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47화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광란의 춤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선수들.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
저마다 EDM 리믹스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흔들면서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옥의 관광버스같음
-선수들 진짜 잘논다ㅋㅋㅋㅋㅋ
-아 근데 ㄹㅇ신남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우리 집도 춤추고 난리났다구
-리믹스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
-인생은 항해와 같다는 주제의 띵곡이 선장의 노래인데.. 이제 그 배가 관광유람선 같아진
-분명 방금 전까지 국뽕 오지게 차고 잇었는데ㅋㅋㅋㅋㅋ 갑분 edm 개웃겨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퍼포먼스에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원로 가수 노재현이 껄껄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머리끈을 푼 선수들이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아나운서들도 허허 웃음을 흘렸다.
[네. 정말… 어… 흥겨운 분위기네요.]
[멀찍이서 지켜보는 저희도 이렇게 신나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은 오죽할까요. 하하하.]
곧이어 이어지는 후렴.
트로트의 여왕 견성화와 발라드 가수 차우현이 코러스를 넣으면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견성화랑 차우현이 코러스 ㄴㅇㄱ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코러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미롭다 감미로워
-근데 이제 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부르는 사람이다 보니ㅋㅋㅋㅋ 저 두 사람 경력 합쳐도 노재현쌤 경력이 더 기니까
-45년생이니까 20대부터 쳐도 ㄹㅇ 50년이네
단독 콘서트를 해도 체조 경기장은 꽉 채울 가수들이 코러스를 넣는 상황이 웃겼지만 가수가 가수다 보니 납득이 갔다.
그리고 더 웃긴 건 그들의 뒤에 서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었다.
[말씀드린 순간 뉴블랙의 우주와 TNT의 한태현이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K팝 최고 멤버들의… 춤을 보고 계십니다.]
[아. 독특하네요!]
저마다 응원봉을 든 가수들이 대선배들 뒤에서 막춤을 추고 있었다.
지호와 석지훈이 얽혀서 막춤을 추고, 데일라잇이 머리를 빙빙 돌리며 광란의 춤을 추면서 웃음이 터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댄서들ㅋㅋㅋㅋㅋㅋㅋㅋ
-크 노재현쌤 성공하셧네
-뭔 성공이얔ㅋㅋㅋㅋㅋㅋ
-분위기 너무 좋다ㅠㅠㅠㅠ 나도 저기서 춤추고 시퍼..
-담당자 누구냐 상 받아라ㅋㅋㅋ
-데일라잇+TNT+뉴블랙을 이제 백댄서로 부리는,, 기획 담당 누구야 잘햇어
-아 뭔가 저 라인업을 이렇게 써먹는 게 아깝긴 한데 또 적절함ㅋㅋㅋㅋㅋㅋ
그동안 뉴블랙과 TNT의 춤이 이어지면서 데일라잇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 화제가 됐던 스켈레톤 종목을 따라 하듯 서리혁을 든 TNT와 뉴블랙이 슈웅 하고 던지듯 하고.
컬링 춤을 추는 한태현과 선우주.
비주가 피겨 스케이팅을 하듯이 빙그르르 돌면서 선배 가수들이 박수를 치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흥겨움 가득한 분위기.
올림픽 스타디움을 들썩이게 만드는 함성과 함께 EDM 메들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 전 세계인이 어… 하나로 대통합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이게 바로 K팝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습니다! 즐거우면 K팝이죠.]
벙찐 사회자들이 잠깐 아무 말 대잔치를 할 만큼 독특한 무대가 이어졌다.
그렇게 전 국민들이 같이 어깨춤을 추고 있는 동안 아이돌 팬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담당자 누구야. 잘했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그들이 바랐던 결과물이었다.
특히 TNT와 데일라잇의 팬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던 바를 완벽하게 해소한 무대였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기사들.
-“또 아이돌?” 다 된 잔치에 K팝 끼얹기.. 네티즌 ‘뿔났다’
-언제까지 국가 행사에 K팝을 동원할 것인가.. 이젠 ‘21세기 선진국’다운 면모 보여야
-무명 배우들로 구성된 특별무대.. 네티즌 ‘아이돌 무대보다 100배 낫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국가적인 행사에서 K팝 아이돌이 등장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 때문에 데일라잇과 TNT의 팬들도 가슴을 졸였던 터였다.
‘뉴블랙이 총대를 메서 진짜 다행이야.’
대중적인 호감도가 어마어마한 뉴블랙이 출연한다는 것에 묻혀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욕이 많았을 터였다.
-또 아이돌임???
-아이돌 없으면 나라가 안 돌아감??ㅋㅋㅋㅋ 윗대가리들 하는 거 보면 진짜 레전드
-이러니 국책사업 소리 듣지 에효
-창피하다ㅠㅠㅠㅠ 국가 망신
-아이돌 출연하면 왜 안됨? 난 좋은데
-응 느그 오빠 춤 존나 못춤ㅋ
-빠순이 왔네ㅋㅋ 공부나 해라 너네 아버지 등골 휜다
무조건 아이돌이라고 하면 욕부터 하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걱정을 어마어마하게 하고 있었는데.
‘지금이야 뭐.’
세 그룹의 팬들이 꺄르르 웃음을 흘렸다.
여러모로 우려가 많긴 했지만 세 그룹의 무대를 본 순간 그들은 걱정을 훨훨 떨쳐 낼 수 있었다.
“이야.”
“저… 와… 잘하네.”
“쟤네가 아이돌 중에서 제일 잘하는 애들이라며.”
무대에 대해 관심이 없는 머글들의 반응이 이 정도일 만큼 어마어마한 무대들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캬. 국뽕이 차오른다.’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영상을 보여 주면서 ‘이게 K팝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 무대들이었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으쓱하고.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게 느껴지는 무대에 전 국민의 국뽕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EDM 무대는 플러스 알파와 같았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하면 좋은.
‘담당자가 누군진 몰라도 현명하네.’
본 무대는 K팝 아이돌로 끝내되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하는 축제 분위기로 끝을 내고 있었다.
가요계 대선배들을 예우하면서 후배들도 같이 즐겁게 노는 분위기.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잘했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근데 지금 DJ 얼굴 누군지 알아봄 노비 출신임
족보에 노비라고 써 있는 사람인가.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돌 팬들에게 누군가 말했다.
-레몬엔터 작곡팀 막내임 김형섭
-ㅇㅇ 예전에 미프 나오고 나서 납치됐다고 그러던데
-붙잡혀서 3년째 선우주 개인 노비로 사역중
-일케 말하니까 어감이 이상하잔아ㅋㅋㅋㅋㅋㅋㅋ
레몬 엔터의 직원이 DJ로 등장했다는 말에 아이돌 팬들이 ‘아’ 하며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주구나.’
노재현의 무대 뒤편으로 인형술사처럼 누군가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야심 가득한 뉴블랙의 리더를 떠올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퍼 우주가 기획했네.’
왜 안티들이 기를 쓰고 미워하는지 알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조금도 틈을 안 주니까.
물론 말로만 들으면 무슨 배후의 흑막 같은 느낌이지만….
‘괴리감이 조금 있긴 하군.’
꽃무늬 선글라스를 쓴 광인이 춤을 추는 모습에 수플레들과 다른 팬들이 모른 척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이돌 팬들이 남은 한 줌의 걱정마저 훨훨 떨쳐 내고 있을 때.
“음?”
TV를 시청하면서 같이 어깨춤을 추고 있던 전국의 시청자들이 눈을 비볐다.
“내가 잘못 봤나?”
“저거…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그거 아니야? 인면조?”
“곰이랑 백호도 있어.”
EDM 트로트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가수들과 선수들.
그 사이로 선글라스를 쓴 인면조와 마스코트들도 같이 둠칫둠칫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
* * *
“드디어!”
“끝났드아아아아-!”
다 같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뻐근한 몸이 풀리고, 여기저기 땀에 젖은 가수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끝!”
“끝이다!”
물론 완벽하게 끝은 아니었다.
폐막식 TV 중계가 끝난 지금도 무대에서는 EDM과 함께 애프터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선수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섞여서 춤을 추는 광란의 춤판.
유명 DJ에게 헤드폰을 넘기고 돌아온 형섭이가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와. 미친…….”
내가 마주 보고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와… 와…….”
“원래 처음 무대 서면 그래. 가슴이 콩닥거리고.”
인생 첫 무대에 놀란 형섭이를 부축하며 일으켜 주었다.
“아이고!”
어디선가 껄껄 웃는 웃음소리와 함께 노재현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러곤 형섭이를 안아 주었다.
“고마워요. 우리 작곡가 선생!”
“엇… 네… 영광입니다!”
“덕분에 내가 무대를 너무 잘했어요.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기분이야. 어찌나 흥이 나던지.”
칭찬에 인색한 노재현 쌤이 이렇게 극찬하는 걸 보니 정말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존경하는 원로 가수의 칭찬에 놀란 형섭이가 헤롱대고 있는 동안 내가 노재현 쌤에게 스윽 속삭였다.
“마음에 드시나요. 선생님?”
“들고말고.”
“레몬 엔터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선생님….”
“그, 그렇군….”
소속이 없으시니 들어오시는 게 어떠냐는 말에 노재현 쌤이 솔깃해했다.
“들어오셔서 저랑 같이 일을…….”
“아이고. 허리야! 강 여사아아-!”
보호자로 오신 아주머니에게 도망치듯 달려가는 노재현 쌤을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거의 잡았는데…….”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있어. 형?”
태현이가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밥 먹으러 가야지. 이제.”
“가야지.”
거의 2주 동안 몸을 부대끼며 연습했던 사이였다.
그냥 헤어지기는 아쉽지 않느냐는 누군가의 말에 따라 다 같이 평창에 있는 고깃집을 찾았다.
“건배사! 건배사!”
“우주야, 건배사 해라!”
여기저기서 숯불 향이 피어오르는 불판.
알콜향 가득한 실내.
벌써부터 불콰하게 취한 스탭들과 아이돌 틈바귀에서 내가 콜라가 담긴 잔을 들었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평창! 평창!”
“화이팅!”
건배사를 끝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맞은편에 앉은 태현이가 쌈을 크게 싸서 건네주었다.
“고마워.”
근처에 앉은 한별이와 리혁이가 분주하게 쌈을 싸서 내밀었다. 뭔가를 바라는 둘의 표정.
새침데기와 애정과다가 눈을 각기 다르게 빛냈다.
“뭐.”
“인사는…?”
“안 해 줄 건데.”
“…….”
농담이라며 고맙다고 말을 하고는 고기를 뒤집었다.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떠들썩한 웃음과 환호성.
모험이 끝나고 모닥불 축제를 하듯이 과중한 업무에서 해방된 이들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확실히 서로 녹아들기 위해 노력을 해서 그런지 멤버 구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비주는 이번에 친해진 백승제와 무릎을 가리키며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지호는 데일라잇과 TNT 틈바귀에서 애교를 부리며 고기를 얻어먹고 있었다.
“아. 맞다.”
고기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은 리혁이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내게 뭔가를 슬쩍 건네주었다.
‘To. 차현정 선배님’ 같은 문구가 적힌 것들.
손편지 꾸러미를 건네준 리혁이가 속삭였다.
“나 대신 이따가 좀 건네줘요.”
“네가 해.”
“형.”
“아… 그렇게 부르면 마음 약해지는데…….”
허허헛 웃으며 편지 꾸러미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중현이를 불렀다.
“중현아.”
“네.”
“잠시 대기하고 있어 봐.”
고기 집게를 구선웅에게 넘기고 온 중현이를 대기시킨 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수들에게 손수 편지를 돌렸다.
데일라잇이 눈을 빛냈다.
“음? 이게 뭐야?”
“어머. 손편지네. 이거 리혁이구나!”
“뉴블랙 TV에서만 보던 귀한… 산삼보다 귀한 편지……!”
부끄러워서 모른 척하는 리혁이를 대신해 내가 편지를 돌린 후 중현이에게 눈짓했다.
“음?”
갑자기 속박당한 자신의 모습에 리혁이가 눈을 깜빡였다.
편지를 저마다 가방에 집어넣는 사람들에게 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지금부터 펼치시면 됩니다.”
“으아아아아악!”
“네! 열심히 읽어 주세요!”
벌게진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에 다들 귀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몽글몽글한 분위기에 스탭들이 ‘어머 뭐야…’ 하며 좋아하는 가운데, 가수들이 저마다 손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흐흐흐흑!”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데일라잇을 바라보며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왜 갑자기…….”
“저 누나들 주사가 우는 거야.”
“아.”
벌써부터 술에 취한 데일라잇의 멤버들이 ‘리혁이! 일루 와 봐!’ 하면서 자기들이 다가와서 안아 주었다.
“거흐흐흑!”
“그럼 저기는?”
“선웅이 형은 군대.”
“하긴 군대 앞두면 기분이 싱숭생숭하지.”
지나가는 잎새만 봐도 눈물을 흘릴 기세로 구선웅이 다가와 ‘고마워요. 리혁 씨…’ 하고 인사했다.
뭔가 훈훈한 분위기.
곧바로 다시 떠들썩한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리혁이의 손편지로 실내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아악!”
“죽어라!”
리혁이한테 잠시 얻어맞긴 했지만… 예쁘게 싼 쌈을 건네주며 애교를 부려서 해결했다.
그렇게 회식이 후반부에 접어들 때.
계속해서 사람들끼리 얘기하기 위해 여기저기 철새처럼 자리를 옮기다가 마지막쯤 되니 역시 각자의 그룹끼리 모였다.
데일라잇 멤버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히히 웃고.
졸개들도 내 곁에서 콜라와 사이다를 들이키면서 고기를 계속해서 흡입하고.
중요한 무대를 기념하는 뒤풀이도 마침내 헤어질 시간을 맞이했다.
“얘들앙! 나 너무 행복하당! 너희두 행복하구 우리도 행복하고 복 받고! 복… 복 또 뭐 있지. 이제 북으로 가자!”
“예? 어디요?”
데일라잇의 매니저들이 가수들을 챙기는 동안 그들이 헤롱헤롱 웃었다.
“흐하하항! 나 너무 좋당!”
“언니이이! 언니! 별들이 우리한테 인사를 해!”
“우리도 별에 갈 수 있을까? 우리라면 갈 수 있어! 응!”
취권의 고수처럼 흐물거리던 데일라잇을 보며 웃을 때, 데일라잇 매니저가 살며시 웃더니 그녀들에게 속삭였다.
“밖에 기자들 있대요.”
“그랭?”
카메라 있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데일라잇 멤버들의 안색에서 취기가 사라졌다.
사회인들 특유의 비기.
술에 쩔어 있다가 상사의 전화가 걸려오면 멀쩡해지는 직장인들을 보는 듯했다.
“사람 쉬게를 안 두네. 띱때끼들….”
“십 세끼… 세 끼가 십이면 삼십끼. 히히.”
그리 멀쩡한 건 아닌 듯했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TNT는 적당히 맥주 정도를 홀짝였는지 얼굴이 붉은 걸 빼면 멀쩡한 편이었다.
차가운 생수병을 뺨에 가져다 댄 태현이가 말했다.
“우리는 2차 가려고.”
“거기서 더 마시게?”
“할 이야기도 이것저것 있고… 뭐… 우리도 이야기할 게 많아서.”
TNT 멤버들이 작게 웃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자기들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대충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로 살펴보니… 아마 TNT의 완전체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중에 한별이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
외부자인 내가 가타부타 논할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다만.
“연습하느라 고생 많았어.”
한때 몸 담을 뻔했던 그룹이었던 만큼 좋은 쪽으로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TNT의 멤버들과 등을 두드려 주거나 가볍게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했다.
‘이따 통화할게’ 하며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드는 한별이에게 손을 흔든 후.
어딘가 홀가분한 뒷모습들을 바라보는 동안 마지막으로 구선웅이 남았다.
“어…….”
구선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 좀 했는데. 고맙다. 우주야.”
“응?”
“이제 가서 애들이랑 잘 이야기를 해 봐야 하는데… 어찌 됐든 네 덕분인 거 같다.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그래. 잘 가고.”
잘 지내고 군대도 잘 다녀오라는 안부 인사를 건네준 후.
아련하게 선배들을 보낸 우리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합동 무대가 끝나고 각자의 여정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데일라잇에겐 데일라잇의 일정이, TNT는 TNT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듯이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우리도 숙소로 돌아가자.”
“어으… 저 배가 너무 불러여…….”
“디저트 먹을까?”
“넹.”
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올림픽의 마지막 밤이었다.
* * *
가수들이 뒤풀이 자리를 마치고 떠날 때.
전 세계는 여전히 폐회식의 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NYT 등 외신들..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한 K팝” 극찬
-‘이게 성사되네’ 뉴블랙과 데일라잇, TNT 등 역대급 콜라보 무대에 외신 호평
-‘재미와 메시지 모두 잡았다’ 폐회식 대중가요 무대에 역대급 찬사 쏟아져..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온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개쩔었다 ㄹㅇ 케이팝은 전설이다
-진짜 잘나가는 가수들은 잘나가는 이유가 있다는 걸 증명한 무대였음
-메트로 나올 때 진짜 국뽕 치사량급으로 올라왔다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
-데일라잇♡
-진짜 무대 시작하기 전에 내가 다 조마조마했는데 너무 잘했습니다 우리 가수 여러분ㅠㅠㅠㅠㅠ
-한복이 ㄹㅇ 간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개쩐다…….」
「방금 뭐가 지나간 것 같은데… 뭐였지. 정말.」
「저 가운데 잘생긴 애는 누구야?」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역대급 라이브.
화려한 안무.
아름다운 미남미녀.
전 세계의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 무대가 이어지면서 SNS와 검색 포털의 버즈량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다시 보고 싶다.’
K팝을 폐회식에서 처음 접한 이들이 호기심을 빛내고 있을 때였다.
데일라잇과 TNT의 팬들이 미소를 지으며 영업 준비를 했다.
‘아직 올라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텐데.’
공식 영상이 올라오려면 좀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소속사에서 뭔 떡밥을 줄 리도 없고.
그러니 열심히 만든 움짤이나 사진 등을 보정하며 영업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음?’
두 그룹의 팬들이 눈을 깜빡였다.
미튜브에서 인기 동영상으로 떠오른 컨텐츠 때문이었다.
-[4K 직캠] TNT 한태현 - Cycle (2018 평창 올림픽)
-[4K 직캠] 데일라잇 다봄 - 큐피드 (2018 평창 올림픽)
-[4K 직캠] 뉴블랙 우주 - Nine (2018 평창 올림픽)
레몬 엔터와 올림픽 공식 채널이 올린 직캠이 뜨면서 두 그룹의 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떡밥이지.’
정말로 시의적절한 타이밍.
전 세계의 사람들이 ‘저 가수들은 누구지?’ 하고 있는 상황에 맞춰 딱 올라온 직캠이었다.
‘올림픽 직캠이라니…….’
‘세상에 이게 뭔 컨텐츠야.’
‘원래 이렇게 기획사가 따박따박 직캠 올려 주는 거였어…?’
대형 기획사들의 느릿한 일처리와 달리 빠릿빠릿한 모습에 데일라잇과 TNT의 팬들이 멍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헤헤. 직캠.’
지금까지 뒹굴거리던 수플레들이 편하게 누워서 직캠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
“…….”
두 그룹의 팬들이 왠지 모르게 박탈감을 느끼는 한편.
올림픽 직캠의 조회수는 그야말로 끝을 모르고 상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올림픽 입덕’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전 세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