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00화
고급 승용차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린다.
[다음 곡 들으실 시간입니다! 지금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석권하고 있는 곡이죠? 사랑스러운 악당들로 돌아온 뉴블랙의 <백야>입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백야를 들으며 윤석환이 웃었다.
‘진짜 곡 잘 뽑았어.’
일반인들과 달리 관계자인 그는 지난 두어 달 가까이 매일 들었던 노래였다.
그럼에도 신이 났다.
<백야>를 듣고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가는 느낌. 퇴근길의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기분이었다.
[네, 진짜 이 곡을 듣다 보면 너무 신이 나는 것 같아요. 뉴블랙의 <백야>는 정말…….]
라디오 DJ의 멘트를 들으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음?”
윤석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백야가 왜 또 나오지?’
어디선가 뉴블랙의 백야가 다시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디오는 아니었다.
윤석환이 고개를 돌렸다.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신나는 펑크락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가게 음악이었구나.’
가게 외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백야>였다.
그걸 들으면서 다시 흥얼거리던 윤석환이 차량을 몰아 달릴 때였다.
“음?”
거리를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음악이 계속 들려왔다.
술집으로 보이는 가게에서 수록곡인 가 흘러나오고, 또다시 거리를 지나니 이번에는 잔잔한 가 카페에서 브금으로 나오고 있었다.
“…….”
자신이 담당하는 가수긴 했지만 가끔 이런 상황에서는 좀 무서울 때가 있었다.
지이잉-
때마침 이런 성공을 만들어 낸 장본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선우주]
용건은 간단했다.
“밑반찬을 받으러 오라고?”
-응. 중현이네 가족이랑 마을 주민 분들이 밑반찬을 보내 주셨는데… 좀 많이 보내 주셨거든.
“얼마나 많이?”
-냉장고에 다 안 들어가. 애들이 이거 보관 못한다고 그랬는데도, 괜찮다고 이웃집이랑 회사 사람들한테도 좀 나눠 주라고 하셨대.
윤석환의 머릿속에 상상이 갔다.
-이게 우리 마음이여.
트렁크를 꽉꽉 채우는 중현의 가족들.
통화를 종료하면서 윤석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선우주 요 녀석.’
막상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면 남는 밑반찬이 몇 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받아가라고 했을 텐데.
그게 자신인 게 분명했다.
‘잘 키웠다!’
수학귀신이 홍홍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뉴블랙의 숙소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운전하는 TF 팀장.
이윽고 숙소 근처에 도착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여기가 이렇게 줄을 서는 구간이 아닌데…….”
뉴블랙의 숙소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입구에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입주민이 그리 많은 곳이 아니라 평소에는 광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데, 오늘은 차들이 많다.
“음? 저거 대표님이랑 차종이 똑같네.”
독특한 차량이 눈에 띄었다.
일명 ‘각그랜저’라 불리는 1세대 그랜저.
회사에 신입 직원들이 들어 올 때면 ‘저게 굴러갑니까…?’ 하며 의문을 표하던 차종과 똑같았다.
마침 번호도 비슷하다.
“8335… 대표님 차번호랑 똑같….”
잠깐.
“똑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의 앞에 서 있는 차들도 뭔가 익숙했다.
‘회사 사람들 차잖아?’
박규호 대표, 조규환 이사, 본부장 등등.
회사 임직원들의 차량이 늘어선 모습에 그가 눈을 깜빡였다.
‘왜 오셨지?’
이윽고 경비팀의 꼼꼼한 확인 절차를 마친 차량들이 하나둘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하주차장에 내려온 윤석환이 주차를 하고 얼른 상사들에게 뛰어갔다.
“대표님!”
“어, 윤 팀장 왔어?”
박규호 대표 옆으로 조규환 이사와 본부장이 서 있었다.
뒤에는 홍보팀장과 법무팀장도 있고.
“대표님께서 왜…?”
“아, 밑반찬 받으러 왔어. 애들이 전화를 해서 밑반찬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대표님도요?”
“응? 윤 팀장도 밑반찬 받으러 왔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야 너도?’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자리에 모인 인원과 뒤에 들어오는 인원만 합쳐도 10명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이 사람들한테 다 밑반찬을 준다고?”
이 정도면 오징어 젓갈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인당 1개씩 나눠 받아야 할 수준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오셨어요?”
시동이 걸려 있는 트럭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와 졸개들이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돌돌돌돌-
수레에 밑반찬 상자를 실은 미소년들이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틴스피릿?’
틴스피릿 멤버들이 안냐세요… 하면서 밑반찬 박스들을 올린 수레를 끌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그 양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금 저게…….”
“밑반찬 맞아. 형.”
“저렇게 많이 줘도 돼?”
“응…….”
윤석환이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본부장이 물었다.
“그래서 밑반찬이 어디 있다는 거니?”
“여기요.”
중현이 손가락으로 트럭을 가리켰다.
“?”
“??”
그 말과 함께 중현의 뒤에 선 두 그림자를 확인했다.
최종보스를 지키는 간부처럼 서 있는 두 남자.
평범하고 수더분한 인상이지만 중현과 비슷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제 사촌 동생들인데 도현이랑 래현이에요.”
“안녕하십니까!”
김중현이 약해 보일 만큼 우람한 덩치를 지닌 젊은이들.
싹싹하지만 왠지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청년 야채상 같은 얼굴이었다.
행복한 감자처럼 웃는 두 청년이 트럭에서 짐을 내렸다.
“…….”
“…….”
빼곡한 상자들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 회사 직원들에게 뉴블랙 멤버들이 소개했다.
“짜잔. 밑반찬.”
레몬 엔터 사람들에게 ‘밑반찬의 날’이라 불리게 된 전설적인 날이었다.
* * *
밑반찬 분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이 다들 멍한 얼굴로 돌아가는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현아.”
“네.”
“그… 마을 분들이 너를 되게 아끼나 보다.”
“제가 약간 어릴 적에 동네의 연예인 포지션이었거든요. 마을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어요.”
지호가 물었다.
“형이 왜 마스코트예요?”
“귀여워서.”
“…….”
“나 어릴 적에 되게 귀여웠어.”
중현이가 지갑을 뒤적이더니 사진을 한 장 꺼내 보여 주었다.
고라니 위에 올라타 있는 어린 중현이의 사진이었다.
“사슴 농원이라도 간 거야?”
“아뇨. 야생 고라니인데요.”
“대체 어떻게 올라탄 건데.”
“고라니를 구해 줬는데 고맙다고 태워 줬어요.”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는 거실에 널브러진 박스들을 바라보았다.
“근데 김냉에 넣어도 이거 다 안 들어갈 거 같은데?”
“그러게요.”
다 같이 흐음 하며 수납을 고민하고는 결론을 내렸다.
“먹어서 해결하자.”
“네.”
햇반을 돌려서 밑반찬을 좀 해치우기로 했다.
우리가 누구인가.
블랙홀이 어맛 하고 놀랄 만큼 신비롭고 기이한 위장을 가진 귀염뽀짝 미청년 5인조.
중현이네 가족들과 지인 분들이 보내 준 반찬들 중에 중현이가 ‘저건 꼭 사수해야 돼요’ 하며 말해 준 것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 맛은.
“와아…….”
“오늘부로 호슐랭 리스트에 중현 마을을 등록합니다. 와. 진짜 맛있어요!”
꽈리고추의 적당한 매콤한 맛이 느껴지는 멸치조림.
아삭! 하는 오이소박이.
쫀득하고 단짠이 강한 연근 조림.
당장 구운 김과 먹고 싶은 달래장까지.
“고기도 굽자.”
“네.”
“근데 중현아. 사촌 동생 분들 그냥 보내도 돼? 차라도 한 잔 대접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얼른 집에 가야 된대요.”
“왜?”
“오늘치 운동을 못했다고….”
중현이네 사촌다운 이유였다.
용돈을 줘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기를 구웠다.
“크으.”
고기까지 같이 구워서 야식으로 먹으니 세상에서 가장 밑반찬이 좋은 고깃집에 온 것만 같았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닌지 메시지가 쏟아졌다.
연후 [행님덜]
연후 [존나 맛있습니다 진짜]
맛이 좋다는 후기들에 중현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야식을 먹는 동안 오늘 예능 촬영을 다녀온 비리호가 신이 나서 썰을 풀었다.
“리혁이 형이 물에 빠졌는데 잉어가 막 공격했는데 리혁이 형이 졌어요!”
“카이스트에서 로봇 팀이 와서 우중현 봇을 만들었는데, 그게 60마리나 낚았다니까요.”
“비주 형 생선조림 반응이 진짜 좋아서…….”
비주가 생선조림을 해 줬다는 이야기 말고는 말도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과장 가득한 동생들의 말에 나랑 중현이가 턱을 괴고 피식 웃었다.
“잉어가 무슨 사람을 그렇게 공격해.”
“그렇게 치면 나도 상어한테 공격당했네. 뭐.”
잉어가 그냥 리혁이 주변을 맴돌며 툭툭 치고 간 걸 공격당했다고 표현한 모양이다.
“그리고 낚시 예능에 무슨 카이스트 팀이 와서…….”
국내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불리는 곳에서 낚시 로봇을 만들어 왔다는 것도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이것도 어느 정도 과장이 붙어 있겠지.
유일하게 믿음이 가는 건 중현이네 할아버지가 까치살모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아니!”
“아니이이!”
“다 진짜예요. 다 진짜라니까요.”
계속해서 안 믿어 주는 우리 둘의 모습에 동생들이 분개했다.
중현이와 나는 푸근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 그래. 너희 마음 알아. 어떻게든 예능에서라도 우리를 이겨 보고 싶다는 그 마음.”
“너희 마음 잘 이해했어.”
“아니 진짜라니까! 잉어는 진짜라니까요!”
나중에 본방송 꼭 보라며 우리에게 강조하는 3인조였다.
다른 동생들이 중현이를 붙잡고 ‘우리의 말을 다시 들어 봐요’ 하며 호소하고 있을 때.
밥그릇을 식기 세척기로 가져가는 비주에게 말했다.
“비주야. 그거 갖다 놓고 우리 곡 들어 볼래?”
“잠시만요. 형.”
“이따 해. 너희 힘들잖아. 나랑 중현이가 할게.”
부엌에서 동생들이 ‘아악! 진짜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비주를 거실로 데려왔다.
우리 메인댄서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거예요? 형이랑 저랑 둘이 하는 유닛 곡?”
“응.”
“와. 저 진짜 설레요.”
비리호가 예능을 나가 있는 동안 집에서 띵가띵가 가볍게 만진 비트들과 멜로디들이었다.
-형! 우리 우비즈로 활동해 봐요!
작년도의 <금강산도 식후경>에서 우비즈로 출연하면서 품었던 생각이었다.
보통 아이돌 그룹을 보면 재미 삼아서 유닛 활동을 하고 그러지 않던가.
아무래도 남들 해 보는 건 다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우리도 한 번 해 보고 싶다.
이제 5년차니까 이런 거 할 만한 연차도 좀 됐고.
비주와 나의 이해관계도 일치했다.
-형이랑 무대 서면 원 없이 춤을 출 수 있겠네요!
비주 입장에선 리미트가 걸려 있는 그룹 활동과 달리 댄스라인의 모임이니 정말 원 없이 춤 출 수 있어서 좋고.
-그룹과는 또 다른 음악색을 보여 줄 수 있다.
나는 또 다른 음악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하여 다른 동생들이 각자 개인 활동을 하는 동안 짧고 굵게 활동해 보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안녕하세요! 우주 비주! 저희는 우비즈입니다!
꽤 미래의 일이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아직 <백야>의 음방도 안 뛰었는데, 왜 나는 새롭게 일을 벌일 생각만 하면 이리 신나는지 모르겠다.
과자 상자를 오픈하고 먹다가 옆에 있는 초콜릿 상자를 보면 새로 오픈하고 싶어지는 느낌.
“우리가 신나는 댄스 음악을 목표로 했잖아. 일단 몇 가지 비트들을 만들어 봤어.”
비주에게 후보들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머리를 살짝 쓸어 넘겨 귀를 드러나게 만든 비주가 귓가에 손을 모으고 집중했다.
곡을 하나씩 들려줄 때마다 반응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특정 곡에서 멈췄다.
“어!”
“어때?”
“이거 좋은데요? 딱 요 느낌 마음에 들어요.”
레트로한 분위기가 깔려 있는 신스 팝.
거기에 일렉트로닉이 가미되어 있는 곡에 비주가 눈을 크게 뜨며 반응했다.
“마음에 들어?”
“듣자마자 춤이 딱 그려졌어요.”
비주가 일어나서 대충의 안무를 표현하는 동안 내가 감탄했다.
진짜 신기하다.
비주는 음악을 들으면 춤이 떠오른다고 하던데, 나는 반대로 비주의 춤을 보면 음악이 들리는 거 같다.
거실에서 박자에 맞춰 춤을 추는 비주의 모습에 다른 동생들이 다가왔다.
“뭐 해요?”
“비주랑 나랑 유닛으로 할 만한 곡 보고 있었어.”
“오.”
비주의 춤을 보던 지호가 물었다.
“장르가 일렉트로닉인가 봐요? 아니면 레트로 댄스 음악 계열 같기도 한데…….”
“둘 다야.”
“비주 형 신난 거 보니까 괜찮게 뽑혔나 보다. 벌써 다 했어요?”
“아니. 아직 미완성이야.”
생선으로 치면 아기공룡 둘리에 나왔던 가시고기 같은 셈이었다.
비주와 협업으로 준비하고 싶은 곡이기에 아직 여기에 별다른 살은 안 붙어 있었다.
내가 비주에게 물었다.
“이 곡에서 해 보고 싶은 거 없어?”
그 말에 다른 동생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말했다.
“나 보고 싶은 거 있어요. 비주 형이 안무 엄청 빡센 거 만들어서 저 형을 좀 굴려 주면 좋겠어요. 황태 덕장의 명태처럼 서서히 말라서 고통 받는 거죠. 결국 ‘아, 리혁이랑 보컬 콜라보를 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하는 모습을…….”
“김비주 랩 넣어 주세요. 형. 저도 살면서 한 번쯤은 김비주를 가르치면서 혼내 보고 싶어요.”
“뮤비 찍을 거면 제가 주연배우로 단독 뮤비 찍을래요.”
참으로 멋진 소망들이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비주가 음… 하면서 말했다.
“이번에 여태까지 한 번도 안 춰 본 종류의 춤을 춰 보고 싶어요.”
“어떤 춤을?”
“오늘 낚시 하면서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되게 유심히 봤거든요. 형도 알다시피 춤이란 건 결국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움직임들을 예쁘게 만든 거잖아요?”
비주가 손가락 끝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말했다.
“불꽃에서 보이는 아지랑이.”
이번에는 발을 가볍게 구르며 말했다.
“투레질하는 소와 같은 발구름.”
그냥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뿐인데. 희한하게 뭘 보여 주는 건지 알 것 같다.
비주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번에는?”
“물고기 춤을 추고 싶어요.”
“…….”
머릿속에서 물고기가 퍼덕퍼덕거렸다.
“비주야.”
“네!”
“물고기? Fish? 어류?”
“네. 그 물고기요.”
물고기 춤이라니.
아무리 봐도 예쁜 그림이 안 나왔다.
지호가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팔을 날개처럼 퍼덕였다.
“이런 거요? 물고기?”
“음… 그런 거라기보다는…….”
비주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물속이라는 게 지상이랑은 환경이 완전히 다르잖아. 물의 제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지상에서는 팔을 이렇게 움직이면 되는데.”
팔을 휘익- 휘두르던 비주가 곧바로 동작을 바꿨다.
꼭 물속에서 팔을 휘두르는 것처럼 느릿하면서도 유연하다.
“물속은 요런 느낌?”
“아하.”
“그래서 물고기 춤 같은 걸 해 보고 싶어요. 후렴에 요렇게 안무가 들어가는 식으로…….”
안무 빌드업을 하다가 몸을 휙 옆으로 돌리고는 물살이 일렁이듯이 웨이브를 타는 비주였다.
다리와 팔이 흐느적거린다는 느낌 없이 흐름을 탄다.
“와…….”
지호가 감탄했다.
“저는 오늘 낚시하면서 아무 생각 없었는데 형은 막 이런 구상까지 다 했네요. 대박이다.”
“안무 느낌 괜찮은데요?”
“저기에 김비주가 랩까지 하면 더 멋지지 않을까요. 형?”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들의 아이디어에 눈을 빛낼 때였다.
지호가 손을 들었다.
“저저! 제안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화자를 재미있게 바꿔 보는 거예요. 물고기 시점으로 노래를 써 보는 거죠!”
“호오…….”
그러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졸개들이었다.
잔뜩 신이 난 이들이 아이디어를 빌드업해 주는 동안 비주와 나도 신이 나서 합류했다.
“그치! 그렇게 가는 거지.”
“오오오오!”
“저! 저 아이디어 하나 더 있어요!”
무대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는 우리였다.
내가 노트북으로 해당 아이디어들을 적으면서 감탄했다.
“진짜 대박인데?”
“틴스피릿이 그랬잖아요, 형들. 빡대가리도 다섯 이상 모이면 할 만하다.”
확실히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으니 그럴싸한 것이 탄생해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회사 TF팀에게 보내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진짜 대박인데?”
“와. 우리 좀 쩌는 거 같아요. 형.”
우리가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 * *
대체로 자체적인 프로듀싱을 하는 컨셉을 밀고 있는 그룹들의 팬들은 그런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작사작곡도 우리 애들이 하고, 컨셉도 우리 애들이 짜고… 회사는 대체 뭐 하는 거임?
물론 레몬 엔터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일 잘하기로 유명하니까.
다만 ‘뉴블랙이 다 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 뭘 하는 거지?’ 라는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답을 하자면….
-우리는 뉴블랙의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뉴블랙이 아이디어를 낸 것들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바로 회사 사람들의 역할이었다.
예컨대 이번 앨범에 ‘대충 검은색인데, 도깨비 느낌도 나는 멋진 한복’을 입고 싶다고 하면 그에 어울리는 한복 디자이너를 데려와 역대급 무대 의상을 만들어 주는 식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가수들의 아이디어를 멋지게 탈바꿈시켜 주는 것도 회사의 역할이었다.
대표적으로 작년도의 투어가 있었다.
-이거 지호가 낸 오타인데 예쁘지 않아요? 뭔가 느낌 있고.
오타가 난 WOrLD와 H를 가지고 의미를 만들었던 TF팀이었다.
H는 Happiness.
W는 Wonder.
그런 식으로 해서 팬들이 ‘어맛! 우리 애들에게 참으로 깊은 뜻이…!’ 하며 감탄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 있어서 TF팀은 또 다른 과제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주랑 비주가 유닛으로 꾸미고 싶다는 곡의 제목이…….”
“네.”
윤석환과 홍서영 과장이 문서에 적힌 제목을 바라보았다.
[파닥파닥 (Padak Padak)]
두 남녀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꺄르륵 하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기분.
“홍보 담당자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제목이에요.”
“동감입니다.”
아이디어와 곡은 정말 좋다.
뉴블랙 특유의 반짝반짝함과 트렌디함이 느껴지는 기획.
그런데….
‘포장지가 좀.’
미슐랭급 요리를 만든 다음에 락앤락 통에 담아서 ‘주문하신 요리입니다’ 하고 내오는 느낌이었다.
알맹이와 껍데기의 부조화.
“아니, 얘들은 다 좋은데 가끔 이상한 데서 센스가…!”
“왜 잘하다가 가끔 이런 데서 와장창인지 모르겠어요. 애들이 천재들이라서 그런가?”
곧이어 TF팀이 출동했다.
“프랑스어로 두근두근이 Padam Padam이라는데 요런 쪽으로 가 보는 건 어떨까요?”
“후렴의 파닥파닥 대신에 Bada Bada 같은 가사로 바꾸는 걸 추천합니다. 운율감을 줄 수도 있고, 리스너 입장에서 과연 저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잖아요. 너무 직설적인 것보다 은유적이어야 맛이 살잖아요.”
“제목도 바꿔야 합니다.”
그리하여 낚시꾼들의 노래 같았던 기획안이 순식간에 다른 느낌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물고기의 시점으로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탈피하기 위해 물놀이를 가듯이, 반대로 물고기 입장에서는 물속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미끼를 무는 거죠! 낚시꾼들이 붙잡으려고 하면 파닥파닥! 떨쳐 내면서 잠깐 육지 체험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일탈을 즐기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는 물고기의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그것을 멋지게 포장한 문구.
『답답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가끔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러나 자유로움에는 아픔이라는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아프면 좀 어때?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어공주가 물 밖으로 나왔듯이, 물 밖에 있는 세상을 향해 ‘나’는 파도(wave)를 타고 솟구쳐 세상에 손을 흔든다(wave).
안녕. 내가 왔어.
Bada- Bada-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을 거야.』
그러면서 TF팀이 추천해 주는 새로운 제목.
『우비즈(Woobiz) - WAVE』
레몬 엔터에서 가장 고연봉을 받는.
그야말로 유에서 유후를 창조하는 TF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