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92화
첫 곡으로 불꽃놀이를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만큼 우리의 실력 변화를 보여 주기 좋은 곡이 없기 때문이었다.
불꽃놀이의 활동은 총 두 번.
14년도의 데뷔 당시에 활동 곡이었고, 16년에는 유명 예능 <미스터 프로듀서>를 통해 역주행하면서 다시 음악 방송에서 활동했다.
그러니 14년도, 16년도와 비교해서 18년도의 우리가 얼마나 기량이 올라왔는지 보여 줄 수 있는 곡이었다.
‘어때요. 우리 무대 더 잘하죠?’
조금 얄팍한 마음이지만 수플레들에게 그간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당신이 돈과 사랑으로 키운 가수.
열심히 소처럼 연습한다!
파아아아아앙-!
마지막 후렴을 팬들이 떼창으로 부르는 동안 불꽃이 연달아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화려한 불꽃놀이.
1층에 있는 수플레들이 응원봉을 흔드는 것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엽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열띤 분위기에서 데뷔 앨범의 수록곡도 같이 부른 후.
나와 동생들이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동안 막내가 먼저 외쳤다.
-안녕하세요오옷!
그에 답하듯 함성이 울려 퍼진다.
막내가 손가락으로 객석을 가리켰다.
-와. 이게 진짜 몇 명이야. 하나둘… 이거 1초에 한 명씩 세도 1시간은 걸리겠네요.
-1초에 한 명씩 세면 거의 12시간 걸려.
-와. 리혁이 형 말 들으셨죠? 여러분이 그렇게 대단한 분들이에요.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콘서트에 기분이 업 됐는지 수다를 떨려는 막내를 제지하며 내가 말했다.
-얘들아. 인사부터.
-아. 맞다.
-오늘은 지호가 먼저 말을 시작했으니까 막내부터 시작하자.
지호가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블랙의 귀염둥이 막내에서 이번에 멋진 남자로 성장….
웃음이 터졌다.
-…성장하고 싶은 왕지호입니다! 반가워요!
우리 막내 오늘 엄청 신났네.
사실 막내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리혁이도 엄청 들뜬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중현이도 막 자리에서 꿈틀꿈틀하는 기세였다.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와…….”
우리가 인사할 때마다 응원봉이 각자의 상징색으로 물결쳤으니까.
중현이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와. 저 잔디밭에 온 거 같아서 너무 좋아요. 초록색 최고.
중현이가 초록빛으로 물든 객석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비주가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황금빛으로 물결치던 객석이 이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우주입니다.”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우리 주경기장은 처음이죠?”
-네에에에에!
“사실 주경기장이 엄청 크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어요. 리허설을 며칠 정도 하다 보니 공연장이 눈에 익기도 하고, 또 텅 빈 공연장은 사실 그리 커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모든 곳이 사람으로 빼곡 들어차 있었다.
거대한 스타디움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와 수플레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오니까 엄청 커 보이네요. 진짜 믿기 힘들 만큼 멋진 광경인데… 드론 샷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하늘에 떠 있는 드론이 주경기장의 전경을 담으면서 수플레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멀찍이 한강이 보이는 올림픽 주경기장.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러분이 진짜 이 자리에서 보셔야 돼요. 여러분이 얼마나 지금 멋진지…….”
누군가 ‘네가 더 멋져!’ 하고 괴성을 지르면서 웃음이 흘렀다.
내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돌출 무대로 걸어 나왔다.
“작년 상암 콘서트 이후로 다시 만나죠? 혹시 작년처럼 헤일리 블루나 글렌 데이비스 선생님,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출연하는 걸 기대하고 오신 분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어멋 할 때.
“그분들은 오지 않습니다.”
혹시나 이번에도 ‘어마어마한 게스트?!’ 하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미리 얘기를 했다.
또 다른 기대감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늘 공연에도 특별한 게스트 분들을 모실 예정이니까요.”
-기대 부탁드립니다!
-진짜 어마어마한 분들이 오시거든요!
그런 말을 하면서 주경기장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도, 수플레들도 그리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 주제였다.
‘주경기장이다.’
‘그렇다.’
주경기장에 대한 소감을 비롯해 공연 시작을 앞두고 하고 싶은 말을 한 후.
“작년도 고척돔에서 의 월드 투어를 시작했듯이 오늘부로 의 월드 투어가 시작되는데요. 오늘 첫 번째 콘서트에는 그야말로 멋진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데뷔 앨범부터 시작해서 시간대 순서대로 가는 콘서트.
공연에 대한 개요를 대략적으로 설명하고는 수플레들에게 물었다.
“그러니 긴 말은 필요 없겠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게 놀고 갑시다. 오늘.”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 * *
수플레들이 함성을 터뜨리며 방방 뛰었다.
‘오늘 콘서트 미쳤다. 진짜.’
‘와…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좋아.’
그야말로 무대 구성이 미쳤다고 할 만한 콘서트였다.
작년도의 앵콜 콘서트가 2017년의 뉴블랙의 행적을 재현했다면, 이번에는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장소원입니다!]
장소원이 등장해서 14년도를 휩쓸었던 을 서리혁과 함께 듀엣으로 부르고.
어린 시절의 그리움을 담은 <밤바다>가 우주와 리혁의 근사한 하모니로 귀를 적셔 준다.
[여러분. 이번에는 제가 주인공인 노래예요. 저희 형들보다 더 큰 함성 부탁드려요.]
막내의 질투심에 수플레들이 웃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혁이 형의 성량은 이겨 주세요. 형들이 저 연습할 때마다 함성 지르는 것보다 더 크게 질러 주세요.]
수플레들이 아 했다.
‘형들보다 목소리 크게 해 달라는 거였어?’
곧이어 벌어진 리혁과 관객의 애국가 대결이 서리혁의 완승으로 끝났다.
[후후후. 여러분. 그거밖에 안 되나요?]
‘치사하다.’
‘지는 프로가 아마추어 농락해 놓고….’
‘가수가 일반인 상대로 치사하게 증말.‘
서리혁과 보컬 졸개들이 좋다며 깔깔 웃은 후.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 신인상을 받았던 당시 레전드 무대가 똑같은 의상으로 나왔다.
가면을 벗는 의 안무를 따라 하며 수플레들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지호야!’
‘우리 지호 어른이다. 어린이에서 어른이가 됐다!’
‘좋구나!’
당시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치명적인 척을 하기 힘들었던 막내가 섹시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릴 때마다 표정이 바뀌는 막내의 연기에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댄서 분들 고생 많으셨어요.]
[비주야. 한 분씩 안아 드려라.]
비주와 함께 <바람꽃>의 3절 안무를 같이 췄던 댄서들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에 까지.
비주가 주인공이었던 당시 앨범의 수록곡들이 나오면서 수플레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눈호강이로구나.’
‘춤이 진짜 어떻게 저렇게 예쁘지?’
특히나 비주가 독특한 의상을 입고 펼친 독무대가 인상 깊었다.
의상에 하늘하늘한 끈이 달려 있어서 비주가 빙글 돌거나, 손을 털 때마다 같이 끈이 나풀거렸다.
꼭 마치 새하얗고 조그만 나비들이 비주 주변을 빙글 돌아다니는 것처럼.
‘저래서 Flower Dance구나. 꽃이랑 나비들이 춤을 추네.’
꽃이 춤을 춘다는 인상을 주는, 정말 봄에 어울리는 무대였다.
바람꽃의 무대가 끝난 뒤에는 곧이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이 나왔다.
‘나인은 진심 미친 곡이다. 15년도 곡이 지금도 최신 곡 같네.’
‘언제 촌스러워지지. 이 곡.’
금방금방 달라지는 트렌드 속에서도 여전히 최신곡 같은 비트를 보여 주는 나인이었다.
당시 뉴블랙을 최정상으로 가게 해 준 곡.
중현이 중심이었던 앨범답게….
[안녕하세요. 스윗 포테이토입니다.]
최근 차트에서 잘나가고 있는 신흥 래퍼 스윗 포테이토의 무대도 잠시 이어졌다.
그런 무대에 수플레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는 동안, 일반인들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수플레였나?’
호감을 가진 일반인이라 하여 일명 호일.
호일인 줄 알았는데 자신이 수플레였다는 것을 깨달은 일반인들이었다.
‘노래 다 아네.’
리혁의 선명한 목소리가 부르는 <겨울잠>을 따라 부르고.
한복을 입은 우주가 부채를 휘두르며 고운 미모를 선보이는 <낙화>도 같이 흥얼거리고 있다.
뉴블랙의 곡 중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조금 부족한 도 마찬가지였다.
‘종을 울려라… 어. 뭐야. 나 가사 알고 있네.’
검은 제복을 입은 멤버들이 박자에 맞춰 정확히 발을 구를 때마다 음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정말 ‘이거 뉴블랙 곡이었어?’ 하는 곡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니 최신 곡인 작년의 <도깨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비 가비 돗가비 오도까비!”
“가비 가비!”
여기에 비트코인 열풍으로 다시 역주행을 하기 시작한 까지.
불꽃놀이부터 이어진 시간대 순의 노래를 듣는 내내 일반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뉴블랙은 언제나 곁에 있었구나.’
그림자 속에 은신해 있던 중현이가 뒤에서 ‘안뇽…’ 하고 속삭이는 듯한 깨달음.
길에서 자주 듣거나 흥얼거렸던 노래들이 전부 다 뉴블랙 노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이었다.
‘난… 뭐지?’
뉴블랙의 예능을 즐겨보고, 음악을 즐겨듣고, 이제는 콘서트까지 와서 같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어…?”
“응?”
머글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고 있는 한편.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은 뉴블랙이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간 동안 특별 무대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좋은 밤입니다! 다들 안녕들은 하신지요! 저 노재현이가 이곳에 왔습니다!]
자리에 있던 중노년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든 원로 가수가 등장하면서 수플레들이 눈을 크게 떴다.
‘명곡단 인맥 미쳤다.’
15년도 PBS 명곡단의 인맥들이 게스트 무대를 해 주고 있었다.
노재현뿐만이 아니었다.
[차우현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꼽히는 인물.
혼자서도 체조경기장을 채우는 가수가 찾아와 게스트 공연을 해 주고 있었다.
관객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게스트 라인업이…….’
보통 아이돌 콘서트에는 게스트가 잘 나오지 않는다.
팬들이 아이돌을 보러 왔지, 다른 가수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예외였다.
‘내가 노재현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할머니들 사이에서 ‘노재현이가 콘서트를 하면 가야 되는데…’ 할 만큼 무대 잘하기로 소문난 원로 가수.
그리고 차우현은….
‘차우현 콘서트도 티켓팅 진짜 빡센데.’
커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콘서트 랭킹 1위에 꼽히는 게 바로 차우현의 콘서트였다.
감미로운 발라드를 들으며 수플레들이 감탄할 때.
게스트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가수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견성화입니다!]
명곡단에서 인연을 맺은 가수들 사이로 톡 튀어나온 트로트의 여왕.
그걸 보면서 수플레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명곡단 인맥이 아니었다!’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이 라인업.
이들의 정체는 바로 평창 폐회식에서 뉴블랙과 피날레를 장식했던 가수들이었다.
곧바로 무대에서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은 뉴블랙이 걸어 나왔다.
검은 정장에 흰 와이셔츠 차림.
‘평창 올림픽 폐회식 피날레다!’
당시 EDM으로 끝났던 그 엔딩 무대가 다시 한번 재현되면서 현장의 함성이 폭발했다.
수플레들과 머글들이 주먹을 쥐었다.
‘그래! 올림픽 무대가 다시 나올 줄 알았어!’
‘후우! 놓쳐서 아쉬웠는데 역시…!’
기다리면 다 나오는 뉴블랙 콘서트였다.
EDM으로 바뀐 노재현의 노래에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찌나 가수들 체력이 좋은지 관객들이 먼저 지칠 정도였다.
“헉… 헉…….”
“하이구야… 헤엑…….”
오늘 몇 번이나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무대를 내려가는 선배 가수들에게 뉴블랙이 꾸벅 인사하며 배웅을 하는 동안 수플레들이 다시 객석에 앉을 때였다.
갑자기 뉴블랙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메트로다!’
‘아니 또 일어나야 되네. 이건 일어나야 해.’
퓨처 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는 뉴블랙의 첫 영어 곡이 나오면서 수플레들이 달봉이를 흔들었다.
검은 넥타이에 하얀 셔츠는 진리 아니던가!
신명나게 춤을 춘 수플레들이 헉헉대며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이어지는 무대 때는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콜드 브라운 대신 중현이 우주와 무대를 마친 후.
이어지는 VCR에 팬들이 광선검을 움켜쥐듯 응원봉으로 봉산탈춤을 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신곡 <백야>의 무대를 감상할 시간이었다.
* * *
스크린에 흘러나오는 VCR.
각기 다양한 인물들이 만화 컷처럼 나뉘어 나오는 VCR에 수플레들이 쉰 목소리로 환호했다.
“샤아아아아아…!”
“스아아아아아!”
5만 명의 도라에몽이 환호성을 내지를 때.
무대의 조명이 번쩍번쩍이고.
펑크 락 사운드가 담긴 기타 리프가 흘러나오면서 수플레들이 내적으로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왠지 모르게 오토바이가 부릉부릉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느낌.
빌런 컨셉의 의상을 입은 뉴블랙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기타 리프가 끝나면서 붉게 물드는 무대.
백금발로 머리를 물들인 비주가 마이크를 들면서 나른하게 걸어 나왔다.
안녕, 나야
넌 오늘도 내가 안 보이듯
눈을 감고 있지
누군가를 유혹하듯 비주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자신을 보라는 듯, 손가락을 들어 관객들을 가리킨 비주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뒤로 스윽 물러났다.
그 뒤에 일렬로 모인 멤버들이 흩어지면서 마이크는 우주에게 넘어갔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따가운 햇살에 괴롭지
불면으로 고통 받는 이에게 내게 넘어오라는 듯 유혹하는 미남.
너도 알잖아
이 백야는 끝나지 않는걸
한 발짝씩 걸어오면서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우주와 백업 안무를 서 주는 멤버들.
조명의 사선에 몸을 걸친 멤버들 속에서 중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녹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어두워지는 조명 속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어둠이 필요할 때가 있지
지금처럼
밤은 휴식의 시간이야
두려워 마
실패하더라도
다치더라도
눈을 감았다 뜨면
상처는 아물어 있을 거야
주인공이 무찔러도 항상 재등장하는 빌런처럼.
중현의 뒤에 서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 이리 등장했다, 저리 등장하듯이 안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랩이 이어지면서 곡의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불면증에 대한 곡.’
불면증에 걸린 자신들에게 말을 해 주는 듯한 노래였다.
뉴블랙 멤버들의 속마음이 어떤지는 수플레들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짐작이 되는 것들은 있었다.
계속되는 영광의 시간.
성과에 대한 압박.
환한 빛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뉴블랙의 세계에는 밤에도 해가 뜨는 낮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나는 곡 사이로 귓가에 들어오는 가사들을 들을 때.
중현의 랩이 끝나면서 지호가 중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감미롭게 물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안녕, 나야
중의적으로 해석되는 가사였다.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자신이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거울 속에 있는 인물이 잠 못 이루는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분위기.
지호와 리혁이 서로의 팔이 얽혀드는 듯한 안무를 선보이며 노래를 교차해서 부르고 있었다.
낮만 있는 건 지루해
우리만의 밤을 만들어 볼까
조금은 자유롭게
조금은 감미롭게
서서히 고음으로 바뀌면서 후렴으로 넘어갈 때.
미끄러져 들어온 우주가 총을 쏘듯 한 손을 뻗으며 노래했다.
Cause You’re a villain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밤은 우리의 시간이야
한데 모인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총을 쏘는 듯한 안무를 보였다.
마치 태양에 총을 쏴서 태양을 떨어뜨리고 어두컴컴한 밤의 시간을 만들어 내듯이.
락 사운드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모두가 함성을 터뜨렸다.
뮤비 내용과 연관 지어서 멤버들이 하고 싶은 말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비슷한 반응이었다.
‘애들 너무 예쁘다.’
예쁘게 핑크로 염색한 우주가 저 세상 미모를 뽐내고, 짙은 흑발로 물들인 지호가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데 무엇이 중요하랴.
인어공주처럼 빨간 머리로 염색한 리혁의 눈가에 그려진 별을 보면서 극락을 느끼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난당!’
흥이 차올랐다.
2000년대 초반에 흥했던 팝 펑크를 2018년 버전으로 다시 부르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도시의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닐 것 같은 분위기의 곡.
3절 파트에 이르러 돌출 무대로 나온 멤버들이 방방 뛰면서 관객들도 같이 뛰었다.
신이 나서 무대를 돌아다니던 지호가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내밀고, 중현과 비주가 서로를 향해 노래를 부르고.
우주와 리혁의 고음이 더해지면서 관객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Cause We’re villains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밤은 우리의 시간이야
색색의 조명이 개성적으로 물결치는 무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후렴구가 이어지는 동안 수플레들도 목이 쉬어라 따라 부르며 객석에서 뛰었다.
빌런이 주인공에게 인사하듯이 손을 흔드는 뉴블랙으로 마무리되는 무대.
“와아아아아아아-!”
무대가 암전된 뒤에도 흥이 식지 않은 팬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얼마 후 다시 조명이 켜지면서 멤버들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쳤다.
땀에 흠뻑 젖어서 겉옷을 대충 벗은 멤버들이 생수병을 들어 목을 축이고 있었다.
우주가 씩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어떠셨어요, 백야?]
다양한 반응들이 들려오는 동안 우주가 말했다.
[마음에 들어요?]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 이번 콘서트의 진행 순서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 이유 중에 <백야>를 조금 더 잘 보여 드리고 싶은 이유도 있었어요. 앨범이라는 건 그 시기의 스냅샷 같은 거거든요.]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순서를 이렇게 배치했는지 알겠다.’
뉴블랙이 지금까지 앨범으로 보여 주고자 하는 것들이 차례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 시기에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사진처럼 담은 것이 바로 앨범.
멤버들이 이번 앨범에 얽힌 비하인드를 밝혔다.
부담감으로 인해 잠이 안 오던 시기에 자신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었다는 이야기였다.
[각자 부담을 가진 것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뭐 어때, 만화 속 악당들처럼 고꾸라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시도하면 되지.]
[이렇게 말한다고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 무대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지자! 그런 생각이에요.]
왜 빌런이라는 컨셉을 택한 것인지 의문이 풀렸다.
만화에서 항상 주인공에게 패배하지만, 그럼에도 의지가 꺾이지 않고 재도전하는 것이 빌런 아니던가.
자신들을 제약하는 환경이나 실패에 굴하지 않는 특성.
세계정복의 꿈이 좌초되더라도 ‘이제 다 끝났어’ 하며 좌절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가 보자’ 하며 색다른 시도를 하는 이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빌런을 고른 듯했다.
[비하인드 재미있죠?]
아이돌이면서도 싱어송라이터라서 그런지 비하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도 재미있었다.
그런 식으로 이번 앨범에 대한 소개가 나온 후.
멤버들이 숨을 고르러 내려가는 동안, 재킷을 벗은 우주가 조금 편한 차림으로 무대에 섰다.
[우리 동생들이 쉬러 갈 동안 저는 여러분께 곡을 하나 들려 드리려고 해요.]
그들의 가수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국어로 하면 자장가라는 뜻이 되겠네요. 바로 Lullaby라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