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881화 (88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81화

화면 속에서 내가 등장한 순간.

동생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형이다아!”

“와.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네. 넷플러스도 시청률 같은 거 있나?”

“캡처. 캡처해야 돼.”

난리법석을 떠는 동생들을 보며 웃고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희가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독립군 대원으로 등장한 내가 주인공에게 목적지를 묻는 장면.

뭔가 부끄럽다.

재작년의 시트콤 덕분에 내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건 처음이 아니긴 하다.

다만 지금의 감정은 약간 평소와는 달랐다.

“연기한 게 잘 나왔으면 좋겠네.”

실존 인물이 있는 배역은 아니지만 독립운동가라는 배역 자체가 좀 그렇다.

내가 감히 이런 분들을 연기해도 되나 싶은 기분.

어설픈 연기로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호가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도 그렇고, 감독님이랑 배우들도 이 에피소드가 제일 부담이 심했어요. 그래서 맨 마지막으로 촬영 미룬 거예요.”

다 같이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곳에 가서 참배도 하고 왔다나.

다른 역사적인 시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이 시기는 중요성이 좀 남다른 시기였다.

몰입을 하면서 보려고 할 때.

[달그락… 달그락….]

누런 군복을 입은 관동군이 커다란 궤짝이 담긴 수레를 끌고 만주를 이동하는 장면이 나왔다.

식은땀을 흘리거나 겁에 질린 군인들.

상자에 담긴 것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금줄로 봉인된 것이 무언가 오싹한 분위기를 풍겼다.

관동군 하사가 일본어로 말한다.

[중대장님. 병졸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자꾸 숲에서 무언가 보이는 것만 같다고….]

[무엇이?]

[숲속에서 요괴(妖怪)와 같은 것이 보인다고….]

[헛소리.]

[하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올 때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던 저 상자에게서…….]

상자가 클로즈업된다.

사람의 긴 머리카락이 상자의 틈새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침 크기도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궤짝.

병졸들이 겁에 질리고 말들도 말썽을 부리는 장면을 보던 관동군 대위가 한숨을 쉰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궤짝으로부터 멀어지는 이들.

병졸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한 관동군 대원이 볼일을 보기 위해 풀숲으로 향한다.

바로 그때.

[……!]

스산한 일본 전통음악과 함께 기괴한 생명체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 어어어!]

바지를 내린 채 뒷걸음질 치던 이가 헐레벌떡 도망을 친다.

휘청거리며 도망치던 이가 실수로 궤짝에 몸을 부딪치다가 엎어지고, 모두가 놀라서 묻는다.

[무슨 일이냐! 후지모토!]

[요… 요괴가……!]

일본 전통문화에 나오는 괴물을 언급하는 말에 모두가 총을 들고 경계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경계를 하고 있는 동안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궤짝으로 카메라가 클로즈업됐다.

“아, 제발… 제발…….”

무서운 게 나올 것 같다는 예감에 리혁이가 양손으로 눈을 가릴 때.

아까 군인이 부딪혀서 만들어 낸 틈 사이로 길쭉하고 앙상한 손가락이 삐져나왔다.

그와 함께 안에서 들리는 소리.

[딱딱딱딱딱.]

이빨을 부딪치는 소리인데 마치 웃는 것처럼 들린다.

불길한 음악과 함께 다시금 독립군 대원들의 장면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

“…….”

“…….”

휴게실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내가 물었다.

“안 무섭다며.”

“엥? 이 정도는 볼 만하지 않아요?”

“…진짜 형들이 널 사랑하는 걸 다행으로 여기렴. 지호야.”

동생을 위해 19세 관람가의 호러도 봐 주는 우리들의 애정에 스스로 감탄이 나오는 한편.

비주가 물었다.

“지금 일본 괴물이 막 여기저기 나오고 있는데, 그럼 저 괴물이 대장 같은 거야? 대장을 찾기 위해 부하 괴물들이 몰려오는?”

“스포일러도 괜찮으면 제가 설명해 줄 수 있는데.”

“그건 안 돼.”

“음…….”

지호가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보다 보면 알아요.”

* * *

다시금 독립군으로 돌아온 씬.

‘아씨… 왜 일케 무서워.’

방금 전 무서웠던 장면에서 벗어난 시청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 다시 화면에 시선을 주었다.

‘미장센 오진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눈 덮인 만주의 숲속을 이동하는 독립군 대원들, 험난한 산을 오르기도 하고 계곡을 내려가기도 하고.

그런 장면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모닥불 씬이 나왔다.

“와.”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우주의 모습이 신기하다.

이미 시트콤을 통해 배우로 데뷔한 바 있는 우주였지만, 이렇게 지호랑 투샷으로 있으니 신기하다고 할까.

하지만 진짜 신기한 점은 둘의 연기였다.

‘…우와.’

두 국민 아이돌이 한 화면에 잡히고 있음에도 딱히 뉴블랙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처음에는 와 하며 우주의 카메오를 신기해했지만….

진짜 독립군과 불로불사의 존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연기에 시청자들이 몰입을 하기 시작했다.

모닥불에 장작을 밀어 넣던 독립군이 말한다.

[무엇을 그리 보십니까?]

붙임성 좋은 말투로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를 가장한 신이한에게 말을 건다.

모닥불 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

하지만 시청자들은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눈썰미 좋은 이 독립군은 주인공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를 꿰뚫어 보듯이.

[…정말 임시 정부에서 오셨습니까?]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간다.

은연중에 의심을 내비치는 상대의 모습에 주인공이 손을 스윽 꿈틀거리면서 시청자들이 침을 삼켰다.

수더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상대와 달리 침묵을 지키는 주인공의 표정은 살인멸구를 각오할 눈빛이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다행스럽게도 주변의 독립군 하나가 용변을 봐야겠다며 일어나는 통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숨을 쉬는 불로불사의 존재에게 독립군이 물었다.

[참모께서는 어찌하여 이 일에 투신하게 되셨습니까?]

[……글쎄.]

왜 너는 이 일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

모닥불에 장작을 집어넣은 신이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와 승냥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총을 든 누군가는 그 호랑이를 잡아야 하지 않겠나.]

[호랑이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때까지 말입니까?]

[그렇지.]

[생각해 보니 시간깨나 걸리는 일이겠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답이었다.

다른 문장들은 다 지워진 채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흐릿하게 문장 하나로 남은 책을 보는 듯했다.

주인공의 속내가 살짝 밝혀지려고 하던 타이밍에 용변을 보고 온 이가 돌아오면서 대화가 끊긴다.

그러면서 다시 독립군 대원과 임시정부 인사 간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참모님도 그런 상상 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 독립이 되면 무엇을 하고, 무슨 삶을 살아갈지.]

만주의 하늘을 바라보는 독립군 대원의 눈이 별을 담아낸다.

일렁이는 모닥불에 음영이 진 불로불사의 존재와 별을 보는 어린 존재가 대비된다.

미래를 품은 자와 과거를 품은 자.

아이와 노인.

과거만이 있는 자가 미래를 품는 이를 말없이 지켜본다. 덧없다는 듯이, 한편으로는 가엾다는 듯이.

[혹시 초상화 한 점 그려 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독립이 되면 화가가 될 거라는 독립군 대원.

그가 그림을 그려 주는 장면이 나오면서 통성명이 이어진다.

[통성명을 잊었군.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오?]

[이름은 진즉에 버린 지 오래지요. 그저 진 아무개, 진모라고 불러 주십시오.]

시청자들이 이름을 기억했다.

‘진모….’

그러면서 일부 시청자들이 희망을 품었다.

‘이름이 안 나왔으니까 살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불길했다.

마지막에 죽으면서 ‘제 이름은 무엇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하는 전개라든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못 되겠군요’ 하면서 피를 쿨럭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어쩌면 반전으로 마지막에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살았으면 좋겠다.’

3.1 운동 이후가 배경이었던 경성.

낙관주의자들이 사라지고 비관주의자들이 가득했던 장면들을 앞서 보았던 시청자들이었다.

[무장 투쟁도 다 한철이지. 이젠 한물 간 유행이오.]

[혹여 만주에 갈려는 생각이거든 허튼 생각도 말게! 자네 같은 인텔리가 무지렁이들처럼 목숨을 버려서야 되겠나.]

[이젠 현실적으로 권리를 쟁취해야지. 조선인이 일본인과 같은 권리를 얻으면 그것이 자주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독립 운동은 소용없다는 비관주의자들이 득세했던 경성.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근데 우주는 씬을 몇 개 안 찍었나?’

모닥불 씬과 등장씬을 제외하면 딱히 나오는 장면이 없었다.

그냥 독립군들과 지호만이 나올 뿐.

이윽고 독립군이 관동군을 기습하기 위해 소총을 들고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저, 저길 보십시오.]

이미 전멸해 있는 일본군.

일본도를 빼든 중대장이 혀를 빼물고 쓰러져 있고, 나무들에는 총탄 자국과 그을린 자국이 가득하다.

독립군들이 조심스럽게 상자에 접근한 순간.

[크르르르!]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나타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시간여행 때문에 능력에 제약이 생긴 신이한이 물리적인 전투에 나선다.

‘와…….’

현실적인 전투씬을 보여 주듯이 은밀한 발놀림을 보여 주며 상대를 베어 내는 주인공.

하지만 전투가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이… 이상한데?’

어떤 독립군과 싸울 때는 호랑이와 같은 발을 휘둘렀다가, 어떤 독립군과 싸울 때는 갈고리를 휘둘렀다가.

CG를 잘못 입힌 것처럼 장면마다 얼굴이나 생김새가 다르다.

마침내 드러난 정체.

모두가 쓰러진 곳에서 신이한이 궤짝을 열고 한숨을 쉰다.

[…이번에도 여기 있었군.]

미라처럼 비쩍 마른 수도승의 시체가 가부좌를 틀고 있다.

기괴한 불상처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희뿌연 연기.

연기를 들이마시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환상으로 보게 되며 결국 사망에 이르는 괴이였다.

[딱딱딱딱딱!]

덤벼드는 괴이를 가볍게 제거하는 주인공.

기괴하게 굳은 채로 쓰러진 관동군 시체 사이를 걸어가던 주인공이 독립군들의 눈을 하나하나 감겨 준다.

그리고.

‘아아…….’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미남의 모습이 나오면서 시청자들이 탄식했다.

[결국 독립은… 못 보게 되었습니다, 그려.]

흐르는 피 때문에 한쪽 눈을 찡그리고 감은 채 미소를 짓는 독립군.

무슨 변덕이 동했는지 신이한이 쪼그려 앉아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한 가지 보여 줄 게 있다.]

자신이 지닌 예지 능력을 이용해 미래를 보여 주는 주인공.

효과음과 함께 무언가 스쳐 가는 듯한 소리들이 들린다.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에 있었던 소리가 뒤죽박죽으로 들리는 가운데 미남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크게 뜬 눈이 무언가 스쳐 가는 것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독립군에게 미래를 보여 주는 장면.

[…….]

왠지 모르게 시청자들이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편히 눈을 감은 이가 호흡을 멈추면서 주인공이 한숨을 내쉰다.

[초상화 값은 치렀다.]

그와 함께 뒷마무리를 하는 주인공.

그런 이의 모습과 함께 만주의 허허벌판이 멀어지면서 음악이 깔려 나왔다.

‘올드 랭사인(Auld Lang Syne)이 이거구나.’

석별의 정으로 불리는 음악이자 과거 애국가의 반주로 쓰였던 음악.

잔잔하게 흘러 들어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뻔히 예상했던 전개.

“진짜 완전 뻔… 어흐흐흑!”

“어흐흐흑!”

너무 뻔하다며 오열하는 시청자들이었다.

* * *

[신이 2화 후기]

제작진 : 울어

나 : 네

제작진 : 더 크게

나 :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아 진짜 뻔하다 하면서 개처울음ㅋㅋㅋㅋ

-선우주랑 왕지호 연기 뭔데

-연기 살살해.. 얘들아

-반응 보니 겁나서 못보겠다.. 슬픈거 보면 우울해져서

-ㄴㄴ 꼭봐 우울해지고 그런 슬픔이 아님.

-보고 슬퍼지면 뉴블랙TV 영상 하나 보면 싹 사라짐.. 근데 단점은 다 사라짐

신이의 2화를 본 시청자들이 바글거리는 게시판.

[진짜 ㅇㅇ랑 ㅇㅇ 연기 잘하는 거 같음]

선우주랑 왕지호 연기 미친거 같음

-합이 진짜 좋은 거 같음

-막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둘이 진짜있는 사람같아

-둘이 뭐라도 찍어 주라ㅠㅠㅠ

-사람들 모르는 비하인드) 응원차 놀러 갔던 막내 촬영현장에 즉석 카메오로 섭외됨

-아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어리둥절해하다가 찍었을 거 생각하니까 개웃겨ㅋㅋㅋ

2화가 끝나면서 둘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얼마 안 가 퍼져 나가는 소문.

“우주 나온대?”

“우주 카메오로 나온대.”

신이에 대해 흥미가 없던 사람들도 카메오 출연에 흥미를 보이며 넷플러스에 하나둘 접속할 때.

[2화 끝나고 쿠키 있음 ㅇㅇ]

놓치지 말고 보셈

2화를 잠시 멈추고 커뮤니티에 접속했던 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올드 랭 사인이 후반부에 이르면서 다시금 화면이 밝아졌다.

그리고.

‘어?’

쿠키 영상이 흘러나오면서 시청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관동군의 시체가 가득한 곳에 서 있던 신이한.

시청자들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 뭐야?’

독립군들의 시체가 있어야 할 곳에 아무도 없었다.

오직 관동군의 시체만 남은 곳에서 신이한이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어?”

“어어?”

지금까지 독립군들과 함께 이동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던 장면들에 신이한 혼자만이 있었다.

혼자 산을 내려가고, 혼자 모닥불에 앉아 있는 장면.

‘뭐야. 지금까지 다 환상이었어?’

의아해하는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듯 회상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1920년대의 주인공.

[참모님. 정말 여기가 맞는 겁니까?]

[그래.]

과거에 임시정부 인사를 가장해서 독립군들을 데려갔던 장면.

괴이를 봉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이 이끌고 갔던 이들이 모조리 궤멸당했던 과거의 기억.

‘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구나.’

경성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독립군들과 움직였던 것이 전부 다 과거의 기억이었다.

시청자들이 본 대부분의 장면이 1회 차의 신이한인 거였다.

‘어쩐지….’

이미 괴이를 한 차례 잡은 바 있는 주인공이 왜 다시 괴이의 위치를 탐문하는 것인지 의아하던 터였다.

그러면서 과거로 돌아온 미래의 주인공이 한 일들이 흘러나온다.

말없이 기차를 타고 신의주로 향하고는 바로 만주에 있는 관동군에게로 홀로 향하는 주인공.

‘기차 장면이랑 전투씬만 현재였구나.’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교묘하게 섞여 있던 에피소드의 짜임새에 감탄이 나올 때.

[부스럭.]

신이한이 괴이를 제거하고 떠난 곳에 낡은 군화들이 눈밭을 밟는다.

[이게 대체….]

[조장님! 이걸 보십시오!]

놀라서 호들갑을 떠는 독립군들의 얼굴이 익숙하다.

과거의 지호와 동행했던 이들.

‘어? 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우주가 맡은 진모가 관동군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리둥절해하던 독립군들이 이내 기쁜 얼굴로 무기를 노획할 때.

멀찍이서 살아 있는 이들을 바라보던 신이한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기 시작했다.

[…….]

주인공이 품에서 꺼내드는 초상화.

낡디낡은 종이.

과거 그와 만난 독립군이 그려 준 백 년 전의 초상화가 먼지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가 바뀌었다.]

사라지는 초상화와 살아 있는 독립군이 대비되면서 신이한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과거의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듯한 표정.

[나는…….]

나지막한 독백이 이어진다.

왜 주인공이 굳이 시간여행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는지에 대한 답.

[나는 과거를 바꿀 것이다.]

검은 화면에 ‘신이 神異’라는 타이틀이 떠오르면서 끝나는 2화.

[다음 화를 보시겠어요?]

[30초 후 자동재생]

시청자들이 홀린 듯한 표정으로 다음 화를 눌렀다.

* * *

“어흐흑!”

“어흐흐흐흑!”

“어흑!”

TV 속 맏형의 죽음에 오열하는 졸개들.

서리혁이 TV 화면을 쓰다듬듯이 손을 뻗으며 오열하고, 비주가 주르륵 눈물을 흘릴 때였다.

“어?”

쿠키 영상이 나오면서 눈물을 멈추는 이들.

리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뭐야. 살았네?”

“형 안 죽었어요?”

“살았다… 우주 형이 살았어…….”

동생들의 입에서 죽었다가 살았다가를 반복한 선우주가 헛웃음을 짓고 있는 한편.

왕지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잘 뽑혔다.’

드라마의 퀄리티가 괜찮았다.

연기도 좋고, 우주 형이 서포트해 준 카메오 출연도 좋았고, 연출과 CG를 포함해 나무랄 게 하나도 없다.

내용 전달도 좋았다.

시간 여행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이 후회하는 과거를 바꾸려고 하는 불로불사의 존재.

왕지호가 심호흡을 했다.

‘다행이야.’

몸에 가득했던 긴장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백억 원대 드라마의 원탑 주연.

게다가 사전 제작이라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필 수 없기에 항상 불안했다. 이게 과연 잘될까 하고.

다행히 지금 드라마를 보니 잘 될 듯한 조짐이 보였다.

“후우….”

지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각자의 분야에서 차트 1위를 하거나 두각을 드러내는 형들을 바라보며 내심 초조했는데.

드디어 뉴블랙에서 1인분을 한 것 같아 행복했다.

-나는 형들에게 자랑스러운 동생인가?

누구보다 귀여운 동생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때였다면 이런 질문에 소심하게 답했을 텐데, 지금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호가 고개를 획 돌렸다.

‘날 칭찬해라! 형들아!’

곧 날아올 칭찬들을 기대하면서 고개를 획 돌릴 때였다.

“비….”

비주 형을 부르려고 했는데, 지금 비주는 뭔가에 열중해 있었다.

“비주 ㅎ….”

“우주 형 사진이 꽉 찼네.”

신이에 카메오로 나온 우주의 스샷만 500개가 있는 사진첩.

자신의 스샷은 없었다.

입을 꿈틀거린 막내가 시선을 돌렸다.

“중현이 형, 저….”

“하암.”

하품을 하면서 미튜브에다 ‘신이 요약본 없나요’를 검색하는 김중현.

그때 우주가 말을 걸었다.

“지호야.”

“넹!”

드디어 칭찬이구나!

“이번에 신이 음악 감독님이 누구니?”

“…….”

“음악을 진짜 잘 쓰시더라. 아니 어떻게 주요 포인트에 딱 맞춰서 그렇게 음악을 쓰실 수가 있지? 저런 분을 고용해서…….”

머리에 일 생각밖에 없는 맏형의 발언에 막내가 입을 삐죽이며 멀어졌다.

벌써부터 이름 모르는 사람을 불러내어 갈아 버릴 생각을 하는 맏형에게서 멀어지는 한편.

“음?”

가만히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는 서리혁이 보였다.

‘감상평인 건가!’

왕지호의 가슴이 설렜다.

“신이 감상평 쓴 거예요?”

“응.”

“어땠어요? 어때요?”

서리혁이 자신이 쓴 감상평을 보여 주었다.

[<신이>에서 발견한 타임 패러독스와 오류에 관하여]

지호의 얼굴이 웃는 그대로 굳었다.

“고증은 훌륭한데 설정오류가 있던데.”

“…….”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개연성 면에서도 지적할 만한 점들이…….”

“……!”

대뜸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는 막내의 모습에 형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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