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22화
미국 시상식으로는 세 번째 무대.
빌보드에서는 첫 번째 무대.
“으이이…….”
두 팔로 몸을 감싼 막내가 부르르 떨었다.
“떨려 죽겠다. 진짜….”
“많이 떨려?”
“엄청 떨려요.”
지호가 입을 비죽였다.
“아니, 5년차쯤 되면 이제 안 떨릴 때도 되지 않았나? 맨날 무대 앞두고 떨려.”
“이리 와. 지호야.”
혼자 떨면 외로우니 같이 떨기로 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는 리혁이와 목을 뚝뚝 꺾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중현이.
길을 안 헷갈리게 눈을 감고 동선을 암기하는 비주.
모두 다 긴장한 기색이 다분하다.
그리고.
“……나도 똑같네.”
주변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도 긴장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이번에 공연했던 스타디움에 비하면 관중들이 훨씬 적지만, 그럼에도 떨린다.
아마도 관객들이 일반인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우리가 뭘 하든 환호해 주는 팬들과 달리 냉정한 눈으로 무대를 평가하는 관객들.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백야>는 어떤 느낌일까.
신날까?
가사가 한국어인데 이해가 가능할까?
재미있을까?
“……아니야.”
이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무대 10분 전.
관객들을 위해서 최대한 흥을 끌어 올려야 할 시간이었다.
“졸개들. 어깨동무.”
“가릿.”
“자. 뛰자.”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야야야~”
동생들과 함께 깡총깡총 뛰면서 최대한 흥을 끌어 올렸다.
미미한 땀.
올라가는 체온.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풀리면서 약간의 엔돌핀이 감돈다.
“자자!”
졸개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댔다.
“오늘 굉장히 중요한 무대입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미국 TV에서 <백야>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무대.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이거 하나 보여 주고 끝난다고 보면 됩니다.”
“넹!”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중요한 기회잖아.”
“네.”
“우리가 연습생 때부터 맨날 생각하던 게 뭐였어?”
“소고기?”
“그…….”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요.”
“맞아.”
연습생이랑 신인 때 매일 하던 생각.
-내게 기회가 한 번만 주어진다면…….
TJ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한 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무대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관객들도 부담스러워. 그러니까 적당히 힘을 빼고….”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딱 1명. 관객들 중에서 딱 1명만 우리 팬으로 만들고 간다는 생각으로 오늘 무대 하고 가자.”
“좋아요.”
“딱 1명. 그거면 돼.”
모든 관객에게 사랑 받는 무대는 없다.
뭘 하든 호불호는 갈리니까.
그런 까닭에 모두에게 사랑 받는 무대를 시도하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내 팬을 딱 한 명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무대를 하면….
희한하게도 그때부터는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자신감 있게 펼칠 수 있게 되곤 했다.
“뭐.”
내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알고 있을 얘기겠지만 한 번 해 봤어.”
“그래도 ASMR 같아서 좋았어요. 되게 비장미 넘치고.”
지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화이팅이나 한 번 할까?”
“예압.”
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몸을 들썩였다.
귓가의 헤드셋을 누르고 있던 스탭이 말했다.
「써니? 이제 올라가면 됩니다.」
「네.」
고개를 까딱이며 무대 위로 올랐다.
텅.
텅.
철제 계단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암전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조명이 들어온 MC석에서는 한 가수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후우…….”
백스테이지 쪽에서 동생들이 엄지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이팅.’
‘화이팅.’
나도 마주 웃어 보였다.
오늘 본무대에 앞선 짧은 인트로는 나의 단독 파트.
기존에 있던 <백야>의 무대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과연 미국인 관객들이 한국어 곡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인 관객들이나 우리 팬들이야 가사를 알기 때문에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아. 불면증에 대한 곡이구나 하고.
하지만 미국인 관객들은 그게 불가능했다.
특히나 <백야>는 내가 작사가에게 ‘최대한 영어 비중을 빼 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곡이다.
영어 가사가 들어가면 알아듣기 힘들다는 대중들의 피드백 때문이었다.
나만 해도 그랬다.
아예 영어만 한 소절 나오면 잘 알아듣는데 ‘내 심장은 beast 너의 heart는 fire 쿵짝쿵짝’하면 갸웃하다가 가사를 확인하곤 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가사를 몰라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무대여야 한다.
한국어 곡인 <백야>를 최대한 쉽게 소개하는 게 이번 무대의 목표다.
누가 봐도 쉽게 이해가 가능하도록.
그 때문에 기존의 메시지와는 약간 다른 방향의 무대를 보여 줄 예정이다.
[준비해 주세요.]
인이어를 통해 제작진의 카운트다운이 들려온다.
뜨거워지는 현장 반응.
그동안 프레젠터로 나온 가수가 우리를 소개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텐데요. 오늘 이 날만을 기다린 팬들도 있을 겁니다!]
“와아아아아아!”
[수백만 팬을 열광시키고 있는 글로벌 인기 그룹!]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함성.
프레젠터가 손가락으로 K하트를 그렸다.
[뉴블랙의 무대를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본무대의 시작이었다.
* * *
공연장이 뒤흔들릴 만큼 거대한 함성.
마치 빌보드 어워드가 준비한 최종병기가 등장한 듯한 느낌이었다.
“와…….”
“방금 들었어?”
“진짜 들을 때마다 적응 안 되네.”
수플레들의 함성에 일반인 관객들이 웅성거리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암전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뉴블랙 무대.’
16년도의 블루문 이후로 계속해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노력해 왔던 뉴블랙.
작년도에는 메트로를 발매하고, 메이시 퍼레이드와 각종 토크쇼를 통해 빠르게 인지도를 높여 왔던 뉴블랙이었다.
특히나 이번에 Answer와 멧 갈라의 패션에 대한 반응이 폭발하면서 이제 뉴블랙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얼굴은 자세히 모르더라도 그룹 이름은 다 아는 상황.
‘무대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던데.’
수백만의 시청자들과 현장 관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
무대의 조명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
왠지 모르게 무도회장 같은 분위기.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있는 댄서들이 무언가를 구경하듯 빙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 서 있는 절세미남.
‘의상 진짜 화려하네.’
우주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채 차분히 입을 열었다.
부드러운 영어 가사가 흘러나왔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
첫 소절부터 관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주가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말하듯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았다.
내 손을 잡아줘요
나는 당신의 것이 될 것이고
당신의 나의 것이 될 거예요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
하지만 왠지 모르게 위태롭다는 느낌을 풍기는 무대기도 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는 마치 옛날 미국의 여성 가수들이 불렀던 구애의 노래 같기도 했다.
‘음… 잘하긴 하는데 잘 모르겠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색이 없는 느낌이었다.
화려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표정.
그런 노래를 하던 우주가 노래를 마치고 눈을 지그시 감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
시청자들이 눈을 깜빡였다.
“뭐야? 야유가 왜 나와?”
“야유가 왜… 아!”
처음에는 진짜 야유가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시청자들이 이내 녹음된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우우우! 하며 야유를 하는 모습.
그러면서 조명이 서서히 변한다.
점점 주인공에게 조여드는 핀 조명.
‘우와.’
연기를 하는 배우처럼 눈을 지그시 감은 우주가 제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다.
처음에는 비관한 듯한 표정이었다.
괴로움.
사랑받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
하지만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그 표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미남의 입가에 머금어진 옅은 미소.
[♩♪♬]
잔잔한 피아노 멜로디가 음산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우주가 걸어오는 동안 옷가지들이 하나씩 떨어진다.
‘와.’
발걸음 하나에 화려한 외투가 떨어지고.
외투가 떨어지면서 그 안에 입고 있던 의상이 드러났다.
검고 세련된 의상.
분명 아까 전 의상이 더 화려했지만, 왠지 지금의 옷이 더 개성적이고 매력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수플레들이 흥분 가득한 환호성을 터뜨렸다.
마이크를 빙글 돌리며 걸어오던 우주가 제자리에 멈춰 서면서 카메라가 멀어졌다.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는 4인조.
그리고.
“오.”
“좋은데?”
매캐하게 깔리는 연기 속에서 오토바이 배기음 같은 기타 리프가 울려 퍼졌다.
도시를 누비는 악당들 같은 분위기.
멤버들이 가볍게 어깨를 흔드는 동안 비주가 마이크를 들고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 나야
넌 오늘도 내가 안 보이듯
눈을 감고 있지
메인댄서가 손으로 한쪽 눈가를 우아하게 덮고는 뒤로 물러났다.
손동작으로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표현하던 멤버들이 흩어지고.
우주가 걸어 나오며 웨이브를 탔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따가운 햇살에 괴롭지
환한 햇살에 눈이 부신 듯한 동작을 표현하는 우주.
신나는 노래에 방방 뛰며 호응하는 현장 관객들이 잡히고, 시청자들도 고개를 까딱였다.
‘신난다.’
무슨 가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네. 뭔 내용인지 알 것 같아.”
“그러게.”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가사는 딱 하나뿐이었다.
메인보컬인 리혁이 부르는 후렴구.
Cause you’re a villain
너는 악당이니까 라는 가사.
딱 하나뿐인 영어 가사였지만 희한하게도 그걸 듣자마자 무대가 이해 갔다.
-모두에게 사랑 받기 위한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차라리 너 스스로를 사랑하는 악당이 되라.
초반에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노래를 부를 때는 초조해 보였던 우주.
하지만 이라는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정말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너 스스로를 사랑하다 보면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길 거야.
그 때문일까.
처음의 단독 무대에서는 모두에게 사랑 받고 싶어함에도 홀로 있었던 것과 달리.
빌런스러운 느낌으로 무대를 하는 뉴블랙 멤버의 곁에 댄서들이 서서히 붙기 시작했다.
더욱더 풍성해지는 군무.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뉴블랙.
“와아아아아아아아-!”
팬들과 함께 후렴구를 노래하는 뉴블랙의 모습은 정말이지 신나 보였다.
뉴블랙의 팬은 아니지만 저 자리에 끼어서 놀고 싶은 기분.
‘진짜 잘하는구나.’
독무 파트에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날아다니는 지호.
반짝이는 장신구 가득한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향해 물총을 쏘는 듯한 동작을 표현하고 있었다.
왠지 효과로 물감 폭탄이 팡! 하고 터질 느낌.
“넷플러스 잘한다.”
“귀엽다. 넷플러스남.”
넷플러스 접속할 때마다 썸네일에서 자주 본 탓에 별명이 ‘넷플러스남’이 된 지호였다.
뉴블랙에서 춤으로 주목 받는 멤버는 아닌 듯했는데….
‘미쳤는데?’
아까 전 문라이트에서 메인댄서로 내세웠던 패트릭을 가져다 붙이기 미안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전체적으로 그랬다.
아까 문라이트의 무대를 볼 때는 그냥 귀여운 보이밴드 같은 느낌으로 훈훈하게 웃었다면.
여기는 아티스트 같은 분위기였다.
자기만의 또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무대를 하는 가수.
‘라이벌 같은 분위기는 절대 아닌데.’
연차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카테고리가 달라 보였다.
라이벌이라고 자꾸 방송에서 밀어붙이는 게 왠지 억지 밈 같아서 부자연스러운 느낌.
게다가 뭔가…….
뭔가 다르다.
“장난 아닌데.”
“눈빛이 진짜…….”
한국인들이 독기 있다고 표현하는 눈빛이 미국인들에게 이색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무대에서의 에너지.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고 있는 우주와 비주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이글거리는 눈빛을 빛낸다.
마치 그런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춤을 추다가 쓰러져도 괜찮다고.
“와…….”
게다가 멤버 각각이 자기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었다.
최고의 표정 연기.
최고의 랩.
최고의 보컬과 댄스.
그 모든 것을 올라운더로 보여 주고 있는 천재까지.
그런 에이스들이 모인 드림팀이 어떤 것인지 뉴블랙이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신인 따위가 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TV 속 가수들도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자기들끼리 서로 바라보거나 감탄한 표정을 짓고 있다.
Cause We’re villains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밤은 우리의 시간이야
우주와 리혁이 마이크를 든 채 허리를 젖힌다.
귀를 탁 트이게 하는 시원한 목소리와 함께 조명이 화려하게 빛났다.
-밤은 우리의 시간이야.
가사를 알고 있는 수플레들에게는 마치 그것이 새로운 별의 탄생처럼 보였다.
별이 탄생하듯.
비주의 손짓에 관객들의 시선이 먼지처럼 빨려 들어가고, 리혁의 보컬이 짙은 구름처럼 깔린다.
지호와 중현이 서로의 팔을 얽는 안무를 보이며 중심을 잡고.
그 가운데서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우주가 생긋 웃었다.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열린다.
Yeah
This is our time
정말로 그들의 시간이었다.
우주를 중심으로 뉴블랙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군무를 펼쳤다.
그 손에서 별가루가 쏟아져 내린다는 착시가 일어날 만큼 뉴블랙 멤버들의 땀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제야 미국의 시청자들에게 뉴블랙이 낯선 외국에서 온 가수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상했다.
특별하게 잘 알지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가수가 어느새 메인스트림의 한 축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도 K팝이라는 낯선 장르가 메인인 가수.
그런 가수가 이만큼 대중들에게도 알려질 만큼 성장했다는 건…….
‘……실력이 어마어마했다는 뜻이었구나.’
이 낯선 땅에서 그야말로 무대 하나로 악착같이 올라온 거였다.
마침내 음악이 끝났을 때.
객석에 앉아 있던 몇몇 가수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과 휘파람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포즈를 취한 채 숨을 헐떡이는 이들.
중계 카메라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자마자 현장에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무대에 쓰러진 채 실없이 웃는 멤버들.
그렇게 현장에서 환호성이 멈추지 않고 있을 때.
“곡이 괜찮은데?”
“저거 가사가 뭐지?”
TV로 보고 있다가 핸드폰으로 을 검색하는 시청자들.
분명 TV에서 이미 무대가 막을 내렸지만 몇몇 시청자들에겐 끝이 아니었다.
뉴블랙이 콘서트장에서 선보였던 무대 직캠.
음원 사이트에 적힌 영어 해석 가사 등등.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눈이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분명 뉴블랙은 단 한 명의 팬이라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공연을 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새롭게 유입될 팬들은 한 명이 아니었다.
* * *
뉴블랙의 무대.
와아아아아! 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문라이트 멤버들은 박수를 치고 있었다.
“Wow!”
그냥 주변 다른 가수들이 하는 거에 맞춰서 하는 호응.
최고 인기멤버인 콜린 에반스가 카메라를 의식해 환호성을 질렀다.
‘이래야 나중에 트위터에 올라오지.’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매너 좋게 감상하는 태도 등으로 영상이 올라올 터였다.
여우를 닮은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그러곤 무대를 바라보았다.
“음…….”
뼈가 부서져라 무대를 하고 있는 뉴블랙.
솔직히 무대 자체는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딱히 별반 감흥이 없었다.
‘그 정도인가?’
근처에 있는 다른 가수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미쳤다, 미쳤어’, ‘얘네 오늘 뭐야?’ 하고 있다.
프로 가수들의 눈에만 보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최고의 퍼포먼스 장인으로 꼽히는 에일로가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고.
퍼포먼스로 유명한 히스패닉계 가수 레지나가 옆자리의 동료와 함께 뉴블랙을 가리키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고 있었다.
‘전혀 모르겠는데.’
그냥 쓰러질 만큼 열심히 했다는 것 정도만 알겠다.
오히려 그에게는 이상한 무대였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그의 눈에 이해 불가능한 감정이 담겼다.
‘무대 한 번 한다고 팬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도 아니고.’
아무리 봐도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저런 무대를 할 정도의 연습량으로 SNS 소통을 더 하거나 토크쇼에 나가면 팬이 더 붙을 테니까.
‘게다가…….’
K팝은 어차피 마이너 중의 마이너다.
작년에 메트로처럼 영어로 된 곡이라면 모를까.
굳이 한국어로 된 곡을 미국 무대에서 저리 열심히 부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마이너한 분야기 때문에 상대가 무대를 잘해도 별반 위기감이 없었다.
멤버들 대다수가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우리 못 이길 텐데?
지금이야 뉴블랙이 그들보다 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미 뉴블랙은 최대치에 다다른 상태.
이번에 한다는 스타디움 투어도 마이너한 K팝 팬덤을 영혼까지 끌어모은 최대치라는 게 회사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저 스타디움 투어가 커 보이지만 미국에서는 저게 한계치야. 쟤네는 더 못 올라가.
그와 달리 그들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메이저한 보이밴드.
데뷔하자마자 이미 작년도 뉴블랙의 가 거둔 모든 성적을 넘어섰다.
라디오 지수.
스트리밍 지수.
때문에 1위를 못하고 있지만 그건 콜드 브라운이라는 업계 레전드 선배 때문일 뿐.
이미 뉴블랙은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끝까지 올라온 것 같은데 굳이…?’
저기서 얼마나 찔끔 팬을 늘려 보겠다고 저리 아등바등하는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콜린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들과는 환경이 다를 테니까.
미국과 영국 등에서 자유롭게 활동 중인 그들과 달리 한국이 근거지인 K팝 아이돌.
사실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몇 배는 더 불리한 환경.
그런 악조건을 뚫으려면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
이해 안 가는 눈으로 바라보던 콜린이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하라지.’
몇 년 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뛰어넘어 있을 터였다.
뉴블랙에게서 시선을 뗀 콜린이 옆자리에서 입을 헤 벌리고 무대를 보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뉴블랙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얘네가 문제인데.’
치열한 서바이벌의 생존자들.
그리고 그의 유력한 경쟁자들.
진정한 관건은 여기였다.
-어차피 그룹 활동은 몇 년 만 한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보이밴드가 꿈인 사람이 누가 있나.
남자 솔로 가수는 싱어송라이터나 래퍼가 아니면 진입 자체가 힘드니까 여기로 넘어온 거지.
그러니 그룹 활동으로 인지도를 얻고, 최대한 팬덤을 키워서 솔로로 데뷔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려면 그룹에서 가장 큰 개인 팬덤을 거느려야 하는데…….
‘얘네들은 아니고.’
아시안 멤버인 패트릭이나 흑인 멤버인 타이런 등은 경쟁자가 아니다.
타이런도 인기가 많지만 흑인들 사이에서의 열광적인 인기일 뿐.
그의 경쟁자는 제이콥과 헌터, 조쉬였다.
유력 경쟁자들을 바라보던 콜린이 옆자리의 타이런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어때? 재미있어?”
“끝내주는데! 와. 방금 뉴블랙 무대 진짜 미쳤다. 와하…….”
“그치. 진짜 잘하더라.”
너그럽게 웃어 주며 동료와 수다를 떨던 콜린이 객석의 팬들에게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동안 문라이트 멤버들이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었다.
각자 품은 꿍꿍이가 무엇이든, 지금처럼 일이 잘 풀리는 상황에서는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워드가 막을 내린 후.
“드디어 끝났네.”
“고생 많았다!”
문라이트 멤버들이 주변 가수들과 인사를 하거나 포옹을 했다.
제이콥이 ‘party!’ 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 애프터 파티로 갈까?”
“트로이 쪽이 진짜 재미있다는데. 거기로 갈까? 유명한 사람들 다 거기로 몰린 거 같더라.”
콜드 브라운 쪽 파티가 제일 화려하기로 유명하긴 한데 왠지 주최자가 그들을 싫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는 동안 그들을 지나가는 뉴블랙에게도 인사했다.
“무대 너무 멋졌어요!”
“진짜 어메이징하던데요. 간만에 감탄했어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주가 웃으며 ‘너희도 멋지던데’ 하고 지나갔다.
뒤이어 지호가 슥 웃으며 지나갔다.
마치 그들의 속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
“으흠…….”
왠지 묘하게 뜨끔하고 있는 한편.
콜린 에반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수시로 확인하는 음원 사이트의 차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무대 했으니까 조금은 올랐으려나?’
타이틀곡 의 순위를 확인했다.
#3. Starlight
‘역시.’
11위 정도였던 곡이 지금은 3위로 껑충 올라와 있었다.
그걸 보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조금 아래 무언가 눈에 딱 들어온다.
#7. Midnight Sun
그가 멈칫했다.
‘원래 순위가…….’
한참 낮았던 원래 순위가 일시적으로 높아져 있었다.
그가 침을 삼켰다.
순간적으로 목에 비수를 들이민 듯한 섬뜩한 느낌.
“…….”
약간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 마침 멀찍이서 헤일리 블루와 포옹하던 뉴블랙 리더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 사람들이 가득할 때와 달리 차분한 표정.
언뜻 보면 친근한 미소인데 묘하게 경고장을 날리는 듯한 웃음이었다.
-어설프게 머리 굴리지 마.
…마치 그렇게 말하는 기분.
그가 마주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차트 순위에 놀라긴 했지만 그뿐.
이내 콜린 에반스의 얼굴에 확신의 표정이 감돌았다.
‘잠시뿐이야.’
걱정할 필요 없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