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97화
잉어에게 얻어맞으면서 리혁은 분했다.
‘내가 잉어한테 지다니!’
야생동물과 현대인이 싸우면 대체로 현대인이 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건 잉어 아닌가!
팔뚝 크기밖에 안 되는 잉어에게 맞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멀찍이서 웃으며 지켜보던 이들이 수군거렸다.
“자기야! 그냥 포기하고 나와! 보니까 낚시 바늘도 풀린 거 같네.”
“와. 잉어도 분노조절장애가 있네.”
“중현이 형을 데리고 와 봐야 돼요. 그래도 분노가 조절이 안 되면 진짜 아닐까여?”
“리혁아. 그냥 돌아와.”
하지만 리혁은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잉어한테 진 메인보컬.jpg 같은 게 수십 장 올라오고 말 거야.’
져도 웃음거리.
이겨도 웃음거리.
틴스피릿한테 매번 듣는 명언이 하나 있었다.
-이겨도 등신, 져도 등신이라면 이기는 등신이 된다!
잉어에게 이긴 메인보컬.jpg 이 되기 위해 리혁이 팔을 뻗어 잉어를 붙잡으려고 했다.
바로 회피 기술을 사용하는 잉어.
출연진이 감탄했다.
“피했다!”
“손보다 잉어의 눈이 더 빨랐던 거지.”
이쯤 되니 제작진과 출연진들도 흥미진진한 얼굴이 되어 UFC 경기를 보듯 지켜보았다.
[서리혁 vs 잉어]
확성기를 든 이준희 피디가 외쳤다.
“여러분! 리혁 씨를 응원해 줍시다!”
“서리혁!”
“서리혁!”
스탭들이 서리혁을 연호하면서 리혁의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한편.
이준희 피디의 눈이 기쁨으로 떨렸다.
‘분량이다!’
예능 피디를 하다 보면 그런 직감이 들 때가 있다.
이건 1시간 찍어서 1분 나가겠다 싶은 부분이 있고, 이건 찍는 대로 다 분량이 나가겠다 싶은 느낌.
중현이 상어를 낚았던 그때가 데자뷰처럼 오버랩됐다.
자연스럽게 어떤 자막과 BGM, CG 등을 이용해서 편집할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붙… 붙잡았다!”
리혁이 성난 잉어를 붙잡는 그 순간!
띠용!
로켓처럼 치솟은 잉어가 지느러미로 리혁의 뺨을 때렸다.
“아야!”
이준희 피디의 눈에 깔리는 자막.
『적의 잉어킹은 튀어 오르기를 사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찰싹 하는 효과음과 함께 리혁의 Hp가 줄어드는 그래픽이 그려지는 듯했다.
리혁 ♂: Lv.21
Hp [25/25] → [17/25]
지느러미로 뺨을 얻어맞은 리혁이 울분의 비명을 지르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왜 안 잡히는 거야!”
그 사이 카메라를 향해 빙긋 웃어 주는 지호.
“여러분은 지금 고품격 낚시 방송 <여보, 낚시 좀 다녀올게>를 보고 계십니다.”
“리혁이에게 배운 역사가 떠오르네요. 선사시대에 저런 원시적인 낚시를 했다고 들었어요.”
비주와 지호가 놀리는 동안 리혁 주변을 빙글 돌던 잉어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지호가 팝콘을 먹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 보스몹 2페이즈가 시작됐어요!”
다양한 패턴으로 리혁에게 콩! 콩! 하고 머리를 박는 잉어.
하지만 지쳤는지 잉어의 움직임이 놀랄 만큼 둔화되고 있었다.
‘오!’
출연진이 눈을 크게 떴다.
‘저러면 잡을 수 있을지도?’
힘에 부친 잉어가 마지막 필살기를 보여 주듯 리혁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응수하는 리혁.
하지만 미끌미끌한 바닥에 다시 풍덩하고 넘어진 리혁 때문에 잉어의 필살기가 빗나갔다.
잉어가 돌에 머리를 박았다.
“……잉어가 기절했는데?”
“이야. 돌이 이겼네.”
둥둥 떠오르는 잉어.
“…….”
“…….”
모두가 리혁을 바라보았다.
세상 허탈한 표정으로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모습.
“크흡.”
콧소리로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다들 시선을 돌릴 때, 리혁이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트로트 가수 백상교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 마리 잡긴 잡은 거니까. 저 정도로 고생을 했으면 한 마리 잡은 걸로 쳐 줘야지.”
“그죠.”
“리혁아! 고생했다!”
제작진이 꽃을 흔들었다.
“서리혁! 서리혁!”
“우유빛깔 서리혁!”
허탈해하면서도 제작진의 응원에 손을 흔들어 주는 리혁이었다.
휘적휘적 물을 가르고 걸어가던 리혁이 잉어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할 때였다.
“음?”
갑자기 무언가 시커먼 것이 번쩍 하고 튀어나왔다
덥석!
기절한 잉어를 입에 물고 유유히 사라지는 무언가.
카메라 감독이 오우 하며 말했다.
“가물치인데?”
“가물치…….”
다들 어머 하며 감탄하는 동안 모두가 서리혁을 바라보았다.
물에 젖은 귀여운 생쥐 같은 모습으로 파들파들 떨고 있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금세 웃음이 터졌다.
“흐하하하하!”
“웃지 마요!”
“흐하핫!”
“으으으으….”
예능 분량을 빼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리혁이 통곡했다.
“으아아아아아아!”
구슬피 우는 소리가 호수를 뒤흔들었다.
* * *
보글보글.
기포가 일어나고 있는 호수 속.
옴냠냠.
어디선가 둥둥 떠오른 먹이를 손쉽게 낚아챈 가물치가 잉어를 옴냠냠 하고 있는 한편.
호수에서 유유자적 돌아다니던 물고기들이 화들짝 놀랐다.
‘?’
물고기의 청각은 대체로 뛰어나다.
공기보다 소리가 5배 빨리 전파되는 물속에서 물고기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간파했다.
-으아아아아악!
음파로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포식자의 존재감 어필.
물고기들이 호수변 쪽에서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 * *
물에 빠졌다가 올라온 리혁이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백상교가 허허 웃었다.
“리혁아. 낚시라는 게 원래 별일이 다 있는 거야. 나도 소싯적에 물속에서 물고기랑 드잡이한 적이 있었지. 핫핫핫!”
“자기 너무 귀엽더라.”
오현숙을 비롯해 출연진들이 건네는 칭찬에 ‘감사합니다…’ 하면서 슬픈 미소를 짓는 리혁이었다.
예능인 강만호가 말했다.
“그래도 리혁이 덕분에 분량 15분은 건진 것 같은데. 뭐 아무 사건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감사합니다.”
“잘했어.”
시무룩한 리혁을 격려해 주는 분위기.
비주도 자상하게 리혁의 머리를 휴대용 드라이기로 말려 주면서 말했다.
“잘했어. 리혁아. 우주 형이랑 중현이는 그런 분량 못 뽑았을 거야.”
시무룩하게 머리를 맡기던 리혁이 고개를 들어 형을 올려다보았다.
“그죠? 둘은 이런 거 못 뽑았겠죠?”
“응. 잡았을 테니까.”
“…….”
“그… 어, 사실 그렇게 못 잡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어, 어…!”
“그냥 머리 말려 주세요. 형…….”
말을 하다가 수렁에 빠진 비주가 리혁의 머리를 북슬북슬하게 말려 줄 때.
가까이 다가온 지호가 리혁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잡아주려는 건가 싶어 손을 잡으려던 리혁에게 지호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지금부터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에요. 형 지금 물 냄새 나요.”
“…….”
“흐핫! 너무 재미있다. 맨날 머리 한 번 안 감았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자기 침대에 드러눕지 말라 그러고.”
복수의 시간이라며 치졸하게 구는 막내에게 리혁이 와락 달려들어 몸을 비볐다.
“헤헷. 저는 평생 막내로 살아와서 포옹 좋아하지롱.”
귓가에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리혁이 바로 물러났다.
‘에잇!’
분하고 슬프고 외롭고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싶고.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분량은 건졌다.’
존엄성을 제물로 바쳐 분량을 소환했다.
흑역사로 핫가이가 된 맏형이 떠오른다.
-자존심을 버리면 시청률이 오른다. 하지만 존엄성을 버리면 시청률이 팡팡 터진다 이 말이야! 꺄르르륵!
이 상황에 적절한 말이었다.
그리고.
분량 외에도 제법 마음에 드는 반응들이 나왔으니까.
“와아…….”
“리혁 씨, 너무 예뻐요!”
“와, 진짜 예쁘고 참하다.”
물에 젖어서 메이크업이 조금 지워지고 헤어스타일이 조금 차분하게 변한 상태.
스탭들이 건네주는 칭찬에 리혁이 수면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참하고 청순해 보인다는 반응에 기분이 내심 좋았다.
단점이라면….
‘에잉!’
메이크업이 조금 지워져서 얼굴이 벌건 게 드러난다는 사실이었다.
“서리혁! 서리혁!”
“와아아아아!”
홍조가 드는 리혁을 바라보면서 스탭들이 너무 귀엽다고 좋아할 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막내가 일어나 수면으로 다가갔다.
비주가 물었다.
“왜 그래?”
“어떤 식으로 물에 빠져야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일지 고민 중이에요.”
손가락으로 물을 콕 찔러서 수온을 체크하는 막내.
칭찬받는 형을 부러워하는 모습에 비주가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낚싯대에 시선을 돌렸다.
‘재미있다.’
한가롭게 동생들과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도 너무 재미있다.
우주 형이랑 김중현까지 같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으면 잡는 대로, 못 잡으면 못 잡는 대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래서 우주 형이 낚시가 좋았다고 한 건가?’
비주가 다른 출연진에게 말했다.
“이게 낚시의 묘미인가 봐요.”
“응?”
하품을 하고 있던 오현숙에게 비주가 말했다.
“안 잡아도 재미가 있는 그런 느낌 같아요. 우주 형이 낚시는 안 잡아도 재미있다고 했는데 이런 걸 두고 말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 말에 출연진들이 웃었다.
“우주가 그랬어? 여기서 엄청 고통 받고 갔는데.”
“그건 못 낚는 낚시꾼들이 하는 말이야. 골 안 넣어도 재미있는 스포츠 같은 게 있겠니.”
“그런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비주야.”
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재미있는데?’
사람들이랑 시간을 때우면서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는,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재미있기만 한데 다들 왜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건지.
물고기가 안 잡힌다면서 왜 선생님들이 노발대발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는 비주였다.
처음 1시간까지는.
“…….”
“…….”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2시간 30분쯤에 도달했을 때 서서히 마음속에 있는 선량한 자아가 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비주가 말했다.
“어떻게 한 마리도 안 잡힐 수가 있죠? 아까까지만 해도 물고기들이 엄청 돌아다녔는데…….”
근처에 앉아 있는 출연진들도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진짜 어떻게 한 마리도 안 낚일 수가 있지?”
“이 피디! 이거 포인트 제대로 고른 건 맞아? 어떻게 된 게 물고기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가 않어!”
“이거 리혁이가 아까 소리 질러서 그런 거 아니야? 물고기 다 놀라서 도망친 거 같은데.”
예능인 강만호의 말에 리혁이 흠칫하며 모른 척하는 가운데.
2시간 반 동안 아무 물고기도 낚지 못하면서 비리호의 입가에 넋이 나간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하하…….”
“하하….”
왜 우주와 중현이 영상통화에서 그토록 눈에 핏발이 서고 그랬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성취 지향형 인간의 최고봉이라 꼽히는 뉴블랙.
무엇이든 노력해서 얻어 내고야 마는 뉴블랙 멤버들에게 낚시가 도전장을 내미는 분위기였다.
주변에서 낚시 로봇을 점검하는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에게 리혁이 다가갔다.
“저기.”
“네.”
“혹시 소나 같은 거 없나요? 수중 탐지할 수 있는 거라든가.”
“엇… 없는데요.”
리혁이 첨단 과학 기술을 찾거나 낚시 이론 서적을 바라보면서 눈에 광기를 띠고.
캐스팅이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던 비주가 요란한 춤을 추듯이 빙글빙글 돌며 낚싯대를 던지고.
지호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며 앞으로 형들의 말을 잘 듣겠다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 잡힌다!’
울상이 되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성취 지향형 아이돌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백상교가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아아~ 나를 몰라 주는 야속한 당신~~ 얘들아. 낚시가 이런 거야.”
“이거 포인트 이동해야겠는데.”
포인트를 이동하겠다는 말에 삼블랙이 손을 들었다.
“10분만!”
“딱 10분만 더할게요!”
어복은 하늘이 점지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삼블랙.
‘여기서 이동하면 지는 거 같아!’
괜히 패배하고 지는 것 같은 느낌.
승부욕이 발동해서 낚싯대를 요리조리 흔들어 대거나 풍어제를 지내는 청년들을 보며 낚시꾼들이 웃었다.
바로 그때.
“이런 상황을 예견한 영상 메시지가 하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준희 피디가 태블릿으로 영상 메시지를 하나 재생해 주었다.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우주와 중현.
[얘들아. 안녕.]
낚시에 지친 그들에게 자상하게 손을 흔드는 맏형과 중현.
[낚시 많이 힘들지?]
끄덕끄덕.
풀이 죽은 파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몇 시간 된 거야? 이것 참고로 실시간 통화야.]
그들이 2시간이 넘었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조금 더 고생 더 하렴. 그럼 이만~]
[화이팅티링~]
앙증맞게 뾰롱 하트를 하며 보내며 통화를 종료하는 우주와 중현.
뉴블랙 멤버들이 ‘응?’ 하면서 피디를 바라보았다.
“이게 끝이에요?”
“네.”
“왜…….”
왜 이런 걸 보여 주냐는 표정.
보통 이런 타이밍에 멤버들이 연락을 해서 ‘힘들지? 할 수 있어!’ 하는 응원 메시지를 보여 주는 거 아니었나.
이준희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우주 씨가 말씀하시길, 이걸 보여 주면 다들 더 열심히 할 거라고.”
“!”
“그럼 5분 더 하시고 포인트 이동하시겠습니다.”
삼블랙이 부들부들 떨었다.
“얘들아. 오늘 진짜 낚시 제대로 하고 가자. 우리.”
“가만 안 둬. 선우주….”
“와, 진짜 내가 형들 업어 주고 키워 주고 다 했는데!”
어디선가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착시.
활활 타오르는 삼블랙의 모습에 제작진이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딩동.
딩동.
비주 [형 저 조금 실망이에요]
비주 [근데 보고 싶어요]
딩동.
리혁 [나쁜 사람들]
리혁 [단물만 쏙쏙 빼먹으며 고음 셔틀시킬때는 언제고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리겠다???]
리혁 [미안하면 다음 노래 파트 좋은 거 줘요]
딩동.
지호 [ㅗ]
지호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지호 [제가 친 거 아니고 잉어가 쳤어요]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중현이와 같이 하품을 했다.
“낚시가 잘 안 풀리나 보네.”
“그러게요.”
제작진에게 낚시가 안 풀리면 동생들 약 올리게 연락해 달라고 했는데.
바로 2시간 만에 올 줄은 몰랐다.
중현이와 깔깔 웃었다.
“아이고 재미있다.”
물론 우리 재미있자고만 그런 건 아니었다.
예능이란 건 원래 출연자가 고생하고 데굴데굴 굴러야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보는 법이다.
출연자가 고생할수록 시청자의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뜻!
“다 깊은 뜻이 있다 이 말이야.”
“큰 뜻이 있는 거죠.”
겸사겸사 놀리는 것도 재미있고 말이야.
민물낚시도 고생 좀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방금 전 모습들을 떠올렸다.
“근데 리혁이는 물에 빠졌나?”
“네?”
“보니까 옷이 바뀌어 있던데.”
“걔 옷 바뀌었어요?”
“갈 때 입었던 옷이랑 다르잖아. 너 안 봤어?”
“네. 저는 사람 얼굴만 봐요.”
“그럼 내 옷 볼 때는 왜 얼굴을 찌푸렸는데.”
“…….”
“중현아?”
“…….”
중현이가 말없이 농사 잡지로 시선을 회피했다.
* * *
마지막 5분.
스탭들이 슬슬 철수 준비를 하고, 포기하지 못한 삼블랙도 이제 슬슬 가려고 준비할 때였다.
“떼잉…….”
마지막까지 슬퍼서 포기하지 못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예능인 강만호가 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그만 다른 데로 가자. 점심 맛나게 먹고 다시 낚시 하면 돼.”
“지는 것 같아서 슬퍼요.”
낚시꾼이 연륜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낚시는 이기고 지는 게 아니야.”
“정말요?”
지호가 순수한 표정을 연기하며 물었다.
“그럼 저희가 오늘 이긴 걸로 해 주실 수 있나요?”
“승부는 승부니까.”
“쳇.”
“연기 좋았다. 지호야.”
서로 훗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강만호와 지호.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지호가 미끼를 돌돌돌 거둘 때였다.
“음?”
뭐가 물린 건 없지만 미끼를 포착했는지.
‘장어다!’
장어 한 마리가 미끼를 추격하듯 다가오고 있었다.
수면 위를 지그재그로 미끄러지며 혀를 날름거리는 장어.
“여러분! 이거 보세요! 장어가 제 미끼를 봤나 봐요!”
“장어?”
장어라는 말에 카메라 감독들이 다급하게 카메라를 들고, 낚시꾼들도 선글라스를 들어 올리며 흥미를 보였다.
“야…….”
강만호가 눈을 크게 떴다.
“저거 장어가 아니라 뱀이잖아!”
“헉!”
“야야야! 지호야!”
지호가 미친 듯이 와이어를 감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끼를 향해 유유히 미끄러져 다가오고 있는 작은 뱀.
막내가 다급하게 드루이드를 불렀다.
“중현이 형!”
하지만 서울에 있는 김중현이 응답할 리 없었다.
독사가 안뇽 하며 미끄러져 다가오는 동안 인간들이 멀찍이 피하고 있을 때였다.
첨벙-
“?”
누군가 물가로 향했다.
느릿느릿 물 위를 미끄러져 걸어오는 독사를 향해 걸어간 농부가 뱀을 잡았다.
“아이고. 까치살모사네. 이거.”
온순하게 붙잡힌 뱀을 바라보던 농부가 뱀을 던졌다.
“여기서 놀지 말고 딴 데 가서 놀아라.”
분명 가볍게 던졌다.
그런데….
찡- 하고 태양을 향해 날아간 독사가 저 멀리 첨벙 하고 호수 저편으로 넘어갔다.
두고 보자 인간들! 하는 말이 환청처럼 들린다.
‘근데… 이 사람은 누구지?’
손을 탁탁 터는 노인.
조연출이 말했다.
“……촬영장 주변에 있던 주민들 중 한 분인가 봐요.”
뉴블랙이 있다는 이야기에 주변 마을 주민들이 구경을 잠시 왔다 가기도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존재감 때문에 다들 놀라고 있었다.
‘뭐지.’
분명히 할아버지다.
그런데 키가 190에 가깝고, 장딴지는 우람하다.
멋들어지는 북방계의 허연 수염.
마치 삼국지 같은 곳에서 노익장이라면서 ‘애송이! 목을 베어 주마!’ 하며 칼을 휘두를 듯한 느낌의 인상.
“음?”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몸을 돌리면서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어?”
최근 주경기장 콘서트에서도 얼굴을 보았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중현의 아버지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예능인 강만호가 어 했다.
“저분….”
“저분이 누군데 그래, 오빠?”
이윽고 우렁우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갈!’ 하듯이 웃음소리만으로도 주변에 음파가 퍼져 나가는 느낌.
‘무슨 웃음소리가…….’
상대가 뉴블랙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다들 잘 지냈어~?”
“할아버님!”
스탭들이 눈을 깜빡였다.
‘할아버님?’
그 말에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고, 반가워요~ 나 중현이 할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
역대급 지나가던 행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