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1화
스페셜 앨범.
우리가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발매하던 앨범이다.
과거 <겨울잠>이나 <도깨비>처럼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색다른 장르에 도전하거나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기획하는 앨범.
하지만 17년 초의 <도깨비> 이후로 올해는 스페셜 앨범 발매 계획이 없었다.
작년에 영어 곡 작업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딱히 뭘 해야 할지 떠오른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아이디어를 주다니…….”
지금 틴스피릿이 아주 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진짜 이럴 거면 차라리 매달 컴백을 하세요. 이번 달엔 리혁이랑 누구 콜라보. 다음 달엔 누구 이런 식으로 매달 콜라보를 해서…….
동생들과 내가 손뼉을 마주치며 감탄했다.
“야, 이거 괜찮은데?”
“형들. 저 벌써 이름도 떠올렸어요. 월간 뉴블랙!”
“월간 뉴블랙 프로젝트….”
다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나오면서 비주가 발그레한 뺨에 손을 올렸다.
“저 벌써 머릿속으로 다 지나갔어요. 형. 추석 음원, 설 음원, 어린이날 동요 음원, 어버이날 트로트 음원…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좋은데?”
“너무 좋은데요…?”
토이스토리에 나온 초록 외계인들처럼 오오오 하는 우리의 모습에 콜드 브라운이 귀를 기울였다.
통역사가 우리 대화를 빠르게 통역하면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내가 필요하다면 스케줄을 비워 주지.」
「고마워요. 콜드.」
「중현이 나와 작업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네!」
중현이가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동생들 사이에서 아이디어가 막 튀어나왔다.
월간 뉴블랙.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덕순덕순한 것이 벌써부터 됐다 싶은 프로젝트였다.
“대박….”
“진짜 너희 아이디어 뱅크구나.”
“이건 칭찬해.”
리혁이까지 엄지를 들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6인조 미소년은 멍한 표정이었다.
리더인 휘연이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물었다.
“예… 예?”
“아이디어 너무 좋다고. 이럴 바에야 매달 컴백하라고 했잖아. 방금.”
“예… 보통 정상인 사람들은 그걸 농담으로 알아듣죠.”
“흥!”
지호가 코웃음을 쳤다.
“휘연이 형은 저희가 정상으로 보여요?”
“맞아.”
“우리가 정상인인 줄 알았니? 우린 지나가는 낙엽에도 아이디어를 얻는 그룹이다.”
흐하하 웃는 우리 모습에 틴스피릿이 주먹을 꼬옥 쥐었다.
목구멍으로 시발이 들락날락거리고, 들숨과 날숨에 존나가 나오는 듯한 얼굴.
연후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농담을 농담으로 들어야지. 행님들 컨디션 망가져요. 한 달 한 번 컴백? 몸 망가집니다. 백퍼.”
“괜찮아.”
“몸 상한다고!”
“괜찮아, 괜찮아.”
손사래를 치는 우리에게 틴스피릿 멤버들이 앞다투어 말했다.
“지금도 밀린 스케줄이 몇 개예요. 행님들 잠은 좀 주무세요?”
“죽어요. 진심. 무덤에서 음원 틀 거예요?”
“드라마, 예능, 앨범, 미튜브… 진짜 몸이 여러 개라도 그거 축난다니까요. 우리 사람답게 좀 살아요. 씨… 씨푸드 같이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건 우리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화려한 미래가 그려지는 중이었다.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월간 뉴블랙 프로젝트.
다양한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가요계의 화제성을 1년 내내 가져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상상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리는 기분이다.
“으헤헤헷.”
“헤헷.”
틴스피릿이 주먹을 꼬오옥 쥐었다.
그때 콜드 브라운이 물었다.
「뉴블랙의 음원 파워가 한국에서 그 정도로 강력해?」
틴스피릿이 우리 대신 대답했다.
「조떼요. 그냥.」
「싹 다 조짐.」
특정 영어 표현에 유창한 미소년들의 답에 콜드 브라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뭐. 이미 조진 거 같으니 어쩔 수 없고. 그거만 약속해 주세요. 행님덜.”
“…?”
“인터뷰에서 틴스피릿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 거요. 그거 밝히면 우리 진짜 지인들 사이에서 매장감이니까.”
곧바로 머릿속에 지나가는 기사 타이틀.
-[공식] 뉴블랙 우주, “스페셜 앨범에 아이디어 제공해 준 틴스피릿 선배님들께 감사..”
동생들과 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틴스피릿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인터뷰하는 상상했죠?”
“아닌데.”
“솔직히 말해 보세요. 인터뷰 하시는 상상했잖아요.”
“아닌데~?”
틴스피릿 멤버들이 주먹을 꼬오옥 쥐기 시작했다.
잔뜩 콧김을 내뿜으며 쉭쉭거리더니 이내 입을 앙다물고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가 보겠습니다.”
“응?”
“가 볼게요.”
잔뜩 삐친 얼굴로 우르르 빠져나가는 틴스피릿의 모습에 우리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어어어! 알았어, 안 말할게.”
“안 말할게!”
삐칠 뻔했던 틴스피릿을 붙잡고 어화둥둥했다.
평균연령 20세 이상.
하지만 아직 사회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삐뚤어지려는 어린 새싹들을 밝은 방향으로 이끈 나 선우주에게 오늘도 대견스러움을 느끼는 한편.
“매니저님.”
한숨 돌린 내가 틴스피릿의 매니저님에게 속삭였다.
“방금은 몇 단계였나요?”
“4단계 시발이었습니다.”
“아슬아슬했군요.”
“멤버들이 요즘 봄을 많이 타서 감수성이 예민해요.”
케이크를 우물거리다 말고 이쪽을 바라보며 갸웃하는 참새들.
틴스피릿 매니저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웃었다.
* * *
“휴우.”
음방이 끝나고 회사에 돌아오고 나서야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정말이지 빠듯한 스케줄이었다.
어제는 콜드 브라운과 시장 등을 돌면서 유세를 함께 하고.
오늘은 낮에 쇼케이스를 하고는 음악 방송까지 사전녹화를 하면서 바쁘게 돌고 왔다.
“이제 내일만 하면 한국 프로모션은 끝인가.”
핸드폰 달력에 체크를 하면서 숨을 내쉬었다.
내일 K넷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미션>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잠시 참가하고 나면….
-래리 고든 쇼 녹화 일정
-빌보드 인터뷰
-Light It Up 공연
미국에서 짧게 하루 이틀 정도 프로모션을 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저쪽에서 내 쪽을 위해 한국 프로모션을 돌아줬으니 나도 갚아 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리혁이가 물었다.
“그래서 그 프로는 나가기로 한 거예요?”
“응.”
“좋은 생각일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 나는 미국의 보이밴드 오디션 에도 퍼포머로 짧게 출연할 예정이었다.
북미나 영국 쪽은 독특한 프로모션이 있다.
바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기성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해 무대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나라별로 있는 Got Talent 같은 시리즈가 대표적으로 그런 무대에 속한다.
음악 방송이 없다 보니 방송 노출이 되는 무대에 나가는 것이다.
리혁이가 뾰족한 턱을 매만졌다.
“괜히 남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어차피 이미 시청률은 높을 대로 높아. 내가 출연한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거야.”
내가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무대도 길어야 3분 정도? 생방송 무대만 하고 올 거니까.”
“음.”
잠시 생각하던 리혁이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 생방송이면 편집으로 장난질하거나 그럴 수는 없겠네요. 나쁘지 않은 계획이에요. 거기 반응은 어때요?”
“나름 반기는 거 같더라고.”
콜드 브라운과 내가 의 무대를 하겠다고 하니 방송국 측에서도 반색했다.
경우가 어찌 됐든 시청률에 도움이 되니 좋다는 생각인 것 같다.
나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기도 했고.
“가서 실력 차이 좀 보여 주고 올 거야.”
자꾸만 뉴블랙에 이은 다음 주자니 차세대 보이밴드니 뭐니 하면서 엮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모니터링을 해 본 바 출연자들의 실력이 그리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잠재성이 보이는 참가자들은 많지만 아직 완성된 건 아니었다.
최소 1년 이상의 트레이닝이 필요하겠다 싶은 느낌.
아무래도 일반인 참가자들을 데려다가 아이돌로 만들겠다는 거니 당연한 일이다.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긴 하겠네요. 참가자들이랑 실력 차이를 부각시킬 수도 있고.”
“그치.”
“저는 마음에 들어요.”
우리 영애님이 흡족한 미소를 지을 때, 지호가 입을 비죽였다.
“저는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하여튼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 디스하고 그런 데랑은 엮이기도 싫구.”
“그런 거 깊게 따지면 피곤해.”
내가 기지개를 켜며 웃어 보였다.
“이용할 건 이용해 줘야지. 나랑 적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 대면 얻을 게 하나도 없어. 불리한 상황이라도 잘 이용해서 내게 유리하게 흘러가게 만드는 게 제일 좋은 거지.”
“울 아빠가 하는 말이랑 비슷하네요. 상대의 기회를 위기로 만들라고.”
“그래… 기회를 위기로… 음?”
뭔가 이상해서 내가 멈칫하고는 물었다.
“……아버님 경영은 잘 하고 계시는 거지?”
지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요새 뭐 제 이미지 생각한다고 착한 경영 한대요. 직원들이 울 아빠 어디 큰 병에 걸린 게 아니냐고 소문 돌았다구….”
동생들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녁 식사를 마저 이어 갔다.
이곳은 회사 구내식당.
멀찍이서 수행원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뭔가를 진지하게 회의하는 콜드 브라운이 보인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일 있을 K넷 힙합 서바이벌 오디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참.”
나도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현아. 나 좀 도와주라.”
“어떤 거요?”
“내일 나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들 만나잖아. 이분들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진짜 없어서…….”
물론 음악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돌 가수 특성상 힙합 쪽과는 접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중현이가 흐뭇하게 웃었다.
“형.”
“응.”
아이돌 중에서 최고의 랩 실력을 꼽을 때 반드시 등판하는 우리 셋째.
힙합 음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래퍼가 내게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몰라요.”
“…….”
“저도 헤이션 선배님이나 몇몇 분 정도밖에 모르거든요. 연습실에서 소처럼 랩 하다 보니 데뷔해 있어서.”
“그…렇긴 하네.”
“그냥 대외적으로 유명한 거만 알려 줄게요.”
회사에서 자료 조사를 해서 건네준 것과 크게 차이는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런 내용을 숙지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말했다.
“자세한 건 한조 형한테 듣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 형은 언더에서도 활동을 해 봤으니까.”
“아, 그러네.”
“한조 형 오면… 어 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7층 구내식당에 들어온 9인조가 우렁차게 인사했다.
“밥 먹으러 왔습니다~!”
“밥… 허어어어!”
밥을 먹으러 왔다고 말하던 9인조가 멀찍이 앉아 있던 콜드 브라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지… 진짜로 있다!”
“실존하는 분이었어.”
“허어어, 레몬에 인수되길 잘했어…….”
스트릿 보이즈가 제자리에서 멈춰 선 채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우리의 식구가 된 스트릿 보이즈는 그제부터 성화를 부리던 중이었다.
-우리도 보게 해 달라! 콜드 브라운을 보게 해 달라!
-절친의 소원을 들어주면 복 받을 것!
연습생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래퍼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하는 스보를 위해 우리가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콜드.」
내 부름에 콜드 브라운이 직원들과의 미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써니? 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했던 힙합 꿈나무들이 왔어요.」
「아. 네가 말했던 그 친구들이야?」
스냅백 모자를 벗은 콜드가 스트릿 보이즈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스트릿 보이즈. 마치 힙합의 신을 마주한 신도들 같은 표정이다.
「어… 어…….」
그중에서 LB는 아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신의 지지자를 관리하는 정치인처럼 콜드 브라운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콜드 브라운이야.」
“거… 거어어억….”
「음?」
「패… 팬이에요.」
악수를 할 때마다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들이 다리가 풀린 것처럼 흐느적거렸다.
그 모습에 세상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던 콜드가 말했다.
「듣자 하니 식사를 하러 왔다면서. 같이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저희를요?」
「써니가 말하길 한국 사람들은 같이 밥 먹는 걸 굉장히 중요시한다던데. 인사가 밥 먹자는 거라고.」
일명 콜드 브라운과의 한 끼 식사.
내가 주선해 주었다는 말에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주선우 실장님…….”
“아니, 아니지. 이제 실장님이 아니고 이사님이라고 해야지.”
“주선우 이사님….”
매니저 특집 시절의 별명을 부르며 감격하는 이들의 모습에 동생들과 내가 웃었다.
그러고는 눈짓했다.
‘지금이다.’
‘확인.’
한조가 크로스백을 주섬주섬 하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당신을 위해 우리 스트릿 보이즈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콜드.」
「이게 뭐지?」
「당신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수건이에요.」
「……!」
콜드 브라운이 대만족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의전이나 허례허식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행복한 표정이다.
그 모습에 한조가 내게 손으로 슬쩍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도 마주 엄지를 들어 보였다.
‘명예욕 확인.’
‘굿잡.’
콜드가 웃으며 그들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동안 스보의 뒤로 모르는 얼굴들이 따라붙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막 나온 아기새처럼 주변을 둘러보는 이들.
입을 떡하니 벌리는 이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둘 보인다.
“우리 연습생들이야.”
내 곁에 다가온 한조가 설명해 주었다.
“애들이 우릴 너무 부러워해서 데려왔어. 막 말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데 너무 짠하더라. 일생일대의 기회잖아. 살면서 콜드 브라운을 만날 일이 언제 있겠어. 진짜.”
“그건 인정.”
“이따가 소개시켜 줄게.”
사람이 보일 때마다 꾸벅 하고 다니는 연습생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안 보이네?”
“누구?”
“계홍주 씨.”
“너 홍주 알아?”
“작년에 걸그룹 서바이벌에서 봤잖아.”
작년도에 스칼렛이 출연한 걸그룹 서바이벌을 할 때.
막방 당일에 방송국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연습생들 사이에 끼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내게 레몬의 연습생이냐며 물었던 연습생이었다.
-제 이름은 홍주라고 해요. 계홍주. 형님은요?
-김… 김지혁이요.
적당히 우리 애들 이름을 믹스해서 정체를 감추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념에 잠긴 내게 한조가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할 거 있었는데.”
“응?”
“홍주 이번에 <넥스트 미션> 나갔어. 그런 거 알지? 데뷔 전에 연습생들 TV 내보내서 화제성 만드는 거. 그것 때문에 대표님이 이번에 홍주 서바이벌 내보냈거든.”
“그건 몰랐네. 아직 방송 모니터링은 못해서.”
요점은 이해했다.
연습생을 미리 TV에 내보내서 인지도를 조금이라도 만들려는 계획인 듯했다.
데뷔 전부터 실력파 래퍼로 인정을 받으면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도 좋으니까.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막 데뷔하는 그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중들의 관심이다.
“서바이벌 내보낼 정도면 잘하나 보네.”
“진짜 잘해. 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한조가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특별 심사위원이라며. 잘 좀 부탁할게.”
“맨입으로…?”
장난스럽게 묻는 내게 한조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따로 준비했지.”
“?”
“짜잔. 뉴블랙 수건 세트.”
각자 우리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수건 세트.
하찮은 뇌물로 나를 매수하려는 한조에게 내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이런 걸로 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아?”
“응.”
“정답이야.”
한조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 날 오전.
오늘의 운전자로 당첨된 매니저 경민수가 차량에 탑승하는 가수를 맞이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주 씨!”
“예에….”
활기찬 인사에 힘겹게 답하는 우주.
다크서클이 깔린 듯한 얼굴에 경민수가 물었다.
“또 밤 새우셨습니까?”
“네. 어쩔 수 없었어요.”
우주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콜드랑 같이 <넥스트 미션>을 시청했거든요. 아. 통역사랑 번역가님도 같이요.”
“아. 한글 자막 때문입니까?”
“콜드가 오늘 녹화하러 가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통역사님이 거의 방송 내용을 해설해 주고, 번역가님은 참가자들이 했던 랩들을 번역해 주고 그랬어요.”
“고생이시네요. 두 분 다.”
“어제 인센티브 이야기 듣고 웃으시던데요. 며칠 활동으로 반년치 돈이 나왔다고….”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매니저 도원석이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라도 영어 공부를 하러 가야 하나.”
“저도 경호학과 말고 공부로 나아갈 걸 그랬나 봐요.”
매니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콜드 브라운 씨도 대단하시네요. 나 같으면 그냥 나 콜드 브라운이요, 하고 힙합 오디션 프로에 나갈 텐데.”
“탑이 된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나 봐요.”
우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에요. 어제 방송 보면서 힙합 이야기를 막 해 주는데 배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정말 열정도 많고. 저도 좀 그런 걸 본받아야 하는데…….”
도원석이 웃었다.
‘둘이 비슷한 것 같은데.’
그가 보았을 때는 비슷해 보였다.
성공에 대한 욕망.
모두가 자기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어린이의 마음.
타이틀을 얻기 위한 노력.
이런저런 점이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바른 말을 싫어하니까.’
바른 말을 들으면 히잉 하는 뉴블랙 리더의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때.
레몬 엔터 지하 주차장에 있던 차량의 문이 열렸다.
“Hey!”
멀끔하게 차려입은 콜드 브라운이 매니저와 함께 차량에 올라탔다.
「샤워실 시설이 어마어마하게 좋더군. 뉴욕에 있는 한국식 목욕탕에 방문한 기분이었어. 의상 갈아입을 수 있는 피팅룸은 또 얼마나 좋은지…….」
너희 회사 시설이 마음에 든다며 칭찬을 하는 콜드 브라운의 말에 우주가 맞장구를 치는 가운데.
차량은 힙합 서바이벌 <넥스트 미션>의 녹화장이 있는 일산으로 출발했다.
차량이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을 때.
도착할 즈음에 연락을 달라는 K넷 측의 요청에 따라 도원석이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알겠습니다, 매니저님. 천천히 와 주세요.
천천히 목적지에 접근하는 차량.
거대한 창고들이 모인 스튜디오에 다다를 때였다.
“음?”
도원석이 멀찍이서 뭔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입구에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데?”
“진짜요?”
우주가 차창에 고개를 내밀었다.
야외에 레드카펫이 깔려 있는 가운데, 선글라스를 쓴 진행요원들이 VIP를 모시듯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도착과 함께 환영한다는 듯 현수막이 촤르륵 내려왔다.
앨범 아트로 써도 될 만큼 선우주와 콜드 브라운의 투샷이 기가 막히게 합성된 사진.
[우주 님과 Cold Brown 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K넷 임직원 일동]
그 순간 백미러를 통해 가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
“……!”
씰룩씰룩.
선우주와 콜드 브라운의 입이 동시에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아닌 척하면서 입가에 손을 올리는 우주.
하지만 입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은 멈출 수 없었다.
“꺄… 꺄르르륵…….”
「꺄르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몸을 들썩이는 두 남자.
참으로 의전에 취약한 한 쌍의 듀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