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79화
“다시 말해 봐요.”
“잘못했습니다.”
“후우.”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감히 서리혁 님이 정리정돈을 하는데 한눈을 팔고 음악 작업에 열중한 저의 잘못입니다. 같이 일을 도와줬어야 하는데 반성합니다.”
“아니죠. 아니죠.”
건방진 삼각형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반성문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왜’ 예요. 왜 이런 일이 있었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 있어야죠.”
“그렇군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다가 차마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곡을 쓴 저의 잘못…….”
“으아아! 그만해요! 그럼 내가 너무 쓰레기 같잖아.”
“맞습니다. 얼른 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주세요. 리혁 씨.”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너스레를 떠는 말에 리혁이가 내 등짝을 팡팡 때렸다.
두툼한 후드티 입었지롱.
리혁이가 손을 주무르며 짜증을 냈다.
“에잇! 어머님 곡 쓴 거라서 이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히히.”
“형…만 아니었으면 내가 진짜 혼내줬을 거예요.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안 무서운 사람의 특징: 자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스읍!”
안 무서운 사람의 특징2: 그게 안 통하면 눈에 힘을 준다.
“또또! 불손한 눈빛.”
“죄송합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리혁이에게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게 맞긴 하다.
얘가 정리 다 해 줄 동안 곡을 쓴 거니까.
입을 삐죽대며 한참 동안 ‘동생을 노비로 쓴다’, ‘나 바쁜 사람이다’ 하는 이야기를 하던 리혁이가 물었다.
“그래서 곡은 잘 나왔어요?”
“응.”
노트북을 돌려서 보여 주었다.
“제목은 일단 붙였어. Here I Am.”
“Here I Am. 괜찮네요.”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줄 곡이야.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안정감을 나눠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에 대한 곡.”
“오….”
“한 번 들어 볼래?”
고개를 끄덕이는 리혁이게게 을 들려주었다.
재즈와 팝이 섞인 멜로디.
잔잔하게 가다가 뻐렁치게 터져 나오는 후렴구에서 리혁이가 허밍을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눈을 감고 무엇을 상상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다.
“…어때?”
조심스럽게 묻는 내 말에 리혁이가 살짝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님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정말 멋진 분이었을 거 같아요. 곡에서 느껴져요.”
“…그런가.”
“좋은 곡이에요.”
옛날보다 성격이 훨씬 더 유해졌다고는 하나 공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칼 같은 리혁이었다.
음악에 대해서는 절대 빈말을 하지 않고 할 말 하는 스타일.
그런 리혁이가 좋다고 평하는 말에 안심했다.
“다행이다.”
“이대로 프랭크 차우 씨한테 보내도 될 거 같은데요? 뭐. 그분도 듣는 귀가 있다면 좋다고 할 거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네.”
이윽고 프랭크 차우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가슴이 살짝 떨렸다.
내가 팝 쪽에서는 꽤 잘나가고 있는 작곡가지만 뮤지컬 업계에서는 초심자와 다름없었다.
전설적인 업계의 거물에게 내 작업물을 보내려니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다.
“전송 버튼 좀 대신 눌러 주라.”
가느다란 손가락이 버튼을 콕 눌렀다.
메일이 제대로 전송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있는 동안 곧바로 회신이 왔다.
[Thank you]
보내 준 메일 방금 확인했어. 트래비스와 토론을 해 볼 테니 곧 만나자고.
by F. Chau
음악감독인 트래비스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그에 대해 답장을 보낸 후.
리혁이가 정리해 준 엄마와 아빠의 기록물들을 보려고 손을 움직일 때였다.
“음. 그럼 난 가 볼게요.”
리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스케줄 있어?”
“아뇨. 그건 아니지만 사적인 기록이잖아요. 내가 보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내 옆자리를 탁탁 쳤다.
“얼른 여 와서 앉어. 나랑 같이 보자.”
“그래도 돼요?”
그냥 엄마와 아빠가 남긴 것들을 같이 보자고 한 것뿐인데.
리혁이가 굉장히 좋아하는 얼굴로 냉큼 앉았다.
“하나씩 보자고.”
깔끔하게 정리된 기록물이나 사진들.
그중에서 거의 선명주 실록급으로 정리된 아빠의 일지에 리혁이가 감탄했다.
“아버님 진짜 나랑 잘 맞았을 거 같아요. 당시에 데이터 분석하시던 기록도 그렇고, 와 진짜…….”
“너랑 잘 맞았을 거 같긴 하네.”
“이 정도면 80년대와 90년대의 음악계에 대한 역사 자료로 삼아도 되겠는데요?”
그만큼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 때문에 아빠의 기록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살피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까.
쭉 훑어볼 예정이긴 하지만 일단은 오늘은 엄마에 대한 자료를 보려고 했던 것이니….
“이쪽이 엄마 기록이지?”
“네.”
리혁이가 아빠가 남긴 명주실록을 훑어보며 좋아하는 동안 나는 휑하니 비어 있는 자료들을 바라보았다.
“…….”
엄마? 자료가……?
아무래도 나는 이런 면에서 아빠보다 더 엄마를 닮은 게 아닐까 싶다.
매일매일 일지를 썼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별달리 남긴 기록 같은 게 없었다. 듬성듬성한 자료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두꺼운 것은….
[육아일기]
아기 이름에 ‘선우주’라고 적혀 있는 육아일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아빠의 미공개 악보’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주 도둑이 들었던 어린 시절.
중요한 자료들을 선명주 재단에 이관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거였다.
그동안 마음만 싱숭생숭해서 못 보고 있었는데, 올해 공연 이후로는 조금 마음의 짐을 털어 낸 기분이었다.
첫 장을 펼쳤다.
[내 인생에 기적이 찾아왔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단어를 이렇게 예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문구를 물끄러미 보다가 한 장 한 장 넘겼다.
내 몸무게 등과 건강 상태에 대한 기록과 백신 접종 등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엄마의 발랄한 글씨체와 여기저기 묻은 손때와 잉크 얼룩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기 때 잘 안 울어서 지금 눈물이 많은 거라던데.. 그 말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커서 눈물 흘릴 일이 적으려나 보다.]
아기는 원래 우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보아하니 내가 상당히 많이 울음을 터뜨린 모양이다.
장을 넘길 때마다 울거나 웃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기는 엄청 빨리 큰다. 벌써부터 미남의 징후가 보인다. 대성공.]
[아기에게서 열이 난다. 의사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한다.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달래면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아무것도 못해 줘서 미안해..]
[드디어 열이 내렸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방긋방긋하는 모습이 얄미우면서 예쁘다.]
세심한 기록에 나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아기 머리가 정말 동글동글하다. 우리 우주는 장차 커서 무언가 될 게 분명하다.]
[아기의 손가락이 어제보다 길어졌다. 오빠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그럴 리 없다며 비웃었다. 울컥해서 등짝을 때렸다. 지는 얼마나 똑똑하다고.]
[육아는 힘들다. 아들. 이거 나중에 보면 엄마한테 효도해야 돼.]
쓰게 웃으며 다음 장을 넘겼다.
내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서는 비슷비슷한 문장들이 쭉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리 엄마는 매일매일 색다른 좋은 점들을 발견해 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옹알이에서 음악인의 조짐이 보인다든가.
손가락을 꼬옥 움켜쥐는데 손힘이 좋아서 악기를 시켜도 되겠다든가.
무엇이든 좋은 것을 발견해 내는 낙천적인 성격에 감탄이 나왔다. 난 이렇게 못할 것 같아서.
한편, 매일 색다른 내용이 적힌 육아일기 속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용은 있었다.
[아기가 예민해서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다. 잘 잤으면.]
[우주가 잘 잤으면 좋겠다.]
[어제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우주가 푹 자는 모습을 보고 싶어..]
잘 먹고, 잘 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하루에 하나씩은 꼭 있었다.
육아일기를 펼친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번 우리 정규 앨범도 이런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오긴 했다.
-잘 자. 우리 아가.
어린 시절에 잘 자라고 쓰다듬어 주던 엄마의 기억.
불면증이라는 소재를 앨범으로 녹여내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런 기억 덕분이니까.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리혁아.”
“네?”
“너는 그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부모님이나 동생이 잘 잤으면 좋겠다.”
“어… 아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에 ‘잘 잤으면…’ 하는 생각을 매일 같이 했는데.
나는 부모님에게 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 해서.
“글쎄요. 사실 난 자장가도 들어 본 적 없어서. 형도 알다시피 우리 엄마가 자장가 들려주는 스타일도 아니고.”
“…….”
“내가 울면 엄마랑 아빠가 모차르트 들려줬다고 하던데요.”
“효과가 있었어?”
“모차르트만 들으면 눈물이 나오던데요. 아, 예인이 때는 노래가 바뀌어서 걔는 브람스 들으면 울어요.”
비범한 교육 환경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잘 자라’는 말.
하지만 어른을 위한 자장가는 없지 않던가.
그들을 위한 자장가 같은 노래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하면서 노트북을 켰다.
“곡 작업 하게요?”
“이번 정규 앨범에 넣을까 말까 했던 곡이 하나 있거든. 번외편 격으로 하나 집어넣으려고.”
불면증과 잠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인 이번 앨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곡을 쓰고는 제목을 붙였다.
[Lullaby]
우리 엄마를 위한 자장가였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엄마.
* * *
가끔 곡 작업이 잘 되는 타이밍이 있다.
절묘하게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써니.」
「곡 작업이 잘 됐거든요.」
짧은 시간 동안 두 곡이나 좋은 게 나와서 기분이 굉장히 좋다.
싱글벙글 웃는 나에게 상대가 공감을 표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지. 꽉 막혀 있다가 어느 순간 딱 떠오르는 거야. 나도 <노스탤지어>를 작업할 때 그랬거든.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빵- 하는 열차 소리를 듣고 딱 떠오르는데…….」
작곡가마다 이런 영감의 순간은 비슷한 듯했다.
프랭크 차우가 두툼한 뱃살을 두드리며 과거를 회상했다.
<노스탤지어>의 원작자이자 뮤지컬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작곡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그래서 써니, 너의 영감은 뭐였어?」
「엄마의 일기요.」
「아! 어머니들의 애정이란!」
그러면서 무언가 읊조리는데 물어보니 에드거 앨런 포의 시라고 했다.
프랭크 차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부모들의 애정은 진실한 감정이지. 진실한 감정은 그 자체로 영감의 원천이 되기 마련이야.」
「동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뮤지컬 작업도 진실한 감정이 중요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진실한 노래.」
뚱뚱한 체격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손짓하면서 새치 가득한 40대 남성이 노트북을 펼쳤다.
프랭크 차우 휘하에서 일하는 작곡가이자 이번 <사운드 오브 선>의 음악감독인 트래비스 월콧이었다.
「도전과제가 정말 많아요. 우선 재즈를 뮤지컬적인 퍼포먼스가 가능한 곡으로 바꾸는 것도 그렇고.」
그의 말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긴 해요. 재즈가 뮤지컬이랑 또 잘 맞물리는 장르는 아닐 것 같아서….」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미 <시카고>라는 유명 뮤지컬의 선례도 있고, 재즈가 담긴 뮤지컬이 꽤 많거든요.」
「아 그런가요?」
문외한인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 두 작곡가였다.
프랭크 차우가 말했다.
「사실 장르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해밀턴>이라고 알아, 써니?」
「제목은 들어 봤어요.」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해밀턴에 대한 이야기거든. 처음에 힙합으로 해밀턴의 생애를 표현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다들 웃었지. 하지만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미국 건국 시기면 한국에선 정조 시기였던 것 같은데.
정조 시절 정약용의 일생을 힙합으로 표현해서 뮤지컬 <목민심서> 이러면 다들 웃었을 것 같긴 하다.
실없는 생각을 치우고는 두 작곡가에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보다시피 뮤지컬 쪽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정말 없거든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우리만 믿으라고.」
업계의 선배들에게 공손하게 배우겠다는 자세를 취하니 두 남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프랭크 차우가 노트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일단 곡 선정부터 해야겠군. 어떤 곡이 들어가고 어떤 곡이 나가야 할지….」
제작진과 1차적으로 연출할 만한 곡들을 걸러서 2배수로 만든 리스트였다.
총 20개의 곡.
여기서 이제 10개를 뽑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까 만든 곡도 있기에 그에 대한 문의를….
「보내 준 21개의 곡들은 잘 들었어.」
「네.」
「정말 훌륭한 곡들이 많아서 어떤 걸 선별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
명곡이라 뽑히는 곡 중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통과한 스무 개의 곡들.
「개인적으로는 이란 곡이 너무 좋더군. 기차에서 있었던 사건과 관련해 음악을 넣기에 딱 좋은 거 같아. 그 때문에 는 빠지는 게 좋겠어. 임팩트가 있지만 과 겹치니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주 씨.」
뮤지컬 업계의 전문가들이 이런이런 곡들이 들어가고 빠지는 게 좋겠다면서 해 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프랭크 차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이란 곡이 정말 물건이더군.」
「정말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 간 천재다운 곡이었어.」
「네…?」
뭔가 이상하다.
프랭크 차우가 말했다.
「듣자 하니 선명주 씨가 초창기에 쓴 곡 같더군. 미흡하지만 아주 훌륭한 재즈 곡이야.」
「공감합니다. 정말 천재적인 곡이죠.」
「선명주 씨가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쓴 곡인데… 아마 그 곡의 대상은 이명은 씨겠지?」
내가 쓴 곡을 아빠가 썼다며 칭찬하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메일함을 확인했다.
이거 내가 쓴 곡이라고 설명한 게…….
없네.
이메일 주소가 맞는지 꼼꼼히 확인하다가 그 부분을 언급하는 걸 깜빡했다.
「아무튼 나는 이 이란 곡도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명곡이야.」
「감탄했어요. 확실히 재능의 싹이 다르다고.」
「내 말이! 뮤지컬적으로도 쓰기 좋은 노래라니까. 투박한 부분만 고치면 완벽한 노래가 될 거야!」
흥분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
그쯤에서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응?」
「그거 사실 제가 쓴 곡이에요.」
「…….」
어리둥절해하는 두 사람에게 비하인드를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주인공으로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나 만들었다는 나의 이야기.
「아까 영감을 받아서 곡 썼다는 게 이거?」
「네.」
「…….」
그 말에 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음악 감독인 트래비스 월콧 씨가 내게 물었다.
「우주 씨가 뮤지컬 음악과 관련해서 커리어가 있다고 했나요?」
「아뇨.」
「그럼 이런 곡을 어떻게….」
「아빠의 재즈 곡을 뮤지컬적으로 만들면 요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서 만들었어요.」
「그냥 느낌만으로…?」
「어…? 네.」
음악감독이 멍한 표정을 짓는데 프랭크 차우가 내게 물었다.
「네가 몇 살이라고 했지. 써니?」
「스물넷이요.」
만 나이를 말해 주는 내 말에 프랭크 차우가 이마를 짚었다.
「왜 그러세요?」
「젠장.」
프랭크 차우가 황당하단 얼굴로 물었다.
「이럴 거면 대체 나를 왜 부른 거야?」
「저는 지식이 부족하고 여러분은 풍부하니까요?」
「나를 열 받게 하려고 한 말이면 좋은 시도였어.」
「진심인데…….」
소심하게 항변하는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선명주 씨가 그토록 질투에 시달렸는지 이해가 가는군.」
최고의 극찬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곡 선정을 하는 동안 두 남자는 내게 집요하게 물었다.
뮤지컬 경험이 진짜로 없냐고.
<노스탤지어> OST 작업을 할 때를 빼면 없다고 하는데 굉장히 슬퍼하는 기색이었다.
“어땠어요?”
“칭찬 받았어.”
내가 쓴 곡과 얽힌 에피소드를 말하니 동생들이 웃는다.
그런데….
평소였다면 비주가 제일 먼저 ‘어땠어요?’ 하고 물었을 텐데, 오늘은 리혁이가 먼저 물어봤다.
“비주야.”
“……네?”
평소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새침한 구석이 느껴지는 비주의 미소.
다른 동생들도 비슷했다.
중현이도 눈을 실눈처럼 뜨다가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고, 지호도 샐쭉한 표정이다.
“……너희 왜 그래?”
최근에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지.
대략 일곱 가지 정도를 떠올리면서 문제별로 출구 전략을 고민할 때였다.
지호가 말했다.
“형은 가서 졸개 1호랑 놀아요.”
“비주랑?”
갑자기 비주의 표정이 환해졌다.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녀. 리혁이 형이랑요.”
“리혁이가 언제부터 1호였어? 쟤 3호인데.”
“저 형이 와서 떠들었거든요. 형이 옛날 자기 사진 같은 거 보여 주겠다고 따로 불렀다면서요.”
내가 고개를 돌리자 리혁이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나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형 막 신나 가지고 에베벱~ 너넨 초대 못 받았찌~ 그랬으면서.”
그제야 어떻게 된 사정인지 깨닫고 웃었다.
저번에 리혁이랑만 선명주 기념관에 간 것도 그렇고, 리혁이를 편애한다고 시샘한 모양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면서 동생들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아. 그러니까 리혁이 형은 그냥 정리 셔틀 하다가 온 거네요.”
“그렇지.”
그 말에 리혁이가 발끈하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금 원래대로 내 곁으로 슬금 돌아온 졸개들과 휴게실에 앉았다.
“중현아.”
“네.”
중현이가 리모컨을 누르면서 암막 커튼이 지이잉 내려온다.
영화관처럼 변한 휴게실.
내가 졸개들에게 물었다.
“팝콘?”
“준비 완료.”
“음료?”
“제로음료 준비 완료.”
“응원의 함성?”
“와아아아!”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우리 막내?”
“준비 완료!”
형들이 와아아 하면서 곁에서 손을 흔들어 주자 막내가 ‘아! 애기 취급!’ 하면서도 기분 좋게 웃었다.
소파의 정중앙에 신줏단지처럼 모신 지호.
홍조가 감도는 우리 막둥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1분 남았어요.”
리혁이의 말에 내가 리모컨을 들고 넷플러스를 켰다.
두둥!
‘N’이 확대되면서 넷플러스 메인 화면이 나타났다.
무수한 컨텐츠들의 바다.
“10… 9… 8…….”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오전 12시이자 한국 시간 오후 5시.
새로고침을 하면서 찜한 컨텐츠에 썸네일이 하나 떠올랐다.
갓을 쓴 지호의 뒷모습에 깔린 타이틀.
신이 神異
16년도에 히트했던 웹 드라마의 후속작이자 상반기 넷플러스의 화제작.
오늘은 바로 우리 막내가 출연한 넷플러스 드라마의 공개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