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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937화 (93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37화

아이들의 동심은 소중하다.

우리를 마트 삼촌으로 알고 있는 아기들에게 ‘사실 삼촌은 마트 삼촌이 아니란다!’ 하면 동심 파괴 아닐까?

그 때문에 매니저들에게 부탁을 했다.

-이따가 잠시 들어와서 ‘마트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라고 해 주실 수 있나요?

-넵. 완벽하게 해내겠습니다!

우리가 기대한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뉴블랙 분들! 이제 마트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헉,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아이들아! 삼촌들은 이제 마트로 돌아가 볼게~ 안뇽!

그럼 애기들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삼촌 안뇽!’ 하면서 손을 흔들어 주고, 우리도 같이 아쉬워하며 작별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멋진 그림!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 아이들과의 작별은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삼촌, 마트로 데려가지 마!”

“안 돼!”

“나쁜 아저씨야!”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우리 매니저들이 아이들에게 쫓겨 현관 밖으로 도망쳤다.

여전히 씩씩거리는 아이들.

내가 봐도 그럴 만했다.

“아니…….”

리혁이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저렇게까지 준비를 해 달라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수상하게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찾아와서 ‘마트로 돌아가시죠’ 하며 팔을 붙잡는다면 나 같아도 저럴 것 같다.

“삼촌 여기 있어도 돼!”

“여기 살아도 돼. 우리 집에 방 많아!”

우리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얘들아.”

“응!”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삼촌들은 괜찮아.”

“…….”

“진짜 괜찮아. 저 아저씨들은 마트에서 삼촌들을 지켜 주는 사람들이거든.”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거의 10분 정도 이야기를 하며 달래 주었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시무룩한 여울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던 혜원 선배가 말했다.

“여울이가 삼촌들이랑 헤어지는 게 싫어서 그런가 봐.”

“그래? 헤어지는 게 싫어?”

우리의 물음에 여울이네 삼남매와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지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

“헤어지면 누구 삼촌이 제일 보고 싶을 거 같아?”

“토끼 삼촌!”

“무생물에게 졌네….”

내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삼촌들도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쉽지만, 삼촌들도 이제 마트에 가서 일을 해야 돼. 삼촌들이 마트에 안 가면 다른 사람들이 마트에서 물건을 사기가 힘들어지거든.”

“응…….”

“다음에 기회 되면 삼촌들이랑 또 보자.”

“응…!”

여전히 슬프지만,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납득한 표정들이었다.

현관에 선 우리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안녕!”

“삼촌들이랑 마트에서 또 만나자~!”

작별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여울이네 삼남매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달칵-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우리가 몸에 힘을 쭉 뺐다.

“휴우.”

“후우…….”

어느덧 해가 저물어 있었다.

초저녁이 된 바깥을 바라보며 동생들과 내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와…….”

옷에 고정된 마이크를 조심스럽게 떼어 내면서 웃음이 나왔다.

밖에 서 있던 원석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진짜 장난 아니네요. 태국에서 돛새치 낚았던 때만큼 체력을 쓴 거 같아요. 애기들 체력이 너무 좋아서…….”

원석이 형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동안, 우리의 시선이 구석에 쭈그린 로드 매니저 3인방에게 향했다.

아이들에게 고초를 당해서 그런지 양복이 꾸깃꾸깃해져 있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고생이라고 하기에는 좀…….”

큼직한 체격의 민수 씨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오히려 저희 때문에 귀가가 더 늦어지신 것 같아서…….”

“괜찮아요. 오히려 예능적으로 더 재미있는 분량을 뽑았으니까, 그거면 됐죠.”

엘리베이터에 타는 동안 지호가 물었다.

“그런데 연기 생각보다 잘하시던데요. 경호학과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대학생 때 엑스트라 알바 뛰고 그랬습니다. 선배님들 중에 스턴트 배우가 많아서 일자리 소개도 받고….”

“아하.”

“이쪽 분야에 항상 관심이 많았거든요.”

어쩐지 연기를 꽤 실감나게 해서 신기하다 했다.

뒤통수를 긁적이는 민수 씨를 보며 웃고는 정장 옷매무새를 다듬는 종완 씨와 지운 씨를 바라보았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네?”

“이렇게 준비해 주셔서요.”

솔직히 매니저 입장에서는 그냥 ‘마트에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하면 편하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이벤트를 위해서 정장까지 준비해 오는 준비성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고마우면 고기죠.”

중현이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잘 끝낸 기념으로 고기나 먹으러 갈까요?”

“헛….”

“한남동에 소고기 맛집 하나 있거든요. 다 같이 가서 오늘 고기 회식 한 번 하자고요.”

“감사합니다…!”

매니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 고기를 안 먹으면 쓰러질 것 같았으니까. 이미 살이 1키로는 빠진 기분이었다.

종완 씨가 설렌 얼굴로 물었다.

“바로 고깃집으로 갈까요?”

“아뇨.”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마무리할 게 하나 있어요.”

아직 한 가지 남아 있는 게 있었다.

*   *   *

아파트 104동 앞.

초저녁 하늘 아래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비비야, 이리로 가자.”

-멍!

강아지 목줄을 쥔 채 산책을 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그것만 본다면 정말이지 평범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104동 앞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만 열 명이 넘었다.

“흠흠.”

“으흠…….”

시선을 마주친 주민들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피했다.

‘저 사람도 뉴블랙 보러 왔네.’

‘아씨, 이럼 완전 티 나는데.’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20대 대학생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녀는 수플레가 아닌 호일이었다.

-오늘 아파트에 뉴블랙 왔나 보던데?

-진짜로?

-그거 여울이네 촬영 왔나 봐. 마트에서 장 보는데 애들이랑 같이 있더라고. 언제까지 찍냐니까 저녁까지 찍는대.

-그럼 저녁 때 집에서 나오는 거네?

엄마가 전해 준 말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대학생이었다.

‘이러면 티가 안 나겠지!’

뉴블랙을 보고 싶지만 막상 뉴블랙 앞에서 오래 기다렸다는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어머!’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계획이었는데.

주변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켜 주는 사람만 10명이 넘었다.

‘에이.’

우연한 만남은 이미 그른 것 같았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장하려고 했던 호일이 눈물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헉!’

아파트 현관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곧장 뽈뽈 뛰어와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에만 해도 말을 걸려는 계획이었던 대학생이 실물 뉴블랙을 보고 그 상태로 얼어붙었다.

“엇… 안녕하세요.”

“저희 보러 오셨죠?!”

너무나 당당한 질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핸드폰 주시면…….”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핸드폰에 셀카가 저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손에 들려 있는 명함과 친필 사인까지.

태어나서 이 정도로 잘생긴 사람들은 처음이라 얼어붙어 있었던 그녀가 겨우 입술을 뗐다.

“그…….”

“어떻게 저희를 기다리고 계신 분인지 알아봤냐구요?”

“네에…….”

뉴블랙이 회상하듯 먼 곳을 보며 말했다.

“농촌에 촬영 가면 이런 일이 많거든요. 갑자기 어르신들이 깨를 털러 나오신다거나, 저희가 부른 트로트 곡을 근처에서 흥얼거린다든가. 우리 집이 밥이 맛있는데라고 하신다든가….”

“아아…….”

“익숙한 일이죠.”

그런 말을 하던 우주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호일이시네요.”

“네.”

“좋은 거 하나 알려 드릴까요?”

“네? 네….”

우주가 비밀을 말해 주듯 속삭였다.

“수플레가 되면 혜택이 두 배.”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 보험 약관을 읊어 주듯 빠르게 말했다.

“공식 굿즈 구입과 콘서트 선예매, 각종 공연 추첨 기회가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뉴블랙과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진행되는 특별 이벤트까지…!”

“저희 뉴블랙은 차세대 오징어 공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업 사원처럼 속삭이는 뉴블랙 멤버들의 말에 그녀가 홀린 듯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가입할 수 있나요?”

“어… 잠시만요.”

그러더니 뉴블랙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가입 끝났지?”

“네.”

“아, 죄송합니다! 내년 봄을 기다리셔야겠네요~! 하핫!”

꺄르륵 웃어 보이는데 묘하게 열 받았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상시 모집을 못하거든요. 상시 모집하면 콘서트 예매 때만 가입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러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수플레 가입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왠지 모르게 솔깃해졌다.

‘이런 연예인이면 팬 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하고…….’

실물도 실물이지만 처음 마주한 뉴블랙의 성격은 너무나도 좋았다.

게다가 지금은 가입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끌리는 느낌이었다.

“흐음…….”

그렇게 한 명의 대학생이 잠재적 수플레의 굴레로 빠져들어 가고, 뉴블랙이 주민들에게 팬 서비스를 떠먹여 주고 있을 무렵.

“흥.”

엘리베이터에서는 한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내려오고 있었다.

7살 유빈이었다.

‘노래 불러 준다고 했으면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면 그녀에게 특별하게 노래를 불러 주겠다고 약속했던 뉴블랙이었다.

그런데 바로 떠나 버렸다.

정말 붙잡을 시간도 없이 쌩 하고 가 버렸다.

“…….”

유빈이 풀이 죽은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부모가 웃음을 삼켰다.

-밖에 나오시면 저희가 짜잔! 하고 서프라이즈 할게요.

뉴블랙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도 모르고 있는 딸이었다.

“우리 유빈이, 슬픈 일이라도 있어?”

“아니…….”

“진짜로?”

“응…….”

누가 봐도 시무룩한 표정에 엄마와 아빠가 양쪽에서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아파트 공동현관을 나섰을 때였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유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백야다!’

어디선가 뿅! 하고 등장한 뉴블랙 멤버들이 백야를 직접 라이브로 불러 주고 있었다.

유빈이 멍한 얼굴로 입가에 손을 올릴 때였다.

“?”

최애인 우주가 노래를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신사가 레이디에게 인사하듯 손을 부드럽게 휘젓던 우주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손에서 꽃 한 송이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받으라는 듯 윙크하며 웃는 우주.

“……!”

꽃을 받은 어린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뉴블랙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가 평생 수플레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 그냥 수플레 가입해야겠다.’

지켜보던 대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했다.

그동안 아파트 앞에서 열정적으로 <백야>의 무대를 선보이는 국민 아이돌.

늘 그러하듯, 사소한 순간 하나하나에 팬을 늘려 가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   *   *

<서준이는 마트에서 살아> 촬영 종료.

저녁으로 고기를 먹고 돌아온 우리가 숙소에 널브러졌다.

“고생했다. 졸개들아….”

“형도요…….”

흐느적거리는 오징어들의 모임 같다.

“그래도 보람이 있는 것… 같아요…….”

“보람이 있지…….”

우리가 <서준이네>에 출연한 목적은 <여보 낚시>와 비슷한 이유다.

중년 남성들이 주 시청자인 여보 낚시와 마찬가지로, 평소 뉴블랙을 접하지 않는 시청자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

“그래.”

내가 말했다.

“이걸 발판으로 삼아서 우리 뉴블랙은 이제 예능인 9위에서 벗어나… 3위 이내로 도약을…….”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예능인 9위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인정.”

중현이가 냉큼 받았다.

“9위면 잘한 거죠. 전국 랭킹 9위인 거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사실 가수인데 굳이 예능에서까지 1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당.”

“너무 높은 순위는 정감이 없는 거 같아.”

어찌나 힘든지 저도 모르게 합리화를 하는 발언들이 튀어나왔다.

리혁이가 말했다.

“안 돼. 안 돼. 우리 약해지면 안 돼요.”

“그래. 약해지면 안 되지…….”

왜 자꾸 눈물이 나오는 걸까.

귓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꾸만 환청처럼 맴도는 기분이었다.

온몸이 욱신욱신하다.

“중현아. 나 파스 좀 붙여 주라.”

“저 너무 힘들어서 조금만 이따가요.”

“너도 힘들 때가 있구나.”

그런 말을 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힘들어서 뭘 못하겠는데, 잠은 막상 안 와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그런 상태였다.

“우리 기사 떴네.”

“그래요?”

마트에서 우리를 목격했던 이야기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기사화 되어 있었다.

-뉴블랙, 마트에서 목격.. ‘서준이네’ 촬영 중

-“이번엔 육아 예능이다!”.. 국민 아이돌은 무한 진화 중

-‘서준이네’ 김미나 PD, “분량이 너무 많아 고민 중”

다양한 기사들에 댓글이 달려 있다.

-ㅋㅋㅋㅋㅋㅋㅋ아 기대된다

-희망편 vs 절망편ㅋㅋㅋㅋㅋㅋ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어느 쪽이든 개웃길거 같음

-로봇 유모차 같은 거 나올듯

-헉ㅠㅠㅠㅠ 내 최애 예능에 뉴블랙이ㅠㅠ

-헐 여울이네랑 해???? 졸귀 + 졸귀

“으음.”

“이번엔 그렇게 임팩트 있는 걸 하지는 않았는데…….”

버라이어티와 달리 관찰 예능이라 특별하게 뭘 할 만한 게 없었다.

애기들과 함께 로봇 유모차에 타서 분노의 질주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평범하게 노래만 부르고 왔는데…….”

너무 약한 것들만 하고 온 것 같아 괜히 근심이 되기 시작했다.

무릇 예능에 나간다면 적어도 잉어한테 뺨 한 대쯤은 맞고 돌아와야 기본 아니겠는가.

임팩트가 약했다며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형, 근데 <토끼 삼촌> 노래는 어떻게 할 거예요?”

“그거…….”

“방송 나오면 반응 괜찮을 거 같은데.”

비주의 말에 다른 졸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요 진짜 30분 만에 뽑은 것치고는 퀄리티 좋던데요.”

“아까도 애기들이 토끼 삼촌을 거의 20번 넘게 들려 달라고 했잖아요. 반응도 좋은 거 같고.”

“저 되게 좋았어요. 그 노래.”

동생들의 칭찬에 내가 갸우뚱했다.

“그 정도로 좋았어?”

“네.”

나름대로 잘 뽑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특별하게 작업을 하려고 염두에 둔 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응이 이 정도라면…….

“정식 음원 발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일단…….”

바로 작업을 이어 가려고 일어나려 했던 내가 다시 드러누웠다.

정말이지 온몸이 쑤신다.

“일단 잠시 눈 좀 붙이고…….”

그리고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오랜만에 악몽을 꿨다.

소시지 왕국에서 모험을 하는 꿈이었다.

-저는… 소시지가 아닙니다!

-아니! 너는 소시지다!

삼지창 포크를 들고 다니는 소시지 근위병들에게 끌려가 소시지 왕국의 왕과 대면했다.

여울이네 아가들이 왕좌에 앉아 있었다.

-너는 소시지다.

-저는 소시지가 아니라 우주선이라구요!

-한 번 날아보거라.

-야압! 얍! 어… 왜 안 되지?

-그렇다.

아가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혀 짧은 발음으로 말했다.

-너는 소시지다!

-앗… 안 돼…!

소시지의 운명을 거부한 내가 부대찌개 신분이 되어 군대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꿈이었다.

진짜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이었다.

“이 꿈이 무슨 의미였을까요. 이사님?”

“글쎄… 꿈이란 건 워낙 난해해서.”

“어쩌면 저는 꿈속에서 소시지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였어야 했던 걸까요?”

왜 웃으시지.

나는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박장대소를 하던 조규환 이사님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쩐 일로 보자고 한 거니?”

“아. 그게요.”

이곳은 회사 2층에 있는 대형 작업실.

프로듀싱 팀이 평소 사용하는 곳인데, 지금은 작곡가들이 워크숍으로 출장 중이라 비어 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어제 즉석에서 만든 <토끼 삼촌>을 완성도 있게 다듬는 것.

“제가 어제 동요를 하나 썼거든요.”

“동요?”

이사님에게 어제 예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곤 의견을 구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미튜브 영상에 업로드할 만한 정도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오호. 그래서?”

“이사님 의견을 여쭙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의견을 구하고 싶기도 하고.”

물론 조 이사님도 동요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나 다음으로 저작권 수익이 높은 작곡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이라고 해야 되나?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만한 것에 대한 감각이 귀신같이 좋은 분이다.

“현장에서 애기들 반응도 좋고, 동생들도 되게 곡이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일반 대중들에게도 반응이 정말 좋을지?”

“네.”

내가 멋쩍게 웃었다.

사람 일이라는 게 혹시 모르는 것 아닌가.

이 동요가 알고 보니 어린이들의 입맛에 찰떡같이 맞아서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다면?

그 어린이들이 자라서 호일로 진화하고, 호일이 수플레로 진화하는 눈부신 미래가 그려졌다.

“음, 그럴 수도 있지.”

턱을 쓰다듬던 조규환 이사님의 눈이 티벳여우처럼 가늘어졌다.

“그럼 곡을 한 번 들려줄래?”

“네.”

어제 동생들과 함께 녹음했던 <토끼 삼촌>을 재생했다.

산뜻한 우쿨렐레의 멜로디에 조규환 이사님이 작곡가들 특유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폴짝 폴짝 토끼춤!

어디로 가요

반짝반짝 햇살이

눈이 부셔요

초반부를 들으며 이사님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중반부로 이어지면서 조 이사님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

그러면서 요상망측한 것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갸우뚱하더니 ‘!’ 하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1절 후렴구까지 듣던 이사님이 멈추라는 듯 손을 들었다.

“우주야.”

“네.”

“일단, 이거 하나만 묻자.”

“?”

조규환 이사님이 다급한 용건을 말하듯 물었다.

“본방송이 언제라고?”

“아마 2주 뒤쯤일 거예요.”

“2주….”

“이사님?”

갑자기 외투를 챙기며 일어서는 조 이사님의 모습에 내가 물었다.

“이사님? 어디 가세요?”

“A&R팀이랑 회의하러!”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다급하게 뛰어가는 조규환 이사님의 뒷모습에 내가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좋으셨나?”

어째 반응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시 홀로 작업실에 남겨진 내가 테이블에 놓인 토끼 인형을 들어 보였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토끼에게 웃으며 속삭였다.

“축하해. 너 데뷔하려나 봐.”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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