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52화 (85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52화

-음…….

화면 속에서 머쓱해하는 얼굴이 보인다.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인, 데보라 킴 감독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대본은 다 읽어 봤어요?

“네.”

우선 해야 할 말들을 했다.

“대본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프랭크 차우 씨가 대본 꼼꼼하게 보기로 유명한 분인데, 그분이 보자마자 참가를 할 정도면 말 다한 거죠.”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가 대본을 보자마자 한큐에 OK를 했을 만큼 대본의 퀄리티는 정말 좋았다.

내 칭찬에 화면 속에 있던 각본가들이 환히 웃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 But 이 나올 타이밍이네요.

“네. 안타깝게도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스튜디오 LM의 기획 피디가 문서를 건네주었다.

제작사와 우리가 정리한 문제점들이 적혀 있었다.

“대본의 뛰어난 퀄리티와 별개로 한국어가 나오는 장면들이 전반적으로 부자연스러워요.”

-…그게 우리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어요.

데보라 킴 감독님이 답했다.

-스크립트를 완성하고 보니까 한국 장면들이 너무 부자연스러웠어요. 아무래도 우리 스태프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와서… 한국에 대해 쓰는 게 좀 힘들었죠.

그 말이 끝나면서 각본가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리서치는 열심히 했는데 디테일에서 막히더라고요. 예를 들어 과거 70년대와 80년대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간식으로 뭘 먹었는지. 그 당시 한국의 이웃들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아버지 어머니한테 물어봤는데… 부모님도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시답니다.

-한국의 정서를 잘 모르겠어요.

이 자리에 있는 각본가들이나 연출진은 모두 미국 출생이다.

촬영을 맡게 될 한기영 감독같이 유학 생활을 해서 시민권을 취득한 케이스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나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선명주 영화니까 열심히 해야 돼!’라고 해도 기본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음…….”

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우선 이 부분은 한국인 각본가를 섭외하는 것으로 해결해 보도록 해요. 여러분의 부족한 점을 해결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시대상 고증을 도와줄 스탭도 따로 모셔 보고.”

이 부분에 전문가인 한국인 스탭들을 넣으면 되니 문제 해결은 쉽다.

다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주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한국인인데, 제작진이 한국 감성을 모르면 촬영장에서 난항이 있을 테니까.

시트콤 촬영을 하면서 느낀 바, 배우의 연기력은 감독의 디렉팅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대개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음? 저 사람 연기 잘하는데 저 영화에선 왜 저러지?

갑자기 연기력이 퇴보했다기보다는 대체로 감독의 디렉팅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경우다.

물론 데보라 킴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한국과 관련된 영화를 제작할 만큼 이해도가 높은 편이긴 하다.

다만 지금보다 좀 더 이해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한국에 오시는 게 좋겠어요.”

-오?

데보라 킴 감독과 스탭들이 반색했다.

-안 그래도 같은 생각이었거든요. 와서 선명주 기념관도 한 번 보고, 직접 자료 조사도 하러 다니고.

-로케이션도 알아 봐야 하니까.

-일단 오디션도 있으니까요.

로케이션 담당자와 캐스팅 디렉터 등도 반색하면서 이야기가 급물살을 탔다.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가 말했다.

-참, 그리고 우주 씨가 저번에 말했던 배우 있잖아요. 이견우 씨.

“아. 네.”

-그분에게는 어떻게 이야기가 됐나요?

“일단 이야기를 꺼냈어요.”

흥미롭게 바라보는 스탭들에게 내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니까 도망치시더라고요.”

-?

“그분이 좀 그런 성격이거든요. 별명이 연예계의 개복치셔서…….”

-캐복치…?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내가 개복치를 설명해 주었다.

“아무튼 그래서 섬세하게 다가가야 하는 분이에요. 자칫 하면 무산될 수도 있어서… 제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어요.”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배우입니까?

“일단 한국에서 비주얼과 연기력 모두 탑을 찍은 분이에요.”

내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어지간한 얼굴로는 저희 아빠 배역을 절대 맡길 수 없어요.”

-공감합니다.

-무조건 잘생긴 배우여야 하죠. 뻐킹 할리우드 놈들에게 코리안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스탭들의 눈도 같이 이글거렸다.

아빠의 배역이 중국인이나 흑인이 될 뻔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가운데, 내가 말했다.

“그리고 이견우 선배님을 초청하려고 하는 이유도 있어요. 이분이 한국의 간판 배우거든요.”

-아하.

캐스팅 디렉터가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주연을 캐스팅하고 나면 조연 캐스팅이 쉬워진다는 거군요? 알렉 웨스트를 주연으로 하면 배우들이 줄줄이 들어오듯이.

“네. 맞아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아빠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서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 로케이션 반반씩 찍는 요상한 할리우드 영화.

한국인이 미국에서 성공한다는 마이너한 스토리.

게다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명주와 거대한 팬덤을 거느린 뉴블랙과 관련된 영화.

그중 맨 마지막이 결정타였다.

-그러니까 선명주 님 역할을 하라고? 그거 못하면 전 국민의 역적이 되는 건데…?

어딘가 애매해 보이는데 리스크까지 많은 영화.

하지만 거기에 이견우 같이 유명 배우가 주연으로 들어온다면 그다음부터는 배우들을 모으기가 쉽다.

일종의 ‘검증 완료’ 같은 느낌이니까.

드라마 판에서 톱스타를 주연 배우로 모시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정말 이미지가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유학 생활을 하셔서 영어도 잘하시고.”

잘생긴 외모.

뛰어난 연기력.

현지인급 영어 실력.

그런 요소에 고개를 끄덕이던 캐스팅 디렉터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설득을 하시게요?

“대본을 보내 보려고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 생겼지만 여러분이 쓴 초고는 정말 퀄리티가 뛰어나거든요. 지호가 대본을 보자마자 자기가 배역을 맡겠다고 나섰을 정도로요. 그걸 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회의를 끝내면서 연출진들이 기분 좋게 웃었다.

회의를 마치고 기획 피디에게 대본을 안전하게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TJ 엔터 측에서 연락이 왔다.

배우 측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쾌재를 부르며 전화를 걸 때였다.

[고객이 통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왜 안 받으시지?

그 순간 딩동- 하며 들어오는 메시지.

이견우 [톡으로 부탁할게.]

“…….”

여러모로 까다로운 톱스타였다.

* * *

“형! 형!”

“응?”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게요?”

“누군데?”

막내가 뽀짝 하트를 날리며 말했다.

“그건 바로 너♡”

“…….”

온몸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리혁이가 소름 돋았다며 팔뚝을 문지르는 동안 내가 막내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잉~”

“그만 좀 들러붙어….”

“아잉~ 우주 형이 좋으니까 그러져~”

“이견우 선배님한테 이미 제안 들어갔어.”

막내가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오디션만 봐도 돼요.”

“지호야. 안타깝게도 네가 우리 아빠 배역으로 나오면 한국 사람들이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우리가 출연하면 세계관 충돌 같은 느낌이다.

관객들이 선명주의 과거 이야기에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중현이가 두둥 하고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특히나 막내가 우리 아빠 배역이라면….

-히히! 이제부터 아빠라고 불러보세요. 울 아들~

절대 저런 소리를 듣기 싫어서 거부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지호도 이걸 알고 있었다.

그냥 가질 수 없는 장난감을 바라보며 이잉 하는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뿐.

리혁이가 피식 웃었다.

“차라리 나라면 모를까. 왕지호 넌 아버님이랑 그림체가 안 맞아.”

“흥.”

“나처럼 날카롭게 생겨야지. 넌 둥글둥글해.”

“저도 턱선 날카롭거든요? 형은 그냥 세모예요. 세모. 삼각두.”

“!”

중현이가 삼각두 드립에 좋아서 박수를 치는 동안 비주가 ‘형, 애들 또 저래요’ 하면서 날 바라보았다.

내가 두 막내를 중재했다.

“자. 거기까지 하자. 둘 다 나에 비하면 못생겼어.”

“……!”

“……!”

취향 저격이었는지 비주가 배를 잡고 웃었다.

심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이 험한 말을 퍼붓는 동안 나는 녹음실의 콘솔 기기를 조작했다.

그러고는 녹음 부스 너머의 4인조를 바라보았다.

-으랴아아아아-!

-으라차-!

전투 함성을 지르며 목을 풀고 있는 고기 여신들.

스칼렛 멤버들이 목을 뚜둑 꺾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녹음실이 아니라 어디 골목 같았다.

오늘은 누구를 조지러 가시나요 하고 물어야 할 듯한 느낌.

-우주야. 준비됐다.

헤드폰을 조정하는 아라의 말에 내가 음원을 재생했다.

안 괜찮아

안 괜찮아

내가 작곡해 준 스칼렛의 의 영어 가사 일부가 한국어로 바뀌어서 흘러나왔다.

다음 달에 스칼렛이 평양에서 공연할 버전으로 편곡해 준 곡이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나상윤 팀장님이 말했다.

“곡이 좀 묘하게 바뀌었네.”

“네. 평양 사람들 취향에 맞춰서 조금 더 순하게 편곡을 해 봤어요.”

모란봉 악단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렉트릭 기타나 색소폰 사운드를 첨가하고, 몇 가지 가사를 살짝 바꾸었다.

나상윤 팀장님이 눈을 깜빡였다.

“……북한 노래는 또 어떻게 아는 건데?”

“미튜브 검색하면 나와요.”

“그… 아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녹음을 멈추고 잠시 들어 보는 시간을 가질 때.

스칼렛 멤버들이 몹시 만족한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역시 우주선이다. 성능 확실하고.

-정말 어떤 편곡을 해도 안정적이네. 기복이 없어. 참으로 부채살 같은 그대구나….

-오빠는 우리한테 있어 꽃등심이야.

그야말로 극찬이 쏟아졌다.

동생들과 내가 토크백 버튼에 대고 말했다.

“고마우면 올 때 옥류관 냉면.”

-안 그래도 물어봤거든. 포장해서 오는 거 안 된다던데.

“……그럼 우리 몫까지 먹고 와.”

누가 봐도 대인배의 표정으로 다녀오라고 격려하는 우리 모습에 스칼렛이 얄밉게 웃었다.

리혁이가 피식 웃었다.

“뭐. 난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건데…….”

“그니까.”

“하나도 안 부럽다.”

나는 못 가지만 내 곡이 평양에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혀 부러울 게 없었다.

왜냐하면…….

대표님 [얘들아]

대표님 [저번에 너희가 먹고 싶다던 평양냉면 포장해 왔다!]

대표님 [대표님 잘했지?]

그렇다.

우리에겐 대표님이 있기 때문이었다.

* * *

점심으로 평양냉면을 먹고 나서 우리는 또 다른 회의실을 찾았다.

그간 벌였던 일이 워낙 많은 탓인지 이번에는 또 다른 회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인물이었다.

“안녕.”

수염 때문에 임꺽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외모를 지닌 인물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난달을 끝으로 TBC에서 퇴사한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의 담당 CP인 구재영 피디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차이점이라면….

“혈색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피디님.”

“많이 좋아졌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재영이 너 혈색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

“정말 건강해지셨는데요.”

“최근에 일을 쉬어서 그런가 봐.”

구재영 피디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주세한의 공동 연출이었던 오태준 피디를 비롯해 주세한 작가진들도 안색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봬요.”

“안녕!”

“잘 지냈어~?”

신인 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라 다들 반갑게 인사했다.

이번에 구재영 피디님이 이적하면서 함께 NBS로 영입된 분들이었다.

-구재영 PD, 레몬 엔터 품에 안긴다.. “연봉은 과연 얼마?”

TBC 측에서 권력을 잡은 라인이 주세한을 홀대하면서 이번에 단체로 나왔다는 모양이었다.

우리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신사옥은 좀 둘러보셨어요?”

“엄청 좋더라. 상암에서 있던 사무실보다 더 좋은 거 같아. 우리가 배정 받은 사무실도 대박이고…….”

“대표님이 꽤 신경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여러분들 좋은 자리 주신다고.”

신사옥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예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예능 덕후들만 모여 있다 보니….

“너희 진짜 이번에 여보 낚시 대박 터졌더라. 5회에서 지금까지 빌드업했던 게 쫙 터졌던데.”

“거기 피디는 그거 예능 입봉작이라며, 너무 부러워.”

우리가 출연했던 여보 낚시의 5회에 대해 잘 봤다며 이런저런 코멘트를 해 주는 주세한 제작진이었다.

오태준 피디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놀렸다.

“우주는 노인과 바다라고 클립 떡하니 떴더라.”

“…….”

“흐하하! 그거 진짜 웃기던데.”

밀짚모자를 쓴 채 할아버지 표정으로 돛새치를 낚은 내 모습은 이미 인터넷에 가득 퍼져 있었다.

지금도 새로 고침할 때마다 댓글이 10개씩 달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분명 감동적인 장면인데,, 표정 때문에 몰입이 안 됨

-표정 왜일케 갸륵해 우주ㅋㅋㅋㅋㅋ

-표정만보면 백 년 만에 물고기 낚은 어부임

-입에 넣고 올롤로 하고 싶은데 대추맛 날 거같다.. 그것도 엄청 묵은 대추맛..

-묵은지 같은 내 남자

-헤밍웨이씨 보이시나요 당신이 찾던 그 Noin이 지금 korea에 잇습니다

-헤밍웨이 vs 선우주. 이름 3글자로 웃길 수 있는 선우주의 승리다

-우주야ㅠㅠㅠㅠ 고생많았다ㅠㅠㅠ하고 입력하고 잇다가 노인표정 보고 족터짐ㅋㅋㅋ

-우리 애는 대체 언제 멋있어질는지..

내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요즘 인터넷을 잘 안 봐서…….”

“흐하하하!”

“왜 그래~?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걸 시작으로 최근의 예능 트렌드나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예능 제작진이라 그런 걸까.

TF팀처럼 회의 안건을 딱딱 정리해 두었던 때와 달리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체로 회의가 되고 있었다.

“좋다.”

구재영 피디가 웃었다.

“비주한테 통화 오자마자 바로 승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새로운 예능을 해 보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예전부터 너희랑은 프로젝트 하나같이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오태준 피디도 말을 보탰다.

“진짜 우리도 신기해. 스타플레이어와 스타감독의 조합이라니… 이거 진짜 보기 드문 조합이잖아.”

“맞아요.”

국민 예능을 만들어 낸 피디와 눈앞에서 같이 업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신기하다.

구재영 피디가 말했다.

“저번에 대표님과도 계약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우리의 목표는 두 개야. 하나는 너희가 나오는 예능을 찍는 거고, 또 하나는 그 예능이 나올 NBS라는 플랫폼을 키우는 것.”

“우선 NBS라는 플랫폼을 키우는 이야기부터 해 보자면….”

방송국을 가장 쉽게 키우는 방법은 예능 혹은 드라마다.

그리고 그 예능 중에서 가장 방송국을 쉽게 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악 예능이죠.”

“음악 예능이지.”

우리와 주세한 제작진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야’ 하며 서로에게 윙크를 하며 좋았다고 하는 가운데, 리혁이가 말을 꺼냈다.

“음악 예능을 많이 봐서 공감 가네요. 확실히 관심 끌기에는 가장 쉽고 편리한 수단이에요.”

“그치.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NBS의 모기업인 레몬 엔터의 대주주로서 새로운 예능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가장 중요한 용건인 우리의 예능 프로젝트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우리도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았거든.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 회의를 해 봤는데, 일단 너희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기로 했어. 아니, 그보다는 너희 의견대로 진행을 하려고.”

“저희 의견이요?”

“응.”

구재영 피디가 말했다.

“최근 들어 예능 트렌드를 보면 ‘자연스러움’을 굉장히 강조하거든. 관찰 예능이 뜨는 이유도 바로 그런 자연스러움 때문이고. 버라이어티의 과장되거나 극적인 장면이… 예전만큼 시청자들의 취향이 아니거든.”

“시대가 변했지.”

“근데 또 시대를 탓하며 안 돼. 우리가 적응을 해야지.”

한때 버라이어티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이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래서 너희와의 예능 프로젝트는 그런 자연스러움에 방점을 두려고 해. 이른바…….”

구재영 피디가 노트북을 돌리면서 PPT 제목이 보인다.

[뉴니버스 프로젝트]

그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뉴블랙+유니버스 혹은 뉴 유니버스.

제목 아래 단순한 표어가 뇌리에 쑥쑥 들어오는 느낌이다.

구재영 피디가 설명했다.

“너희의 특기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예능이 되는 거잖아. 그냥 대화만 해도 코믹으로 흘러가니까.”

“그…렇죠.”

부정할 수 없어서 슬펐다.

“반면에 우리의 장기는 그런 일상적인 장면들을 예능으로 만들어 내는 거고.”

“맞아요.”

구재영 피디를 비롯한 주세한 제작진의 특기는 바로 무엇이든 예능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특별한 내용 없이 간단한 소재만으로도 케미와 재미를 뽑는 것이 특징이다.

구재영 피디가 말했다.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는 거야. 너희는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우리는 그걸 예능으로 만들고.”

“하고 싶은 것…….”

“그게 뭐든지.”

“뭐든지…….”

그 말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았다.

‘각자 하고 싶은 것…….’

무대에서는 그토록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졸개들이지만, 이렇게 예능의 눈으로 보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서로를 폐기물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

주세한, 아니 이제 뉴니버스의 제작진이 말했다.

“하고 싶은 걸 말해 줘. 그럼 우리가 예능으로 만들어 줄게.”

왠지 모르게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잠시 고민하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그걸 생각하긴 했거든요. 올림픽 합동 연습하고 있는데 TNT 멤버들이 다 자가용을 타고 오더라고요.”

“그 연차쯤 되면 자차 타고 다니긴 하더라.”

“그거 보면서 조금 부럽더라고요.”

“차가 있어서?”

“아뇨. 차를 살 생각은 없는데 그… 운전을 한다는 게 되게 어른 같고 그렇잖아요.”

우리의 말에 어른들이 웃었다.

“그래서 시간 되면 면허 따보고 싶다 하는 생각 정도는 해 본 적 있는데…….”

“운전면허 따기?”

“네, 중현이 빼면 저희 다 운전면허가 없거든요.”

“호오….”

하고 싶은 걸 말하라고 해서 일단 하고 싶은 걸 말하긴 했는데 왠지 미묘한 기분이다.

과연 이런 걸로 될까 싶은.

곧바로 메모를 시작하는 제작진에게 우리가 물었다.

“그런데 이런 걸로 과연 예능이 될 수 있나요?”

“걱정이야?”

“음…….”

동생들과 내가 말했다.

“좀 걱정이어서요. 운전면허 따는 걸로 웃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웃기기 힘들 텐데…….”

근심스럽게 말하는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제작진.

이윽고 단체로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왜 웃으시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