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62화 (8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2화

PBS에 이어 또다시 준비된 과잉 의전.

이에 대한 콜드의 반응은.

「우후후훗!」

그야말로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내가 매니저들에게 웃으며 속삭였다.

“콜드는 이런 거 진짜 좋아하나 봐요.”

“…….”

“왜 그래요, 형?”

“어… 아니야.”

원석이 형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BGM이 흘러나왔다.

팡파레가 울려 퍼지면서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쪽입니다.”

푹신한 레드카펫을 밟으며 이동하자,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PD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K넷 <넥스트 미션>의 CP를 맡고 있는 이봉철입니다. 하하.”

“담당 PD 유현종입니다.”

공손히 명함을 건넨 이들이 꽃다발을 건네주면서 콜드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두 분의 방문을 너무나 환영한다는 말과 우리도 방문해서 기쁘다는 인사가 차례차례 오갔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죠.”

담당 CP가 몸소 문까지 열어가며 콜드와 나를 안내했다.

그가 잔뜩 설렌 얼굴로 말했다.

“이야. 정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두 분이 이렇게 나와 주신다고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저희 프로그램이 지금도 잘나가고 있습니다마는 이제 로켓처럼 치솟겠네요!”

“감사합니다.”

“이따 제작국장님도 오신다고 하니까요.”

방송국에서는 시청률이 곧 법이다.

시청률을 끌어 올려줄 사람들에게 방송국 사람들이 세상 친절한 표정으로 대기실을 안내해 주려고 했다.

콜드 브라운이 입을 열었다.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먼저 리허설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통역사의 말을 전해 들은 담당 CP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 예예! 물론이죠.”

정체를 숨긴 채 리허설을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 피디가 따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스튜디오 2층이었다.

조명들과 철골 구조물이 있는 곳에 올라온 콜드와 내가 1층을 내려다보았다.

“어우.”

꽤 높아서 비주는 못 올라오겠다 싶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높이 아래로 꽤 화려한 세트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담당 PD가 안내했다.

“여기가 바로 저희 <넥스트 미션>의 메인 스튜디오입니다. 참가자들 숙소와 바로 연결되어 있죠.”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요.”

“예. 생방송을 할 때는 관객 수백 명도 들어올 수 있죠.”

콜드와 내가 세트장을 구경했다.

서바이벌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세트장 위로 프로그램 로고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최근 서바이벌 중에서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넥스트 미션, ‘젊은 래퍼들 여기여기 모여라’.. 지원자 폭발

-‘살벌한 힙합 서바이벌’.. 넥스트 미션 “과연 누가 프로가 될 것인가”

-넥스트 미션, 시청률 대박 ‘2% 돌파’

1.5프로만 되어도 시청률 대박이 났다고 평가하는 K넷에서 최근 가장 주가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컨셉은 데스 게임.

목숨을 의미하는 하트 카드를 가지고 있고, 그 하트 카드가 모두 소모되면 죽음으로 처리되는 시스템이다.

참가자 간에 랩 배틀을 해서 카드를 뺏어 오거나 하는 식으로… 정말 서바이벌 특유의 극한 경쟁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구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라.

그런 모토답게 편집도 매콤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썩소를 짓는 장면, 누군가를 무대를 할 때면 인터뷰로 ‘쓰레기 같더라고요’ 하는 편집된 장면이 들어가고.

「실물로 보니 다들 진짜 어리군.」

콜드 브라운의 말에 내가 시선을 돌렸다.

한창 촬영 준비 중인 무대 아래로 꽤 앳된 얼굴의 참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사실상 나이 제한이 걸려 있는 이번 프로그램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무대 경험도 없고 정말이지 신입 같은 아마추어 래퍼들을 뽑습니다.

작년도에 흥했던 힙합 서바이벌 <드랍 더 비트>와는 다른 구조였다.

기존에 언더에서 실력자로 불린 이들이나 프로 래퍼들을 대상으로 왕중왕전을 펼쳤던 <드랍 더 비트>와 달리 이번에는 어리고 젊은 아마추어 힙합 꿈나무들이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취업 준비생 등등.

기획 의도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힙합씬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겠다… 어쩌고 되어 있는데 모두가 K넷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어린애들 데려다가 합숙시켜 놓고, 극한의 경쟁을 시키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 현재 시청률 상승 가도를 달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작년도의 <드랍 더 비트>가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은 래퍼들이 조금 사리는 분위기였다면, 여기는 정말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무대를 하는 그런 분위기였으니까.

그 때문인지 방식도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합숙이었다.

참가자들이 방송 반응을 보면 안 되니까.

「그 말인즉, 우리에 대해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 방송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녹화였으니까.」

콜드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따가 우리를 보면 깜짝 놀라겠군. 후후후….」

그렇다.

참가자들은 Answer 음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따가 참가자들 앞에 내가 먼저 등장하고, 그다음에 콜드가 등장해서 참가자들이 ‘허어어!’ 할 예정이었다.

「후후후후후….」

「우후후훗…….」

우리의 웃음에 담당 CP와 PD가 아하핫 웃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따로 말하겠다고 하니 K넷 측 직원들이 연락책을 맡은 조연출을 하나 남기고 내려갔다.

그동안 우리는 무대의 리허설을 구경했다.

오늘의 주제는 싸이퍼 대결.

-싸이퍼(Cypher)는 쉽게 말해서 여러 래퍼들이 돌아가면서 대결을 하는 거야. 각자 차례대로 랩을 하는 거지.

어제 콜드가 설명해 준 룰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4인씩 팀을 꾸린 아마추어 래퍼들이 보인다.

K넷 측에서 스타일링을 해 줬는지 아직 메이크업이나 의상을 어색해하는 분위기.

-자.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본 녹화를 하기 전에 미리 리허설을 하려는 듯했다.

이따가 방청객들도 들어오니까.

우리가 난간에 팔을 걸치고 구경하고 있는 동안 통역사님과 번역가님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허. 그런 이야기군요. 어허… 음음.」

K넷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가사지가 번역되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에게 전해진다.

「후우.」

콜드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확실히 언어가 다르니까 힘들군. 써니. 이 부분을 좀 설명해 주지 않겠어? 지하철이 지옥 같다는 말이 뭐지?」

「아. ‘지옥철’이요?」

가사지에 써 있던 ‘지옥철’이 무슨 뜻인지 묻는 콜드에게 적당히 설명을 해 주었다.

랩에 담긴 은어들이나 맥락이 궁금한 모양이다.

내 설명이 끝난 후 그의 매니저가 말했다.

「콜드. 너무 과하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적당히 의미만 파악하는 게…….」

「안 되지. 다 내 후배들인걸. 성의 있게 봐야지. 이 친구들이 내게 랩을 들려줄 기회가 또 언제 있겠어?」

콜드가 손을 휘휘 저었다.

「무명 시절에 선배 래퍼가 랩 한 번 봐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넌 몰라. 벤. 저 친구들한테는 인생의 기회일 수도 있다고.」

「…그, 그렇죠.」

「그리고 이제 저 친구들의 방에는 내 포스터가 붙게 될 거야. 후후후…. 평생 날 존경하겠지.」

그의 매니저가 괜히 말을 꺼냈다는 표정으로 뺨을 긁적일 때.

미국의 래퍼는 고개를 까딱까딱하면서 무대에서 벌어지는 랩의 향연을 감상했다.

표정 변화가 다채롭다.

좋은 랩에는 눈을 감고 좋아하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핸드폰에다 뭐라고 메모를 했다.

옆에서 메모를 하고 있던 나와 콜드가 눈을 마주치면서 꺄르륵 웃었다.

“저, 두 분.”

K넷의 조연출이 우리에게 말했다.

“1차 리허설은 지금 끝났고요. 지금 심사위원 분들 도착했다고 합니다.”

“아, 네.”

콜드에게 내가 물었다.

「심사위원들 도착했다는데 만나러 가 볼래요?」

「좋지.」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후하. 후하.”

스튜디오 내부에 마련된 대형 대기실.

그곳 소파에 앉아 있는 8명가량의 래퍼들이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코, 콜드 브라운…!’

전설적인 래퍼.

동부 힙합의 수장으로 불리는 인물이자 2010년대에 최고의 팝스타로 군림하는 인물.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야. 돈소.”

“돈소라고 부르지 마요. 형님.”

검은 티에 금목걸이, 붉은 비니를 쓴 캐쉬카우(Ca$h Cow)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왜 부르세요?”

“너 어제 콜드 브라운 만났다며. 어땠어?”

“그저…….”

“그저?”

“그저 빛…….”

황홀한 기억이었다고 회상을 하는 캐쉬카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긴장감에 손바닥을 문지르는 래퍼들.

“개떨리네….”

이름이 이건이자 군대에서 기관총 사수였던 래퍼 머신건이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험상궂은 얼굴이 연신 생수를 들이켜며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러곤 옆을 돌아보았다.

“형님은 안 떨리세요?”

“응?”

“콜드 브라운 지금 오고 있다잖아요. 저는 지금 심장이 터질 거 같은데….”

“거기 우주도 있으니까. 나는 우주 옆에 붙어서 말 걸려고.”

심사위원 중 맏형인 헤이션이 답했다.

평소 하던 레게머리에서 벗어나 머리를 짧게 깎은 래퍼였다.

후드티의 모자끈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표정은 꽤 평화로워 보였다.

이 자리의 유일한 여성 래퍼인 실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뉴블랙이랑 친하잖아요.”

“중현이랑은 꽤 친하지. 앨범 작업 같이 하고 그랬으니까.”

“좋겠다. 나도 오늘 우주랑 다리 좀 놔주면 안 돼요? 친해지고 싶은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꿈틀꿈틀거렸다.

“형님 저도 다리 좀 놔 주세요.”

“좋은 계획이네. 저도 다리 놔 주세요. 음원깡패가 될 수 없다면 음원깡패의 따까리가 되겠습니다.”

래퍼들이 꿈에 가득 차 눈을 빛내는 가운데 헤이션이 웃었다.

‘글쎄다. 공사 철저한 성격이라….’

주세한 추석 특집 때부터 뉴블랙을 지켜본 바, 거의 무슨 절친급이 아니고서야 곡 받고 그러는 건 힘들 터였다.

한태현 정도나 돼야 받을까 말까 한 수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똑똑.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래퍼들의 심장이 쿵 했다.

그리고 열리는 문.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래퍼들이 갸륵한 표정을 지었다.

‘지져스.’

‘시발 진짜 콜드 브라운이다. 진짜 콜드 브라운. 콜드 브라운. 콜드 브라운…. 콜드 브라운이…….’

‘콜드. 안녕하십니까. 절 기억하시나요. 어제 만난 캐쉬카우입니다. 오늘도 정말이지 멋있으시네요. 회색 맨투맨과 조거 팬츠만으로도 이렇게 간지나 보일 수 있는 건 형님밖에 없으실 겁니다. 정말 오늘도 빛나시고, 제가 비록 이렇게 마음속으로만 말을 하지만 저의 마음이 전달될 거라 굳게 믿어요.’

Hey! 하며 등장한 콜드 브라운의 모습에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한국 래퍼들의 열렬한 반응에 콜드 브라운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맛이지.’

영향력 확대에 진심인 미국의 래퍼였다.

한국 래퍼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미국 가수의 음흉한 눈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와. 콜디.’

‘후후. 이 한국 래퍼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서 한국에 ‘콜드 브라운 사단’을 만든다. 그리고 이 친구들을 포섭해서 한국에서도 내 영향력을…….’

큭큭 웃으며 마수를 뻗는 래퍼를 바라보던 우주가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입을 벙긋하다 다물었다.

콜드 브라운이 인증샷을 찍으며 인맥 관리를 하는 동안 남은 래퍼들의 시선이 우주에게로 옮겨 갔다.

“우주 씨.”

험상궂은 얼굴의 머신건이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

“초면이지만 사랑합니다.”

“하핫!”

“Answer 음원 너무 잘 듣고 있어요. 평창 때부터 명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힙합으로 들으니… 와아…….”

가수들의 눈이 국내 최고의 스타에게 향했다.

뉴블랙은 그들에게도 연예인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딱히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일 터였다.

물론 방송 활동 등을 통해 친근한 국민 아이돌로 접하긴 했지만 그들 입장에선 결코 쉽게 보이지 않았다.

‘작곡 요괴…!’

‘저 맑은 얼굴로 광인처럼 곡을 쓴다는 건가.’

‘얼굴에 홀리지 말자. 김실리. 얼굴에 홀리지… 아 넘 잘생겼당. 히히. 미남 최고.’

음원 차트를 씹어 먹는 곡들을 만들어 내는 작곡 요괴.

대중성을 기반으로 먹고 살아가는 힙합 가수들에게 음원 차트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 곳을 매번 점령하고 있는 이는 무엇보다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었다.

게다가….

‘밉보이면 머글들한테도 찍힌다.’

대중픽이 중요한 입장에서 국민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도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다.

예전에 뉴블랙에게 디스 랩을 했던 힙합 가수가 사과문 올리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핵폭탄이 걸어 다니면서 꺄르르 웃어 대는 격이었다.

하지만….

“헤이션 선배님. 정말 오랜만에 봬요. 잘 지내셨어요?”

직접 마주한 우주의 인상은 몹시 좋았다.

연차순대로 인사를 하면서 근황을 묻고 하는데, 정말 만나 본 연예인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착한 느낌.

아니, 착하다기보다는 선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람 자체가 선한 분위기를 풍겼다.

“혹시 아버님한테 드릴 사인 부탁드려도 돼요?”

“그럼요.”

“우주 씨, 저 인증샷 좀… 조카한테 보낼 건데 영상편지 혹시 10초 가능할까요? 삼촌 말 좀 잘 들으라고.”

“랩으로 해 드릴게요.”

호감 가는 표정으로 우주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상대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중현이가 선배님들 연락처를 꼭 받아와 달라고 하더라고요.”

“허어어! 정말요?”

“네. 기회가 되면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자기 명함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떠오르는 신흥 래퍼 스윗 포테이토의 연락처를 받아 든 래퍼들의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대박.”

“중현 씨 명함이라니… 이거 번호 가리고 인스타에 올려도 돼요?”

머릿속으로 상상이 펼쳐진다.

옥좌에 앉아 있는 감자 황제의 곁에서 부채질을 하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

방석에 돈을 붙여 돈방석을 만드는 자신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대박인데?’

래퍼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우주가 머뭇하며 그들의 주소를 물었다.

“저 그리고 실례가 아니라면 주소도 좀….”

“네? 왜요?”

“중현이가 평소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들이라고 선물을 보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래퍼들의 머리에서 스팀이 뽝 뿜어져 나왔다.

각자 쓰고 있는 모자나 후드가 푸쾅 날아갈 듯한 열기였다.

‘김중현이 날 존경…!’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들의 눈은 이미 행복이 물들어 있었다.

“어어! 안 그래도 되는데… 근데 무슨 선물이에요?”

“괴산군의 명물 감자요.”

“…….”

“…….”

우주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기랑 안 친한 사람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었다.

“그… 봄감자가 맛있대요.”

“그, 그렇군요.”

집 주소를 불러 주던 래퍼들이 눈을 깜빡였다.

아직 중현을 직접 만나 본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첫 인상이 독특하게 잡혔다.

-너 봄감자가 맛있단다. 느 집엔 이거 없지?

어디선가 보고 들었던 명대사.

래퍼들이 눈을 크게 떴다.

‘점순이…!’

수줍게 웃고 있는 곰순이가 떠오르는 한편.

힙합 가수들에게 자신의 졸개를 연결시켜 준 우주가 시선을 돌려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저, 리토 선배님.”

20대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기로 유명한 리토에게 그의 시선이 향했다.

콧대가 높고 아이라인이 찐한 눈매.

국내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인물이자 섹시한 남성 래퍼로 손꼽히는 인물.

우주의 부름에 그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왜요, 우주 씨?”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우주가 그에게 칭찬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의상이 너무 멋지신데… 혹시 어디서 사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

돌이 된 리토의 표정에 래퍼들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뚝 멈췄다.

‘아차.’

그들의 눈동자가 슬쩍 움직이며 음원깡패의 눈치를 살폈다.

우주가 선한 얼굴로 웃었다.

“…안타깝게도 저의 마음은 이미 상처 받았어요. 선배님들.”

아련한 표정에 다시 한번 터지는 웃음.

왠지 모르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 * *

콜드와 심사위원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있을 때.

나는 선물 꾸러미들을 들고 스튜디오를 배회하고 있었다.

K넷 측의 요청 때문이었다.

-저기… 미튜브에 올릴 비하인드 찍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미튜브 등에 ‘특별 심사위원 우주와 참가자들의 만남!’ 같은 컨텐츠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네.”

몰래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꾸러미를 보여 주며 말했다.

“비주가 직접 구운 쿠키입니다. 지금 리허설 때문에 참가자 분들이 오고 있잖아요. 방송 녹화하면 당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분들께 깜짝 서프라이즈로 제가 선물을…….”

마침맞게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내가 제작진에게 ‘쉿’ 하면서 참가자들이 앉는 의자에 앉았다.

첫 번째 싸이퍼 리허설을 하게 될 팀이 들어왔다.

새벽까지 방송을 보고 와서 그런지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름들이 쏙쏙 떠오른다.

“……?”

자신들의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이들이 우뚝 멈춰 섰다.

이윽고 크게 떠지는 눈.

“어?”

“어어?”

내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특별 심사위원으로 오게 된 우주입니다. 반가워요.”

“어어! 안녕하세요!”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하는 가운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가운데 서 있는 뚱한 표정의 얼굴.

방요찬이라는 참가자였다.

나와 동갑인 93이었던가. 랩 실력과 특유의 자신감 때문에 인기가 높은 출연자라고 들었다.

콜드가 칭찬할 만큼 실제로도 잘했다.

투블럭에 머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래퍼가 내게 말했다.

“저기요.”

“네.”

“거기 저희 자리인데요.”

“그래요?”

왜 우리 자리에 네가 앉아 있냐는 표정에 웃으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말을 걸었다.

“방송 너무 잘 보고 있어요. 랩 정말 잘하시던데요.”

“아, 네.”

상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저도 아는데요.”

학교에서 선생님들한테 이런 표정 짓던 애들을 꽤 본 것 같은데.

주변 다른 팀원들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동안 내가 상대를 바라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음.

이 친구는 또 뭘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