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2화
청담동 일대.
평소처럼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던 시민들은 무언가 낯선 것을 발견했다.
“음?”
거대한 레몬 로고.
그 아래 노란 글씨로 한글이 쓰여 있었다.
[ 레몬 엔터테인먼트 ]
영어였다면 그냥 머릿속으로 휭 스쳐 지나갔을 텐데, 한글로 된 간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콕 틀어박혔다.
하지만 바로 알아차리진 못했다.
‘레몬 엔터가 어디지?’
‘레몬…?’
이 근방에 있는 TJ 엔터는 잘 알지만 레몬 엔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정확히 떠오르질 않아서 긴가민가할 때였다.
핸드폰 검색창에 손을 올리는 사람들의 귓가로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출근길의 피곤하고 상쾌한 아침을 함께 하고 있는 저는 DJ 박재우입니다! 그럼 오늘의 첫 곡 감상하시겠습니다.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곡이죠? 뉴블랙의 Coin입니다.]
곧이어 지호의 보컬이 들려오면서 사람들이 아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레몬이면 뉴블랙 회사구나!’
‘나 왜 뉴블랙 엔터로 알고 있었지…?’
민트 향기처럼 청량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어 간판을 찍었다.
곧이어 온라인 곳곳에 퍼지는 레몬 엔터의 신사옥 사진.
[레몬 엔터 신사옥 입주하나봄]
(신사옥 사진.jpg)
출근하는데 간판 발견함ㅋㅋㅋㅋ
-건물 진짜 개좋다
-뉴블랙으로 대체 얼마를 번거야ㅋㅋㅋㅋㅋㅋ
-와
-한글이라 눈에 뽝 들어오네
-시선강탈 오진다ㅋㅋㅋㅋㅋ 레몬 존나 거대해
-머머리아조씨 싱글벙글하는 거 눈에 훤히 보이는 듯
그중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레몬 엔터의 위치였다.
[TJ 사옥 맞은편에 이사 온 레몬 엔터]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회사.jpg)
위치 선정 오졌따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처음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다른 게시글들에 묻혔기 때문이었다.
글쓴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어디선가 빵 향기를 풍기는 네티즌들이 조언을 해 주었다.
-어그로 그렇게 끌면 베스트 안 됨ㅇㅇ
-TJ 사옥 맞은편에 이사 온 레몬엔터어쩌구 (X) 반박 못할 박태준 최고 업적 (O)
-이제 그럼 반박하려고 존나게 들어옴ㅋㅋㅋ
조언을 받아들인 글쓴이가 글을 새로 팠다.
[박태준 최고 업적 (반박시 서리혁)]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회사.jpg)
경쟁사 사옥 세워줌ㅋㅋㅋㅋ 엌ㅋㅋㅋ
곧이어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하는 조회수.
그러면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글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흥미롭게 생각할 만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방출된 연습생이 중소기획사에 데뷔해서 그 회사를 대형 기획사로 키워냄. 그리고 방출한 소속사 맞은편으로 사옥을 이전함.’
인터넷 사이다 썰을 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실제로는 우주가 건물을 구매한 것도 아니지만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레몬 엔터=우주선의 왕국’이었다.
아이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인배의 앙심은 10년을 간다
-우주야ㅋㅋㅋㅋㅋㅋㅋ
-레몬도 가수 닮아서 기존나쎔 재질ㅋㅋㅋㅋ
-박태준 은퇴해서 다행임.. 저거 봣으면 지금 대표실에서 혈압올라 쓰러졌을듯
-ㄹㅇ
-영감탱 선우주 그냥 고대로 가지고 잇엇으면 거의 비트코인급떡상이었는데 ㄲㅂ
-평행세계의 박태준) 선우주랑 하하호호 하면서 저 자리에 TJ 제2사옥 세움
-하지만 방출했죠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개꼬시다
곧이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글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뉴블랙네 회사 새로 이전하는 데가 TJ 맞은편이래요.”
“그래요?”
“근데 그거 아세요? 박태준이 2010년인가? 그때 우주 방출했다고 그러던데요. 근데 이게 저걸로 돌아온 거죠.”
“대박….”
퇴사자가 맞은편에 대기업을 세워서 돌아오는 스토리에 직장인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리고 이거 보셨어요? 인터넷에서 흑의환향이래요.”
“흐하하하!”
금의환향 대신 흑의환향이라는 드립에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는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방금 전까지 골동품을 닦고 있던 노년의 남성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가 탁자에 내려놓은 핸드폰 위로 [회장님 열 받죠?ㅋㅋㅋㅋ] 하는 게시글들이 보였다.
박태준 회장이 허허 웃었다.
‘뭐. 젊은이들이 그러고 놀 수도 있지.’
은퇴를 하고 나서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인상이 변한 박 회장이었다.
그가 온화하게 웃었다.
시골에서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짓고 은퇴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보니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기분이다.
자연과 안빈낙도를 노래하던 옛 선비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허허. 연예계가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신경을 끄기로 결정한 박태준 회장의 귓가로 과거의 대화가 떠올랐다.
-우주가 배우 제안 승낙 안 하면 어떡할까요? 방출하기에는 애가 가진 재능이 너무 많은데….
-재능 있는 연습생이 한둘인가? 우리나라는 한 명이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시장이 아니야. 우리 TJ 엔터가 왜 대형이겠나? 개인이 중요치 않을 만큼 시스템이 탄탄하니까 대형인 거 아니겠냐 이 말이지.
-그럼 싱어송라이터로 데뷔시키는 건…….
-미국도 아니고, 트렌드에 안 맞아. 한 이사가 왜 그리 감싸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연습생 하나에 연연할 만큼 작은 회사인가?
박태준 회장의 손길이 멈췄다.
“허허.”
그런 것에 신경 쓰기에는 이미 지나간 일들이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박태준 회장의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평행세계가 떠오르고 있었다.
빌보드 시상식장에 선 우주.
-땡큐 미스터 박태준! 미스터 박이 없었더라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저에게 언제나 기회를 주시고 아껴 주신 박태준 회장님에게 이 빌보드 상의 영광을…….
그래미 시상식에 선우주와 동행한 그의 모습.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K팝을 세계에 알렸다고 극찬하는 모습.
국민 가수를 키워 냈다며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기획사 대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박태준 회장의 위장이 쓰려왔다.
“지나간 일…….”
기한이 지나서 로또 1등 당첨금 수령을 못 하게 된 사람처럼 상상을 떨쳐 내지 못하는 박태준 회장이었다.
“에잉…….”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박 회장이 울상을 짓고 있을 때.
같은 TJ 엔터 소속이지만 박태준 회장과 천지차이로 기분이 좋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날렵하게 생긴 미남이 TJ 엔터 사옥에 힘차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닝 복으로도 늘씬한 몸태를 자랑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태현 씨, 요새 뭐 기분 좋은 일 있나?”
“글쎄요. 요새 폐막식 준비한다던데 올림픽 무대 나가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런가…?”
늘 직원들에게 웃어 주긴 하지만 서늘한 분위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힘든 아티스트였는데.
최근 들어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에 직원들이 저마다 추측을 했다.
하지만 정답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위치 좋구만.”
연습실 창 너머로 보이는 레몬 엔터 신사옥을 바라보며 한태현이 미소를 지었다.
‘같이 밥 자주 먹을 수 있겠다.’
요즘 들어 그의 기분은 최고였다.
* * *
사람들의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
“와아아아아아아!”
“올림픽이다!”
다시 찾은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꺄하하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언니~! 나 잡아 봐라~!”
“기다려! 다봄아!”
“언니! 언니!”
데일라잇 멤버들이 익룡 소리로 ‘언니! 언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막 깔깔거리며 뛰고 있었다.
TNT 멤버들도 큰 차이는 없었다.
“와. 여기가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이구나.”
“인면조 춤추던 데가 여기 아니야? 여기서 막 춤추고 그러던데? 딱 이 위치였던 듯.”
“우주 형 피아노 치던 데가 여기였구나.”
올림픽 스타디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TNT 멤버들이었다.
개막식 때 내가 짓던 표정이라 익숙했다.
그리고 우리 동생들은….
“비주야!”
“네, 누나!”
“그거 해 봐. 그거.”
“어… 저 부끄러운데…….”
데일라잇의 채근에 비주가 발레하듯 손짓을 하더니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다리를 뻗은 비주가 공중에서 빙글 도는 동안 중현이와 지호가 아나운서 성대모사를 했다.
“네. 김비주의 트리플 러츠 감상하셨습니다.”
“정말 김비주 선수의 압도적인 연기네요! 하지만 점수는 유럽 선수에게 퍼주겠죠~”
“흐하하하!”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데일라잇을 바라보며 나도 웃었다.
다들 기분이 잔뜩 업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불려 가서 사진을 찍히기도 하면서 올림픽 스타디움 탐방에 끼었다.
“진짜.”
데일라잇의 리더 리앤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올림픽 무대를 해 보겠니. 나 이거 버킷 리스트에 있었다니까?”
“그러니까요. 누나.”
TNT의 멤버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올림픽이라니.”
아마 모든 가수들의 심정이 비슷할 것이다.
출연료가 너무 비싸서 어지간한 축제에선 부르지 못하는 가수들도 무료로 공연을 하는 곳이 올림픽이었다.
가수라면 한 번쯤 꿈에 그리는 무대.
그곳에 서 있다는 생각에 가수들의 가슴이 있는 대로 부풀어 있었다.
“형은 생각보다 덤덤하네?”
태현이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멘탈 봐. 역시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회사 맞은편에 건물을 사는 건가.”
“그거 내가 산 거 아니라니까…….”
“말은 안 그래도 다 알아. 금의환향하고 싶은 그 마음.”
다 안다는 표정으로 웃는 태현이의 등짝을 팡 때렸다.
두터운 패딩이 충격을 다 흡수하는 동안 내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신사옥 내가 산 거 아니라고…….”
“오피셜은 그렇겠지.”
어쩌다 보니 위치가 그렇게 된 거인데, 어째 인터넷에서는 다 내가 신사옥을 산 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떨던 리혁이가 말했다.
“그냥 받아들여요. 혀… 형. 밖에서 보면 그럴싸하긴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대주주에 회사 최고 실세라고 해서 뭘 하든 간에 개입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농담인 건 알지만, 장기적으로 좋지 않으니까 그래.”
“왜요?”
내가 리혁이한테 말했다.
“만약 회사가 움직이는 게 내 뜻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고 쳐. 그런데 회사가 일 처리를 잘못해서 지탄을 받으면? 그 화살이 어디로 돌아올지는 너무 뻔하잖아.”
“……우리겠네요.”
“굿즈 잘못 뽑아서 욕먹으면 그 말부터 나올걸. 아, 뉴블랙이 대주주니 뉴블랙 취향인가 보다. 뉴블랙이 결정한 거 아니겠냐. 근데 우리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여하는 건 아니잖아.”
사람 하는 일이기에 회사 일도 당연히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소유권을 지닌 대주주라는 것에 너무 포커스가 가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심각하게 우려하는 건 아니었다.
다들 농담 삼아 그러는 거니까.
다만, 농담도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면 진담처럼 받아들여지는 게 이 바닥 이치인 터라 경계심은 가지고 있다.
“일리 있는 말이네요. 그 부분에 신경 좀 써야겠어요.”
“그렇지.”
그러고는 코가 벌게진 리혁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근데 방금 나한테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와아아아!”
리혁이가 와악! 소리를 내면서 뛰놀고 있는 사람들 틈바귀로 도망쳤다.
코뿐만 아니라 귀와 얼굴까지 전체적으로 벌게져서 그런지 플라밍고를 보는 거 같다.
귀엽다.
요즘 들어서 은근히 ‘형…’ 하며 호칭을 바꿔 부르려는 누군가의 노력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 거기까지 놀고 모일게요!”
“싫어!”
“더 놀래!”
철없이 외치는 9년차와 13년차 베테랑 아이돌, 그리고 우리 졸개들.
데일라잇의 리앤이 내 곁에 슥 섰다.
“우주야.”
“네. 선배님.”
“통역해 줄게. 다시 한번 말해 줘.”
“네.”
쿵짝을 맞추듯 리앤이 엄격한 표정을 짓고, 내가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이제 곧 회의 시간입니다.”
“번역) 10초 준다. 강아지 아기들아.”
“올림픽에 들뜬 여러분의 마음은 알지만, 내일 폐회식을 앞두고 무대 정비도 해야 될 시간이고 하니 돌아오는 게 좋겠습니다.”
“번역) 9… 8…….”
뭉쳐 있던 이들이 서로를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가수들을 인솔하면서 다시 스타디움 사무실 쪽으로 들어갈 때.
“어! 군인 분들이다!”
“안녕하세요!”
제설 삽을 들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육군 장병들에게 다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들을 보고 놀라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낼 때.
“…….”
추운 날씨에 방한복을 입고 투입된 군인들을 바라보며 구선웅이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왜 그래. 형?”
“아니, 그냥 군인들 눈 치우는 걸 보니까 눈물이 나서… 진짜 이 날씨에 고생이 많겠다 싶어.”
공감 능력이 그리 뛰어난 형은 아닌데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보니 감수성이 폭발한 모양이다.
내가 어깨에 팔을 슥 두르며 말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 형.”
“왜?”
“형도 곧 하게 될 거니까.”
“…….”
눈으로 쌍욕을 퍼붓는 이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 주었다.
아. 너무 재미있다.
* * *
올림픽 스타디움 회의실.
김익환 감독님과 연출진이 우리를 반겼다.
“2주 만에 또 만나네요. 잘 지냈어요?”
“네. 엄청 바빴어요.”
올림픽 개회식을 함께 해서 그런지 뭔가 동지애가 넘실거리는 분위기였다.
우리를 바라보는 중년 남자들의 얼굴에 호감이 가득하다.
“우린 뉴블랙 거의 매일 같이 본 거 같은데. 하하!”
“여보 낚시 너무 재미있더라구.”
그렇다.
올림픽 개막식 버프를 받았던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는 현재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는 중이었다.
개막식 때 회차만큼은 아니었지만, 3회와 4회도 굉장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별명도 많이 생겼던데. 꽝우주. 영고우주…….”
“그… 네.”
“돛새치 너무 기대되던데. 그래서 돛새치 잡아요? 5회 예고 보니까 돛새치 잡으러 나가더라고.”
여보 낚시에 대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가는 한편.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여보 낚시를 이야기하는 아저씨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보낚시 나가길 잘했다.’
‘역시 중년 세대를 공략하는 게…….’
우리가 그런 미소를 주고받고 있을 때.
외투를 벗은 TNT와 데일라잇이 회의실에 입장하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우리에게 온 관심을 집중하던 아저씨들이 우르르 데일라잇에게 뛰어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데… 데일라잇 분들이 오셨네! 허허허허허!”
“제가 이런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06년도부터 팬이었습니다.”
원조 국민 그룹다운 인기였다.
남녀 상관없이 다가가서 막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연예인을 영접한 듯한 표정.
TNT 멤버들도 평창 폐회식 연출진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태현 씨, 제 동생이 너무 좋아해요.”
“다봄 씨. 팬입니다.”
“이따가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가수들의 팬 서비스 시간이 끝난 후.
김익환 감독님이 서류철을 넘겼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하죠.”
간략한 현장 설명이 이어졌다.
“내일 진행될 폐회식 행사를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날씨 관련해서….”
“네.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기술 감독님이 말했다.
“지금 바깥에서 잠시 느끼고 오셨겠지만 엄청 춥죠?”
“네.”
“내일 이것보다 더 추울 예정이랍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나왔다.
“노트북 들고 나가면 바로 노트북이 꺼지는 날씨거든요? 지금 연예인 분들도 핸드폰 보시면 다 꺼졌을 거예요.”
“어? 진짜네.”
“어, 꺼졌다.”
캘리포니아 날씨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핸드폰이 죄다 꺼진 모습에 가수들이 눈을 깜빡였다.
김익환 감독님이 말했다.
“날씨 이슈가 있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걱정할 부분은 아닙니다. 지금 베이징 올림픽 예고하러 온 중국 연출진이 걱정을 하고 있긴 한데… 그 부분 빼면 아티스트들한테는 추운 것 빼곤 문제가 없을 겁니다.”
“추위야 견디면 되죠.”
“임진각에서도 무대 서 봤는데요. 뭘.”
베테랑 가수들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하면서 괜스레 미안해하는 연출진을 다독였다.
김익환 감독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무대 정비가 끝났을 것 같은데, 슬슬 리허설하러 가 볼까요?”
회의가 끝나고 나서 일정이 예정대로 흘러갔다.
리허설.
또 리허설.
다시 리허설.
무한 반복하듯이 리허설을 반복하니 가수들의 안색이 곧장 파리해졌다.
“에취!”
“흐에취!”
“어우… 콧물이 나오다가 얼어붙네. 야, 주영아. 이거 봐봐라?”
“아! 누나 더러워요!”
얼어붙은 콧물을 빙빙 돌리는 데일라잇 멤버의 모습에 다들 사레가 들려서 기침을 토했다.
리허설을 잠시 쉬는 타임마다 매니저들이 건네주는 손난로를 흔들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은 다 같이 펭귄처럼 붙어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음.”
매니저들이 찍어 준 영상들을 볼 때마다 가수들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태현이와 비주, 백승제 등 메인댄서 모임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 좀 애매하네요.”
“그러니까 모니터링하기가 너무 나쁜데? 의상이 이래서…….”
아무래도 다들 패딩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있어서 자세한 동작을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리허설하는 동안 맨몸으로 할 수도 없고.
이 부분은 이따가 끝나고 한 번 더 맞춰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다들 따스한 곳으로 들어가 웅크리는 한편.
“으어. 추워.”
자판기에서 뜨끈한 코코아라도 한 잔 뽑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실내로 이동했다.
코코아를 한 잔 뽑아서 돌아오는데….
“지금 뭐 하자는 거죠?”
누군가의 날선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내 발걸음이 멈췄다.
내가 아는 목소리.
후드를 눌러쓰고 은신술을 펼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코너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뭐 하는 거냐고 지금 묻잖아요.”
“…저희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 주세요. 한별 씨.”
TJ 엔터 기획팀 직원들과 장한별이 험악한 분위기로 마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