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5화
지상파 3사의 폐회식 중계.
벌써부터 시청률이 20퍼센트를 돌파한 가운데, TV 중계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폐회식 첫 퍼포먼스입니다!]
전통 안무를 재해석한 퍼포먼스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기수단과 선수단의 입장이 시작됐다.
[와아. 축제 분위기네요.]
[개회식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죠? 개회식이 긴장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면 폐회식은 정말이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 표정이 무척 밝네요!]
경기의 부담감에서 해방된 선수들이 카메라 앞에서 잔망을 피우고 있었다.
목에 건 메달을 들어 보이며 환호하는 미국 선수들.
어깨동무를 한 채 입장하는 북유럽 선수들. 다른 나라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한민국 선수들.
자유롭게 입장하는 선수들 속에서 누군가 카메라에 잡힌다.
[하하하!]
뉴블랙의 도깨비 춤을 추는 수지 클라크의 모습에 중계진이 코멘트를 했다.
[대이변이었죠? 북유럽 선수들의 주종목으로 꼽히던 크로스컨트리에서 영국 대표로 금메달을 거둔 수지 클라크 선수입니다!]
[한국에서는 수플레인 것으로 더 유명하죠?]
[오늘 무대에 뉴블랙이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따가 저 선수 표정이 정말 궁금하네요.]
빨간 유니폼을 입은 동료들이 그녀를 모른 척하며 지나가는 동안 선수단이 즐거운 표정으로 입장했다.
개회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잡담도 하면 안 될 것 같았던 개회식과 달리 폐회식은 모두가 함께 하는 뒤풀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개막식과 다른 분위기의 공연들이 이어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퍼포먼스가 시작하네요.]
전통 문화가 가득했던 개막식과 달리 현대적인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LED 스크린을 이용한 댄서들의 군무.
프로젝터를 바닥에 투영하여 빙판처럼 보이게 만든 배경 속에서의 뮤지컬.
마스코트의 모습을 그리는 드론들의 비행 등등.
개막식에 뒤지지 않는 무대들이 이어지면서 현장에서 즐거운 함성들이 터져 나왔다.
[여러모로 연출진이 즐거운 마음에서 작업을 했다는 게 느껴지네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대체로 개회식과 폐회식의 시청률 차이는 2배 남짓.
개회식에 비해 보는 사람이 절반밖에 안 된다는 이유도 있고, 시간도 더 짧기 때문에 단출하게 준비되는 공연이었다.
그러하기에 대체로 어느 나라든 개회식과 폐회식의 컨셉은 비슷하다.
개회식에서는 ‘우리나라 개쩔지?’ 하면서 역사와 전통 문화를 보여 주며 뽕을 뽑아내고, 폐회식에서는 ‘이제 즐겁게 놀자!’ 하면서 뒤풀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그 때문에 폐회식의 섭외 1순위는 바로 그 나라의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이었다.
[국민 가수 노재현이 무대에 올라섰습니다!]
[투병 이후 사실상 첫 번째 무대라고 하네요. 노재현 씨는 국민들에게 사랑 받는 원로 가수로서…….]
병세에서 회복한 지 오래 되지 않아 수염으로 초췌한 분위기를 가린 원로 가수.
코트에 목도리를 하고 나온 노가수가 통기타를 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살짝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구수하게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음을 자유자재로 꺾으면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하….”
“아이구, 저 양반도 천생 딴따라야. 기가 맥힌다니깐.”
“우리 때는 노재현이가 최고였어.”
TV로 지켜보는 여러 가정들에서 중노년층 시청자들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촛불을 든 소년소녀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있는 동안 원로 가수의 손이 기타를 퉁겼다.
그야말로 가객(歌客)이라 불러야 할 듯한 모습.
그의 명곡 <그대 나와 함께 하세요>가 이어지면서 한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 있는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리인진 모르겠지만 노래가 좋다.’
어떤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명곡이 주는 감흥은 어느 나라든 비슷했다.
한국인들이 영어로 된 팝송을 들으며 대충 흥얼거리듯이 외국인들이 노가수가 영혼을 담아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
짧은 메들리가 끝나고 이번에는 무대에서 리프트를 타고 누군가 등장했다.
“어!”
중년 시청자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야? 견성화야?”
“견성화는 어째 저렇게 늙지도 않는대? 노래 부르고 댕겨서 그런가.”
“여기저기서 맨날 부르잖어. 아, 전국 팔도를 유람하면서 노래 부르고 다니면 누구든 안 늙지.”
털코트에 털목도리를 두르고 나온 트로트 여왕이 손을 들었다.
현대적으로 편곡된 흥겨운 트로트 멜로디.
[다 같이 한 번 신나게 놀아 봅시다!]
호쾌하게 외친 가수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면서 현장에서 ‘와아아아-’ 하는 환호성이 울렸다.
전 국민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흥겨운 무대.
TV를 시청하던 네티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갑분 K고속도로 휴게소
-아 진짜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
-무대 장치 따윈 필요 없다ㅋㅋㅋ 그냥 손짓몸짓이 무대장치임
-편곡 개잘했는데..?
편곡 위탁을 받은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K-트로트에 현장 반응이 뜨거워졌다.
자리에 앉은 각국 선수단이 일어나서 어깨를 둠칫둠칫 흔들 정도였다.
행사 경력 30년에 빛나는 트로트의 여왕이 마이크를 흔들며 백업 댄서들과 평창 올림픽을 축제 한마당으로 만든 뒤.
이번엔 리프트에서 새로운 가수가 등장했다.
-ㄷㄷㄷ
-끝판왕 등장ㅋㅋㅋㅋㅋㅋㅋ
-행님 표정푸십쇼
-ㅋㅋㅋㅋㅋㅋㅋㅋ외국애들이 지금 mafia 같은 남자 누구냐고함
-관객들 개부럽네.. 차우현 라이브
발라드 가수 차우현이 노래를 부르면서 현장 관객들과 TV 시청자들 사이에서 감탄이 나왔다.
귀가 탁 트인다.
스타디움의 벽에 반사된 그의 목소리가 공명을 일으키는 듯했다.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보컬의 무대가 이어진 후.
[아! 합동 무대가 있군요!]
각자 히트곡 메들리를 끝낸 가수들이 한데 모여 짧게 화음을 맞췄다.
허밍이 이어지면서 그들을 빙 둘러싼 아이들이 촛불을 흔들었다.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끝나는 무대.
[와하.]
[정말이지 찬사를 건네고 싶은 무대였습니다. 가요계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감동적인 무대!]
지금까지의 한국 대중음악을 보여 주는 듯한 퍼포먼스였다.
단순히 언어가 다를 뿐, 한국 음악의 성취와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무대.
K팝이라고 부르는 장르가 태동하기까지 그 기반에 깔린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공연이었다.
[가요계 선배들의 무대였네요.]
[과연 후배들의 무대는 어떨지. 조금 이따 공개될 무대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그에 동의하듯 시청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들오들.
무대 의상 위로 패딩을 걸친 데일라잇과 TNT, 그리고 우리가 한데 뭉쳐 떨었다.
[Mesdames et Messieurs….]
지하에 서 있는 가수들의 귓가로 현장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스기와 올림픽기가 게양대에서 내려가고.
중국 국가와 함께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을 홍보하는 영상의 음악이 들린다.
“와. 2022년이래.”
누군가의 말에 다들 작게 웃었다.
늘상 차기 올림픽 연도를 볼 때마다 떠올리던 생각이다. 정말 올까 싶을 만큼 까마득히 먼 연도.
“후우…….”
팬더와 무협을 테마로 이어지는 베이징 올림픽의 인수 공연이 끝난 후.
조직위원장과 IOC 위원장의 연설을 비롯해 행사 식순이 타임라인에 맞춰 칼같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동안 가수들은 손난로를 손에 쥔 채 지하에서 서 있을 뿐이었다.
“어으으…….”
“계속 서 있으니까 나 긴장돼서 배 아프려고 해.”
“진짜 쫄린다.”
다들 긴장감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초가 몇 초로 느껴질 만큼 예민해지고, 대기하는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제 연설이 끝나나 봐요.”
중현이의 말이 들려오는 동시에 주변의 관계자들이 분주해졌다.
무전기를 든 스탭이 말했다.
“지금부터 5분 카운트다운 하겠습니다.”
“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돌 팀끼리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내가 손을 내밀었다.
“손 모아볼게요.”
“화이팅하게?”
“쥐고 있게요.”
스무 명 가까운 대인원이 강강술래를 하듯이 손을 맞잡았다.
비주와 지호의 온기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이 와중에 리혁이 형은 수족 냉증이네요…. 제 왼손이 너무 차요….”
“야.”
작은 웃음이 흘러나오는 동안 내가 팀 리더로서 입을 열었다.
“준비 기간은 짧았지만 정말 알차게 준비했으니까요. 이제 보여 줄 시간이에요.”
“번역) 무대 조지고 오자.”
리앤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한편.
카운트다운이 2분 아래로 내려가면서 데일라잇 멤버들이 리프트에 올라탔다.
어느새 긴장감은 싹 밀려난 표정.
“그럼 누나들 먼저 다녀올게.”
눈의 여왕처럼 변한 멤버들이 쪼그려 앉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인이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운트다운합니다. 셋. 둘. 하나. 음악 스타트.
현장에 깔리는 배경 음악과 더불어 서서히 상승하는 리프트.
무대로 올라가는 걸그룹 사이로 스타디움 꼭대기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올림픽 성화가 보인다.
성화가 꺼지기 전 마지막 순서인 아이돌 합동 무대.
우리가 바로 오늘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 * *
스타디움에 자리 잡은 데일라잇의 팬들이 몸을 들썩였다.
‘드디어!’
지루한 연설이 끝나고 마침내 그들의 가수를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암전된 무대.
프로젝터 빔이 비추면서 무대 바닥에 푸른 물결이 치기 시작했다.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 바다.
쩌저적.
바로 그때 얼음이 하얗게 얼어붙으며 바닥이 설원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대 위 누군가에게 조명이 집중됐다.
“와아아아아아아-!”
데일라잇의 메인보컬이자 센터 리앤.
그녀가 또박또박 걸어올 때마다 구불진 갈색머리가 너울지듯 일렁거렸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눈의 여왕이 동료들에게 합류하면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누군가의 속삭임.
Daylight never ends
데일라잇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흘러나오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나는 드럼 비트.
푸른 의상을 입은 데일라잇 멤버들이 골반을 부드럽게 튕기면서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Take a look
날 봐
감당할 자신 있다면
Cuz I’m not shy
데일라잇의 히트곡이자 신나는 댄스팝 <큐피드>가 흘러나왔다.
큐피드의 화살을 나타내듯이 후렴구에서 화살을 쏘는 듯한 안무가 특징인 곡.
-사랑이 안 오네. 그럼 내가 가서 쟁취한다.
큐피드가 화살을 안 날려 주니 내가 그 화살을 뺏어서 나한테 반하게 만들겠다는 곡이었다.
데일라잇의 메인댄서 수전이 어깨를 흔들며 양옆 멤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듯 손짓했다.
사랑은 쉽게 오지 않아
잠시만 빌려 갈게
Your bow n arrow
한국인 관객들이 ‘보 앤 애로!’ 하며 리드미컬한 랩을 따라 부르는 한편, 활을 쏘는 듯한 안무가 이어졌다.
아이돌 팬들이 뺨에 손을 올리며 비명을 질렀다.
‘너무 잘해. 미쳤다….’
원숙하게 자신들의 끼를 뽐내는 데일라잇.
그야말로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스포츠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받듯이 안무 동작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쭉 이어지는 느낌. 어지간한 가수들은 흉내 내기도 힘든 촘촘한 안무 합이었다.
“언니!”
“언니이이이!”
“얘들아아…!”
데일라잇의 팬들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동안 첫 무대로 등장한 데일라잇은 그야말로 모두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다른 아이돌 팬들도 감탄했다.
‘진짜 노련하다는 게 이런 말인 거구나.’
원숙미를 보여 주는 무대.
그 때문에 앞선 국민 가수들의 무대와도 잘 이어졌다.
동시에 K팝에서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지도 이해가 됐다.
K팝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 중 하나인 사랑을 성숙한 매력으로 선보이는 데일라잇이었다.
2분가량 이어진 짧은 무대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리앤이 얼어붙은 바닥을 향해 발을 가볍게 굴렀다.
쩌저적.
데일라잇을 중심으로 실금이 간 얼음이 깨져 나갔다.
깨진 얼음 속에서 등장한 불꽃.
처음에는 미약했던 불씨가 서서히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화르르륵!
배경으로 깔리는 붉은 조명.
락 음악의 도입부처럼 일렉트릭 기타 리프가 깔리는 가운데, 엔진 배기음이 무대를 뒤덮었다.
“꺄아아아아아악!”
현장에 자리 잡은 TNT의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무대 위로 등장한 오토바이들 때문이었다.
그 뒤에 가볍게 탑승해 있던 TNT 멤버들이 저마다 멀찍이 떨어져 내렸다.
서서히 고조되는 음악.
라이더 재킷을 입은 이들이 쪼그려 앉아 자리를 잡으면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TNT의 초창기 곡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를 친 곡으로 유명한 였다.
반항적인 컨셉의 곡.
TNT의 멤버들이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면서 걸어 나왔다.
반복되는 Cycle
Uh 넌 항상 똑같지
눈을 가려 겁쟁이처럼
섹시한 저음 도입부.
손을 슥 들어 눈을 가리는 한태현의 모습에 환호성이 흘러나오는 한편.
데뷔 초창기의 세고 강렬한 컨셉이 다시 나오면서 TNT의 팬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완전체 무대에 그저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있고.
울컥한 표정으로 ‘박태준 시발’을 외치는 팬들에게 TNT 멤버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보여 주었다.
완벽한 팀워크.
처음에는 따로 갈라져 있던 멤버들이 후렴구에 접어들면서 한 군데로 모여들었다.
바로 그때.
구선웅이 메인보컬 신주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삐딱하게 고개를 틀었다.
Hey-
장난기 어린 악동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Who said we’re done?
‘누가 우리 보고 끝났대?’
TNT의 팬들이 으악새 같은 비명을 터뜨렸다.
손으로 원을 그리는 안무와 함께 TNT 멤버들이 밀착해서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헤어질 때만 해도 ‘그냥 좀 쉬자’ 하면서 거리를 두었던 멤버들.
이번에 뉴블랙과 데일라잇을 지켜보면서 그들도 생각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좀 호흡 한 번 제대로 맞춰보자.
-우리가 언제는 제대로 안 맞췄나?
-그거 말고. 조금 더 진지하게.
서로와 떨어진 시간을 보냈던 만큼 다시 한번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 그들이었다.
단순히 칼군무를 위해 맞춘 동작이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동작을 맞춘다.
호흡을 느낀다.
등을 맞댄다.
그러면서 터져 나오는 환호에 멤버들이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늦었을 수도 있지만….
‘즐겁다.’
한 발짝 떨어져 있다가 다시 돌아온 팀 무대는 제법 즐거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그들이 웃었다.
‘자, 이제 이어받아라.’
데일라잇에게서 넘겨받은 불꽃을 다음 타자에게 넘길 시간이었다.
TNT가 능숙하게 퇴장했다.
“어어어!”
“뭐 변하는데?”
“뭐 나온다!”
무대 바닥의 얼음을 깨뜨린 데일라잇.
그 속에서 피어난 불꽃을 화려한 불길로 키워 낸 TNT.
무대 바닥에 이글이글 일렁이던 불꽃 효과가 서서히 응축되더니 한 점으로 모였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아!”
곳곳의 무대 장치가 솟아오른다.
LED 프레임.
한 점으로 모이던 불꽃이 화려하게 빛나더니 사방에 빛을 비추었다.
그 빛은 바로 도시의 빛이었다.
‘대박!’
오열하던 TNT의 팬들도 ‘옴마?’ 하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의 도심을 형상화한 네온사인 프레임이 무대 위로 솟아났다.
고층 빌딩들이 둘러싼 듯한 배경 아래 4인조가 보였다.
‘뉴블랙이다!’
독특한 의상을 입은 뉴블랙이 한 자리에 서 있었다.
테크웨어와 한복의 중간 지점.
도포를 모티프로 저고리처럼 만든 검은 의상이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우주는?’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카메라가 허공을 비춘다.
큼직한 시계탑과 같은 LED 프레임 앞에 와이어에 매달린 시계 바늘이 보인다.
9시 정각을 가리키는 바늘 위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모두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Nine이다!’
당시 라이징이었던 뉴블랙이 확 치고 올라오게 만든 계기이자 뉴블랙의 상징 같은 곡.
가만히 앉아 있던 우주가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날렵한 턱선과 콧대가 드러나는 옆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가수의 눈이 아름답게 빛났다.
그리고 목소리는 더 아름다웠다.
더 뜨겁게 타올라
너무나 당연하게 다음 구절은 너희에게 맡긴다는 듯이 마이크를 내민 가수에게 한국인들이 화답했다.
오늘도 빛나게-
뉴블랙의 리드보컬이 생긋 웃으면서 관객들의 환호성이 스타디움을 뒤덮었다.
곧이어 나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Nine의 인트로가 들려오면서 환호성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시계 바늘 위에서 내려온 우주가 합류하면서 곧이어 국민 아이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앞선 무대와의 차이점이 보인다.
사랑을 성숙하게 노래한 데일라잇의 큐피드.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주제를 다룬 TNT의 Cycle.
그렇다면 뉴블랙의 Nine은….
-우린 그런 거 잘 몰라. 놀아.
그저 신난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굵직한 메시지를 짊어질 만한 연차가 아니라고 판단한 뉴블랙이 고민 끝에 선택한 결과물이었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무대 위에서 뛰노는 뉴블랙의 모습에 카메라가 수플레 선수들을 비췄다.
우주의 랩을 직관한 수지 클라크가 오열을 하는 한편.
이젠 버릴 시간이야
손에 든 건 버려
Set you free
모든 걸 가로지를 때까지 잠시
허리를 부드럽게 꺾으며 고음을 높이는 서브보컬의 모습에 환호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마이크를 관객들에게 내미는 뉴블랙.
‘알지?’ 하는 표정에 관객들이 Nine nine nine 하면서 답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바로 이어지는 Nine의 후렴구에 뉴블랙 콘서트에 온 것처럼 객석이 물결쳤다.
벌써부터 땀에 흠뻑 젖은 뉴블랙이 전광판에 비친다.
가운데 선 래퍼가 허공에 가볍게 슬랩을 날리는 듯한 동작과 함께 흥겨운 안무가 흘러나왔다.
그들이 바닥에 발을 구르는 동안 보는 사람마저 숨이 가쁜 안무가 이어진다.
뉴블랙이란 팀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듯한 무대였다.
-손잡이 꽉 잡으세요. 지금부터 여러분을 뉴블랙이란 롤러코스터에 모시겠습니다.
어렵지 않고 쉽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다.
친근하다.
즐겁다.
그리고 뜨겁다.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적당히 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
분명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아직도 만족 못한 듯 무언가 이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열정, 야심, 혹은 욕망.
무대에서 공연에 대한 욕심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뉴블랙이었다.
네온사인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착각을 줄 만큼, 강렬한 퍼포먼스가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듯 퍼져 나갔다.
앞선 선배들이 고고한 호수 같았다면 그들의 무대는 물결처럼 넘실거렸다.
메인댄서의 웨이브를 시작으로 뜨거운 물결이 퍼져 나갔다.
“와아아아아아아-!”
스트레스가 뻥 뚫리는 듯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 맞춰 관객들도 같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신이 나서 방방 뛴 무대.
정말 뭐에 홀린 듯이 2분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깨달을 때였다.
‘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숨을 헐떡이는 뉴블랙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안 빌딩을 형상화한 LED 프레임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사이버 펑크 같은 분위기.
명멸하던 불빛들이 서서히 프레임을 타고 내려갔다.
‘오?’
프레임이 하나둘 철거되는 동안 바닥으로 내려간 불빛들이 회로를 그렸다.
마치 전 세계의 지하철 노선도를 하나로 이은 것처럼.
그에 이어 뉴블랙과 비슷한 의상을 입은 데일라잇과 TNT가 각각 등장하면서 환호가 커졌다.
‘세상에.’
아이돌 팬들이 입을 틀어막는 동안 음악이 흘러나왔다.
METRO.
빌보드 Hot 100 1위를 비롯해 각국 인기 차트의 최상층에 올랐던 뉴블랙의 세계적인 히트곡.
그리고.
지금부터 K팝 최고의 드림팀이 부르게 될 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