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4화
연예계는 기본적으로 변화 주기가 짧은 곳이다.
쉽게 말해 무엇이든 빨리빨리 변한다는 뜻이다.
어제 유행했던 말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 유행하던 음악 트렌드가 휙휙 바뀌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연예인들의 수명은 짧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트렌드에 적응해야 하니까.
매년 반짝하는 스타들이 탄생하지만, 10년이 지난 뒤에도 활동하는 이들이 드문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바닥에서 수십 년 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레전드라고 부른다.
“와…….”
TV 화면으로 나오는 국민 가수들의 리허설을 보면서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데일라잇의 메인보컬 리앤이 감탄했다.
“노재현 쌤은 진짜 어떻게 저 성량이 나오시지? 마이크 없이 노래 부르셔도 되겠는데?”
우리가 말했다.
“근데 저게 심지어 성량이 많이 줄어드신 거래요. 최근에 투병하셔서 많이 아팠다가 이제 조금 폼을 회복하신 거라고.”
“장난 아니구나.”
“지금 그래서 선생님 표정이 안 좋으신 거 같아요.”
리허설이 끝나고 나서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패딩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신다.
볼펜 똥을 열심히 닦아 가며 무언가 보충할 점을 적는 모습.
리허설이 끝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는 누군가가 떠올라 다들 고개를 돌렸다.
“왜 날 쳐다봐요?”
“아니야.”
노재현 쌤과 리혁이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귓속말해 주니 데일라잇과 TNT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이가 납득한 얼굴로 말했다.
“조심해야 하는 분이구나.”
“그렇지.”
우리도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는 리혁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TV 속에서는 리허설이 이어지고 있었다.
“견성화 쌤은 진짜 전성기가 없으신 거 같아. 매 순간순간이 레전드야.”
“와, 저 노래 부르시는구나.”
“히트곡만 수십 개는 되실 걸.”
내가 알기로 발매한 곡만 1300여 개가 넘어가는 견성화 선생님이었다.
80년대와 90년대의 트로트를 지배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유명한 분으로 우리 김덕순 여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애창곡도 바로 견성화 선생님의 <염병 말아요>였다.
수십 년 가까이 무대를 휘젓던 가락을 뽐내는 국민 가수의 모습에 우리가 침을 꼴딱 삼켰다.
그리고.
“보컬 끝판왕이 등장하셨네.”
“왜 이렇게 오늘따라 최종보스처럼 입고 나왔지. 저 오빠는 코트만 입고도 안 춥나?”
“차우현 선배님이네…….”
수염을 깔끔하게 정돈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서 있었다.
무덤덤한 표정.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3인방을 꼽을 때, 항상 첫손에 꼽히는 보컬리스트 차우현이었다.
차우현 선배가 잔잔한 보컬로 음역대를 넘나드는 동안 TNT의 메인보컬 신주영이 날 바라보았다.
“너네는 진짜 어떻게… 저 선배님이랑 있는 데서 버텼냐. 난 지금 모니터로 보는데도 숨이 막히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버텼지. 진짜 연습하다 죽는 줄 알았어.”
“목캔디만 수백 개 먹었죠….”
명곡단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몸서리를 쳤다.
그때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들. 제가 더 무서운 거 말씀드릴까요?”
“음?”
“15년도의 차우현 선배님보다 지금의 차우현 선배님이 몇 배는 더 발전하신 거 같아요…….”
“…….”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비주가 아련하게 웃었다.
“이제 저희가 저 뒤에 무대를 서야 한다는 거예요.”
“…….”
“저희가 15년도에 명곡단 할 때도 다른 선배 가수님들이 그랬거든요. 제발 차우현 선배님 뒤에서만 안 하게 해 달라고.”
메인보컬들이 비상이 걸린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다들 뺨을 탁탁 치면서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다시 연습으로 돌아가요. 우리.”
선배님들 리허설 한다고 구경하던 이들이 다시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널찍한 회의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연습실로 활용할 만한 공간에서 집기를 치운 채 다들 준비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후우…….”
그러면서도 길게 흘러나오는 한숨.
역대급 퀄리티로 무대를 준비해 온 선배 가수들의 모습에 괜스레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 * *
“으음.”
원로 가수 노재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60년 묵은 서리혁이 지을 법한 표정.
“이보시게.”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그가 기술감독을 찾았다. 상대가 공손한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네, 선생님.”
“음향이 이게 최선인가? 소리가 쫘악 모이지 않고 퍼져 나가는 그런 느낌인데…….”
“네. 스타디움 구조상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렇구만.”
무대가 별로라면 그에 맞춰서 가수가 노래 부르는 방식을 조금 바꾸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에잉 쯧쯧…….”
계속 투덜거린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머리를 풍성하게 늘어뜨린 트로트 가수가 그에게 다가왔다.
“오라버니는 또 뭐가 불만이에요?”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드시는 것도 참 많지. 그냥 오늘 같은 날은 즐겁게 부르고 가요. 좀. 매사 좀 웃고, 응?”
웃으라는 후배의 타박에 노재현이 웃어 보였다.
트로트 여왕이 정색했다.
“그냥 오빠는 안 웃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
“…….”
그녀의 넉살 좋은 목소리에 주변 스탭들이 웃을 때.
코트 자락을 펄럭이던 차우현이 그들에게 꾸벅 인사하면서 다가왔다.
견성화가 물었다.
“우현이 너는 그거 입고 안 춥니?”
“고향이 철원이에요.”
무덤덤한 로봇처럼 답하는 이를 보며 견성화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때.
“음?”
노재현은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우리 뉴블랙이들이 여기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 갔나?”
“연습한다던데요.”
“기운도 좋네.”
견성화가 그 말을 하는 동안 노재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세요?”
“우리 서 군 만나러.”
그와 성향이 잘 맞는 뉴블랙의 메인보컬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고평가하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솔직함.’
엄청 솔직하다는 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무대가 어땠냐고 물어볼 때 대체로 그의 연차와 권위에 눌린 후배 가수들은 무조건 대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리혁은 달랐다.
어떤 일이든 간에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하면 정말 객관적인 평이 나왔다.
-조금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어요. 선생님.
나이를 떠나 아주 귀중한 벗이었다.
물론 실제로 만난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편이다. 마주칠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이메일로 서로 간에 소통을 하고 있는 노인과 청년이었다.
차우현이 드물게 호기심을 보였다.
“리혁이랑 되게 친하신가 보네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교류하는 사이지. 좋은 책이 출간되면 정보도 공유하고.”
“음…….”
“그러는 자네는 왜 관심이 가나?”
차우현이 멋쩍게 웃었다.
“제가 좋아하는 후배여서요.”
“안타깝게도 내가 먼저 찜을 해 놨네.”
“만난 것만 따지면 제가 더 먼저인 것 같습니다.”
가슴이 옹졸해지는 가요계 강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견성화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길 안내해 주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그런데 걔네는 왜 또 연습을 하러 갔대?”
“아. 그게요.”
누군가 재미있는 스토리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선생님들 노래하시는 거 보더니 놀라서 연습하러 갔대요.”
“어머.”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상상만 해도 귀여웠다.
뽀얀 아가들이 ‘여, 연습해야 돼!’ 하면서 울상으로 뛰쳐나가는 귀염뽀짝한 장면.
“아유. 좋을 때다.”
견성화가 엄마 미소를 지었다.
나름 예능 등에서 안면을 튼 데일라잇 아가들을 떠올리며 귀여워할 때.
“저기인가?”
“저기 같네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까.”
그들의 발걸음이 [컨퍼런스 룸 A]라고 적힌 방 앞에 섰다.
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안쪽의 사정이 훤히 보인다.
패딩이나 외투를 대충 내팽개친 채, 스웨터 팔을 걷어붙이고 동선을 맞추고 있는 아이돌들.
“엄청 바글바글하네.”
스무 명이나 되는 인원이 들어서니 대형 회의실이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과연 어떤 연습을 하는 것인지 선배 가수들이 구경을 했다.
“저기는 노래 잘하는 애들 모임 같고… 저쪽은 춤꾼들이네.”
“어머, 관절 상하겠다.”
귀여우면서도 짠한 표정으로 유명 아이돌들의 합동 무대를 구경할 때였다.
방음이 잘 된 설비를 뚫고 들려오는 서리혁의 목소리와 다른 메인보컬의 목소리들.
“……으음.”
세 가수가 미묘한 표정을 지을 때.
이번에는 메인댄서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가면서 그야말로 화려한 춤사위가 펼쳐진다.
노래만 따지면 그들이 당연히 우위일 것이다.
하지만 종합적인 무대에 있어서는 후배 가수들도 그들과 동점…….
“저기서 가운데 웃고 있는 애가 우주지?”
“네.”
“배수구에 물 빨려 들어가듯이 시선이 집중되네.”
견성화가 침을 삼켰다.
마냥 귀엽게 보던 아가들이, 아가들이 아니었다.
애기인 줄 알았더니 아기장수 우투리였던 것이다. 응애 하며 그레이트 소드를 휘두르는 느낌.
“…….”
“…….”
“…….”
저마다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선배 가수들.
곧이어 가장 운을 뗀 것은 솔직하기로 유명한 차우현이었다.
“잠시 볼일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그다음으로 솔직한 노재현이 말을 꺼냈다.
“나도… 잠시…. 허허허허허.”
두 사람이 호다닥 사라지는 동안 트로트 여왕도 매니저에게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여기 조용히 연습할 수 있는 데 있니?”
“알아볼게요. 선생님.”
곧이어 각자 방을 하나씩 잡고 들어가는 선배 가수들.
귀곡성처럼 스타디움 곳곳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음?”
“이게 뭐죠…?”
폐회식 비하인드 다큐를 찍기 위해 찾아온 PBS 다큐 제작진이 카메라를 든 채 눈을 깜빡거렸다.
보통 이때쯤 되면 ‘하하 긴장되네요’ 하면서 가수들이 적당히 대기하고 있기 마련인데.
위기감에 가득 차 연습하는 국민 가수들과 인기 아이돌을 바라보던 그들이 폐회식 연출진에게 물었다.
“……지금 뭐가 벌어지는 거죠?”
“솔직히 말해 저희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폐회식 연출진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어마어마한 무대가 나올 거 같다는 겁니다.”
* * *
사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을 때는 휴식을 하는 게 최고다.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그걸 한 방에 팡 터뜨리는 게 최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경우가 달랐다.
“어으으으…….”
지호가 속이 메슥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시락 먹은 게 속에서 울렁이는 거 같아요.”
“나도.”
졸개들이 구에엑 하며 속을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으로 먹었던 숯불고기 도시락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기분이다.
중현이가 물었다.
“그냥 이럴 바에야 연습 더 할까요? 오히려 쉬고 있으니까 불안해서 막 몸이 조금 간질간질하고.”
“안 돼. 지금부터는 쉬어야 되는 타이밍이야.”
“으음…….”
당장 한두 시간 뒤에 무대인 상황에서는 몸을 쉬어 둬야 한다.
긴장 때문에 위장이 울렁거리긴 하지만….
“글쎄다.”
민기 형이 말했다.
“숯불 생갈비를 1인당 5인분씩 먹으면 누구든 체하지 않을까.”
“적당히 먹은 거란 말이에요.”
“맞아!”
많이 먹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러고도 요즘 살이 빠졌다.
김덕순 여사가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나 춤을 춰 대면 그렇게 처먹고도 살이 빠지냐고 할 정도였다.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한… 구에에엑…….”
“형 입에서 고기 냄새 나요.”
“너도.”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널브러져 있을 때였다.
내 다리에 촙 하고 무언가 닿았다.
“한별아.”
“응?”
“넌 왜 여기 있는 건데.”
“곧 식구가 될 사이니까…?”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한별이를 비롯해 근처에서 핸드폰을 하면서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너네는 왜 여기 있는 건데.”
“그냥.”
TNT의 동생라인이 과자를 우물거리며 딩가딩가 하고 있었다.
둘리 무리가 무단 점거한 집을 바라보던 고길동 선생님의 마음이 이랬을까.
태현이가 말했다.
“선웅이 형이 자꾸 자기 입대 얘기 하기도 하고.”
“지금 다들 자.”
빈 방이 그렇게 차고 넘치는데 우리 대기실에 놀러 와서 깔깔 웃으며 노는 심리는 잘 모르겠다.
한빈이가 말했다.
“뭔가 형이랑 있으면.”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고 대충 해도 될 거 같은 느낌이야. 그거 뭐라고 하더라? 무임승차?”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 알죠. 선배님.”
“뭔가 묻어가도 될 듯한 느낌.”
“그 바다의 대표님이 뭐져. 리혁이 형? 아. 맞다. 등대 같은 느낌이에요. 형.”
방금 뭔가 희한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나한테 의지하겠다는 못된 심보에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난 누구한테 의지하니…….”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슬쩍 고개를 들고 윙크를 했다.
다른 곳을 바라보자 매니저들의 어깨가 추욱 내려갔다.
뭐, 말은 그리하긴 했지만 나도 옛날부터 딱히 어디에 의지하고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의지한다. 후후후…….”
“우주 형 또 정신 놓은 거 같은데요.”
“원래부터 저 형이 월말평가 앞두면 저렇게 정신이 나가긴 했어요. 혼자 중얼중얼하고.”
이러쿵저러쿵 쿵짝이 맞는 구 졸개와 현 졸개를 바라보며 뭐라고 한 소리 하려고 할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는 누군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도착했다.
주근깨가 살짝 있는 수더분한 인상의 청년.
나와 동갑내기이자 우리 회사 프로듀싱팀의 황금 막내로 불리는 김형섭이었다.
“형섭아!”
“에으이…….”
반가워서 손을 잡으려는 나를 상대가 피했다.
다들 빵 터져서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친구한테 그게 무슨 소리를 내는 거야?”
“친구….”
“그래. 동갑내기 친구잖아. 우리.”
“진짜 친구는 굳이 우리가 친구 사이라고 말하지 않아.”
형섭이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친구라는 것은 그저 좀 더 편하게 부려 먹기 위한 호칭일 뿐…….”
“스읍.”
“아무튼 분부하신 대로 왔습니다.”
송 캠프가 끝나고 하와이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다시 평창을 찾아준 동갑내기 작곡가였다.
부산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주는 TNT 멤버들 사이에 형섭이가 털썩 앉았다.
예전이었다면 아이돌들을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을 텐데, 이제는 한 줌의 콩깍지마저 다 떨어져 간 듯한 표정.
동생들과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다.’
‘우리가 형섭 씨를 자신감 있게 만들어 줬다.’
뉴블랙의 편곡 담당이라고 말해 주니 TNT 멤버들이 잘 보이려는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후- 하며 숨을 길게 쉬는 형섭이에게 물었다.
“장비는 가져 왔어?”
“응.”
“준비는?”
“매일 연습했지. 하와이에서도 연습을 했고… 아까 여기 스탭 분들이랑도 맞춰 봤어.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걱정 마. 잘할 거야.”
그런 말을 하며 동갑내기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오케이.
형섭이까지 왔고.
오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까지 만반의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카운트다운뿐이었다.
[폐회식까지 남은 시간 - 01:59:07]
해질 무렵의 평창.
폐회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 * *
오후 7시.
폐회식을 앞둔 올림픽 스타디움은 현재 LED 조명으로 반짝반짝하는 중이었다.
“신분증과 티켓 확인하겠습니다.”
금속 탐지기를 비롯해 보안요원들을 통과한 관객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야. 은근 멀다.”
“평창역에서 내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 진부역에서 꽤 걸리고.”
“와, 외국인들 대박 많아!”
개막식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에 하나둘 앉아 담요를 펼쳤다.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마이크를 비롯해 음향 체크들이 쭉쭉 이어지고 있는 한편.
사람들이 같이 온 이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야. 저기 봐봐.”
“왜?”
“응원봉 진짜 많아 보여. 저거 다 아이돌 팬들인가 봐.”
여기저기서 응원봉을 반짝반짝하는 팬들이 보였다.
개막식과 달리 객석 곳곳에 포진해 있는 아이돌 팬들.
그들이 왜 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 뉴블랙이랑 데일라잇, 그리고… 그 어디지? TNT 맞지?”
“틴스피릿 아냐?”
“TNT일걸. 내가 아까 기사에서 봤어. 티자 돌림이라서 헷갈리나 봐.”
근처에서 듣던 TNT의 팬들이 속으로 울컥하고 있는 한편.
수플레를 비롯해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이돌 팬들은 심장이 거칠게 뛰는 중이었다.
지금 온라인에서도 초유의 관심을 얻고 있는 올림픽 무대.
-대체 어떻게 무대 꾸릴건지 상상도 안 된다 ㄹㅇ
-근데 일단 좋을 거 같음ㅋㅋㅋㅋ
-무대 맛집끼리 콜라보라 맛이 없을수가 없음.. 거의 30년차 간장게장집이랑 양념게장집 콜라보급
-케이팝덕질 193년차 오늘 무대에서 진한 감동의 예감을 느낀다
-193년차면 1825년부터 시작하셧네 캬 이분 순조시대부터 덕질하셧답니다
-폐회식 가는 사람들 부럽다ㅠㅠㅠㅠㅠㅜ
무대 장인으로 유명한 세 그룹이 어떤 식으로 무대를 들고 나올지 기대가 되고 있었다.
저마다 SNS나 메신저로 덕친들과 소통을 하던 아이돌 팬들이 커뮤니티 등을 켰다가 껐다.
‘이건 나중에 봐야지.’
‘또 싸우네.’
아이돌 세 팀 합동 무대에서 과연 누가 엔딩을 서냐고 싸우고 있었다.
연차 순이니 인기 순이니 싸우는 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은 현장에 집중해야지.’
객석에 설치된 LED 조명이 있기 때문에 응원봉은 가급적 사용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아이돌 팬들이 파우치에 응원봉을 넣었다.
곧이어 이어지는 사전 행사들.
글로벌 치어리더들로 구성되었다는 치어리딩 팀이 아크로바틱한 무대도 선보이고.
-잘생긴 남자들! 예쁜 여자들 소리 질러!
사전 MC의 올드한 진행에 적당히 환호해 주면서 기다릴 때.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현장의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외치고 있었다.
[오!]
[사!]
[삼!]
두근두근.
[이!]
[일!]
어두운 밤.
색색의 불꽃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며 평창 올림픽 폐회식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