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86화
가끔 기분이 묘할 때가 있다.
비현실적이라고 해야 하나.
처음 데뷔하고 나서 우리 노래를 편의점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서 들었을 때처럼 묘한 기분.
이번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스칼렛 평양 공연 - 안 괜찮아 (Not Fine)]
미튜브에 올라온 스칼렛의 평양 공연 영상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세상에….
“내가 쓴 노래가 평양에 가 있네.”
무대 위에서 격하게 안무를 추고 있는 스칼렛과 문화 충격을 느낀 북한 사람들의 표정이 대비된다.
녀성이 어찌 저리 성난 춤을 추냐는 듯한 표정.
영상을 보던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하!”
“야! 웃지 마.”
맞은편에서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아라가 말했다.
“너희가 저기서 무대를 해 봤어야 못 웃지. 춤추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무표정이라니까.”
“끝날 때 박수만 쳐 주는 거 있지.”
그래도 표정이 밝은 걸 보니 재미있긴 했던 모양이다.
하기사 반응이 어쨌든 평양 공연이면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지.
리혁이가 호기심을 보였다.
“평양 관광은 어땠어요? 유적지 보고 왔어요?”
“그냥 시내? 그런 곳만 적당히 돌고 왔어. 자기네가 알아서 안내해 주던데.”
그러면서 선물을 건네주는 우리 회사 선배들이었다.
스칼렛의 메인댄서, 리나가 대형 액자를 가뿐히 들고 왔다.
“여기 선물.”
“중현아.”
아티스트 플로어인 6층 로비.
적당한 위치에 벽에 못을 박은 중현이가 스칼렛 멤버들에게 받은 액자를 걸었다.
다 같이 그 앞에 서서 감탄했다.
“와아아…….”
스칼렛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준 특별 선물이었다.
대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뷰에서 뉴블랙 미니미 인형들이 벤치에 사이좋게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사 분이 찍어 주신 거야. 진짜 잘 나왔지.”
“엄청 예쁜데요.”
최고의 선물이었다.
액자를 바라보면서 레몬 엔터의 가수들이 감탄을 하고 있을 때.
기우뚱-
액자가 삐뚜름하게 기울었다.
“중현아.”
“네.”
중현이가 액자를 조정하고는 다시 감탄했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기우뚱-
액자가 기울었다.
코끼리가 사육사에게 ‘도움!’ 하듯이 나를 바라보는 중현이의 눈망울에 내가 나섰다.
“이런 건 그냥 균형을 맞추면 되는 거야.”
“어떻게요?”
“중현아. 여기 봐봐. 이 부분에 균형을 맞춰서…….”
내가 액자 조정을 하면서 졸개들과 고기덕후들이 박수를 쳤다.
바른 위치에 자리 잡은 액자를 바라보면서 내가 미소를 지을 때였다.
기우뚱-
마치 액자가 삐뚜름한 자세로 나를 비웃는 듯한 느낌이었다.
“…….”
“…….”
비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전문가 분들이 걸어 주셔야 되나 봐요.”
“그, 그러게.”
기우뚱하게 걸린 액자는 따로 사람을 불러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스칼렛 멤버들까지 한 번씩 시도해 봤지만 기우뚱하게 기우는 액자는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수다나 떨었다.
평양냉면이 어땠고, 사람들이랑 말이 통하니 어떻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
“아!”
데이지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우리에게 물었다.
“그거 알아? 북한 사람들이 오빠들 알던데.”
“우리를?”
“뉴블랙이라고 하니까 알아듣는 눈치던데… 막 모른다고 하는데 아는 거 같은 거 있지.”
“……?”
대체 우리를 어떻게 아는 거지?
한국 가요 같은 걸 몰래 듣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은 있는데, 진짜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하니 신기하다.
인지도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인지도가 있다는 말에 동생들과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북한도 기다리는 뉴블랙의 컴백.”
“그렇다.”
“형들, 우리 능라 스타디움 콘서트를 하는 날까지 화이팅하도록 해요.”
지호의 말에 우리가 ‘할 수 있다!’ 하고, 스칼렛도 ‘대박 나자!’ 하면서 이번 앨범의 대박을 기원할 때.
중현이가 후훗 웃었다.
“진짜 이번 앨범은 느낌이…….”
바로 그때였다.
쾅!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히 유리에 금이 살짝 가 있을 뿐 멀쩡한 액자.
방금 전에 ‘이번 앨범은 느낌이…’ 라고 말했던 중현이에게 우리가 시선을 돌렸다.
“…….”
“…….”
중현이가 소심하게 말했다.
“저는…….”
“쉿.”
“아니 이게…….”
“쉿!”
우리 모두 손가락을 들어 올려 중현이의 입을 봉인했다.
그나저나.
…이번 컴백 괜찮은 거 맞겠지?
불현듯 무언가 범상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4월 가요계.
보통 봄을 맞이하여 본격적으로 봄 노래들이 나오고, 아이돌들의 컴백으로 각축전이 되는 시기.
더군다나 올해는 평창 올림픽이 2월에 있었기 때문에 3-4월이 어마어마하게 붐벼야 할 시기였다.
겨울철 발라드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시기니까.
그런데….
‘이번 달은 뭔가 휑하네.’
아이돌 팬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보통 이맘때쯤 되면 누가 컴백한다, 누구누구 있다 하는 소식이 들려와야 하는데.
4월 달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바닷속에서 거대한 상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자잘한 물고기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듯이.
소름 돋을 만큼 고요했다.
‘오는구나.’
아이돌 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창 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가수들이 미친 듯이 3월 초중순에 컴백 러시를 시도한 이유.
-뉴블랙, 컴백 프로모션 일정 공개.. 타이틀곡은 ‘백야 (Midnight Sun).’
논란이나 사건사고에 관한 뉴스도 아닌데도 댓글창의 댓글이 벌써 1000개를 돌파하고 있었다.
-응원합니다
-콘서트 티켓팅부터 장렬하게 실패한 1인.. ㅠㅠㅠ 뉴블이들 보고 싶었는데
-뉴블랙 내한공연 가고 싶었는데 아까비ㅠ
-뉴블랙 화이팅!! ^^*
-큰거 온다 ㄹㅇ
-왜 가요계가 조용한가 했더니 뉴블랙 컴백이었구나ㅋㅋㅋㅋㅋ
물론 대형가수가 컴백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른 가수들이 컴백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반드시 대형 가수가 있다고 해서 묻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엇비슷한 체급의 가수들이 있으면 ‘가요계 컴백대전’ 하는 기사에 그룹 이름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뭔 컴백 기사에 댓글이 1300개야.’
자연재해 수준의 화제성을 지닌 그룹이 오는 거라면 피하는 게 맞았다.
게다가 뉴블랙의 진짜 무서운 점.
그것은 바로 리스너가 팬들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헐, 뉴블랙 컴백한대.”
“진짜? 이번에는 한국어 노래인가?”
“대박이다. 이거 콘서트 예매는… 아 끝났네. 아씨, 저번에 돈 내고 팬덤 가입 해 놨는데…!”
머글들이 뉴블랙 컴백한대요!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상황.
뉴블랙 휘하 4천왕이라 불리는 스트릿 보이즈, 틴스피릿, 원더 차일드, 트릭스터의 팬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아이돌 팬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원탑 아이돌.
하지만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뭔 이런 최종보스가 다 있냐고…….’
절대 깰 수 없는 난이도의 최종보스 같았다.
국민 아이돌로 불리는 대중적인 인지도.
걸그룹 수준의 대중성과 보이그룹 팬덤의 결합.
빌보드 Hot 100 1위의 가수.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떠나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노래였다.
‘…또 이번에 무슨 곡을 들고 나오려고.’
작년도에 나온 도깨비와 Coin이 아직도 2018년 차트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는 상황.
이번에 타이틀이라는 <백야>는 또 얼마나 끝내주는 곡일지 두려웠다.
뉴블랙을 추격하는 2인자 포지션의 그룹 팬들이 그저 혀를 내두르고 있는 한편.
[힘내라 뉴블랙]
뉴블랙을 응원하는 다른 아이돌 팬들도 있었다.
-기계들과의 싸움에서 이겨라
-기계픽 vs 머글픽 ㄷㄱㄷㄱ
-인간계 대표 뉴블랙
-가라 뉴블랙.. 우리 아이돌팬들의 염원을 보여 줘
최근 들어 부흥하고 있는 이른바 ‘음원 사재기’라고 의심 받는 곡들에 대한 이슈 때문이었다.
[1위] 김하재 - 숙취
[2위] 스칼렛 - 안 괜찮아 (평양 Remix)
[3위] 차우현 - 그렇게 너의 사랑은 비가 된다 (드라마 별바람 OST)
아이돌 팬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김하재가 대체 누군데.’
스칼렛이 이번에 평양 공연에서 쓴 명곡 의 순한글 버전.
원탑 발라드 가수로 꼽히는 차우현의 드라마 OST.
그런 곡들을 뚫고 1위에 올라온 곡을 들으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곡이 나쁜 건 아니야.’
가사가 구구절절하고 찌질한 느낌이긴 한데 들을 만하다.
그 때문에 머글들도 잘 듣고 있는 노래였다.
문제는….
‘어떻게 올라온 거야?’
뭐. 자기 나름의 이유들은 다 있다.
어디서 이슈가 됐다, 어디서 나오면서 순위가 떡상했다… 그런 말을 하는데.
하지만 그런 노래가 세상에 한두 개던가.
유난히 몇몇 가수들의 노래가 최상위권 차트에 진입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물증도 없고 머글들도 별생각 없이 잘 듣고 있기 때문에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주변에다 이야기를 해 봐야 이런 반응.
-그거 음원 사재기 썰 돌던데.
-그래? 헐, 노래 좋던데 뭐 하러 그랬대?
응. 그렇구나 하고 마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아이돌 팬들은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자! 가서 박살 내라! 수플레들!
-갑자기 우리가…?
-너희라면 할 수 있어!
백만 대군의 수플레와 짭플레들, 머글들이 달려들어 박살 내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뉴블랙의 컴백에 대해 수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한편.
그런 관심에 대한 수플레들의 반응은….
“떼잉.”
미묘함이었다.
내 가수가 컴백한다는 거에 관심을 가져 줘서 좋기는 한데… 그에 대한 부작용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아니! 보자마자 눌렀다고!’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눌렀다고! 이 시키야!’
콘서트 예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분명 주경기장에서 3일.
4만 5천 명씩 3일을 해서 14만이나 되는 인원인데, 자리 하나를 구할 수가 없었다.
‘데이트는 다른 데 가서 하라고…!’
‘내 자리!’
‘아니, 어차피 광탈이었을 거 같긴 한데…….’
팬덤이 된 머글들까지 콘서트 티켓팅에 가세하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해졌다.
팬덤 가입하고 꼬박꼬박 회비를 내면 수플레가 맞긴 한데.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느낌이 있었다.
‘뭐. 그래도… 재미는 있다.’
머글들까지 덕질에 가세하면서 재미있는 일화들이 자꾸자꾸 생겨나는 수플레들이었다.
[지금 송편들 사이에 퍼지는 이선자 괴담]
대표적으로 이선자 괴담이 있었다.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에서 파생된 ‘이선좌’ 밈을 잘못 이해한 어르신 팬덤 송편에 퍼져 나가는 괴소문.
“다영아. 이선자라는 여자가 누구냐?”
“네?”
“아니, 자리만 고르려고 하면 그 여자가 다 채간다면서. 대한민국의 암표란 암표는 죄다 그 여자 손으로 들어간다고….”
“푸흡…!”
“그런 걸 왜 안 잡아가고 뭐 하는지 몰라.”
암표상 이선자에 대한 괴소문에 웃음을 터뜨리는 수플레들이었다.
SNS 등에 무시무시한 이선자 팬아트 등이 나오면서 여기저기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컴백이다!’
수플레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의 가수를 정말이지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컴백 프로모션 일정 공개와 함께 뉴블랙의 공식 계정에 올라온 멤버들의 인증샷.
@thenewblack.official
(입에 테이프를 붙인 중현과 멤버들이 손을 흔드는 움짤.gif)
오래 기다렸죠?
수플레들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오랜만이다ㅠㅠㅠㅠㅠㅠㅠ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의 컴백이야ㅠㅠㅠ
-진짜 설레서 뒤질 거 같ㅇ음
-얘들아ㅠㅠㅠㅠㅠ 진짜 오래 기다렸어
-진짜 행복하다
작년도에 메트로 등의 영어 음원이 나오긴 했지만, 한국어 곡은 작년 봄의 코인이 끝이었다.
이 얼마나 오랜만의 떡밥인가!
방방 뛰며 기뻐하는 수플레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짱돌에 맞아야 했다.
‘악!’
‘으악!’
‘뭐야! 왜 때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아이돌 팬들이 핏발 선 눈으로 그들에게 짱돌을 던져대고 있었다.
다른 때였다면 겁이 나서 그들 근처에도 안 왔던 이들이 마구 때려 대고 있었다.
-오랜만 같은 소리 하네!
회한이 맺혀 있는 K 아이돌 팬들이었다.
수플레들의 ‘오랜만이야ㅠㅠ’ 하는 글에서 시작된 간증글들.
-않이.. 우린 왜 걸그룹인데 군백기가 있는 거죠
-오랜만의 떡밥?????? 오랜만????????? 오랜만?????
-숯불들 이리 오세요 아 잠깐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허허 이 친구들이 5년 군백기를 한 번겪어 봐야
-자컨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올라온다고?? 멤버들이 SNS를.. 자주 한다고..?
그러면서 올라오는 글들.
[수플레들이 받아먹은 2018년의 떡밥들]
1월 : 우주 아버지 공연 / 선댄스영화제 넷플 다큐
2월 : 그래미 / 헤일리 블루 콜라보 음원 / 여보낚시 5회분☆(중요) / 평창 개폐회식 무대
3월 : 콜드브라운 콜라보 음원 / 우주 써바 출연 / 넷플 신이 / 뉴니버스 떡밥
저기 숯불 선생님들..??
그런 글을 읽던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우리가 맞아야겠다. 그냥’
‘좀 심했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짱돌을 맞으며 수플레들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면서 입가에 맺히는 미소.
‘기만 성공.’
내심 즐기고 있는 수플레들이었다.
* * *
컴백이 다가오고 있다.
프로모션 스케줄이 본격적으로 확정된 이후로 여기저기 기사가 나오고.
주변에서 앨범 대박을 기원한다는 메시지가 하루에 100개씩은 들어오고 있었다.
“화이팅.”
복도에서 마주치는 회사 직원들마다 주먹을 꼭 쥐어 보이며 ‘화이팅’ 하며 외쳐 주기도 하고.
모두가 우리의 컴백 준비를 위해 바쁘게 뛰고 있었다.
TF팀은 홍보 자료를 준비하고, A&R팀은 앨범과 관련된 이슈가 없는지 마무리로 확인하고.
“그래도 실감이 잘 안 나긴 했거든요.”
비주가 말했다.
“컴백을 진짜 하긴 하는 건가 싶었는데…….”
“나도.”
8월 이후로 오랜만의 컴백.
앨범 견본을 받아 들어도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이제야 실감이 조금 나는 거 같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
“와하…….”
양옆에 있는 동생들과 어깨동무를 했다.
다섯이서 어깨동무를 한 채 올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건물.
그곳에 붙은 오륜기.
88년 올림픽을 하기 위해 건설된 곳이자 국내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콘서트장.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역대 이곳에서 공연한 가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곳.
그야말로 모든 가수들이 한 번쯤 꿈속에서 그리는 콘서트장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었다.
리혁이마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눈이 촉촉하다.
“우리 진짜 여기까지 왔네요.”
“그러게.”
“연습생 때 주경기장 한 번씩은 다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진짜로… 와아아…….”
TNT가 최전성기일 때 2회 공연을 했던 게 최근 아이돌 역사에서는 마지막 공연.
주경기장 퍼포머 라인업에 [뉴블랙] 세 글자가 올라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여간 덕순덕순한 게 아니었다.
“드, 들어갈까?”
“들어가요.”
사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처음 오는 건 아니다.
합동 콘서트를 하기 위해 온 적이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단독으로 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경기장 내부 복도에 진입하자 반짝이는 얼굴이 우리를 맞이했다.
“왔구나.”
“네, 대표님.”
오늘 콘서트 준비 점검을 함께하기로 한 대표님이었다.
잠시 주경기장 복도를 둘러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주경기장이구나.”
“주경기장이네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대표님이 우리를 하나씩 안아 주면서 고생했다고 말하시는데, 오늘따라 감정이 요동치는 기분이다.
벌써부터 뿌엥 하려고 하는 막내를 달래 주면서 이동했다.
“확실히 둘러보니 크긴 크더구나.”
박규호 대표님이 인자하게 웃었다.
“대기실은 봤니? 그렇게 넓은 대기실은 처음 봤어. 거기서 안무 연습을 해도 되겠더라.”
“진짜요?”
“엄청 넓더라고.”
그 말대로 대기실이 어마어마한 사이즈였다.
농담 삼아 여기서 농구를 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큰데, 원래 뭐 하는 장소였을지 궁금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이번 콘서트를 맡아준 감독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테이블에 펼쳐지는 커다란 지도.
좌석 배치가 되어 있는 지도를 가리키던 감독님이 어떤 식으로 준비가 되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콘서트 준비 인원이 총 1200여 명 정도 될 겁니다.”
“흐어….”
“주경기장이니까요.”
대략적으로 콘서트 준비가 어떤 식으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한 후.
스탭들과 함께 실사를 나가기로 했다.
감독님과 스탭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대기실에서 대표님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씩 사용하거라.”
“감사합니다. 대표님.”
모자와 후드를 벗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알록달록한 털 뭉치들.
컴백을 앞두고 보통 아이돌들은 머리색을 감춘다.
팬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컴백 프로모션 할 때쯤 되어서 ‘짜잔!’ 하고 공개해야 김이 덜 새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는 한 번도 숨기지 못했다.
-나 뉴블랙 목격함
워낙 대중적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너무 쉽게 발각이 돼서.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어라 하는 마음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대표님이 아주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다.
-내 단골집에서 맞춰 준 가발이야.
박규호 대표님이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 주었다.
“요렇게… 요렇게 쓰면 된단다.”
“아하.”
가발을 뽀옥 하고 썼다가 벗을 때마다 훈남과 빛남 사이를 오가는 대표님.
그걸 따라 하며 우리가 가발을 착용했다.
“이 정도면 깜빡 속을 거 같은데?”
“와, 진짜 같다.”
“우리 되게 고전 미남 같지 않아요?”
우리와 대표님이 꺄르륵 웃었다.
* * *
그날.
[주경기장 목격담) 뉴블랙 이번 앨범 헤어로 추정되는 머리]
중년인의 가발을 쓴 뉴블랙 사진이 업로드 되면서 수플레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