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23화
멀찍이서 문라이트의 인기 멤버라는 콜린 에반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슬쩍 피하는 시선.
「왜 그래?」
나와 작별의 포옹을 하던 헤일리가 고개를 돌렸다.
몸을 돌려 사라지는 문라이트 멤버들의 뒷모습에 헤일리가 아 하고 말했다.
「저 애송이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거구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어설프게 머리 굴리는 사람들 특유의 눈빛을 조금 선호하지 않을 뿐.
헤일리가 말했다.
「저런 멍청이(fucker)들은 신경 쓰지 마. 계속해서 라이벌입네 뭐네 하지만 너희가 오늘 무대로 발라 버렸잖아. 정말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희가 훨씬 더 잘했다니까.」
동생에게 마음 쓰지 말라고 해 주는 큰누나처럼 내 어깨를 두드려 주는 헤일리.
내가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헤일리.」
「정말 고마우면 노래 하나 내놔.」
「헤일리에게 줄 만큼 좋은 곡이 생기면요.」
「최고의 곡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안 주려는 거지? 그냥 적당한 같이 부를 만한 곡 생기면 메일로 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약속한 거다?」
내 나이 스물여섯 살.
삼십 대 어른과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헤일리 블루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주변에 있던 다른 가수들, 배우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당신들 정말 오늘 너무 멋졌어요. 어찌나 무대에서 우아하던지.」
「어워드에서 자꾸 당신들과 저 친구들이 라이벌이라고 하던데, 비교 불가였어요. 저는 당신들을 응원했다는 걸 기억해 줘요.」
나는 너희의 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인사들.
눈을 초롱초롱하며 콩고물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적당히 답례하며 미소를 지었다.
주로 무대를 잘했다는 칭찬을 제일 많이 들은 것 같다.
“인정.”
중현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진짜 만족스러운 무대였어요.”
“다들 잘했어.”
당분간 라이벌 소리는 나오지 못하게 할 만큼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 준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저쪽에서 언론 플레이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멈추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무대 이야기는 안 하고 팬덤 규모, 음원 순위 같은 걸로 주제를 옮겨 가겠지.
그것만 해도 충분한 목표 달성이었다.
무대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의 강점이라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나쁘지 않아.”
“뭐가요?”
“이런 구도.”
갑자기 라이벌이라고 자칭하며 나타나긴 했지만 나쁜 구도는 아니었다.
중현이가 동의했다.
“맞아요. 야구도 압도적인 강팀 하나만 있을 때는 그냥 재미없거든요. 강팀 팬은 재미없어요.”
“와, 그래서 KG 팬인 거예여?”
“…….”
“지호야. 중현이 살살 때려라.”
아무튼 강팀을 추격하는 팀이 하나만 있어도 리그의 활력이 달라진다는 게 중현이의 말이었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 줄 수도 있는 일.
과거 우리가 ‘텐틴뉴’라는 경쟁의 시기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비주가 말했다.
“저는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러게.”
경쟁자의 실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경쟁은 경쟁.
그리고.
우린 데뷔하고 나서 한 번도 우리와 경쟁하거나 도전장을 내민 이들에게 져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들 빼곤 다 이겨 봤지.”
“후후후후…….”
초등학생 빼고는 다 이겨 본 아이돌 뉴블랙.
그것이 우리였다.
“우리도 대기실로 돌아가자.”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빵! 하는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졌다.
스탭들이 박수를 치며 반겼다.
“축하합니다!”
“얘들아! 수상 정말 축하해!”
“와아아아아아!”
[뉴블랙 빌보드 어워드 수상 축하!] 라고 적힌 생크림 케이크.
케이크에 붙은 초 세 개를 불면서 좋아하는 우리에게 석환 형이 말했다.
“3관왕 할 줄 알았으면 문구를 더 준비했을 텐데. 3관왕까지 할 줄은 정말 예상도 못 했거든.”
“지금 한국에서 기사도 엄청 나오고 있어!”
매니저 형들의 말에 국내 포털 뉴스를 바라보니 벌써부터 연예 뉴스 메인란이 바뀌어 있었다.
검게 볼드 처리된 문구로 [뉴블랙, 빌보드 어워드 3관왕..] 같은 기사가 보인다.
기분 좋은 일에 동생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행복하게 웃을 때였다.
“아.”
통화를 마친 민기 형이 TF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장소 섭외됐다고 합니다.”
“그래?”
우리도 호기심을 보였다.
“장소 섭외됐대요?”
“응.”
“잘됐네요!”
매니저들이 말하는 장소는 바로 미니 팬미팅 장소였다.
레드카펫에서 우리를 응원해 줬지만, 어워드는 보지 못하고 돌아갈 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
리혁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래서 장소가 어딘데요?”
라스베이거스의 한산한 거리일까.
아니면 공원?
아니면 아이스크림 트럭이 있는 예쁘장한 거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민기 형이 태블릿을 들어 보여 주었다.
“우와!”
독특한 인테리어의 호텔 앞.
분수대가 보이는 호텔을 바라보며 우리가 물었다.
“호텔 앞에서 해요?”
“아니.”
태블릿으로 톡톡 두드리자 해당 호텔의 공연장이 드러난다.
수천 석은 될 법한 크기.
“…….”
“…….”
우리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 장소 물색하다가 여기 호텔 측이랑 연락이 닿았는데, 자기네 공연장을 바로 빌려주겠다고 하더라고.”
“당일에요?”
“대신 호텔 CEO랑 너희가 같이 사진 찍고, 우리가 SNS로 호텔에 짧게 감사 인사 멘트를 남기는 게 조건이야.”
앞으로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할 수플레들을 자기네 호텔로 유치하겠다는 게 호텔 측의 목적인 듯했다.
너무나 좋은 조건이라 분명 행복해야 되는데.
“어…….”
조금 당혹스럽다.
“그… 미니 팬미팅을 요런 데서 해요?”
“현수막도 준비 끝났어. 이거 폰트 어때?”
영어로 된 현수막이 보인다.
[수플레들을 위한 애프터 파티!]
근사한 현수막과 함께 현장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즉석 팬미팅 무대의 사진이 보인다.
동생들과 우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이….’
‘커지고 있다…!’
흐뭇하게 웃는 우리 TF팀.
분명 미니 팬미팅을 작게 하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회사 사람들이 지나치게 유능하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다.
* * *
애프터 파티.
보통 어워드가 끝나고 가수들이 친목 도모를 위해 참석하는 파티다.
술잔을 든 가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거나 시끌시끌한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춤을 추는 그런 모습들.
대개 그런 것들이 애프터 파티의 전형적인 장면인데.
[수플레들을 위한 애프터 파티]
수플레들이 당황했다.
‘뭐, 뭐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호텔의 공연장에 있었다.
수천 석의 자리를 빼곡히 메울 만큼 가득한 인파.
얼떨떨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던 이들에게 이내 음악이 흘러나왔다.
‘백야다!’
곧바로 터져 나오는 환호성.
“와아아아아아아아-!”
특별한 조명은 없었다.
그저 음악과 함께 사복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특히 우주가 최애인 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스스로 고른 옷이 아니다!’
‘예쁜 옷!’
멀끔하게 사복 패션으로 갈아입은 뉴블랙 멤버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무대에 섰다.
[네…….]
마이크를 든 리더.
[조금 당황스럽죠?]
여기저기서 나오는 웃음들.
[원래 애프터 파티를 계획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음악 방송이 끝나면 하듯이 미니 팬미팅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의 매니저들이 지나치게 유능하다는 걸 말이죠….]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련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일이 너무 커졌어…’ 하던 가수들이 팬들에게 활짝 웃을 때였다.
리혁이 말했다.
[우리 그거부터 보여 줘야죠.]
[아. 맞다!]
백스테이지로 내려간 중현이 트로피를 한 움큼 들고 온다.
금색 마이크 모양으로 된 세 개의 트로피.
선우주와 졸개들이 초딩 같은 표정으로 자랑했다.
[바로 빌보드 트로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준 거예요.]
비주의 말에 수플레들이 방방 뛰며 환호했다.
수플레들에게 잘 보이도록 트로피를 든 멤버들이 무대 가장자리를 쭉 돌면서 트로피를 보여 준다.
“뉴블랙! 뉴블랙!”
“뉴블랙!”
한 손에는 달봉이, 다른 손엔 폰카를 들고 뉴블랙을 찍는 팬들의 입가가 행복하게 벌어졌다.
뉴블랙 멤버들이 마이크를 들었다.
[저희가 16년도 10월이었죠? 할로윈 음원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 미국에서 활동한 지가 1년이 좀 넘었는데. 항상 응원해 주시고 아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받은 세 개의 트로피는 정말로 여러분과 우리, 팀 뉴블랙의 성과예요.]
다시 한번 터지는 환호성.
팬들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던 가수들이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큰 팬미팅이 되긴 했지만, 오늘 여러분을 위해 애프터 파티를 열어 보고자 합니다.]
[저희가 뭘 준비했을지 궁금하죠?]
지호의 물음에 팬들이 ‘네!’ 하고 답했다.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직 준비된 것이라고는 그저 목소리와 귀여운 얼굴뿐.]
[노래로 때우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막상 준비가 된 게 없다고 한 것과 달리 준비된 것들이 많았다.
즉석 신청곡 받기.
입장할 때 적었던 포스트잇을 통해 뉴블랙이 Q&A로 질의응답 해 주기.
이벤트로 추첨을 해서 팬과 셀카를 찍어 주기.
‘최고다. 진짜.’
‘한국 팬들은 음악 방송을 할 때마다 이런 걸 한다는 건가…!’
‘다음 학기에는 한국으로 교환학생 간다.’
미니 팬미팅을 처음 겪어 보는 미국의 수플레, 구름단에게는 신세계와 같았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
미니 팬미팅에 참석한 팬들이 실시간 후기를 올릴 때마다 SNS에서 다른 수플레들이 부러움의 눈을 보내고 있었다.
-너희가 너무 부러워
-젠장 다음번에는 절대 똑같은 거 안 할 텐데
-나도 응원 잘할 수 있는데.. 나도 거기서 떼창 같이 할 수 있는데..
-네브라스카의 수플레는 오늘도 운다
일회성 이벤트라는 것을 알기에 슬퍼지는 수플레들이었다.
다음번에 팬들이 몰릴 것을 우려해 소속사도 1회성 이벤트라는 점을 강조했으니까.
그렇게 뉴블랙이 수플레들을 위해 열었던 애프터 파티 소식이 퍼질 때.
‘좋구나!’
미국의 수플레, 구름단은 몽실몽실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SNS를 통해 올라오는 대중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뉴블랙의 오늘 무대는 정말 죽여줬어. 왜 문라이트와 같이 비교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단순히 ‘boyband’라는 고리타분한 카테고리 분류 때문인 거야??
-라이브. 하모니. 모든 게 완벽했다.
-난 그들의 무대가 던지는 메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들이 타인과의 ‘다름’을 노래하는 방식 말이야.
특히나 뉴블랙이 이번 무대에 던진 메시지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꽤 유입이 있겠다 싶은 느낌.
특히나 문라이트와의 비교에 대해 언급하는 일반인들이 많았다.
-하도 문라이트 vs 뉴블랙이라고 해서 봤는데 정말 한쪽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더라
-교수와 학부생의 차이 같았음. 뉴블랙이 교수님이었다면 문라이트의 무대에 C 학점을 매겼을 거야
-문라이트가 유일하게 우월했던 점은 가사가 뭔지는 알겠다는 거?
-라이벌 (웃음) (웃음) (웃음) (웃겨죽는)
-개인적으로 저 두 그룹을 같은 카테고리로 묶는 건 뉴블랙에게 실례라고 생각해
-문라이트의 무대는 그거 같았어 ‘자 우리의 인기 멤버들은 백인들이고, 우리의 노래는 영어야’
어워드 측이나 문라이트 측에서 ‘라이벌!’ 하면서 언급만 하지 않았더라면 딱히 먹지 않았을 욕이었다.
수플레들이 비죽 웃었다.
‘쌤통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박 터지면서 팬덤 규모를 급속도로 불려 나갔던 문라이트의 팬덤 ‘선샤인(Sunshine).’
사사건건 뉴블랙을 걸고넘어졌던 그들에게 역풍이 불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그에 반격을 펼치고 있었다.
-영어 발음 진짜 못 들어 주겠네
-의상 볼때마다 촌스러움
-불공평한 비교라고 생각해. 문라이트가 언제 뉴블랙의 라이벌이라고 했어?
-일본인인데 문라이트 팬들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뉴블랙은 아시아에서 온통 미움을 사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간 것은 아시아에서 사랑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뉴블랙은 상을 3개나 탔는데 문라이트가 0개라는 건 말이 됨????? 빌보드 제정신이야??????
-한국어는 들을 때마다 뭔가 이상하고 거북함
수플레들이 코웃음을 쳤다.
‘무대 욕은 못 하네.’
자기들이 봐도 뉴블랙이 무대를 더 잘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터였다.
그 때문인지 정당한 공격보다는 합성과 날조를 앞세운 공격이 들어오고 있었다.
-뉴블랙의 인종 차별 발언
-흰 피부에 집착해서 클리닉에서만 수십억짜리 시술을 받았다더라
-한국은 성형대국www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임. 뉴블랙도 그것 때문에 인종 차별 심하다더라
-뉴블랙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고 봄
일본인들이 왜 저기 같이 끼어 있는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구름단은 그런 반응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선 넘네.’
적당하게 뉴블랙을 디스했다면 모르겠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인종 차별 발언을 창조해 가며 욕하는 분위기.
구름단이 적당히 캡처를 해서 자료를 조물조물하고는 그들의 상국으로 서신을 보냈다.
바다 건너 있는 수플레를 5천만이나 거느리고 있는 공화국.
곧장 한국 커뮤니티들에 글이 올라왔다.
[지금 뉴블랙 날조 자료 퍼뜨리는 미국 문라이트 팬덤]
[뉴블랙 인스타 테러 중인 미국인들]
[요즘 들어 갑자기 뉴블랙 날조글이 퍼진 이유]
뉴블랙의 수상 소식에 와아아 하면서 기뻐하고 있던 한국인들.
그들이 멈칫했다.
“이거 봤어요? 뉴블랙 상 타서 욕 먹고 있다는데요?”
“왜?”
“미국에 무슨 신인 보이밴드 하나 나왔는데, 거기 팬들이 말도 못 하게 극성이래요.”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네.”
가만히 있는 뉴블랙을 왜 건드린단 말인가.
인종 차별성 언행과 각종 루머에 분개한 한국인들이 참전하기 시작했다.
-백인들 자의식 과잉을 멈춰 주세요ㅠㅠㅠㅠㅠㅠ 뉴블랙도 여러분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말할게. 너희 오빠들 다 못생겼어..ㅋㅋ
-실력은 없는데 팬덤 큰 건 탐이 나고 ㅉㅉ
-우린 ㅅㅂ 뭐 맨날 외국에서 흥하면 별 이상한 애들 붙어
-이 듣보는 또 누구..?
-욕하려고 준비중이었는데 뉘신지???
-인종 차별잌ㅋㅋㅋㅋㅋ 세계에섴ㅋㅋㅋ제일 심한ㅋㅋㅋ나랔ㅋㅋㅋ
최근 몇 달간 미국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서 잘 몰랐던 한국인들.
이번 빌보드 어워드 때문에 뉴블랙을 견제할 대항마로 문라이트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터였다.
몹시 익숙한 이야기였다.
올림픽에서도 한국인이 잘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룰을 개정하거나 종목을 없애버리곤 하지 않던가.
‘이 새끼들!’
영어로 무장한 한국인들이 우르르 몰려가면서 문라이트의 팬들이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어어?’
‘어어?’
‘어 뭐야, 이 이상한 영어 쓰는 사람들은?’
아무리 규모가 크다 한들 결국 머글들에 비하면 한 줌.
다른 건 몰라도 온라인 전쟁에서는 패배해 본 적 없는 한국인들의 화력에 문라이트 팬들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가만 안 둔다!’
뉴블랙이 초록색 슬라임을 맞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키즈 초이스를 터뜨릴 뻔했던 한국인들.
구름단이 비죽 웃었다.
‘앞으로 너희 쉽지 않을 거다.’
지금까지 꽃길만 걸어왔던 문라이트 팬덤에게 그 누구보다 강력한 적들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빌보드 어워드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한국에서 다양한 축하 메시지가 들어왔다.
태현이, 한조, 은성이를 비롯해 지인들의 다양한 축하 메시지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 빌보드 어워드 3관왕 쾌거
-‘빌보드 어워드는 우리가 접수’ 뉴블랙 3관왕 수상에 눈물
-[칼럼] 그래미서 ‘무관’ 뉴블랙, 빌보드에선 3관왕인 이유
3관왕이라고 써 놓으니 꼭 대상을 탄 것처럼 보여서 머쓱하지만 그래도 좋다.
우리가 광고 모델을 하고 있던 곳들이나 각종 관계 기관에서 보내 준 축전도 좋고.
지호가 말했다.
“스보 애들이 그러는데 한국에서 지금 다 우리 얘기하고 있대요.”
“진짜?”
“방송국에서 온통 수상 이야기 하고 있다는데요.”
그래미 노미니 때만 해도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빌보드 어워드의 인지도가 가장 강력한 모양이다.
“오호.”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SNS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또 중국 사람들 왔나?”
지호가 물었다.
“뭐가요?”
“아니 SNS에 막 뱀 이모티콘이나 이상한 댓글이 많길래. 나 한복 입으면 중국 사람들이 달려오고 그러더라구.”
“형, 저도 그래요.”
“너도 그래?”
<신이>에서 사극 의상을 입었던 지호가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멧 갈라 의상에 분개한 중국 사람들이 아직도 욕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문라이트의 팬들이 우리 인스타 글마다 욕을 하며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욕을 달 거면 한국어로 다는 게 좋을 텐데.”
스페인어나 중국어로 욕을 달아 봐야 나는 제대로 못 읽는걸.
영어도 모국어가 아니라 그런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내용이 잘 안 들어온다.
중현이가 말했다.
“한동안 시끌시끌하겠네요.”
“그치.”
당분간은 좀 시끄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텐틴뉴 때와 달리 좋은 점이라면 악플을 달든 말든 나는 잘 모른다는 것 정도.
그런 생각을 하며 빌보드 트로피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흐하하하!”
빌보드 어워드 수상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나 드립들을 보며 동생들과 웃음을 터뜨렸다.
“아. 간만에 좀 멋진 걸로 기사 났다.”
“무대 장면 찍힌 거 봐. 형들, 저의 미모가 기가 막히게 찍혔어요.”
“아 멋지다. 멋져~”
간만에 멋진 걸로 화제가 된 우리였다.
지금 무대 직캠도 조회수가 쭉쭉 오르고 있고, 공식 미디어에서 올린 영상도 댓글이 수백 개씩 늘어나는 상황.
그걸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음?”
“어…?”
미튜브에서 다시 포털로 돌아와 연예란 메인을 새로고침하니 기사가 쫙 내려가 있었다.
“어어!”
“안 돼! 빌보드 기사!”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멋진 빌보드 썸네일이 내려갔다.
보다 더 중요한 소식을 보도하겠다는 듯….
‘빌보드가 인지도에서 졌다?’
‘아니. 대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앞에 썸네일이 딱 떴다.
-[여보낚시 - 삼블랙 특집] 비주의 생선조림 레시피 대공개!
그와 함께 ‘빌보드’, ‘뉴블랙’ 등으로 가득했던 실시간 검색어의 순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1위. 생선조림
2위. 비주 생선조림
3위. 중현 할아버지
“지금 여보 낚시 2화 방영 중이구나.”
“이걸 잊고 있었네요.”
“간만에 멋진 모습 보여 줬다고 좋아했는데….”
다 같이 촉촉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
“…….”
빌보드 어워드에서 수상을 거둔 날.
우리의 수상 소식이 낚시 예능에 나온 생선조림에게 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