘아 누가 내 졸업식에 이렇게 해 주면 정말 좋겠다’ 하며 진행한 게 분명했다.

그러는 동안 졸업생들이 민준을 가리키며 수군수군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많은 수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친구들.

‘……조용한 중학교 생활은 글렀다.’

벌써부터 ‘쟤야?’, ‘쟤구나?’ 하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가운데, 김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 * *

[부재중 전화 : 36통]

딩동.

딩동!

딩도도동!

민준 [전화 받아요]

민준 [안 받아요???]

민준 [형 집에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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