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99화
밑반찬이 세팅되어 있는 식탁.
<여보 낚시>라는 낚시 예능에는 대체로 정해진 루틴이 있었다.
-낚시를 한다! → 맛있는 밥을 먹는다.
그중에서 맛있는 밥은 중대 사항이었다.
낚시가 생각보다 체력과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인 만큼 잘 먹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나 <여보 낚시>는 금요일 밤에 시청자들의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 비주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고로 아무리 낚시가 망해도 식탁에 앉으면 다들 하하호호 웃는 게 보통인데.
“…….”
“…….”
오늘 이 자리에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트로트 가수 백상교, 얼굴에 해바라기 받침을 하고 눈을 감은 중견배우 오현숙.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배우 추기석과 이마에 손을 올린 예능인 강만호까지.
“…….”
곁에 있는 뉴블랙도 마찬가지였다.
지호가 비주의 어깨에 기댄 채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고, 리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스탭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네. 여러분.”
이준희 피디가 웃으며 물었다.
“오늘 낚시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와아아아….”
“왜들 그렇게 시무룩하세요?”
백상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긴 왜야. 기계한테 된통 당했으니까 그러지! 아니, 무슨 기계가 사람 10인분을 하고 있어.”
오늘 활약한 우중현 봇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었다.
강만호도 투덜거렸다.
“이럴 거면 여보 낚시가 아니라 로봇 낚시로 바꿔야지.”
“맞아!”
“저희도 기계한테 패배한 기분이에요. 선배님들….”
뉴블랙 역시 이겼음에도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오늘의 성적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이준희 피디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여보 낚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요. 무려 5배 가까운 점수 차이가 났습니다. 여보낚시 팀 17마리로 36점.”
“…….”
“그리고 비리호 팀 87마리로 200점입니다.”
결과가 발표됐는데도 양쪽 모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지호가 손을 들었다.
“우중현 봇이 낚은 게 몇 마리인가요?”
“64마리입니다.”
예능인 강만호가 말했다.
“우리가 이번에 민물낚시를 방생하는 걸로 해서 다행이지. 만약에 잡기라도 했어 봐. 큰일 날 뻔했다니까.”
생태계 파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물고기를 마구잡이로 낚아 올린 로봇이었다.
중견배우 오현숙이 말했다.
“그래도 자기들이 이기긴 이긴 거야. 우리는 17마리고 너희는 23마리니까. 3명이 4명 상대로 더 잘한 거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시무룩한 얼굴로 대화하는 예능인들과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에 제작진이 작게 웃었다.
낚시꾼들과 게스트들은 시무룩해하고 있지만 그들에겐 꿀잼이었던 광경이었다.
-쟤 또 낚았어!
-코드! 코드 뽑아라!
-저게 배터리로 돌아가는 방식이래요!
처음에는 우리 로봇 잘한다! 하며 응원하던 뉴블랙도 중간부터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킨다!’ 하면서 여보 낚시 팀과 편을 먹었으니까.
뉴블랙 멤버들이 보너스 코너로 ‘인간 vs 기계’를 제안하기도 하는 등.
예능 제작진으로서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터진 터였다.
‘2.5회차로 편성해도 되겠는데?’
민물낚시는 1회차로 1시간 40분가량 편집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의 낚시보다 변수도 적고, 정적이라 지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윗선에서는 뉴블랙이 나오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2회차로 편성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준희 피디도 걱정이었다.
-민물낚시로 2회차 분량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봐서는 2.5회차까지 편집을 해도 될 만한 분량이 나오고 있었다.
‘과연 뉴블랙이다. 민물낚시도 분량을 두 배로 만드는구나!’
이준희 피디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오늘 고생 많으셨고요. 비리호 팀은 나와서 트로피 받아가시겠습니다.”
“네.”
황금잉어 트로피를 건네주는 제작진.
잉어를 보자마자 슬픈 표정을 짓는 리혁에게 비주와 지호가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괜찮다며 거부하는 리혁.
“형, 친구예요. 인사해요.”
지호가 잉어 트로피를 들고 성대모사를 했다.
“우웅. 잉어킹은 뽀뽀를 받고 싶다. 악!”
“야!”
형에게 등짝을 얻어맞는 동생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비주가 수상소감을 전했다.
“멋진 선배님들과 승부를 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어요. 또, 오늘 낚시를 도와주신 로봇과 로봇 개발진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감사했어요.”
“엄마! 누나들! 우주 형! 사랑해요~! 아 맞다! 중현이 형도 사랑해요!”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멤버들이 스탭들에게 고개를 꾸벅 하면서 수상소감을 마쳤다.
트로트 가수 백상교가 박수를 쳐 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카이스트 그 양반들은 어디 갔어?”
“로봇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일정이 바쁘시다고.”
“에잉,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가 투덜거리고는 물었다.
“그래서 오늘의 저녁 식사는 뭐야?”
“아!”
이준희 피디가 말했다.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오늘의 저녁 식사는 비주 씨가 만들어 주십니다!”
“오!”
“오오오오…!”
오현숙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힘들 텐데 밥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연예계에서 소문난 요리사인 비주가 식사 메뉴를 만들어 준다는 말에 모두 관심을 보였다.
“어떤 메뉴야?”
강만호의 물음에 비주가 말했다.
“정말 간단한 기본 요리예요. 바로 생선 조림입니다.”
“오오, 생선 조림.”
생선조림이라는 말에 리혁과 지호가 반색했다.
“준비한다는 메뉴가 생선 조림이었어요?”
“와, 미쳤다! 생선 조림!”
물개 박수를 치는 이들에게 출연진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에 답하듯 멤버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비주 형 생선 조림이 진짜 맛있거든요. 호슐랭 리스트 넘버 쓰리로 기록된 요리예요.”
“진짜 맛있어요. 제가 생선은 비려서 잘 안 좋아하는 편인데 비주 형 요리는 비리지도 않고.”
비주가 앞치마를 매고 머리에 반다나를 했다.
사과가 그려진 앞치마와 빨간 반다나를 한 모습에 스탭들이 귀여워! 하면서 웃었다.
‘진짜 귀엽다.’
빨간 망토 차차처럼 변한 비주였다.
머리도 마침 백금발이라서 딱 그런 느낌.
리혁이 가방을 뒤적거리고는 조리사들이 쓰는 투명 마스크까지 착용시켜 주었다.
“형 진짜 귀여워요.”
“귀여워?”
둘째 형의 미모에 취한 두 블랙이 핸드폰으로 찰칵찰칵 각도를 바꿔가며 찍어 주고 비주가 포즈를 취했다.
백상교가 물었다.
“그래서 밥은 언제쯤?”
“아! 네! 네! 지금 할게요.”
“할아버지가 지금 약 먹어야 돼서 그래.”
자리에 있는 낚시꾼들이 약봉지를 탈탈 흔들어 보였다.
각종 처방전이 적힌 약 등등.
뉴블랙 멤버들이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비주가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예능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구경했다.
“어머, 칼 쓰는 거 봐. 장금이가 따로 없네. 얘 장금아~”
사극 톤으로 묻는 중견 배우에게 칼질을 하던 비주가 다소곳하게 사극톤으로 답했다.
“예, 마마~”
“칼을 쓰는 솜씨가 제법 일품이로구나.”
옆에 있던 지호가 내시 말투로 끼어들었다.
“이 친구가 조선 제일검이옵니다. 마마.”
“칼을 잘 쓰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게로구나. 내 조만간 자네를 긴히 쓸 일이 있을 것이야.”
칼질을 하던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예능인 강만호가 ‘뭘 써~!’ 하며 타박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사극 꽁트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모두가 비주의 요리 실력에 감탄했다.
“이야. 이게 칼 솜씨도 그렇고, 재료 다듬는 게 하루 이틀 한 모습이 아니네. 비주가 요리를 좋아하니?”
“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요리해 주는 걸 좋아해서요.”
“요리를 오래 했나 봐.”
“그 전까지는 생활 요리 위주였는데… 데뷔조 숙소 들어갈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뉴블랙 멤버들이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데뷔조 시절의 에피소드를 풀기 시작했다.
윗집에서 물만 내리면 샤워기가 용암처럼 뜨거워졌다든가.
좁은 방에서 다섯이서 잤던 이야기라든가.
지호가 말했다.
“진짜 추억이 많은 곳이었어요. 형들이랑 천장에 붙은 별 야광스티커 보면서 수다 떨고.”
“스티커는 누가 붙인 거야?”
“전 주인 분이 붙인 것 같은데 안 떨어지더라고요….”
연습생 시절의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을 푸는 모습에 이준희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2.5회차가 아니다. 3회차다.’
국민 아이돌이라 불리는 뉴블랙의 인간미 넘치는 과거 에피소드들까지.
이걸로 3회 분량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휴대용 가스버너 위로 비주가 만든 생선 조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추기석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이거 진짜 귀한 거라서 잘 먹어야 돼요! 이제 또 방송되면 홈쇼핑 출시될 수도 있다니까.”
“그러네.”
“이건 요리 이름이 뭐야. 자기야? 비주 조림?”
비주가 웃으며 답했다.
“그냥 생선 조림이에요. 그, 사실 이건 엄청 특별한 요리는 아니어서…….”
“그래?”
“네. 그래서 그냥 레시피를 공개하려고요.”
생선조림이 끓는 동안 비주가 레시피를 설명해 주었다.
자리에 있는 작가들이 메모장을 켜서 토도도독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Q&A.
“양념장에 들기름이 들어가나요?”
“네, 들기름으로 비린내를 잡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매운탕에도 들기름이 들어간다고 들었어요. 들기름의 지방산에 생선 특유의 잡내가 날아가거든요. 들기름 넣는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되는 게 막상 요리하고 나면 들기름 냄새는 사라져 있을 거예요.”
“아하….”
“들기름이 없으시다면 그 대신…….”
갑자기 <김비주의 요리 교실>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게 생선조림의 레시피에 대한 설명도 끝났을 때.
지호가 나섰다.
“조리가 되는 동안 저희의 백야 무대를 한 번 더 보시는 건 어떤가요!”
“좋지. 좋지!”
“한 번 더 갑니다~! 음악 주세요!”
조림이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알차게 신곡 홍보를 하는 멤버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생선 조림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 맛은….
“와!”
“!”
“!!”
출연진 모두 국물을 후릅 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국물부터 맛있는데?”
“미쳤다….”
“이게 그냥 고등어로 만드는 생선 조림이야?”
젓가락으로 생선살을 뜨면서 허연 살이 드러난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부드럽게 생선살이 씹히면서 입안에 극락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야…….”
백상교가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드러냈다.
“뭐 생선 조림이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나 하고 그랬거든. 근데 먹어 보니까 장난 아닌데?”
“제작진 아무나 와 봐!”
제작진이 시선을 교환했다.
가장 짬이 높은 카메라 감독 한 명과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를 거둔 이들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뉴블랙 멤버들과 출연진이 그릇을 들고 다가가 큼지막하게 뜬 생선살을 조림 무와 함께 건네주었다.
오물오물.
“!”
“!!”
카메라 감독과 막내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다른 사람들에게 따봉을 건넸다.
‘뭐야. 무슨 맛인데.’
프로 방송인이 아닌 카메라 감독마저도 진실된 리액션이 나오는 맛이었다.
“감독님. 왜 그래요?”
“양념이…!”
“네?”
“양념이 달라! 그냥 생선 조림이 아니야.”
트리플 S급 생선조림이라는 말에 다들 호기심을 보였다.
오현숙이 으흠~ 하는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거 진짜 무가 너무 맛있다. 무만 따로 먹고 싶어. 생선도 맛있는데 무가 진짜 진국이다.”
“밥 해 둔 거 더 없어요?”
“솔직히 이건 두 공기 먹어야 돼.”
보드랍게 녹아드는 무와 생선살을 모아서 밥 위에 올린다.
가까이서 음식 인서트를 따는 감독들도 침을 꼴딱일 만큼 근사한 비주얼이었다.
맛도 얼마나 좋은지 방송인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음식 먹는 모습만 계속 나올 뿐이었다.
냄비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에야 모두 식사를 멈추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정신없이 먹었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여기서 먹길 진짜 잘했다. 집에서 하면 비주가 한 대로 맛이 안 나올 거 같아.”
싹싹 긁어서 국물까지 다 먹은 출연진.
어찌나 배불리 먹었는지 머리가 멍했다.
“이제 우리 뭐 해야 되지?”
“그러게.”
“그… 뭐 해야 되더라.”
비주가 웃으며 답했다.
“저희 이제 인사해야 돼요.”
“아. 그렇구나!”
이제 뉴블랙이 작별 인사를 하면서 촬영을 종료할 시간이었다.
3주치 분량을 뽑아준 뉴블랙을 향해 제작진들이 환호하고, 뉴블랙이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백상교가 손을 붙잡고 말했다.
“비주는 꼭 다시 와.”
“저요?”
“안 웃겨도 돼. 그냥 나와서 인상 찌푸리고 있어도 되니까 한 번만 더 와. 아니 두 번 와.”
“다른 멤버들…….”
“다 필요 없어! 우리는 비주만 있으면 돼!”
다른 출연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랑 중현이도 안 와도 된다고 그래. 비주만 와.”
“비주야. 우리가 물고기 다 잡아 줄게.”
“자기야. 생선 조림 한 번만… 우리 다음에 특집 요리사로 한 번만 더 나와 주라.”
질척거리는 출연진의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다음에 꼭 다시 봐!”
“다 같이 와! 안 되면 비주만 오고!”
“비주야! 또 보자!”
손을 흔들어 주는 출연진들과 인사를 마치고 멤버들이 차에 몸을 실었다.
“아, 배부르당. 형들 고생했어요!”
“지호도 고생 많았어. 리혁이도.”
“아, 쓰러질 거 같아요. 나.”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숙소에서 출발해 하루 종일 예능에서 뛰어서 그런지 온몸이 노곤노곤하다.
하지만 아직 차에서 잠들 수는 없었다.
리혁이 핸드폰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금방이네요. 차로 한 30분?”
“그러게.”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중현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괴력난신들이 살고 있는 괴산김가(槐山金家)의 근거지.
“왠지 떨려요. 중현이네 형의 고향이라니. 막 사슴들이 루돌프만하고 잉어들이 쿠웨에에 하는 동네 아닐까요.”
“아니야. 나 한 번 가 본 적 있는데…….”
비주가 기억을 상기하며 말했다.
“그냥 평범한 마을?”
고등학교 때 중현의 집에 놀러 간 기억이 있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전원적인 분위기의 농가들이었다.
비주가 그때 기억을 이야기해 주면서 동생들이 흥미를 보이고 있을 때.
“도착했다.”
평범한 분위기의 마을에 들어선 이들이었다.
곧이어 2층집 대문 앞에 도착하면서 중현의 할아버지가 걸어 나왔다.
“저희 왔어요!”
“어어! 왔냐! 야! 비주랑 애들 왔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왔대요?”
“왔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을 들이켰는지 얼굴이 벌건 괴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현의 일가친척들이었다.
김중현이 왜소해 보일 만큼 우람한 몸을 자랑하는 이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강하다.’
악수를 할 때마다 손이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등짝을 치면서 ‘반가워!’ 하는데 척추가 뿌엥 하고 골이 흔들렸다.
심지어 중현의 사촌 여동생이라는 사람도 김중현보다 강해 보였다.
“아이고! 우리 아들들!”
김중현의 아버지가 호탕한 목소리로 반기며 물었다.
“밥은 먹었어?”
“네!”
“날도 어두운데 자고 가.”
“저희 스케줄이 또 있어서 얼른 가 봐야 해요. 온 김에 뵙고 싶어서 잠시 찾아온 거예요.”
“아이고….”
술 냄새를 풍기던 중현의 아버지가 말했다.
“가야 되는구만. 이대로 보내기도 아쉬운데…….”
하지만 밀린 연습과 스케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중현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거 밑반찬이라도 좀 받아가.”
“감사합니다.”
“야! 밑반찬 좀 내와라!”
“예, 아부지~”
그 말에 괴산김가의 괴인들이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감사합니다!”
차곡차곡.
차곡차곡.
“가, 감사합니다…!”
차곡차곡.
꼭 옛날 설화에 나오는 도깨비들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 보은하기 위해 도깨비가 금은보화 자루를 쌓듯이 밑반찬 박스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호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형. 이거 차에 다 못 실을 거 같은데요?”
“어… 이거…….”
그들이 그런 말을 하면서 멈추지 않는 상자를 바라볼 때였다.
웅성웅성.
마당 뒤편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누구 왔어?”
“누구 왔나 보네. 택만아! 누구 왔냐!”
“아, 우리 손주들 왔지!”
중현의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주민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중현이 친구들이네.”
“비주 왔어~? 아, 물론 그대는 나를 모를 것이여. 그냥 반가우니까 인사해 봤어~”
“리혁이랑 지호도 있네.”
주민들에게 비리호가 꾸벅 인사하며 활짝 웃을 때.
정감 넘치는 미소를 짓던 김중현 마을의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밑반찬 주나 보네.”
“김치 담근 거 있는데 가져갈 텨?”
“아 뭘 또 물어봐~ 그냥 줘야지. 센스 없게.”
갑자기 우르르 사라지는 주민들.
얼마 후 우르르 상자들을 들고 오는 모습에 비리호가 당황했다.
‘뭐지?’
선물 세례가 안 끝나고 있었다.
* * *
“쓰벌.”
“쓰벌벌.”
“벌이 울면 쓰벌쓰벌.”
미소년들이 작게 흥얼거리며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피곤하다.’
힘겹게 방송 녹화를 마쳐서 그런지 피곤했다.
욕할 기운도 없어서 스벌벌… 하는 이들이 숙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음?”
작은 트럭이 두 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잠옷차림을 하고 있는 우주와 중현이 머리를 긁으며 서 있었다.
연후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행님들인데?”
“행님들이야? 고기 구워 달라고 하자!”
“아냐. 지금 표정이 고기 얘기했다가는 분위기 조질 삘인데…….”
멍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우주와 중현.
곁에서 머쓱한 미소를 짓고 있는 비리호.
틴스피릿이 ‘여기서 내릴게요!’ 하고는 바로 그들에게 달려갔다.
“행님!”
“어, 얘들아.”
“이게 뭐예요. 혹시 뭐 가구라도 시키셨어요?”
“그게…….”
인상 좋은 청년들이 소형 트럭에서 짐을 내려 주고 있었다.
우주가 말했다.
“밑반찬이야…….”
“아, 밑반찬.”
틴스피릿이 고개를 끄덕였다.
밑반찬이구나.
“?”
그들이 고개를 획 돌렸다.
“저게 뭐라고요?”
“밑반찬…….”
“와, 씨… 저게 다요?”
“응.”
‘적당히 거절을 해야지!’ 하며 동생들을 짤짤 흔드는 우주와 슬프게 흔들리는 비리호.
그저 웃는 김중현.
틴스피릿이 중현에게 말했다.
“아니, 행님. 진심 궁금한 게 대체 어떤 사람들이 밑반찬을 트럭으로 두 대나 보내요?”
“우리 마을 사람들이야.”
“사랑에 진심인 분들이셨네요…. 트루 러브.”
“흐흠.”
행복하게 웃는 중현의 모습에 틴스피릿이 엄지를 척 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조질 뻔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