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50화
한별이가 활짝 웃으며 한영준 대표에게 인사를 했다.
“잘 지내셨어요? 이사님?”
“응. 잘 지냈지.”
한영준 대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여전히 이사 시절 호칭을 부르는 한별이의 말을 지적하기는 애매하지만, 기분은 별로인 그런 표정이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던 태현이가 팝콘을 뜯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하하. 한 대표님 오셨군요.”
우리 대표님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기 위해 나섰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시는 길은 불편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바로 맞은편인데요. 불편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정말 오실 줄은 몰랐는데 영광입니다. 하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서 대표들 사이의 훈훈한 대화가 이어진다.
겉보기로는 훈훈하지만 이 대화를 번역하면 이렇다.
-바쁘다는 핑계 대고 안 올 줄 알았는데 찐으로 왔네?
-맞은편인데 어떻게 안 오냐. 너네 위치 존나 불편하더라.
한영준 대표가 자리를 비켜 주자 우리가 탑승했다.
태현이와 눈인사를 하면서 웃고 있는 동안, 한별이와 한영준 대표 사이에서 미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띵.
[9층.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화려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온실처럼 유리로 꾸며져 있어서 따뜻하고,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식물원처럼 곳곳에 있었다.
출장 뷔페까지 와서 그런지 야외 가든파티에 온 것 같다.
“자, 그럼 가실까요?”
“아, 먼저 가시죠. 잠시 이 친구들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손사래를 치는 한영준 대표에게 대표님이 미소를 지으며 멀어지는 한편.
금테 안경을 쓴 중년인이 나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에 봬요. 늘 이사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제 대표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네요. 축하드려요.”
서로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도 축하한다. 우주야. 대주주라니… 성공했구나.”
번역) 엊그제까지 내 밑에서 연습생이었던 녀석이 잘도 성공했구나.
“TJ에서 많이 배운 덕분이죠. 어쩌다 보니 돌고 돌아 TJ 근처로 돌아오긴 했네요. 하하.”
번역) 신사옥 위치는 마음에 드시나요ㅋ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사이라 데면데면하게 서로를 치하하는 말을 건넸다.
이전과 달리 나를 조금 어려워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걸 보니 내가 성공을 하긴 한 모양이다.
“그리고….”
한영준 대표가 시선을 돌리면서 한별이와 눈을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
서로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이 정색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한다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고 할까.
총괄이사 시절부터 나름 연습생들 사이에서 인망이 있긴 했지만, 한영준 대표는 기본적으로 TJ 마인드가 탑재된 사람이다.
-돈 벌게 해 줬으면 됐지. 쟤는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힘들게 활동 잡아 줬더니 왜 불만을 품는 거지?
한별이가 한국 활동을 하고 싶다며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이해를 못한다고 할까.
이런 부분에선 박태준 회장과 동일하다.
반면 한별이 입장에서도 TJ 쪽을 싫어할 이유는 정말 차고 넘친다.
“저번에…….”
한영준 대표가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평창 폐회식을 앞두고 기획팀 직원 둘이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뭐… 괜찮아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마. 기획팀은 이제 더 이상 우리 회사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해당 사건에 책임이 있는 두 직원도 마찬가지고.”
무시무시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한영준 대표였다.
한별이의 사건을 계기로 삼아 정적들을 모조리 해치워 버린 모양이다.
“한별이 네가 우리에게 감정이 좋지 못하다는 건 알지만… 모쪼록 TNT의 앨범을 함께 하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었으면 하니까.”
“불편할 게 뭐가 있겠어요.”
한별이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저도 이제 소속이 생겼거든요. 레몬 엔터라고.”
“…….”
“이제 회사 통해서 소통을 하면 되니까 불편할 만한 점은 없을 거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 그렇구나.”
이마에 살짝 힘줄이 돋은 채로 웃는 한영준 대표와 여전히 눈이 이글거리고 있는 한별이.
다른 건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앞으로도 서로를 싫어할 거라는 건 확실했다.
박규호 대표님에게 다가가는 한영준 대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별이가 콧김을 뿜었다.
“후우…….”
그러더니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현이를 보면서 극대노하는 표정에 태현이가 양손을 들었다.
“우리 큰아빠지만 왕래 없음. 안 친함.”
“그럼 합격.”
나와 태현이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한별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씨, 좀 차분하게 대하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네. 얼굴 보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확 올라오더라.”
“그 정도면 잘했어.”
“후우. 다음엔 참아야지.”
중국 뺑뺑이를 했을 때 마음고생이 좀 심했던지, 태현이가 한별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TNT의 두 멤버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맞다. 너희 완전체 앨범 내기로 했다며. 축하해.”
“고마워.”
얼마 전에 한별이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다.
아직 언론 보도를 통해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폐회식이 끝난 날 밤새도록 멤버들끼리 이야기하면서 결론을 냈다고 했다.
구선웅이 군대에 가기 전에 완전체 앨범을 내자고.
“근데 나머지 멤버들은? 오늘 다 온다고 듣긴 했는데.”
“글쎄. 뭐, 형들은 알아서 차 타고 올 거 같고….”
태현이가 말했다.
“지한빈은 잠깐 TJ 연습실 들려서 실험을 하나 하고 있어.”
“무슨 실험?”
“그걸 확인하려면 형네 연습실을 구경해야 하는데, 혹시 6층 구경시켜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이브닝 파티가 준비 중인 옥상을 흘긋 보고는 태현이와 한별이에게 6층을 안내해 주었다.
한 층을 우리가 통째로 쓴다는 말에 두 가수가 멍한 표정을 짓는 한편.
연습실 위치를 확인하던 태현이가 연습실 하나를 콕 찝었다.
“여기.”
“응?”
“여기 한 번 들어가 볼래.”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는 나와 한별이에게 태현이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곧장 창가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진지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있는 TJ 엔터 사옥을 살피던 태현이가 이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응응. 위치 왔으니까 너네도 확인해 봐.”
전화를 하는 태현이의 곁에 서서 우리도 시선을 옮겼다.
6층보다 조금 층이 낮긴 하지만 맞은편에 있는 TJ 엔터 사옥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물었다.
“무슨 실험을 하는 건데?”
“이제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거잖아.”
“그치.”
“연습 쉬거나 그럴 때 블라인드 올리면 서로 맞은편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후후 웃던 태현이가 블라인드를 촤악 걷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한빈이를 찾아…….
“안 보이는데.”
태현이가 들고 있는 전화기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한태. 하나도 안 보이는데?
“…….”
-보여?
“아니. 우리도 안 보여.”
실시간으로 눈이 촉촉해지는 태현이의 모습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나마 기획사들이 얼마나 보안에 철저한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 * *
오후 7시.
“안녕하세요!”
“어? 여기 계셨네요. 오랜만에 봬요.”
“잘 지내셨어요?”
레몬 엔터의 사옥 오픈 기념 파티를 위해 손님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문하는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는 동안 중현이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중현아. 행복하니.”
“네. 저 너무 행복해요. 저 이따가 저 꽃이랑 같이 사진 찍어 줄 수 있어요. 형?”
“지금 찍자. 얼른 자세 잡아.”
독특한 꽃이나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온실을 바라보면서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 셋째였다.
그 사이에도 정장이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들이 계속 들어왔다.
무슨 즉위식 같은 분위기였다.
방송국 예능국장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축하 사절단처럼 레몬 왕국에 입장하는 느낌.
“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박규호 대표님.”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규호 대표님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K넷 제작국장 이한수라는 사람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들렀는데…….”
“시트콤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네요! 하하! 기억하시죠? <우리 가족은 외계인> 제작했던 곤 픽처스 김우용입니다.”
여기저기서 악수와 명함을 건네는데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다.
대표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마치 그 모습이 왕을 알현하러 온 듯한 외국 사절단의 분위기였다.
동생들과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 왕이었어…?’
어딘가 모르게 레몬 엔터의 주인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느낌이라 뻘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말 여기 옥상이 날아가 버린다면 당분간 연예계가 정지되겠다 싶을 만큼 면면이 화려하다.
그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은 것은 바로….
“어? 저기 허강민 대표 아니에요?”
“박민오 대표도 오랜만에 보네요. 저분도 정말 외부 활동 안 하기로 유명하던데…….”
“4대 기획사 대표들이 다 모였네요. 아니, 이제 5대라고 불러야 하나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대표님과 조 이사님을 주축으로 모여 있는 4대 기획사 사장단의 라인업이었다.
TJ의 한영준 대표.
KM의 허강민 대표와 MOP의 박민오 대표.
SNH의 장소희 대표까지.
참석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모은 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으시겠지.”
“맛집 얘기하고 계시는데요.”
중현이가 귀를 쫑긋하며 말했다.
그렇군.
맛집 얘기는 인정이지.
대표님들끼리 사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대로 동료 연예인들을 맞이했다.
“야야. 고기 듬뿍 담아.”
“이거 진짜 맛있어. 언니.”
뷔페 접시에 음식을 듬뿍 담고 있는 고기 여신들에게 우리가 다가갔다.
스칼렛 멤버들이 손을 흔들었다.
“여, 김덕춘 씨. 오랜만.”
“잘 지냈어요. 누나?”
“쏘쏘. 적당히 잘 지냈지.”
나와 가장 친분이 깊은 아라와 먼저 인사를 나누고 나서 봄, 리나와도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얀 찹쌀떡처럼 뺨을 오물오물하던 데이지도 손을 흔들었다.
“오빠들 하이.”
“야. 먹고 말해. 다 튄다.”
“진짜 여기 음식 맛있다. 사옥도 끝내주고… 개인 연습실 봤어? 아까 윤찬혁 선배 눈물 흘리던뎅.”
“지금도 울고 계시던데.”
멀찍이서 레몬 엔터의 첫 영입 1호 가수가 눈물을 흘리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 근처에 서 있는 TJ엔터의 가수 장소원 선배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 보였다.
데이지의 말이 들려왔다.
“이번에 폐회식 무대 진짜 잘 봤어. 멋있게 나오더라.”
“고마워.”
“TV 보면서 진짜 부러웠거든. 와 저기 무대 서 있으면… 진짜…….”
“장난 아니었어.”
무대 욕심 가득한 스칼렛이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에 우리가 훗 하고 웃을 때.
스칼렛 멤버들이 으슥한 곳으로 따라오라고 하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 너희가 부럽지 않지. 후후후… 너희도 우리 얘기 들으면 엄청 부러워질걸.”
“그래요?”
올림픽 무대만큼이나 재미있는 무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스칼렛의 리더 아라가 후후 웃었다.
“우리 평양 간다.”
“!”
“평양에 친선 무대하러 가거든.”
“!!”
“더 놀라운 걸 말해 줄까? 우리 평양냉면도 먹는대.”
“!!!”
부럽지 않다는 건 취소다.
어지간한 가수는 가기 힘든 땅에서 무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평양냉면을 오리지널로 먹는다는 말에 부러움 가득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평양냉면…’ 하며 중얼거릴 때, 비주가 물었다.
“누구누구 가요?”
“글쎄. 이제 얼마 뒤면 발표될 거라고 들었는데… 몇 명 정도 이름 듣긴 했어. 데일라잇 언니들도 같이 가고.”
“데일라잇이요?”
“왜 그래?”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 본… 아.”
얼마 전에 평창 폐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한 데일라잇이 중얼거렸던 말이 맴돌았다.
-얘들앙! 나 너무 행복하당! 너희두 행복하구 우리도 행복하고 복 받고! 복… 복 또 뭐 있지. 이제 북으로 가자!
-예? 어디요?
왜 매니저들이 다급하게 가수들을 챙기나 했더니 그거 스포일러였구나.
우리가 전혀 축하하지 않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정말 축하해요….”
“고마워. 이제 가서 평양을 우리의 색으로 물들이고 올게.”
“……누나들 상징색 붉은색 아니에요?”
“고기 다 떨어졌네. 더 푸러 가자!”
멀찍이 접시를 새로 채우러 가는 스칼렛.
이내 누군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미소를 짓는데, 바로 DNS의 걸그룹인 라비앙로즈였다.
그 말인즉.
“하이.”
“우리 빼고 폐회식 무대를 하니 즐거우신가? 즐거우셔?”
깐족거리는 LB를 필두로 막 도착한 스트릿 보이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개업 축하 선물이라며 한조가 내게 꽃무늬 츄리닝을 선물해 주었다.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네. 우리 소속사를 인수했으니까… 대주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위대하신 우주선님이라고 불러.”
“추선님….”
“설마 추하다는 뜻에서 추선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생긋 웃는 한조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6층 좀 둘러보느라고. 보니까 우리도 이제 레이블 소속이라고 거기 쓸 수 있다고 하던데.”
“응. 맞아.”
“너무 좋아. 이제 멀리 갈 필요도 없고.”
큰 무대를 앞두고 대형 연습실이 필요할 때 종종 빈 창고 같은 곳을 빌리곤 하는데.
이제 레이블 소속이 된 가수들도 예약을 하면 쓸 수 있는 구조였다.
아까 인사를 온 TNT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릿 보이즈도 시설을 보며 몹시 감탄하는 모양새였다.
LB가 말했다.
“우리 그냥 레이블 말고 레몬 소속 하면 안 되나? 그냥 흡수합체? 그런 거 하면 좋았을 텐데.”
“인수합병이겠지….”
리혁이가 동갑내기 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동안 나무가 말을 이었다.
“그냥 우리도 레몬 했으면 여기서 살 텐데…….”
“저저 감나무 배신자 새끼.”
발끈하던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공감하는 바야.”
“인정.”
“우리도 그냥 레몬 해도 됐을 것 같은데…….”
임현식 대표님이 들었다면 꺼흐흑 하며 눈물을 흘렸을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분이 안 보인다.
“임현식 대표님은? 안 오셨어?”
“안 오신대. 박규호 대표님 얼굴만 봐도 싸우고 싶어진다고.”
“정말 현명하시구나.”
워낙 견원지간이라서 눈만 마주쳐도 크르릉 하는 두 분이었다.
임 대표님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둘 다 술에 취해 서로 멱살을 잡고 계시지 않았을까.
-야 박규호! 너 그렇게 살지 마!
-현식이 이 자식이!
-너 내가 머리채만 잡을 수 있었으면 내가 이겼어!
그 사이에서 ‘신고할까요?’ 하면서 112를 띄워둔 채 나를 바라보는 리혁이까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평화로운 파티 분위기를 감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가볍게 식사하고 와인이 한두 잔씩 들어가서 그런 걸까.
점점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대표님들끼리 뭔가 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우리 회사 아티스트들과 다른 회사 아티스트들이 뭔가 수다를 떨고.
A&R과 프로듀싱팀이 내가 다가갈 때마다 도망칠 때.
“어디 계시지.”
나는 넓은 옥상 정원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하도 넓어서 그런지 누가 어디 숨어도 모를 정도였다.
“분명히…….”
요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데.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나는 김중현이다. 나는 김중현이다. 나는….
달그락.
그때 소리가 포착되면서 내가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수풀에 가려진 곳에서 아름다운 외모의 미남이 접시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혼밥의 즐거움을 느끼듯 디저트를 음미하는 한류 스타.
“이견우 선배님.”
“히이익!”
“역시 여기 계셨네요.”
“콜록! 콜록!”
“그렇게 놀라실 거 같아서 물도 가져왔습니다. 후후후.”
내가 건네주는 생수를 받아 든 이견우 선배가 목이 멘다는 표정으로 물을 벌컥 들이켰다.
이내 어색한 웃음이 돌아왔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봬요.”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분명히 좀 친해진 거 같은데… 한 달 뒤에 만나면 그 친밀도가 전부 리셋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나름 여기저기서 자주 마주쳤는데도 여전히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선배였다.
그리고 오늘 내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저, 선배님.”
그리고 이런 분들에게는 나의 용무를 말하고 얼른 사라지는 게 제일 좋은 배려였다.
이분의 인터뷰 중에서 대뜸 [저기… 잠시 전화해도 될까?] 하는 메시지를 가장 싫어한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상대의 맑은 눈이 내게 향했다.
“응? 무슨 일이야?”
“드라마 촬영 끝나시고 휴식기라고 들었거든요. 혹시 영화에 관심 있으신가요?”
“영화?”
“네, 할리우드 영화 쪽인데요.”
상대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역할인데?”
“일단 부담 없이 들으셨으면 해요. 진짜 가볍게 제안만 한 번 드려 보는 거니까요.”
“응응.”
상대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서 무슨 역할인데?”
“저희 아버지 역할이요.”
“…….”
상대의 입가에서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신가요?”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나는 이견우 선배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 * *
레몬 엔터의 신사옥 기념 파티는 멋지게 끝났다.
대표님들끼리 별도의 자리로 옮기고, 유쾌하게 술에 취한 연예인들이 떠나고, 누구는 다급하게 도망치고.
밥에 한이 맺혔는지 자주 만나서 밥을 먹자고 하는 구 졸개들과 스보 등을 배웅한 후.
“휴우.”
우리는 컴백 준비를 위해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그런데….
“음…….”
막상 연습을 하려고 연습실에 서니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새집 증후군인가.
뭔가 불만스러운 느낌인데, 동생들의 표정을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그져? 뭔가 이상해요….”
“으음…….”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해진 연습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무언가 마뜩잖은 기분이었다.
“아. 뭔가 아닌데…….”
“으음.”
“뭔가 거슬리는 이 느낌…….”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아 동생들과 함께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우리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파악했다.
“아!”
“아아! 그거네!”
* * *
늦은 밤.
모두가 떠나 있는 레몬 엔터에서 불이 들어온 곳은 세 곳이었다.
뉴블랙과 스칼렛, 연습생들이 있는 연습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표정은 모두 비슷했다.
“으음…….”
불만스럽게 연습실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
곧이어 이어지는 행동은 비슷했다.
까치발을 든 김중현.
막내의 어깨에 올라탄 아라.
사다리를 가져온 연습생들.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벽에 붙은 시계를 떼어 내고 있었다.
“완성.”
“그래. 이거지.”
시계가 떼어진 연습실을 바라보던 레몬 엔터의 아티스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회사의 가수들이 완벽하게 신사옥에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