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4화
K-net 「넥스트 미션 : 무한경쟁 힙합 서바이벌」 4회 中
우주와 콜드 브라운이 등장하면서 입을 떡하니 벌리는 참가자들.
그 사이로 인터뷰가 삽입된다.
[허이담 (17)]
와. 진짜 그 순간 딱 소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막… 전율 돋아요. 우주 님 등장하고 콜드 브라운 딱 등장하시는데.
어? 왜 콜드 브라운이 여기에 있지? 했어요.
[조휘진 (23)]
진짜 힙합계의 레전드가 등장하셨다….
저희 다 모르고 있었거든요. 2주 동안 합숙하고 있었으니까.
[이래 (21)]
아. 이래서 우주 선배님이 심사위원으로 나오셨구나.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우주와 콜드 브라운의 무대가 시작된다.
먼저 마이크를 든 콜드 브라운.
Marcus said,
Waste no more time arguing what a good man should be.
그리고 마이크를 든 우주.
Be one.
현장의 환호성과 함께 무대가 시작되려는 그 순간!
화면이 멈추며 자막이 깔렸다.
[60초 후에 시작됩니다.]
* * *
콜드 브라운과 우주의 무대.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무대가 시작되면서 참가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발.’
‘이거 실화인가?’
‘미쳤네….’
평범한 무대를 예상하던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콜드 브라운이라면 지금 힙합계의 최고 존엄 아니던가.
그런 인물이 이런 서바이벌 방송에 심사위원으로 왔다는 것에 충격을 느끼고 있을 때.
또 다른 의문도 떠올랐다.
‘왜 우주랑 무대를…?’
이유는 모르겠는데 관객들이 익숙하다는 듯이 환호를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도 ‘yeah!’ 하면서 Answer의 무대에 호응을 하는데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합숙 때문에 바깥소식이 끊긴 게 거의 2주 전.
그때도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2주 만에…….
‘뭐지?’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콜드 브라운의 랩이 시작하면서 모두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시를 읊는 듯한 기가 막힌 라임,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코러스, 박자를 가지고 노는 감각까지.
그야말로 모든 래퍼들이 이상향으로 삼을 만한 랩이었다.
1절 랩을 한 콜드 브라운이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며 뒤로 빠졌다.
-Your turn, Sunny!
너의 턴이라며 바통을 넘긴 콜드 브라운에게 화답하듯 우주의 랩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눈을 깜빡였다.
‘졸라 잘하네.’
‘뭐. 랩은 아니고 싱잉랩이니까. 잘할 만하지.’
저마다 품고 있는 평은 달랐지만 공통적인 생각인 비슷했다.
‘간지 오진다.’
조명에 그늘진 얼굴이 부드럽게 싱잉랩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저 멀리서 빛나는데, 마치 지금 이 순간에는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할 존재처럼 보였다.
밤하늘의 별처럼.
아이돌(Idol)이라는 말대로 무대 위의 우상처럼 신묘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우주였다.
그저 특별할 것 없이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데, 사소한 표정이나 동작 등이 섬세하게 눈에 새겨지는 기분.
“잘 봐둬.”
래퍼 헤이션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참가자들에게 속삭였다.
“너네 이거 돈 주고도 못 보는 무대야.”
“…….”
“그리고 명심해.”
그의 멘토링을 받는 참가자들의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우리 헤이션 팀에서 아이돌 왔다고 표정 관리 못하고 허세 부리는 새끼 있으면 촬영 끝나고 내 손에 뒤진다.”
“…….”
“나대지 말고 조심해.”
힙합계 대부로 불리는 인물의 말에 헤이션 팀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가 한 말대로 약간 무시한 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뉴블랙이 인기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나서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그 무대를 보기 전까지는.
‘…아까 표정 관리하길 잘했다.’
솔직히 모두가 마음속으로 우주를 반긴 건 아니었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심사위원이 된 아이돌이 그들을 랩으로 평가한다?
아마추어라고는 하나 전국에서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온 그들이었다.
어지간한 아이돌 래퍼 정도는 찜쪄먹을 수 있는 실력을 지녔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건 수천 대 일 수준이 아니구나.’
가볍게 땀방울을 흩날리며 무대에서 빛을 내는 스타를 바라보던 이들은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왔다고 자부하던 그들이 얼마나 좁은 물에 살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아이돌 중에서 부동의 1위 뉴블랙.
수십만에 이르는 지망생이 오디션을 거쳐 연습생이 되고, 수천 명의 연습생이 치열하게 경쟁해서 데뷔한다.
그렇게 데뷔한 백여 개의 그룹 사이의 경쟁을 뚫고 정상으로 올라온 다섯 명 중의 한 사람.
사소한 몸짓이 춤이 되고, 가볍게 내뱉은 목소리가 노래가 되고, 표정 하나하나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까마득한 벽을 실감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헤이션이 뺨을 긁적였다.
‘아이돌이라고 다 저런 건 아닌데….’
인생 처음으로 만난 K팝 아이돌에 충격 받은 제자들의 모습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적당히 충격 받고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는데.
표정을 바라보니 너무나 큰 벽과 마주한 느낌이다. 이제 곧 있을 무대들을 앞두고 자신감을 잃은 듯한 표정.
‘뭐. 그래도 건방지게 구는 거보단 낫지.’
방송국 제작진들은 참가자들이 날선 표정을 짓거나 건방진 리액션을 할 때마다 칭찬하면서 부추긴다.
하지만 그건 시청률에 도움이 되니 그런 거고.
헤이션은 자신이 멘토링을 맡은 제자들이 힙합계에서 성공하고 더 나아가 그의 후배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 면에서 우리 팀은 낫지.’
프로그램의 에이스로 꼽히는 김지혁을 든든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야심 차고 두뇌 회전이 빠른 타입.
처음에는 실력이 부족한 듯해서 걱정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피드백을 받아들여 빠르게 발전하는 제자였다.
마침맞게 외모도 괜찮아서 서바이벌에서 흔히 ‘성장 서사’로 밀어 주는 인물이다.
반면에….
‘요찬이 저거… 어휴.’
멀찍이서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붉은 머리를 바라보았다.
엄마 말 안 듣게 생긴 얼굴 투표를 하면 세계 1위를 차지할 것 같은 얼굴.
‘실력은 좋아.’
처음에는 빼어난 실력으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만든 참가자였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해서 탈이었다.
자아가 너무나 강해 심사위원들의 피드백을 잔소리로 여기는 타입이다.
다른 서바이벌 같으면 이미 편집점이 잡혀서 가루가 돼도 가루가 되어서 털렸을 텐데.
‘CP 빽이 뭔지…….’
피디 빽만 있어도 프로그램을 날로 먹을 수 있는데 그 위의 CP 빽이다.
CP와 친척인지 아니면 지인 아들인지 하는 소문이 돌고는 있는데, 늘상 사회에서 낙하산에 대한 소문이 그러하듯 빽이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어떤 빽인지 정확한 건 없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편집에서도 수혜를 입고.
K넷 측과 잘 지내야 하는 심사위원들도 그냥 할 말 있어도 삼키는 분위기였다.
‘저러다 한 번 잘못 걸리면 큰일 날 텐데.’
CP 빽이라고 하면 대단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이 프로그램이나 K넷 내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아직 매콤한 사회의 맛을 맛보지 못한 이를 바라보며 헤이션이 쓰게 웃었다.
이미 아까 우주와의 만남에서 헛소리를 했다는 이야기가 한 차례 귀에 들어온 터였다.
‘이 동네 소문 빠른 것도 모르는 것 같고…. 에휴, 모르겠다. 재능만 아니면 진짜….’
업계의 새싹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힙합계의 대부였다.
그러는 한편, 멀찍이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 방요찬의 뒤에 앉아 있는 멘토 캐쉬카우가 보였다.
‘돈소가 고생 좀 하겠네.’
처음에 자신의 팀으로 데려 갈 때만 해도 희희낙락했던 캐쉬카우(Ca$h Cow)는 지금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캐쉬카우가 말 안 듣게 생긴 뒤통수를 바라보며 눈을 깔았다.
‘요찬아. 형 말 좀 들어라. 너 왜 그러고 사냐. 너만 힙합 하니. 쌀이 없으면 힙합도 없어, 이 새끼야. 형 말 좀 듣고 정신 좀 차리고… 제발 상대 봐 가면서 까불란 말이야…. 우주가 성격이 좋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 촬영장 뒤집어졌다고…….’
아까 전 있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심호흡을 하는 캐쉬카우.
어리면 이해라도 해 줄 텐데.
우주와 똑같이 스물여섯이나 된 제자를 바라보며 캐쉬카우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뒤통수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캐쉬카우가 손을 올려서 제자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
왜 만지냐는 시선으로 떨떠름하게 돌아보는 제자.
캐쉬카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소심한 성격만 아니었더라면…!’
미소를 지으며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래퍼였다.
* * *
특별 심사위원 무대가 끝난 후.
콜드 브라운과 내가 생수로 목을 축이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넥스트 미션!”
손을 들며 인사하는 나에게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콜드 브라운에 대한 리스펙의 의미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들.
“오늘의 특별 심사위원을 맡게 된 우주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힙합 매니아들이 대부분인 장소인 만큼 내 인사는 짧게 끝내고 콜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오늘의 주인공은 콜드 브라운이다.
-What’s up, Next Mission!
콜드 브라운의 인사에 관객들이 어마어마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오오오’ 하다가 통역사가 말을 전해 주면 ‘와하하하!’ 하고 웃는 식이었다.
-레이건의 일화가 떠오르네요. 멕시코에서 자기 연설에는 반응이 없다가 멕시코 관료가 말을 할 때 반응이 좋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통역이었대요. 콜드가 말하는 걸 보면 그런 느낌이에요. 후후후.
내 기억 속에서 나가라. 서리혁.
콜드가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숨을 고를 때.
MC 역할인 미남 래퍼, 리토가 큐카드를 읽어 주었다.
-지금 참가자 분들은 많이 당혹스러우시죠?
“네!”
-이틀 전 금요일에 콜드 브라운과 우주 씨의 특별 음원이 발매되었습니다. 평창 올림픽 개회식 무대에 쓰였던 Answer의 멜로디와….
Answer의 비화에 대해 짧게 소개가 나온 후.
잠시 특별 심사위원들을 인터뷰하는 코너가 이어졌다.
진행은 헤이션 선배가 맡았다.
독특한 영어를 쓰셨는데, 카리브해에 있는 아이티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 랩 네임이 헤이션(Haitian)인 거야. 아이티 사람이란 뜻이거든.
알고 지낸 지는 꽤 됐지만 랩 네임의 비화를 알게 된 건 처음이었다.
데이지(Day-Z) 때만큼이나 신기한 기분.
헤이션이 마이크를 들고 물었다.
「콜드. 넥스트 미션에 대해 알고 있나요?」
「알다마다요.」
콜드가 퀭한 눈을 자랑하며 말했다.
「밤을 새서 넥스트 미션을 보고 왔습니다. 한 편당 분량이 몹시도 길더군요.」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이 웃었다.
「기왕 보는 김에 <드랍 더 비트>도 같이 보고 왔습니다. 시즌이 굉장히 많더군요. 저의 통역사가 굉장히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 이번 한국 활동에 큰 도움이 된 우리 통역사에게도 박수 좀 보내 주시죠.」
이 사람 덕분에 여러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말에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통역사 분이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가운데 콜드가 현란한 화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 힙합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 본토의 힙합과 유사성을 보여 주면서도 스스로 독자성을 개발한 점이 눈에 뜨이더군요. 특히나 한국의 사회 현실에 대해….」
K-힙합 관계자들이 듣는다면 눈물을 줄줄 쏟을 만한 멘트들이 이어졌다.
어딘가 국사 교과서에서 본 법한 느낌의 문장들이었다.
주변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K문화…!
콜드가 조목조목 한국 힙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마다 여기저기서 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사위원 머신건이 마이크를 들었다.
-나도 저기까진 생각을 못해 본 것 같은데.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콜드의 말이 끝났을 때, 장내에 있는 힙합 관계자들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처님이 직접 강림해서 주지스님들에게 너희 잘하고 있다 하고 말해 주는 느낌 아닐까.
아마 방송이 되고 나면 콜드는 국내 힙합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호감을 받게 될 것 같다.
‘성공.’
콜드가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나도 웃었다.
그렇게 콜드가 힙합계의 레전드로 포지셔닝을 마치고 있을 때, 나도 인터뷰를 하면서 잠시 방향을 고민했다.
아직 레전드라고 불릴 연차는 절대 아니고.
또 힙합 가수는 아니고.
어떤 식으로 심사위원 컨셉을 잡을지 고민하고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리토가 물었다.
-우주 씨는 오늘 특별 심사위원으로서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피실 건가요?
“네. 솔직히 장르가 다른 분야를 심사한다는 게 좀 만만치 않고 부담스러운 일인 거 같아요.”
내가 전문가가 아닌 분야인 만큼 겸손하게 태도를 잡고.
“다만 선배 가수 입장에서 참가자 분들에게 조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카메라가 낯설고, TV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잖아요?”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뭔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연예인이 아니라 선배 가수를 바라보는 느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귀중한 무대 노하우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겸손하면서도 차분하게 피드백해 주는 선배 가수.
포지셔닝을 성공적으로 하고는 콜드와 함께 제작진이 부탁한 멘트를 읊었다.
“자 그러면 어디 한번 어떤 무대가 있는지 기다려 볼까요?”
손뼉을 짝 마주치는 내 말에 이어서 콜드가 나섰다.
본방송에 나가게 될 멘트였다.
윙크를 하며 팅커벨처럼 웃는 콜드 브라운.
「60초 후에 시작됩니다!」
무대 아래서 제작진이 대만족한 박수를 쳤다.
* * *
“후우.”
무대 아래에서 1조가 몸을 떨었다.
바깥에서는 방청객들이 ‘와아아!’ 하고 있고, MC를 맡은 리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첫 번째 싸이퍼 대결에 나올 팀은 바로 ‘팀 캐쉬카우’입니다! 정말 뛰어난 참가자들이 포진해 있죠.
VCR을 통해 팀 캐쉬카우의 연습영상이 흘러나간다.
‘요찬아!’, ‘요찬!’ 하는 팬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방요찬이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때였다면 희희낙락했겠지만 오늘은 기분이 영 별로니, 팬들의 함성도 느낌이 별로였다.
“아씨…….”
방금 전 보았던 콜드 브라운과 우주의 무대가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꾸 의식된다.
‘쫄지 말자.’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선우주가 콜드 브라운이랑 콜라보를 하거나 말거나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조 없이 뉴블랙의 인기를 의식해서 음원을 발매한 콜드 브라운에 대한 실망감만 들 뿐.
그가 다리를 달달 떨며 고개를 저었다.
‘뭐 어쩌라고.’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을 얼굴을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린다.
그와 나이도 동갑인 연예인이 심사위원석에서 내려다볼 거라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벌써부터 상하는 느낌.
새파랗게 어린 낙하산이 회사에서 제 잘난 양 군림하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잠시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이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아서 무대에 쏟는다.’
그런 생각을 하던 팀 캐쉬카우가 제작진의 수신호에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방요찬은 눈을 깜빡거렸다.
-무대 시작하기 전에 이번 심사의 특이한 점을 말씀드리자면, 특별 심사위원님들의 점수도 포함됩니다.
이제 본격 멘토링에 들어간 네 팀.
그래서 각 팀의 멘토들은 자기 팀에게 점수를 줄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따라서 네 팀 중 세 팀의 점수가 25점씩 반영되고요. 특별 심사위원 두 분의 점수가 25점으로 반영됩니다.
그곳에서 생긋 웃고 있는 우주와 콜드 브라운.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우주의 시선이 엑스트라 1에게 머물듯이 스쳐 지나갔다.
-OK.
콜드 브라운이 마이크를 들었다.
-DJ, Drop the beat.
근처에 자리 잡은 DJ가 콜드의 부름에 행복한 웃음을 보이며 비트를 띄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시작하는 싸이퍼.
백여 명의 방청객들이 지켜보는 무대.
살짝 불안불안한 감도 있긴 했지만 팀 캐쉬카우의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잘했다.’
팀의 멘토를 맡은 캐쉬카우와 엡시가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마다 25점 만점에 10점 후반대나 20점 초반을 주며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너무 괜찮은데?”
“요찬이가 랩 하나는 진짜 기깔나게 잘해.”
“이담이 살짝 실수했는데? 아이고… 아쉬워라.”
꼴등인 팀이 통째로 탈락하고, 꼴등 팀이 마지막에 개인전을 펼쳐 한 명만 살아남는 오늘의 미션.
‘이 팀은 적어도 꼴등은 아니겠네.’
작년도 힙합 서바이벌 <드랍 더 비트>의 우승자인 캐쉬카우의 멘토링이라는 이유로 지원자가 빗발쳤던 팀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 상위권의 실력자들.
저마다 평을 하나씩 하는 가운데, 헤이션이 물었다.
-우주 씨는 어떠셨어요?
-네. 저는 우선 무대 너무 잘 봤고요. 정말 개인기가 뛰어난 분들이 모인 팀인 것 같습니다.
우주의 심사평이 이어졌다.
-우선, 허이담 씨.
“네, 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에게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을 말하자면, 중간에 랩 실수가 있었잖아요?
“…네.”
주눅이 든 참가자에게 선배 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 부분이 아쉬웠어요.
“네, 제가 긴장해서 가사 실수를 좀….”
-아뇨. 실수를 해서가 문제가 아니고요. 실수를 한 뒤의 처리가 아쉬웠어요.
“……?”
고개를 숙였다 든 참가자에게 상대가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수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거예요. 저도 가끔 공연을 하다 보면 실수를 하거든요. 무대라는 게 워낙 돌발 상황이 많이 생겨요. 갑자기 노래 부르다 가사가 하얗게 사라질 때도 있고. 음향이 널뛸 때도 있고.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참가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실수를 하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미안한 마음…?”
앳된 고등학생의 발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주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제가 항상 이야기하지만 뻔뻔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실수? 여기에 실수가 어디 있다는 거지? 이런 마음으로요. 여기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갈리거든요.
우주가 말을 이었다.
-실수를 했을 때 관객들이 ‘쟤 실수했네’ 하고 알면 아마추어, ‘실수가 있었어?’ 하고 모르면 프로입니다.
아직 무대 위가 낯설고 순수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주가 조언을 해 준 후.
-이제 그렇게 해서 실수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넘겼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어, 어떻게 되나요?”
-그 실수를 찾아낸 팬들이 미튜브에 ‘실수에 대처하는 최애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이담 씨의 팬들이 늘어나겠죠.
장난스러운 미소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알아 두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 이어졌다.
다른 조의 참가자들도 주의 깊게 듣는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감탄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포지셔닝 잘했네.’
특별하게 힙합 장르에 대한 이야기 없어 순수하게 무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우주였다.
인터넷에서 시비를 걸 거리를 피해 가면서 실용적인 조언을 해 주는 선배 가수 포지션.
그러는 한편.
눈치가 빠른 참가자들은 우주의 심사평에 감탄했다.
‘편집점 진짜 잘 잡는데…?’
다른 심사위원에 비해 멘트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편집점을 기가 막히게 잡는 느낌.
예능 짬 덕분인지 어떤 멘트가 방송에 나갈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잘못 걸리면 큰일 나겠네.’
피디가 편집점 잡아줄 거리를 기가 막히게 던져 주는 인물.
눈치 빠른 이들이 감탄을 하고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우주의 시선이 방요찬에게 향했다.
-요찬 씨 무대 너무 잘 봤어요. 랩 스킬이 정말 뛰어나시네요.
“네.”
감사하다는 의례적인 말없이 짤막하게 대꾸하는 방요찬.
방송을 보고 그의 팬이 된 이들이 살짝 갸웃하고 있을 때.
-우선적으로 요찬 씨의 무대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우주가 차분하게 피드백을 해 주고 있는 동안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방요찬이었다.
빨간 구레나룻을 긁적이면서 딴청을 피운다.
참가자들의 기강잡기를 담당하는 헤이션이 입술을 핥고, 캐쉬카우가 ‘저거 돌았나?’ 하고 마음속으로 6000자의 논술문을 작성하고 있을 때.
우주가 나직하게 말했다.
-요찬 씨.
짝다리를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방요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마주치고 움찔했다.
늘상 생글생글 웃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다.
잠시 말없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에 그가 침을 꼴깍였다.
억겁과 같은 몇 초가 흐르고 우주가 목소리를 깔았다.
-사람과 사람이 말할 때는 마주 보는 게 예의입니다. 예의를 지켜 주세요.
편집점이 기가 막히게 잡힐 만한 장면이었다.
건방지게 굴다가 심사위원에게 혼나는 참가자.
삽시간에 무거워지는 공기.
모든 참가자들이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요찬이 어버버 할 때, 우주가 생긋 웃으며 바로 분위기를 바꿨다.
-물론 제가 좋아서 부끄러우신 거면 이해하고요. 저 좋아하시나요?
“네? 네….”
순간 분위기에 쫄았다가 얼떨결에 답하는 그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
차라리 혼나는 게 나은 편집점이었다.
인터넷상에서 ‘날 좋아해서 예의가 없는 거구나?’ 같은 밈이 될 듯한 장면.
방요찬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닌데?’
삽시간에 비웃음거리로 박제된 그를 바라보며 심사위원들이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