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3화
10분 전.
장한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2인조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예! 하하! 오랜만입니다. 한별 씨.”
꾸벅 인사하는 이들은 바로 TJ 엔터의 기획팀 사람들이었다.
얼굴을 본 순간부터 용건을 짐작하긴 했다.
기획팀이 현장에서 할 일은 없다. 그렇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평창까지 올 일이 없었다.
계속해서 연락을 피하는 가수를 만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실례가 아니라면 잠시 시간 괜찮습니까?”
“아뇨.”
장한별이 씩 웃으며 답했다.
“안 괜찮은데요. 바빠요, 지금.”
“그러지 마시고 정말 딱 5분만 시간을 내주시면 됩니다. 저희가 뭐 해 되는 사람들도 아니고.”
장한별의 눈이 주변을 살폈다.
텅 비어 있는 그의 주변.
입맛이 썼다.
매니저가 있었다면 ‘이 사람들 좀 떨쳐 내달라’ 는 식으로 눈짓이라도 보냈을 텐데.
그는 아직 아무 소속이 없는 상태였다.
“이야기하기 싫다는 사람한테 자꾸 들러붙는 것도 좋아 보이진 않는데요. 자꾸 이러면 보안 요원 부르겠습니다.”
“딱 5분만… 5분이면 됩니다.”
험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억누르며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한별 씨가 저희 회사에 섭섭한 점이 많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반성도 많이 했고요. 아무래도 서로 간에 견해 차이가 좀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쌍방 과실이라는 거네요?”
“…….”
“미안할 일이 생기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세요. 책임 면피하지 마시고.”
곧 죽어도 ‘우리 잘못은 아니고 쌍방 잘못인 듯’ 하며 퉁 치려는 TJ 엔터 기획팀의 모습에 장한별이 한숨을 쉬었다.
‘양쪽이 말을 나눠야 의사소통이지.’
한쪽이 주구장창 말을 했지만 한쪽이 씹어 버린 상황 아니던가.
-요즘 들어 중국 활동이 너무 잦은 거 같은데… 한국에서 팬들도 기다리고 있고.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한별 씨! 솔직히 놓치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거든요. 한별 씨가 중국 활동을 하면 이제 TNT도 같이 중국에서 활동의 폭이 넓어지고. 요즘에 해외 인기도 중요한 거 아시죠?
-그럼 제 한국 활동은…….
-걱정 마세요. 곧 저희가 준비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음악 방송이나 예능을 돌 때를 빼고는 중국에서 뺑뺑이를 돌렸던 TJ 엔터였다.
물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활동 덕분에 장한별은 중화권의 대표적인 슈퍼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으니까.
대박을 터뜨린 중국어 앨범.
인기리에 종영된 중국 드라마의 주연.
활동을 1년 넘게 쉬고 있는 지금도 대본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맙냐고 한다면 딱히 고맙진 않았다.
아이의 의사를 무시한 부모가 혹독하게 공부를 시켜 북경대에 보내놓은 다음에 감사하라고 한다면 과연 그게 감사할 일일까.
-음? 북경대면 중국의 서울대 아니야? 서울대면 좀 감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환청처럼 들리는 어떤 형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장한별이 맞은편에서 주절주절하는 TJ 엔터 직원을 바라보았다.
귀에 딱지가 앉을 거 같다.
매번 들었던 똑같은 말이었다.
“앞으로는 한별 씨의 의사가 무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한국 활동과 관련해서 무제한적인 지원을…….”
말이야 쉽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그리고 장한별은 지난 7년 동안 TJ 엔터의 행동에 질릴 대로 질린 상황이었다.
‘참을 만큼 참았어.’
K팝에 진출한 중국 멤버들이 탈퇴해 버리고 공작소를 차리는 것도 많이 봤다.
그에게도 그간 기회가 많았다.
이럴 바에야 개인 공작소 차리고 활동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변의 제안부터 시작해서 정말이지 유혹은 많았다. 하지만 TNT라는 타이틀을 버릴 만큼의 가치는 아니었다.
연습생 경력까지 따지면 TJ 엔터에서 10년이다.
10년을 헌신했으면 적어도 원하는 것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제지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깨무는 한편.
“비율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특별하게 9대1까지도 조절이 가능하고…….”
지금 눈앞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기획팀 직원의 모습에 마지막 남아 있는 일말의 애정까지 식는 기분이었다.
“저기.”
장한별이 말을 끊었다.
“지금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그럼요, 한별 씨!”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어… 24일 토요일 아닙니까?”
장한별이 한숨을 내쉬었다.
“폐회식 전날인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TNT의 완전체 무대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저희 집사람과 딸이…….”
“폐회식 전날이라는 걸 아시고 오신 거네요?”
“네, 한별 씨가 워낙에…….”
“왜 오셨어요?”
그게 가장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나는 부분이었다.
“기획팀에서 일하셨으면 가수들이 컴백이나 콘서트 앞두고 얼마나 예민한지 아실 거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TJ 엔터에서 저를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죠. 그런데 굳이 중요한 무대 전날을 골랐어야 하나요? 제가 반대의 입장이라면 최소한 이런 날은 피할 텐데.”
“…….”
기본적인 배려가 있으면 이런 중요한 날에 찾아와 계약하자고 들러붙는 일 따윈 안 할 것이다.
그 말에 머뭇하는 모습에 장한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음?’
분위기를 보아하니 윗선의 지시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찾아온 듯한 모양새였다.
하기사 신임 대표로 취임한 한영준 대표가 벌일 만한 일은 아니었다.
곧바로 TJ 엔터 내부 상황이 한눈에 그려졌다.
‘기획팀이 밀리고 있구만.’
TNT의 다른 멤버들을 통해 현재 회사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들은 적이 있긴 하다.
박태준 회장이 물러나면서 인척 관계인 기획팀장도 같이 물러났다고.
항상 TJ 엔터의 실권을 잡고 있던 기획팀의 힘이 쭉 빠지고, 한영준 이사 라인이 실무를 장악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위기에 몰린 기획팀이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를 영입하려는 거구나.’
대충 돌아가는 상황이 그려지니 기가 찰 뿐이었다.
“돌아가세요.”
“한별 씨.”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네요.”
그가 돌아가려고 하자 두 직원이 그를 막아섰다.
마침 키도 크고 덩치도 있는 직원들이라 그런지 더욱더 모양새가 괘씸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죠?”
“어, 그…….”
자기들도 순간 막아서고 놀랐는지 당황하는 직원들.
“뭐 하는 거냐고 지금 묻잖아요.”
“…저희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 주세요. 한별 씨.”
장한별이 보안 요원을 부르려고 할 때였다.
빼꼼.
후드를 눌러쓴 낯선 사람이 코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누구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
꼭 은신술을 쓴 것처럼 주변에 녹아들어서 카멜레온처럼 보이는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우주 형?’
잘 모르겠지만 눈매가 딱 선우주였다.
초롱초롱.
광인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전국에 한 명뿐이니까.
선우주를 발견한 장한별이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하고는 실천에 옮겼다.
“조만간 한영준 대표님과 이야기할 일이 생기면 두 분 이름을 말씀드려야겠어요.”
“…….”
“지금까지 TJ 엔터에 대해 일말의 정이 남아 있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두 분 덕분에 제가 고민을 끝냈다고요.”
그가 멀찍이 보이는 이에게 손짓을 했다.
TJ 엔터의 두 직원이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어? 한별이 너 거기 왜 있어?”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선우주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기획팀 직원들의 눈이 커졌다.
“어… 어.”
과거 선우주 방출을 주장했던 기획팀의 일부라서 그런 걸까.
연습생 시절의 선우주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라 ‘우주야’ 하고 말이 나와야 보통일 텐데.
“어, 안녕하십니까. 우주 씨.”
“안녕하세요. 기획팀 분들 맞으시죠?”
“예….”
“너무 반갑네요.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횡설수설 얼버무리던 기획팀 직원들이 도망치듯 사라졌다.
장한별이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대주주 파워가 세긴 하구나.’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니 저쪽이 알아서 수그린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웃음도 잠시.
“아씨!”
“왜 그래?”
“아! 그거 말하려고 했는데…!”
장한별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곤 연기하듯 포즈를 취했다.
“이렇게 하려고 했거든. 드라마에서 재벌 남주가 여주 앞에 등장하는 구도 있잖아. 두 사람이 어어어? 하고 있는 동안 내가 형의 손을 붙잡고 딱 말하는 거지. ‘저 레몬으로 가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아씨 몰라.”
멋진 장면을 연출하려다가 실패한 장한별이 울상을 지었다.
옆에서 작게 웃는 선우주에게 그가 물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봤어?”
“너가 뭐 하는 거냐고 묻는 순간부터…? 저기 두 사람이 널 가로막고 있더라고.”
“아.”
마지막 부분만 본 듯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선우주의 눈동자가 슬쩍 돌아가는 걸 바라보니 눈칫밥으로 다 파악한 듯했다.
나름대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 건지 순간적으로 코끝이 시큰하다.
왠지 서러웠다.
“확실히 강원도가 춥긴 춥다. 실내도 춥네.”
구석진 곳이라 그런지 춥다고 너스레를 떨던 선우주가 그에게 코코아를 내밀었다.
“이거 좀 마실래?”
“고마워.”
따끈한 코코아의 향기가 온몸에 퍼지는 한편.
잠시 코코아 잔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장한별이 고개를 돌렸다.
“형.”
“응?”
“나 계약 좀 앞당길 수 있을까?”
* * *
갑자기 계약을 앞당기자고 하는 한별이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원래 올해 하반기에 계약한다며.”
“그랬지.”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어?”
“음…….”
조금씩 발걸음을 떼면서 대화를 나눴다.
한별이가 코를 킁 하면서 말했다.
“방금 좀 서럽더라.”
“그랬어?”
“소속 없이 다니는 게 이렇게 서러운 줄은 몰랐지. 방금 전에 저 둘이랑 대화하는데 끊을 방법이 없더라.”
확실히 매니저가 있었으면 상황 대처가 편하긴 한 건 맞다.
한별이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나는 의리가 되게 중요한 사람이야. 형. 어떤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응.”
“그래서 우리 멤버들이랑 형이 좋아.”
“왜?”
“좋은 사람들이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한별이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나는 내 사람들 편을 들 거거든.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 게 다행이지.”
얘가 정에 약한 면을 보였던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TJ 엔터와도 나름 신의를 지킨 거였거든. 서로 비즈니스적으로 깔끔하게 이별할 시간을 가지도록.”
“…….”
“근데 나만 애정이 있었나 봐.”
현타가 온 사람처럼 헛웃음을 짓던 한별이의 마음을 이해했다.
중요한 무대 전날에 찾아와서 계약하자고 난리를 피우다니, 솔직히 있던 정도 다 떨어질 일이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계약을 서두르게?”
“응. 소속이 얼른 생겨야겠다 싶네. 다른 회사라고 완전체 활동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니까.”
“대표님에게 내가 잘 말해 둘게.”
“잘 부탁해용~”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한별이가 내게 들러붙으며 웃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골든 리트리버마냥 애정표현을 쏟아 내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연습생 때 맨날 사람들한테 들러붙는 모습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장한별. 너 무슨 애정 결핍이냐? 더워 죽겠는데 맨날 들러붙어….
-난 애정 결핍이 아니야!
당당한 표정.
-난 애정 과다야!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온갖 애정을 받아 자라온 막내.
그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이래도 날 안 좋아해? 같은 느낌.
미국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애가 표정에 현타가 그득그득 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예전으로 좀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좋아서.”
“귀여워서?”
“…….”
그렇게 다시 스타디움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웬 중국인 아저씨가 한별이에게 인사를 했다.
「장 배우!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감독님?」
둘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도 통성명을 했다.
「양원입니다.」
「선우주예요.」
상대가 나를 바라보며 ‘뉴블랙!’ 하고 놀라는 동안 나도 상대를 보고 살짝 놀랐다.
중국에서 무협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양원 감독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TV에서 보던 그런 외화 시리즈의 원작자를 보니 신기하다.
「장 배우를 보니까 너무 반갑네. 최근 들어서 쉬고 있던데 특별하게 활동 계획은 없나?」
「네. 당분간은 음악활동에 집중하려고요.」
「그렇구만. 언제든 일거리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하. 우리 장 배우가 출연하면 없는 자리도 만들 테니까.」
한별이에게 계속해서 영업하던 양원 감독은 회의가 있다면서 걸음을 옮겼다.
저분도 연기력 굉장히 깐깐하게 본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엄청 귀한 배우를 대하듯이 한별이를 바라보는 눈빛에 내가 눈을 반짝였다.
“너 연기 되게 잘하나 보다.”
“한국어 연기는 안 해 봐서 모르겠는데… 중국에서는 엄청 칭찬 많이 듣긴 했어.”
“호오.”
“뭐야. 내가 출연한 드라마 안 본 거야?”
“OTT에 있어야 보지.”
“아. 인정.”
중국 활동을 시켰으면서 막상 드라마는 한국 수입도 안 해 주는 TJ 엔터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상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춤, 노래, 연기.
다방면으로 활동이 가능한 멀티 엔터테이너를 영입했다는 생각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 * *
폐회식 전날의 리허설은 무난하게 끝났다.
이제는 컨디션을 비축했다 터뜨려야 하는 타이밍이기에 분명 푹 쉬었지만….
“어으으…….”
“으으.”
“어으, 아침은 춥네.”
어째 다들 안색이 좋지 못했다.
다크서클이 깔린 리혁이가 말했다.
“어제 긴장돼서 한잠도 못 잤어요.”
“저두여….”
“나도.”
여기저기서 펭귄들이 서로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흐헝헝 울었다.
그나마 얼굴 상태가 무난한 건 중현이와 나 정도였다.
“중현이는 건강하니까 그렇다 치고.”
데일라잇의 다봄이 물었다.
“우주는 그래도 괜찮아 보이네?”
“네. 저는 그래도 좀 잘 잤어요.”
요즘 들어 건강을 챙기기 시작한 것도 있고, 또 개막식 공연을 했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된다.
“개막식에서 혼자 섰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요.”
“아…….”
“어떻게 혼자 섰니. 진짜. 이렇게 떨려 죽겠는데.”
데일라잇 멤버들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13년차 아이돌이 긴장할 만큼 올림픽이라는 이름값이 컸다.
다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바로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출근했다.
어제와 마찬가지의 일정.
“자! 이제 오늘만 힘내면 됩니다!”
김익환 감독님이 박수를 치며 격려 했다.
“오늘만 하면 올림픽 대장정이 끝나는 거니까요. 우린 오늘 하면 끝나는 겁니다. 오늘만 끝나면 패럴림픽 연출진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도망… 아니, 떠날 수 있는 겁니다!”
왠지 모르게 감독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
1년 전부터 올림픽 개막식 준비하느라 임플란트를 두 개나 하셨다고 하던데, 그 고충이 조금이나마 짐작이 갔다.
“하나둘 셋! 화이팅!”
“화이팅!”
오늘도 어제와 일정이 비슷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 패딩과 장갑으로 꽁꽁 싸매고 리허설을 몇 번 정도 반복하고, 동선 체크하고.
설원처럼 하얀 무대 위에서 입김을 뿜어내며 동선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비주가 내게 손을 붙잡고 달려왔다.
“형. 저 손에 감각이 없어요…!”
“나듀…….”
“저듀….”
손동작을 자세히 보고 싶다고 장갑을 벗고 춤을 추던 메인댄서들이 얼어붙은 손을 내밀었다.
꼭 무슨 도깨비방망이를 쳐다보는 표정.
가끔 보면 비주는 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비주야. 그렇게 손을 내밀면 형이 풀어 줄 수 있을 거 같니?”
“네…….”
“맞아. 가능해.”
문제는 내가 이런 것들을 해결 가능하다는 것.
근육을 조물조물해서 메인댄서들의 손을 빠르게 풀어 주는 한편.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 대기하는 동안 속속 도착한 다른 가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대한민국 대표 보컬리스트로 손꼽히는 발라드 가수 차우현.
우리와 명곡단으로 안면이 있는 가수와 인사를 하고, 다른 가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생님!”
“어이구, 인사하러 많이도 왔네. 편하게 일들 봐요.”
트로트 여왕으로 꼽히는 50대의 가수 견성화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에잉.”
“선생님~”
“아. 글쎄,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네. 그 미국 처자랑 호주 영감탱이만 앙코르 콘서트에 불러 주고.”
“선생님~!”
명곡단 첫 라운드의 원곡자였던 노재현 선생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앵콜 콘서트에 안 불러 줬다면서 굉장히 서운해하고 계시는데, 화를 풀어드리는 건 쉬웠다.
리혁이와 성격이 똑 닮은 분이었으니까.
“선생님. 오늘 너무 잘생기셨어요.”
“흠.”
“오늘 너무 큐티뽀짝 하시고.”
“더 해 봐. 더더.”
우리의 칭찬이 이어지면서 결국 원로 가수가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 주었다.
노재현 선생님의 대기실을 나오며 리혁이가 피식 웃었다.
“선생님도 정말 알기 쉬운 분이라니까요.”
“…….”
“왜들 그런 눈으로 찾아 봐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무튼 라인업이 화려한 오늘의 폐회식이었다.
과거 국민 가수이자 가요계 원로인 노재현 선생님.
트로트 여왕으로 꼽히는 견성화 선생님.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로 불리는 차우현까지.
그야말로 한국 대중음악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업을 바라보며 다 같이 우뚝 섰다.
“캬.”
TNT, 데일라잇 멤버들과 중얼거렸다.
“노재현, 견성화, 차우현… 그리고 데일라잇.”
“그리고 TNT와 뉴블랙…….”
“갑자기 훅 떨어지는 느낌인데.”
너무나 오래 국민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라 그런지 데일라잇마저도 신입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약한 게 아니었다.
데일라잇의 리앤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무대로 잘 보여 주면 되는 거니까. 우린 연습에 최선을 다했어.”
“맞아요.”
“솔직히 할 만큼 했어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만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올림픽 스타디움의 TV 중계를 통해 폐회식 리허설에 오른 국민 가수들이 하나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
‘선생님? 대체 준비를 얼마나 하고 오신….’
‘뭐야? 마이크 성량이 오류가 났나?’
스산한 위기감이 감도는 아이돌 팀.
방금 전까지 우린 최선을 다했다는 리앤과 내 눈이 마주쳤다.
끄덕.
내가 침을 삼키며 말을 꺼냈다.
“선배님들. 저희 연습 좀 더 할까요?”
“번역) 이대로라면 백퍼 조진다.”
끄덕.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빈 연습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