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82화
“아이고. 우리 지호 장하다.”
“오구구.”
“장하다. 장구인 줄.”
중현이의 말에 지호가 눈을 하얗게 흘겼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야. 뭐 그런 걸로 삐치고 그래?”
“아이. 쫌 서운하니깐.”
드라마 2화가 끝나고 칭찬을 기대했는데 형들이 그 기대에 부응을 안 해 줘서 슬펐던 모양이다.
“우리 지호 연기 천재다. 천재.”
“더 해 보세요.”
“연기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몰입감이 대박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목을 쭈욱 빼 버리다가 기린이 되어 버렸네요.”
“흐음.”
“벌써부터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어 갈 우리 대배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장차 아카데미에서 오스카상까지 받게 될 지호 씨의 아름다운 미래가 보이는군요.”
“더더 해 보세요.”
“에이, 먹고 살기 힘드네.”
내 말에 막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내 칭찬에 만족한 듯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쯤으로 만족할게요. 형의 진심이 잘 느껴졌으니까.”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드는 막내에게 절레절레 하고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2화가 끝나고 남은 에피소드는 8개.
시계를 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시간 관계상 나머지 에피소드들은 지금 못 볼 거 같은데요.”
“그치.”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못 보겠네요.”
비주가 웃으며 슬쩍 빠지려 할 때.
지호가 그때 손을 들었다.
“잠깐.”
“…….”
“형들 혹시 시간 없다는 핑계 대고 안 보려는 거 아니죠? 무섭다고 안 보려고…?”
“…….”
들켰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어린아이 하나쯤은 훌륭하게 속여넘길 수 있는 못된 형들이다.
“지호야. 너 그런 서운한 소리 할 거야?”
“서운하네.”
“이래서 내가 왕지호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늘 주장했잖아요. 배은망덕이 기본이라니까요.”
능청맞게 속여넘기는 우리의 연기력에 스스로 감탄할 때.
지호가 하… 하고 짧게 한숨 쉬고는 웃었다.
“형들은 어디 가서 연기하지 마요. 우주 형 빼고….”
나머지들이 발끈하는 동안 지호가 말했다.
“근데 진짜 지금 안 보면 형들 아예 안 볼 거 같은데. 솔직히 우리가 시간이 그 정도로 없는 건 아니잖아요?”
“…….”
“그냥 조금 더 보면 안 돼요?”
“…….”
“저 그럼 생일 선물 이걸로 퉁칠게요. 물론 그런다고 진짜 안 주면 좀 서운할 거 같긴 한데….”
모자를 든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우리의 마음이 약해졌다.
리혁이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한 가지 조건 걸고.”
“뭔데요?”
“방금 전처럼 무서운 거 나오면 바로 나갈 거야.”
“네네!”
지호가 환히 웃었다.
“다행이다. 이제 무서운 거 다 지나갔거든요. 지금부터는 약간 판타지 모험 활극 같은 분위기라서….”
“그래?”
“네. 진짜루.”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지호의 말을 다시 믿어 보기로 했다.
리혁이가 강조했다.
“진짜 무서우면 나갈 거야.”
“네.”
그럴 일 없다는 듯 지호가 3화를 틀었다.
두둥! 하고 N이 떠오르는 동안 3화의 부제가 떠오르면서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3화 - 유령선
유령선이라니.
머리가 산발이 된 귀신이나 기묘한 괴물이라면 모를까.
해골 선장이 겔겔 웃어 대는 유령선 정도면 딱히 무서울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유령들이 오호홋! 돌아다니는 것 아니겠나.
[처얼썩-]
조선 후기.
어촌에서 어부들이 항해를 나간 동안 아이들이 바다에서 헤엄을 치면서 놀고 있다.
그러다 아이 하나가 갑자기 물에서 허우적댄다.
[…어푸푸! 사, 살려…….]
무언가에 붙잡힌 듯이 허우적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아이의 형이 뛰어든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를 붙잡은 채 기괴하게 웃는 괴이와 눈이 마주친다. 바닷속에서 산발이 된 머리와 새파란 눈.
“…….”
“…….”
곧바로 두 아이를 낚아챈 괴이가 기괴하게 헤엄을 쳐서 움직이고.
심해에서 그걸 바라보듯 검푸른 바다에 수많은 괴이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나온다.
[끄르르르르르-]
괴이들의 대장이 있는 것처럼 무언가 거대한 것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알 수 없는 거대한 것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하는 괴이들.
팔다리가 뒤엉키고 조합되면서 그것이 멀찍이 보면 이양선(異樣船)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뱃고동 대신 붙잡힌 아이들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유령선.
“…….”
“…….”
침을 꿀꺽이며 분위기를 살핀 지호가 어색하게 손을 펼쳤다.
“짜잔. 유령선.”
“…….”
“어어! 어디 가요…!”
모두 일제히 퇴장을 시작했다.
* * *
뉴블랙의 막내가 형들을 붙잡고 사정사정하고 있을 무렵.
오후 5시부터 <신이>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모두 같은 증상을 겪는 중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며 잠시 TV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는 화장실로 뛰어간다.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보던 이들은 그 상태로 화장실로 가서 재생을 이어 가고 있었다.
‘미쳤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특유의 두근거림.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가고 있었다.
매 회차마다 달라지는 역사적인 배경들과 그 속에서 멋진 해결책을 찾아가는 주인공.
“와…….”
게다가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매 회차마다 아름다운 배경들이 나오면서 절로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신령스러운 용이 휘감고 다니는 가야의 계곡.
화랑도들이 정체불명의 괴이를 찾기 위해 들어간 동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한반도 문화의 유적이 있고.
눈밭에서 고구려 장수와 주인공이 펼치는 일대일 전투는 그야말로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우와아아아…….”
신이의 매력 포인트는 간단했다.
무엇이든 해내는 만능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바꿔 나가는 것.
매 회차마다 새로운 도전과제가 생겨나고 그것을 훌륭히 해결한다.
현란한 화술로 분열된 화랑도를 하나로 결집시킨다든가.
나라를 잃은 고구려 장수의 원혼을 위로한다든가.
그렇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이한 선생님.]
중간중간 주인공이 몸담은 조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나오는데,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수록 시청자들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우주를 구했던 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였어?’
독립군 하나를 구했던 것이 미래의 정말 상상치 못한 멋진 사건으로 바뀌어서 돌아오고.
조직의 정체가 드러날 때는 전율까지 느껴졌다.
마지막 10화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에피소드의 끝을 마무리 지을 때는 여운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다.]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며 눈을 지그시 감는 주인공.
작중에서 처음으로 보여 주는 주인공의 미소와 함께 ‘신이 神異’라는 타이틀이 흘러나왔다.
감독과 작가, 주연 배우들의 엔딩 크레딧이 주르륵 나올 때.
꼬르르륵-
불현듯 허기를 느낀 넷플러스의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어?”
“어 뭐야.”
모두가 시계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시간은 공개 시간인 오후 5시.
그런데 지금은 새벽 3시가 되어 있었다.
‘출근 조졌다….’
한 편만 더 보고 자야지, 한 편만 더…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새벽 3시와 4시에 근접해 있었다.
‘머리 감았어야 됐는데. 아씨….’
‘아 눈 뻑뻑해. 인공눈물 어디 있지.’
‘후훗, 승리자는 백수인 나인가.’
저마다 뻑뻑한 눈을 감았다 뜨거나 샤워를 하러 가기 위해 수건을 챙기는 한편.
드라마가 끝나고도 사람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입이 근질근질하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흥분 때문인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미미하게 떨린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은 이미 시끌시끌했다.
[신이 다 봤다 ㅅㅍ]
이한씨 행복해서 다행이다ㅠㅠㅠㅠㅠ
재단 개쓰레기놈들
엔딩 여운 오져서 지금도 잠 못자고 있음
-여운 진짜 장난 아닌듯
-즌2 갑시다
-즌2 제발ㅠㅠㅠ
-이거 보고 다시 웹 드라마 정주행하면 여운 더 쩔음..
-진짜 지호야 누나가 운다
-무감정한 캐릭이라 그런지 가끔 감정 내비칠때마다 드라마덕후는 가슴이 찢어지고 행복한 것이에요
-이한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피눈물도 조금 흘리면 좋겠고.. 상처도 쪼금 나면 좋고.. 하지만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또 너무 행복한 건 안 돼고..
드라마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하는 분석들도 가득했다.
[이번에 신이를 보고 나서 웹드 보면 보이는 것들]
(대사 비교 모음.jpg)
과거 사건들이랑 신이한 대사랑 다 연결됨
-ㄹㅇ 복선인가
-이야기 진짜 잘 짜맞췄다고 생각했음
-자칫하면 웹드가 붕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결 기가막히게 잘했더라
-그저 빛
-배예진 작가 진짜 글 잘씀
-어느 쪽으로 먼저 보든 여운이 쩔음
정교한 연출이 호평을 받고 있었다.
특히나 신이의 웹 드라마를 보았던 이들에게는 기존의 떡밥들을 깔끔하게 다 회수한 것이 감탄스럽게 다가왔다.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
[다들 신이 최고 좋았던 편 뭐였음??]
-가야편
-가야편222 신령님 진짜 눈물버튼
-333 용 나오는 거 진짜 레전드
-용용아ㅠㅠㅠ
-나 이양선 생각보다 해피한 결말이라 좋았음. 애기들도 다 무사히 구출되고 결국 나쁜건 어른들이었음
가야의 수호신에 대한 회차가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독립군
-독립
-이건 진짜 독립군 편이 찢었음ㅋㅋㅋㅋ 나 별생각 없다가 독립군편 보고 저당잡힘
-진모ㅠㅠㅠㅠ
-진모씨
-독립군 에피가 진짜 젤 대박이긴 함
독립군을 연기한 선우주의 움짤이 벌써부터 커뮤니티에 가득 퍼지고 있었다.
보정이 들어간 움짤에 멋들어진 글씨체로 대사가 깔려 있는 짤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솔직히 선우주 올해의 형 이런 상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진모의 움짤.gif)
신이 초반부를 그야말로 하드캐리함
제 한몸바쳐 동생 드라마를 떡상시킴
-왕지호 우트코인 대성공
-???: 형이 복사가 된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진짜 우주 연기 대박이었어
-특출이라 다 합쳐 보면 5분? 그 정도 되는 거 같던데 존재감 대박이더라.. 나 지금도 여운쩌러
-진심 등장할 때 입 틀어막았다ㅋㅋㅋ
-진모씨ㅠㅠㅠㅠㅠ
-얼떨결에 현장에서 붙잡힌 선우주와 저런 각본을 현장에서 30분만에 만든 작가와 저걸 기가막히게 살린 왕지호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비하인드 알수록 미스터리한 에피임
<신이>의 드라마 팬이 된 이들이 주접을 떨고 있을 때.
“으허허허헛!”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드라마 팬들과 마찬가지로 <신이>가 업로드되자마자 전편을 정주행한 수플레들이었다.
‘잔칫날이로구나!’
과거 우주가 시트콤에 나왔을 때 수플레들이 가장 좋아했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유니폼이었다.
비행기 기장 옷을 입은 우주, 바리스타 옷을 입은 우주, 요원 복장을 입은 우주 등등.
[신이 속 지호 의상 모음]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앳되지만 정석적인 미남의 얼굴.
그런 미남이 다양한 사극 복장을 입고 있었다.
암살자처럼 방풍의를 걸치기도 하고, 화랑의 옷을 입기도 하고, 왕족이 입는 호사스러운 옷도 입고.
선비 옷도 입고.
안경에 모던한 양장도 입고…….
-제작진 여러분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큰절 받으세요
-화려하고 멋지고 예쁘고 아무튼 다한다ㅠㅠ
-내 기준 최근 사극 코디 중에서 제일 예쁨. 튀지 않고 예뻐
-매 회차마다 옷이랑 모자 바뀌는 거 좋더라ㅋㅋㅋ 눈호강하는 기분이었음
-레전드
최애의 다양한 의상과 미모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거기에 드라마 퀄리티까지.
‘좋구나!’
수플레들이 여기저기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르면서 반짝반짝 덕질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때.
다음 날.
사람들의 화젯거리는 모두 비슷했다.
“어제 지호 드라마 넷플러스 나왔는데 보셨어요? 이번에 넷플러스 최초 한국 드라마라던데.”
“그런 게 있어요?”
“진짜 재미있어요. 간만에 본 드라마 중에 제일 재미있던데.”
엘리베이터에서 타 부서 직장인들의 대화 소리에 귀가 쫑긋거리고.
“형 신이 봤어요? 미쳤던데.”
“재미있어?”
“진짜 드라마 미쳤어요.”
학식을 먹으면서 들려오는 주변 이야기에도 귀가 쫑긋쫑긋하고.
인터넷에도 어딜 가든 신이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넷플러스 ‘신이’, 역대급 호평에 비하인드 컷 공개
-[인터뷰] ‘신이’ 배예진 작가.. “시간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
-‘신이’ 배 작가, ‘지호 씨는 하늘이 내려 준 귀인.. 우주 씨? 우주에서 내려온 귀인..’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넷플 가입 안 했는데.’
‘그 정도로 재미가 있나…?’
‘아씨 결제해야 되나.’
딱히 외국 컨텐츠 등에 흥미가 없어서 결제를 하지 않고 있던 이들.
엄청 볼 만한 드라마가 있다는 이야기에 한국인들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한 달 무료니까.’
그리고.
그렇게 유입된 이들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재미있다!’
그런 이들이 주변에 다시 추천하면서 전국이 다단계 영업장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신이 진짜 꼭 봐.”
“좀 잔인해서 내 취향은 아닌데… 진짜 잘 만들긴 했더라. 무서운 거 잘 보면 괜찮아.”
“진짜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긴 해.”
완만한 상승 그래프를 그리다가 갑자기 팍 상승하기 시작하는 넷플러스 코리아의 성적표.
넷플러스의 직원들이 눈을 깜빡였다.
「한국의 가입자 숫자가…?」
런칭 이후로 큰 변동이 없었던 넷플러스의 가입자 수가 갑자기 수십만 명이나 늘었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
내부 시사회를 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한국에서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던 터였다.
뉴블랙 지호라는 이름값과 뛰어난 연기력.
거대한 자본.
뛰어난 각본이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가입자 증가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뉴블랙의 팬들이 매번 기업들에게 속삭이는 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뉴블랙은….’
‘…돈이 된다?’
아직은 한국에서 가장 크게 반응이 오고 있지만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가입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쪽에서 가입자 숫자가….」
「동아시아를 장악하고 있는 뉴블랙의 네임밸류가 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한류 가수 중에서도 가장 핫한 뉴블랙의 인기.
한국 드라마 최초의 넷플러스 컨텐츠.
그것이 지금까지 부진했던 아시아 국가들에게서 신규 가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베트남 등등.
입이 귀에 걸린 넷플러스의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즌 2 계약하자고 해.」
「조건은요?」
「원하는 게 무엇이든.」
* * *
같은 시각.
한 중년 남성이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흐음.”
무언가를 집중할 때 사람들 특유의 입.
하지만 그런 입가에 연신 미소가 가득 떠올라 있었다.
화면에 가득한 칭찬들 때문이었다.
[평론가 칼럼] 시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 <신이>를 통해 바라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곳에 가득한 왕지호의 연기력 칭찬.
어느 댓글창을 가든 간에 지호의 칭찬이 보였다.
-이번에 진짜 좋은 배우 하나를 발견한 듯
-충무로로 가자 지호야
-요찬아 보고 있니.. 너 우주는커녕 지호 발가락에 낀 때도 못이긴다
-킹찬이 잘지내니? 안보고 싶다
-지호 진짜 웹 드라마때부터 연기력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진짜 잘 만난 듯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ㄹㅇ
-시즌 2 가자 지호야
-시즌 3아님??
지호를 칭찬하는 포털 뉴스 댓글창을 바라보던 중년인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댓글을 달았다.
-누구 아들냄인지 몰라도 신수한번 훤하네~~ㅎㅎ 아버지 얼굴을 쏙 물려받았을듯합니다
곧바로 달리는 댓글들.
-지호 아버님..?
“이런!”
화들짝 놀란 왕현탁 회장이 댓글을 삭제했다.
덜덜 떨리는 손.
‘어떻게 알았지?’
네티즌들이 농담 삼아 ‘아버님이세요?’ 하는 건 줄 모르고 심장 떨려 하는 왕현탁 회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
“고 실장. 이거… 댓글 달고 그러면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나?”
“회장님께 이상한 댓글을 단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사정을 설명해 주자 비서실장이 웃으며 아니라고 말을 해 주었다.
“후우.”
자칫하면 아들의 커리어에 누가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한 왕현탁 회장이었다.
‘조심해서 살아야 해.’
업계 최대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호호치킨.
강남에 거대한 본사를 거느리고 있는 호호치킨의 오너가 멀찍이 청담동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레몬 엔터.
왕지호 [(사진)]
왕지호 [이제 아빠 건물보다 우리 건물이 더 높음ㅋㅋ]
아들내미의 괘씸한 문자가 떠올라서 순간 울컥했지만 마음을 다독이는 왕현탁 회장이었다.
그가 레몬 엔터 건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좋은 날이구만.”
아들이 배우로서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아 아버지로서 흡족했다.
가수로서 성공하는 뉴블랙도 좋았지만, 어릴 적부터 지호의 꿈은 배우이기도 했으니까.
“고 실장.”
“네. 회장님.”
“내가 왜 요즘 들어서 경영 방식을 바꿨는지 알고 있나?”
“아드님 때문 아닙니까?”
“맞아.”
아들의 인생에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 지호는 말이야. 내가…….”
“예.”
“노력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
“이놈의 자식이 인생을 그냥 대충대충 사는데. 내가 볼 때마다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는지 진짜 어우 씨…….”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킬 때마다 돈을 허공에 날려먹는 아들.
피아노 학원을 1년 보내면 대충 빼먹고 다니다가 바이엘 2권으로 끝나 버리는 식이었다.
“그래서 얘가 커서 뭘 하려나 싶었는데 연기 하나는 엄청 좋아하더라구? 열심히 하고.”
“그렇군요.”
“그래서 저걸 계속하게 만들어야 돼. 내가 무슨 사고라도 쳐서 지호가 백수가 된다고 쳐 봐.”
너무나 어두운 미래가 그려졌다.
“분명 잘생긴 얼굴 하나 가지고 평생 띵가띵가 놀면서 살게 될 거야.”
“…….”
“애가 성격이 좋아서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아? 잘못하면 평생 놀고먹는 팔자라니까.”
고 실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그냥 행복한 인생 아닌가?’
그러는 동안 왕현탁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가 실수를 해서 아들의 밥줄이 끊긴다면… 분명 지호는 인생을 띵가띵가 날로 먹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음험한 각오로 경영을 하고 있었다.
‘가맹점 관련해서 말이 안 나오게 해 주지. 후후후. 비율 보고 너희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휴가? 마음껏 써라. 너흰 우리 아들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착한 경영? 큭큭…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너희들은 내게 속고 있다.’
분명히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회장님! 우리 호호치킨이 이번에 업계 1위를 달성했답니다! 매출 1위래요!
가맹점이 더 늘어나더니.
-근무 시간을 줄인 결과 업무 생산성이 더….
-더?
-더 늘어 버렸는데요.
-어?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하고.
-회장님. 상 받으러 오랍니다.
갑자기 기업인 상을 주지를 않나.
요즘에는 참 이상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할 때였다.
“참, 회장님.”
“응?”
“이걸 전해 드리러 왔습니다.”
“……?”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BH에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BH라면….”
BH 치킨이 어디 치킨이지? 하고 있을 때.
비서실장이 내민 초청장에 봉황 한 쌍이 보인다.
[청와대 만찬 초청장]
모범 기업인 선정 : 왕현탁 회장
왕현탁 회장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디선가 아들내미와 뉴블랙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기분.
‘……어?’
어디서부터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지호의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