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51화 (85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51화

그날.

레몬 엔터가 사옥을 이전했다는 소식은 연예부 언론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레몬 엔터, 청담동에 새 둥지 틀었다.. 박규호 대표 “명실상부 K팝 대표 기획사 될 것”

-[Weekly] ‘레몬 신사옥’ 건물 가치는 얼마?

-[포토] ‘TJ와 레몬’ 청담동에서 서로 마주 보게 된 두 기획사의 사연은?

연예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경제면에서 부동산 가치를 분석하거나 뉴블랙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언급하는 기사, 사회면에서 뉴블랙의 신사옥 이전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기사도 올라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쏟아지는 관심들.

“와씨 건물 좋네.”

“뉴블랙이 돈을 엄청 벌었나 봐. 뭔 회사 건물을 저렇게 삐까뻔쩍하게 세웠대.”

“이거 봤어요? 레몬 신사옥 생겼대요.”

일상 속에서도 레몬 엔터의 신사옥이 언급되고 있을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 중소 기획사라 불렸던 회사가 4년 만에 으리으리한 건물로 입성한 상황.

그야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대체 뉴블랙으로 얼마를 번 거지?’

‘레몬 엔터 매출’, ‘레몬 얼마’, ‘박규호 재산’ 같은 검색어가 포털에 입력되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상장 언제 하냐ㅠㅠㅠ 빨리 상장 좀

-지금이라도 얼른 사야 할 거 같은 이느낌.. 주식 8년차의 동물적인 감각이 부르짖고 있다

-나도 좀 투자하게 해 주라ㅠㅠ

-지금이라도 내 돈 투자하면 두세배로 돌아올듯한 이느낌

-하지만 상장하지 않겠지..

-레몬 성장률 보면 코인은 아무것도 아님ㄹㅇㅋㅋㅋㅋ

투자자들에게는 절로 군침이 나오는 매물이었다.

4년 만에 이만큼 성장했는데, 여전히 성장을 멈출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네! 다음은 레몬 엔터의 소식이죠? 곧 런칭하는 넷플러스 드라마 ‘신이’를 비롯해 최근 K콘텐츠 제작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레몬 엔터입니다! 김 대표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상장만 된다면 어마어마한 매물이죠. 무엇보다 회사의 주력 상품인 뉴블랙이 데뷔한 지 4년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작년도에 미국에서 메트로가 대박을 터뜨렸단 말이죠.]

미국에서 영어 곡이 성공한 이후로 계속해서 규모를 불려 나가고 있는 뉴블랙의 팬덤이었다.

[하지만 당분간 상장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몬 엔터의 자금줄이 탄탄하거든요. 저 영업이익이 보이시나요? 정말 알짜라는 이야기입니다. 외부 자금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연예 기획사 주식의 종목 토론방마다 ‘레몬이 상장하기만 하면 갈아탄다’ 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가운데.

매년 2월 말이나 3월이 되면 연예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글도 올라왔다.

[이제 신(新) 4대 기획사로 불러야 할 듯한 2017년도 주요 기획사 실적]

작년도에 어느 기획사가 제일 많이 벌었는지, 서열 정리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이 사랑하는 떡밥이었다.

그곳에서도 레몬 엔터는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1위. 레몬 엔터 - 3,487억

2위인 MOP 엔터와 거의 두 배 차이가 날 만큼 어마어마한 실적이었다.

-ㅅㅂ 뉴블랙 수저 미쳤다..

-흑수저 기획사

-흑수저ㅅㅂㅋㅋㅋㅋㅋㅋㅋ

-금수저고 뭐고 다 필요 없네ㅋㅋㅋㅋ 흑수저가 최고다

-회사가 뉴블랙 하나 만나서 초대형이 되네ㅋㅋㅋㅋㅋㅋㅋ 지린다 진짜

-저거 심지어 dns 레이블로 인수하기 전 성적 아님??? 올해 본격적으로 인수한 거니까

-ㅇㅇ dns는 밑에 따로 있음

-TJ 보니까 레몬 사옥 이전가지고 라이벌 언플하던데ㅋㅋㅋ 3위 풉

-태준이가 싸고간 똥이 크다.

-난 씨발 영준이도 지금 존나 불안해..

-SNH는 매출 꾸준히 하락 중이네,, 경영 잘한다고 해도 역시 아이돌은 기획을 잘해야 하는 듯ㅠ

-snh랑 dns랑 큰차이 없는 거 같은데..?? 스보 요새 해외 인기 많아서 더 치고 올라올듯

-매출 순으로 컷하면 레몬 / MOP / TJ / KM 요렇게 됨

그러면서 곧장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Q. 레몬 엔터는 대형인가?

하지만 큰 싸움판이 벌어졌던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대형이 맞다’는 쪽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전통과 명문 같은소리 하네ㅋㅋㅋㅋㅋㅋ

-야 그럼 미국이 역사 짧다고 강대국이 아니냐

-태준이네랑 민오네 합쳐야 규호네 매출인데.. 우린 이런 걸 대형기획사라 부르기로 했어요ㅋㅋ

-대형 맞지 뭐

-논리 졸라 웃기네ㅋㅋㅋㅋㅋ 업계 매출 1위 = 대형 아님 아무튼 중소임

-20년도 안 된 업계에 역사와 전통ㅋㅋㅋ

이제는 완벽하게 대형 기획사라고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인식이 되고 있는 레몬 엔터였다.

그리고 이런 인식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레몬 엔터의 신사옥이었다.

실제로 레몬 엔터의 박규호 대표가 노린 바기도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보이는 것을 많이 믿거든. 겉으로 보이는 것도 무시할 게 아니야.

척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건물.

레몬 엔터의 신사옥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면 농담으로도 ‘중소…’ 라는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 레몬이 새로운 위치에 등극하고 있을 때.

한참 동안 싸움 구경을 즐기던 아이돌 팬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쟤들은 왜 오늘따라 조용하지?’

풍악을 울리고 축제 분위기로 난리 났을 수플레들이 오늘따라 잠잠하게 ‘대박ㅠㅠ’ 하는 정도로 축하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다른 아이돌 팬들이 그런 수플레들의 이상반응을 궁금해하고 있을 때.

당사자인 수플레들은 지금도 쉴 새 없이 뉴블랙 TV를 새로고침하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없어. 진짜 없어.’

‘어째서.’

‘왜 없어…?’

분명히 신사옥으로 이전했으니 짜잔 하고 사옥 공개 컨텐츠가 올라와야 할 텐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떡밥이 없을 수 있어…!’

곡식으로 가득한 들판에서 뒹굴뒹굴거리며 과일이 없다며 불평하는 수플레들의 모습.

‘배부른 새끼들….’

다른 아이돌 팬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 * *

[네! 다음은 대망의 1위! 바로바로… 레몬 엔터의 사옥입니다.]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로 이전한 레몬 엔터의 신사옥은 오늘 ‘연예 기획사 부자 순위’에서…….]

복도에 걸린 TV에서 한창 레몬 엔터의 신사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썰을 푸는 방송인들이 보인다.

케이블 방송 등에서 진행하는 <랭킹男>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중현이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되게 궁금해하나 보네요.”

“여기가 그렇게 궁금한가…?”

수플레들이야 이해가 가는데, 꽤 많은 일반인들도 ‘사옥 안이 궁금하다!’ 하고 있어서 신기하다.

리혁이가 말했다.

“난 그래도 좀 이해 가는데. 보면 되게 궁금한 곳들 있지 않아요? 백악관 내부라든가 핵 벙커라든가. NASA라든가….”

“백악관, 핵 벙커, NASA 그리고 레몬 엔터…….”

중현이의 읊조림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던지 리혁이도 키득거리는 동안, 내가 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슬슬 회의 시간 다 됐네. 들어가 있자.”

저마다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스틱을 주변 쓰레기통에 버렸다.

구내식당에서 함박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 회사 편의점에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이었다.

지호가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저 진짜 꿈꾸는 거 같아요. 형들. 회사에서 호텔 밥 같은 거 먹고 나서, 회사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진짜 제가 상상하던 대형 기획사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게. 상상하던 거랑 좀 다르긴 한데… 좋긴 하다.”

TJ 엔터에서 연습생을 할 적에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데뷔하고 나서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구내 카페에서 음료를 사 먹는 상상이었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이뤄질 줄이야.

아무튼 결론은 신사옥 최고였다.

“들어가자.”

빈 회의실에 들어가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넷플러스 같은 기업에서 볼 법한 미래 지향적인 인테리어였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국제 정세를 토론하고 석유 유가에 대해 이야기할 듯한 분위기.

“너무 좋다…. 형 우리 여기서 사진 찍어요.”

청담동이 한눈에 보이는 창가에서 비주와 셀카를 찍고 있을 때.

회의실에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헉…….”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어후.”

윤석환 팀장, 홍서영 과장님, 우리 매니저들을 비롯해 TF팀 사람들이 땀을 쏟으며 등장하고 있었다.

원석이 형의 손에 들린 음료 캐리어를 받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땀이…….”

“1층에, 후우, 장난, 후우… 아니야. 진짜.”

“네? 1층이요?”

홍서영 과장님이 손부채를 하며 말했다.

“지금 1층에 너희 팬들이 진짜 많거든. 아예 줄을 서서… 카페에서도 진짜 전쟁터였어.”

팬들? 전쟁?

그 말에 갸웃하던 우리가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꺾어서 1층을 바라보자 긴 줄이 보인다.

“흐어…….”

위에서 내려다봐서 그런 걸까.

설탕 덩어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개미 군단이 줄을 선 듯한 장면이었다.

주변에 트럭도 있다.

“저 트럭은 뭐예요?”

“지금 1층 굿즈샵에서 수량 제한해서 판매하는데도 실시간으로 물건이 동 나고 있어서… 재고 감당이 안 돼서 계속 입고를 시키고 있어.”

“와.”

“진짜 열정이 장난 아니야. 너희 팬들.”

석환 형이 너털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랑 민기랑 원석이 이렇게 내려가니까 소리 치고 난리도 아니더라. 수학귀신! 수학귀신! 이러고.”

“……그, 미안합니다.”

“아니야.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 했다.”

이래서 연예인을 하는 건가 봐요 하는 민기 형의 너스레에 다들 웃는 한편.

자리에 앉으면서 회의가 시작됐다.

쾌적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피곤한 TF팀 직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홍서영 과장님이 말했다.

“친구들한테 매일 연락 와. 레몬 엔터 어떠냐고, 안에 어떤지 정말 구경이라도 해 보고 싶다고.”

“흐히히.”

“그래서 말인데 레몬 엔터 사옥 공개 컨텐츠는 언제 찍을 예정이야?”

“음…….”

우리가 답했다.

“수플레들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다음 달 정도에 공개하려고요. 다음 달에 컴백이 있잖아요.”

“아. 그렇지.”

상대가 바로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지금 너희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궁금해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컴백 앞두고 간단한 예능에 내보내는 식으로 하면 되겠다. 타이틀은 ‘레몬 엔터 사옥 최초 공개!’ 같은 식으로 해서.”

“네. 요즘에 일상 관찰 예능도 많다고 하니까 그런 데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신사옥 공개와 컴백 프로모션을 연계하자는 이야기에 긍정적인 말이 오간 후.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다음 달에 있을 컴백 프로모션을 어떤 식으로 할지, 어디와 연계해서 콜라보를 할지,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할 스탭으로 누구를 컨택하면 좋을지.

리혁이와 함께 돋보기를 들고 굿즈 견본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아, 참.”

석환 형이 물었다.

“너희도 그거 들었니? 이번에 스칼렛 평양에 공연하러 가는 거.”

“응.”

“진짜 부러워여…….”

“평양냉면이라니. 진짜배기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잖아요.”

너희답다며 웃던 석환 형이 말했다.

“사실 원래 너희한테도 차례가 올 뻔했어.”

“응?”

“정부 측에서 너희 이름을 북한에 이야기를 해 본다고 했거든. 혹시 어떠냐 하고.”

“그, 그런데?”

“그 뒤로 소식이 없더라고… 확실하진 않지만 그간 너희 활동이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아.”

우리가 뭐 실수라도 한 게 있나.

그동안 북한 측과 얽혔을 만한 일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고 있을 때.

“!”

우리의 시선이 중현이에게 향했다.

중현이도 ‘응?’ 하다가 아! 했다.

“그거구나.”

“일본에서 컨텐츠 찍었던 거네요. 중현이 형이 그때 권력을 표현할 때 몸으로 말해요 했잖아요.”

중현이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를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그것도 있을걸요. 옛날에 주세한에서 무찌르자 공산당 하면서 노동요 불렀잖아요.”

“아 맞네.”

“안 부를 만했구만….”

실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비하인드를 추측하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한편.

회의 안건들이 하나씩 처리되면서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안건도 마침내 등장했다.

“이 소식을 아마 가장 기다렸을 것 같은데….”

석환 형이 방긋 웃었다.

“얼른 듣고 싶지?”

“응.”

동생들과 내가 생일 폭죽이나 나팔을 들고 준비했다.

“드디어 공식적으로 확정됐다. 너희 다음 콘서트 장소.”

석환 형이 포인터를 딸깍이면서 회의실 스크린에 사진이 떠올랐다.

넓디넓은 공간.

모든 가수가 꿈에 그리는 무대.

[올림픽 주경기장]

동생들과 내가 폭죽을 터뜨리면서 환호했다.

* * *

한참 동안 환호가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어휴 정신 사나워’ 했을 매니저들이나 TF팀마저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율동을 추듯 춤을 췄다.

홍서영 과장님이 우리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다. 우리 아가들.”

“진짜… 안 믿겨요. 주경기장이라니.”

동생들과 내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경기장.

여태까지 저 무대에 오른 K팝 가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적다.

체조경기장이 가수들이 데뷔할 때 현실적으로 ‘꼭 가고 싶다’ 라고 잡는 목표라면, 주경기장은 꿈에 가까운 곳이다. 전교 1등이 되겠다는 것과 전국 1등이 되겠다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아직 콘서트 무대에 선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흥분이 감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예감하긴 했어요. 저희 앵콜 콘서트 하면서 상암을 3일 동안 꽉 채웠으니까. 그래도 이건 정말…….”

“행복하지?”

“네. 정말 행복해요.”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이라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복을 나눠 줘도 행복이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석환 형도 잠시 바보같이 웃었다.

나만큼이나 이 형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고민이 많았어. 너희 공연 보러 오는 사람 숫자만 생각하면 5일을 해도 모자라니까. 하지만 컨디션을 생각해서 3일 정도로 하기로 했어. 4일 이상은 컨디션에 무리가 갈 거 같아서.”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격한 안무가 베이스로 깔린 콘서트를 5일 가까이 하는 건 무리였다.

“뭐. 자세한 것은 협의 중이고… 콘서트 준비는 너희가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야.”

“응응.”

작년 앵콜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올해의 콘서트였다.

‘주경기장에서 공연한다’를 전제로 준비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확정이 나니 행복하다.

석환 형이 잠시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축하한다. 우주야.”

“고마워. 형.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동지애 넘치는 미소를 주고받고, 동생들과 TF팀이 얼싸안고 으쌰으쌰하면서 회의를 마쳤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서고 있을 때였다.

“참.”

석환 형이 대본을 하나 넘겨주었다.

“스튜디오 LM 측에서 연락 받았어. 선명주 님 영화 제작진 측에서 대본을 드디어 완성했다고.”

“오.”

“프랭크 차우 씨가 대본을 보고 나서 들어오기로 결정했대.”

뮤지컬계의 대부로 불리는 거물이 합류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쥘 때.

석환 형이 애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데보라 킴 감독 측에서 너한테 대본을 전달해 주면서 그런 말을 했다더라고. 대본에 조금 문제가 있어서… 살펴보고 연락을 달라고. 아직 초고 상태라서 조금 문제가 있다던데.”

“그래…?”

“한 번 살펴보고 연락 줘.”

“알았어.”

석환 형이 건네준 대본은 2개였다.

하나는 번역가가 한글로 번역해 준 한글 버전, 하나는 원본 버전이었다.

에미상 수상자를 비롯해 화려한 작가 라인업이 적혀 있는 표지를 보자마자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막내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대본이에요?”

“응.”

“와. 대박……. 제목도 진짜 잘 지었는데요?”

지호의 말에 다른 동생들도 표지를 보고는 감탄했다.

태양의 소리. 혹은 태양의 노래.

아빠의 성씨인 Sun을 이용한 제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래서 한 번 살펴보려고.”

막내를 중심으로 비주와 중현이가 한글 대본에 모이고, 나와 리혁이는 영어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전체적으로 한 번 쭉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초고라서 그런지 텅 빈 부분들이 많긴 하다. 예를 들어서 뮤지컬처럼 노래가 들어갈 파트라든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내가 영화 쪽에는 문외한이지만요.”

리혁이가 말했다.

“이거 진짜 잘 쓴 대본 같은데요?”

“엄청 잘 쓴 거 같은데. 나도 영화를 잘 보는 건 아니지만… 이건 진짜 잘 쓴 거 같다.”

그리고 우리 막내의 의견도 동일했다.

욕심이 드글거리는 눈빛.

“형. 저 형 아버님 역할 해도 돼요?”

“안 돼. 그림체가 안 맞아.”

“와. 이거 진짜… 와… 와아…….”

우리 막내가 배역에 욕심을 낼 만큼 빼어난 스토리텔링이 돋보였다.

솔직히 내 예상 이상이었다.

중국인 배우를 권했다는 제작사 이야기에 폭주한 한국계 미국인들의 분노가 담겨서 그런 걸까.

어지간히 망치지 않고선 최소 중박은 하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

“그런데 뭐가 문제인 거지?”

“그러게요… 뭐가 문제지.”

속독을 마치고 자세하게 정독해 나갔다.

그러자 데보라 킴 감독님이 왜 ‘그… 연락 주세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로 각본상을 받을 만큼 영어 실력이 대단한 각본가들은 전부 다 한국계 미국인 2세나 3세.

그래서 그런지 한국 장면이 나올 때마다 흠칫했다.

특히.

“아버님이 보육원 원장님과 갈등을 빚는 부분 보세요. 이거 한국 감성이… 아니지 않아요?”

영어로 된 보육원 원장의 대사가 보인다.

[정말 말썽이 많구나. 명주! 너에 대한 처벌로 오늘부터 외출금지를 내리겠다!]

“…….”

“…….”

동생들이 이마를 짚는 동안 나는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 석환 형. 나야. 감독님한테 통화하자고 연락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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