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39화
눈앞에 요정이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팬들 사이에서 청초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속눈썹 요괴가 있다.
“요괴라고요?”
“요정이라는 게 말이 헛나왔네요. 청소 계속하시죠. 리혁 씨.”
“흥.”
삐뚜름한 표정을 지으며 먼지떨이를 휘두르는 서모 씨(22세).
머리에는 수건 같은 모자를 쓰고, 위생 마스크를 쓴 리혁이가 각종 청소 장비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얘가 왜 내 작업실 청소를 해 주고 있느냐?
-<미션 싱어>에 나갈 건데 닉네임 좀 써도 돼요?
-제시.
지호에게 배운 마법의 게임 단어를 사용해 조건을 제시하라고 하자, 리혁이가 제안했다.
-고기…?
-고기 정도로 상처 받은 형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거니? 적어도 고깃집은 사 줘야지.
-맞아여. 우주 형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고기 빌딩 정도는 사 줘야죠.
-……작업실 청소해 줄게요.
그래서 기한도 정했다.
-그럼 네가 방송에 출연할 때까지 부탁할게.
-나를 몇 달 동안 청소시킬 생각인 거예요!?
-몇 달이나 우승을 하겠다니, 굉장히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 실력으로 금방 떨어지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너 그럼 가왕지호 할 거야?
그리하여 거래가 성립되었다.
나는 ‘가왕 선우주’라는 닉네임을 빌려주고, 리혁이는 내 작업실 청소를 해 주고.
사실 청소가 뭐 별거냐 싶긴 한데 리혁이가 청소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진짜 어지간한 청소 업체만큼 잘한다.
“서 사장님.”
“예예.”
“보니까 인테리어 감각도 좋으신 것 같은데, 이번에 혹시 작업실 인테리어도 같이…….”
“캬아아악!”
농담 한 번 했다가 뼈도 못 추릴 뻔했다.
곧장 청소를 시작하는 리혁이를 바라보면서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구나~”
사실 나에게는 오직 행복뿐인 거래였다.
우리 애가 어디 가서 남들을 노래로 무찌르면 무찔렀지, 패배하고 돌아올 실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영광이 어디로 오는가?
-‘미씽’.. ‘가왕 선우주’ 등장에 네티즌 반응 “놀랍다”
-‘가왕 선우주’ 놀라운 실력으로 파이널 라운드 진출!
-‘가왕 선우주’ 등장에 네티즌 웃음 폭발
게다가 예능적으로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리혁이 정도면 몇 소절만 듣고도 다들 ‘서리혁이네’ 하고 알아차릴 텐데.
그럴 바에야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어 주는 것도 좋다.
물론 이래도 저래도 나는 좋다.
“혁쇠야.”
“예, 마님.”
“여기 청소가 덜 되어 있구나.”
“…….”
“떼잉, 저런 일머리로 어찌 청소를 한단 말인가! 우리 집 나비가 더 청소를 잘하겠구나!”
잠시 험한 말을 날리는 리혁이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렇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얘를 놀려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
찌릿!
새초롬하게 째려보는 리혁이에게 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그럼 가왕지호 할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꺄르륵!”
“더러워도 내가 참아야지. 진짜. 에잇!”
바닥의 먼지에다가 화풀이를 하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웃고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A&R팀의 도움 덕분에 <토끼 삼촌>의 작업은 거의 다 끝나 가는 중이었다.
“곡 작업은 잘돼 가요?”
“응. 들어 볼래?”
“완성본 듣는 건 내가 처음이에요?”
“응.”
갑자기 되게 좋아하네.
팔짱을 낀 리혁이가 어디 틀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으흠…….”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따라 흥얼흥얼하는데, 그 허밍만으로도 귀가 극락이었다.
나도 리혁이 목소리가 참 취향인가 보다.
“어때? 마음에 들어? 좋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뽑혔는데요. 우쿨렐레로 할 때는 동요 색채가 조금 옅었는데 지금은 진짜 동요 같아요. 애기들도 좋아할 것 같고, 나도 마음에 들어요.”
“다행이네.”
리혁이가 말했다.
“TF팀 이야기 들어 보니까 꽤 제대로 준비한다면서요.”
“응.”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사님이 토끼 인형 만드는 회사랑도 접촉하셨다는 것 같던데요.”
“벌써…?”
엄청 빠르시네. 우리 이사님.
리혁이 말대로 지금 우리 회사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사실, 곡이 제법 괜찮게 뽑히긴 했지만 나는 아직 이사님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그 정도로 잘 될까?”
“나도 궁금하긴 해요.”
사업가들의 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곡이 꽤 잘 뽑혔다는 사실과, 조규환 이사님이 이 <토끼 삼촌>에서 굉장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 정도.
“부담되진 않아요?”
“아직은 괜찮아. 이사님이 준비하시는 것도 어디까지나 밑작업 단계기는 하니까.”
“아, 만약에 동요가 잘 터지면 바로 서포트 가능하도록요?”
“응. 그런 느낌이야.”
지금은 동요가 잘될 것이라고 100퍼센트 가정하고 움직인다기보다는 터질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에 가까웠다.
쉽게 말하자면 물이 들어올 수 있으니 노를 미리 만들어 두는 식으로.
“잘 풀리면 좋고, 잘 안 되어도 애기들한테는 좋은 동요 하나 만들어 주는 거니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
지금도 여울이네 엄마인 혜원 선배가 톡을 보내주고 있었으니까.
혜원 선배 [애들이 토끼 삼촌 틀어 달라고 난리구나ㅠㅠㅠ]
혜원 선배 [되는 대로 불러 주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그 춤이 아니라고 엄마를 배척하고]
혜원 선배 [내가 춤선대원군을 낳았어]
아마 다른 집 아이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매불망 <토끼 삼촌>을 기다리고 있는 아가들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물론 쪼끔 성공하면 좋기도 하고. 기왕이면 더 성공해도 좋고….”
미련 가득한 눈으로 동요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 리혁이가 픽 웃었다.
내가 의자를 빙글 돌리며 물었다.
“뭐, 내 얘기는 됐고. 내가 혹시 도와줄 건 없을까?”
“청소요? 혼자 하는 게 좋은데.”
“그거 말고 <미션 싱어>. 이번에 내 컨셉으로 나가는 거잖아. 기왕이면 컨셉 잡는 거 도와줄까 해서.”
“아.”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미 완벽하게 익혔어요.”
“호오.”
당사자의 앞에서 너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익혔다고 자신하다니.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가 학부생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리혁이를 하찮게 바라보았다.
“그럼 한번 해 보시죠. 리혁 씨.”
“네,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리혁이가 청소 도구를 내려놓은 채 자리에 섰다.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하던 리혁이가 살짝 휘청거리며 어딘가 돌부리에 걸리는 시늉을 했다.
“어, 넘어질 뻔했다.”
“?”
“에쿵, 흑역사~☆”
손을 이마 위로 들어 찡- 하고 튕기는 리혁이.
그러더니 눈치를 살핀다.
“…….”
“…….”
생긋 웃는 나를 바라보던 리혁이가 게걸음으로 움직여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야! 너 거기 안 서!”
“싫어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 * *
리혁이와의 추격전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단거리로 승부한다면 내가 지겠지만, 리혁이는 항상 배터리가 15%가 남은 핸드폰 같은 상태다.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진 다음에 화면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경우가 어쨌건 그저 상처뿐인 승리였다.
“에쿵, 흑역사~☆”
“흐하하하!”
“꺄륵!”
옆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무시하며 꿋꿋하게 대본을 훑었다.
스탭들까지 같이 끼어서 리혁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웃음이 터지는 동안 나의 복장도 같이 터지는 이 느낌.
“형.”
중현이가 날 위로해 주듯 젤리 성경을 들어 보였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
“고마…….”
그리고 젤리 성경의 해석 부분이 뒤집혔다.
[하지만 힘들죠?]
……외롭다.
맏형을 조롱하는 이 천연기념물 형조롱이들을 누가 붙잡아 줬으면 하는 마음을 알아줄 사람 없을까.
리혁이의 우주 쇼가 끝나서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저! 저! 따라 할 수 있어요!”
“오오오.”
“왕지호! 왕지호!”
지호가 자리에 서서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위도 36도. 경도 127도.”
“?”
“그곳은 바로 저의 마음의 고향 김덕순이 있는 군산입니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듣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괜찮은데?”
“괜찮죠?”
마음에 드는 주접이었다.
기억해 뒀다가 군산 가면 덕순 여사한테 애교 3종 세트랑 같이 해 줘야지.
그렇게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들과 같이 웃고는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Q. 뉴니버스에 대한 멤버들의 소감은?
-Q. 기존 예능과 과연 어떤 점들이 다른가?
회사에서 오늘 기자회견에 나올 법한 질문들을 모아서 정리한 리스트였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동안, 대기실 안에 세팅된 꽃다발과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뉴니버스 프로젝트 : 제작 발표회>
오늘은 바로 방영을 앞두고 있는 신규 예능 <뉴니버스 프로젝트>의 제작 발표회였다.
대개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예능 역시 제작발표회가 있다.
방송하기 이틀 전 정도에 기자들을 호텔에 불러 모아서 ‘저희 예능 런칭합니다!’ 하는 행사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항상 예능에 게스트로 나왔기 때문에 이런 행사와 연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주인공인 단독 예능이라 제작발표회를 열게 됐다.
“아. 은근 떨리네.”
“저도요.”
비주가 으어어 하며 머리를 기댔다.
“되게 떨리네요.”
“진짜 이게 게스트로 나갔을 때랑은 다른 거 같아요. 조연 배우와 주연 배우의 차이?”
지호의 말이 딱이었다.
지금까지는 항상 게스트로만 나가서 편하게 하고 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흥행을 책임지는 주연 배우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흥행을 주연 배우와 감독이 책임을 지듯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감독도 몹시 떨고 있었다.
“피디님. 괜찮으세요? 아까부터 말씀이 통 없으신 것 같은데…….”
“괜찮아.”
덩치 큰 산적 같은 외모의 구재영 피디가 웃었다.
“내가 피디 생활만 십 년이 넘었는데 이 정도는 익숙하지. 하하하하하! 하하하!”
“청심원 몇 개 드셨어요?”
“두 개….”
“그렇군요.”
“혹시 티 나니?”
“입가에 자국 남으셨어요. 청심원 자국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요렇게…….”
구재영 피디님이 물티슈로 입가를 슥슥 닦고는 말했다.
“나도 제작발표회는 초보나 다름없거든. 커리어가 주세한 하나니까. 이번이 두 번째 제작발표회야.”
“잘하실 거예요.”
“됐어. 피디가 출연자한테 격려 받으면 안 되지.”
피디님이 우드득 우드득 하며 근육을 풀었다.
“이번에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시청률도 대박 터지고… 그러려면 오늘 홍보도 열심히 하고.”
“진짜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해야죠.”
지금까지는 항상 인기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을 해서 시청률을 뽑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NBS라는 자그마한 신생 채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예능.
우리의 인지도가 있다고 해도 방심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내가 TJ 엔터에서 있었을 때 ‘내가 나가서 회사 차리면 대박 나겠지?’ 하던 임원 분들이 꽤 있었는데, 얼마 안 가 다들 재취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계산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오늘 진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요. 피디님.”
“다 해 보자고. 내가 춤도 준비했어.”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나오기 위해 춤까지 준비했다는 말에 우리가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휴우.”
석환 형이 땀을 훔치며 들어왔다.
땀에 잔뜩 절어 있는 수학귀신의 모습에 내가 놀랐다.
“형, 왜 그래?”
“밖에 사람이……. 어우.”
“일단 물 좀 마셔.”
“아니, 밖에 기자들이 진짜 너무 많아서…….”
그 말에 우리가 대기실을 나섰다.
웅성웅성.
수천 마리의 벌떼가 한데 모여 떠드는 것처럼 거대한 소음이 느껴진다.
구재영 피디님과 함께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커튼 바깥에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
“!!”
세기의 결혼 기자회견에서 볼 법한 인원수.
방금 전까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시선을 교환했던 피디님과 우리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흐뭇.’
‘흐뭇.’
긴장감 가득했던 분위기에 느슨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 * *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말이 있다.
-소식이 궁금한 동료 기자가 있다면 뉴블랙 쇼케이스를 가라.
웬만한 드라마 제작발표회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식인 만큼 모든 연예 매체에서 기자를 파견하기 때문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자기도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어! 우리 김 기자!”
동창회처럼 반가운 안부 인사가 오가는 현장.
저마다 어디에서는 누구를 보냈구나, 하면서 곁눈질을 하고 있을 때.
“그런데 연예IN은 오 기자가 안 보이네요.”
“거기도 이제 오 기자가 직접 다니고 그럴 급은 아니지. 밑에 기자 보냈을걸?”
항상 뉴블랙과 관련된 소식을 빠르게 선점하던 오소희 기자가 안 보였다.
그만큼 지난 몇 년간 연예IN의 성장이 빨랐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규모가 큰 연예 매체가 되어서 그런지, 오소희 기자는 뉴블랙과 단독 인터뷰를 할 때만 직접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기자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럽다.’
‘나도 신인 때 잘해 줄걸.’
‘옛날에 인터뷰에서 괜히 트집 잡았나?’
뉴블랙 코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신인 시절에 뉴블랙에게 잘해 주었거나 투자했던 이들이 덕을 보고 있었다.
케이터링으로 준비된 과자를 우물거리며 누군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친해질 수는 없나?”
“되겠어요?”
누군가 턱짓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뉴블랙 TF팀의 윤석환 팀장이 방문한 기자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환대하고 있었다.
“윤 팀장 얼굴을 봐봐요. 저기에 찔러 들어갈 만한 틈이 있나.”
“저기도 무서운 사람이야.”
뉴블랙과 관련된 실무를 총괄하는 TF 팀장.
연예계에서 어지간한 중소기획사 대표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사람이 진짜 많네요.”
“연예 매체란 매체는 다 출동했을걸? 이거 요새 엄청 핫한 떡밥이잖아. 뉴니버스.”
모두가 동의했다.
국민 아이돌 뉴블랙과 국민 피디 구재영의 결합.
이미 소식이 떴을 때부터 수많은 예능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조합이었다.
‘이건 된다.’
영화의 흥행 여부에 대해 어지간하면 말을 아끼는 기자들도 이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첫 방송에 5프로는 단박에 넘을 거 같은데요?”
“5프로는 확실히 넘지.”
최근 들어 케이블 프로에서 성공을 판단하는 척도는 3퍼센트 정도.
그런 면에 있어서 아직 신생 채널이나 다름없는 NBS의 예능 첫 방송 시청률이 5퍼센트나 나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게 어마어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5프로 더 갈 거 같은데?”
“이번에 여보 낚시만 해도 시청률 잭팟 터졌잖아요. 잘하면 10프로도 넘을 수 있어요.”
“10프로도 가능할 수도…?”
현재까지 케이블 예능 중에서 최고 시청률은 유명 케이블 채널 GTV의 <보라매 자매들 시즌2>였다.
세 여성이 해외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믹 예능.
중반부의 시칠리아 편이 16퍼센트로 역대 케이블 예능 1위 기록이었다.
“보라매까지 가는 건 좀 힘들 거 같고.”
“그죠.”
“그거는 케이블에서도 나올 수 없는 시청률이었어. 드라마도 아닌데 15프로가 넘는 게 말이 돼?”
기자들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잘하면 최대 10퍼센트까지 달성할 수도 있으려나?’
물론 이것도 어마어마하게 후하게 친 거였다.
아무리 뉴블랙이 좋다고 해도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수플레들이 ‘뉴블랙 이번 앨범 명곡 파티예요ㅠㅠ’ 하며 홍보를 해도 수록곡까지 찾아듣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이건 솔직히 시청률 대박을 노린다기보다는 2차적으로 노리는 게 많은 예능이에요.”
“그치.”
“일단 뉴블랙이 들어갔으니까 동남아나 일본 쪽에 판권도 비싸게 팔릴 거고, 미튜브에서도 어마어마하게 흥할 거니까. 게다가 요즘 애들이 딱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라 PPL 팔아먹기도 좋고.”
“하긴, 고등어조림으로도 그 난리가 났는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레몬 엔터가 시청률 초대박을 노린다기보다는 2차 수익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게 중론이었다.
그들이 이번 예능에 대해 수군수군 떠들고 있을 때였다.
[잠시 뒤 제작발표회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장내의 기자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렸다.
카메라 기자들도 전투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을 때.
‘구재영이다!’
국민 피디로 유명한 인물이 큼지막한 덩치를 자랑하며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뉴니버스]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은 피디가 마이크를 들고 기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뉴니버스 프로젝트>의 연출이자 오늘 제작발표회의 사회를 맡은 구재영 피디입니다.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 피디가 사회를 보나 보네.’
워낙 TV 노출이 많았던 PD라 반쯤 연예인에 걸쳐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달변으로도 유명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시사회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의 수플레들과 호일, 짭플레 분들과 함께 할 예정이고요.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미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능숙하게 기자들에게 인사하던 구재영 피디가 손짓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들을 만나 보시겠습니다!
빰빠바밤!
음악과 함께 뉴블랙 멤버들이 입장했다.
포토월 앞에 선 멤버들이 귀여운 포즈를 취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저마다 자기소개를 마쳤을 때.
-자, 그러면 오늘의 첫 번째 순서로 하이라이트 영상 시사가 있겠습니다.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하이라이트 영상.
모두가 노트북 자판에 전투적으로 손을 올린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불이 꺼지고 흘러나오는 영상.
‘음?’
‘뭐지?’
멀찍이서 버스 한 대가 굴러 오고 있었다.
그걸 보며 한 무리의 수플레들이 속삭인다.
[와! 버스다!]
멀찍이서 다가오던 버스가 이내 치익 하면서 멈춰 서고.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김중현이 카메라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벙찐 수플레들과 중현의 얼굴 위로 두둥! 떠오르는 자막.
『버스』
…에 덧붙여지는 자막.
『뉴니버스』
기자들이 단체로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전투적으로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기사들이 빠르게 올라가는 가운데.
아까 레몬 엔터가 시청률 대박보다는 2차를 노리는 거라고 주장했던 기자가 눈을 깜빡였다.
‘시청률 대박, 어쩌면 가능할 수도…?’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예고편이었다.