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29화
예전에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K팝 산업이 크다고 한들, 결국 수출하는 만두 매출을 못 이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 우리가 만두는 이긴다.
콘서트와 굿즈 등 각종 부가매출을 합하면 이제 만두 정도는 이길 수 있는 뉴블랙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생선조림은 못 이겼죠.”
중현이의 말에 우리 모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앗… 아아…….”
“아아아…….”
그렇다.
빌보드 1위 가수 뉴블랙.
생선조림에게 대패.
“진짜 별거를 다 했는데…….”
멧 갈라에서는 휘황찬란한 의상을 입으며 레드카펫을 질주했다.
빌보드 어워드에서도 상을 3개나 받았다.
거기에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 100명 중 하나라며 초청 받아서 무대도 하고 왔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무엇인가.
-[트렌드 분석] 5월달 최고의 이슈는 ‘생선조림’.. “전 국민을 사로잡은 마성의 레시피”
-5월 인기 검색어 분석, 1위 생선조림에 이어 2위 뉴블랙
-‘비주 생선조림’ 화제.. 과연 그 맛의 비결은?
모든 활동을 다 합쳐도 비주가 개발한 생선조림 하나를 못 이기고 있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근데 비주 형이 만든 레시피는 인정할 만해요. 생선 요리 잘 못 먹는 나도 엄청 좋아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솔직히 인정할 만하다.
손쉬운 레시피.
간단한 재료.
거기에 기가 막힌 맛까지.
그 때문에 지금 인터넷에서는 후기글이 폭발하는 중이었다.
-존맛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결혼하자 비주야
-비주야ㅠㅠㅠㅠ 레시피 책으로도 내줘
-나 생선조림 진짜 좋아하는편 아닌데도 요새 매일 먹고 있음
-비주는 아이돌 안 했어도 요리로도 대박났을 거
-다른 레시피 있으면 더더 알려 주세요ㅠㅠ
이런 인기 덕분에 비주는 지금 여기저기 출연 중이다.
요리사들이 모인 프로그램에 가서 본인이 연구한 레시피를 공개하면서 칭찬을 받기도 하고.
식당 컨셉 예능에서 출연진들이 레시피 개발 회의를 할 때 나타나 깜짝 출연을 하기도 했다.
“형. 형.”
“응?”
지호가 말했다.
“우리도 기왕 이렇게 된 거, 뉴니버스 다음 프로젝트 할 때 요리 예능 컨셉으로 잡으면 어때요?”
“해외에서 식당하는 그런 거? 요즘에 너무 흔하지 않나?”
“아녀. 그냥 꼭 외국 사람들한테 요리하는 거 말고도, 그냥 요리 관련으로 컨텐츠 뽑는 거예요.”
“호오.”
은근히 솔깃했다.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굴러 갔다.
띠롱.
[국민 아이돌 + 맛있는 요리 = ???]
띠로로롱.
777이 나온 슬롯머신처럼 머릿속에서 시청률이 폭발하고 있었다.
“된다. 이건 무조건 터진다.”
“내가 어지간하면 설레발 안 치는데, 이건 진짜 잘 될 거 같아요.”
동생들과 고개를 끄덕였다.
구재영 피디님과 <뉴니버스> 관련 회의를 할 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비주가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지금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었다.
“여기 비주 형 기사 또 떴어요. 요리 평론가 분이 비주 형이 만든 레시피에 코멘트한 거래요.”
“그래?”
“그리고 트위터에서 비주 형을 언급한 이분은 유명한 외국 셰프인데…….”
공유할 만한 게시글이 있으면 단톡방에 공유하기도 하고.
이번에 비주가 만든 생선 조림에 대해 나오고 있는 반응들을 모니터링했다.
대부분 너무나 좋은 반응들인 까닭에 내 입가에서 절로 미소가 흘러나온다.
“헤헷… 비주… 헤헤…….”
“헤헤헷… 둘째 형…….”
우리의 입가가 헤벌쭉 올라갈 만큼 다양한 반응들이 가득하다.
“비주 언급했다는 외국 셰프, 되게 유명한 분 아닌가?”
“맞을걸요. 바비 로스.”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에 자주 나오는 외국 셰프가 비주를 언급했다는 것도 보인다.
근육이 어마어마한 흑인 셰프.
역동적으로 근육을 꿈틀거리던 남자가 주방장 복장을 입은 채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구독자 여러분이 뉴블랙의 멤버가 만든 레시피를 한 번 보라고 하더군요. 그 팬들이… 수플레? 맞나요?]
댓글을 읽던 셰프가 ‘I love souffle’ 하면서 눈을 찡긋한다.
[해당 레시피를 검토해 봤어요. 굉장히 인상 깊더군요. 물론 맛은 제 취향과 달랐지만, B가 레시피를 연구한 방식이 굉장히 신선해 보였어요.]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데도 본능적인 감으로 레시피를 개발한 비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레시피를 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개량하는 셰프였다.
“오오.”
“오, 저걸 저렇게…….”
처음에 만든 비주의 생선 조림 레시피가, 전문가가 몇 번 손대고 나니 지중해식 생선 스튜처럼 변했다.
침을 꼴깍 삼키는 우리에게 말하듯 셰프가 윙크했다.
[뉴블랙이 이걸 보고 있다면, 한 번 우리 식당에 놀러 와요. 우리 요리 콜라보 해 보자고요.]
“저기 어디예요? LA면 우리 로즈볼에서 콘서트할 때 방문할 수 있는데.”
“LA래.”
“형, 우리 가요.”
“시간 되면 가 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가 찍은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다른 인터넷 반응들도 확인했다.
“으음.”
물론, 모든 반응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부정적인 반응들이 보인다.
-조미료 개많이 쓰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ㅈㄴ 조미료 떡칠해서 먹는 거임
-여러분. 미원 저 정도로 넣으면 안 맛있는 요리가 없습니다.
-저렇게 먹으면 뇌손상 올듯
-조미료 떡칠해 놓고 요잘알인척ㄹㅇ
-비주 씨 항상 예쁘게 보고 있는데 너무 레시피가 msg 범벅이네요. 건강에 해로워요
조미료를 많이 쓴다는 비판들.
“그 정도로 많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요.”
조미료를 적당히 쓰는 레시피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많다고 본 네티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양한 것 아니겠는가.
그만큼 비주 요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다 건너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거 봤어요?”
리혁이가 일본어로 된 뉴스를 보여 주며 말했다.
“비주 형 일본에서도 기사 났어요.”
“?”
[한국 초-인기 아이돌 뉴블랙, 생선조림마저 정복?]
…이라는 제목의 게시글.
심지어 관련 동영상도 많았다.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비주 형 레시피를 따라 했대요.”
“그래…?”
일본인 패널들이 생선조림을 먹으며 코멘트를 하는 영상이 보인다.
[음. 맛있는데 말이지. 묘하게 한국보다는 일본적인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할까.]
[에? 사카이 상도 느끼셨어요?!]
[으음.]
화가 모자에 콧수염을 기른 일본의 음식 평론가 사카이 노부오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음식에서 느낀 건 말이죠. 역시 생선조림 레시피는 일본이 제일이라고 할까. 전체적으로 비주의 레시피에서 그런 영향이 보이네요. 일본의 가정식 고등어조림이 떠오른다고 할까.]
[역시.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 가정식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헤에. 대단해!]
[뭐, 그럴 만도 할까요. 일본의 요리는 세계 4대 요리에 속하니까요.]
우리가 짜게 식은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
“…….”
내가 리혁이에게 물었다.
“근데 4대 요리라는 게 있었어?”
“3대 요리라고 알려져 있을걸요. 공식적인 건 없는데, 보통 방송에선 태국이랑 프랑스, 이탈리아. 이렇게 세 곳 많이 꼽아요.”
아무튼 바다 건너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는 생선조림을 바라보며 웃을 뿐이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도 반응이 있을 정도라니.
아무래도 요리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 메이저하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음악보다 더 임팩트가 큰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음악 안 듣는 사람은 있어도 밥을 안 먹는 사람은 없잖아요.”
불현듯 ‘쿡방’이라고 불리는 방송 트렌드가 떠오른다.
우리가 데뷔했을 즈음부터 갑자기 우후죽순으로 다양한 음식 예능이 생기더니, 지금은 메이저 예능의 한 축이 된 포맷.
해외에서 식당을 차리면서 영업을 하는 예능은 요즘에 흔한 포맷으로 취급 받는 중이다.
지호가 말했다.
“근데 형들 그거 알아요? 팀장님이 그러는데 TF팀에 전화 엄청 오고 있대요.”
“어디서?”
“그거 뭐지, 프랜차이즈나 밀키트 만드는 회사들에서 연락 엄청 온다던데요. 울 아빠 회사도 껴 있었대요.”
비주랑 콜라보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 회사들인 모양이었다.
나 같아도 탐날 만하다.
유명 회사들의 식품 개발팀과 비주의 레시피를 콜라보해서 출시하는 다양한 상품들.
-비주가 개발한 슈퍼롤링파워 치킨!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그런 가상의 음식들을 상상하다가 핸드폰 속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활짝 웃고 있는 비주.
곳곳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다양한 콜라보 요청.
비주의 레시피가 만들어 낸 화제성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흐음…….”
무언가 각이 보인다.
어쩌면 음악보다 더 메이저할 수 있는 요리라는 소재.
맛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사 아니겠는가.
“음?”
중현이가 물었다.
“왜 그래요, 형?”
“우리 글로벌 앨범 아이디어 말이야.”
전 세계인을 타깃으로 하는 글로벌 앨범.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 새로운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쏙 하고 떠올랐다.
내가 동생들에게 물었다.
“주제로 요리는 어때?”
* * *
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괜찮은데요?”
“요리 괜찮은 거 같아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관심사는 달라도 맛있는 음식 먹는 데는 진심이니까.”
“타이틀곡으로 쌀(Rice) 어때요. 형?”
동생들은 모두 찬성.
그리고 이번 생선조림 대란의 주인공인 비주도 돌아와서 찬성을 표했다.
“저는 좋아요!”
“어때? 괜찮은 거 같아?”
“네, 요리 관련해서 춤도 재미있게 뽑을 수 있을 것 같고. 간만에 어려운 안무도 해 보고…….”
비주가 말을 이었다.
“…근데 제가 곡을 쓰는 건 아니니까. 형이 한 번 해 보다가 안 되겠으면 포기해도 괜찮아요.”
“알았어.”
“부담 가지지 마요. 형.”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도와주겠다는 말들을 들으며 웃었다.
일단 동생들과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으니, TF팀과도 의견을 한 번 나눠 봐야겠다.
글로벌 앨범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회의가 필요한 기획이었다.
“그럼 이 부분은 우리가 좀 더 구체화를 시켜 보고…….”
회사 사람들에게 보여 줄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하는 한편.
나는 그동안 밀린 일을 처리했다.
동생들과 내가 벌려놓은 일이 한두 개가 아닌 까닭에 정말 여기저기 불려 갈 곳이 많았다.
우선은 우리의 단독 예능.
“안녕하세요! 피디님!”
“어어, 이번에 수상 축하해. 빌보드 3관왕이라면서.”
“네!”
레몬 엔터의 <뉴니버스> 사무실에 앉아 있던 구재영 피디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뉴니버스가 궁금해서 왔구나?”
“네.”
“지금 일단 1회는 편집이 다 끝나 가. 가편집본 있는데 한 번 먼저 봐 볼래?”
“아뇨. 나중에 본방으로 볼래요!”
두근두근함을 간직하고 싶다는 우리의 말에 상대가 웃었다.
“기대해도 좋을 거야. 생각보다 잘 뽑혀서.”
“시청률 대박 기대해도 될까요?”
“음… 그건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본 사람들 중에 재미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거 같아.”
NBS 채널이 신생 방송국인 만큼 확실하게 시청률 대박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듯했다.
최근 들어 다양한 드라마나 여러 예능을 방송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케이블답게 영세한 모양이다.
“지금까지 초대박이 터진 시청률이 드라마 <오작교 위 고등학교>인데… 이게 5퍼센트?”
뉴니버스의 총괄 제작자이자 NBS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함을 가지고 있는 구재영 피디님이었다.
채널 사정에 대해 설명을 해 주던 구 피디님이 말했다.
“예전에 <슬립> 방영했던 GTV 기억하지? GTV나 종편이 대형 마트라면 우리는 동네에 있는 슈퍼 정도로 생각하면 돼.”
“…이번에 잘 터졌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소원이 없지.”
가슴이 콩닥거린다.
여기저기서 관심은 엄청 끌어모으긴 했는데 실제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지는 미지수.
동네 슈퍼에서 동네 중형 마트 정도로 진화를 하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운전면허 다음으로 진행할 2차 특집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나머지 밀린 일들도 처리했다.
“일단 너희 우비즈 준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와 비주가 유닛으로 나올 우비즈(Woobiz)의 기획에 대해서 TF팀과 논의를 하고.
각자에게 들어온 개인 스케줄이나 대본, 기획안 등도 받아 들었다.
지호는 영화 대본.
중현이는 이번에 인수한 헤이션의 힙합 레이블과 함께 진행하는 앨범에 대한 기획안.
리혁이와 비주는 OST나 예능 기획안.
그리고.
동생들이 저마다 밀렸던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나도 회사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우리 아빠의 전기 영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어어!”
전화기를 끼고 있던 직원들이 반갑게 눈인사를 하고.
그 속에서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던 김보라 감독님이 취침 배낭 속에서 부스럭 일어났다.
“우주 씨 왔어요….”
“감독님. 목소리가…….”
“몸살 기운이 좀 심해서 그런가 봐요.”
눈에는 다크서클.
입술이 잔뜩 부르튼 감독님을 바라보며 아이고 할 뿐이었다.
스탭들에게 카페에서 사 온 아메리카노를 돌리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생명수처럼 쪼르릅 들이켜는 직원들의 표정은 좀비 그 자체였다.
“그…….”
내가 물었다.
“괜찮으신 거죠?”
“원래 영화란 게 이래요. 이쪽 업계 일은… 좋아하지 않으면 못해요. 진짜로.”
할리우드 제작환경과 똑같이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들.
한국보다 근무 환경이 훨씬 더 나은 편이라고 하지만 할리우드 쪽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흐으음…….”
내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에 그들이 물었다.
“왜 그래요?”
“아. 갑자기 지호 생각이 나서요. 걔가 이번에 연기 활동도 병행해 보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신이> 말고요?”
“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지호도 연기 욕심이 많아서 다른 것도 해 보고 싶다더라고요. 마침 대본도 많이 들어오고 해서 영화도 찍어 보고 싶다는 것 같은데… 과연 병행을 해도 괜찮을지 의문이 들어서.”
“그러니까….”
캐스팅 디렉터 존 덕규 최가 물었다.
“지금 뉴블랙 스케줄에 영화를 핫소스처럼 뿌리는?”
“네.”
“지호 씨가 입원할 병실부터 알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쓰러질 거예요.”
“안 그래도 말려야 하나 생각 중이에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힘들어도 본인이 해 보고 싶으면 해야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스탭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촬영은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아직까지는 순조로워요. 국내 촬영은 거의 다 완료가 됐고, 이제 나머지는 외국에서 촬영해야 하는 스케줄들이라.”
돈 쓸 일이 가득하다고 말하던 김보라 감독님이 갑자기 아 했다.
“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있었는데.”
“네?”
“우주 씨, 미국에서 뭐 하고 온 거예요?”
“?”
“아니, 우주 씨 미국에 간 뒤로 갑자기 투자 금액이 확 늘더라고요. 투자자들도 여기저기서 더 나오고.”
다른 스탭도 맞아 하면서 말했다.
“유명한 배우들도 카메오로 나오겠다고 얘기 나오더라고요.”
“그중에서 로니 루카스는 이미 카메오로 나오기로 확정했어요. 나 그 배우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요?”
내 물음에 스탭들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유명한 배우들이나 투자자들이 연락을 하냐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멧 갈라 때문에 그런가 봐요.”
“아…….”
멧 갈라에서 인맥을 다지면서 영화 관련해 홍보를 했던 게 제법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날이 규모가 커진다는 말에 살짝 부담이 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영화 관련해서 진행사항을 업데이트하는 한편, 제작진이 나에게 물었다.
“OST 관련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다음 달 정도에는 본격적으로 녹음 준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곡들은 다 완성이 됐고, 이견우 선배님도 트레이닝 마무리 단계라서….”
“그리고 이건 공연 씬을 저희가 구상한 건데…….”
“아, 네.”
그렇게 몇 시간.
영화 음악과 관련된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주 씨는 이제 투어 준비하러 가시나요?”
“투어도 준비해야 하고. 또 할 게 많네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애기 육아하러 가야 돼요.”
“…….”
“…….”
격하게 흔들리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눈동자.
그제야 다른 회사 사람들과 달리 이 사람들이 한국 예능 소식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그… 육아 예능 말하는 거였어요.”
“허어…….”
“영화 터지는 상상했어요. Holy…….”
심장을 부여잡은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
주어를 잘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이었다.
* * *
그렇게 모든 업무를 마무리한 후.
육아 예능 <서준이는 마트에서 살아>에 출연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회의실에 모였다.
“모두 모이셨나요?”
“네!”
그런 우리의 말에 대답하는 회사 직원들.
우리와 친하면서 동시에 지금 자녀를 육아하는 중인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육아 예능은 처음 출연하는 거라 여러분에게 조언을 구해 보고자 합니다.”
“꿀팁 전수. 그런 거?”
“네.”
홍보팀의 직원 한 분이 고민을 하곤 말했다.
“육아에 대해선 딱 한 가지만 기억하고 가면 돼. 육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핵심.”
“그게 뭔가요?”
“너희가 지금 준비를 엄청 했을 거잖아.”
“네.”
그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준비를 많이 했을 거야. 육아 관련해서 책도 보고, 장난감도 준비하고, 멋진 계획도 준비하고.”
“그…렇죠?”
“하지만!”
그 말에 직원들이 ‘하지만!’ 하고 답했다.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너희의 영혼은 부서지고, 너희의 몸은 아이들의 발 아래 부서지게 될 것이다…!”
“후후후! 후후후후!”
자상한 조언은커녕 저주를 퍼부으며 깔깔 웃는 직원들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인 농사 대실패.’
‘완전 실패.’
어쩌다 보니 이상한 어른들만 주변에 두게 된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